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사를 빛낸 50개의 왕조들 8편- 이탈리아 구단 최초의 중유럽 챔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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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사를 빛낸 50개의 왕조들 8편- 이탈리아 구단 최초의 중유럽 챔피언

토르난테 2023. 7. 31.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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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1941

 

『세계를 떨게 만드는 전대』 볼로냐 FC
(Lo squadrone che tremare il mondo fa)

 

이탈리아 구단 최초의 미트로파 컵 챔피언

 


성적

세리에 A: 4회 우승 (1935–36, 1936–37, 1938–39, 1940–41)

미트로파컵: 2회 우승 (1932, 1934)

 


소개

1920년대 초대 감독이었던 헤어만 펠스너 감독의 피나는 노력으로 이탈리아 내에서 가장 잘 나가는 구단 중 하나였던 볼로냐는 펠스너 감독이 새로운 도전을 위해 팀을 떠남과 동시에 유벤투스의 약진으로 인해 자국 무대에서의 패권을 내줬다.

그래도 세리에 A 상위권은 꾸준히 유지해서 미트로파컵에서 나갔는데 미트로파컵에서 다소 기를 쓰지 못했던 유벤투스와 다르게 우루과이 인사이드 포워드인 산소네와 페둘로, 그리고 센터 포워드 스키아비오의 맹활약으로 미트로파컵 결승에서 각각 퍼스트 비엔나와 아드미라 빈을 꺾고 대회 2회 우승이라는 업적을 이뤄냈다.

1935-36 시즌을 앞두고 부임한 헝가리 출신의 유대인 감독 베이시 아르파드는 볼로냐의 체계를 제대로 잡았는데 남미의 우루과이에서 유망한 센터하프 미켈레 안드레올로를 영입해 코르시-안드레올로-몬테산토라는 당대 유럽 최강이라 불리는 하프백 조합을 구성했다.

베이시의 지휘 아래 아래 비안코네리의 황금기를 이끈 카르카노가 떠난 유벤투스를 제치고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으며 1936-37 시즌에도 재차 스쿠테토를 들어올렸음은 물론 1937년 파리 만국박람회 국제대회에서는 소쇼, 슬라비아 프라하를 제치고 결승에 진출해 잉글랜드의 첼시를 4-1로 제압하며 이탈리아 역사상 최초로 국제대회에서 잉글랜드를 격파한 팀으로 이름을 남겼다.

그러나 베이시는 유대인이었던 탓에 무솔리니가 제정한 이탈리아 인종법에 의해 박해를 받아 이탈리아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팀의 정신적 지주 스키아비오도 은퇴했다. 그리고 이 위기 상황에서 볼로냐의 기틀을 세운 헤르만 펠스너가 지휘봉을 잡아 1938-39 시즌과 1940-41 시즌에 볼로냐의 우승을 달성하며 볼로냐 왕조의 역사를 매듭지었다.


주요 감독

 


베이시 아르파드

1930년대 중후반 볼로냐의 약진을 이끌었던 명장으로 센터하프에게 공격과 수비의 연결을 맡겼으며 인사이드 포워드와 아웃사이드 포워드, 그리고 센터 포워드의 스위칭 플레이를 지지했던 다뉴브 학파의 일원이었다.

미트로파컵 2연패를 이뤄냈음에도 불구하고 혼란에 빠졌던 볼로냐를 잘 수습했으며 수비의 핵이자 구단의 레전드 에랄도 몬젤리오가 팀을 떠났음에도 후보였던 디노 피오리니를 성장시키며 수비라인을 안정화시켰고 우루과이 대표팀에서 서브에 머물렀던 센터하프 안드레올로를 영입한 뒤 그에게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부여하며 공수 양면의 연결고리로 활용하며 후방 플레이메이커의 프로토타입을 선보였다.

우루과이 출신의 세 명의 플레이메이커와 다른 이탈리아 토종 선수들을 잘 조화시키며 세리에 A 2연패 및 파리 만국박람회 국제대회 우승을 이뤄내는 등 승승장구했던 베이시였으나 1937-38 시즌, 파시즘에 물든 이탈리아가 나치 독일의 뉘른베르크 인종법을 본뜬 이탈리아 인종법에 의해 박해를 받아 이탈리아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네덜란드에 정착했으나 훗날 네덜란드가 나치 독일에게 점령당했을 때 아우슈비츠로 끌려가 가족들과 함께 살해당하는 비극을 겪었다.


ACE Card

 

 

이름: 안젤로 스키아비오
출생년도: 1905년 10월 15일
포지션: 센터 포워드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69kg

1920년대 하반기와 1930년대 상반기에 이름을 날렸던 이탈리아 출신의 스트라이커로 단단한 피지컬에서 나오는 헤딩과 절묘한 위치 선정을 겸비한 전형적인 유럽식 스트라이커였다.

볼로냐의 원 클럽맨이자 구단 통산 최다 득점자인 스키아비오는 1920년대 세리에 A 출범 이전에 팀의 1차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1930년대의 2차 전성기 시절에도 세리에 A 2회 우승 및 미트로파컵 2회 우승을 추가했다.

 

 

이름: 미켈레 안드레올로
출생년도: 1912년 9월 6일
포지션: 센터 하프, 인사이드 포워드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71kg

1930년대 세계 최고의 하프백 중 한 명으로 견고한 수비력은 물론 양질의 패싱력을 모두 겸비했으며 드넓은 시야로 3선에서 플레이메이킹을 보여주며 후방 플레이메이커의 시조 격의 선수가 되었으며 우수한 기본기와 공격적인 재능으로 인사이드 포워드도 소화할 수 있었다.

우루과이 태생으로 원래는 우루과이의 명문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활약하다가 이탈리아로 건너와 볼로냐의 주축으로 전성기를 이끌며 로쏘블루의 세리에 A 4회 우승을 이뤄내며 이탈리아의 패권을 장악해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이름: 아마데오 비아바티
출생년도: 1915년 4월 4일
포지션: 아웃사이드 라이트, 인사이드 라이트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4kg

제2차 세계대전 직전과 직후에 활약했던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빠른 스피드와 화려한 기술을 겸비했으며 평발이었음에도 훌륭한 드리블로 상대를 제압했으며 특히 스텝 오버를 기가 막히게 구사하기로 이름이 높았으며 본 포지션인 아웃사이드 라이트는 물론 인사이드 포워드도 소화할 수 있었고 득점력도 준수했다.

당대 유럽 대륙을 대표하는 축구 강국인 이탈리아 대표팀의 주전 선수였던 비아바티는 1930년대 하반기 볼로냐의 전성시대를 이뤄내며 로쏘블루의 미트로파컵 2회 우승과 세리에 A 4회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베스트 일레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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