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백 60위~51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라이트백

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백 60위~51위

토르난테 2024. 1. 9.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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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 작성자 개인의 주관이 강하게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설득하셔도 바꿀 생각 없습니다.

* 과거 버전과는 대폭 수정되었습니다. 관점이 바뀐 부분도 있고 가진 자료가 그때보다 많아졌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 과거의 선수일수록 수상 기회가 적어 수상 횟수에서 불리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60위 세사르 아스필리쿠에타

 


생년월일: 1989년 8월 28일
국적: 스페인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첼시 FC

첼시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주장으로 우수한 신체 능력과 뛰어난 축구 지능을 겸비했고 공격력과 수비력을 겸비한 다재다능한 강점 덕분에 수비지역 전 포지션에서 활약할 수 있는 멀티 자원이다.

오사수나에서 처음 이름을 날렸으며 마르세유에서는 2011-12 시즌 쿠프 드 프랑스 우승을 이뤄냈으며 첼시로 이적한 뒤에 전성기를 누리며 프리미어리그 2회 우승과 2014-15 시즌 리그컵 우승 및 2017-18 시즌 FA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유럽 무대에서도 유로파리그 2회 우승에 이어 2020-21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내며 외국인임에도 주장으로 빅 이어를 들어올렸으며 개인적으로도 2013-14 시즌에는 첼시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 받았으며 2020-21 시즌에는 UEFA 올해의 수비수 2위에 올랐고 챔피언스리그 올해의 스쿼드를 수상했으며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들었다.

아스필리쿠에타는 간발의 차이로 메이저 대회 3연패의 황금기를 겪지 못했지만 그 시대가 끝난 이후 아르벨로아를 밀어내고 주전 자리를 차지해 2014 브라질 월드컵에 참가했으나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굴욕을 겪었으며 이후에는 후안프란과 다니 카르바할과의 주전경쟁에서 밀려났다.



59위 단 페트레스쿠

 


생년월일: 1967년 12월 22일
국적: 루마니아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첼시 FC

현재는 전북 현대의 감독으로 유명하지만 1990년대 루마니아의 전성기를 이끈 라이트백으로도 유명했던 페트레스쿠는 기본적으로 라이트윙을 볼 수 있었을 정도로 공격력이 돋보였는데 폭발적인 오버래핑으로 공격에 가담한 뒤 날카로운 오른발 크로스로 득점 찬스를 만드데 능했음은 물론 견고한 대인 수비 능력까지 겸비했다.

루마니아의 명문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의 1988-89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 및 정규리그 3회 우승을 이뤄냈고 이탈리아의 여러 클럽을 거쳐 잉글랜드의 첼시로 이적해 전성기를 맞아 1996-97 시즌 FA컵 우승 및 1997-98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냈다.

2003년에 선정한 프리미어리그 창립 10주년 기념 지난 10년간 EPL 외국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된 단 페트레스쿠는 루마니아 대표팀에서도 핵심으로 활약하며 1994 미국 월드컵 4강, 1998 프랑스 월드컵 16강 및 유로 2000 8강 진출이라는 업적을 세웠다.

 


58위 샌디 저딘

 


생년월일: 1948년 12월 31일
국적: 스코틀랜드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레인저스 FC

1970년대 유럽 정상급 라이트백으로 공수 양면에서 밸런스가 뛰어났는데 쉽사리 뚫리지 않았던 견고한 대인 수비력은 물론 폭발적인 오버래핑으로 상대의 허를 찌르는 공격 가담으로 유명했다.

레인저스에서 전성기룰 누린 저딘은 1971-72 시즌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낸 것을 시작으로 정규리그 3회 우승 및 스코티시컵과 리그컵을 각각 5회 우승했다. 저딘 개인도 레인저스에서 1974-75 시즌 스코틀랜드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다.

스코틀랜드 대표팀 소속으로도 1974 서독 월드컵과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활약했던 저딘은 말년에는 2부 리그에 있던 하츠를 1부 리그로 올렸는데 하츠에서는 1985-86 시즌에 스코틀랜드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다.

 


57위 크리스티안 파누치

 


생년월일: 1973년 4월 12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AS 로마

1990년대와 2000년대 이탈리아에서 활약한 명 수비수로 공격보다는 수비에 강점이 있었으며 안정적인 볼 키핑과 압도적인 제공권 경합 능력을 자랑했으며 수비라인 전 포지션에서 활약할 수 있었다.

제노아에서 데뷔해 카펠로 체제의 AC 밀란에서 타소티의 장기적인 대체자로 영입되며 1993-94 시즌 세리에 A와 UEFA 챔피언스리그 더블을 이끌었고 1994-95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1995-96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끌어낸 파누치는 은사 카펠로를 따라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해서도 1996-97 시즌 라 리가 우승을 이뤄냈으며 카펠로가 떠나고 하인케스가 부임했을 때에도 팀에 남아 1997-98 시즌 레알 마드리드의 32년 만에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내는데 한 팔 힘을 보탰으나 이후 인테르와 모나코에서는 좋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AS 로마에서 화려하게 부활해 잘로로시 군단의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과 2007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에서 인테르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활약을 펼쳤고 2007-08 시즌에는 개인적으로도 ESM 올해의 팀에 들었다. 그러나 AS 로마 전력의 한계로 세리에 A에서는 유벤투스와 인테르의 강세에 밀려 준우승만 다섯 번을 기록하는 아쉬움을 겪었다. 아주리 군단에서의 활약은 다소 아쉬운데 준주전급으로 활약하며 2002 한일 월드컵에 나섰으나 16강에서 대한민국에게 연장 혈투 끝에 역전패를 당하며 탈락했고 유로 2004와 유로 2008에서도 별다른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56위 안토넬로 쿠쿠레두

 


생년월일: 1949년 10월 4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1970년대 하반기에 활약한 수비수로 건실한 지구력과 뛰어난 대인 수비 능력, 그리고 라이트백과 스토퍼, 수비형 미드필더는 물론 윙어까지 다양한 포지션에서 뛸 수 있었던 멀티플레이어였다.

