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Top 15

국가의 영웅들/잉글랜드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Top 15

토르난테 2024. 9. 14.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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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잉글랜드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 출처는 RSSSF와 트렌스퍼마크트이며 둘의 기록이 상충할 경우에는 전자를 우선적으로 따릅니다.
*기록일은 2024년 9월 13일 기준입니다.


15위 잭 그릴리쉬

 


생년월일: 1995년 9월 10일
A매치 기록: 38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


2010년대 후반에서 2020년대 초반에 전성기를 누린 공격형 미드필더 겸 레프트윙으로 공격 상황에서 드리블로 공을 운반해 파이널 서드에 있는 공격수에게 결정적인 패스를 지원하는 능력에 특히 능했으며 펩 과르디올라를 만난 이후에는 전방에서 압박하며 수비수와의 심리전에서 우위를 가져가는 부분에서도 발전했다.

아스톤 빌라에서 데뷔해 팀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에이스로 팀을 이끈 그릴리시는 2018-19 시즌 PFA 올해의 팀 EFL 챔피언십에 선정되었고 2019-20 시즌에는 아스톤 빌라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거액의 이적료로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한 이후에는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으나 2022-23 시즌 후반기에는 주전으로 도약하며 팀의 트레블에 큰 공을 세웠다.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도 치열한 주전 경쟁을 벌인 그릴리쉬는 UEFA 유로 2020과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팀의 백업 멤버로 활약했다.

 

 

14위 조 콜

 


생년월일: 1981년 11월 8일
A매치 기록: 56경기 10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첼시 FC


2000년대 중반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주전 선수로 화려한 발밑 기술을 활용한 드리블과 감각적인 쓰루패스로 골 찬스를 만드는데 능해 팬들로부터 뉴 개스코인이라 불렸다.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에서 데뷔해 두각을 나타낸 조 콜은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인수한 첼시에 합류하며 2004-05 시즌과 2009-10 시즌 더블 우승을 포함해 프리미어리그 3회 우승과 FA컵 2회 우승, 그리고 2004-05 시즌 리그컵 우승을 이뤄냈고 유럽 무대에서도 2007-08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했으며 그 해 첼시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삼사자 군단에서는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조별 리그 스웨덴전에서는 명장면으로 회자되는 독수리 슛으로 득점에 성공한다

 

 

13위 찰리 조지

 


생년월일: 1950년 10월 10일
A매치 기록: 1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0cm
주 소속팀: 아스날 FC

 

하이버리의 왕, 더비의 왕이라 불렸던 아스날의 레전드로 양발 모두를 활용한 강력한 슈팅과 유려한 연계플레이를 바탕으로 팀의 공격을 지휘했다.

1970년대 초중반에 아스날의 에이스로 군림한 조지는 아스날에 머무는 동안 1970 인터시티 페어스컵 우승 및 1970-71 시즌 풋볼 리그와 FA컵 더블을 이뤄냈는데 특히 FA컵 결승전에서는 리버풀을 상대로 결승골을 터트린 후 양팔을 쭉 편 채로 경기장 바닥에 눕는 전설적인 골 세레머니를 펼쳤다.

더비 카운티로 이적한 뒤에도 1975-76 시즌 유러피언 컵 레알 마드리드전에서 해트트릭을 터트리며 더비 카운티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다만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는 중용되지 못했다.

 

12위 폴 머슨

 


생년월일: 1968년 3월 20일
A매치 기록: 21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82cm
주 소속팀: 아스날 FC

풋볼 리그 말기와 프리미어리그 초반기를 풍미한 찬스 메이커로 최전방보다는 2선이나 오른쪽 측면에 머물면서 드리블과 킬패스로 경기를 푸는 플레이메이커형 선수였으나 알콜과 도박에 중독되는 등 자기 관리 능력에선 문제가 있었다.

