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Top 10

포지션별 역대 TOP 100/센터백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Top 10

토르난테 2024. 1. 6. 16:55
728x90
728x90

주의사항

* 작성자 개인의 주관이 강하게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설득하셔도 바꿀 생각 없습니다.

* 과거 버전과는 대폭 수정되었습니다. 관점이 바뀐 부분도 있고 가진 자료가 그때보다 많아졌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 과거의 선수일수록 수상 기회가 적어 수상 횟수에서 불리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10위 알레산드로 네스타

 


생년월일: 1976년 3월 19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SS 라치오

'아트 디펜더'

우아하고 지능적인 수비수로 아름다우면서도 실용적인 태클과 뛰어난 수비 지능으로 유리한 위치를 먼저 선점하며 상대방의 슈팅 각도를 좁혔으며 빌드업 능력도 뛰어난 우아한 수비수였다.

라치오에서 데뷔한 네스타는 비안코세레스티 군단에서 1997-98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시작으로 1998-99 시즌에는 컵 위너스 컵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 역사상 최초로 유럽 대항전에서 우승했으며 여름에는 UEFA 슈퍼컵에서 퍼거슨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승리했으며 1999-2000 시즌에는 세리에 A와 코파 이탈리아를 모두 제패하며 자타공인 리그 최고의 수비수로 군림했고 AC 밀란으로 이적한 뒤에도 세리에 A와 UEFA 챔피언스리그를 각각 2회 우승했으며 2002-03 시즌에는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내기도 했다.

다만 네스타는 아주리에서는 국가대항전 도중 부상으로 자주 낙마하는 등 운이 나쁜 편이었는데 그럼에도 UEFA 유로 2000에서는 칸나바로와 함께 짠물 수비의 진수를 보여주며 팀을 결승에 올리며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으며 대회 도중 부상으로 이탈했지만 2006 독일 월드컵에서도 우승 메달을 목에 걸었다.

라치오 시절에 1998년 세리에 A 올해의 영 플레이어에 선정되었고 2000-01 시즌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된 네스타는 세리에 A 올해의 수비수에 2000년부터 2003년까지 4년 연속으로 선정되었으며 UEFA 올해의 팀에 4회 선정되었고 2000년에는 라치오에서의 도메스틱 더블과 유로에서 팀을 결승에 올려놓은 1등 공신으로 인정받아 발롱도르 투표에서 5위에 올랐다.



9위 세르히오 라모스

 


생년월일: 1986년 3월 30일
국적: 스페인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장군'

스페인 역대 최고의 수비수를 넘어 21세기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로 평가받는 선수로 넓은 수비 커버 범위로 측면 수비수가 오버래핑한 자리를 지키며 빠른 스피드까지 지녔으며 특히 중요한 순간에는 뛰어난 헤딩 능력을 활용한 득점력이 일품이었다.

그가 레알 마드리드에서 이룬 성과는 경이로운 수준을 넘어서는데 2010년대 수비수에 관련된 상을 모조리 휩쓸었으며 레알 마드리드에서 이룬 팀 커리어도 라리가 5회 우승과 UEFA 챔피언스리그 4회 우승을 기록했음은 물론 그 과정에서도 두 번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헤딩 득점을 했을 정도로 중요한 경기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아르마다 군단에서도 시대를 대표하는 센터백다운 퍼포먼스를 보여준 세르히오 라모스는 스페인 국가대표팀에서도 2006 독일 월드컵에 처음 스쿼드에 들었으며 이후 주전으로 도약한 뒤에는 유로 2008, 2010 남아공 월드컵, 유로 2012를 모두 석권하며 메이저 대회 3연패를 이뤄냈으며 이후에도 2018 러시아 월드컵 때까지는 주전으로 활약했고 A매치 180경기에 나서며 스페인 대표팀 통산 A매치 최다 출전자의 반열에 오른다.

2010년대 최고의 수비수답게 상복도 대단했던 라모스는 클럽에서는 UEFA 올해의 팀 9회 선정, 라리가 올해의 수비수 5회 수상, 챔피언스리그 올해의 스쿼드와 ESM 올해의 팀 각 4회 선정, 그리고 UEFA 올해의 수비수 2회 수상이라는 화려한 커리어를 자랑했고 대표팀에서도 2010 남아공 월드컵 드림팀과 2012 UEFA 유로 올스타 스쿼드에 포함되며 스페인 대표팀의 메이저 대회 3연패의 핵심 멤버 중 하나로 명성을 날렸다.

 


8위 로날드 쿠만

 


생년월일: 1963년 3월 21일
국적: 네덜란드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득점왕 수비수'

골 넣는 수비수로 유명했던 수비수로 다수의 시즌 동안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던 리베로로 기본적인 수비 능력부터 우수한 빌드업 능력과 강력한 킥력을 활용한 득점력과 찬스 메이킹에 능한 공격형 수비수였다.

