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90위~81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센터백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90위~81위

토르난테 2023. 12. 31. 13:38
728x90
728x90

주의사항

* 작성자 개인의 주관이 강하게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설득하셔도 바꿀 생각 없습니다.

* 과거 버전과는 대폭 수정되었습니다. 관점이 바뀐 부분도 있고 가진 자료가 그때보다 많아졌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 과거의 선수일수록 수상 기회가 적어 수상 횟수에서 불리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90위 뱅상 콤파니

 


생년월일: 1986년 4월 10일
국적: 벨기에
신체조건: 키 193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

벨기에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로 콘크리트라 불리던 강력한 수비력과 영리한 수비 지능, 그리고 수비형 미드필더 출신이었던 만큼 뛰어난 빌드업 능력도 겸비한 완성형 수비수였다. 그리고 강력한 리더십으로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다년간 주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만수르 인수 이후 맨체스터 시티 최고의 수비수였던 콤파니는 10년간 주전으로 활약하며 프리미어리그 4회 우승과 FA컵 2회 우승을 이뤄냈고 개인적으로도 PFA 올해의 팀 3회 선정 및  2010-11 시즌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 수상 및 2011-12 시즌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린 콤파니는 구단 역사의 큰 획을 그은 공로를 인정받아 다비드 실바와 함께 에티하드 스타디움에 동상이 설치되었다.

벨기에 대표팀에서도 소위 '황금세대'의 리더역할을 했던 콤파니는 센터백으로 포지션을 바꾼 이후로는 수비라인의 리더이자 주장으로 활약했는데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8강 진출을 이뤄냈으며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주장 완장을 아자르에게 내줬고 조별리그에선 벤치를 지켰지만 토너먼트에서 주전으로 다시 활약하며 조국이 3위에 오르는데 크게 기여했다. 실제로 콤파니가 은퇴한 뒤 벨기에 대표팀은 리더십 부재로 무너졌다.



89위 뱅트 구스타프손

 


생년월일: 1928년 1월 13일
국적: 스웨덴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아탈란타 BC

1950년대와 60년대에 걸쳐 활약했던 수비수로 탁월한 수비라인 지휘 능력과 견고한 대인 수비 능력은 물론 2-3-5 시스템의 센터하프 출신답게 정교한 롱패스를 통한 빌드업에도 능했다.

IFK 노르셰핑과 아탈란타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는데 전자의 구단에서는 알스베스칸 3회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1953년에는 스웨덴 굴드불렌을 수상했고 후자의 구단에서는 소속팀 전력의 한계로 우승 트로피를 수집하진 못했지만 당대 세리에 A 최고의 수비수로 이름을 날렸다.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핵심 수비수로 활약하며 1952 헬싱키 올림픽 동메달과 1958 스웨덴 월드컵 준우승을 이루는데 큰 공을 세웠고 상술한 활약을 인정받아 2021년에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88위 카를로 파롤라

 


생년월일: 1921년 9월 20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1940년대 하반기와 1950년대 상반기에 이탈리아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센터하프로 우수한 대인 수비 능력과 상대의 패스 흐름을 끊는 인터셉트로 이름을 날렸으며 풀백과 하프백을 잇는 연결고리 역할도 훌륭하게 수행했다. 특히 스트라이커 출신이라 오버헤드킥에도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며 유명세를 떨쳤는데 그 당시 축구를 가볍게 접했던 사람들은 파롤라 하면 수비력이 아닌 오버헤드킥을 떠올렸을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유벤투스에서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보낸 파롤라는 1941-42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으며 수페르가의 참사로 토리노 FC가 몰락해 왕좌의 공백이 생긴 이탈리아 무대에서 세리에 A 2회 우승을 이뤄내며 앞서나갔다. 수페르가의 사고로 아주리의 주전 멤버가 모두 죽음을 맞는 비극 속에서 대표팀의 센터 하프로 나서 1950 브라질 월드컵에 나섰지만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며 그들의 공백을 채우지는 못했다.

