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 20위~11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중앙 미드필더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 20위~11위

토르난테 2024. 2. 3.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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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의 선수일수록 수상 기회가 적어 수상 횟수에서 불리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20위 마리우 콜루냐

 


생년월일: 1935년 8월 6일
국적: 포르투갈
신체조건: 키 172cm
주 소속팀: SL 벤피카

포르투갈 축구 역사상 최고의 미드필더이자 1960년대 정상급 중앙 미드필더로 뛰어난 운동능력과 드넓은 시야와 신속 정확한 판단력과 정확하며 창의적인 패싱력도 겸비했다.

에우제비우, 아구아스와 함께 벤피카의 황금기를 주역으로 명성을 날린 콜루냐는 프리메이라 리그 10회 우승과 타사 데 포르투갈 6회 우승, 그리고 유러피언 컵 2연패를 이뤄냈고 콜루냐 개인도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에 4회 선정되었다.

포르투갈 대표팀에서도 팀의 중원 사령관으로 활약하며 1966 잉글랜드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브라질과 헝가리를 밀어내고 8강에서 북한을 상대로 대역전극을 쓰며 준결승에 진출해 3위에 올랐으며 콜루나도 복수의 매체에서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1966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13위에 올랐다.



19위 미겔 앙헬 브린디시

 


생년월일: 1950년 10월 8일
국적: 아르헨티나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CA 우라칸

1970년대 아르헨티나 최고의 미드필더로 왕성한 활동량과 우수한 전술안과 양질의 패싱력을 기반으로 경기장 전역에 볼을 운반하며 자신의 영향력을 보여줬음은 물론 우수한 1선 침투 능력으로 공격형 미드필더나 처진 공격수 역할도 수행했던 인쿠르소네의 표본이었다.

자국 리그의 우라칸과 스페인의 라스 팔마스에서 전성기를 보낸 브린디시는 우라칸의 1973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전기리그 우승을 이끌며 아르헨티나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남미 올해의 선수상 투표에서 2위에 올랐다. 라스 팔마스로 건너가서도 팬들에게 구단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선물하며 라리가 MVP를 수상했고 다시 아르헨티나로 돌아와서도 보카 주니어스에서 1981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전국리그 우승에 공헌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1974 서독 월드컵에 참가해 라 알비셀레스테 군단의 8강 진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스페인에서 활약한다는 이유로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의 대표팀에서는 소집받지 못했다.

 


18위 장 티가나

 


생년월일: 1955년 6월 23일
국적: 프랑스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2kg
주 소속팀: 지롱댕 보르도

1980년대 세계 최고 수준의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작은 체구를 지녔지만 빠른 스피드와 강한 스테미너를 활용한 왕성한 활동량으로 경기장을 풍미하며 공수 양면에서 크게 기여했다.

리옹에서 1980년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하며 두각을 나타낸 티가나는 보르도와 마르세유에서 전성기를 보냈고 보르도 소속으로 리그앙 3회 우승과 쿠프 드 프랑스 2회 우승을 이뤄냈다. 말년에는 프랑스의 신흥 강호 마르세유로 이적한 뒤로도 두 번의 리그 우승을 추가했다. 티가나 개인도 1984년부터 1987년까지 4년 연속 옹즈 몽디알 선정 유럽 베스트 일레븐과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에 4회 연속으로 선정되었다.

레 블뢰에서는 플라티니, 지레스, 루이 페르난데스와 함께 마법의 사각형이라 불리는 중원 조합을 구성해 팀의 엔진 역할을 하며 1982 스페인 월드컵과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4강에 진출했고 유로 1984에서는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1986 멕시코 월드컵과 UEFA 유로 1984에서는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는데 특히 UEFA 유로 1984에서는 플라티니를 보좌해 우승에 크게 기여하며 1984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2위를 기록했다.

 


17위 빌렘 반 하네엄

 


생년월일: 1944년 2월 20일
국적: 네덜란드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1970년대 에레데비시 무대를 풍미했던 미드필더로 스피드가 느린 편인 것을 제외하면 공수 양면에서 완벽한 미드필더였는데 특히 팀을 조율하는 창의적이면서도 정교한 패스, 날카로운 슬라이딩 태클과 적재적소의 인터셉트, 영리한 탈압박, 그리고 통산 200골 이상을 득점한 득점력을 모두 갖췄다.

페예노르트에서 요한 크루이프와 치열한 라이벌리를 이뤄낸 반 하네엄은 에레디비시 3회 우승과 1969-70 유러피언 컵 우승, 그리고 1973-74 시즌 UEFA컵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구가했다.

