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사를 빛낸 50개의 왕조들 6편- 이탈리아 최초의 전국구 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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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사를 빛낸 50개의 왕조들 6편- 이탈리아 최초의 전국구 구단

토르난테 2023. 7. 24.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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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1935

 

『황금의 5년』 유벤투스 (Quinquennio d'oro』 Juventus)

 

최초로 세리에 A 5연패를 달성한 영광의 클럽

 


성적

세리에 A: 5회 우승 (1930-31, 1931-32, 1932-33, 1933-34, 1934-35)

 


소개

유벤투스는 세리에 A의 전신 대회 시절에도 2번의 우승을 경험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우승 후보 1순위로 평가받지는 못했는데 이는 1929-30 시즌, 이탈리아 프로축구 무대에서 세리에 A라는 이름의 전국리그를 출범한 첫 해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실제로 콤비, 칼리가리스, 로세타, 베르톨리니 등 이탈리아 대표팀 선수들을 다수 보유했고 라이문도 오르시라는 아르헨티나 무대의 거물을 데려왔음에도 주세페 메아차를 앞세운 인테르에게 개막 챔피언의 자리를 넘겨주기도 했다.

유벤투스는 대표팀 감독 포초외 함께 인사이드 포워드의 라인을 한층 내리는 일명 '메토도 시스템'을 바탕으로 중원에서 한층 더 원활한 빌드업으로 게임을 주도하던 플레이를 했던 명장 카를로스 카르카노에게 지휘봉을 맡겼는데 카르카노가 지휘봉을 잡자 유벤투스는 전술적으로 진보했으며 공격의 창의성을 기대하고 데려온 아르헨티나에서 데려온 용병인 아웃사이드 레프트 라이문도 오르시와 인사이드 라이트 레나토 체사레니가 적응을 마치는 호재가 더해졌기에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다. 이후 세계 최고의 센터하프라 불리던 아르헨티나의 루이스 몬티와 엄청난 골 결정력으로 경기장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될 수 있었던 펠리체 보렐까지 영입하며 세리에 A 5연패라는 방점을 찍었다.

이 시절의 유벤투스는 성적도 우수했지만 이탈리아 사회에 미친 영향력도 컸는데 그 당시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축구의 팬덤은 자신의 연고지에 국한되었으나 이 시절의 유벤투스는 세계 최초로 이탈리아 전국구의 팬덤을 보유했고 이는 이탈리아 내에서 축구의 위상이 타 스포츠 종목보다 앞서나갈 수 있었다.

실제로 저명한 저널리스트인 마리오 펜나키아는 유벤투스의 대단한 인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온 국민이 에두아르도 아넬리(당시 유벤투스의 구단주)의 팀을 응원한다. 알프스에서 시칠리아까지 연결되는 전례 없는 유행이 일어나고 있다. 흑백의 클럽 벳지는 귀중한 희귀품이 되며 이탈리아 챔피언의 경기 티켓은 아들에게 약속된 탐나는 상품이 된다. 유벤투스가 경기하는 토리노 및 (원정 경기를 나가는) 다른 도시가 신혼여행 일정에 포함된다. 그리고 벤티밀리아의 루카 페레로 후작이 의장을 맡은 해운 회사에서 유벤투스라는 이름의 대형 모터선이 건조되어 출항했고 바다로 나갔다."


주요 감독

 


카를로 카르카노

프로팀 알레산드리아와 이탈리아 대표팀의 감독을 맡았던 경력이 있는 카르카노는 1930-31 시즌을 앞두고 유벤투스의 지휘봉을 잡았다.

인사이드 포워드를 기존에 1.5선에서 2선으로 내리며 3선 하프백과의 원활한 볼 순환을 이뤄내며 점유율을 높여가는 축구를 구사했던 카르카노는 이탈리아 혈통의 남미인, 즉 오리운디를 적극적으로 기용하며 세리에 A 4연패를 기록했다.

그러나 1934-35 시즌이 진행되던 1934년 12월에 카를로 카르카노는 개인적인 이유로 해고당했다. 해고 사유는 그가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돌았기 떄문이었는데 그가 동성애자가 확실하지 않았음에도 그를 경질한 이유는 안 그래도 파시스트 기호를 달지 않았던 유벤투스를 좋게 보지 않았던 무솔리니 정권이 유벤투스를 견제하는 좋은 명분이 되었음은 물론 동성애 자체도 당대 사회상에서도 용납되지 않았기에 정부의 압박을 피하기 위해 경질했다는 소문이 있다.

어쨌든 당대 유벤투스의 황금기를 위한 질서를 세운 카르카노는 당대의 복잡한 사회상에 억울하게 희생되며 세리에 A 5연패의 마침표를 안타깝게 찍지 못한 비운의 지도자기도 했다. 유벤투스도 카르카노를 잃은 뒤에는 리그의 패권에서 멀어지는 비극을 겪었다.


ACE Card

 

이름: 라이문도 오르시
출생년도: 1901년 12월 2일
포지션: 아웃사이드 레프트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8kg

1930년대 자타공인 당대 최고의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빠른 스피드와 교묘한 드리블을 겸비해 상대 수비수를 속이며 크로스를 올려 공격수를 지원하는 능력과 왼발 슈팅으로 직접 마무리하는 능력 모두 훌륭했으며 중요한 경기에서 강한 면모를 보였다.

아르헨티나의 인디펜디엔테에서 활약하다가 유벤투스에 합류했는데 팀 공격의 핵심으로 활약하며 세리에 A 5연패를 이뤄냈는데 그와 페라리가 떠난 뒤에 리그 연속 우승이 끊겼을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이름: 루이스 몬티
출생년도: 1901년 5월 15일
포지션: 센터 하프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73kg

이탈리아계 아르헨티나인으로 왕성한 활동량을 보여주며 팀원들로부터 두 개의 날개란 뜻의 도블레 안초라 불렸으며 잔혹한 태클로 상대 공격수의 신체를 파괴하는 거친 플레이를 앞세워 상대팀에게는 도살자라 불렸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 활약하다 이탈리아의 유벤투스로 건너간 뒤에는 이탈리아 국적으로 귀화해 유럽 최고의 센터 하프로 이름을 굳혔는데 이러한 배경에는 아르헨티나에서 이탈리아로 선박으로 오는 기간에 살이 찌자 혹독한 수준으로 체중관리를 하며 폼을 빠르게 찾았을 정도로 경악할 만한 자기 관리 능력에 있었다.

 

 

이름: 지암피에로 콤비
출생년도: 1902년 11월 20일
포지션: 골키퍼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2kg

유벤투스와 이탈리아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팬들에게 고무인간이라 불렸던 1920년대 세계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이자 유벤투스의 원 클럽 맨이다.

유벤투스의 원 클럽맨으로 세리에 A 4연패를 이뤄냈는데 1933-34 시즌이 끝난 뒤 팬들과 동료들의 박수를 받으며 은퇴했다.


베스트 일레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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