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백 70위~61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레프트백

축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백 70위~61위

토르난테 2024. 1. 16.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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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70위 앙겔루 마르틴스

 


생년월일: 1930년 4월 19일
국적: 포르투갈
신체조건: 키 181cm
주 소속팀: SL 벤피카

1950년대와 60년대 포르투갈 무대에서 활약한 다재다능한 수비수로 강철 같은 스테미너에서 나오는 넓은 수비 커버 범위를 자랑했으며 축구 지능도 높아 레프트백 이외에도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에서도 준수한 모습을 보여줬다.

선수 생활 전부를 벤피카에서 보낸 원 클럽맨 마르틴스는 소속팀의 프리메이라 리가 7회 우승과 타사 데 포르투갈 5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유럽 무대에서도 유러피언 컵 2연패를 이뤄내며 벤피카를 유럽의 왕좌에 올렸다.



69위 호르헤 카라스코사

 


생년월일: 1948년 8월 15일
국적: 아르헨티나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5kg
주 소속팀: CA 우라칸

1970년대 아르헨티나 최고의 레프트백으로 빠른 스피드에서 나오는 번뜩이는 드리블과 거친 수비 스타일을 겸비해 늑대라고 불렸다.

우승과는 거리가 먼 로사리오 센트랄과 우라칸에서 활약했음에도 전자의 클럽에서는 1971 시즌 후기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후자의 클럽에서는 1973 시즌 전기리그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새우며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카라스코사는 1974 서독 월드컵에 참가해 조국의 8강 2차 조별 리그 진출을 경험했으며 페르푸모가 은퇴한 뒤 주장직을 수행했으나 호르헤 비델라의 군사독재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을 1년 앞두고 주장직을 사임하는 동시에 대표팀 은퇴를 했다.

 


68위 콜로만 괴흐

 


생년월일: 1948년 1월 7일
국적: 슬로바키아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슬로반 브라티슬라바

1970년대 동구권 최고의 레프트백으로 빠른 발과 날카로운 오버래핑으로 이름을 날렸는데 특히 반대쪽의 얀 피바르닉과의 콤비 플레이는 악명이 높았다.

슬로반 브라티슬라바에서는 라이트백 얀 피바르닉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이드백 듀오를 구성하며 체코슬로바키아 리그 2회 우승 및 1973-74 시즌에는 체코슬로바키아 컵 우승을 차지했다.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에서의 활약도 대단한 괴흐는 UEFA 유로 1976에서는 우승을 차지하는 과정에서 전 경기에 선발 출전해 프랑스의 옹즈 몽디알이 선정한 유럽 최우수 레프트백 3위에 선정되었고 UEFA 유로 1980에서도 전경기 선발 풀타임 출장의 기록을 이어나가며 조국이 4위에 오르는데 공헌했다.

 


67위 에릭 칼도우

 


생년월일: 1934년 5월 14일
국적: 스코틀랜드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66kg
주 소속팀: 레인저스 FC

재규어라고 불렸던 1960년대 스코틀랜드 무대에서 군림했던 사이드백으로 양 발을 모두 잘 써 레프트백과 라이트백을 동일한 수준으로 소화할 수 있었고 당대 유럽 정상급 윙어였던 지미 존스톤과 프란시스코 헨토에 의해 세상에서 가장 빠른 수비수라 묘사되었을 정도로 스피드가 빨랐고 영국에서는 최초로 공격에 가담했다.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레인저스에서 보낸 칼도우는 정규리그 6회 우승 및 스코티시 컵 5회 우승, 리그컵 4회 우승과 같은 업적을 이뤄냈고 1961년에는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 결승에 진출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스코틀랜드 대표팀 소속으로도 A매치 40경기에 출전했다.

 


66위 노로냐

 


생년월일: 1918년 9월 25일
A매치 기록: 16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상 파울루

1940년대 상 파울루의 약진을 이끌었던 위대한 주장으로 주 포지션은 2-3-5 시스템의 레프트 하프로 오늘날의 레프트백과 왼쪽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을 동시에 수행했다고 전해지는데 왕성한 활동량으로 경기장의 왼쪽을 지배했으며 우수한 대인 수비 능력과 숏패스와 롱패스를 적절하게 구사하며 빌드업 과정에서도 큰 역할을 했다.

상 파울루의 레프트 하프 노로냐는 바우어, 후이 캄포스와 함께 룰러라고 불렸던 하프백 라인으로 명성을 떨쳤는데 중원에서 유기적인 플레이로 공격진을 효과적으로 지원하며 트리컬러 파울리스타의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5회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특히 두목이라고 불렸을 정도로 리더십이 대단해 팀에 쓴소리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잠긴 목소리로 팀원들을 훈계했던 노로냐는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1949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뤄내며 브라질 축구계의 발전에 큰 공을 세웠으나 조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는 백업 멤버로 마라카냥의 비극을 겪기도 했다.



65위 알폰소 도밍게스

 


생년월일: 1965년 9월 24일
국적: 우루과이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CA 페냐롤

도마뱀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1980년대 후반 남아메리카 프로축구 무대 최고의 레프트백 중 한 명으로 공수 양면을 아우르는 엄청난 활동량으로 명성을 날렸지만 기본적으로 날카로운 오버래핑으로 측면에서 활로를 뚫었으며 양발을 모두 잘 썼기에 측면에 머물면서 왼발로 크로스를 올리거나 중앙으로 침투해 오른발로 직접 강력한 슈팅을 날려 득점을 노릴 수도 있었다.

