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80위~71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센터백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80위~71위

토르난테 2023. 12. 31.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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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 작성자 개인의 주관이 강하게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설득하셔도 바꿀 생각 없습니다.

* 과거 버전과는 대폭 수정되었습니다. 관점이 바뀐 부분도 있고 가진 자료가 그때보다 많아졌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 과거의 선수일수록 수상 기회가 적어 수상 횟수에서 불리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80위 알렉산드르 치바체

 


생년월일: 1955년 4월 8일
국적: 조지아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FC 디나모 트빌리시

1980년대 소련 대표팀의 조지아 출신 주장으로 신속정확한 판단력과 카리스마 넘치는 수비라인 조율로 이름을 날렸으며 미드필더 출신인지라 볼 다루는 기술이 우수하고 정밀도 높은 패싱력을 활용한 빌드업 능력도 우수했다.

디나모 트빌리시의 전성기를 이끈 치바체는 1978 소비에트 탑 리그 우승 및 소비에트 컵 2회 우승, 그리고 1980-81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내며 디나모 키이우에 이어 소련 클럽 역사상 두 번째 유럽대항전 우승을 이뤄냈다.

소비에트 탑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7회 선정되었으며 1981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8위에 오른 치바체는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 소련 대표팀의 주장으로 활약하며 팀의 1차 조별리그 통과를 이끌었다.



79위 로베르토 로사토

 


생년월일: 1943년 8월 18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AC 밀란

1960년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수비수인 로사토는 수려한 외모와 동시에 거칠고 교활한 플레이를 보여주는 상반된 성격의 선수라 천사의 얼굴을 한 악마라 불렸다. 

토리노와 AC 밀란에서 명장 네레오 로코의 신임을 듬뿍 받은 로사토는 토리노에서 정상급 선수의 반열에 올라 AC 밀란으로 이적했으며 AC 밀란에서 세리에 A와 코파 이탈리아, 컵 위너스 컵, 유러피언 컵, 인터콘티넨탈 컵을 모두 제패하며 명성을 누렸다.

발카레지 체제의 아주리 군단에서도 카테나치오의 중요한 축으로 활약하며 짠물 수비를 보여줬는데 유로 1968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짠물 수비를 보여주며 결승에 진출했지만 결승전에서 펠레의 브라질을 막아내지는 못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78위 미오그라드 벨로데디치

 


생년월일: 1964년 5월 20일
국적: 루마니아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츠르베나 즈베즈다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동유럽 최고의 리베로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던 선수로 예술의 경지에 다다른 아름답고 깔끔한 태클로 사슴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리베로답게 시야도 넓고 기본기도 탄탄해 빌드업의 시작점 역할을 맡는 부분에도 능했다.

슈테아우아 부쿠레슈티에서 데뷔해 정규리그 5회 우승 및 쿠파 로므니에이 4회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1985-86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우승 및 UEFA 슈퍼컵 우승마저 이뤄냈다. 그러나 루마니아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독재에 반대해 유고슬라비아로 망명해 츠르베나 즈베즈다에서 뛰었으며 즈베즈다에서도 리그 3회 우승 이뤄냈으며 1989-90 시즌에는 유고슬라비아 컵 우승을 이뤄냈고 1990-91 시즌에는 수비라인의 리더로 대망의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연말에 열린 인터콘티넨탈컵에서도 남미 칠레의 콜로콜로를 상대로 3-0으로 대승을 거두는데 기여했다.

1991년의 대단한 활약을 펼친 벨로데디치는 차우세스쿠가 죽자 루마니아 대표팀에도 재소집되었으며 1994 미국 월드컵에서 조국의 8강행을 이끌었고 라리가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다가 말년에 슈테아우아 부쿠레슈티로 돌아온 뒤 정규리그 1회 우승 및 쿠파 로므니에이 1회 우승을 추가하기도 했다.

 


77위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

 


생년월일: 1966년 4월 24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AC 밀란

1990년대 당시 세리에 A 최고의 스토퍼 중 하나로 힘과 축구 지능을 겸비했으며 뛰어난 대인 마킹 능력을 앞세워 바레시, 말디니, 타소티와 함께 역사상 최고의 포백 라인을 구성하여 활약하였으며 바레시의 은퇴 이후에는 수비라인의 리더로 성장했다.

