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70위~61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수비형 미드필더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70위~61위

토르난테 2024. 1. 23.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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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의 선수일수록 수상 기회가 적어 수상 횟수에서 불리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70위 알바로 헤스티도

 


생년월일: 1907년 5월 17일
국적: 우루과이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CA 페냐롤

1930년대 남아메리카에서 레프트 하프로 중원에서의 센스 있는 플레이로 팀의 볼 소유를 도왔으며 기술적인 태클로 파울 없이 공만 빼내는 플레이와 상대의 패스 흐름을 끊는 지능적인 플레이로 이름이 높았으며 리더십이 뛰어나고 착실해 페냐롤의 주장으로서 자신의 책임을 다했다고 전해진다.

밀리터리 스쿨에서 공부했던 이력 때문에 엘 테니엔티, 즉 중위라고 불렸지만 페어플레이를 중시했던 헤스티도는 클럽 커리어의 전부를 페냐롤에서만 보냈으며 팀의 주장을 맡아 프리메라 디비시온 7회 우승과 토르네오 콤펜텐시아 2회 우승을 이뤄내며 총 9회 우승을 이뤄냈다.

대표팀에서도 안드라데, 로렌소 페르난데스와 함께 철의 장막이라 불렸던 견고한 하프백 라인을 형성해 활약했는데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 우승을 이뤄내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1930 우루과이 월드컵에서 조국의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해당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69위 로렌소 페르난데스

 


생년월일: 1900년 5월 20일
국적: 우루과이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CA 페냐롤

1930년대 남미 무대에서 명성을 떨친 센터 하프로 알바로 마사지사였던 후안 키르슈버그의 말에 따르면 마치 가로등 기둥을 만지는 느낌이 든다고 했을 정도로 단단한 다리 근력에서 나오는 강력한 수비력과 우수한 발기술과 패스 센스는 물론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성을 유지하는 강력한 멘탈을 겸비했고 공격수로도 좋은 활약을 펼쳤는데 특히 1929년 코파 아메리카 페루전에서는 페드로 세아 대신 인사이드 레프트로 출전해 해트트릭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우루과이 대표팀의 황금기 후반에 활약했던 페르난데스는 로스 차루아스의 유니폼을 입고 코파 아메리카 2회 우승 및 1회 준우승을 이뤄냈고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과 1930 우루과이 월드컵 우승을 이뤄냈다. 소속팀 페냐롤에서는 팀의 주축으로 이름을 날리며 이적한 첫 시즌에 주장 완장을 찼지만 이후 헤스티도에게 넘어갔음에도 아무런 불만 없이 묵묵히 부주장 역할을 수행하며 팀의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5회 우승을 이뤄냈다.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헤스티도, 안드라데와 함께 철의 장막이라 불렸던 견고한 하프백 라인을 형성해 활약했던 로렌소 페르난데스는 평소에 유머 감각이 전혀 없었으며 축구에만 미친 수도자 같은 생활을 했다고 전해지는 로렌소 페르난데스는 그의 사후인 2002년에 우루과이 우정사업본부에서 그를 모델로 한 우표를 제작하기도 했다.

 


68위 세르게이 알레이니코프

 


생년월일: 1961년 11월 7일
국적: 벨라루스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디나모 민스크

1980년대 소련 축구계 정상급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타고난 전술안과 날카로운 시야, 그리고 안정적인 기본기를 바탕으로 수비형 미드필더와 리베로에서 주로 활약했다.

디나모 민스크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1982년 소비에트 탑 리그 우승이라는 기적을 이뤄냈고 알레이니코프 개인도 소비에트 탑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다. 소련이 해체된 뒤에는 이탈리아의 유벤투스에서 활약하며 1989-90 시즌 코파 이탈리아 및 UEFA컵 더블 우승을 이뤄냈고 말년에는 일본의 감바 오사카에서 활약해 J리그의 흥행을 이끌었다.

소련 대표팀에서도 핵심 수비형 미드필더를 맡았던 알레이니코프는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헝가리를 상대로 한 편의 명화와 같은 멋진 중거리 슈팅을 기록했고 UEFA 유로 1988에선 조국의 준우승을 이뤄냈다. 소련이 해체된 이후에는 CIS 및 벨로루시 대표팀에서도 잠시 활약했다. 은퇴한 뒤인 2003년에는 벨라루스 축구협회 선정 근 50년간 최고의 벨라루스 축구선수에 선정되었다.

