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 50위~41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중앙 미드필더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 50위~41위

토르난테 2024. 1. 31.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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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 작성자 개인의 주관이 강하게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설득하셔도 바꿀 생각 없습니다.

* 과거 버전과는 대폭 수정되었습니다. 관점이 바뀐 부분도 있고 가진 자료가 그때보다 많아졌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 과거의 선수일수록 수상 기회가 적어 수상 횟수에서 불리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50위 아르투로 비달

 


생년월일: 1987년 5월 22일
국적: 칠레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칠레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미드필더로 불린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불타는 투지를 보여주며 왕성한 활동량으로 경기장 전역을 누비며 터프한 슬라이딩 태클과 화끈한 몸싸움을 보여준다고 하여 전사 또는 피라니아라 불렸으며 수비적인 부분에서는 물론 공격적인 부분에서도 중거리 슈팅과 찬스 메이킹에 능했으며 페널티킥 실력도 우수했다.

레버쿠젠, 유벤투스, 바이에른 뮌헨, 바르셀로나와 같은 당대 최고의 팀들을 거치며 세리에 A 4연패, 분데스리가 3연패를 이뤄냈고 라리가 우승까지 이뤄내며 2011-12 시즌부터 2018-19 시즌까지 8년 연속으로 정규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이후 인테르 밀란에서도 스쿠테토를 들며 통산 리그 9회 우승이라는 굵직한 성적을 거뒀다. 비달 개인도 레버쿠젠과 바이에른에서 각각 VDV 선정 분데스리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세리에 A 올해의 팀에 2년 연속으로 선정되었으며 2013-14 시즌 ESM 올해의 팀 선정, 2015-16 시즌 DFB포칼 결승전에서는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되었다.

칠레 대표팀에서도 오랜 시간 주축으로 활약하며 큰 족적을 남긴 비달은 코파 아메리카에서 2년 연속 우승하는데 크게 공헌했고 비달 개인도 코파 아메리카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다. 특히 2015년에는 메시를 제치고 결승전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되었고 2016년에는 코파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칠레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49위 짐 백스터

 


생년월일: 1939년 9월 29일
국적: 스코틀랜드
신체조건: 키 188cm
주 소속팀: 레인저스 FC

전성기는 짧았지만 전성기 시절에 한정해서는 스코틀랜드 축구계 최정상급 기량을 자랑했던 중앙 미드필더로 그 당시 영국에 만연해 있었던 피지컬 축구, 계획 없이 많이 뛰는 축구에 편승하지 않고 효율적인 움직임과 적절한 위치선정, 그리고 섬세한 테크닉을 기반으로 한 유연하고 지능적으로 볼을 주고받으며 소유하는 플레이를 펼쳤다.

레인저스에서 스코틀랜드 풋볼 리그와 스코티시 컵을 각각 3회 우승했고 리그컵에서는 4회 우승을 이뤄내며 총 10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고 유럽 무대에서도 1960-61 시즌 UEFA 컵 위너스컵에서 결승에 오르기도 했다. 백스터 개인도 1965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1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선덜랜드에서도 괜찮은 기량을 보였으나 1967년 뒤로는 부진했다.

스코틀랜드 대표팀에서도 핵심 멤버로 활약한 백스터는 1963년에는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잉글랜드vs세계 올스타 경기에 참가했다. 은퇴한 뒤에는 레인저스 명예의 전당, 스코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 그리고 스코틀랜드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모두 헌액되었다.

 


48위 조니 자일스

 


생년월일: 1940년 11월 6일
국적: 아일랜드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63kg
주 소속팀: 리즈 유나이티드

로이 킨과 함께 아일랜드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 인물로 왕성한 활동량으로 그라운드 전역에 큰 영향력을 끼쳤으며 공수 양면에서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며 많은 팬들에게 던컨 에드워즈의 후계자로 지지받았다.

잉글랜드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데뷔해 1962-63 시즌 FA컵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을 세워 에드워즈의 후계자로 두각을 나타냈고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전성기를 누렸는데 빌리 브렘너와 함께 중원 조합으로 명성을 떨치며 풋볼 리그 1부 2회 우승 및 1967-68 시즌 리그컵 우승 및 1971-72 시즌 FA컵 우승을 이뤄냈고 유럽 무대에서도 두 차례의 인터시티 페어스컵 우승 및 1974-75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이뤄냈다.

2004년 아일랜드 축구협회에 의해 근 50년간 아일랜드 최고의 선수로 선정된 자일스는 대표팀의 암흑기라 메이저 대회에 모습을 드러내진 못햤지만 각종 예선전을 포함한 A매치에 50경기 넘게 출전했다.

 


47위 이반 라키티치

 


생년월일: 1988년 3월 10일
국적: 크로아티아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2010년대 스페인 무대를 풍미했던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왕성한 활동량과 능숙한 볼 컨트롤 능력을 겸비했으며 플레이메이커로 팀을 지휘하는 역할과 헌신적인 수비 가담으로 플레이메이커를 경호하는 살림꾼 역할에 모두 능했다.