선수생활을 오직 AC 밀란에서만 보내며 구단 통산 출전 2위에 랭크된 코스타쿠르타는 세리에 A 7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빅 이어만 5번을 들어내는 대기록을 세웠다.

아주리의 두터운 선수층 때문에 20대 후반에서야 대표팀에 소집된 코스타쿠르타는 1994 미국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UEFA 유로 1996과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다.

 


76위 치로 페라라

 


생년월일: 1967년 2월 11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1990년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수비수 중 하나로 시스템과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고 우수한 활약을 펼쳤을 정도로 축구와 수비수의 포지션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으며 한 박자 빠른 태클로 상대 공격수를 무력화시켰으며 우수한 수비라인 조율 능력은 물론 우수한 발밑 기술로 빌드업의 시작점 역할도 맡았다.

나폴리와 유벤투스에서 전성기를 보낸 페라라는 전자의 구단에서 데뷔해 1986-87 시즌 도메스틱 더블을 포함해 세리에 A 2회 우승과 코파 이탈리아 1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88-89 시즌에는 UEFA컵 우승을 이뤄내며 나폴리의 유일무이한 유럽 대항전 트로피를 따내는데 크게 공헌했으며 유벤투스로 이적한 뒤에는 리피 체제의 유벤투스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으며 세리에 A 5회 우승과 1994-95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은 물론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네 번 진출해 1995-96 시즌에는 우승을 차지했으며 1996-97 시즌에는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페라라는 아주리에서도 리카르도 페리, 피에트로 비에르코보드 코스타쿠르타와 치열한 주전 경쟁을 펼쳤는데 유로 1988과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백업 멤버였으며 사키 체제에서는 철저하게 외면받으며 3년간 거의 출전하지 못했으나 바레시 은퇴 이후 대표팀 주전 자리에 올라섰으나 유로 1996과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대회를 앞두고 예기치 못한 부상으로 나서지 못했으며 유로 2000에서는 이미 칸나바로-네스타 라인에 밀려 벤치에 앉았을 정도로 메이저 대회와는 지독히도 인연이 없었다.



75위 에른스트 하펠

 


생년월일: 1925년 11월 29일
국적: 오스트리아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라피트 빈

축구 역사상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으로 더 유명하지만 선수 시절에도 페차이, 알라바와 함께 오스트리아 축구를 대표하는 수비수로 이름을 날렸는데 저돌적인 태클과 냉정침착한 판단 및 수비라인 지휘를 겸비했으며 킥력이 우수해 빌드업에 큰 영향력을 끼쳤음은 물론 프리킥 상황에서는 상대의 골문을 직접 노리기도 했다.

라피트 빈에서 주로 활약하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끈 하펠은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6회 우승 및 1951년 젠트로파컵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고 1956-57 시즌 유러피언 컵 16강에서는 디펜딩 챔피언이자 저승사자 군단으로 불렸던 레알 마드리드와의 2차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3-1 승리를 이뤄 승리를 최종 플레이오프까지 끌고 가는 활약을 펼치며 주목받기도 했다.

오스트리아 대표팀에서도 핵심 수비수로 활약하며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 3위에 올리며 호세 산타마리아, 베르너 리브리히, 자우마 산투스 등과 함께 대회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로 호평받았다.



74위 윌리엄 마르티네스

 


생년월일: 1928년 1월 13일
국적: 우루과이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CA 페냐롤

1950년대와 60년대 우루과이 무대에서 롱런한 센터백으로 당시로서는 드문 192cm라는 압도적인 피지컬을 이용해 상대를 찍어 누르는 플레이에 능했으며 세트피스 상황에서의 헤더로 상대의 골문을 위협했다.

20년 넘게 롱런하며 페냐롤과 클루브 나시오날, 그리고 람플라 주니오르스에서 모두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윌리엄 마르티네스는 나시오날에서는 정규리그 2회 우승을 포함해 총 7개의 트로피를 들었으며 람플라 주니오르스에서도 2개의 우승컵을 들었던 마르티네스는 특히 페냐롤에서는 전성기를 맞이하며 프리메라 디비시온 5연패를 포함해 국내의 크고 작은 12개의 트로피를 들었고 1960년에는 최초로 열린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우승하며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컵을 든 최초의 주장으로 이름을 남겼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는 1950 브라질 월드컵 우승을 백업 멤버로 경험했으며 이후 대표팀에서도 주전 자리를 꿰차며 1953 코파 아메리카 3위, 1954 스위스 월드컵 4위, 1955 코파 아메리카 4위, 그리고 1956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뤄냈다.