 


87위 아르만도 피키

 


생년월일: 1935년 6월 20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71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1960년대 유럽 축구를 풍미한 그란데 인테르의 주장으로 안정적인 커버플레이와 완벽한 클리어링은 물론 미드필더 진영으로의 원활한 볼 배급 능력을 겸비했으며 기술적으로 세련된 태클을 보여주기도 했다.

상술한 능력을 바탕으로 그란데 인테르의 리베로를 맡은 피키는 AC 밀란의 리베로 체사레 말디니와의 라이벌리를 구성하며 세리에 A 3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2연패를 이뤄내며 유럽 축구 최고의 리베로 중 하나로 이름을 날렸다.

다만 아주리에서의 경력은 일천한 편인데 이는 1960년대 중반 이탈리아의 감독을 맡았던 에드문도 파바리가 피키를 전술적인 이유를 명분으로 제외시켰으나 그 결과는 북한에게 패해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기에 피키를 신뢰하지 않았던 파바리는 엄청난 비난에 시달리며 경질당했고 이후 피키는 대표팀에 복귀했으나 유로 1968을 앞두고 큰 부상을 당하며 그의 대표팀 커리어는 허무하게 끝난다.

 


86위 하신토 킨코세스

 


생년월일: 1905년 7월 17일
국적: 스페인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유럽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수비하기 유리한 위치를 먼저 선점해 상대를 압박했으며 뛰어난 반사신경에서 나오는 빠른 대응력을 바탕으로 상대의 패스를 적절하게 커팅했다.

초년에는 데포르티보 알라베스에서 활약하다가 라리가 출범 이후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약하며 라리가와 코파 델 레이를 각각 2회 우승하며 레알 마드리드 초창기의 스타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킨코세스는 아르마다 군단에서도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과 1934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특히 후자의 대회에서는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을 정도로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85위 예르지 고르곤

 


생년월일: 1949년 7월 18일
국적: 폴란드
신체조건: 키 192cm / 몸무게 90kg
주 소속팀: 구르니크 자브제

폴란드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이자 당대 유럽 최고 수준의 중앙 수비수로 거구의 피지컬과 영리한 심리전, 그리고 정교한 태클을 적재적소에 활용해 지상과 공중을 가리지 않고 상대 공격수와의 경합 상황에서 우위를 점했으며 이런 수비적인 부분 이외에도 양발 모두를 사용해 정교한 롱패스를 구사할 수 있었으며 이를 활용해 빌드업의 시작점 역할도 맡을 수 있어 소속팀에서는 리베로로도 활약했다.

소속팀 구르니크 자브제에서는 스토퍼와 리베로를 고루 맡아 활약하며 리그 2회 우승과 폴란드 컵 5회 우승을 이뤄낸 고르곤은 대표팀에서도 맹활약하며 1972 뮌헨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1974 서독 월드컵과 1976 몬트리올 올림픽에서는 파트너이자 리베로 츠무다를 보좌하는 역할을 잘 수행하며 각각 3위와 은메달이라는 성적을 거뒀다.

상술한 업적을 인정받아 2019년에는 폴란드 축구협회 창립 100주년 기념 폴란드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84위 브와디스와프 츠무다

 


생년월일: 1954년 6월 6일
국적: 폴란드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84kg
주 소속팀: 실롱스크 브로츠와프

폴란드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이자 당대 유럽 최고 수준의 리베로로 강력한 카리스마와 우수한 전술안에서 나오는 수비라인 컨트롤로 이름을 날렸으며 적절한 수비라인 커버와 탄탄한 밸런스로 공격수와의 경합에서도 우위를 보여줬으며 빌드업의 시작점 역할과 제공권 경합에도 능했던 완벽한 수비수였다.

1976-77 시즌에 우승권으로 평가받지 못한 소속팀 실롱스크 브로츠와프의 구단 역사상 최초의 폴란드 리그 우승을 이끌어낸 즈무다는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친 폴란드 축구의 황금기를 이끌며 네 번의 월드컵에 나섰는데 특히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고르곤과 호흡을 맞춰 조국을 3위에 올리며 월드컵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1976 몬트리올 올림픽에서는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주장으로 출전해 조국이 8년 만에 다시 3위에 오르는데 큰 공을 세웠다.

