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윙 90위~81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라이트윙

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윙 90위~81위

토르난테 2024. 2. 19.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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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위 지우베르투 아우베스

 


생년월일: 1950년 12월 24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플루미넨시

1970년대 하반기에 전성기를 맞아 이름을 날렸던 다재다능한 공격수로 근육으로 다져진 강력한 피지컬을 가지고 있어 상대 수비수들과의 경합에서 쉽게 밀리지 않아 팬들로부터 버팔로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오른발과 왼발을 모두 능숙하게 사용해 다양한 득점 패턴을 가져갔으며 중앙과 양 측면을 모두 소화할 수 있었다.

플루미넨시에서 전성기를 누린 아우베스는 히벨리누, 나르시소 도르발 등의 공격진들과 함께 삼색의 기계라 불리는 조직적인 공격 조합을 이끌며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아우베스 개인도 1975 시즌에는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훗날 보타포구에서도 활약했다.

셀레상에서는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 주전으로 활약한 아우베스는 나름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으나 아르헨티나와 페루측의 승부조작이 의심되는 경기 때문에 골득실차에서 밀려 한 번도 지지 않고도 3위 결정전으로 밀려났으며 3위 결정전에서는 이탈리아를 상대로 이기며 3위를 차지하는데 기여했다.



89위 프리아사

 


생년월일: 1924년 10월 20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바스쿠 다 가마

1940년대와 50년대에 걸쳐 브라질 무대에서 활약했던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빠른 스피드를 활용해 중앙으로 침투해 벼락같은 슈팅으로 득점하는 컷인 플레이에 능했으며 기존 측면 공격수의 기본 덕목인 크로스 역시 능했으며 축구 지능이 높아 아웃사이드 라이트 이외에도 인사이드 라이트와 센터 포워드도 소화할 수 있는 다재다능한 공격수였다.

승리의 급행열차라 불리는 바스쿠 다 가마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프리아사는 바스쿠 다 가마에서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2회 우승과 1948 시즌 남아메리카 클럽 챔피언십에서 우승했으며 이후 상파울루로 이적한 뒤에는 1949 시즌에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우승과 득점왕을 동시에 차지했다.

셀레상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던 프리아사는 1949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뤄냈고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결승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선제골을 득점했음에도 우루과이의 동점골과 역전골로 인해 준우승을 거두며 선제골이 빛을 발하는 비극을 겪었다.

 


88위 레오폴트 콘티

 


생년월일: 1901년 4월 12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71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이탈리아 축구 초창기를 대표하는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빠른 스피드와 교묘한 왼쪽 사이드 드리블 능력을 겸비했으며 인사이드 포워드와 침착한 원투패스 이후 상대 수비의 배후로 침투해 득점하는 플레이에 능했다.

초창기 인테르를 대표하는 스타엿던 콘티는 1919-20 시즌에는 이탈리안 풋볼 챔피언쉽 우승을 이뤄냈으며 1929-30 시즌에는 주세페 메아차와 호흡을 맞춰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1920년대 아주리 군단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하며 1924 파리 올림픽과 1927-1930 중유럽컵에 참가했고 후자의 대회에서는 우승의 영예를 누렸다.

 


87위 페드로 로드리게스

 


생년월일: 1987년 7월 28일
국적: 스페인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65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2010년대 초반 펩 과르디올라 체제의 바르셀로나의 황금기를 이끄는데 훌륭한 조연으로 활약했던 선수로 온 더 볼 능력에서는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오프 더 볼 상황에서의 우수한 움직임과 높은 수준의 전술안을 바탕으로 적절한 위치를 선점하거나 동료들과 우수한 팀워크를 보여주며 공격진의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양발을 활용한 정확한 슈팅으로 뛰어난 골 결정력을 보여주기도 했으며 특히 엘 클라시코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FC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누린 페드로는 노쇠화한 앙리를 밀어내고 주전으로 활약하며 라리가 5회 우승과 코파 델 레이 3회 우승은 물론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3회 우승을 이뤄냈다. 첼시로 이적한 뒤에도 2016-17 시즌에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며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이뤄냈고 AS 로마와 라치오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페드로는 아르마다 군단에서도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UEFA 유로 2008 우승에 큰 역할을 담당했던 다비드 실바와 토레스를 밀어내고 주전으로 차지하며 월드컵 우승에 기여했으며 UEFA 유로 2012에서도 백업 멤버로 우승을 경험했다.

 


86위 도르발

 


생년월일: 1935년 2월 26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FC 산투스

1960년대 상반기 브라질 무대 정상급의 라이트윙으로 빠른 스피드와 상대방을 속이는 교묘한 발재간을 활용한 드리블 돌파와 뛰어난 슈팅력을 겸비한 완성형 윙어였다.

산투스에서 구단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누린 도르발은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6회 우승과 전국리그 5연패를 달성했고 국제무대인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에서도 2연패를 기록하며 당대 최강의 팀으로 군림했다.

특히 1962년에는 주립리그인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와 전국리그를 모두 석권함은 물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는 당대 남미 최강의 팀인 페냐롤을 꺾으며 트레블을 달성했고 추가로 인터콘티넨탈컵에서는 유럽 최강의 팀인 에우제비우의 벤피카를 꺾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소속팀에서는 황금기를 이끈 레전드 중 하나로 평가받지만 셀레상에서는 가린샤 등 여러 훌륭한 측면 공격수로 인해 거의 소집되지 못했으며 1959 코파 아메리카에서 가린샤의 백업 역할을 수행했다.



