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60위~51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공격형 미드필더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60위~51위

토르난테 2024. 2. 10.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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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60위 엔조 시포

 


생년월일: 1966년 2월 19일
국적: 벨기에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RSC 안더레흐트

1990년대 벨기에 축구의 아이콘으로 마라도나에 비견되는 볼 컨트롤 능력과 넓은 시야와 창조적인 패스에서 나오는 플레이메이킹 능력과 찰진 슈팅 능력을 바탕으로 활약했다. 

안더레흐트에서 데뷔했으나 이후 이탈리아와 프랑스 무대를 돌며 활약하다가 말년에 다시 안더레흐트로 이적해 활약을 이어나간 엔조 시포는 파스비트 군단에 두 번에 걸쳐 활약하면서 벨기에 주필러리가 4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83-84 시즌 UEFA컵에서는 결승에 진출했으나 토트넘 핫스퍼에게 승부차기 끝에 아쉽게 패했다. 시포 개인도 안더레흐트 소속으로 1983-84 시즌에는 벨기에 골든슈를 수상했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12위에 올랐다.

벨기에 대표팀에서도 아이콘으로 명성을 날렸던 시포는 UEFA 유로 1984에 만 18세의 어린 나이에 데뷔해 1998 프랑스 월드컵까지 오랜 기간 핵심선수로 활약했는데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조국의 4강 진출을 이끌며 신인상과 월드컵 올스타팀에 선정되었다. 은퇴한 이후인 2020년에 벨기에 축구 협회 창립 125주년 기념으로 선정한 역대 베스트 일레븐과 2021년에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인 IFFHS가 선정한 벨기에 올타임 드림팀에 동시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59위 호르헤 부루차가

 


생년월일: 1962년 10월 9일
국적: 아르헨티나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CA 인데펜디엔테

1980년대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우수한 공격 자원으로 간결한 원터치 플레이와 번뜩이는 센스와 우수한 드리블 돌파력은 물론 오프 더 볼에서의 판단력과 움직임이 대단해 조력자로서도 훌륭한 모습을 보여줬으며 공격형 미드필더 이외에도 윙어와 처진 공격수 역할도 훌륭하게 수행했다.

부루차가는 인데펜디엔테와 낭트에서 활약했는데 인디펜디엔테에서는 1983 시즌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전기리그와 1984 시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을 우승했고 낭트에서도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1985-86 시즌 리그앙 올해의 외국인 선수상을 수상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1983 코파 아메리카에서 득점왕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마라도나, 발다노와 함께 삼각편대를 이루며 결승전에서 득점해 조국의 우승에 기여하며 남미 올해의 선수 투표에서 4위에 올랐다. 그리고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도 조국의 준우승에 기여했다.

 


58위 펠릭스 마가트

 


생년월일: 1953년 7월 26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함부르크 SV

현세대의 팬들에게는 괴장으로 유명한 마가트는 23세에 처음 프로 무대에 진출한 대기만성형 선수로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중반까지 함부르크의 전성기를 이끈 다재다능한 미드필더로 창의적인 롱패스 능력과 강력한 중거리 슈팅을 겸비했으며 뛰어난 스테미너를 기반으로 왕성한 수비 가담 능력도 겸비했다.

디 로토센 군단의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하며 세 번의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낸 마가트는 유럽 무대에서도 컵 위너스 컵 우승과 1981-82 시즌 UEFA컵 결승 진출은 물론 1979-80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과 1982-83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1982-83 시즌 유러피언 컵 결승전에서는 유벤투스의 명 골키퍼 디노 조프를 상대로 벼락같은 중거리 슈팅으로 결승골을 터트리며 디 로토센의 첫 빅이어에 일등 공신이 되며 1983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5위에 올랐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클럽팀에서의 활약을 이어나갔던 마가트는 백업 멤버로 UEFA 유로 1980 우승을 경험했으며 1982 스페인 월드컵과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팀의 결승 진출에 기여했다.

 


57위 헬무트 할러

 


생년월일: 1939년 7월 21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볼로냐 FC

1960년대 독일 대표팀의 공격을 이끌었던 공격형 미드필더이자 처진 공격수로 부드러운 드리블과 유려한 볼 컨트롤을 활용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은 물론 날카로운 오른발 슈팅으로 직접 득점에도 능했다.

