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윙 80위~71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라이트윙

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윙 80위~71위

토르난테 2024. 2. 20. 14:42
728x90
728x90

주의사항

* 작성자 개인의 주관이 강하게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설득하셔도 바꿀 생각 없습니다.

* 과거 버전과는 대폭 수정되었습니다. 관점이 바뀐 부분도 있고 가진 자료가 그때보다 많아졌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 과거의 선수일수록 수상 기회가 적어 수상 횟수에서 불리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80위 피니디 조지

 


생년월일: 1971년 4월 15일
국적: 나이지리아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레알 베티스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 선정 20세기 나이지리아 최고의 선수이자 동시에 1990년대 중후반 유럽 무대를 호령했던 나이지리아 출신의 라이트윙으로 긴 다리를 가졌으면서도 측면에서 기막힌 스피드를 보여준다며 가젤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루이 반 할 체제의 아약스에서 첫 전성기를 맞아 에레데비시 3연패를 이뤄냈으며 1994-95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주역으로 이름을 날렸고 스페인의 레알 베티스에서는 제2의 전성기를 맞아 라리가 정상급 라이트윙으로 군림하며 1996-97 시즌 코파 델 레이 준우승을 이뤄냈다.

나이지리아 대표팀 소속으로도 뛰어난 활약을 펼쳤는데 특히 네 번의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참가해 모두 3위 안에 올렸고 특히 1994년 대화에서는 주전으로 조국의 우승을 이뤄냈다. 세계 무대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치며 1994 미국 월드컵과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조국을 16강에 올렸다.



79위 프랑수아 반 데르 엘스트

 


생년월일: 1954년 12월 1일
국적: 벨기에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RSC 안더레흐트

1970년대 안더레흐트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윙어로 놀라운 민첩성과 재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폭발적인 드리블 돌파로 수비를 따돌리고 컷인 플레이에도 능해 직접 득점에도 능했으며 라이트백과 스트라이커로 소화했을 정도로 축구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RSC 안더레흐트에서 전성기를 누린 반 데르 엘스트는 파스비트 군단의 벨기에 리그 2회 우승과 벨기에 컵 4회 우승과 리그컵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에서는 3회 연속으로 결승에 진출해 2회 우승을 차지했음은 물론 UEFA 슈퍼컵에서도 유러피언 컵 챔피언인 바이에른 뮌헨과 리버풀을 상대로 우승하는데 공헌하는 등 안더레흐트에서 크고 작은 대회에서 총 16회 우승했다.

반 데르 엘스트 개인의 득점력도 대단해 1976-77 시즌에는 주필러리가 득점왕에 올랐으며 1977-78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 득점왕에도 올랐고 벨기에 대표팀에서도 UEFA 유로 1980과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 서브 역할을 맡아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며 전자의 대회에서는 준우승을, 후자의 대회에서는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를 물리치는 충격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78위 루벤 아얄라

 


생년월일: 1950년 1월 8일
국적: 아르헨티나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후배 로베르토 아얄라 이전에 생쥐라 불렸던 선수로 양측면의 날개는 물론 중앙 공격수도 능숙하게 소화했으며 사이드를 가로지르는 폭발적인 질주와 날카롭게 들어오는 오른발 패스로 득점 찬스를 만들어냈으며 슈팅력도 우수했다.

아르헨티나 시절에는 산 로렌소에서 전성기를 누린 아얄라는 전자의 클럽에서는 1972 시즌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를 모두 제패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1974 서독 월드컵에 레프트윙으로 참가해 조국의 1차 조별 리그 통과에 공헌했다.

유럽 무대에서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활약했는데 1975-76 시즌 코파 델 레이 우승과 1976-77 시즌 라리가 우승을 이뤄내며 크루이프, 네스켄스와 더불어 당대 라리가 최고의 외국인 선수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77위 카렐 포보르스키

 


생년월일: 1972년 3월 30일
국적: 체코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스파르타 프라하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라이트윙으로 화려한 드리블과 정교한 오른발 킥을 활용해 우측면에서 크로스를 날리며 공격을 이끌었다.

