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20위~11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센터백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20위~11위

토르난테 2024. 1. 4.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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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 작성자 개인의 주관이 강하게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설득하셔도 바꿀 생각 없습니다.

* 과거 버전과는 대폭 수정되었습니다. 관점이 바뀐 부분도 있고 가진 자료가 그때보다 많아졌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 과거의 선수일수록 수상 기회가 적어 수상 횟수에서 불리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20위 도밍구스 다 기아

 


생년월일: 1912년 11월 19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플라멩구

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 수비수 중 하나로 훌륭한 수비 기술과 강한 피지컬을 물론 그 당시 수비수로서는 드물게 훌륭한 발 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활용해 오히려 상대 공격수를 농락하기도 했다.

브라질 무대의 바스쿠 다 가마와 플라멩구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개인 통산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4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33년에는 우루과이의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당대 최고의 수비수 호세 나사치와 조합해 우수한 수비력을 펼쳐 팬들로부터 신성한 마스터라 불렸으며 아르헨티나의 보카 주니어스에서도 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셀레상에서도 대체 불가능한 센터백이었던 도밍구스 다 기아는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 셀레상의 준결승 진출에 크게 공헌했으며 해당 대회에서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이후 1945년에 열린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팀은 준우승에 그쳤지만 본인은 MVP를 수상 받으며 대회 최고의 선수로 공인되었다.



19위 칼하인츠 푀르스터

 


생년월일: 1958년 7월 25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VfB 슈투트가르트

슈투트가르트 구단 역대 최고의 선수로 천사의 얼굴을 한 철의 정강이로 불릴 정도로 다른 스토퍼들과는 차원이 다른 대인 수비력을 지녔으며 동시에 훌륭한 리더로 수비라인 지휘에도 능했다.

슈투트가르트에서 친형 베른트 푀르스터와 함께 1983-84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냈으며 키커 랑리스테 스토퍼 부문 1위를 무려 12회나 수상했으며 옹즈 몽디알에서 선정한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스토퍼 부문에 6회 선정, 구에린 스포르티보 선정 올해의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으며 마르세유에서는 두 번의 리그 우승을 이뤄내며 당대 프랑스 무대를 평정했다.

디 만샤프트에도 각각 두 번의 월드컵과 유로에서 맹활약했는데 UEFA 유로 1980 우승을 비롯한 1982 스페인 월드컵과 1986 멕시코 월드컵 결승 진출을 이끌어냈고 조별 리그에서 탈락한 UEFA 유로 1984에서도 개인 활약은 뛰어나 팀 오브 더 토너먼트에 들었고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의 훌륭한 모습으로 발롱도르 24위에 올랐다.

 


18위 로랑 블랑

 


생년월일: 1965년 11월 19일
국적: 프랑스
신체조건: 키 193cm / 몸무게 90kg
주 소속팀: 몽펠리에 HSC

훌륭한 수비라인 지휘능력으로 대통령으로 불렸던 수비수로 신속정확한 판단력과 정확한 예측력과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기술적인 수비에 능했으며 커리어 초기에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한 경험이 있어서 우수하면서도 창의적인 패싱력도 보여줬으며 큰 키를 활용한 헤딩 득점도 일품이었다.

커리어 초년에 머물던 몽펠리에를 제외하고 여러 클럽을 자주 돌아다니는 저니맨이었던 블랑은 몽펠리에에서 1989-90 시즌 쿠프 드 프랑스 우승을 이뤄냈으며 옥세르에서는 1995-96 시즌 리그앙과 쿠프 드 프랑스 도메스틱 더블 우승을 이뤄냈으며 바르셀로나에서는 호나우두와 함께 1996-97 시즌 코파 델 레이와 UEFA 컵 위너스컵 더블 우승을 이뤄냈으며 인터 밀란을 거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는 2002-03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이뤄냈는데 그 과정에서 옹즈 몽디알이 뽑은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으며 ESM 올해의 팀에도 3회 선정되었다.

레 블뢰에서는 대표팀의 황금기를 이끌며 철의 포백을 이끈 수비라인의 리더였는데 유로 1992에서 국제무대에 데뷔해 유로 1996에서는 4강, 1998 프랑스 월드컵과 유로 2000에서 대표팀의 우승을 이끌어냈으며 특히 유로에서 강한 면모를 보였는데 유로에서 3개 대회 연속으로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을 정도로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17위 마르셀 드사이

 


생년월일: 1968년 9월 7일
국적: 프랑스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AC 밀란

바위라고 불렸을 정도로 강인한 신체 능력을 바탕으로 과격한 수비를 선보였으며 거기에 적절한 위치 선정과 빠른 판단력을 자랑하며 상대 공격수를 집어삼켰다. 그런 선수가 패스와 볼 컨트롤에도 능했을 정도로 완벽했기에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당대 유럽 최고 수준의 기량을 자랑하며 크루이프의 바르셀로나와의 중원 싸움에서 완승을 거두는데 공헌했다.

