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사를 빛낸 50개의 왕조들- 32편 침체기 세리에 A의 부흥을 이끈 이탈리아의 국민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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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사를 빛낸 50개의 왕조들- 32편 침체기 세리에 A의 부흥을 이끈 이탈리아의 국민구단

토르난테 2023. 10. 2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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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1986

『UEFA 플라크 소유자』 유벤투스 FC

(The UEFA Plaque Owner Juventus FC)

토털 풋볼과 카테나치오의 융합체, 조나 미스타로 유럽 축구의 헤게모니를 지배한 왕조

 


성적

세리에 A: 6회 우승 (1976-77, 1977-78, 1980-81, 1981-82, 1983-84, 1985-86)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 (1978-79, 1982-83)

UEFA 컵: 1회 우승 (1976-77)

UEFA 컵 위너스컵: 1회 우승 (1983-84)

유러피언 컵: 1회 우승 (1984-85)

UEFA 슈퍼컵: 1회 우승 (1984)

인터콘티넨탈컵: 1회 우승 (1985)

 


소개

1960년대 카테나치오로 흥했던 이탈리아 축구 클럽은 대인 방어를 손쉽게 무력화시키는, 즉 유기적인 스위칭 플레이의 극한인 토털 풋볼이 대세가 되면서 자연스레 사라졌다. 실제로 토털 풋볼의 아약스는 유러피언 컵 결승에서 유벤투스와 인테르를 꺾고 빅이어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에 유벤투스의 레전드 선수이자 회장인 지암피에로 보니페르티는 1976년에 밀란의 레전드 지오반니 트라파토니를 감독에 앉히며 토털 풋볼의 혁신성과 고전적인 카테나치오를 융합하는 장기적인 전술적 프로젝트와 이에 따라 대대적인 유망주 발굴과 이들을 중심으로 팀을 구성한다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계획한다.

디노 조프, 주세페 푸리노, 로베르토 베테가, 프랑코 카우시오라는 기존 주축들을 중심으로 가에타노 시레아, 클라우디오 젠틸레, 파울로 로시, 마르코 타르델리 같은 유망주들을 팀의 주축으로 삼았다. 그리고 1976-77 시즌 UEFA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그 노력이 결실을 봤다. 부족한 공격형 미드필더 포지션은 리암 브래디, 미셸 플라티니, 즈비그니에프 보니엑과 같은 선수로 채웠다.

이들이 토털 풋볼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카테나치오의 색채를 입힌 전술은 조나 미스타, 이탈리아어로 유동적이고 복합적인 공간 활용이란 뜻이다. 리베로를 포함한 세 명의 중앙 수비수를 두고 왼쪽에는 측면 수비수를 두지만 오른쪽에는 윙어를 두는 대형으로 수비수를 네 명, 미드필더를 네 명, 공격수를 두 명을 두지만 4-4-2 시스템보다는 3-5-2 시스템과 유사한 모습을 하고 있어며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4-3-3 시스템과도 비슷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조나 미스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박스를 참고하기 바란다.

 

 

유벤투스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구단이 된 이유

국민 구단 보통 유럽의 축구 구단들은 지역 주민들이 만든 클럽이며 이런 지역 주민들의 서포팅으로 구단을 유지하거나 발전시키며 지역을 대표해 다른 지역의 팀들을 꺾으며 같은 지역의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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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들과 함께 유벤투스를 세리에 A 6회 우승은 물론 1976-77 시즌 UEFA컵과 1983-84 시즌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에 이어 1984-85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을 우승하며 최초로 3대 UEFA 클럽 대항전을 모두 우승하며 UEFA 플라크를 받게 되었다.

특히 1984-85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과 인터콘티넨탈 컵을 우승하며 유럽 챔피언과 세계 챔피언에 올랐다. 유러피언 컵에서 일베스, 그라스호퍼, 스파르타 프라하, 보르도를 차례로 꺾고 결승에 올라 디펜딩 챔피언이자 지난 유라피언 슈퍼컵 상대였던 리버풀을 만났다. 결승전에서는 그 유명한 헤이젤 참사가 일어나는 등 경기 외적으로 좋지 않은 요소들이 많았지만 1-0으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했으며 시즌이 끝난 뒤에도 인터콘티넨탈 컵에서는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와 2-2 무승부를 거두었고 승부차기 끝에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 챔피언의 영광을 누렸다. 이 경기는 양 팀의 훌륭한 경기력으로 많은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다고 전해진다.

