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르난테 & Red Archive 선정 1983년 F.C.U Football Award

F.C.U Football Award/1980년대

토르난테 & Red Archive 선정 1983년 F.C.U Football Award

토르난테 2023. 7. 4.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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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1. 이 프로젝트는 티스토리 블로거이자 풋볼 크리에이터 연합(약칭 FCU) 소속 크리에이터 토르난테와 Red Archive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컨텐츠입니다.

2. 선정기간의 기준은 추춘제 리그의 경우에는 1982-83 시즌을 기준으로, 춘추제 리그의 경우에는 1983 시즌으로 잡았으며 1983년에 열린 국제대회를 모두 포함했습니다.

3. 상위 10인 外 최고의 축구선수 노미네이트는 출생일 순서대로 정렬했습니다.

4. 골든 보이의 기준은 해당 년도 12월 31일 기준 만 21세 이하의 선수로 한정되었으며 오직 한 번만 수상할 수 있습니다.

5. TOTY는 토르난테 혼자 선정하고 순위는 레드 아카이브와의 합산 및 토의로 선정해서 상충하는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6. 1980년 투표부터는 골든 쉴드는 최고의 수비수, 골든 렌즈는 최고의 미드필더, 골든 에로우는 최고의 공격수에게 수상하는 방식으로 변경했습니다.

 


1. 토르난테 & Red Archive 공동 선정, 1983년 최고의 축구선수

 

1983년 최고의 축구선수 최초 노미네이트 50인

 

 


공동10위

 

이름: 지쿠
출생일: 1953년 3월 3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플라멩구

 

1983년 최고의 선수 공동 10위에 첫 번째로 선정된 선수는 반 시즌만 뛰고도 플라멩구의 브라질 세리 A 우승에 크게 공헌한 지쿠를 선정했다.

지쿠는 반시즌만 뛰었음에도 공식전 29경기 20골 11도움이라는 경이적인 수치를 기록하며 여전히 세계 최강의 기량을 보였으나 하반기에 우디네세에 합류하며 나머지 시즌의 활약이 다음 해로 옮겨갔기에 10위에 머물렀다.

 

 

공동10위

 

이름: 칼하인츠 루메니게
출생일: 1955년 9월 25일
국적: 서독
소속팀: 바이에른 뮌헨

 

1983년 최고의 선수 공동 10위에 두 번째로 선정된 선수는 여전히 분데스리가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던 칼하인츠 루메니게를 선정했다.

비록 소속팀 바이에른 뮌헨에서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내지는 못했지만 이 시즌 루메니게는 공식전 42경기에 출전해 21골을 터트렸으며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9위

 

이름: 에데르
출생일: 1957년 5월 25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1983년 최고의 선수 공동 9위에 오른 선수는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에서 뛰어난 퍼포먼스를 선보인 에데르를 선정했다.

레프트윙과 스트라이커를 모두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었던 에데르는 소속팀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의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우승을 이뤄냈으며 브라질 세리 A에서도 3위를 차지하는데 공헌하며 브라질 세리 A 시즌 베스트 일레븐으로 선정되었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을 이뤄내며 1983년 남미 올해의 선수에서 3위에 올랐다.

 

 

8위

 

이름: 케니 달글리시
출생일: 1951년 3월 4일
국적: 스코틀랜드
소속팀: 리버풀 FC


1983년 최고의 선수 8위에 오른 선수는 잉글랜드 무대를 완벽하게 평정한 스코틀랜드의 공격수, 케니 달글리시를 선정했다.

킹 케니는 1982-83 시즌 리버풀에서 공식전 58경기에 출전해 20골을 기록하며 풋볼 리그 1부와 리그컵 더블 우승을 이뤄냈으며 달글리시 개인도 PFA 올해의 팀과 FWA 올해의 팀에 동시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공동 6위

 

이름: 엔조 프란체스콜리
출생일: 1961년 11월 12일
국적: 우루과이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1983년 최고의 선수 공동 6위에 오른 첫 번째 선수는 조국 우루과이를 남미 챔피언으로 이끈 엔조 프란체스콜리를 선정했다.