오랑예 군단에서도 빔 얀센, 요한 네스켄스와 함께 주축으로 활약하며 1974 서독 월드컵과 유로 1976에 참가했으며 전자의 대회에서는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이며 팀을 결승에 올려놓았다.

 


16위 요한 네스켄스

 


생년월일: 1951년 9월 15일
국적: 네덜란드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AFC 아약스

또 다른 요한이라 불리며 크루이프를 보좌했던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미드필더의 전 지역과 측면 수비수까지 소화할 수 있었던 만능 자원이다. 아약스의 팀 동료이자 윙어인 스바르트는 그는 혼자서 두 명의 몫까지 뛸 수 있었다며 왕성한 활동량을 보여줬다고 증언했다.

아약스와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누린 네스켄스는 아약스에서는 1971-72 시즌 트레블을 포함해 에레데비시 3회 우승과 유러피언컵 3연패를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FC 바르셀로나에서는 1977-78 시즌 코파 델 레이 우승과 1978-79 시즌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네스켄스 개인으로도 1975-76 시즌에는 문도 데포르티보 선정 라리가 MVP 및 돈 발롱 선정 라리가 올해의 외국인 선수로 선정되었다.

오랑예 군단의 유니폼을 입고 1974 서독 월드컵과 UEFA 유로 1976, 그리고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활약했으며 서독 월드컵에서는 크루이프를,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는 렌센브링크를 보좌하며 팀을 결승에 올려놓았으나 두 대회 모두 다소 논란이 될 판정으로 아쉽게 패했다. 그래도 1974 월드컵에서의 활약은 특히 대단해 발롱도르 5위에 올랐다.



15위 프랭크 램파드

 


생년월일: 1978년 6월 20일 
국적: 잉글랜드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첼시 FC

21세기 프리미어리그를 빛낸 당대 세계 최고 수준의 미드필더로 정교한 패싱력과 경기 흐름을 완벽하게 읽어내는 뛰어난 전술안과 넓은 시야와 왕성한 활동량을 통해 동료들과 우수한 연계플레이를 보여줬으며 특히 스트라이커에 준하는 득점력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로 미들라이커로 불렸다,

로만 체제의 첼시의 에이스 중 하나로 활약한 램파드는 프리미어리그 3회 우승과 FA컵 4회 우승, 그리고 2011-12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 및 2012-13 유로파 리그 우승을 이뤄내 로만 제국의 전성기를 열었던 개국공신으로 평가받았고 특히 2005년에는 FW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며 프리미어리그 MVP에 올랐다. 그 외에도 PFA 올해의 팀에 3회 선정되었고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5회 선정되어 2005년에는 2위에 올랐으며 그 해 피파 올해의 선수상 투표에서도 2위에 올랐고 2008년에는 UEFA 클럽 올해의 미드필더로 선정되었으며 2021년에는 프리미어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다만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는 또 다른 월드클래스 미드필더 제라드와의 조합 실패로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는데 2006 독일 월드컵에서 8강에 진출하긴 했지만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독일전 동점골이 오심으로 취소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14위 스티븐 제라드

 


생년월일: 1980년 5월 30일
국적: 잉글랜드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83kg
주 소속팀: 리버풀 FC

21세기 프리미어리그를 빛낸 당대 세계 최고 수준의 육각형 미드필더였로 대포알같은 강력한 중거리 슈팅을 활용한 득점력과 왕성한 활동량과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공수 양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는 축구 지능, 훌륭한 리더십을 겸비한 완벽한 선수였다.

리버풀에서 전성기를 누린 제라드는 비록 리그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지만 2000-01 시즌에는 UEFA 컵, 리그 컵, FA 컵을 우승하며 미니 트레블을 이뤄냈고 일명 이스탄불의 기적이라 불리는 2004-05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AC 밀란을 상대로 3-0으로 지는 와중에 만회골을 넣으며 팀의 추격 의지에 불을 붙여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제라드가 리버풀에  머무는 동안 이뤄냈던 개인 커리어도 대단해 2005년 UEFA 올해의 미드필더와 2008-09 시즌 FWA 올해의 선수상을 포함해 PFA 올해의 팀에 8회 선정되었으며 UEFA 올해의 팀에 3회 선정되었으며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5회 선정되어 2005년에 개인 통산 최고 성적인 3위에 올랐다.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는 또 다른 월드클래스 미드필더 램파드와의 조합 실패로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지만 2002 한일 월드컵과 2006 독일 월드컵에서 8강에 진출했으며 유로 2012에서는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2017년에는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2021년에는 프리미어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13위 미하엘 발락

 


생년월일: 1976년 9월 26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89cm / 몸무게 88kg
주 소속팀: 바이어 04 레버쿠젠

2000년대 상반기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만능 미드필더로 강력한 피지컬과 탄탄한 기본기, 뛰어난 축구 지능과 승부를 결정짓는 클러치 능력을 모두 겸비한 다재다능한 미드필더였다.

