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70위~61위

포지션별 역대 TOP 100/골키퍼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70위~61위

토르난테 2023. 12. 25.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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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 작성자 개인의 주관이 강하게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설득하셔도 바꿀 생각 없습니다.

* 과거 버전과는 대폭 수정되었습니다. 관점이 바뀐 부분도 있고 가진 자료가 그때보다 많아졌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 과거의 선수일수록 수상 기회가 적어 수상 횟수에서 불리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폼을 제작합니다.


70위 샘 하디

 


생년월일: 1882년 8월 26일
국적: 잉글랜드
신체조건: 키 177cm
주 소속팀: 아스톤 빌라

20세기 초반에 활약했던 축구 역사상 최초의 스타 골키퍼 가운데 한 명으로 우수한 자기관리를 통한 안정적인 기량 유지와 강력한 펀칭력과 안정적인 세이브로 이름을 날리며 안전하고 꾸준한 샘이라 불렸다.

리버풀과 아스톤 빌라에서 전성기를 보낸 하디는 1905-06 시즌에 리버풀의 풋볼 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아스톤 빌라에서는 FA컵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말년에는 노팅엄 포레스트의 2부 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도 주전 선수로 맹활약한 하디는 사후 1998년에 전문가들이 선정한 풋볼 리그 100인의 레전드의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69위 얀 토마제프스키

 


생년월일: 1948년 1월 9일
국적: 폴란드
신체조건: 키 193cm / 몸무게 94kg
주 소속팀: LKS 우치

폴란드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으로 큰 키와 긴 팔다리를 활용한 선방 능력과 일대일 상황에서의 침착한 전진수비, 그리고 강력한 완력을 활용해 공을 멀리 던져 역습을 전개하는데 능했으며 1974 서독 월드컵 지역예선 잉글랜드의 안방인 웸블리에서 경기 3분 만에 손가락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1-1 무승부를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우며 조국 폴란드의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을 정도로 정신력이 강했다.

LKS 우치의 레전드로 이름을 날렸던 토마제프스키는 1974 서독 월드컵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조국을 3위에 등극시켰으며 1976 몬트리올 올림픽에서는 은메달을 타냈고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다. 이에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 IFFHS는 그를 20세기 최고의 폴란드 골키퍼로 선정했다.

 


68위 망가

 


생년월일: 1937년 4월 26일
국적: 브라질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3kg
주 소속팀: 보타포구

1955년에 데뷔해 1982년에 은퇴하며 무려 40대 중반까지 롱런했던 골키퍼로 안정적인 골문 방어와 일대일 상황에서의 번뜩이는 수비를 겸비해 이름을 날렸다.

보타포구에서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4회 우승을 포함해 크고 작은 대회에서 24회의 우승을 경험했으며 우루과이의 나시오날로 이적해서는 라이벌 페냐롤을 제치고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4회 우승은 물론 1971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과 인터콘티넨탈컵 우승까지 이뤄내며 트레블을 이뤄냈고 다시 브라질로 돌아온 뒤에는 남미 최고의 리베로 엘리아스 피게로아와 함께 인테르나시오날의 캄페오나투 가우초 3회 우승과 전국리그인 브라질 세리 A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말년에는 에콰도르의 바르셀로나에서 은퇴했다.

다만 대표팀과의 인연은 지독하게도 없는데 지우마르와 카스틸류에 밀려 두 번의 월드컵 우승의 영예를 함께하지 못했으며 유일하게 뽑힌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팀이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으며 1970 멕시코 월드컵 시절에는 우루과이에 머물러서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다.

 


67위 보도 일그너

 


생년월일: 1967년 4월 7일 
국적: 독일
신체조건: 키 190cm / 몸무게 90kg
주 소속팀: FC 쾰른

1980년대 하반기부터 1990년대 상반기까지 독일 최고의 골키퍼로 활약했으며 안정적인 선방과 냉정한 판단력으로 상대의 공격을 막아냈다.