아르헨티나의 리버 플레이트에서 활약하던 엔조 프란체스콜리는 소속팀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개인은 27경기에 출전해 11골을 득점하며 이적 첫 시즌에도 좋은 모습을 보였으며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절륜한 플레이메이킹과 화려한 테크닉을 선보이며 상대 수비진을 무너트렸고 모레나와 아길레르에게 양질의 패스를 공급했음은 물론 결승전 1차전에서는 브라질을 상대로 선제골을 기록하며 2-0 승리를 이끌며 우승에 큰 공을 세워 대회 MVP로 선정되었다.

 

 

공동 6위

 

이름: 헤나투 가우슈
출생일: 1962년 9월 9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그레미우

 

1983년 최고의 선수 공동 6위에 오른 마지막 선수는 클럽 무대에서 남미와 세계 무대를 평정한 그레미우의 천재 헤나투 가우슈를 선정했다.

화려한 드리블로 가린샤의 재림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은 헤나투 가우슈는 자국 무대에서는 팀 단위의 가시적인 성과를 내진 못했지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는 강세를 보이며 플라멩구, 아메리카 데 칼리, 에스투디안테스, 페냐롤을 연파하고 남미 챔피언에 올랐으며 연말에 열린 인터콘티넨탈컵에서도 유럽 챔피언 함부르크를 상대로 멀티골을 득점하며 연장 혈투 끝에 2-1 승리를 이끌어냈다.

 

 

5위

 

이름: 디에고 마라도나
출생일: 1960년 10월 30일
국적: 아르헨티나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1983년 최고의 선수 5위에는 바르셀로나에서 유럽 무대에 도전장을 냈음에도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인 디에고 마라도나를 선정했다.

공격형 미드필더에서 한 칸 올라가 공격수 역할을 수행한 마라도나는 공격수로서도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이며 공식전 35경기에 출전해 23골을 득점했으며 특히 레알 마드리드와의 엘 클라시코에서는 5전 4승 1무라는 괴력을 선보였는데 특히 라리가 후반기에 만난 엘 클라시코에서는 동점골을 넣었는데 그때의 활약이 너무나도 대단해 바르셀로나 소속임에도 레알 마드리드 팬들의 기립박수를 받았으며 코파 델 레이에서도 2-1로 꺾는데 공헌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마라도나는 바르셀로나에서 코파 델 레이, 스페인 리그컵, 그리고 수페르코파 에스파냐 우승을 차지했다.

 

 

4위

 

이름: 펠릭스 마가트
출생일: 1953년 7월 26일
국적: 서독
소속팀: 함부르크 SV

 

1983년 최고의 선수 4위에는 힘부르크가 유럽 무대를 평정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펠릭스 마가트를 선정했다.

공격형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좌측 메짤라 및 레프트윙 등 다양한 포지션에서 활약한 마가트는 1982-83 시즌 47경기에 출전해 6골을 득점했는데 소속팀의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내며 키커지 선정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유러피언 컵에서도 결승전 유벤투스전에 벼락같은 중거리 슈팅으로 결승골을 기록하며 팀을 유럽 챔피언으로 올렸다. 명골키퍼 디노 조프조차 그의 슈팅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3위 브론즈볼

 

이름: 소크라치스
출생일: 1954년 2월 19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코린치안스

 

1983년 브론즈볼에는 지쿠가 떠난 브라질 무대에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이며 남미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소크라치스를 선정했다.

소속팀 코린치안스의 플레이메이커이자 해결사 역할을 맡았던 소크라치스는 공식경기 52경기에 출전해 36골을 득점하는 활약을 선보였는데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우승을 차지했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지쿠 대신 셀레상을 이끌며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을 이뤄냈다.

 

2위 실버볼

 

이름: 호베르투 파우캉
출생일: 1953년 10월 16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AS 로마

 

1983년 실버볼에는 AS 로마의 41년 만에 스쿠테토를 이끌어낸 로마의 여덟 번째 왕 호베르투 파우캉을 선정했다.

