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 Top 10

포지션별 역대 TOP 100/중앙 미드필더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 Top 10

토르난테 2024. 2. 4.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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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의 선수일수록 수상 기회가 적어 수상 횟수에서 불리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10위 베른트 슈스터

 


생년월일: 1959년 12월 22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금발의 여포'

1980년대 유럽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필드를 넓게 사용하며 창의적이면서 부드럽고 정교한 패스로 많은 찬스를 만들어냈으며 뛰어난 볼 소유 능력과 탄탄한 기본기, 그리고 세련된 볼 컨트롤 능력과 상대의 수비 라인을 무너트리는 기습적인 쓰루패스와 1선 능력을 고루 겸비했으며 중거리 슛 능력도 대단한 완벽한 플레이메이커였다.

쾰른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구단의 암흑기의 에이스로 군림한 슈스터는 코파 델 레이 3회 우승, 컵 위너스컵 우승, 그리고 1984-85 시즌에는 라리가 우승과 유러피언 컵 결승 진출을 이뤄냈으나 구단과의 갈등으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해 라리가 2연패를 이끌었고 거기서도 구단과의 불화로 팀을 떠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한 뒤에 코파 델 레이 2연패를 이뤄냈다. 이후 독일 무대로 복귀해 레버쿠젠에서도 슈스터 개인은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을 정도로 출중한 기량을 자랑하며 팬들을 들었다 놨다 하며 악마의 재능으로 불렸다.

다만 이런 성격 문제로 디 만샤프트 커리어는 다소 빈약한 편인데 UEFA 유로 1980에서 루메니게와 함께 팀의 우승을 이끌면서 발롱도르 2위와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지만 이후 감독 유프 데어발과 대표팀에 복귀한 포지션 경쟁자 파울 브라이트너와의 불화로 대표팀을 떠났으며 데어발이 사임하고 베켄바우어가 감독으로 부임한 뒤 슈스터를 다시 부르려 했으나 에이전트인 아내를 통해 소집 대가로 거액의 돈을 요구하며 결국 복귀가 불발되었고 디 만샤프트에서의 영광은 후배 로타어 마테우스가 차지했다.

비록 개인적인 사정으로 대표팀 커리어가 상대적으로 빈약하지만 슈스터는 개인 수상 부분에서도 대단했는데 돈 발롱 선정 라리가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 구에린 스포르티보 선정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으며 발롱도르 포디움에도 3회나 선정되었다.



9위 요제프 마소푸스트

 


생년월일: 1931년 2월 9일
국적: 체코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두클라 프라하

'마소푸스트 활강'

1960년대 초반, 유럽 축구계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2선과 3선을 오가며 플레이메이킹을 하며 양질의 패스를 앞세워 볼 배급을 했으며 '마소푸스트 활강'이라 불리는 기습적인 전진 드리블로 상대 수비진을 붕괴시켜 득점 찬스를 만들기도 했다.

두클라 프라하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 마소푸스트는 16년간 정규리그 8회 우승 및 체코슬로바키아 컵 3회 우승을 이뤄냈고 미국이 주최하던 국제 친선 대회였던 인터내셔널 사커 리그에서 4회 연속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1966-67 시즌 유러피언 컵에서는 준결승에 진출하며 우승을 노렸지만 그 해 챔피언이 되는 셀틱에게 패해 무산되었다.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에서도 스바토플루크 플로스칼, 라디슬라프 노바크와 함께 '두클라 삼총사'를 이뤄 활약했는데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에서도 이어졌는데 특히 마소푸스트는 팀의 볼 순환의 핵심인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맡아 마지막 중유럽컵인 1955-60 중유럽컵에서 우승했으며 초대 유로인 1960 유로에서는 3위라는 성적을 달성했으며 1962 칠레 월드컵에서는 준우승이라는 값진 성적을 이뤄냈으며 마소푸스트는 1960 유로와 1962 칠레 월드컵에서 모두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후자의 대회에서는 대회 MVP 투표에서 2위를 차지했다.