그레이엄 체제의 아스날에서 에이스로 활약한 머슨은 풋볼 리그 2회 우승과 FA컵과 리그컵 우승, 그리고 1993-94 시즌 컵 위너스컵 우승에 공헌했으나 뱅거 감독 부임 이후 알콜 중독 문제와 같은 심각한 자기 관리 능력과 계약 기간 문제로 미들즈브러로 떠났다.

실제로 그가 자주 하는 세레머니는 자신을 알콜 중독자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을 비꼬는 음주 세리머니였을 정도로 자기 관리에 소홀했다.

 

 

11위 맷 르티시에

 

 

생년월일: 1968년 10월 14일
A매치 기록: 8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사우스햄튼

 

프리미어리그 출범 초창기에 활약했던 2선 자원으로 수비 가담과 활동량은 저조했지만 기술적인 능력으로는 타의추종을 불허해 화려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수를 완벽하게 농락했음은 물론 전술안도 뛰어나 패스를 주기 적절한 위치를 선점해 유려한 플레이메이킹으로 이름을 날렸고 골 결정력과 페널티킥에도 강점을 보였다.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데뷔팀 사우스햄튼에서 보낸 맷 르타시에는 소속팀 전력의 한계로 우승 트로피는 만져보지 못했지만 르타시에 개인은 1989-90 시즌 PFA 올해의 영 플레이어를 수상했고 1994-95 시즌에는 41경기에 출전해 19골 15도움을 기록하는 맹활약을 선보이며 프리미어리그 도움왕 수상 및 PFA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전술상의 이유로 대표팀에서는 중용되지 못햇지만 사우스햄튼에서 그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기에 2013년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2015년에는 원 클럽맨 상을 수상했는데 시어러는 그를 두고 "내가 같이 뛰어본 선수 중에서 단연코 최고였다. 그 천재성에 있어서는 단연코 범접할 선수조차 없었다. 그렇게 기술적으로 화려했으면서도 성격은 너무나 평온했다. 나였다면 하루종일 괴로워했을 페널티킥을 놓쳐도 전혀 개의치도 않아했다."라고 평가했다.

 

 

10위 피터 브로드벤트

 


생년월일: 1933년 5월 15일
A매치 기록: 7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울버햄튼 원더러스

 

1950년대와 60년대에 걸쳐서 활약한 인사이드 라이트 겸 공격형 미드필더로 그라운드 위의 발레리나라는 별명으로 불렸을 정도로 터무니없는 민첩성과 유연성을 바탕으로 한 방향전환을 바탕으로 상대 수비수를 손쉽게 따돌렸으며 완벽한 볼 컨트롤과 정확한 패싱력으로 공격의 활로를 뚫어냈음은 물론 정밀도 높은 패싱력까지 겸비해 팀의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했다.

브랜드포트에서 데뷔했으나 울버햄튼에서 선수생활의 대부분을 보낸 브로드벤트는 울버햄튼의 황금기를 이끌며 풋볼 리그 3회 우승 및 1959-60 시즌 FA컵 우승을 이뤄냈고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부다페스트 혼베드, 레알 마드리드와의 친선 경기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며 울브스 왕조의 시대를 이끌었고 은퇴한 뒤에는 올버햄튼 원더러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는 실력에 비해 중용받지 못했는데 1958 스웨덴 월드컵에 참가해서도 대회 내내 벤치를 지키다가 소련과의 8강 진출 플레이오프에서 선발출전했으나 팀은 패했고 이후 중용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탠리 매튜스는 한때 잉글랜드가 브로드벤트를 중심으로 팀을 구성해야 한다고 제안했지만 대표팀 감독은 이 조언을 듣지 않았다.

 

9위 토니 커리

 


생년월일: 1950년 1월 1일 
A매치 기록: 17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리즈 유나이티드

 

1970년대 잉글랜드 풋볼 리그 정상급 플레이메이커 중 한 명으로 잉글랜드 선수는 투박하다는 편견을 허무는 선수였는데 유려한 볼 컨트롤과 번뜩이는 센스에서 나오는 창의적인 패스로 경기의 흐름을 주도했으며 많은 골 찬스를 맞들어냈다.

