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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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위 페르난도 데 나폴리

생년월일: 1964년 3월 15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SSC 나폴리
이름부터가 나폴리의 레전드인 데 나폴리는 1980년대 이탈리아 무대를 대표하는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왕성한 활동량과 우수한 볼 컨트롤 능력과 양발 사용 능력은 물론 상대의 패스 흐름을 끊는 지능적인 인터셉트와 기습적인 공격 가담에 모두 뛰어났다.
나폴리에서 전성기를 누린 데 나폴리는 1986-87 시즌 도메스틱 더블을 포함해 세리에 A 2회 우승과 준우승 2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와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 1회는 물론 이탈리아 밖에서도 1988-89 시즌 UEFA컵 우승을 이뤄냈다. 그러나 AC 밀란으로 이적한 뒤에는 많은 우승 트로피를 따냈지만 주전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데 나폴리는 아주리 군단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쳤는데 1986 멕시코 월드컵과 UEFA 유로 1988, 그리고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바니, 안첼로티 등과 조합해 주전으로 활약했는데 UEFA 유로 1988과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준결승에 오르는 맹활약을 펼쳤다.
79위 파비오 카펠로

생년월일: 1946년 6월 18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현세대의 축구팬들에겐 밀란의 전설적인 감독으로 더 유명하지만 1970년대 이탈리아 무대를 수놓은 후방 플레이메이커로 우수한 전술안과 드넓은 시야와 정확한 판단력에서 나오는 적절한 양발 패스로 경기를 설계하는데 능해 엘 지오메트라, 즉 기하학자라 불렸으며 우수한 볼 컨트롤 능력과 성실한 자기관리 능력으로 이름을 날렸다.
SPAL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카펠로는 AS 로마에서는 1968-69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내 주목받았고 유벤투스에서 세리에 A 3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1972-73 시즌에는 트레블을 노리며 리그 우승은 물론 코파 이탈리아와 유러피언 컵 결승에 오르는 활약을 선보였다.
AC 밀란에선는 1976-77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과 1978-79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내는 등 꾸준한 활약을 보인 카펠로였지만 아주리 군단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는데 1974 서독 월드컵에 참가했는데 카펠로가 수비형 미드필더로 서며 리베라, 마촐라와 동시에 나오는 등 이미 팀 밸런스가 무너진 상황이라 조별 리그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는다.
78위 데얀 스탄코비치

생년월일: 1978년 9월 11일
국적: 세르비아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2000년대 세르비아 축구계가 낳은 최고의 스타플레이어 중 한 명으로 중앙 미드필더와 측면 미드필더, 그리고 트레콰르티스타를 모두 소화하는 우수한 멀티플레이어이자 왕성한 활동량을 보여줬으며 대포 같은 중거리 슈팅 능력을 보유해 팬들에게 드래곤이라 불렸다.
츠르베나 즈베즈다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라치오로 이적한 스탄코비치는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며 1998-99 시즌에는 컵 위너스 컵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 역사상 최초로 유럽 대항전에서 우승했고 여름에는 UEFA 슈퍼컵에서 퍼거슨이 이끌던 지난 시즌 트레블 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승리했으며 1999-2000 시즌에는 세리에 A와 코파 이탈리아를 모두 제패하는 기염을 토했다.
세르비아 대표팀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했고 라치오에서 이적한 인테르에서도 전성기를 이어나간 스탄코비치는 세리에 A 5연패와 코파 이탈리아 4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2009-10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 우승도 이뤄내며 트레블에 일정 부분 공헌했고 2006-07 시즌 ESM 올해의 팀에 올랐으며 2019년에는 팬 투표를 통해 인테르 밀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77위 블라디미르 유고비치