 


8위 지르송

 


생년월일: 1941년 1월 11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보타포구

'황금 왼발'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 남미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로 평가받았던 선수로 경기장 전체를 읽는 드넓은 시야와 예술과도 같은 볼 컨트롤은 물론 짧은 왼발 패스와 롱패스에 모두 능해 적절하게 템포를 조절하거나 골 찬스를 만들어내는 만능 플레이메이커였으며 왼발 기술이 좋아 팬들에게 황금의 왼발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플라멩구에서 데뷔해 1961년 토르네이우 히우상파울루 우승 및 1963년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우승을 이뤄냈고 지지의 대체자로 보타포구로 이적한 뒤에는 캄페오나투 카리오카와 토르네이우 히우상파울루에서 각각 2개의 우승컵을 추가했고 1968년에는 전국 리그인 타사 브라질을 우승했다. 이후 상파울루로 이적한 뒤에는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2회 우승을 이뤄냈고 말년을 보낸 플루미넨시에서는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우승컵을 한 개 더 추가했다.

셀레상에서도 1970 멕시코 월드컵의 브라질 대표팀의 두뇌로 활동하며 중앙 미드필더에서 템포를 조절하며 팀의 예선과 본선 전승 우승에 기여하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은 물론 복수의 매체에서 펠레에 이어 대회에서 두 번쨰로 훌륭한 선수로 평가받았다.

 


7위 파울 브라이트너

 


생년월일: 1951년 9월 5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전략가'

독일 축구의 천재 수비수이자 미드필더이며 풍운아로 레프트백 시절부터 이름을 날렸던 활약했던 뛰어난 수비 능력은 물론, 전략가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훌륭한 전술안과 탄탄한 기본기를 겸비했으며 상대방의 허를 찌르며 동료 공격수에게 골 찬스를 제공하는 킬패스와 골문을 직접 노리는 중거리 슈팅은 물론 왕성한 활동량까지 겸비해 그라운드의 넓은 범위에 영향력을 끼쳤던 공수겸장의 완벽한 선수였다.

바이에른 뮌헨과 레알 마드리드에서 전성기를 누린 브라이트너는 바이에른 뮌헨 1기 시절에는 분데스리가 3회 우승과 포칼 우승, 그리고 구단 역사상 첫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끌어냈고 레알 마드리드 시절에는 라리가 2회 우승과 1974-75 시즌에는 코파 델 레이에서도 우승하며 도메스틱 더블을 이뤄냈다. 이후 중앙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한 뒤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를 거쳐 바이에른 뮌헨으로 돌아가 루메니게와 함께 브라이트니게 조합을 이루며 분데스리가 2연패와 DFB포칼 우승, 그리고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추가했다. 특히 1981년에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이며 동료 루메니게의 뒤를 이어 발롱도르 투표에서 2위에 올랐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UEFA 유로 1972와 1974 서독 월드컵에서 모두 압도적인 활약을 펼치며 우승은 물론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도 들었다. 그러나 독일 축구협회와의 갈등으로 디 만샤프트에 뽑히지 못하다가 1980년 이후에 다시 뽑히며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 결승 진출에 공헌하며 팀은 결승전에서 패했지만 브라이트너는 결승전에서 만회골을 넣었다.

브라이트너는 개인적으로도 엄청난 영예를 누렸는데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베스트 일레븐에 6회 선정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 4회 선정, 그리고 1981년 독일 올해의 선수상은 물론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6회 선정해 1981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2위에 올랐으며 은퇴한 이후인 1994년에는 FIFA 월드컵 올타임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을 정도로 수상 이력이 화려하다.

 


6위 루카 모드리치

 


생년월일: 1985년 9월 9일
국적: 크로아티아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6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발칸 반도의 모차르트'

2010년대 하반기 세계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로 광활한 시야와 우수한 전술안과 경이로운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이 돋보였으며 왕성한 활동량으로 공수 양면으로 큰 영향력을 끼치며 우수한 탈압박 능력으로 상대의 압박에 플레이메이킹을 방해받지 않았으며 정교한 패싱력까지 겸비했다.