 

 

67위 나탈리오 페스치아

 


생년월일: 1922년 1월 1일
국적: 아르헨티나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보카 주니어스

1940년대 아르헨티나 무대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170cm도 안 되는 단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더 큰 상대 공격수들을 끈질기게 따라붙으며 막아냈기에 작은 사자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선수 생활을 오직 보카 주니어스 한 구단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 페스치아는 소사, 라자티와 함께 강력한 허리라인을 구성하며 라이벌 리버 플레이트의 전성기 속에서도 제네시스의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2연패를 포함해 7개의 크고 작은 대회에서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중원의 핵심 자원으로 활약한 페스치아는 1945년부터 1947년까지 세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하며 코파 아메리카 3연패를 기록했는데 그중 1946년 대회와 1947년 대회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했다.



66위 지미 딕킨슨

 


생년월일: 1925년 4월 25일
국적: 잉글랜드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포츠머스

194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20년간 잉글랜드 축구계를 풍미한 전설적인 레프트 하프로 스피드와 공중볼, 그리고 볼을 다루는 능력은 평범했지만 강인한 완력과 볼 경합에 대한 집념은 물론 깔끔한 태클과 우수한 위치를 선점하는 능력을 바탕으로 상대 공격수와의 볼 경합에 능했는데 오늘날의 수비형 미드필더에 가까운 하프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 매너가 좋아 단 한 번도 경고를 받거나 퇴장을 당한 적이 없었으며 정정당당하게 볼 경합에서 승리하는 젠틀맨이었다.

포츠머스에서 20년 가까이 활약하며 공식전 828경기에 출전해 10골을 득점한 딕킨슨은 중하위권이었던 포츠머스를 단숨에 상위권으로 올리며 1948-49 시즌과 1949-50 시즌에 잉글랜드 풋볼 리그 2회 연속 우승을 이뤄냈으나 그가 노쇠하자 포츠머스도 강등당했다. 하지만 2부 리그와 3부 리그에 머무는 동안에도 디킨슨은 포츠머스를 떠나지 않았고 포츠머스를 위해 활약했다. 그러다가 1965년에 만 40세의 나이로 결국 은퇴했다.

딕킨슨은 삼사자 군단에서도 주전 레프트 하프로 활약하며 1950 브라질 월드컵과 1954 스위스 월드컵에 참가했으나 큰 재미를 보지는 못했으며 이후에는 던컨 에드워즈에게 밀려나며 대표팀과 멀어진다.



65위 폴 인스

 


생년월일: 1967년 10월 21일
국적: 잉글랜드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90년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흑인 특유의 운동능력에서 나오는 강력한 태클은 물론 우수한 지구력과 빠른 스피드를 활용해 90분 내내 중원을 뛰어다니며 상대 선수들을 괴롭혔으며 중거리 슈팅 능력도 겸비했으며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최초의 흑인 주장이었는데 주장을 역임하던 시절에는 우수한 리더십으로 팀을 아우르며 팬들은 물론 동료들에게도 총독이라 불리며 존경받았다.

상술한 능력을 앞세워 인스는 로이 킨, 스콜스와 함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중원을 구성하며 프리미어리그 2연패를 이뤄냈음은 물론 1990-91 시즌 컵 위너스컵 우승, 그리고 리그컵 우승과 FA컵 우승 2회를 이뤄냈고 인스 개인도 PFA 올해의 선수에 3회 선정되었으나 감독 알렉스 퍼거슨과의 불화로 인테르로 떠났는데 이후 리버풀로 복귀하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삼사자 군단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한 인스는 UEFA 유로 1996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조국의 준결승 진출에 공헌했고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으나 16강 아르헨티나전에서  승부차기의 2번 키커로 나섰는데 형편없이 차는 바람에 실패하고 거센 비난을 받았으나 그가 경기에 끼치는 영향력은 대단해 UEFA 유로 2000에도 주전으로 나섰다.



64위 마르코스 세냐

 


생년월일: 1976년 7월 17일
국적: 스페인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비야레알

브라질 태생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우수한 지구력에서 나오는 드넓은 커버 범위와 헌신적인 수비력으로 원 피보테 역할을 우수하게 소화했으며 수비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안정적인 볼 배급과 유려한 볼 컨트롤도 겸비했다.

2000년대 비야레알의 약진을 이끈 마르코스 세냐는 2005-06 시즌에는 구단 역사상 최초로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 진출시켰으며 2007-08 시즌에는 바르셀로나를 제치고 라리가 준우승을 이뤄냈다. 그 과정에서 세냐 본인도 2007-08 시즌 라리가 올해의 스페인 선수상을 수상했고 2008-09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8강에 올랐다.