생년월일: 1969년 8월 30일
국적: 세르비아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츠르베나 즈베즈다
1990년대 발칸 반도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미드필더 전 지역에서 모두 뛰어난 기량을 보여줬을 정도로 다재다능했으며 특히 왕성한 활동량과 우아한 볼 컨트롤, 그리고 날카로운 킬패스와 한 방이 있었던 중거리 슈팅으로 이름을 날리며 팬들로부터 유고슬라비아의 지단이라 불렸다.
츠르베나 즈베즈다에서 머무는 동안 1989-90 시즌 도메스틱 더블을 포함해 리그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90-91 시즌에는 구단 역사상 최초로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이듬해에 열린 인터콘티넨탈컵에서는 남미 챔피언 칠레를 상대로 멀티골을 득점해 3-0 완승에 공헌해 1991 인터콘티넨탈컵 MVP를 수상했다. 이탈리아에서도 삼프도리아에서는 코파 이탈리아 우승, 유벤투스에서는 1995-96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및 1996년 UEFA 슈퍼컵과 인터콘티넨탈컵, 그리고 1996-97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고 라치오에서는 코파 이탈리아 우승 및 UEFA컵 준우승을 이뤄냈다.
유고비치는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중원의 핵으로 활약했는데 UEFA 유로 1992에서는 예선에서 통과했지만 내전으로 인해 출전 자격이 박탈되었으며 내전이 종식한 뒤에 1998 프랑스 월드컵과 유로 2000에도 참가해 전자의 대회에서는 16강 진출을, 후자의 대회에서는 8강 진출을 이뤄냈다.
76위 얀 몰비

생년월일: 1963년 7월 4일
국적: 덴마크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92kg
주 소속팀: 리버풀 FC
19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서 이름을 날렸던 덴마크의 중원 사령관으로 비록 스피드는 느렸지만 큰 체구를 바탕으로 한 수비력과 광활한 시야와 정밀도 높은 중장거리 패스로 상대의 허를 찌르며 많은 득점 찬스를 만들어냈는데 리버풀 구단 내에서 자체적으로 선정한 구단 역사상 최초의 패서 랭킹에서 알론소, 제라드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아약스에서 1982-83 시즌 에레데비시와 KNVB컵 더블을 이뤄내며 주목받은 얀 몰비는 리버풀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풋볼 리그 3회 우승 및 FA컵 2회 우승을 이뤄냈다.
덴마크 대표팀 소속으로도 맹활약한 몰비는 UEFA 유로 1984에서 조국을 준결승에 올렸고 1986 멕시코 월드텁에서도 서독, 우루과이, 스코틀랜드라는 강호들을 상대로 전승을 거두는데 공헌했다.
75위 헤어베르트 빔머

생년월일: 1944년 11월 9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1970년대 분데스리가 정상급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평가받았던 선수로 기본기가 뛰어나며 축구 지능이 높아 공수 양면에서 우수한 활약을 펼쳤으며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고 엄청난 활동량으로 유명했으며 팬들 사이에서 'Der Iron Lung' 즉 강철 폐로 불렸다.
선수생활 전부를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보낸 원 클럽맨이자 구단 통산 출전 3위를 기록한 빔머는 분데스리가 5회 우승과 1974-75 시즌 UEFA컵 우승, 그리고 1976-77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에 크게 기여했고 빔머 개인도 1975-76 시즌에는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기도 했다.
디 먄샤프트에서도 UEFA 유로 1972에 주전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서 빠른 패스워크의 람바참바 풋볼을 보여주며 압도적인 우승을 차지하는데 기여하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올랐고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후배 본호프와의 경쟁에서 밀려 백업 멤버로 밀려났으나 유로 1976에서는 본호프와 함께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대회 준우승을 이뤄냈다.
74위 하인츠 플로에