낭트에서 데뷔해 마르세유에서 1992-93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했으며 AC 밀란에서는 주 포지션인 센터백보다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더 자주 나와 활약하며 1993-94 시즌 세리에 A와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고 1995-96 시즌에는 재차 세리에 A 우승에 성공했으며 첼시로 이적한 뒤에도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줬고 꾸준하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옹즈 몽디알이 뽑은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4회 선정되었다.

레 블뢰에서도 프랑스 대표팀의 황금기를 이끌고 철의 포백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1996 UEFA 유로 준결승 진출과 1998 프랑스 월드컵과 유로 2000 우승을 이끌었으며 상술한 세 대회에서 모두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천하의 릴리앙 튀랑조차 그가 센터백으로 있었던 시대에는 그에게 밀려 라이트백으로 나섰다.

 


16위 호세 산타마리아

 


생년월일: 1929년 7월 31일
국적: 우루과이 → 스페인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레알 마드리드의 전설적인 수비수이자 1950년대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로 유명했으며 벽이라고 불릴 정도로 압도적인 대인 수비 능력과 헤딩 클리어링을 자랑했으며 특히 머리로 멀리 쳐낸 공이 전방의 동료에게 오차 없이 떨어지는 묘기를 보였다.

남미에 머물던 산타마리아는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5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짧지만 좋은 활약을 보여줬는데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는 팀을 4강에 올려놓는데 공헌했으며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1957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준수한 모습을 보였다.

레얼 마드리드의 저승사자 군단에서 수비진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라리가 6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4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57-58 시즌 마르카 평점에서 수비수 최고 평점을 받았으며 1960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15위 카를레스 푸욜

 


생년월일: 1978년 4월 13일
국적: 스페인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스페인 역사상 최고의 중앙 수비수 중 한 명으로 뛰어난 대인 방어 능력과 열정적이면서도 빈틈이 없는 날카로운 태클,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위치 선정을 활용한 뛰어난 제공권 장악 능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선수 생활을 오직 바르셀로나에서만 헌신한 원 클럽맨으로 라이트백에서 뛰던 암흑기부터 레이카르트 체제를 거쳐 펩의 체제까지 헌신하며 라리가 우승 6회와 챔피언스리그 우승 3회를 이뤄낸 푸욜은 개인적으로도 UEFA 올해의 팀 6회 선정, ESM 올해의 팀 4회 선정, 그리고 2006 UEFA 클럽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다.

푸욜의 활약은 아르마다 군단에서도 빛났는데 2002 한일 월드컵에 데뷔해 세 번의 월드컵과 두 번의 유럽 선수권 대회에 출전해 부주장으로서 카시야스와 함께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갈등을 봉합하며 유로 2008 우승과 2010 남아공 월드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두 대회에서 모두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특히 2010년에는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발롱도르 투표에서 11위에 올랐다.



14위 위르겐 콜러

 


생년월일: 1965년 9월 5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4kg
주 소속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토퍼로 당대를 넘어 역대 최고급의 대인 마킹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특히 압도적인 피지컬과 교묘한 심리전을 겸비하며 공격수들을 괴롭혔으며 본인이 인터뷰에서 직접 "나를 곤혹케 한 공격수는 내 경력을 통틀어 없었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대표팀과 세리에 A에서 반 바스텐과 라이벌리를 구축했으며 실제로도 반 바스텐이 가장 상대하기 어렵다고 밝힌 수비수 중 하나였다.

분데스리가의 바이에른 뮌헨과 도르트문트, 세리에의 유벤투스에서 전성기를 맞은 콜러는 유벤투스의 1994-95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도왔으며 도르트문트의 황금기를 이끌며 두 차례의 분데스리가 우승과 1996-97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큰 공을 세우며 1997년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발롱도르 투표에서 11위에 올랐다.

쾰른 시절부터 디 만샤프트에 뽑혔던 콜러는 칼하인츠 푀르스터의 후계자로 대표팀에 선발되었으며 유로 1988을 시작으로 월드컵과 유로에 각각 3회 선발되었으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상대 공격수를 지워내며 조국의 통일 선물로 월드컵 우승을 선물했으며 1992 UEFA 유로에서는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나 1996 유로에서는 주전으로 활약에 예정되었으나 대회 도중 부상당해 낙마했으며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팀의 침몰을 막지 못하고 아쉬운 은퇴를 했다.