디나모 체스케부데요비체에서 데뷔해 빅토리아 지즈코프에서 만개한 포보르스키는 UEFA 유로 1996에서 포르투갈 전 중거리 득점과 같은 활약을 펼치며 조국을 결승에 올렸고 준우승에 그쳤음에도 포보르스키 개인은 대회 도움왕 및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고 이때의 활약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이적한다.

아쉽게도 맨유에서는 좋지 못했지만 이후 벤피카에서 부활에 성공했고 세리에 A의 라치오에서도 1년 6개월간 활약했으나 데얀 스탄코비치한테 밀려나는 빈도가 늘면서 출전시간 확보를 위해 체코의 스파르타 프라하에 이적했다. 프라하 시절에서도 유럽 정상급 선수로 활약하며 네드베드와 함께 체코의 UEFA 유로 2004 4강행을 이끌었고 그 과정에서 도움왕을 수상했다.

 


76위 라울 베르나오

 


생년월일: 1941년 11월 5일
국적: 아르헨티나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CA 인데펜디엔테

1960년대 남미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라이트윙으로 오른쪽 측면에서 거칠 것 없이 질주해 미치광이라 불렸으며 이런 저돌적인 모습과는 다르게 높은 수준의 테크닉을 앞세워 우아한 플레이를 펼쳐 우측면의 시인이라고도 불렸다.

인디펜디엔테에서 전성기를 누린 베르나오는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남미 대륙에서도 펠레를 보유한 산투스와 우루과이의 양대 강호 클루브 나시오날과 페냐롤 등 쟁쟁한 상대들을 물리치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2연패를 이뤄내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등 인데펜디엔테가 남미 최고의 명문으로 발돋움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아르헨티나 대표팀 소속으로 월드컵에는 나가지 못했으나 1967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강력한 경쟁자 오마르 코르바타를 밀어내고 주전으로 활약하며 준우승을 이뤄냈다.



75위 클라우디오 카니하

 


생년월일: 1967년 1월 9일
국적: 아르헨티나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BC 아탈란타

축구 역사상 가장 빨랐던 선수 중 한 명으로 육상선수 출신으로 100m를 10초대에 주파하는 스피드로 이름을 날리며 바람의 아들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스피드뿐만이 아니라 굳센 바디밸런스와 현란한 발기술, 그리고 동료들에게 찬스를 만들어주는 부분에도 능해 윙어는 물론 처진 공격수 역할도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었으며 슈팅력도 제법 괜찮았으나 기복이 심했다.

리버 플레이트에서 데뷔해 아탈란타에서 전성기를 누린 카니자는 AS 로마로 이적해 도약할했으나 1993년에 코카인을 복용한 죄로 13개월의 출전 정지라는 징계를 받았고 징계가 풀린 뒤 벤피카로 이적했으나 적응하지 못하고 아르헨티나의 보카 주니어스로 이적했으나 1996년 9월에 그의 어머니가 건물 5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는 참극이 벌어져 1996-97 시즌은 출전하지 않았으며 이후 기량이 쇠한 뒤 레인저스와 카타르 SC에서 말년을 보내는 등 클럽 커리어는 악재의 연속이었다.

카니자가 명성을 떨친건 대표팀에서의 활약으로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마라도나의 공격 파트너로 맹활약했는데 16강 브라질전에서도 수세에 몰렸으나 마라도나의 패스를 받은 카니자의 결승골로 브라질을 물리쳤으며 준결승 이탈리아전에서도 동점골을 기록해 조국의 결승 진출에 기여했으며 1991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우승을 기록하며 1990년과 1991년에는 남미 올해의 선수 투표에서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2위에 오르기도 했다.

 

 

74위 마리오 보예

 


생년월일: 1922년 7월 30일
국적: 아르헨티나
신체조건: 미상
주 소속팀: 보카 주니어스

1940년대 아르헨티나 무대 최고의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엄청난 스피드를 가지고 있어 원자인간이라 불렸으며 날카로운 슈팅 능력으로 도살자라는 별명으로도 불렸으며 측면은 물론 중앙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발휘했다.

우루과이 출신의 바렐라와 함께 보카 주니어스의 에이스로 군림한 보예는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2회 우승을 이뤄냈고 보예 개인도 1946년에는 리버 플레이트에서 뛰던 라 마키나의 구성원들을 제치고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이후 라싱 클루브에서도 정규리그 2회 우승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큰 공을 세웠다.

