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 100위~91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중앙 미드필더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 100위~91위

토르난테 2024. 1. 29.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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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버전과는 대폭 수정되었습니다. 관점이 바뀐 부분도 있고 가진 자료가 그때보다 많아졌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 과거의 선수일수록 수상 기회가 적어 수상 횟수에서 불리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100위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

 


생년월일: 1986년 1월 19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2000년대 후반기와 2010년대 세리에 A 무대 정상급 미드필더로 잘생긴 외모는 물론 우아한 볼 컨트롤을 활용한 유려한 탈압박과 세련되고 정확한 패싱력을 보여줬으며 축구 지능이 높고 다재다능해 미드필더의 전 포지션에서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었는데 박스 투 박스와 레지스타는 물론 트레콰르티스타와 앵커맨을 모두 소화했음은 물론 처진 공격수도 맡아 소화할 수 있었다.

유벤투스의 프렌차이즈 스타로 389경기 37골 41도움을 기록한 마르키시오는 세리에 A 7연패와 코파 이탈리아 4연패를 이뤄냈고 세리에 A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되었으며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두 번이나 결승에 올랐지만 각각 MSN을 앞세운 바르셀로나와 호날두와 모드리치, 라모스를 앞세운 레알 마드리드에게 아쉽게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마르키시오 개인도 2014-15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아주리 군단에서도 2010 남아공 월드컵과 UEFA 유로 2012에 참가했는데 후자의 대회에서는 팀의 결승행에 공을 세웠다. 그러나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16강 진출이 걸린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우루과이의 미드필더 아레발로 리오스의 정강이를 걷어찼는데 주심이 이를 바로 앞에서 보는 바람에 곧바로 퇴장 명령이 내려졌고 결국 후반 81분 디에고 고딘에게 헤더 결승골을 얻어맞으며 팀의 패배를 초래하고 말았다.



99위 루벤 바라하

 


생년월일: 1975년 7월 11일
국적: 스페인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발렌시아 CF

2000년대 라리가에서 이름을 떨쳤던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왕성한 활동량을 통해 공수 양면에서 넓은 범위에 영향력을 끼쳤으며 준수한 패싱력과 강력한 슈팅력을 통해 공격을 지원하는 능력에도 능했다.

21세기 박쥐군단의 황금기를 이끈 바하라는 수비형 미드필더 알벨다와 호흡을 맞추며 라리가 2회 우승 및 2003-04 시즌 UEFA컵 우승과 UEFA 슈퍼컵 우승, 그리고 2007-08 시즌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이뤄냈으며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2년 연속으로 진출했으나 레알 마드리드와 바이에른 뮌헨을 넘지 못해 아쉽게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바라하 개인은 2001-02 시즌 ESM 올해의 팀에 들었을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펼쳤고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카마초 체제에서 주전으로 활약했지만 유로 2004에서는 백업으로 밀려났으며 2006 독일 월드컵은 부상을 낙마하는 등 대표팀 운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98위 한지 뮐러

 


생년월일: 1957년 7월 27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VfB 슈투트가르트

1970년대 후반, 로타어 마테우스, 베른트 슈스터와 함께 당대 서독의 천재 유망주 계보를 이어나가던 선수로 상대방을 농락하는 유려한 발재간과 경기장 전역을 관통하는 드넓은 시야, 그리고 날카로운 왼발 패스를 바탕으로 팀의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하며 팀의 빌드업을 설계했다.

약관의 나이에 당대 세계 최고의 리그 중 하나였던 서독 분데스리가를 주름잡으며 명성을 떨쳤는데 비록 슈투트가르트에서 1부 리그 우승은 이뤄내지 못했지만 1976-77 시즌 2부 리그 우승을 이뤄내며 승격했다. 1978-79 시즌에는 승격한 지 1년 만에 슈바벤의 분데스리가 준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고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으며 슈투트가르트에 머무는 기간 동안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7회 선정되었다.

디 먄스프트에서도 UEFA 유로 1980에서 베른트 슈스터와 함께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대회 우승을 이끌어내며 탈리아의 구에린 스포르티보가 매년 유럽 최고의 신인 선수에게 주는 상인 브라보 어워즈를 수상했고 그 해에 열린 발롱도르 투표에서는 8위에 올랐다.

 


97위 훌리오 세사르 코르테스

 


생년월일: 1941년 3월 29일
국적: 우루과이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CA 페냐롤

19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반에 전성기를 누린 남미 정상급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강철같은 지구력에서 나오는 왕성한 활동량과 흑인 특유의 신체능력을 바탕으로 중원의 광범위한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간혹 전방으로 기습적인 킬패스를 찔러주며 득점 찬스를 만들기도 했다.