토트넘에서 이름을 날린 뒤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해 활약한 모드리치는 첫 시즌에는 부진한 활약으로 질타받았지만 안첼로티 부임 이후 외질에서 모드리치로 중심축이 옮겨진 이후로는 라리가 4회 우승과 코파 델 레이 2회 우승, 그리고 챔피언스리그 3연패를 포함한 5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그 과정에서 크로스, 카세미루와 우수한 중원진을 형성해 최전방의 호날두와 최후방의 라모스를 연결하며 공을 세웠고 그들이 떠난 이후에도 노익장을 과시해 2021-22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공헌하며 지단, 피리를 능가하는 레알 마드리드 구단 역사상 최고의 미드필더로 역사에 남았다.

크로아티아 대표팀에서도 UEFA 유로 2008 올스타 팀에 들며 이름을 날린 모드리치는 특히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우승후보로 주목받지 못했던 팀을 이끌고 결승에 진출했으며 특히 연달아 연장전을 치르는 상황에서도 최고참 모드리치가 지치지 않은 모습으로 팀을 결승 무대까지 이끌자 이 퍼포먼스를 높게 평가받아 2018 러시아 월드컵 골든볼을 수상하며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함께 더해져 그해에 메시와 호날두를 밀어내고 발롱도르를 수상했으며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조국의 준결승 진출을 이끌며 브론즈볼을 수상했다.

크로아티아 올해의 선수에 10회 선정된 모드리치는 클럽과 대표팀을 가리지 않고 화려한 개인커리어를 자랑하는데 UEFA 챔피언스리그 올해의 스쿼드 6회 선정, UEFA 올해의 팀 3회 선정 및 올해의 미드필더 2회 선정은 물론 2018 러시아 월드컵 베스트 일레븐과 골든볼, 2022 카타르 월드컵 브론즈볼 등 엄청난 개인 커리어를 자랑했다.



5위 지지

 


생년월일: 1928년 10월 8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보타포구

'미스터 풋볼'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축구 지능이 높아 감독이 졸고 있을 때 팀을 지휘하기도 했으며 광활한 시야와 정교하면서도 창의적인 숏패스와 롱패스로 경기를 지배했으며 발기술이 좋아 상대 수비수 두 명 정도는 제칠 수 있었고 프리킥에도 능해 '미스터 풋볼'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브라질 무대의 플루미넨시와 보타포구에서 전성기를 누렸으며 특히 후자의 클럽에서는 캄페오네투 카리오카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전국 리그에서도 펠레의 산투스를 견제하는 강팀으로 이름을 날렸다. 다만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디 스테파노와의 불화와 스페인 적응 실패로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떠났다.

셀레상에서는 1954 스위스 월드컵부터 1962 칠레 월드컵까지 참여해 두 번의 월드컵을 우승했으며 특히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는 중원을 지휘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대회 MVP에 선정되는 맹활약을 펼쳤다.



4위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생년월일: 1984년 5월 11일
국적: 스페인
신체조건: 키 171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Cerebro'

2000년대 하반기와 2010년대 상반기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군림하던 선수로 부드러운 볼 터치 능력과 상대의 압박을 완벽하게 벗어나는 능력, 탄탄한 기본기에서 나오는 킬패스와 팬텀 드리블로 상대 수비진을 교란하며 환상술사 또는 두뇌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바르셀로나에서 챠비, 부스케츠와 함께 역대 최강급 미드필더진을 구성했으며 챠비가 은퇴한 이후에는 라키티치와 중원 조합을 구성하며 라리가 9회 우승과 코파 델 레이 6회 우승, 그리고 UEFA 챔피언스리그 4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펩 시절에는 2008-09 시즌 트레블을 포함해 클럽 월드컵과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와 UEFA 슈퍼컵마저 모두 우승하며 6관왕을 이뤄냈으며 2014-15 시즌에도 트레블을 이뤄내며 바르셀로나 구단의 역사를 새로 썼다.