생년월일: 1948년 1월 28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FC 쾰른
1970년대 분데스리가 정상급 플레이메이커로 왕성한 활동량을 앞세워 경기장 곳곳을 누비며 킬패스를 배급해 득점 찬스를 만들었으며 특히 볼 키핑이 우수해 파울을 하지 않고서는 그에게 공을 뺴았는 일은 매우 어려웠다고 전해진다.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쾰른에서 보냈던 플로에는 1977-78 시즌 도메스틱 더블을 포함해 분데스리가 1회 우승과 포칼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플로에 개인도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되었다.
대표팀에서는 귄터 네처, 볼프강 오베라트, 울리 회네스와 같은 선수들로 인해 오랜 기간 백업 역할을 맡았는데 백업 멤버로 1974 서독 월드컵 우승과 UEFA 1976 유로를 경험했으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는 로테이션 멤버로 활약했다.
73위 카르피지아니

생년월일: 1949년 2월 7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SC 인테르나시오나우
1970년대 브라질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중원 사령관으로 높은 수준의 전술안으로 경기의 흐름을 탁월하게 읽어냈으며 정교하면서도 창의적인 숏패스와 롱패스를 적재적소에 사용했으며 위협적인 양발 슈팅 능력과 유려한 볼 컨트롤은 물론 스피드도 빠른데다가 수비력도 뛰어나 신속정확한 예측력과 특유의 센스로 상대의 패스 흐름을 끊고 경기의 주도권을 아군 쪽으로 가져오는 지능적인 수비가 돋보이는 육각형 미드필더였다.
인테르나시오나우와 플라멩구에서 활약한 카르피지아니는 전자의 구단에서는 엘리아스 피게로아와 합을 맞춰 캄페오나투 가우초 2회 우승과 브라질 전국리그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플라멩구로 이적한 뒤에도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2회 우승과 브라질 세리 A 1회 우승을 이뤄내며 화려하게 은퇴했다. 은퇴 직후에 감독으로 임명되어 팀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는 1974 서독 월드컵 명단에 발탁되었는데 원래는 피아짜의 백업 역할을 맡을 예정이었지만 피아짜가 첫 경기에서 부상을 당하자 주전으로 활약하며 팀을 4위로 올렸다.
72위 마누엘 플레이타스 솔리치

생년월일: 1900년 12월 30일
국적: 파라과이
신체조건: 키 190cm / 몸무게 83kg
주 소속팀: 보카 주니어스
1920년대와 30년대에 걸쳐 파라과이 축구를 대표했던 스타플레이어이자 정상급 하프백으로 우수한 볼 테크닉과 정밀도 높은 패싱력을 겸비해 팬들로부터 마법사라 불렸다.
파라과이 클럽인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데뷔해 정규리그 2회 우승을 이뤄냈고 아르헨티나의 보카 주니어스에서도 1930년과 1931년에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시비온 우승에 큰 공을 세웠다.
파라과이 대표팀 소속으로 무려 여섯번이나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했는데 특히 1922년 대회에서는 우루과이를 제치고 결승에 진출했으나 결승 플레이오프에서 브라질에게 대패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71위 호어스트 에켈

생년월일: 1932년 2월 8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65kg
주 소속팀: FC 카이저슬라우테른
1950년대 독일 축구를 대표했던 월드클래스 수준의 하프백으로 드넓은 시야와 안정적인 패싱력, 그리고 왕성한 활동량을 겸비해 팬들로부터 빈트후트, 즉 시각 수렵견이란 별명으로 불렸으며 초년에는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활약하기도 했다.
카이저슬라우테른의 빈트후트는 구단을 위해 상대 공격수를 사냥하며 붉은 악마 군단의 오베리가 주스베스트 7회 우승과 독일 챔피언십 2회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는데 특히 1950-51 시즌에는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출전해 대회 우승은 물론 개인적으로도 7경기 6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에 오르는 등 구단이 마이스터샬레를 추가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 카를 마이와 함께 중원에서 탄탄한 경기력을 선보여 우승에 크게 공헌하며 베른의 기적을 이뤄낸 호어스트 에켈은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도 시마니악과 함께 중원을 구성해 디 만샤프트의 준결승 진출을 이뤄냈다.
이전 회차: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 90위~81위
다음 회차: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 70위~61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