73위 히카르두 카르발류

 


생년월일: 1978년 5월 18일
국적: 포르투갈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첼시 FC

2000년대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수비수로 기술과 섬세함을 앞세운 수비로 상대 선수는 가만히 놔두고 공만 건드리는 신기에 가까운 슬라이딩 태클을 두고 세간에서는 나노미터 태클이라고 평가했다.

포르투 유스 출신으로 초년에는 여러 팀으로 임대를 다녔다가 2001-02 시즌에 정착해 프리메이라 리가 3회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2002-03 시즌 UEFA컵 우승, 2003-04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고 카르발류 개인도 UEFA 클럽 올해의 수비수에 선정되며 유럽 최고의 수비수의 반열에 올랐고 곧바로 이적한 첼시에서도 존 테리와의 센터백 조합으로 이름을 날리며 프리미어리그 3회 우승과 리그컵 2회 우승을 이뤄냈고 무리뉴 체제의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준수한 모습을 보였다.

포르투갈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한 카르발류는 데뷔 대회인 유로 2004에서 팀의 결승행을 이끌며 대회 올스타 팀에 들었고 2006 독일 월드컵 4강, 2008 UEFA 유로 8강과 2010 남아공 월드컵 16강의 성적을 내는데 큰 공을 세웠고 말년에는 유로 2016에서는 백업 멤버로 우승을 경험하며 은퇴했다.



72위 무르타즈 후르칠라바

 


생년월일: 1943년 1월 5일
국적: 조지아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FC 디나모 트빌리시

소련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이자 조지아 출신으로는 소련 대표팀 최초의 주장으로 키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담대한 성격이라 거구의 공격수들을 상대로 겁먹지 않았으며 키는 작았지만 강건한 어깨와 근육질의 몸을 바탕으로 견고하면서도 지능적인 수비력을 바탕으로 자신보다 크거나 빠른 공격수를 사냥하는데 능했고 특히 킥력이 강해 롱패스로 공격활로를 개척하거나 직접 타격하는 부분에도 능했다.

소속팀 디나모 트빌리시에서는 리베로 역할을 수행하며 1964 소비에트 탑 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러시아 클럽의 강세에도 개인의 활약은 대단해 소비에트 탑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5회 선정되었다.

소련 대표팀에서는 리베로 셰스테르네프를 보좌하는 스토퍼로도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이며 1966 잉글랜드 월드컵 4위, UEFA 유로 1968 4위, 1970 멕시코 월드컵 8강 및 UEFA 유로 1972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냈으며 특히 유로 1972에서는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상술한 활약을 바탕으로 2003년에는 조지아 축구협회 선정 근 50년간 최고의 조지아 축구선수로 선정되었다.



71위 게오르게 포페스쿠

 


생년월일: 1967년 10월 9일
국적: 루마니아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3kg
주 소속팀: 갈라타사라이 SK

자타공인 루마니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로 높은 지능을 바탕으로 하는 센스 넘치는 수비와 강력한 카리스마에서 나오는 수비라인 지휘능력은 물론 빌드업의 시발점 역할도 훌륭하게 수행한 우수한 리베로였다.

우니베르시타테아에서 데뷔했지만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 임대 시절 첫 리그 우승을 맛봤으며 PSV 에인트호번과 FC 바르셀로나에서는 전성기를 누렸는데 전자의 클럽에서는 에레데비시 2연패를, 후자의 클럽에서는 1996-97 시즌 코파 델 레아와 UEFA 컵 위너스컵 더블을 이뤄냈고 말년에 활약한 갈라타사라이에서는 터키 수페르리가 3연패 및 튀르키에 쿠파스 2연패를 이뤄냈음은 물론 1999-2000 시즌에는 UEFA컵 결승에서는 아스날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고 슈퍼컵에서는 레알 마드리드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루마니아 올해의 선수 6회 수상자 포페스쿠는 루마니아 대표팀에서도 핵심 수비수로 활약하며 3차례의 FIFA 월드컵과 2차례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에 참가했는데 특히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8강에 진출하는 공을 세웠다. 전방에는 하지가 있다면 후방에는 포페스쿠가 있었다는 말이 과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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