트라파토니의 유벤투스가 보여준 조나 미스타는 1980년대에 이탈리아에서 유행했던 비대칭 포메이션과 독일 및 남미에서 유행했던 3백 시스템에 큰 영향을 줬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다른 왕조가 보여준 철학으로 인해 조나 미스타는 대세에서는 밀렸다.

 

최초로 3대 UEFA 주관 유럽 대항전을 모두 석권해 UEFA 플라크를 받은 유벤투스.

 


주요 감독

 


지오반니 트라파토니

선수 시절은 밀란의 레전드이지만 감독으로서는 유벤투스에서 전성기를 맞이한다.

카테나치오가 토털 풋볼에 의해 사장될 위기에 처하자 조나 미스타라는 토털 풋볼과 카테나치오를 결합한 새로운 전술로 이탈리아의 방식으로 토털 풋볼에 맞섰던 선구자다.

이런 선구적인 축구로 유벤투스는 이탈리아와 유럽을 대표하는 최강의 축구팀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탈리아의 국민구단이 유벤투스로 자리 잡는데 큰 공헌을 한다.

여섯 번의 리그 우승과 유러피언 컵 우승을 포함해 3대 유럽 대항전을 모두 우승했으며 총 14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ACE Card

 

 

이름: 가에티노 시레아
출생년도: 1953년 5월 25일
포지션: 리베로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유벤투스의 황금기를 이끈 리베로로 뛰어난 통솔력과 정확한 커버 플레이는 물론 롱패스와 중거리 슈팅 같은 공격적인 재능에도 능했으며 냉정한 성격으로 돌발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팀을 잘 수습했다.

트라파토니 체제에서 유벤투스의 리베로를 맡아 구단의 세리에 A 7회 우승과 각 한 차례의 UEFA컵, 유러피언 컵 위너스 컵, 유러피언컵을 모두 우승하며 구단 역사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선수가 되었다.

 

 

 

이름: 미셸 플라티니
출생년도: 1955년 6월 21일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4kg

1980년대 상반기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로 1983년부터 1985년까지 발롱도르 3회 연속 수상을 기록하며 남미의 지쿠, 디에고 마라도나에 대한 유럽의 대답이라 불렸다. 드넓은 시야와 창의적인 패싱력을 바탕으로 하는 플레이메이킹은 일품이었으며 경기가 안 풀릴 때에는 3선 지역까지 내려가서 볼을 순환시켰다. 그리고 전방에서 동료들과 연계하며 많은 득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훌륭한 킥력을 바탕으로 하는 롱 패스는 당대를 넘어 역대에서도 최고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셍테티엔에서 유럽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등극하며 유벤투스로 이적했으며 비안코네리에서 플라티니는 세리에 A 2회 우승과 코파 이탈리아 1회 우승, 그리고 그리고 1983-84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을 우승했으며 1984-85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을 우승하며 유벤투스 역사상 최초의 빅 이어 달성에 큰 공을 세우며 단 5년만 활약하고도 유벤투스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반드시 거론될 정도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플라티니는 유벤투스에서 1983-84 시즌 구에린 도르를 수상했으며 1984-85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득점왕을 차지하며 1983년부터 1985년까지 3년 연속으로 발롱도르를 수상하며 당대 최강의 선수임을 만천하에 알렸다.

 

 

이름: 디노 조프
출생년도: 1942년 2월 28일 
포지션: 골키퍼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8kg

롱런의 상징, 부폰과 함께 이탈리아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꼽히며 엄청난 선방 능력과 거침없는 카리스마로 수비라인을 이끌었던 위대한 주장이며 40세까지 기량을 유지했다.

유벤투스의 황금기를 이끌며 비안코네리의 세리에 A 6회 우승과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은 물론 1976-77 시즌 UEFA컵 우승까지 달성해 구단을 이탈리아 최고의 인기 팀으로 만들었다.


베스트 일레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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