이니에스타의 대단한 활약은 아르마다 군단에서도 이어졌는데 대표팀에서 이니에스타는 중앙과 측면을 가리지 않고 맹활약했으며 유로 2008, 2010 남아공 월드컵, 유로 2012를 모두 우승하며 메이저 대회 3연패를 달성했으며 3개 대회 모두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유로 2012에서는 대회 MVP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개인 수상 이력도 화려한 이니에스타는 라리가 베스트 미드필더 5회 선정, UEFA 올해의 팀 6회 선정, 피파프로 월드 베스트 일레븐에 9회 선정되었으며 ESM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되었고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8회 선정되어 2010년에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2위에 올랐으며 2012년에도 3위에 오르며 발롱도르 포디움에 두 번 들었다.



3위 챠비 에르난데스

 


생년월일: 1980년 1월 25일
국적: 스페인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컴퓨터 패스'

2000년대 하반기와 2010년대 상반기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군림하던 선수로 빠른 두뇌회전과 컴퓨터라고 불릴 정도로 정교하면서도 창의적인 패싱력을 앞세워 경기를 지휘하는 마에스트로였다. 물론 기술적인 몸놀림과 뛰어난 공간 이해도를 활용한 탈압박은 물론 왕성한 활동량을 겸비해 경기장 전역에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했다.

바르셀로나의 유스팀 라 마시아에서 데뷔한 챠비는 바르셀로나에서 데쿠, 에드미우손, 코쿠, 루이스 엔리케 등 여러 선수들과 조합하며 활약하다가 펩 과르디올라의 부임 이후 이니에스타, 부스케츠와 함께 역대 최정상급 미드필더진을 구성했으며 라리가 8회 우승과 코파 델 레이 3회 우승, 그리고 UEFA 챔피언스리그 4회 우승을 이뤄냈고 특히 펩 과르디올라 체제에서는 팀의 플레이메이커로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며  2008-09 시즌 트레블을 포함해 클럽 월드컵과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와 UEFA 슈퍼컵마저 모두 우승하며 6관왕을 이뤄냈고 말년에도 로테이션 멤버로 2014-15 시즌에도 트레블에 기여하며 바르셀로나 구단의 역사를 새로 썼다.

바르셀로나에 머무는 동안 챠비는 개인적으로도 엄청난 커리어를 쌓았는데 1998-99 시즌 라리가 최우수 신인상을 시작으로 2004-05 시즌 라리가 최우수 스페인 선수상, 라리가 미드필더 3회 수상을 이뤄냈으며 2009년에는 스페인 올해의 운동선수에 선정되었다. 세계 무대에서도 2008년부터 2012년까지 UEFA 올해의 팀에 5년 연속으로 선정되었으며 ESM 올해의 팀에 3회 선정되었고 IFFHS 선정 세계 최우수 플레이메이커에 4년 연속으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2008-09 시즌 UEFA 올해의 미드필더, 2010-11 시즌 UEFA 올해의 선수 2위,  2010년에는 월드 사커 선정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챠비의 대단한 퍼포먼스는 아르마다 군단에서는 더욱 빛났는데 2002 한일 월드컵을 시작으로 스페인 대표팀에 소집되었으며 아라고네스와 델 보스케 체제에서는 유로 2008, 2010 남아공 월드컵, 유로 2012를 연달아 우승하며 메이저대회 3연패에 크게 공헌했다. 특히 유로 2008에서는 대회 MVP를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고 2010 남아공 월드컵과 유로 2012에서도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2위 호베르투 파우캉

 


생년월일: 1953년 10월 16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AS 로마

'Ottavo Re di Roma'

브라질 역대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광활한 시야와 창의적인 두뇌에서 나오는 패스로 경기를 지배했으며 뛰어난 지구력과 볼 컨트롤 능력과 수비스킬, 그리고 다양한 포지션을 무난하게 소화하는 축구 지능까지 겸비한 완벽한 미드필더였다.