독일 무대에서는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활약한 것을 시작으로 이탈리아 세리에 A로 이적한 뒤에는 볼로냐에서 1963-64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내며 세리에 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유벤투스로 이적한 뒤에도 세리에 A 2연패와 1972-73 시즌 유러피언 컵 결승에 진출하는 영광을 누렸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한 헬무트 할러는 1962 칠레 월드컵과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젤러와 투 톱을 이뤄 활약했는데 후자의 대회에서는 토너먼트 전 경기에 득점하는 활약을 펼치며 총 6골을 득점하며 준우승에 일조하며 대회 올스타 팀에 들었다.

 


56위 리암 브래디

 


생년월일: 1956년 2월 13일
국적: 아일랜드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아스날 FC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 이름을 날렸던 공격형 미드필더로 넓은 시야와 창의적인 패싱력은 물론 상대 수비라인을 붕괴시키는 전진 드리블과 우수한 데드볼 능력도 겸비했다.

아스날에서 전성기를 보냈으며 아스날이 부진한 성적을 거두는 와중에도 1978-79 시즌 FA컵을 우승했으며 그 활약상을 바탕으로 1978-79 시즌 PFA 선정 선수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PFA 올해의 팀에 3회 선정되었고 아스날 올해의 선수상을 3회 수상했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유벤투스에서도 세리에 A 2연패를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에 기여했으며 삼프도리아와 인테르 밀란에서도 활약했다. 

아일랜드가 전성기를 맞이하기 이전에 활약하던 선수라 국제대회에선 활약하지 못했음에도 아일랜드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55위 올렉산드르 자바로프

 


생년월일: 1961년 4월 26일
국적: 우크라이나
신체조건: 키 171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디나모 키이우

1980년대 동구권 정상급 미드필더로 우수한 동료 활용 능력과 신속 정확한 판단력과 같은 지능적인 플레이는 물론, 스피드가 빠르고 창조적이며 우수한 드리블 실력과 강인한 체력을 활용해 상대 수비형 미드필더를 압박해 찬스를 만드는 방식에도 능했다.

디나모 키이우에서 전성기를 보낸 자바로프는 소련 탑 리그 2연패와 소비에트 컵 3회 우승, 그리고 1985-86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컵 위너스컵에서는 팀 동료 벨라노프, 블로힌과 함께 공동 득점왕에 올랐다. 이후 유벤투스에서도 1989=90 시즌, 코파 이탈리아와 UEFA컵 더블 크라운에 공헌했음은 물론 자바로프 개인도 소련 리그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4년 연속으로 선정되었으며 팀 동료 벨라노프, 블로힌과  함께 1985-86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공동 득점왕에 올랐고 그 해에 소련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자바로프의 훌륭한 활약은 소련 대표팀에서도 이어졌으며 붉은 군단의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하며 두 번의 월드컵에 나갔으며 1988 유로에서는 소련의 마지막 결승을 이끌었다.



54위 지르세우

 


생년월일: 1952년 6월 15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플루미넨시

19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브라질과 스페인,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이름을 날렸던 공격형 미드필더로 양발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었던 양발잡이로 양발 모두를 사용하는 중거리 슈팅은 물론 온 더 볼 상황에서 빠른 드리블로 상대 수비를 교란했으며 정확한 판단력에서 나오는 날카로운 패스로 찬스를 만드는 부분에도 뛰어났으며 데드볼 상황에서도 득점으로 곧잘 연결시키는 데드볼 스페셜리스트이기도 했다.

코르티바에서 캄페오나투 파라나엔세 2회 연속 우승을 이뤄냈으며 플루미넨시와 바스쿠 다 가마에서는 캄페오나투 카리오카에서 각각 1회 우승과 2회 우승을 이뤄냈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는 비록 우승을 이뤄내지는 못하지만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며 팀의 에이스로 3년간 군림했으며 이탈리아 무대에서는 베로나에서 활약하던 시절인 1982-83 시즌과 코모에서 활약하던 1985-86 시즌에 구에린 스포르티보가 채점한 세리에 A 외국인 선수 평점 5위 안에 들었다.

지르세우는 클럽 무대에서보다도 셀레상에서 더 큰 존재감을 보여줬는데 황금 세대 멤버들 다수가 대표팀에서 물러난 시점에서 1974 서독 월드컵에서 팀의 4위라는 성적을 이끌었으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는 팀이 무패로 3위를 하는데 크게 공헌해 브론즈볼을 타냈는데 특히 페루전에서 멋진 프리킥골을 보여줬으며 이 대회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1978 남미 올해의 선수상 투표에서 3위를 차지했으며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도 황금의 사중주의 백업으로 활약했다.