카이저슬라우테른을 거쳐 레버쿠젠에서 처음 두각을 나타낸 발락은 2001-02 시즌 트리플 준우승이라는 다소 대단하면서도 아쉬운 성적을 냈지만 개인적으로는 대단한 활약을 인정받아 2001-02 시즌 ESM 올해의 팀과 2002 UEFA 클럽 올해의 미드필더상을 받았으며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해서는 분데스리가와 포칼 3회 우승을 이루고 첼시에서는 프리미어리그 우승 1회, FA컵 우승 3회, 그리고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을 이뤄냈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돌풍의 팀 대한민국을 상대로 팀을 결승에 진출시키는 결승골을 넣었지만 경고 누적으로 결승전에 출전하지 못해 팀의 패배를 지켜본 아픈 경험이 있었고 UEFA 유로 2004에서는 조별 리그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지만 발락 본인은 대회 올스타 팀에 들었을 정도로 훌륭한 활약을 보여줬으며 2006 독일 월드컵과 유로 2008에서는 주장 완장을 차고 맹활약했으나 각각 4강전과 결승전에서 아쉽게 패했다. 유로 2000을 제외한 참가한 월드컵과 유로에서 모두 대회 올스타 팀에 들었다.

비록 독일 축구의 암흑기에 전성기를 맞아 우승 트로피가 상대적으로 적지만 발락 개인의 활약은 모두에게 인정받았던 발락은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4회 선정되었으고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3회 수상했으며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4회 선정되어 2002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5위에 올랐다.



12위 프리츠 슈체판

 


생년월일: 1907년 9월 2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FC 샬케 04


2차 세계 대전 이전 독일 역대 최고의 축구선수로 포지션은 인사이드 포워드로 오늘날의 공격형 미드필더 위치에 있었지만 오늘날의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의 활동 범위와 플레이메이커의 경기 지배력을 겸비한 시대를 앞질러간 훌륭한 미드필더였다.

1930년대 샬케가 독일에서 가장 강력했던 클럽인 시절 핵심 선수였던 슈체판은 독일 챔피언쉽 6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1936-37 시즌에는 독일 챔피언쉽과 DFB포칼을 동시에 우승하며 샬케를 독일 최초의 도메스틱 더블 팀으로 만들었다. 이 공로를 후세에 인정받아 1999년에 샬케 세기의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준 슈체판은 1934년 월드컵에서는 3위에 올랐고 헤어베르거 체제에서는 1937년에 11번의 A매치에서 10승 1무를 기록하며 상승세를 타며 폴란드 브레슬라우에서 덴마크를 상대로 8-0 대승을 기록하는데 기여하며 브레슬라우 엘프의 전설을 썼을 때 팀의 주장이자 팀 전술의 핵심적인 존재로 활약했다.



11위 이고르 네토

 


생년월일: 1930년 1월 9일
국적: 러시아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1957년 레닌 훈장을 받았던 1950년대 하반기 세계 최고의 레프트 하프 중 하나로 우수한 공간 인지 능력과 신속 정확한 상황 판단력, 그리고 탁월한 전술안을 활용한 우수한 동료 이용 능력을 바탕으로 공간을 지배하며 상대의 플레이를 무력화했다.

선수 생활 전부를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에서 보낸 원 클럽맨 네토는 소련 탑 리그 5회 우승과 소비에트 컵 3회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이 소련을 대표하는 명문으로 이름을 날리는데 크게 기여했고 네토 개인도 소련 탑 리그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13회 선정되었을 정도로 꾸준하게 좋은 모습을 보였다.

소련 대표팀에서도 레프 야신, 에두아르드 스트렐초프와 함께 팀의 핵심으로 활약했는데 소련 대표팀의 핵심 하프백으로 1956 멜버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했고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는 소련의 첫 월드컵에서 8강 진출에 공헌했으며 1960년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는 주장으로 팀을 조율해 소련 대표팀의 초대 유로 대회 우승을 이끌며 주장으로서 앙리 들로네를 들어 올리며 야신과 함께 인민의 아이돌로 군림했다. 특히 이 대회에서는 팀 오브 더 토너먼트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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