자국리그의 양대산맥 페냐롤과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모두 뛰어난 활약을 펼쳤던 알폰소 도밍게스는 특히 페냐롤에서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2연패를 이뤄냈고 1987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다섯 번째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컵을 드는데 큰 공을 세웠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사도 주전으로 활약한 도밍게스는 1987 코파 아메리카 우승과 1989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을 이뤄내며 엘 파이스가 뽑은 남아메리카 올해의 팀에 3회 연속으로 선정되었으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16강 진출에 공을 세웠다.



64위 알폰소 데이비스

 


생년월일: 2000년 11월 2일
국적: 캐나다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5kg
현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2010년대 후반 캐나다 축구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월드클래스 레프트백으로 빠른 스피드를 앞세운 저돌적인 드리블을 앞세워 상대방 오른쪽 진영을 초토화시켰고 크로스의 질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절륜한 컷백 플레이를 통해 찬스를 만드는데 능했다.

밴쿠버 화이트캡스에서는 레프트윙으로 활약하며 북미 메이저 리그 사커 무대를 폭격하며 두각을 나타내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했고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뤼카 에르난데스의 장기부상으로 알라바가 센터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함에 따라 레프트백으로 변경했는데 압도적인 활약상을 펼치며 2019-20 시즌 트레블 및 6관왕을 포함해 분데스리가 5연패를 이뤄냈으며 데이비스 개인도 2019-20 시즌 분데스리가 올해의 루키에 포함되었고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다.

캐나다 대표팀에서도 만 16세의 어린 나이 때부터 A 대표팀의 주축으로 활약하며 2017 CONCACAF 골드컵 미국에서 뛰어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득점왕과 신인상, 그리고 대회 베스트 일레븐을 모두 석권했고 2022 카타르 월드컵에도 참가했다. 데이비스는 캐나다 올해의 선수 4회 선정, CONCACAF 올해의 선수 2회 선정 및 IFFHS 월드팀에 4회 선정되었다.



63위 주앙 칸셀루

 


생년월일: 1994년 5월 27일
국적: 포르투갈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

2020년대 초반 알폰소 데이비스, 앤드류 로버트슨과 함께 유럽무대를 삼분한 레프트백으로 본래 라이트백이었지만 명장 펩 과르디올라에 의해 레프트백으로 포지션을 옮긴 뒤에는 사이드백이면서도 드리블과 패싱력에 모두 뛰어나 중원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특히 파이널서드로 볼을 운반하는 능력은 사이드백에서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영향력이 커 하프백의 부활 및 실질적인 플레이메이커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벤피카와 발렌시아를 거쳐 인테르 임대시절에 처음 두각을 나타내며 세리에 A 올해의 팀에 선정된 칸셀루는 인테르가 재정난으로 그를 영입하지 못하자 유벤투스로 이적해 활약해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내며 다시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나 신임 감독 마우리치오 사리와의 갈등으로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해 활약하며 리그컵 2연패와 프리미어리그 2연패를 이뤄냈다. 그러나 2022-23 시즌 겨울 이적시장에서 펩 과르디올라와도 마찰을 빚으며 바이에른 뮌헨으로 임대를 떠났고 칸셀루가 떠나자 펩의 맨체스터 시티는 트레블을 이뤄냈다.

ESM 올해의 팀과 PFA 올해의 팀에 2년 연속으로 선정된 칸셀루는 포르투갈 대표팀에서는 중용되지 못했는데 2017-18 시즌에는 인테르에서의 좋은 활약을 펼쳤음에도 선발조차 되지 못했고 UEFA 네이션스 리그에서도 백업으로 우승을 경험했다. 주전 자리를 차지한 UEFA 유로 2020에서는 코로나로 인해 합류가 좌절되었다.



62위 아우타이르

 


생년월일: 1938년 1월 22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59kg
주 소속팀: 플루미넨시

1960년대 브라질 무대에서 가린샤의 천적으로 이름을 날린 레프트백으로 오른발잡이였지만 주로 레프트백으로 뛰었고 키가 작고 마른 체구였지만 그의 태클은 상대 공격수를 거의 벗어나지 않으며 능숙한 대인 수비를 보였는데 이런 탄탄한 수비력을 높게 평가받아 센터백을 보기도 했다.

선수 생활 전부를 플루미넨시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 아우타이르는 비록 보타포구의 전성기에 밀려나는 와중에도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3회 우승, 토르네이오 리우상파울루와 타사 과나바라 2회 우승을 이뤄내며 니우통 산투스 다음가는 레프트백으로 평가받았다. 브라질 대표팀 소속으로도 백업 멤버로 베르나르도 오히긴스컵 3연패 및 1962 칠레 월드컵 우승을 경험했으나 주전으로 활약한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61위 에베라우두

 


생년월일: 1944년 9월 11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그레미우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 브라질 무대 정상급 레프트백으로 활약했는데 화려하진 않았지만 신속정확한 판단력을 바탕으로 상대의 공격을 정확하게 예측한 뒤 강력한 태클을 앞세워 상대를 제압했다.

히우그란지두술주의 명문 그레미우에서 전성기를 보낸 에베라우두는 캄페오나투 가우슈 4회 우승을 이뤄냈고 1970년에는 플라카르가 선정한 전국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올랐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는 1970 멕시코 월드컵에 주전으로 참가했는데 반대편에 아우베르투가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한 것과는 대조되게 후방에서 수비적으로 플레이하며 밸런스를 유지하며 전승우승에 공헌했다. 그러나 1974년에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비운의 선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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