쾰른과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약했으며 쾰른에서는 트로피를 들지는 못했지만 리가 정상급 선수로 활약하며 독일 올해의 골키퍼를 4회 연속 수상했으며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로테이션 멤버로 라 리가 우승과 두 번의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당시에는 유망주였던 이케르 카시야스의 멘토로 활약하며 그의 성장을 돕기도 했다.

디 만샤프트에서는 아이케 임멜, 안드레아스 쾨프케, 울리 슈타인 등 쟁쟁한 선배들을 모두 제치고 어린 시절부터 주전으로 활약했는데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과 유로 1992 준우승을 이뤄내는 맹활약을 보여줬으나 1994 미국 월드컵에서의 부진으로 27세의 젊은 나이에 대표팀에서 물러났다.

 


66위 비토르 바이아

 


생년월일: 1969년 10월 15일
국적: 포르투갈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FC 포르투

포르투갈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골키퍼로 신속 정확한 상황판단 능력과 적절한 위치를 선점하는 능력으로 안정적인 선방을 보여줬으며 훌륭한 리더십과 강인한 정신력을 겸비했다.

포르투의 전설로 이름을 날린 바이아는 포르투에서는 프리메이라 리가 우승 10회, 타사 데 포르투갈 5회 우승은 물론 2002-03 시즌 UEFA컵 우승을 이뤄내 미니 트레블을 이뤘으며 2003-04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하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으며 개인적으로도 포르투갈 프리메이라 리가 올해의 선수상을 2회 수상했으며 1992년 포르투갈 골든볼 수상, 1994-95 시즌 ESM 올해의 팀 선정, 2003-04 시즌 UEFA 클럽 최우수 골키퍼상과 2004 베스트 유러피언 골키퍼에 선정되며 당대 유럽 최고의 수문장 중 하나로 명성을 떨쳤다.

대표팀에서도 유로 1996에서 조별리그를 1위로 통과해 8강에 진출했으며 유로 2000에서는 독일, 잉글랜드, 루마니아와 죽음의 조를 형성했음에도 3승으로 돌파해 8강에서 터키의 돌풍마저 잠재우고 준결승에 진출하는 등, 대표팀의 전성시대를 이끌었으나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우승후보로 평가받았음에도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처참한 성적을 내며 대표팀 마무리를 다소 아쉽게 했다.

여담으로 바이아는 포르투에서 UEFA컵과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했으며 바르셀로나에서 컵 위너스컵을 우승하며 3대 유럽 대항전을 모두 석권한 경력이 있다.



65위 프라뇨 글라세르

 


생년월일: 1913년 1월 7일
국적: 유고슬라비아
신체조건: 키 186cm
주 소속팀: 그라단스키 자그레브

1930년대 후반과 1940년대 초반 세계 최고의 골키퍼로 뛰어난 반사신경을 앞세운 선방 능력은 물론이고 공을 주먹으로 쳐내며 필드 중앙선까지 쳐내 철권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눈치가 굉장히 빨라 페널티킥 방어에 능했는데 커리어 통산 94번의 페널티킥 상황에서 무려 73번이나 막아냈다.

통산 1225번의 경기에서 활약한 글라세르는 BSK 베오그라드, 그라단스키 자그레브, 파르티잔 등지에서 활약하며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4회 우승을 이뤄냈고 크로아티아 독립국 시절에는 크로아티아 3회 우승을 이뤄내며 1940년대 동유럽 및 중유럽을 대표하는 골키퍼로 이름을 날렸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 활약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유고슬라비아로부터 잠시 독립했던 크로아티아 독립국에서도 대표팀 주전으로 활약했다. 여담으로 손이 단단했는데 이에 자부심을 느낀 글라세르는 골키퍼 장갑을 끼지 않고 경기했다.