셰필드 유나이티드와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전성기를 보낸 커리는 양 팀을 통틀어 PFA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되었으며 특히 전자의 구단에서는 378경기에 나와 68골을 득점하며 구단 최고의 레전드 반열에 올랐는데 2014년에는 구단 창단 125주년 기념행사에서 팬들에 의해 셰필드 유나이티드 역대 최고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8위 트레버 브루킹

 


생년월일: 1948년 10월 2일
A매치 기록: 47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으로 스피드가 느려 기동력에서는 약점을 노출했지만 양발을 모두 잘 썼으며 드넓은 시야와 정확하면서도 창의적인 패스로 팀의 플레이메이킹을 주도하며 명성을 떨쳤다.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에서 커리어의 대부분인 17시즌을 보냈으며 데뷔 시즌부터 주전으로 활약하며 647경기에 출전해 102골을 기록했으며 그 과정에서 1975-76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준우승과 FA컵 2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그중 1979-80 시즌은 2부 리그에 머무는 상황에서도 기어코 FA컵 결승에 진출해 아스날을 상대로 직접 결승골을 득점해 우승 트로피를 추가했으며 1980-81 시즌에는 팀의 1부 리그 승격을 이뤄냈으며 리그컵 결승에 진출했고 개인적으로도 PFA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되었다.

삼사자 군단에서는 UEFA 유로 1980에서는 로테이션 멤버로 활약했고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백업 멤버였을 정도로 존재감이 크진 않았지만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에서는 팀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었기에 구단측은 클럽의 홈구장인 런던 스타디움의 좌석 일부를 트레버 브루킹 경 스탠드로 명명했다.

 

 

7위 데이비드 플랫

 


생년월일: 1966년 6월 10일
A매치 기록: 62경기 27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아스톤 빌라

 

1980년대와 90년대 잉글랜드 축구를 빛낸 공격형 미드필더로 플레이메이킹 능력이 대단하진 못했지만 탄탄한 기본기에서 나오는 효율적인 원터치 플레이와 과감한 1선 침투 이후 높은 수준의 슈팅 정확도로 승부를 보는 것은 물론 왕성한 활동량까지 겸비했다.

커리어 초창기에는 하부리그에 머물다가 아스톤 빌라로 이적하며 1988-89 시즌에야 1부 리그에 안착해 빛을 발했으며 1989-90 시즌과 1990-91 시즌에 두 시즌 연속으로 19골을 득점했는데 1989-90 시즌에는 아스톤 빌라의 리그 준우승을 이끌며 PFA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음은 물론 올해의 선수까지 석권했고 이후 이탈리아 무대의 바리와 유벤투스에서 활약하며 1992-93 시즌 UEFA컵 우승을 경험했으나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며 삼프도리아로 이적해 활약하며 1993-94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으며 아스날로 다시 돌아온 뒤에는 1997-98 시즌 프리미어리그와 FA컵 더블 우승에 공헌하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삼사자 군단에서 플랫은 세 차례의 메이저 대회에 출전했는데 1990 이탈리아 월드컵과 UEFA 유로 1996에서 조국의 준결승 진출을 이뤄내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는데 특히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무려 3골을 득점했다.

 

 

6위 글렌 호들

 


생년월일: 1957년 10월 27일
A매치 기록: 53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토트넘 핫스퍼

 

토트넘의 유스 출신으로 1군에 데뷔해서 토트넘의 레전드가 된 인물로 드넓은 시야에서 나오는 뛰어난 패싱력과 강력한 킥력에서 나오는 치명적인 중거리 슈팅을 무기로 활약했으며 상대 공격형 미드필더를 직접 압박해 볼을 탈취하는 능력도 겸비했다.