페냐롤에서 전성기를 누린 코르테스는 1966년에 곤칼베스와 함께 중원을 이끌며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이후에도 정규리그 2회 우승을 이뤄냈고 1969년에는 역대 인터콘티넨탈 우승팀끼리 최강자를 가리는 대회인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스 슈퍼컵에서도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끄는데 공헌했다.

로스 차루아스에서도 세 번의 월드컵에 출전한 코르테스는 1962 칠레 월드컵에서는 벤치를 지켰지만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주전으로 도약해 8강 진출을 이뤄냈으며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조국의 준결승 진출을 이뤄냈다.

 


96위 파블로 벵고에체아

 


생년월일: 1965년 6월 27일
국적: 우루과이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CA 페냐롤

1990년대 우루과이 축구계를 대표하던 중원사령관으로 엘 프로페서, 즉 교수라 불렸을 정도로 높은 수준의 전술안을 가진 선수로 경기장 전체를 관통하는 드넓은 시야와 우수한 양발 사용 능력, 그리고 정밀도 높은 중장거리 패스로 팀의 후방 플레이메이킹을 이끌었으며 킥력도 우수해 양발 중장거리 슈팅으로 직접 득점에도 능했다.

리그 중견팀 몬테비데오 원더러스에서 출중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라리가의 세비야로 이적해 활약하며 5년간 라리가 정상급 중앙 미드필더로 군림했다가 우루과이로 돌아왔으며 페냐롤 소속으로도 10년간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아우리네그로스의 프리메라 디비시온 7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은퇴한 시점에서는 페냐롤 통산 출전 2위에 올랐을 정도로 롱런했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뛰어난 퍼포먼스를 선보인 벵고에체아는 1987 코파 아메리카와 1995 코파 아메리카에서 프란체스콜리와 함께 조국의 우승을 이뤄냈으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도 참가했다.



95위 치리아코 스포르차

 


생년월일: 1970년 3월 2일
국적: 스위스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FC 카이저슬라우테른

도르트문트의 레전드 사퓌자와 함께 스위스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평가받는 선수로 한혈마와 같은 지구력에서 나오는 왕성한 활동량과 강력한 태클로 중원의 넓은 지역에서 상대와의 볼 경합에서 우위를 점했으며 볼을 잡았을 때에는 영리한 완급 조절은 물론 드넓은 시야와 우수한 킥력에서 나오는 정밀도 높은 롱패스와 빠른 판단력에서 나오는 숏패스를 바탕으로 하는 플레이메이킹에도 능했다.

스위스 무대에서 처음 명성을 날려 카이저슬라우테른으로 이적한 스포르차는 2년 동안 좋은 모습을 보였고 빅클럽인 바이에른 뮌헨과 인터 밀란을 거쳐 1997-98 시즌에는 다시 카이저슬라우테른으로 돌아와 활약하며 승격팀의 분데스리가 우승이라는 드라마를 써내는데 큰 공을 세웠음은 물론 해당 시즌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베스트 일레브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다시 바이에른 뮌헨으로 떠난 뒤에는 에펜베르크와 예레미스의 백업 역할을 수행하며 2000-01 시즌 분데스리가와 UEFA 챔피언스리그 더블을 이뤄냈고  또다시 카이저슬라우테른으로 돌아와 이번에는 위기에 빠진 팀에 돌아와 2002-03 시즌 DFB포칼 준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강등 위기에 빠진 팀을 구했다.

스위드 대표팀 소속으로 79회의 A매치에 나선 스포르차는 주전으로 활약하며 1994 미국 월드컵 16강과 UEFA 유로 1996 본선 진출을 이뤄냈는데 1994 미국 월드컵 본선 진출은 그의 조국 스위스가 메이저 대회에서 40년의 공백을 끝내고 복귀를 알린 대회였다.



94위 요나스 테른

 


생년월일: 1967년 3월 20일
국적: 스웨덴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SL 벤피카

1980년대 하반기와 1990년대 상반기에 활약했던 중원 자원이자 리베로로 스피드가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우수한 볼 컨트롤 능력과 넓은 시야에서 나오는 양질의 패스로 팀의 빌드업을 주도했으며 기습적인 슈팅으로 득점하거나 분위기를 가져오는 부분에도 능했다.