64위 한스 반 브로이켈렌

 


생년월일: 1956년 10월 4일
국적: 네덜란드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PSV 에인트호번

반 데 사르 이전 네덜란드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로 재빠른 반사신경에서 나오는 탁월한 선방 능력은 물론이고 빠른 발을 활용한 넓은 커버 범위를 장기로 삼았으며 근엄함 성격과 훌륭한 프로 정신으로 인해 팬들로부터 마을 목사님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PSV 에인트호번에서 전성기를 누린 반 브로이켈렌은 PSV에 머무는 동안 1987-88 시즌 트레블을 포함해 에레데비시 6회 우승 및 KNVB컵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반 브로이켈렌 개인도 네덜란드 올해의 골키퍼를 4회 수상했고 1988년에는 IFFHS 월드 베스트 골키퍼 선정 과정에서 2위를 차지했다.

오랑예 군단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펼친 반 브로이켈렌은 세 번의 UEFA 유로와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 참가했으며 1988년에 열린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는 팀의 우승에 기여하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유로 1992에서도 준결승에 진출했다.



63위 로돌포 로드리게스

 


생년월일: 1956년 1월 20일
국적: 우루과이
신체조건: 키 191cm / 몸무게 90kg
주 소속팀: 클루브 나시오날

1970년대 후방부터 80년대 중반까지 남미 정상급 골키퍼로 이름을 날렸던 선수로 큰 키와 긴 팔다리, 그리고 높은 점프력을 잘 활용했으며 1대 1 상황에서 침착하게 전진하며 거리를 좁히는 능력도 훌륭했으며 이런 능력을 보여줘 사람들에게 표범이라 불렸다.

클루브 나시오날과 산투스에서 전성기를 보낸 루돌포 로드리게스는 전자의 클럽에서는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80년에는 자국리그에 이어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도 연달아 제패하며 트레블을 이뤄냈다. 이후 산투스로 이적해서도 뛰어난 기량을 분출하며 1984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우승을 이뤄냈는데 이는 산투스의 20세기 마지막 주립 리그 우승이었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이어나갔던 로드리게스는 1980 문디알리토 우승과 1983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뤄냈으며 엘 문도가 선정하는 남미 올해의 선수 10위 안에 5회 선정되었고 1984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4위에 올랐다.



62위 위르겐 크로이

 


생년월일: 1946년 10월 19일
국적: 동독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BSG 작센링 츠비카우

동독 축구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로 평가받는 인물로 엄청난 순발력과 신속정확한 판단력에서 나오는 선방 능력은 제프 마이어, 디노 조프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고 전해진다.

소속팀 작센링 츠비카우에서 동독컵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5-76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 4강에 진출하는 등 군계일학의 활약을 펼치며 동독 올해의 선수상을 3회 수상했다.

동독 대표팀 소속으로도 1972 뮌헨 올림픽 동메달, 1974 서독 월드컵 8강, 그리고 1976 몬트리올 올림픽 금메달을 이뤄내는 기염을 토하는 등 뛰어난 기량을 바탕으로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2회 선정되었다.



61위 안드레아 마샬리

 


생년월일: 1902년 7월 22일
국적: 우루과이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클루브 나시오날

1920년대 우루과이 축구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슛 스토퍼로 키가 매우 작았으나 번뜩이는 다이빙 능력으로 자신의 신체적 약점을 훌륭하게 보완했으며 이런 플레이스타일 때문에 팬들로부터 다이버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클럽 커리어의 전부를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이어나갔던 마샬리는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5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의 챔피언이 격돌하는 슈퍼컵 코파 알다오에서도 2회 우승을 이뤄내며 아니발 파스, 루돌포 로드리게스와 함께 클루브 나시오날 3대 골키퍼로 칭송받았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부동의 주전으로 활약하며 1924 파리 올림픽과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 모두 우승하며 두 번이나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며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3회 우승을 이뤄내며 우루과이 축구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이뤄냈으나 1930 우루과이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이 예상되었으나 알베르토 수피치 감독이 정해놓은 통행금지 시간을 어겨 대표팀에서 축출되는 수모를 맛보며 월드컵 우승의 영예와 함께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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