아인트호벤과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보냈는데 전자의 클럽에서는 1988년에는 네덜란드 리그에서 무려 21골이나 득점해 수비수임에도 득점 3위에 올랐으며 아인트호벤의 트레블과 네덜란드의 유로 우승을 동시에 이뤄냈고 바르셀로나에서는 라리가 4연패를 이뤄냈음은 물론 1991-92 시즌에는 마지막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냈는데 그 유러피언 컵 결승전에서 연장전에 삼프도리아를 상대로 기가 막힌 프리킥을 직접 득점했다. 발롱도르 탑 20 안에 세 번이나 들었으며 10 시즌 연속 시즌 공식전 두 자릿수 골을 기록했고 특히 1993-94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에서 공동 득점왕에 올랐다.

대표팀에서도 리베로를 맡아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쿠만은 오랑예 군단의 유니폼을 입고 두 차례의 유럽 선수권 대회와 월드컵에 참가했으며 특히 UEFA 유로 88에서는 팀의 우승을 이끌었으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도 선정되었고 클럽에서의 트레블과 더해 쿠만은 1988년에 발롱도르 투표에서 5위를 차지하는 저력을 보여줬으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과 1994 미국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다.

 


7위 마티아스 잠머

 


생년월일: 1967년 9월 5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마지막 리베로'

마지막 리베로라 불리는 사나이로 스리백 시스템에서 오프사이드 트랩은 불가능하다는 세간의 편견을 깨며 스리 백 시스템에서도 오프사이드 트랩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축구 지능과 수비 조율 능력을 가진 선수였다.

전성기는 짧지만 그 고점은 가히 베켄바우어 다음가는 선수였던 잠머는 히츠펠트 체제의 도르트문트에서 분데스리가와 DFL슈퍼컵 2연패를 이뤄냈으며 1996-97 시즌에는 유벤투스를 꺾고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동독 대표팀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활약하다 통일 이후에는 수비형 미드필더를 거쳐 리베로로 활약했던 잠머는 리베로로 활약한 UEFA 유로에 1996에서 대표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여 녹슨 전차군단이라 조롱받았던 독일을 우승으로 이끌며 대회 MVP를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으나 이후 1998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큰 부상을 당해 은퇴하면서 독일 축구는 한동안 암흑기를 겪었다.

잠머는 분데스리가에서의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1995년 독일 올해의 선수와 발롱도르 9위에 올랐으며 1996년에는 디 만샤프트의 앙리 들로네를 드는데 크게 기여해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초신성 호나우두를 간신히 따돌리고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6위 바비 무어

 


생년월일: 1941년 4월 12일
국적: 잉글랜드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종가의 상징'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이자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 빼어나면서 안정적인 수비력은 기본이고 강력한 카리스마에서 나오는 리더십과 뛰어난 롱 패스를 활용한 플레이메이킹 능력, 타고난 전술안 등 수비수로서 필요한 덕목은 모두 가지고 있었는데 특히 리더십에 관해 클럽과 대표팀의 동료였던 제프 허스트의 말에 의하면 "그는 마구 소리를 지르고 고함치는 주장이 아니었다. 내가 기억하기로, 그는 누군가에게 한 쪽 눈썹을 들어올려 보이는 것만으로도 그의 플레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었다."라고 헌사했다.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공식전 647경기에 나선 바비 무어는 1963-64 시즌 FA컵 우승과 1964-65 시즌 유러피언 컵 위너스 컵 우승을 이끌며 웨스트햄 역사상 가장 찬란했던 시기를 보내는 부분에서 큰 공을 세웠는데 구단측에서는 그의 등번호 6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실제로 바비 무어 사후 이탈리아의 수비수 안젤로 오그본나가 웨스트햄에 입단했을 때 "내가 이 클럽에 입단했을 때, 나는 그가 클럽과 국가대표팀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장면들은 그의 태클 실력 말고도 많은 것을 말해준다. 그는 공 앞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팀에 걸맞은 리더이며, 아주 훌륭한 선수였다."라고 헌사했을 정도로 구단을 대표하는 전설이었다.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도 1966 잉글랜드 월드컵의 우승과 UEFA 유로 1968 3위를 기록하는 등, 무어가 주장으로 이끌던 시절의 잉글랜드는 다른 시대와는 달리 매우 잘 나갔는데 그가 대표팀에서 물러나자 잉글랜드 대표팀은 일시적으로 몰락했을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컸는데 오죽하면 대표팀 감독이었던 알프 램지는 "나의 주장, 나의 리더, 나의 오른팔. 그는 우리 팀의 기운이자 우리 팀의 심장이었다. 내 인생을 걸어도 괜찮을, 멋지고 계산적인 축구 선수이다. 그는 내가 일해 본 사람들 중에서도 완벽한 프로였다. 그가 없었다면 잉글랜드는 우승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단순한 팀 주장이 아니다. 그는 모두의 주장이다."라고 헌사했을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뛰어났다.