13위 파비오 칸나바로

 


생년월일: 1973년 9월 13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파르마

아주리를 대표하는 수비수 중 한 명으로 작은 키임에도 용수철과도 같은 점프력을 보여주며 제공권 장악에 강했고 터프한 대인 수비와 날카로운 슬라이딩 태클, 그리고 지능적인 수비라인 통솔 능력을 겸비한 우수한 수비수였으며 베테랑이 된 뒤에는 수비라인 지휘 능력도 발군이었다.

파르마에서는 튀랑, 센시니와 함께 세리에 7공주에 속하는 팀들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수비라인을 구성해 UEFA컵 우승과 두 번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에 공헌했으며 이후 인테르에서는 부진했으나 유벤투스에서 완벽히 부활해 리그 최고의 수비수로 이름을 날렸으나 말년에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뒤에는 수비 방식의 차이로 부진하기도 했지만 세리에 A에서는 세리에 A 올해의 수비수에 2회 선정되었으며 2004-05 시즌 ESM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칸나바로는 클럽에서의 활약보다도 아주리에서의 활약이 백미인데 1996년 올림픽을 시작으로 1998 프랑스 월드컵부터 2010 남아공 월드컵까지 유로 2008을 제외하곤 모두 참가했다. 특히 유로 2000에선 짠물 수비의 진수를 보여주며 팀을 결승에 진출시킨 공로로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올랐으며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부폰과 함께 수비라인을 이끌고 아예 필드골은 내어주지 않으며 실버볼과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고 발롱도르를 수상하며 그의 아주리 경력에 방점을 찍었다.



12위 빌리 라이트

 


생년월일: 1924년 2월 6일
국적: 잉글랜드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울버햄튼 원더러스

1950년대 최고의 수비수로 단신이었지만 강력한 승부욕과 태클로 자신보다 큰 선수들을 제압했으며 뛰어난 전술안을 바탕으로 상대 공격수의 움직임을 잘 읽었음은 물론 70경기 연속으로 A매치에 출전했을 만큼 부상도 잘 당하지 않았던 철강왕이었다.

클럽 커리어 젠부를 울버햄튼 원더러스에서만 보내며 홈구장에 동상까지 건립된 원 클럽맨인 빌리 라이트는 울브스의 황금세대의 아이콘으로 활약하며 잉글랜드 풋볼 리그 1부 우승을 3회 이뤄냈고 1954년 겨울에는 친선전에서 공산권 최강의 클럽 부다페스트 혼베드를 꺾는 과정에서 푸스카스, 코치슈, 치보르의 연계 플레이를 철통같이 막아내 팀이 세계 정상급 클럽 중 하나로 이름을 날리는데 큰 공을 새웠음은 물론 빌리 라이트 개인도 1952년에는 FWA 올해의 축구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3회 선정되어 1957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2위에 올랐다.

삼사자 군단에서도 핵심 수비수로 활약하며 밥 크롬튼을 제치고 잉글랜드 대표침 A매치 통산 출전 기록을 갈아치운 빌리 라이트는 1940년대 잉글랜드 대표팀이 A매치에서 강세를 보일 때 주장으로 팀을 지휘했고 1950 브라질 월드컵과 1954 스위스 월드컵, 그리고 1958 스웨덴 월드컵에 참가하며 엄청난 수비력을 보여줬으며 축구 역사상 최초로 센츄리 클럽에 가입했다. 그리고 사후에는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영예를 누렸다.



11위 가에타노 시레아

 


생년월일: 1953년 5월 25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유벤투스의 황금기를 이끈 리베로로 뛰어난 통솔력과 정확한 커버 플레이는 물론 롱패스와 중거리 슈팅 같은 공격적인 재능에도 능했으며 냉정한 성격으로 돌발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팀을 잘 수습했다. 

선수 생활 대부분을 유벤투스에서 보내며 유벤투스 구단 통산 출전 4위에 랭크된 시레아는 트라파토니 체제에서 유벤투스의 리베로를 맡아 구단의 세리에 A 7회 우승과 각 한 차례의 UEFA컵, 유러피언 컵 위너스 컵, 유러피언컵을 모두 우승하며 구단 역사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선수가 되었다.

아주리 군단에서도 시레아의 활약은 이어졌는데 팀의 리베로이자 수비라인의 중심으로 활약하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과 1980 UEFA 유로에서 4위를 기록했으며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탄탄한 수비로 팀의 우승을 이끌었으며 1980 UEFA 유로 팀 오브 더 토너먼트에 들었으며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발롱도르 투표에서 12위에 랭크되었다.

 


이전 회차: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30위~21위

다음 회차: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Top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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