트라파토니 체제에의 유벤투스에서 구단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이끌며 세리에 A 6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6-77 시즌에는 UEFA컵에서 빌바오를 꺾고 우승하며 구단 역사상 첫 유럽 대항전 트로피를 들어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다만 아주리 군단에서는 젠틸레, 카브리니에게 밀려 주로 백업으로 활약했으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도 백업으로 나섰다.



55위 제라르 장비옹

 


생년월일: 1953년 8월 21일
국적: 프랑스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셍테티엔

카리브해의 섬 마르티니크 태생의 풀백으로 우수한 운동능력과 강력한 체력을 바탕으로 집요한 대인 수비 능력을 보여주며 케르베로스라고 불렸으며 탄탄한 기본기와 우수한 축구 지능도 겸비해 레프트백과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도 소화할 수 있었다.

1970년대 셍테티엔의 구단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이끈 장비옹은 구단의 리그앙 4회 우승과 쿠프 드 프랑스 3회 우승은 물론 1975-76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결승에 진출하는데 한 팔 힘을 보태며 1976년과 1977년에 발롱도르 투표에서 유효표를 받았다.

장비옹은 레 블뢰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 참여했으며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괴물 신인 아모로스에게 밀려 백업으로 준결승 진출을 경험했다.



54위 파블로 포를란

 


생년월일: 1945년 7월 14일
국적: 우루과이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CA 페냐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골든볼을 수상한 디에고 포를란의 아버지이자 1960년대 남미 무대를 호령하던 수비수로 험상궂은 외모와는 다르게 세련되고 깔끔하며 매너 있는 수비 스타일을 보여주며 팬들로부터 좋은 해골바가지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주 포지션인 라이트백 이외에도 수비형 미드필더와 센터백으로 출전해도 제 몫을 다했다.

자국리그의 페냐롤과 브라질의 상 파울루에서 전성기를 보낸 포를란은 전자의 구단에서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4회 우승을 시작으로 1966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및 인터콘티넨탈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1969년에는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스 슈퍼컵 우승을 이뤄내며 황금기의 피날레를 장식했으며 1970년 상 파울루로 이적한 뒤에도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3회 우승을 이뤄냈다.

페냐롤과 상 파울루에서의 탄탄한 입지와는 반대로 대표팀에서는 또 다른 뛰어난 라이트백 루이스 우비냐와의 치열한 주전 경쟁을 벌였는데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주전에서 밀렸지만 1967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우비냐 대신 주전으로 나와 조국의 우승을 이끌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명단에 탈락하는 시련을 겪었으나 브라질 무대에서의 우수한 활약으로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주전으로 참가했다.



53위 조니 카레이

 


생년월일: 1919년 2월 23일
국적: 아일랜드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제2차 세계대전 전후에 활약했던 아일랜드 출신 라이트 풀백으로 당대 최고의 수비력을 갖춘 라이트백으로 평가받았으며 그 외에도 아웃사이드 레프트를 제외한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을 만큼 축구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멀티플레이어였다.

버스비 체제 초기의 수비의 중핵이자 주장으로 활약하며 1948 FA컵 우승과 1951-52 시즌 풋볼 리그 우승에 공헌했고 1949년에는 FWA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공백기만 아니었어도 훨씬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선수였다.



52위 카를 도비아슈

 


생년월일: 1947년 12월 18일
국적: 슬로바키아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스파르타크 트르나바

1970년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명성을 떨쳤던 라이트백이자 수비형 미드필더로 왕성한 활동량과 적절한 타이밍에 들어오는 오버래핑을 활용해 공격의 활로를 개척했으며 우수한 신체능력을 활용하는 수비적인 부분의 재능 또한 가지고 있었다.

스파르타크 트르나바에서 전성기를 누린 도비아슈는 체코슬로바키아 리그 5회 우승 및 컵대회 3회 우승을 이뤄냈고 1970년과 1971년에는 체코슬로바키아 올해의 선수에 2회 선정되었다.

체코슬라바키아 대표팀에서도 맹활약했던 도비아슈는 1970 멕시코 월드컵에 데뷔했으며 UEFA 유로 1976에서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하며 크루이프의 네덜란드와 베켄바우어의 서독을 꺾고 조국에게 우승컵을 선물했고 UEFA 유로 1980에서도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는데 공헌했다.



51위 엔리케 울프

 


생년월일: 1949년 2월 21일
국적: 아르헨티나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라싱 클루브


1970년대에 아르헨티나 무대와 스페인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테크니션 풀백으로 수비수였음에도 볼 다루는 기술이 매우 우수했으며 양발 모두를 사용해 정확한 크로스를 날렸으며 양발 사용 능력을 앞세워 주 포지션인 라이트백 이외에도 레프트백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보여줬으며 뛰어난 테크닉과 높은 수준의 축구 지능을 앞세워 리베로와 수비형 미드필더, 그리고 중앙 미드필더까지 막힘없이 소화했다.

라싱 클루브에서 이름을 날린 뒤 리버 플레이트를 거쳐 스페인의 라스 팔마스에서 활약하며 전성기를 누린 활약을 인정받아 1977-78 시즌 여름 이적시장에서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고 활약했으며 마드리드에서 라리가 2연패를 이뤄냈다.

스페인으로 건너가기 이전에는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하며 1974 서독 월드컵에 참가했으며 조국의 8강 2차 조별리그 진출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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