분데스리가에서 데뷔한 크로아티아인이였지만 라리가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큰 족적을 남긴 이반 라키티치는 세비야에서는 유로파 리그 2회 우승 및 UEFA 유로파 리그 시즌의 스쿼드에 선정되었고 특히 2013-14 시즌 결승전에서는 결승전 맨 오브 더 매치에도 선정되었다. FC 바르셀로나에서도 2014-15 시즌 트레블을 포함해 라리가와 코파 델 레이 각각 4회 우승을 이뤄내며 통산 3회째 라리가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크로아티아 대표팀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는데 특히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헌신적인 움직임으로 에이스 모드리치를 보좌하며 팀의 살림꾼 역할을 맡아 조국의 첫 월드컵 결승 진출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46위 지노 사니

 


생년월일: 1932년 5월 23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상 파울루

1950년대 하반기와 1960년대 상반기에 이름을 알렸던 전천후 미드필더로 우수한 볼 컨트롤 능력과 타인의 예측을 불허하는 창의성과 드넓은 시야에서 나오는 롱패스로 두뇌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거기서 끝이 아니라 왕성한 활동량까지 겸비해 아군 수비 진영부터 상대 수비 진영까지 볼 운반을 맡았다.

상 파울루와 AC 밀란에서 전성기를 누린 사니는 상 파울루에서는 1957 시즌에 벨라 구트만 체제에서 4-2-4 시스템의 중앙 미드필더 중에서도 플레이메이커 맡으며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우승에 공헌했다. 네레오 로코의 AC 밀란에서는 플레이메이커 자리를 지안니 리베라에게 양보하고 상 파울루 시절보다 수비적인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 역할을 맡아 수비진과 공격진을 이어주며 1961-62 시즌 스쿠테토와 1962-63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에 공헌했다.

다만 클럽에서의 화려한 영광과는 다르게 셀레상의 활약은 다소 저조한데 이는 역대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 중 하나로 손꼽히는 지지의 존재 때문이었다. 지지의 백업 역할을 맡으며 1958 스웨덴 월드컵 우승과 두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서 준우승을 모두 벤치에서 경험했다.



45위 헤어베르트 프로하스카

 


생년월일: 1955년 8월 8일
국적: 오스트리아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아우스트리아 빈

1980년대 초반, 유럽 정상급의 후방 플레이메이커로 평가받았던 선수로 광활한 시야와 창의적이면서도 정확한 롱패스를 활용해 상대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수많은 골 찬스를 만들어냈다.

아우스트리아 빈에서 오스트리안 분데스리가 7회 우승과 오스트리안 컵 3회 우승을 이뤄낸 프로하스카는 세리에 A에서도 인테르에서는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으며 AS 로마에서는 1982-83 시즌에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고 해달 시즌에 구에린 스포르티보 선정 세리에 A 외국인 선수 랭킹 5위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올해의 선수에 3회 선정되었다.

1950년대 오크비르크 은퇴 이후 침체기를 겪던 오스트리아 대표팀을 다시 월드컵 본선 무대로 올려놓았으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2차 조별 리그에서는 탈락이 확정된 상황에서 디펜딩 챔피언 서독을 상대로 3-2로 이기는데 큰 공을 세우며 세계적으로는 축구의 프로화가 가속화되었던 1960년 이후로는 오스트리아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꼽힌다. 그 증거로 2003년에 오스트리아 축구협회 선정 지난 50년간 최고의 오스트리아 축구선수로 선정되었다.



44위 일카이 귄도안

 


생년월일: 1990년 10월 24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

2010년대 중반 도르트문트에서 이름을 날린 플레이메이커로 활동량은 다소 떨어졌지만 시야가 넓고 탈압박 능력은 물론 숏패스와 롱패스 모두 뛰어나 3선에서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도맡아 2선에 볼을 배급하며 킥력이 우수해 페널티 킥도 잘 찼으며 2020-21 시즌을 기점으로는 우수한 1선 침투 능력으로 많은 골을 득점하기도 했다.

뉘른베르크 시절에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했으나 도르트문트에서 사힌의 대체자로 영입되어 후방 플레이메이커로 전업해 활약하며 2011-12 시즌 분데스리가와 DFB포칼 더블 우승과 2012-13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에 공헌했으며 결승전에서는 페널티킥 득점도 했으며 특히 2012-13 후반기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는 월드클래스 등급을 받았으며 맨체스터 시티에 입성해서는 블루문 군단의 중원을 책임지며 2018-19 시즌 도메스틱 트레블을 포함해 프리미어리그 우승 4회와 리그컵 4연패를 이뤄냈으며 2020-21 시즌에는 구단 역사상 최초로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했으며 본인도 ESM 올해의 팀과 UEFA 챔피언스리그 올해의 스쿼드에 선정되는 활약을 보여줬다.

