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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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버전과는 대폭 수정되었습니다. 관점이 바뀐 부분도 있고 가진 자료가 그때보다 많아졌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 과거의 선수일수록 수상 기회가 적어 수상 횟수에서 불리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60위 루이스 델 솔

생년월일: 1935년 4월 6일
국적: 스페인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1960년대 유럽 정상급 미드필더로 일곱 개의 폐라 불렸을 정도로 대단한 지구력에서 나오는 엄청난 활동량을 보여줬으며 짧은 패스와 긴 패스를 자유자재로 쓰며 플레이메이킹을 도맡았으며 공수 양면에서 기여도가 높은 다재다능한 미드필더였다.
레알 베티스에서의 뛰어난 활약으로 라리가 정상급 인사이드 포워드로 평가받았던 델 솔은 빅클럽들의 주목을 받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는데 제2의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라고 불리며 1959-60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과 라리가 2연패를 이뤄냈고 델 솔 개인도 1962년에는 발롱도르 투표에서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15위에 올랐다. 세리에 A의 유벤투스로 이적한 뒤에는 하프백으로 활약해 팀의 허리를 책임지며 1964-65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에 이어 1966-67 시즌에는 양 밀란의 시대를 종결시키고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다.
아르마다 군단에서는 1962년과 1966년 두 번의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했는데 특히 UEFA 유로 1964에서는 백업 멤버로 우승을 경험했다.
59위 카를 콜러

생년월일: 1929년 2월 9일
국적: 오스트리아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퍼스트 빈
1950년대 초중반 유럽 최고의 레프트 하프 중 한 명으로 스피드는 평범했지만 공수 양면에서 뛰어났는데 공격적인 부분에서는 정밀도 높은 패스로 팀의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맡을 수도 있었음은 물론 강력한 중거리 슈팅으로 때때로 분위기를 바꾸기도 했고 수비적인 부분에서는 한혈마와 같은 지구력과 강력한 집념을 바탕으로 경기장 전역을 뛰어다니며 플레이메이커를 보호하는 능력에도 능했다.
자신이 주축인 소속팀 퍼스트 빈에서는 팀의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는데 소속팀이 양대 전력인 라피트 빈과 아우스트리아 빈에 비해 전력이 약했음에도 불구하고 1954-55 시즌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우승 및 1960-61 시즌 오스트리아 컵 우승을 이뤄내는 기염을 토했다.
오스트리아 대표팀에서는 사령관 에른스트 오크비르크 및 만능 미드필더 게르하르트 하나피를 보좌하며 함께 중원을 구성하며 활약했는데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 조국의 준결승 진출 및 3.4위전 승리를 이끌었고 1958 스웨덴 월드컵에도 참가했다.
58위 발테르 나우쉬

생년월일: 1907년 2월 5일
국적: 오스트리아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아우스트리아 빈
1930년대 유럽 최고의 하프백 중 한 명으로 포워드로 경력을 시작해 전성기를 레프트 하프 및 센터 하프로 보냈으며 말년에는 수비수로 뛰었을 정도로 축구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드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한 날카로운 스루 패스로 득점 찬스를 만들어내는 부분과 빠른 기동력을 바탕으로 적절한 위치에서 볼을 받거나 상대를 유리한 위치에서 저지하는 능력이 돋보였다.
16세의 어린 나이에 데뷔한 나우쉬는 마티아스 진델라와 함께 아우스트리아 빈의 전성기를 이끌며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5회 우승을 이뤄냈고 1933년과 1936년에는 각각 인테르 밀란과 스파르타 프라하를 상대로 미트로파컵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당대 유럽 최강이라 불린 분더팀 오스트리아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하며 무려 네 번의 중유럽컵에 나가 1931-1932년 대회에서는 우승을 차지했고 1927-30년 대회와 1933-35년 대회에서는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보였으나 정작 1934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부상으로 낙마하며 불참했다.
57위 콜린 벨