말뫼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테른은 구단의 정규리그인 알스베스칸 5회 우승 및 스웨덴 챔피언 결정전 2회 우승을 이뤄냈고 벤피카에서는 전성기를 누리며 1989-90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 및 1990-91 시즌 프리메이라 리가 우승을 이뤄냈고 당대 최고의 리그였던 세리에 A의 나폴리와 AS 로마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

1989년에 스웨덴 올해의 선수상인 굴드불렌을 수상한 테른은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1990 이탈리아 월드컵을 시작으로 유로 1992와 1994 미국 월드컵에서 바이킹 군단의 주장으로서 준결승 진출에 큰 공을 세웠기에 은퇴한 이후에는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93위 자이메 그라샤

 


생년월일: 1942년 1월 30일
국적: 포르투갈
신체조건: 키 182cm
주 소속팀: SL 벤피카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에 포르투갈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정력적인 활동량과 헌신적인 공수 가담 능력으로 넓은 지역에 영향력을 끼치며 팀의 살림꾼이자 엔진 역할을 맡았다.

포르투갈의 중위권 레벨의 클럽인 비토리아 세투발을 타사 드 포르투갈 결승전에 세 번이나 진출시키고 1964-65 시즌에는 우승을 이뤄낸 활약을 펼쳤던 그라샤는 아구이아스 군단에서 1971-72 시즌 무패 우승을 포함해 프리메이라 리가 7회 우승과 타사 데 포르투갈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67-68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결승에 진출했지만 버스비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결승전에서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포르투갈 대표팀에서도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 참여해 콜루냐와 중원 파트너십을 이뤄내며 전경기 풀타임 출장해 포르투갈의 월드컵 역대 최고 성적인 3위를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한편 그라샤는 1966년 12월 5일, 벤피카 구단에서 관리하는 공중목욕탕에서 전기로 굴러가는 수중 마사지 욕조가 누전되는 사고를 겪었는데 이때 빠르게 탈출한 그라샤는 프로 데뷔 이전에 딴 전기기사 자격증을 토대로 신속하게 욕조의 전원 공급기를 차단해 욕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네 명의 선수 중 이미 사망한 루시아누 페르난데스를 제외한 세 명의 목숨을 구하는 맹활약을 펼쳤다.



92위 카를로 안첼로티

 


생년월일: 1959년 6월 10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AC 밀란

현세대의 팬들에게는 UEFA 챔피언스리그 최다 우승 감독으로 더 유명하지만 1980년대에는 이탈리아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중앙 미드필더로 스피드는 느렸지만 왕성한 활동량과 영리한 판단력, 그리고 강력한 중거리 슈팅으로 경기 흐름을 뒤집는 능력도 있었던 미드필더였다.

당시 하부리그에 있던 파르마에서 AS 로마로 이적한 뒤 전성기를 누린 안첼로티는 잘로로시 군단에서 코파 이탈리아 4회 우승과 1982-83 시즌에는 40년 만에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으며 1983-84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결승에 진출하며 리드홀름 체제에서의 구단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아리고 사키 체제의 AC 밀란에서 말년을 보내면서도 레이카르트와 함께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세리에 A 2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2연패를 이뤄냈다.

안첼로티는 아주리 군단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는데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바니와 데 나폴리의 조합에 밀려 서브로 활약했지만 UEFA 유로 1988과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주전으로 데 나폴리와 호흡을 맞춰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아주리 군단을 준결승전에 올렸다.



91위 필립 코쿠

 


생년월일: 1970년 10월 29일
국적: 네덜란드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PSV 에인트호번

네덜란드 축구 역사상 최고의 멀티 플레이어 중 한 명으로 주 포지션인 3선 미드필더는 물론 공격형 미드필더, 측면 공격수 및 미드필더, 사이드백, 리베로, 스트라이커 등 골키퍼를 제외한 피치 위의 기어 모든 역할을 소화할 수 있었을 정도로 종목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으며 특히 엄청난 활동량과 우수한 판단력에서 나오는 정확한 원터치 패스로 이름을 날렸다.

AZ 알크마르에서 데뷔해 비테세를 거쳐 성장했으며 PSV 에인트호번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1995-96 시즌 KNVB컵 우승과 1996-97 시즌 에레데비시 우승을 이뤄냈고 이후 바르셀로나로 떠난 뒤에는 1998-99 시즌 라리가 우승을 이뤄냈으며 다시 PSV로 돌아온 뒤에는 에레디비시 3연패 및 2004-05 시즌에는 히딩크 감독의 지휘 아래 박지성, 이영표, 반 봄넬 등과 함께 도메스틱 더블과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이라는 성과를 냈다.

네덜란드 대표팀에서도 여러 포지션에서 활약하며 UEFA 유로 1996 본선 진출, 1998 프랑스 월드컵 4위, 유로 2000 준결승에 올라서는 과정에서 큰 공을 세웠고 유로 2004 4강 및 2006 독일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센추리 클럽에 가입하는 영예를 누렸다.

 


다음 회차: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 90위~8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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