리드홀름 체제 로마의 플레이메이커이자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파우캉은 대표팀 동료 토니뉴 세레주와 로마의 후방 플레이메이커 아고스티노 디 바르톨로메이와 함께 강력한 중원 라인을 구성해 로마가 유벤투스를 승점 4점 차로 꺾고 우승하는데 공헌했다. 특히 파우캉은 세리에 A 평균 평점 6.77점을 받으며 세리에 A 외국인 최고의 선수로 뽑히기도 했다.

 

 

1위 골든볼

 

이름: 미셸 플라티니
출생일: 1955년 6월 21일
국적: 프랑스
소속팀: 유벤투스 FC


대망의 1983년 골든볼에는 유벤투스로 이적해서는 더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이탈리아 무대에도 성공을 거듭하고 있는 미셸 플라티니를 선정했다.

유벤투스에서 공식전 48경기에 출전해 28골을 득점한 플라티니는 코파 이탈리아에서 우승했으며 세리에 A와 유러피언 컵에서는 모두 준우승을 기록했지만 플라티니 개인은 세리에 A 득점왕 및 유러피언 컵 득점 2위에 오르는 활약을 펼쳤음은 물론 절륜한 패스로 팀 동료 파올로 로시를 득점왕으로 만들어주기도 했다.

 

상위 11인 外 최고의 축구선수 최종 노미네이트 19인

모르턴 올센 (덴마크 / RSC 안더레흐트)
다니엘 루이스바산 (스페인 / 아틀레틱 빌바오)
파울 브라이트너 (서독 / 바이에른 뮌헨)
알랭 지레스 (프랑스 / 지롱댕 보르도)
만프레트 칼츠 (서독 / 함부르크 SV)
그레엄 수네스 (스코틀랜드 / 리버풀 FC)
리카르도 보치니 (아르헨티나 / CA 인디펜디엔테)
주니오르 (브라질 / 플라멩구)
즈비그니에프 보니엑 (폴란드 / 유벤투스 FC)
고든 스트라칸 (스코틀랜드 / 에버딘 FC)
리나트 다사예프 (소련 /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안토니오 카브리니 (이탈리아 / 유벤투스)
루터 블리셋 (잉글랜드 / 왓포드)
우고 데 레온 (우루과이 / 그레미우)
칼하인츠 푀르스터 (서독 / VfB 슈투트가르트)
베른트 슈스터 (서독 / FC 바르셀로나)
루디 푈러 (서독 / 베르더 브레멘)
카레카 (브라질 / 상 파울루 FC)
호르헤 부루차가 (아르헨티나 / 인디펜디엔테)

 


2. 토르난테 선정 1983년 최고의 축구감독

 

골든 바통

 

이름: 에른스트 하펠
국적: 오스트리아
소속팀: 함부르크 SV
주 업적: 1982-83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 유러피언 컵 우승


1983년 골든 바통은 분데스리가와 유러피언 컵을 모두 우승하는 기염을 토한 에른스트 하펠을 선정했다.

함부르크는 북독의 라이벌 베르더 브레멘과 치열하게 경합하며 같은 승점을 기록했으나 더 많이 득점하고 더 적게 실점하며 분데스리가 우승을 차지했으며 유러피언 컵에서는 동독의 디나모 베를린과 그리스의 올림피아코스를 격파한 것을 시작으로 8강 디나모 키이우, 4강 레알 소시에다드, 결승 유벤투스라는 죽음의 대진을 모두 격파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실버 바통

 

이름: 알렉스 퍼거슨
국적: 스코틀랜드
소속팀: 에버딘 FC
주 업적: 1982-83 시즌 스코티시 컵 우승, UEFA 컵 위너스컵 우승 및 1983 UEFA 슈퍼컵 우승


1983년 실버 바통은 에버딘 구단 역사상 첫 유럽 대항전 우승을 이뤄냈으며 자국 컵대회도 동시에 석권하며 2관왕을 이뤄낸 알렉스 퍼거슨을 선정했다.