생년월일: 1946년 2월 26일
국적: 잉글랜드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
1960년대 하반기와 1970년대 상반기 잉글랜드 무대를 주름잡았던 미드필더로 빼어난 중앙 드리블 돌파와 뛰어난 킬 패스, 그리고 정확한 슈팅으로 골문을 노렸던 팀의 플레이메이커였는데 니진스키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1960년대 잉글랜드 풋볼 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찰튼이 있었다면 맨체스터 시티에는 콜린 벨이 있었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강한 라이벌리를 구성했던 콜린 벨은 만수르 인수 이전 맨체스터 시티의 최전성기를 이끌며 1965-66 시즌 세컨드 디비전 우승을 시작으로 풋볼 리그 우승과 FA 컵 우승, 그리고 컵 위너스 컵 우승과 두 번의 리그 컵 우승을 이뤄냈고 콜린 벨 개인도 1968년 맨체스터 시티 올해의 플레이어에 선정되었고 1974-75 시즌 PFA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으며 은퇴한 이후에는 풋볼 리그 100인의 레전드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삼사자 군단에서는 찰튼의 백업으로 활약하던 콜린 벨은 UEFA 1968 유로 3위에 올랐고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준수한 모습을 보여줬으며 은퇴한 이후 2005년에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56위 로메오 베네티

생년월일: 1945년 10월 20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AC 밀란
1970년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미드필더로 강력한 피지컬과 정신력에서 나오는 왕성한 활동량과 거친 태클과 대인 수비는 물론 공격적인 부분에서도 지속적인 전방 압박을 통해 기회를 만들거나 직접 슈팅으로 포문을 열기도 했으며 카리스마도 대단해 전차, 호랑이, 바위, 장군 등의 별명으로 불렸다.
AC 밀란과 유벤투스에서 전성기를 누린 베네티는 전자의 구단에서는 두 번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과 1972-73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후자의 구단에서는 공격형 미드필더와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를 오가며 두 번의 스쿠테토와 1976-77 UEFA컵 우승과 1978-79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다.
아주리 군단에서도 데 시스티에 뒤를 이어 주전으로 활약한 베네티는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과 유로 1980에서 모두 주전으로 활약하며 준결승에 진출해 4위라는 호성적을 내는데 큰 공을 새웠다.
55위 지안카를로 데 시스티

생년월일: 1943년 3월 13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피오렌티나
1960년대 하반기와 1970년대 상반기에 유럽 축구계에 이름을 날렸던 미드필더로 왕성한 활동량과 우수한 공간 활용 능력과 우수한 볼 컨트롤은 물론 경기장을 가르는 킬패스에도 능해 수많은 찬스를 양산했다.
피오렌티나와 AS 로마에서 전성기를 누린 데 시스티는 전자의 구단에서는 인터시티 페어스 컵과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고 후자의 구단에서는 코파 이탈리아와 미트로파컵에 이어 1968-69 시즌에는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는데 이는 현재까지 피오렌티나의 마지막 스쿠테토였다. 데 시스티는 리그에서 이런 활약을 토대로 DBS 칼초 평점 Top 10에 4년 연속으로 들었으며 AS 로마와 피오렌티나 양 구단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데 시스티는 몰락했던 아주리가 부활해 유럽을 호령하게 만든데 큰 공을 세우기도 했는데 UEFA 유로 1968에서 결승전 재경기에 참가해 아주리가 앙리 들로네를 드는데 큰 공헌을 했고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지안니 리베라와 산드로 마촐라가 있음에도 우수한 스테미너를 인정받아 주전으로 참가하며 18회의 찬스 메이킹을 기록하며 펠레와 볼프강 오베라트 다음으로 많은 찬스를 기록하기도 했다.
54위 폴 스콜스