상술한 업적을 인정받아 2019년에는 폴란드 축구협회 창립 100주년 기념 폴란드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83위 토니 아담스

 


생년월일: 1966년 10월 10일
국적: 잉글랜드
신체조건: 키 191cm / 몸무게 90kg
주 소속팀: 아스날 FC

조지 그레이엄에 의해 콜로수스라 불렸을 정도로 압도적인 피지컬과 아르센 뱅거에 의해 수비의 교수라 불렸을 정도로 높은 수비 지능을 겸비한 수비수로 바위 같은 대인 수비 능력과 슬라이딩 태클은 물론 큰 키를 활용한 제공권 장악 능력과 우수한 위치 선정을 겸비한 완벽한 센터백이었다.

 

별명이 미스터 아스날일정도로 아스날을 대표하는 선수로 리그 4회 우승과 FA컵 3회 우승, 그리고 리그컵 2회 우승은 물론 팀의 유일한 UEFA 주관 유럽 대항전인 1993-94 시즌 컵 위너스컵 우승은 물론 1999-2000 시즌에는 UEFA컵 결승에 진출하는 활약을 보여줬으며 이 과정에서 보울드, 리 딕슨, 그리고 나이젤 윈터번과 함께 철의 포백이라 불렸다. 그리고 아담스 개인도 PFA 올해의 팀에 4회 선정되었다.

삼사자 군단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한 아담스는 유로 1988에서는 팀은 전패로 탈락했지만 아담스 개인은 득점을 기록했으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명단에 들지 못했으나 유로 1996에서는 삼사자 군단의 주장을 맡아 조국의 준결승 진출에 공헌했으며 1998 프랑스 월드컵과 유로 2000에도 참가했으며 2004년에는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82위 체사레 말디니

 


생년월일: 1932년 2월 5일
국적: 이탈리아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AC 밀란

역대 최고의 레프트백으로 평가받는 파올로 말디니의 아버지이며 1960년대 상반기 세계 최초의 리베로 중 하나로 공격 가담은 거의 하지 않았지만 팀의 수비라인을 지휘하며 안정적인 커버플레이와 우수한 수비라인 통솔력과 효과적인 경기 템포 조절, 그리고 상대 공격수를 잡아먹는 대인 수비 능력도 뛰어났다.

로쏘네리 군단에서 네라주리의 피키와 라이벌리를 구축한 체사레 말디니는 세리에 A 4회 우승과 1956년에는 라틴 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1962-63 시즌에는 로코의 카테나치오의 스위퍼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며 팀의 첫 유러피언 컵 우승에 크게 공헌하며 1963 발롱도르 투표에서 17위에 랭크되었다.

체사레 말디니는 1960년대 초반 아주리에서도 핵심 멤버로 활약하며 1962 칠레 월드컵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여줬는데 팀은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지만 체사레 말디니의 활약은 대단해 우승팀 브라질과 준우승팀 체코슬로바키아의 선수들을 제치고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81위 에리베르토 에레라

 


생년월일: 1926년 4월 24일
국적: 파라과이 → 스페인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나시오날 아순시온

파라과이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로 매우 빠르고 공중전에 뛰어났음은 물론 냉정하면서도 자신감이 넘치는 수비를 선보이며 상대의 공격 흐름을 완벽하게 끊어냈기에 세간으로부터 가위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파라과이의 나시오날 아순시온에서 데뷔해 두각을 나타냈는데 비록 리그 우승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에레라는 리그 최고의 수비수로 인정받아 파라과이 대표팀 주전으로 활약했고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결국 조국의 1953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수비수였음에도 대회 MVP를 수상했다.

스페인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활약한 에리베르토 에레라는 특히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는 데뷔전에서 디 스테파노를 앞세운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동점골을 득점하는 활약을 선보이기도 했다. 스페인 대표팀 소속으로 A매치 2경기를 뛰기도 했다.

 


이전 회차: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100위~91위

다음 회차: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80위~71위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