비록 정규리그에서는 3위에 머물렀지만 퍼거슨의 에버딘은 얕은 스쿼드로도 치열한 일정을 잘 소화했는데 컵 위너스컵에서는 8강전에서 독일의 거함 바이에른 뮌헨을 이겼으며 결승전에서는 레알 마드리드를 무찌르며 컵 위너스컵 챔피언으로 올라섰다. 그리고 시즌이 끝난 뒤에 열린 슈퍼컵에서는 유럽 챔피언 함부르크를 무실점으로 격파하기도 했다.

 

브론즈 바통

 

이름: 지오반니 트라파토니
국적: 이탈리아
소속팀: 유벤투스 FC
주 업적: 1982-83 코파 이탈리아 우승 및 세리에 A 준우승, 유러피언 컵 준우승


1983년 브론즈 바통은 플라티니와 보니엑을 영입하며 조나 미스타를 한층 더 완성시킨 지오반니 트라파토니를 선정했다.

주축 선수들 대부분이 월드컵에서 높게 올라간 탓에 체력적인 문제를 겪었음에도 유벤투스는 세리에 A와 유러피언 컵에서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코파 이탈리아에서는 챔피언에 오르며 모든 대회를 준수하게 치를 수 있었으며 플라티니와 보니엑의 안정적인 적응을 도왔다.

 

상위 3인 外 최고의 축구감독 노미네이트

 

이름: 밥 페이즐리
국적: 잉글랜드
소속팀: 리버풀 FC
주 업적: 1982-83 잉글랜드 풋볼 리그 1부 우승,리그컵 우승

이름: 닐스 리드홀름
국적: 스웨덴
소속팀: AS 로마
주 업적: 1982-83 세리에 A 우승

이름: 오마르 보라스
국적: 우루과이
소속팀: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주 업적: 1983 코파 아메리카 우승

이름: 볼로디미르 예메츠
국적: 소련
소속팀: 드니프로 드니프로페트로프스크
주 업적: 1983 소련 탑 리그 우승

이름: 폴 반 힘스트
국적: 벨기에
소속팀: RSC 안더레흐트
주 업적: 1982-83 UEFA컵 우승

이름: 하비에르 클레멘테
국적: 스페인
소속팀: 아틀레틱 빌바오
주 업적: 1982-83 라리가 우승

이름: 발디에르 에스피노사
국적: 브라질
소속팀: 그레미우
주 업적: 1983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인터콘티넨탈컵 우승

 


3. 토르난테 선정 1983년 축구 특별상

 

토르난테 선정 골든 글러브

 

이름: 리나트 다사예프
출생일: 1957년 6월 13일
국적: 소련
소속팀: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1983년 세계 최고의 골키퍼에는 소련의 철의 장막 리나트 다사예프를 선정했다.

비록 그의 소속팀 스파르타크 모스크바는 리그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34경기에서 25실점만 허용하며 리그에서 가장 적은 실점을 기록했는데 이는 다사예프의 공이 컸으며 당연하게도 소련 탑 리그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올랐으며 각종 매체에서 유럽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토르난테 선정 골든 보이

 

이름: 헤나투 가우슈
출생일: 1962년 9월 9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그레미우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83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토르난테 선정 골든 쉴드

 

이름: 우고 데 레온
출생일: 1958년 2월 27일
국적: 우루과이
소속팀: 그레미우


1983년을 대표하는 최고의 수비수에는 결승전에서 머리에 피가 흐름에도 강인한 정신력으로 투혼을 보여주며 리베르타도레스 트로피를 들어올린 우고 데 레온을 선정했다.

지능적인 리베로이자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캡틴 우고 데 레온은 그레미우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페냐롤과의 결승전에서는 머리가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경기를 소화하는 부상 투혼을 보이며 우승을 차지하는데 공헌했다.