85위 페드로 칼로미노

 


생년월일: 1892년 3월 13일
국적: 아르헨티나
신체조건: 불명
주 소속팀: 보카 주니어스

아르헨티나 축구 태동기에 활약했던 윙어로  아웃사이드 라이트 포지션에서 주로 활약했으며 빠른 스피드와 정확한 드리블은 물론 거친 수비에 대한 대비책으로 정지하는 속임수를 무기로 삼았으며 관중들의 환호를 이끌어내면서 상대 수비수에게 굴욕을 안기는 것도 서슴지 않았기에 미치광이라 불렸는데 바이시클 킥은 물론 헛다리 짚기와 넛 메그 등 다양한 기술에 능했다.

1914년에 잠시 히스파노 아르헨티노로 떠났던 것을 제외하면 선수 생활 전부를 보카 주니어스에서만 보내며 구단 통산 득점 9위에 오른 칼로미노는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4회 우승을 포함해 크고 작은 대회에서 총 9회 우승을 차지하는데 공헌하며 1910년대 아르헨티나 무대를 제패했던 라싱 클루브의 전성기를 끝내고 제네시스를 1920년대 아르헨티나 무대의 지배자로 올려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네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해 1921 코파 아메리카에서 조국의 첫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두 번의 준우승을 이뤄내기도 했다.

 

 

84위 다닐로 포피보다

 


생년월일: 1947년 5월 1일
국적: 슬로베니아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

유럽의 브라질이라 불리던 1970년대 유고슬라비아 축구계를 주름잡았던 라이트윙으로 교묘한 발재간을 바탕으로 상대 수비를 완벽하게 따돌린 뒤 날카로운 얼리크로스를 바탕으로 득점 찬스를 만들었고 유고슬라비아 탑 리그 득점왕을 차지한 이력이 있었을 정도로 슈팅 스킬과 결정력도 우수했던 다재다능한 윙어였다.

유고슬라비아 시절에는 올림피아 류블랴나에서 활약했는데 소속팀 전력의 약세로 우승컵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1973-74 시즌에는 정규리그 17골을 득점해 포피보다 개인이 리그 득점왕에 올랐고 대표팀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1974 서독 월드컵 8강 2차 조별리그 진출 및 UEFA 유로 1976에서 4위에 오르는데 공헌했다.

서독 분데스리가에 소속된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였던 포피보다는 1970년대 중반 분데스리가 최고의 라이트윙으로 군림했는데 전력이 약하다고 평가받았던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를 분데스리가 3위에 올리며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도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총 4회 선정되었다.



83위 산토스 우르디나란

 


생년월일: 1900년 3월 30일
국적: 우루과이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클루브 나시오날

1920년대 우루과이 축구의 전성시대를 이끈 다재다능한 공격수로 주 포지션은 아웃사이드 라이트이지만 공격 진영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으며 빠른 스피드와 정교한 패스 및 슈팅은 물론 기술적으로도 높은 수준의 선수로 전해진다.

선수 생활 전부를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보내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끈 우르디나란은 프리메라 디비시온 6회 우승과 코파 컴페텐시아 3회 우승을 이뤄냈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세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해 모두 우승을 이뤄냈으며 1924 파리 올림픽과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도 조국의 우승을 이끌며 금메달을 두 번이나 목에 걸었고 1930 초대 월드컵에서도 로테이션 멤버로 우승을 경험하며 자신이 참가한 여섯 번의 국제대회에서 전부 우승을 이뤄내는 대기록을 세웠다.



82위 마리안 마스니

 


생년월일: 1950년 8월 13일
국적: 체코슬로바키아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슬로반 브라티슬라바

슬로바키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자 1970년대 유럽 축구계를 풍미한 라이트윙으로 감각적인 드리블 돌파로 상대 수비수를 따돌리거나 칼날같은 얼리크로스와 컷백패스를 자유자재로 쓰며 득점 찬스를 만들어냈음은 물론 정규리그 득점왕을 수상했을 만큼 뛰어난 슈팅력으로도 명성을 떨쳤다.

슬로반 브라티슬라바에서 전성기의 대부분을 보낸 마스니는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며 1973-74 시즌과 1974-75 시즌에 정규리그 2연패 및 체코슬로바키아컵 2회 우승을 이뤄냈고 1980-81 시즌에는 체코슬로바키아 1부 리그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 소속으로도 UEFA 유로 1976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조국의 우승을 이뤄내 발롱도르 투표에서 9위에 올랐고 UEFA 유로 1980 3위 및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도 본선에 참가했다. 여담으로 발롱도르 수상자였던 케빈 키건으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기술적인 윙어 중 한 명이다."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81위 라인하르트 리부다

 


생년월일: 1943년 10월 10일
A매치 기록: 26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FC 샬케 04

1960년대 후반과 70년대 전반을 빛냈던 로얄 블루스의 윙어로 뛰어난 테크닉과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훌륭한 드리블 돌파 실력을 자랑하며 스탠리 메튜스를 보는 것 같다고 "스탠"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샬케와 도르트문트에서 모두 맹활약해 베스트팔렌의 왕으로 불리기도 했다.

분데스리가 초창기 최고의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이름을 날린 리부다는 샬케에서 활약하다 도르트문트에서 1965-66 시즌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냈고 1965-66 시즌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된 뒤 다시 샬케로 돌아와서 1971-72 시즌 포칼 우승과 분데스리가 준우승을 이뤄내며 1999년에 샬케의 세기의 일레븐과 명예의 주장으로 선정되었다.

리부다는 디 만샤프트에서는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발탁되었는데 팀의 측면 공격을 이끌며 1골 3도움을 기록해 조국 서독이 준결승에 오르는데 기여했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도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4회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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