세나는 브라질 대표팀에서 외면받자 스페인으로 귀화해 아르마다 군단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는데 2006 독일 월드텁에서는 백업으로 나섰으나 유로 2008에서는 주전으로 챠비, 이니에스타와 연계해 조국의 유로 우승을 이끌며 대회 올스타 스쿼드에 선정되었고 그 해 발롱도르 투표에서 11위에 올랐다.



63위 호세 벨라스케스

 


생년월일: 1952년 6월 4일
국적: 페루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알리안사 리마

1970년대 남미축구계를 호령한 정상급 수비형 미드필더로 물불을 가리지 않는 저돌적인 태클, 거침없는 공격가담은 물론 빌드업 과정에서도 큰 역할을 하며 그라운드의 사령관적 기질이 강해 사람들로부터 엘 파트론, 즉 두목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알리안시 리마의 전성기를 이끈 벨라스케스는 소속팀의 정규리그 3회 우승을 이뤄냈고 이후에는 콜롬비아의 인데펜디엔테 메데인, 북미 사커 리그의 토론토 블리자드, 그리고 스페인의 에르쿨레스에서도 활약했다.

페루 대표팀에서도 중원 사령관을 맡아 공격진의 사령관 테오필로 쿠비야스, 수비진의 사령관 엑토르 춤피타스와 함께 1975 코파 아메리카 우승 및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2차 조별리그 진출이라는 성과를 냈다.



62위 프랑키 반 데르 엘스트

 


생년월일: 1961년 4월 30일
국적: 벨기에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클뤼프 브뤼허

19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 활약하며 강인한 정신력을 지닌 유럽 정상급 수비형 미드필더로 이름을 날렸으며 저돌적이고 거친 수비를 앞세워 상대 공격수와의 경합에서 이겨냈으며 날카로운 슬라이딩 태클로 상대에게 볼을 탈취한 뒤에 안정적인 패싱력으로 볼을 배급하는 부분에서도 출중했으며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아군의 빈 수비라인을 커버했다.

클뤼프 브뤼허에서 전성기를 누린 반 데르 엘스트는 얀 쾰레만스, 대니 벌린덴과 함께 벨기에 주필러리가 5회 우승, 벨기에컵 4회 우승 및 벨기에 슈퍼컵 8회; 우승을 이뤄내며 클뤼프 브뤼허를 안더레흐트에 견줄 수 있는 클럽으로 만들었고 반 데르 엘스트 개인도 벨기에 리그 MVP격인 벨기에 골든슈에 2회 선정되었다.

벨기에 대표팀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반 데르 엘스트는 무려 네 번의 월드컵에 참가했는데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백업 멤버로 조국의 준결승행을 경험했으며 이후 1990년대에는 세 번의 월드컵에 모두 주전으로 참가해 1990 이탈리아 월드컵과 1994 미국 월드컵에서 조국의 토너먼트 진출을 이뤄냈다. 그는 은퇴한 뒤에 2004년에 펠레가 선정한 FIFA 100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61위 마르첼로 브로조비치

 


생년월일: 1992년 11월 16일
국적: 크로아티아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현세대 세계 정상급 수비형 미드필더로 평가받는 선수로 경기당 12km를 뛰는 왕성한 활동량은 물론 우수한 포지셔닝을 통해 역습을 전개하기 좋은 위치로 가서 드넓은 시야에서 나오는 우수한 전진 패스를 토대로 팀의 빌드업을 주도하는 후방 플레이메이커로 빌드업은 물론 수비적인 부분에서도 세리에에서 가장 높은 태클 성공률을 보여줬다.

인테르 밀란에서 전성기를 누린 브로조비치는 암흑기 시절에는 좋지 못한 활약으로 비판받았지만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옮긴 뒤에는 리그 정상급 자원으로 활약하며 2019-20 시즌 UEFA 유로파리그 준우승, 2020-21 시즌 세리에 A 우승 및 2021-22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고 2022-23 시즌에는 13년 만에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진출하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브로조비치 개인도 2019-20 시즌 UEFA 유로파 리그 시즌의 스쿼드 및 2021-22 시즌 세리에 A 최우수 미드필더와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크로아티아 대표팀에서도 2014 브라질 월드컵에 데뷔했으며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엄청난 활동량으로 모드리치와 라키티치를 지원하고 포백을 보호해내며 바트레니 군단의 준우승에 크게 기여했고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모드리치와 함께 출중한 활약을 펼치며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조국이 3위에 오르는데 큰 공을 세우며 대회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이전 회차: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80위~71위

다음 회차: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60위~5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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