 

 

토르난테 선정 골든 렌즈

 

이름: 미셸 플라티니
출생일: 1955년 6월 21일
국적: 프랑스
소속팀: 유벤투스 FC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83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토르난테 선정 골든 에로우

 

이름: 디에고 마라도나
출생일: 1960년 10월 30일
국적: 아르헨티나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83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토르난테 선정 골든 암밴드

 

이름: 소크라치스
출생일: 1954년 2월 19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코린치안스

 

1983년 세계 최고의 주장에는 소크라치스를 선정했다. 코린치안스의 주장이자 에이스였던 그는 경영진과 합의해 구단에 민주주의를 도입해 성공적으로 정착시키며 선수단과 구단 직원들이 투표로 구단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해 구단의 대소사를 결정하는데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는 혁신적인 방식을 정착시켰다.

"Ganhar ou perder, mas sempre com democracia" 즉 이기든 지든 민주주의와 함께라는 구호로 구단을 운영했는데 이는 세간으로부터 코린치안스식 민주주의라 불렸다. 이 운동으로 인해 기존에 수직적인 리더십이 유행하던 시기에 수평적인 리더십을 선보인 소크라치스는 새로운 리더상을 완벽하게 제시했기에 그를 최고의 주장으로 선정했다.

 


4. 토르난테 선정 1983 Team Of The Year

 

 

골키퍼

 

 

이름: 리나트 다사예프
출생일: 1957년 6월 13일
국적: 소련
소속팀: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83년 특별상 문단 골든 글러브 항목 참조

 

 

센터백

 

 

이름: 칼하인츠 푀르스터
출생일: 1958년 6월 25일
국적: 서독
소속팀: VfB 슈투트가르트

 

1983년 세계 최고의 센터백에는 서독의 명품 대인마커 칼하인츠 푀르스터를 선정했다.

푀르스터는 강인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지난 시즌 9위에 머물렀던 슈투트가르트를 분데스리가 3까지 올렸으며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도 전반기에는 인터내셔널 클래스 스토퍼 부문 1위, 후반기에는 월드클래스 스토퍼 부문 1위를 동시에 차지해 키커 올해의 수비수로 선정되었다.

 

 

센터백

 

 

이름: 우고 데 레온
출생일: 1958년 2월 27일
국적: 우루과이
소속팀: 그레미우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83년 특별상 문단 골든 쉴드 항목 참조

 


라이트백

 

 

이름: 만프레트 칼츠
출생일: 1953년 1월 6일
국적: 서독
소속팀: 함부르크 SV


1983년 세계 최고의 라이트백에는 함부르크의 분데스리가와 유러피언 컵 제패를 이뤄낸 만프레트 칼츠를 선정했다.

그 당시 라이트백으로는 혁신적인 수준으로 공격에 가담했으며 오른쪽에서 플레이메이킹까지 이뤄낸 칼츠는 특유의 오른발 크로스를 바탕으로 공격 활로를 개척하며 소속팀의 약진을 이끌었다.

 

 

레프트백

 

 

이름: 안토니오 카브리니
출생일: 1957년 10월 8일
국적: 이탈리아
소속팀: 유벤투스 FC


1983년 세계 최고의 레프트백에는 유벤투스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던 미남 수비수 안토니오 카브리니를 선정했다.

지아친토 파케티 못지않은 공격력을 지닌 카브리니는 소속팀 유벤투스의 왼쪽 공격을 이끌며 코파 이탈리아 우승 및 리그와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이뤄냈다. 특히 결승전에서 칼츠와 카브리니의 치열한 맞대결은 희대의 명장면으로 손꼽혔다.

 

 

수비형/중앙 미드필더

 

 

이름: 펠릭스 마가트
출생일: 1953년 7월 26일
국적: 서독
소속팀: 함부르크 SV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83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수비형/중앙 미드필더

 

 

이름: 호베르투 파우캉
출생일: 1953년 10월 16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AS 로마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83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공격형 미드필더/윙어

 

 

이름: 미셸 플라티니
출생일: 1955년 6월 21일
국적: 프랑스
소속팀: 유벤투스 FC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83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공격형 미드필더/윙어

 

 

이름: 소크라치스
출생일: 1954년 2월 19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코린치안스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83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센터 포워드

 

 

이름: 케니 달글리시
출생일: 1951년 3월 4일
국적: 스코틀랜드
소속팀: 리버풀 FC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83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센터 포워드

 

 