대표팀에서도 라 마키나의 아웃사이드 라이트 후안 카를로스 무뇨스와 치열한 주전 경쟁에서도 우위에 서며 아르헨티나의 코파 아메리카 3연패에 기여했다.



73위 에밀 코스타디노프

 


생년월일: 1967년 8월 12일
국적: 불가리아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FC 포르투

1990년대 상반기를 빛낸 불가이라 출신의 라이트윙으로 상대 수비를 벗겨내는 전진드리블과 과감한 슈팅능력을 바탕으로 팀의 공격에 활기를 불어넣었으며 특히 몸싸움과 슈팅에 능해 때때로 스트라이커에 기용되었다.

자국리그의 CSKA 소피아에서 정규리그와 불가리아 컵에서 각각 3회 우승을 이뤄냈고 1990-91 시즌을 앞두고 이적한 포르투에서도 정규리그 3회 우승 및 타사 데 포르투갈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1995-96 시즌 UEFA컵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했다.

불가리아 대표팀 소속으로도 팀의 핵심으로 활약한 코스타디노프는 1993년 1994 미국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프랑스를 상대로 최종전에서 멀티골을 득점하며 2-1 승리를 이끌어 본선 진출에 수훈갑을 세워 불가이라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 8위에 올랐고 본선에서도 조국의 4강 진출이라는 대업적을 이뤄냈다.



72위 칼 치셰크

 


생년월일: 1910년 8월 28일
국적: 오스트리아
신체조건: 키 171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SC 바커 빈

1930년대와 40년대에 걸쳐 이름을 날렸던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측면에서 크로스를 올리기보다는 중앙으로 침투하는 플레이를 선호했는데 우수한 공간지각 능력과 빠른 스피드를 겸비해 적절한 위치로 침투해 많은 득점을 올렸음은 물론 공중볼 경합 능력과 헤더 득점에도 우수한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측면에서 크로스를 선호하지 않았을 뿐 막상 크로스를 줘야 하는 상황에서는 양질의 크로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선수 생활 전체를 SC 바커 빈에서만 보낸 치셰크는 1930년대에는 우승 트로피를 들지 못했고 조국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된 뒤에는 가울리가 오스트마르크에서 3회 준우승을 이뤄냈지만 우승을 하지 못하다가 나치의 패망으로 오스트리아가 독립한 뒤에는 1946-47 시즌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와 오스트리아컵을 동시에 우승하며 도메스틱 더블을 기록하기도 했다.

오스트리아 대표팀에서도 핵심으로 활약한 치셰크는 1931년 데뷔전에서 강호 스코틀랜드를 상대로 5-0 대승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멀티골을 기록하며 화려하게 데뷔했고 1931-32 중유럽컵에서는 조국의 우승을 이끌었다. 그리고 1934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도 4강 진출이라는 성과를 냈다. 그러나 나치 독일 체제에서는 에른스트 레너에게 밀려 뽑히지 않다가 독립 이후에 다시 선발되었다.



71위 프레디 융베리

 


생년월일: 1977년 4월 16일
국적: 스웨덴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아스날 FC

2000년대 상반기 스웨덴 축구를 대표했던 윙어로 적토마라 불렸을 정도로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진에 균열을 냈으며 우수한 지구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양 측면 모두에서 뛸 수 있었다.

아스날에서 전성기를 보낸 융베리는 2003-04 시즌 무패 우승을 포함해 프리미어리그 2회 우승, FA컵 3회 우승, 그리고 2005-06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큰 공을 세운 융베리는 특히 2001-02 시즌에는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으며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2002년과 2006년에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인 굴드볼렌을 수상했다.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우수한 활약상을 이어나간 융베리는 두 번의 월드컵과 세 번의 유럽선수권대회에 출전해 두 번의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을 이뤄냈으며 UEFA 유로 2004에서는 8강의 성적을 냈으며 특히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잉글랜드와 한 조가 되었음에도 죽음의 조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전 회차: 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윙 90위~81위

이전 회차: 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윙 80위~71위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