가진 역량에 비해 디 만샤프트에서는 잘 풀리지 않았는데 토니 크로스,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라는 대단한 선수들에 밀려 백업 멤버로 활약하며 유로 2012에 참가했으나 부상으로 인해 2014 브라질 월드컵과 유로 2016에는 나가지 못했으며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벤치를 지키며 팀의 조별리그 탈락을 막지 못했고 UEFA 유로 2020과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43위 지아코모 불가렐리

 


생년월일: 1940년 10월 24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76cm
주 소속팀: 볼로냐 FC

20세기 이탈리아 최고의 레지스타로 꼽혔던 인물로 우수한 판 짜기 실력과 드넓은 시야, 그리고 정확한 롱 패스를 활용한 우수한 플레이메이킹은 물론 교묘한 탈압박 능력과 파워풀한 수비와 왕성한 활동량 또한 겸비해 파비오 카펠로에 의해 이탈리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미드필더로 평가받기도 했다.

볼로냐 구단 통산 최다 출전자에 랭크된 불가렐리는 1963-64 시즌에는 유럽 최강의 팀으로 불리던 인테르 밀란과 승점 동률을 이룬 뒤 플레이오프에서 승리를 거두며 스쿠테토를 따냈고 이외에도 코파 이탈리아와 2회 우승과 1961 미트로파 컵 우승과 1970년 이탈리아-잉글랜드 리그컵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다만 대표팀 활약은 아쉬운데 1962 칠레 월드컵과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 참가했으나 모두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으며 특히 1966 잉글랜드 월드컵 북한전에서는 불가렐리가 박승진을 태클로 저지하려다 오히려 박승진의 몸이 불가렐리에 다리로 떨어지면서 부상을 당해 이탈하며 탈락의 원흉이 되기도 했다. 이후 유로 1968에선 백업 멤버로 우승을 경험했다. 이토록 대표팀 활약이 다소 좋지 않음에도 피를로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이탈리아인 최고의 미드필더라는 수식을 들었을 정도로 세리에 A에서의 활약이 우수했다.



42위 쇠렌 레르비

 


생년월일: 1958년 2월 1일
국적: 덴마크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AFC 아약스

1980년대 유럽 전역에 이름을 날렸던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지치지 않는 지구력을 바탕으로 활발한 공수 가담을 보여주며 경기장 전역에 영향력을 행사했고 대포와도 같은 왼발 중거리 슈팅을 앞세워 유러피언 컵 득점왕에도 올라본 적이 있었을 정도로 득점력도 우수했다.

네덜란드의 양대 강호 아약스와 PSV에서 모두 레전드로 통하는 레르비는 양 팀을 통틀어 에레데비시 7회 우승을 이뤄냈고 특히 1983년에는 옹즈 몽디알 선정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1987-88 시즌에는 PSV에서 에레데비시와 KNVB컵에 이어 유러피언 컵에서도 우승하며 트레블을 이뤄냈다. 바이에른 뮌헨에서도 분데스리가와 DFB포칼을 각각 2회 우승했고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은에 2회 선정되었다.

조국 덴마크에서도 데니쉬 다이너마이트 시대의 엔진으로 활약하며 UEFA 유로 1984 준결승 진출이라는 호성적과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서독, 스코틀랜드, 우루과이와 한 조에 속하며 죽음의 조라 평가받았던 조에서 3전 전승을 거두며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는데 그 과정에서 활약상이 대단해 구에린 스포르티보지 선정 1986 멕시코 월드컵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은퇴한 뒤에는 덴마크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41위 브란코 오블락

 


생년월일: 1947년 5월 27일
국적: 슬로베니아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하이두크 스플리트

당대 유고슬라비아 축구계 최고의 미드필더로 지칠 줄 모르는 스테미너에서 나오는 왕성한 활동량은 물론 우수한 킥력을 바탕으로 한 중장거리 패스와 중거리 슈팅에 능했다.

유고슬라비아 리그와 분데스리가에서 이름을 날렸던 오블락은 전자의 리그의 하이두크 스플리트에서는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와 유고슬라비아 컵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분데스리가에서는 샬케와 바이에른 뮌헨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1979-80 시즌에 바이에른 뮌헨의 분데스리가 우승을 도왔다. 오블락 개인도 스포르트 선정 유럽 베스트 일레븐 2회, 1975 발롱도르 11위, 1976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과 같은 업적을 냈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팀의 엔진으로 활약하며 1974 서독 월드컵 8강과 유로 1976 4위라는 성적을 냈으며 특히 전자의 대회에선 우수한 퍼포먼스로 대회 올스타 팀 선정과 독일 언론 키커에서 주관한 투표에서 대회 최우수 선수 5위를 기록했다. 은퇴 이후인 2003년에는 분리독립된 슬로베니아에서 지난 50년간 슬로베니아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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