53위 파울루 세자르 카주

 


생년월일: 1949년 6월 16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보타포구

특유의 큰 코로 인해 강철 코, 못생긴 독수리라 불렸던 선수로 1960년대 후반과 70년대 브라질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는데 우수한 축구 지능을 토대로 다양한 포지션에서 자유자재로 활약할 수 있었으며 공격 진영에서 다른 공격자원들과의 환상적인 연계 플레이는 물론 상대 수비수의 혼을 빼놓은 화려한 드리블과 완벽한 득점 찬스를 만드는 킬러 패스로도 이름을 날렸다.

보타포구, 플라멩구, 그리고 플루미넨시에서 모두 전성기를 누린 카주는 보타포구에서는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2회 우승과 1968 시즌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플라멩구에서도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2회 우승을 추가했고 플루미넨시에서도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2회 우승을 이뤄내며 개인 통산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6회 우승을 이뤄냈다. 카주 개인도 브라질 세리 A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4회 선정되었고 그레미우에서도 캄페오나투 가우초 2회 우승을 이뤄냈고 유럽 무대의 마르세유에서도 한 시즌 머물렀지만 좋은 모습을 보였다.

카주는 1970 멕시코 월드컵의 셀레상에 백업 멤버로 참여해 에두와 함께 펠레, 자이르지뉴, 토스탕, 히벨리누를 받치는 백업으로 예선과 본선 전승 우승에 기여했으며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주전 선수로 활약하며 대회 4위라는 성적을 이뤄냈다.



52위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

 


생년월일: 1975년 3월 9일
국적: 아르헨티나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SS 라치오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에 이름을 날렸던 플레이메이커로 중장거리 패스에 능해 먼 지역에서도 상대 수비를 단번에 허무는 킬패스를 날렸으며 우수한 중거리 슈팅은 물론 탄탄한 체격으로 압박을 무력화시키는 능력에서도 뛰어났다.

이탈리아 무대에서 전성기를 누린 베론은 파르마에서 1998-99 시즌 코파 이탈리아와 UEFA컵 2관왕을 이뤄냈으며 라치오에서는 구단의 전성기를 이끌며 1999년 UEFA 슈퍼컵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우승한 것을 시작으로 1999-2000 시즌 세리에 A와 코파 이탈리아 더블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워 1999-2000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라치오가 재정난에 허덕이자 베론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시켰으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첼시 등 프리미어리그 무대에서는 부진하다가 인테르 밀란으로 임대로 합류한 뒤에는 2005-06 시즌 세리에 A 우승과 코파 이탈리아 2연패를 이루고 고향팀 에스투디안테스로 돌아가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전기리그 2회 우승과 2009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끌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주전 멤버로 활약한 베혼은 1998 프랑스 월드컵과 2002 한일 월드컵에 주전으로 나섰으나 포지션 경쟁자 리켈메의 대두와 페케르만의 비선호로 인해 한때 대표팀에서 밀려났었으나 2007 코파 아메리카에서 복귀하며 리켈메와 공존에 성공해 결승 진출을 이뤄냈다. 그러나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주전 자리를 차지했지만 첫 경기에서 부상당하며 아르헨티나 대표팀과의 인연을 다소 허무하게 끝냈다.



51위 후안 로만 리켈메

 


생년월일: 1978년 6월 24일
국적: 아르헨티나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보카 주니어스

남미의 지단이라 불렸던 2000년대 정상급 공격형 미드필더로 드넓은 시야와 높은 수준의 볼 컨트롤은 물론 창의적인 킬러 패스로 정확한 골 찬스를 만들어냈지만 빠른 템포의 플레이가 요구되는 현대축구에서 느린 플레이를 추구해 현대 축구의 반역자, 느림의 미학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보카 주니어스에서 커리어의 시작과 끝을 장식한 리켈메는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전기리그 4회 우승과 후기리그 1회 우승을 이뤄내며 아르헨티나 올해의 선수상을 4회 수상했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3회 우승을 이뤄내며 그중 2001년과 2007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MVP를 수상했고 리켈메 개인도 남미 올해의 팀에 4회 선정되었고 유럽 무대에서는 바르셀로나에선 실패했지만 비야레알에서는 구단 역사상 첫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과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 오르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인터토토컵 2회 우승을 이뤄냈다.

대표팀에서도 2000년대 중반부터 주전으로 활약하며 2005 컨페드컵 준우승을 이뤄내며 컨페드컵 실버볼을 수상했고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8강에서 탈락했지만 도움왕에 올랐다. 그리고 2007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메시와 찰떡궁합을 보여주며 5골로 득점 2위에 오르며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와일드카드로 발탁되어 금메달을 타냈으나 대표팀 감독 마라도나와의 불화로 다소 아쉽게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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