브라질의 인테르나시오나우에서 처음 두각을 나타낸 파우캉은 엘리아스 피게로아와 함께 인테르나시오나우의 황금기를 이뤄내며 1979년 무패 우승을 포함해 주립리그 5회 우승 및 전국리그 3회 우승을 이뤄냈다. 파우캉 개인도 브라질 전국 리그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고 특히 1978년과 1979년에는 당대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지쿠를 제치고 브라질 세리 A MVP를 수상했다.

AS 로마에서도 전성기를 이어나간 파우캉은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 및 1982-83 시즌에는 스쿠테토를 따냈고 1983-84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결승에 올려놓았는데 이때 파우캉의 활약이 대단해서 로마 팬들은 그를 두고 로마의 여덟 번째 왕이라고 불렀다. 이때도 파우캉은 1982-83 시즌 구에린 스포르티보 선정 세리에 A 외국인 선수 랭킹 1위에 올랐고 옹즈도르 투표에서도 1982년에는 3위, 1983년에는 2위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다.

셀레상에서도 파우캉의 활약은 대단했는데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 지쿠, 소크라치스, 세레주와 함께 황금의 사중주로 불리며 그들을 훌륭하게 보좌하며 뛰어난 경기력을 보였다. 이러한 활약을 팬들에게 인정받아 2차 리그에서 탈락했음에도 불구하고 1982 스페인 월드컵 실버볼과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은퇴한 뒤에는 AS 로마 명예의 전당과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 모두 헌액되었다.



1위 로타어 마테우스

 


생년월일: 1961년 3월 21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게르만의 혼'

마라도나가 인정한 유일한 라이벌이자 축구 역사상 최고의 3선 미드필더로 철인이라 불리는 신체 능력과 왕성한 활동량을 물론 대인 수비에서도 당대 수비형 미드필더들보다 한 차원 위에 있었으며 우수한 테크닉과 결정적인 순간에 한건하는 클러치 능력과 반 바스텐, 비알리, 클린스만, 카레카 같은 세리에 A 정상급 스트라이커들과 득점왕 경쟁을 했을 정도로 뛰어난 득점력까지 겸비하며 넓은 지역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면서 게임도 끝낼 수 있는 완벽한 선수였으며 다양한 포지션에서 훌륭한 활약을 펼쳤다. 과장 좀 해서 마테우스 이전에 언급한 미드필더들의 장점을 모두 가지고 있는 완벽한 미드필더였다.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프로 커리어를 시작해 1979-80 UEFA컵 결승에 진출했으며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한 뒤에는 분데스리가 3연패와 유러피언 컴 결승 진출을 이뤄냈으며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해서는 분데스리가 3연패와 유러피언 컴 결승 진출을, 인테르에서는 1988-89 시즌 세리에 A 우승과 1990-91 UEFA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다시 바이에른 뮌헨으로 돌아와서는 리베로로 활동하며 분데스리가 4회 우승과 UEFA컵 우승을 추가했고 1998-99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 결승까지 진출했으나 퍼거슨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역전패하며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다.

디 만샤프트에서는 UEFA 유로 1980에 처음 뽑혔으나 유로 1984 때부터 1994 미국 월드컵 때까지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1986 멕시코 월드컵 준우승, 1988 유로 3위를 이뤘고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팀의 코어이자 주 득점원으로 팀을 우승시키며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그러나 클린스만과의 불화와 리베로에서 마티아스 잠머가 대두하면서 대표팀에서 소외되었으나 잠머의 부상으로 다시 소집되어 1998 프랑스 월드컵과 UEFA 유로 2000까지 출전했으나 이미 독일은 노쇠화되었으며 세대교체 실패의 영향으로 부진한 활약을 보여줬다.

마테우스는 개인적으로도 엄청난 수상 이력을 자랑하는데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5회 선정되었으며 옹즈 몽디알에서 뽑은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4회 연속 선정되었고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2회 수상했음은 물론 1990년에는 발롱도르를 수상했고 1991년에는 초대 피파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이전 회차: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 20위~1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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