생년월일: 1974년 11월 16일
국적: 잉글랜드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00년대 EPL 무대를 호령하던 중앙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부족한 수비 테크닉과 느린 스피드, 부족한 피지컬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창의성과 예리한 판단력, 그리고 정교한 킥력을 바탕으로 탁월한 패스를 선보이던 플레이메이커로 직접 침투해서 득점을 노리는 부분에서도 뛰어난 모습을 보였다.
선수생활을 오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 스콜스는 1998-99 시즌에 이룬 트레블을 포함해 프리미어리그 11회 우승과 FA컵 3회 우승, 그리고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을 포함해 총 25개의 트로피를 구단에 선물했다. 특히 2010-11 시즌이 끝나고 은퇴했지만 팀이 어려움에 빠지자 퍼거슨의 요청으로 은퇴를 번복하고 2012-13 시즌 한 시즌을 더 뛰며 리그 우승에 기여했을 정도로 롱런했으며 PFA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되었다.
다만 그 시대의 대부분의 잉글랜드 선수들처럼 삼사자 군단에는 다소 부진했는데 그나마 2002 한일 월드컵에서 8강에 오른 게 가장 좋은 성적이라 2004년 이후 대표팀에서 조기 은퇴하며 소속팀에 전념했으며 현역으로 활약하던 2008년에는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2022년에는 프리미어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53위 올라프 톤

생년월일: 1966년 5월 1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FC 샬케 04
1990년대 분데스리가에서 이름을 날린 미드필더로 대표팀 동료인 마테우스에 비견되는 다재다능한 플레이어로 Der Professor, 즉 교수라 불릴 정도로 영리한 선수였으며 중앙 미드필더와 공격형 미드필더, 그리고 리베로를 모두 소화할 수 있었다.
샬케와 바이에른 뮌헨에서 활약한 톤은 바이에른에서는 분데스리가 3회 우승을, 샬케에서는 DFB포칼 2회 우승을 이뤄냈고 1996-97 시즌에는 UEFA컵 우승을 이뤄내며 발롱도르 24위에 올랐고 이 두 팀에서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으며 특히 샬케에서는 세기의 일레븐과 명예의 주장에 모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디 만샤프트에서는 백업으로 1986 멕시코 월드컵 준우승과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을 경험했으며 주전으로 활약한 유로 1988에서는 디 만샤프트가 준결승에 진출하는데 공을 세웠다.
52위 블로디미르 문트얀

생년월일: 1946년 9월 14일
국적: 우크라이나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디나모 키이우
1970년대 소련 축구를 대표하는 플레이메이커로 체구는 작았지만 양발을 모두 잘 썼으며 창의적이면서도 정교한 패싱력과 상대의 수비에 균열을 내는 교묘한 드리블을 황용해 골 찬스를 만들어냈다.
선수 생활을 전부 디나모 키이우에서 보낸 원 클럽맨이었던 문트얀은 소련 탑 리그 7회 우승과 소비에트 컵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4-75 시즌 UEFA 컵 위너스컵과 1975 UEFA 슈퍼컵 우승을 이뤄냈고 문트얀 개인도 소련 탑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7회 선정되었으며 1969년 소련 올해의 선수와 1970 우크라이나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고 1969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23위에 랭크되었다.
소련 대표팀에서도 중용된 문트얀은 UEFA 유로 1968과 UEFA 유로 1972에서는 백업 멤버로 각각 4강 진출 및 준우승을 경험했고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팀의 플레이메이커이자 핵심선수로 활약하며 8강에 올렸다.
51위 유리 보이노우

생년월일: 1931년 11월 29일
국적: 우크라이나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디나모 키이우
1950년대 후반과 60년대 초반에 이름을 날렸던 하프백으로 강력한 스테미너를 활용한 왕성한 활동량과 오른발로 찔러주는 날카로운 중장거리 패스가 일품이었으며 지능적인 수비에도 능해 적절한 타이밍에 인터셉트해 상대의 패스 흐름을 끊어내는 부분에도 능숙했다.
제니트 레닌그라드에서 데뷔해 활약하다가 디나모 키이우로 이적해 전성기를 누린 보이노우는 1961년에 구단 역사상 최초로 소련 탑 리그 우승을 이뤄냈고 1964년 소비에트 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보이노프 개인도 제니트 레닌그라드와 디나모 키이우 소속으로 소련 탑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5회 선정되었다.
1950년대 후반부터 소련 대표팀의 황금기를 이끈 보이노우는 1950년대 하반기 최고의 레프트 하프 이고르 네토와 함께 중원 조합으로 이름을 날렸는데 1958 스웨덴 월드컵 8강과 UEFA 유로 1960의 우승을 이끌었다. 특히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는 일부 매체들로부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전 회차: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 70위~61위
다음 회차: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 50위~41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