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70위~61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공격형 미드필더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70위~61위

토르난테 2024. 2. 8.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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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위 조니 헤인스

 


생년월일: 1934년 10월 17일
국적: 잉글랜드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풀럼

세계 최초로 주급 100파운드 이상을 받은 축구선수로 뛰어난 양발 사용 능력과 슈팅 능력은 물론 예리하면서도 창의적인 패스 센스로 수많은 득점 찬스를 만들어냈으며 그 패스에 대해서는 펠레조차도 일생 최고의 패스마스터라 평가했다.

일찍이 대표팀에 뽑혔을 정도로 실력자임에도 풀럼이 2부 리그에 있던 시절에도 팀에서 꾸준히 활약한 헤인스는 특히 1958년에는 소속팀 풀럼이 2부 리그에 있었음에도 발롱도르 투표에서 7위를 기록하는 괴력을 보여줬으며 풀럼이 1부 리그로 올라간 이후에도 아홉 시즌 간 에이스로 군림했고 은퇴 이후에는 홈구장 앞에 동상이 세워지기도 했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1958년에는 7위에 올랐으며 1961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삼사자 군단에서는 찰튼이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하기 이전인 1954 스위스 월드컵부터 1962 칠레 월드컵까지 활약했으나 대표팀에서는 특출난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클럽에서의 출중한 활약으로 2002년에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69위 올렉세이 미카일리첸코

 


생년월일: 1963년 5월 30일
국적: 우크라이나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3kg
주 소속팀: 디나모 키이우

1980년대 하반기 소련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높은 수준의 지구력에서 나오는 왕성한 활동량과 적극적인 전방 압박은 물론 뛰어난 창의성과 정교한 패싱력을 겸비한 플레이메이킹의 진수를 보여줬으며 중앙과 측면의 다양한 포지션을 막힘없이 소화했다.

전성기를 디나모 키이우에서 모낸 미하일리첸코는 로바노프스키 체제에서 중용받아 소련 탑 리그 4회 우승과 소비에트 컵 3회 우승, 그리고 1985-86 시즌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냈고 미카일리첸코 개인도 소련 탑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으며 우크라이나 올해의 선수 2회 수상과 1988년에는 소련 올해의 선수상도 수상했다.

소련 대표팀에서는 UEFA 유로 1988 준우승을 이끌며 대회 올스타에 선정되었고 서울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는데 이 두 대회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발롱도르 4위에 올랐다. 소련 해체 후에는 삼프도리아로 이적했으나 잘 적응하지 못했고 스코틀랜드의 레인저스로 이적했는데 레인저스에서는 정규리그 5연패를 이뤄내는데 공헌했다.

 


68위 닐라시 티보르

 


생년월일: 1955년 1월 18일
국적: 헝가리
신체조건: 키 189cm / 몸무게 83kg
주 소속팀: 페렌츠바로시

1970년대와 80년대 헝가리를 이끈 헝가리 축구 최후의 월드클래스 선수로 우수한 볼 컨트롤 능력과 우아한 퍼스트 터치, 그리고 날카로운 드리블과 큰 키를 활용한 탁월한 제공권은 물론 득점력도 우수했다.

티보르 닐라시는 마자르 대표팀 소속으로는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과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소속팀 페렌츠바로시에서는 넴제티 버이녹샤그 2회 우승 및 마자르 쿠파 3회 우승을 이뤄냈고 1974-75 시즌에는 컵 위너스 컵 결승 진출을 이뤄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빈에서도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3연패를 이뤄냈다.

개인 수상 이력도 화려한데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만 5회 선정되어 1977년에는 무려 7위에 올랐으며 1980-81 시즌에는 넴제티 버이녹샤그 득점왕에 올랐고 1983-84 시즌에는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와 UEFA컵에서 득점왕에 올랐다.

 


67위 카를로스 발데라마

 


생년월일: 1961년 9월 2일
국적: 콜롬비아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몽펠리에 HSC

사자머리를 휘날리던 자타공인 콜롬비아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적은 활동량과 약한 몸싸움 및 수비력에서 약점을 드러냈지만 경기장 전역을 읽는 드넓은 시야와 창의성과 정교함을 겸비한 날카로운 패스로 골 찬스를 만들어냈다.