퍼거슨에 의해 최고의 수비수로 칭해졌고 한때 유럽 축구사 최고의 센터백으로 평가받았던 바비 무어는 1970년에는 월드컵에서 펠레, 게르트 뮐러와 같은 선수들을 잘 막아낸 활약을 인정받아 발롱도르 투표에서 2위에 올랐으며 사후인 1994년에 선정한 피파 월드컵 올타임 팀에 선정되었고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도 최초로 헌액되었다.



5위 프랑코 바레시

 


생년월일: 1960년 5월 8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AC 밀란

'로쏘네리의 심장'

AC 밀란과 아주리의 위대한 캡틴이자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 수비수 중 한 명으로 뛰어난 수비라인 통솔 능력과 빠른 스피드, 정확한 롱패스, 몸을 사리지 않는 태클을 모두 겸비한 완벽한 수비수였다.

AC 밀란 통산 출전 2위에 랭크된 프랑코 바레시는 암흑기 시절 세리에 B 우승을 두 번 이뤄내며 팀을 승격시켰으며 이후 베를루스코니에게 인수된 이후 사키의 밀란 제너레이션 기간에는 무패 우승을 포함해 세리에 A 6회 우승과 UEFA 챔피언스리그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수비수임에도 1989-90 시즌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옹즈 몽디알이 뽑은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3년 연속 선정되었다.

바레시는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지만 가에타노 시레아라는 큰 벽에 의해 아주리에서는 다소 늦게 주전 자리를 차지했으며 주전 멤버로 월드컵 우승을 이뤄내지 못해 대표팀 활약이 시레아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고 1994 미국 월드컵에서도 결승전에서 말디니와 함께 호마리우, 베베투 라인을 완벽하게 봉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대표팀에서도 시레아 못지않은 퍼포먼스를 충분히 보여줬다.

이렇듯 클럽과 대표팀을 가리지 않고 최정상의 실력을 뽐낸 바레시는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일곱 번 선정되어 1989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2위를 차지하며 포디움에 들었다.



4위 다니엘 파사레야

 


생년월일: 1953년 5월 25일
국적: 아르헨티나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엠페라도르'

완벽한 수비 능력과 훌륭한 수비라인 지휘 능력, 그리고 강력한 킥력을 활용해 득점과 찬스 메이킹마저 담당했으며 173cm의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제공권 장악 능력이 오히려 강점에 속하는 만능 디펜더로 남미 축구 역사상 최고의 리베로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리버 플레이트와 피오렌티나에서 전성기를 맞이한 파사레야는 전자의 구단에서는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전기리그 4회 우승과 후기리그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5 시즌과 1979 시즌에는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를 모두 제패했고 1976년에는 35경기 24골이라는 공격수라 해도 믿을 득점력을 보여주며 아르헨티나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유럽 무대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발휘한 파사레야는 피오렌티나에서는 마지막 시즌인 1985-86 시즌에는 수비수임에도 무려 11골이나 득점했는데 이는 마테라치가 갱신하기 전까지 세리에 A 수비수 시즌 최다골을 기록하며 구에린 스포르티보 선정 세리에 A 외국인 선수 랭킹 2위에 2회 올랐다. 실제로 피오렌티나 시절은 물론 말년인 인테르 시절에도 좋음 모습을 보였다.

파사레야는 라 알비셀레스테에서도 위대한 주장으로 이름을 남겼는데 다소 논란이 많은 대회지만 주장으로써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의 우승을 차지했고 개인적으로도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할 예정이었지만 대회 직전 식중독으로 인한 컨디션 난조로 벤치로 내려가는 비극을 겪었지만 결과적으로 월드컵 2회 우승이라는 영예를 누렸으며 은퇴 이후 2015년에는 아르헨티나 축구협회 선정 아르헨티나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3위 호세 나사치

 


생년월일: 1901년 5월 24일
국적: 우루과이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베야 비스타

'위대한 사령관'

우루과이를 넘어 축구 역사에서도 최고의 수비수 반열에 있는 선수로 당시로서는 굉장한 거구로 압도적인 힘과 영리한 위치 선정으로 상대 공격수를 잡아먹었다. 그의 튼튼한 수비력에 우루과이의 유명한 소설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 X선조차 그의 수비를 뚫지 못할 것이라는 찬사를 보냈으며 리더십도 뛰어나 위대한 사령관이라 불렸다.

월드컵이 탄생하기 이전 세계 최고의 축구 권위 대회인 올림픽에서 주전 멤버로 두 번이나 금메달을 땄으며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네 번이나 우승했다. 그리고 초대 월드컵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면서 공격수들을 제치고 MVP를 수상했으며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네 번 우승했으며 1923년과 1935년, 두 번이나 MVP를 차지하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였다.