토트넘에서 전성기를 누린 호들은 그가 차지한 시즌에 토트넘이 강등당하자 직접 2부 리그에서 팀을 승격시켰으며 이후에 1979-80 시즌 PFA 올해의 영 플레이어를 수상했으며 FA컵 2회 우승과 1983-84 시즌 UEFA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PFA 올해의 팀에 다섯 번이나 선정되었으며 토트넘을 떠나 프랑스의 AS 모나코에서도 활약하며 1987-88 시즌 리그앙 우승을 이뤄내며 리그앙 올해의 외국인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1990-91 시즌에는 쿠프 드 프랑스 우승을 이뤄냈다.

클럽에서의 활약과는 반대로 삼사자 군단에서는 인상적이지 못했는데 유로 1980에서는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 출전하는데 그쳤고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한 경기도 뛰지 못했으며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쭉 벤치에 있다가 8강 아르헨티나전에서 마라도나를 견제하는 임무를 맡았으나 마라도나에게 완벽하게 밀렸으며 유로 1988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했으나 팀의 조별리그 전패 탈락을 막지는 못했을 정도로 삼사자 군단과는 궁합이 영 좋지 않았는데 그래도 클럽에서의 활약이 대단해 은퇴한 뒤인 2007년에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5위 마틴 피터스

 


생년월일: 1943년 11월 8일
A매치 기록: 67경기 20골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1960년대 잉글랜드의 다재다능한 멀티 자원으로 우수한 양발 패스와 유려한 볼 컨트롤을 겸비했으며 상대의 마크를 따돌리고 최적의 공간 침투로 득점을 이뤄내 유령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이외에도 우수한 축구 지능을 바탕으로 공격형 미드필더는 물론 중앙 미드필더와 윙어, 수비수, 골키퍼 등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다.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바비 무어, 제프 허스트와 함께 1964-65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토트넘 핫스퍼로 이적한 뒤에도 출중한 기량을 발휘해 리그컵 2회 우승과 1971-72 시즌 최초의 UEFA컵 우승을 이뤄냈다.

삼사자 군단에서는 윙 없는 4-4-2 다이아몬드 포지션에서 메짤라로 활약하며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는데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우승을 이뤄냈으며 1968 유로에서도 3위에 오르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당시 감독이었던 알프 램지로부터 10년 앞선 선수라 평가되었던 피터스는 상술한 활약을 인정받아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4위 윌프 매니언

 


생년월일: 1918년 5월 16일
A매치 기록: 26경기 11골
신체조건: 미상
주 소속팀: 미들즈브러

 

특유의 휘날리는 금발로 인해 골든 보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선수로 1930년대 후반과 40년대에 걸쳐 잉글랜드 풋볼 리그에서 이름을 날렸던 인사이드 포워드였으며 빠른 두뇌회전과 우수한 센스에서 나오는 창의적인 패싱력을 바탕으로 한 플레이메이킹에 능했다.

미들즈브러에서 전성기를 모두 보낸 매니언은 우승컵을 들지는 못했지만 18년간 팀에 머물며 공식전 368경기에 출전해 110골을 기록했으며 구단측은 이를 기리기 위해 홈구장인 리버사이드 스타디움 바깥에 매니언의 동상을 건립했으며 1998년에는 풋볼 리그 100인의 레전드로 선정되었다.

매니언은 40년대 하반기와 50년대 초반까지 삼사자 군단에서도 주전 멤버로 활약하며 1950 브라질 월드컵에 참가했으나 이변의 희생양이 되며 미국과 스페인에게 패해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지만 40년대 후반의 그의 우수한 퍼포먼스를 기려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3위 조니 헤인스

 


생년월일: 1934년 10월 17일
A매치 기록: 56경기 18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풀럼

 

세계 최초로 주급 100파운드 이상을 받은 축구선수로 뛰어난 양발 사용 능력과 슈팅 능력은 물론 예리하면서도 창의적인 패스 센스로 수많은 득점 찬스를 만들어냈으며 그 패스에 대해서는 펠레조차도 일생 최고의 패스마스터라 평가했다.

