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사를 빛낸 50개의 왕조들 14편- 유럽 무대를 공습한 마자르의 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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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사를 빛낸 50개의 왕조들 14편- 유럽 무대를 공습한 마자르의 공군

토르난테 2023. 8. 16.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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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1956

부다페스트 혼베드

'매직 마자르의 중추'

 


성적

넴제티 버이녹샤그: 5회 우승 (1949–50, 1950, 1952, 1954, 1955)

 


소개

키스페스트란 이름으로 창단했으며 우승컵과는 거리가 멀었던 헝가리의 평범한 클럽이었으나 헝가리가 공산화된 뒤 헝가리 공군이 인수하며 부다페스트 혼베드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는데 그 덕분에 입대라는 명목 하에 당대 최강의 대표팀 매직 마자르 군단의 다수를 영입할 수 있었다.

첫 지휘봉을 잡은 푸스카스 페렌치 시니어는 자신의 아들이자 에이스 푸스카스 페렌치와 보직 요제프를 팀의 코어로 삼았으며 이외에도 코츠시슈, 그로시치, 부다이, 로란트 등을 영입하며 MTK 헝가리아와 페렌츠바로시, 우이페슈트 등 기존 강호들을 제치고 1949-50 시즌 및 1950 시즌 넴제티 버이녹샤그 우승을 이뤄냈다.

그는 혼베드의 기틀을 다졌으나 지병으로 1951년이 끝나자 감독직을 물러났고 얼마 뒤 사망했다. 푸스카스 페렌치 시니어가 만든 팀을 물려받은 칼마르 예뇌는 넴제티 버이녹샤그 3회 우승을 추가했으며 국제적으로도 부활절 토너먼트에서 아우스트리아 빈과 라피트 빈을 격파했음은 물론 소련의 강자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와의 경기에서도 3-2로 승리했다.

유럽에서는 잉글랜드의 울버햄튼과 함께 최고의 클럽으로 선보였으며 울브스의 홈구장에서 열린 친선전에서 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혼베드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울브스는 홈 어드벤티지를 받았을 뿐이라며 공식적으로 제대로 겨루면 혼베드가 이긴다는 주장을 했다. 이 논쟁은 훗날 UEFA 챔피언스리그의 전신인 유러피언 컵 출범에 큰 영향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1956년 헝가리에선 공산정권에 반대하는 민중혁명이 일어났고 헝가리 공산정부는 혁명군을 제압하기 위해 외세인 소련을 불려들이는 추태를 보였기에 혼베드의 푸스카스, 코츠시슈, 치보르는 혼베드를 이탈해 스페인으로 떠났으며 감독 칼마르 예뇌 역시 스페인으로 떠났다.


주요 감독

 


칼마르 예뇌

푸스카스 페렌츠 시니어의 팀을 물려받아 한층 더 강력한 혼베드를 만든 칼마르는 부다페스트 혼베드 구단 역사상 최고의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헝가리 대표팀 감독 세베슈 구스타브와 함께 전 지역에서의 유기적인 스위칭 플레이를 주장했던 소셜리스트 풋볼의 지지자로 빠른 패스와 적절한 스위칭 플레이를 바탕으로 팀을 지휘해 넴제티 버이녹샤그 3회 우승을 이뤄냈다.

헝가리 혁명 이후에는 외세의 힘을 빌려 국민들을 탄압한 정부에 실망해 스페인으로 떠나 라리가에서 감독직을 이어나가며 스페인 축구의 발전에 공헌하기도 했다.


ACE Card

 

 

이름: 푸스카스 페렌츠
출생년도: 1927년 4월 1일
포지션: 인사이드 포워드, 센터 포워드, 아웃사이드 포워드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72kg


축구 역사상 최고의 유럽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선수로 오른발과 헤딩을 하지 못했음에도 오직 왼발로만 축구계를 평정했으며 뚱뚱한 체구와는 다르게 빠른 스피드를 보유했으며 우수한 볼 컨트롤과 테크닉, 그리고 공격을 주도하는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모두 겸비했으며 특히 드래그 백을 실전에서 처음 상대한 선수로 유명했다.

자타공인 부다페스트 혼베드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혼베드에서 정규리그 넴제티 버이녹샤그 5회 우승했고 득점왕을 4회 수상하는 등 구단의 황금기에 크게 기여했으나 헝가리 혁명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소련군과 함께 자국민을 학살한 정부에게 실망해 스페인으로 망명했다.

 

 

이름: 코츠시슈 샨도르
출생년도: 1929년 9월 21일
포지션: 센터 포워드, 인사이드 포워드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3kg

1950년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평가받는 선수로 우수한 득점력 및 탄탄한 기본기에서 나오는 유려한 연계플레이를 겸비했음은 물론 특히 헤더를 활용해 득점하는 부분에서는 축구사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아 황금 머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1950년부터 1956년까지 혼베드에서 활약하며 공식전 176경기에 출전해 217골을 기록한 코츠시슈는 정규리그 4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리그 득점왕을 3회 수상하는 활약을 펼쳤으나 헝가리 혁명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소련군과 함께 자국민을 학살한 정부에게 실망해 스페인으로 망명했다.

 

 

이름: 보직 요제프
출생년도: 1925년 11월 28일
포지션: 하프백 전 포지션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3kg

당대는 물론이고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추앙받는 선수로 후방에서 정확한 패스 능력과 우수한 볼 컨트롤, 그리고 왕성한 활동량과 뛰어난 대인 수비 능력을 바탕으로 중원을 장악했으며 전술안도 우수해 그라운드에서 감독 대신 선수단을 지휘하기도 했으며 기습적인 중거리 슈팅으로 포문을 여는데에도 능했다.

부다페스트 황금기의 중원을 이끈 보직은 넴제티 버이녹샤그 5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52년에는 헝가리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다른 에이스들과는 다르게 헝가리 혁명 이후에도 부다페스트 혼베드에서 뛰면서 원 클럽맨으로 은퇴했기에 헝가리 공산 정권 시절에는 푸스카스, 코츠시슈보다 보직의 인기가 더 많았던 시절도 있었다.


베스트 일레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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