소속팀이 상대적으로 약체였던 베야 비스타였으나 나사치의 맹활약으로 수비적인 부분에서는 좋은 지표를 보여줬다. 특히 1932 시즌에 베야 비스타는 리그에서 35실점을 기록하던 베야 비스타가 호세 나사치가 떠난 1933 시즌엔 무려 61실점과 리그 꼴지를 기록하며 무너졌다. 반면 클루브 나시오날은 1932년에 리그 3위와 34실점을 기록했지만 나사치가 이적한 1933년에는 리그 우승은 물론 27경기에서 고작 10실점만 기록하는 탄탄한 팀으로 변모한다. 이후 나사치는 나시오날에서 리그 4연패를 기록하며 화려한 커리어를 추가한다.



2위 엘리아스 피게로아

 


생년월일: 1946년 10월 25일
국적: 칠레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SC 인테르나시오나우

'유럽의 베켄바우어에 대한 남미의 대답'

유럽의 베켄바우어에 대한 남미의 대답이라 평가받았던 리베로로 공수 양면에서 완벽했으며 큰 체격을 활용한 제공권 장악 능력은 실로 감탄을 할 만했으며 큰 키에도 몸이 굉장히 유연했고 아주 민첩했으며 수비라인 조율 능력도 뛰어나 마티아스 잠머와 함께 오프사이드 트랩을 가장 잘 구사하던 선수다. 그리고 공격 전개 능력은 물론 세트피스 상황에서 헤딩 득점에도 능했다. 이를 본 네우송 로드리게스라는 브라질 축구 평론가의 말을 빌리자면 백작처럼 우아하고 벵갈호랑이처럼 위험했다고 전해지는 완벽한 수비수였다.

페냐롤에서 세계적인 수비수로 성장한 피게로아는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2연패를 이뤄냈고 1969년에는 역대 인터콘티넨탈 우승팀끼리 최강자를 가리는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스 슈퍼컵을 우승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특히 브라질의 인테르나시오날에서는 다섯 번의 주립 리그와 두 번의 전국 리그 우승에 공헌하며 남미 올해의 선수상 1위 3연패와 3위 한 번이라는 대기록을 기록했다.

칠레 대표팀의 암흑기에 활약했던 선수라 대표팀 커리어가 다소 빈약한데 1974 서독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서독을 만나서 엄청난 수비력을 선보였는데 파울을 범하지 않고도 깔끔한 수비를 펼치면서도 양 팀 선수 중 가장 많은 인터셉트와 태클을 기록했다. 피게로아는 특히 게르트 뮐러를 전담 마킹했는데, 피지컬적인 부분뿐만이 아니라 기술적인 부분으로도 뮐러를 완전히 압도했음은 물론 천재적인 수비라인 지휘 능력으로 게르트 뮐러에게 오프사이드 3회라는 굴욕을 선사했다. 비록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지만 피게로아 개인은 다수의 매체에서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1위 프란츠 베켄바우어

 


생년월일: 1945년 9월 11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데어 카이저'

부정할 수 없는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로 수비 라인에서의 자유인을 넘어 전 경기장을 자유롭게 누비는 독일식 리베로의 시조로 서독 대표팀의 전성시대를 열었으며 그리고 당대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바비 찰튼을 지워냈을 정도로 대인 마킹에도 능했다.

상술한 능력을 바탕으로 독일 내에서도 평범한 클럽이었던 바이에른 뮌헨이 독일 최고의 클럽으로 올라서는데 크게 공헌하며 분데스리가와 DFB포칼에서 각각 4회 우승을 달성했고 유럽 대항전에서도 컵 위너스컵 우승을 시작으로 유러피언 컵 3연패를 이뤄냈으며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12회 선정되었다.

베켄바우어의 맹활약은 디 만샤프트에서도 이어졌는데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던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야신을 상대로 중거리 슈팅으로 득점하거나 바비 찰튼을 완벽하게 봉쇄하는 등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월드컵 신인상에 올랐으며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준결승전에서 만난 이탈리아를 상대로 쇄골이 다치는 부상을 입으면서도 풀타임으로 경기를 마치며 철인의 풍모를 보여줬다.

1970년대에 들어서 리베로로 출전한 1972 유로에서는 독일식 리베로의 새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유로 우승을 이끌어 트레블을 이룬 크루이프를 밀어내고 발롱도르를 수상했으며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팀의 우승에 크게 공헌했으나 크루이프에 밀려 월드컵 실버볼을 받았고 1976 유로에서는 팀의 결승행을 이끌었고 비록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대단한 퍼포먼스로 복수의 언론으로부터 대회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 27회는 덤.

 


이전 회차: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20위~11위

처음으로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