풀럼이 2부 리그에 있던 시절부터 활약했으며 특히 1958년에는 소속팀 풀럼이 2부 리그에 있었음에도 발롱도르 투표에서 7위를 기록하는 괴력을 보여줬으며 풀럼이 1부 리그로 올라간 이후에도 아홉 시즌 간 에이스로 활약했으며 은퇴 이후에는 홈구장 앞에 동상이 세워지기도 했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1958년에는 7위에 올랐으며 1961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삼사자 군단에서는 찰튼이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하기 이전인 1954 스위스 월드컵부터 1962 칠레 월드컵까지 활약했으나 대표팀에서는 특출난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클럽에서의 출중한 활약으로 2002년에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위 폴 개스코인

 


생년월일: 1967년 5월 27일
A매치 기록: 57경기 10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토트넘 핫스퍼

 

1990년대를 풍미한 악마의 재능으로 알코올 중독과 무절제한 사생활로 자신의 재능을 다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빠른 스피드와 정교함을 겸비한 호쾌한 전진 드리블과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킬패스와 슈팅 스킬을 겸비했으며 유려한 볼 컨트롤도 겸비했다.

뉴캐슬에서 데뷔해 1987-88 시즌 PFA 올해의 영 플레이어에 선정되었으며 토트넘과 라치오에서 전성기를 보냈으며 토트넘에서는 FA컵 우승을 이뤄냈고 1990-91 시즌 PFA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으나 라치오 이적 이후 부진한 기량과 무절제한 사생활로 내리막길을 걸었으나 레인저스에서 재기에 성공하며 스코티쉬 프리미어 디비전 2연패는 물론 1995-96 시즌에는 스코티쉬 컵을, 1996-97 시즌에는 스코티쉬 리그컵을 우승하며 2년 연속 도메스틱 더블을 이뤄냈다.

삼사자 군단에서도 1990 이탈리아 월드컵과 UEFA 유로 1996에 참가한 개스코인은 두 대회에서 모두 팀의 준결승 진출에 공헌했으며 이를 인정받아 두 대회 모두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고 은퇴한 이후에는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1위 바비 찰튼

 


생년월일: 1937년 10월 11일 
A매치 기록: 106경기 49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60년대 유럽 최고의 선수 중 하나이자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손꼽히며 공격형 미드필더의 기본적인 덕목인 드리블과 패스를 통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은 물론이고 양발 사용 능력은 축구 역사상 최고로 손꼽히며 당시에는 드물었던 플레이를 보여줬는데 공격형 미드필더가 왕성한 활동량으로 수비에 가담했고 실제로도 슬라이딩 태클과 몸싸움을 아끼지 않았던 미래지향적이며 헌신적인 플레이를 선보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전성기를 보냈으며 뮌헨 비행기 참사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버스비 감독을 도와 팀의 주장으로서 무너진 팀을 수습하며 풋볼 리그 3회 우승과 FA컵 1회 우승, 그리고 1967-68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에서 우승을 이뤄내며 명실상부 유럽 최고의 클럽으로 올라서는데 공헌했다.

삼사자 군단에서도 신화를 썼는데 1966년 조국 잉글랜드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우승에 크게 기여하며 골든볼을 수상했으며 1968 유로에서는 3위라는 호성적을 이뤄냈으며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8강에서 탈락했지만 브라질, 서독과의 경기에서 클래스를 보여줬으며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1994년에 피파에서 공식적으로 선정한 FIFA 월드컵 올타임 드림팀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개인적으로도 훌륭한 활약상을 보인 찰튼은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9회 선정되었으며 1966년에는 조국의 월드컵 우승을 이끌고 발롱도르를 타내는 업적을 세워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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