데포르티보 칼리에서 첫 전성기를 누리며 이름을 알린 발데라마는 프랑스의 몽펠리에에서는 1989-90 시즌 쿠프 드 프랑스 우승을 이뤄냈고 콜롬비아의 아틀레티코 주니오르에서는 정규리그 2회 우승을 이뤄냈고 상술한 과정을 거치며 남미 올해의 팀에 4회 선정되었고 1987년과 1993년에는 남미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고 말년에는 북미 무대에서 이름을 날리며 MLS 올스타 5회 선정 및 대회 베스트 일레븐 3회 선정은 물론 1996년에는 탬파베이 뮤터니에서 MLS 서포터스 실드 우승을 이끌었고 MLS에서도 리그 MVP를 수상했다.

콜롬비아 대표팀에서도 오랜 기간 핵심 선수로 활약한 발데라마는 1987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비록 우승을 차지하진 못했지만 조국을 3위에 올린 활약을 인정받아 대회 MVP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고 1990년대에 열린 세 번의 월드컵에 참가해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조국을 16강에 올렸다.

 


66위 아돌포 발론시에리

 


생년월일: 1897년 7월 27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토리노 FC

1920년대 이탈리아 무대를 평정한 인사이드 포워드로 드넓은 시야와 우수한 패스 센스를 바탕으로 팀의 플레이메이킹을 주도했으며 우수한 득점력마저 겸비해 이탈리아의 명 축구기자 지안니 브레라는 발론치에리를 주세페 메아차, 발렌티노 마촐라 등과 동급의 플레이메이커로 평가했다.

알레산드리아에서 데뷔해 1925-26 시즌에 토리노로 이적한 발론치에리는 토리노로 이적한 첫 시즌부터 팀 내 최다 득점자가 되며 뛰어난 활약을 펼쳤으며 1926-27 시즌에는 아르헨티나 출신 오리운디였던 훌리오 리보나티와 함께 공격 듀오를 구성해 압도적인 활약을 펼치며 우승을 이뤄냈지만 이 우승은 알레만디 이적 스캔들로 인해 박탈당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다음 시즌인 1927-28 시즌에는 팀 역사상 최초로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토리노가 명문으로 도약하는 길을 열었다.

아주리 군단에서도 에이스로 활약한 발론치에리는 1927-30 중유럽컵 우승을 이뤄냈고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 동메달이란 성적을 이뤄내며 이탈리아 축구계의 태동기를 이끌며 황금기로 도약하는 기틀을 세웠다.



65위 주젭 사미티에르

 


생년월일: 1902년 2월 2일
국적: 스페인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7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1920년대 스페인 축구를 대표했던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로 우수한 패싱력과 뛰어난 두뇌를 바탕으로 유려한 플레이메이킹을 보여줬으며 왕성한 활동량으로 경기장 전역에 영향력을 끼쳤으며 뛰어난 슈팅 능력을 바탕으로 대단한 득점력도 겸비했으며 주 포지션인 인사이드 포워드 이외에도 하프백과 센터 포워드도 무리 없이 소화하며 마술사, 메뚜기 인간으로 불렸다.

FC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카탈루냐 챔피언십 12회 우승과 코파 델 레이 5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28-29 시즌 초대 라리가 우승을 차지했고 그 과정에서 무려 333골이나 득점했다. 그러나 급여 문제로 1933년 1월에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해 1932-33 시즌 라리가 우승과 1933-34 시즌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이뤄내며 엘 클라시코에도 득점하며 바르샤 팬들에게 배신자가 되었다.

스페인 대표팀에서도 1920 앤트워프 올림픽 은메달을 목에 건 사미티에르는 은퇴 이후에도 감독과 단장으로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를 수시로 오가며 왕복비행기라고 조롱당한 사미티에르는 아르마다 군단 소속으로도 1920 앤트워프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64위 다비드 실바

 


생년월일: 1986년 1월 8일
국적: 스페인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67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

2010년대 프리미어리그를 풍미한 공격형 미드필더로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저돌적인 드리블과 라펠로피냐를 활용한 탈압박 능력, 그리고 절륜한 왼발 패싱력을 앞세운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선보였다.

셀타 비고에서 두각을 나타낸 뒤 발렌시아로 입단해 비야와 콤비를 이뤄  2007-08 시즌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이뤄냈으며 맨체스터 시티에서는 콤파니, 아게로와 함께 만수르 체제의 맨체스터 시티의 중흥기를 이끈 공신으로 구단의 첫 프리미어리그 우승과 도메스틱 트레블을 포함해 리그 4회 우승과 FA컵 2회 우승, 그리고 리그 컵 5회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콤파니와 함께 에티하드 스타디움에 동상이 설치되었고 다비드 실바 개인도 PFA 올해의 팀에 3회 선정되었다.

아르마다 군단에서도 주전과 백업을 오가며 UEFA 유로 2008 우승, 2010 남아공 월드컵 우승, 그리고 유로 2012 우승을 모두 이끌며 메이저대회 3연패를 이끌었으며 특히 UEFA 유로 2012에서는 팀의 주축으로 활약해 대회 올스타 스쿼드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고 이후에도 2018 러시아 월드컵까지 주전으로 활약했다.



63위 후이 코스타

 


생년월일: 1972년 3월 29일
국적: 포르투갈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피오렌티나

포르투갈과 이탈리아 무대에서 활약한 트레콰르티스타로 드넓은 시야와 창의적이면서도 정교한 패스로 팀의 공격을 이끄는 플레이메이커로 루이스 피구와 함께 포르투갈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천재다.

벤피카에서 전성기를 시작한 후이 코스타는 1992-93 시즌 타사 데 포르투갈 우승과 1993-94 시즌 프리메이라 리가 우승을 이끌었으며 이후 이탈리아 무대의 피오렌티나에서 7년간 활약하며 스트라이커 바티스투타와 호흡을 맞춰 1995-96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과 1996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을 이뤄냈으며 1998-99 시즌에는 리그 3위와 코파 이탈리아 준우승을 이뤄냈고 바티스투타가 떠난 2000-01 시즌에도 팀에게 코파 이탈리아 우승과 거대한 이적료를 선물하고 밀란으로 떠났다. 밀란에서도 2002-03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및 2003-04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다.

포르투갈 대표팀에서도 골든 제너레이션 시대를 이끈 후이 코스타는 UEFA 유로 1996에서 8강, UEFA 유로 2000에서는 죽음의 조를 전승으로 통과하고 준결승에 진출했으며 2002 한일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다가 UEFA 유로 2004에서는 조커로 활약하며 팀의 유로 결승 진출을 도왔다. 후이 코스타 개인도 UEFA 유로 1996과 UEFA 유로 2000에서 모두 대회 올스타팀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62위 메수트 외질

 


생년월일: 1988년 10월 15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아스날 FC

2010년대 상반기에 세계 정상급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던 선수로 활동량이 적고 조직적인 압박에 무너졌지만 광활한 시야와 창의적인 패싱력을 바탕으로 골 찬스를 만드는 부분에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해 어시스트 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베르더 브레멘에서 2008-09 시즌 DFB포칼 우승과 UEFA컵 준우승, 그리고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들며 세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외질은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벤제마, 호날두와 손발을 맞추며 2010-11 시즌 코파 델 레이 우승과 2011-12 시즌 라리가 우승을 이뤄냈으며 아스날에서는 FA컵 3회 우승과 2018-19 시즌 유로파 리그 준우승을 이뤄냈고 외질 개인도 분데스리가, 라리가, 프리미어리그, 챔피언스리그에서 모두 도움왕을 수상하며 찬스메이킹에서는 돋보이는 기록을 세웠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하며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준결승에 진출하며 도움왕에 올랐고 UEFA 유로 2012에서도 준결승에 진출하는데 기여하며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우승을 이뤄냈지만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여러 논란과 함께 부진한 활약으로 탈락의 주범으로 지목되며 큰 비판을 받았다.



61위 울리 회네스

 


생년월일: 1952년 1월 5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지금은 바이에른 뮌헨이 유럽 최고의 클럽 중 하나로 손꼽히게 만들었던 바이에른의 전직 회장으로 더 유명하지만 선수 시절에도 독일을 넘어 전 유럽에 이름을 날리던 유망주로 자신의 장기인 빠른 스피드를 이용해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주전 자리를 획득하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바이에른에서 데뷔해 선수 생활 대부분을 보낸 회네스는 10년도 안 되는 짧은 선수 시절 동안 분데스리가 3연패와 유러피언컵 3연패를 이끌어냈으며 이 대회에서 모두 주전으로 우승을 이뤄냈다. 그 과정에서 1973-74 시즌 하반기에는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을 받기도 했다.

대표팀에서도 UEFA 유로 1972와 1974 서독 월드컵의 우승을 주전으로 이끌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고 유로 1976에서도 팀의 결승행에 기여하며 황금기를 보내던 울리 회네스는 무릎 부상으로 27세라는 젊은 나이에 은퇴했던 비운의 선수였지만 동시에 회네스가 은퇴 후 디렉터로 부임한 뒤에 바이에른 뮌헨의 역사를 새로 쓰며 선수는 물론 경영인으로서도 유럽 축구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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