이름: 디에고 마라도나
출생일: 1960년 10월 30일
국적: 아르헨티나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83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1983 TOTY 베스트 일레븐

 

 


5. Red Archive 선정 1983년 세계 최고의 축구팀

 

1위 골든 팀

 

 

함부르크 SV

성적: 1982-83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 유러피언 컵 우승

서독 분데스리가 디펜딩 챔피언 함부르크는 분데스리가 2연패에 성공하고 유로피언 컵 우승까지 맛보는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분데스리가에서 34경기 20승 12무 2패, 79득점 33실점이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34경기 23승 6무 5패, 76득점 38실점을 기록한 베르더 브레멘과 승점이 52점으로 동률이었으나 득실차에서 앞선 함부르크가 우승을 차지했다.

유러피언 컵에서도 BFC 디나모, 올림피아코스, 디나모 키이우, 레알 소시에다드를 꺾고 결승에 진출하였으며 결승에서는 명장 지오반니 트라파토니가 이끄는 조나 미스타의 팀 유벤투스를 만났으나 에른스트 하펠 감독의 지략과 펠릭스 마가트의 환상적인 골로 함부르크가 1-0 승리를 거두며 유럽의 왕좌에 올랐다.

비록 슈퍼컵과 인터콘티넨탈 컵에서는 각각 애버딘과 그레미우에게 패배하였지만 함부르크의 주전 선수 일부가 이탈하는 핸디캡이 있었기에 어느 정도 참작이 가능하다.

 

 

2위 실버 팀

 

 

그레미우

성적: 1983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인터콘티넨탈컵 우승

비록 자국 무대의 전국리그와 주립리그는 놓쳤지만 국제 대회인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 컵을 모두 우승하며 더블을 달성했다. 캄페오나투 가우슈 우승은 인테르나시오나우에게 내주었고, 전국 리그에서는 부진하였지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는 달랐다.

조별 리그에서 플라멩구, 볼리바르, 블루밍을 모두 제압하며 5승 1무 무패로 준결승에 진출하였고, 준결승에서도 에스투디안테스와 아메리카 데 칼리를 꺾고 결승에 진출하였다. 결승에서는 디펜딩 챔피언 페냐롤을 만나 1차전 원정에서 1-1 무승부, 2차전 홈에서 2-1 승리를 거두며 합산 스코어 3-2로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다. 또한 인터콘티넨탈 컵에서는 유러피언 컵 챔피언 함부르크를 2-1로 꺾고 우승하며 세계 챔피언으로 등극했다.

 

 

3위 브론즈 팀

 

 

에버딘 FC

 

성적: 1982-83 시즌 스코티시 컵 우승, UEFA 컵 위너스컵 우승 및 1983 UEFA 슈퍼컵 우승

스코틀랜드의 다크호스 애버딘은 스코틀랜드 프리미어 디비전에서 비록 우승은 못했지만 좋은 성적을 냈고 스코티시 컵과 유로피언 컵 위너스 컵, 유로피언 슈퍼컵을 우승하며 컵 대회 3관왕을 달성했다.

스코틀랜드 프리미어 디비전에서 36경기 25승 5무 6패, 76득점 25실점으로 3위를 기록하였고 승점은 55점으로 2위 셀틱과 동률이었으며 우승팀 던디 유나이티드와 불과 1점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높은 성적이었다. 또한 리그 최소 실점을 자랑하기도 했다.

스코티시 컵에서도 준결승에서 셀틱을, 결승에서 레인저스를 잡는 돌풍을 연달아 일으키며 우승을 차지하였고, 유로피언 컵 위너스 컵에서도 8강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결승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잡으며 우승하는 충격을 유럽 대륙에 선사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슈퍼컵에서도 유러피언 컵 우승팀인 함부르크를 1차전 원정에서 0-0 무승부, 2차전 홈에서 2-0 승리로 합산 스코어 2-0 승리를 거두며 우승을 차지했다.

 


6. 평가자 소개

 

1. 토르난테


해당 블로그의 주인이자 F.C.U의 회장으로 축구역사 매니아, 중부 유럽과 남부 유럽 그리고 동부 유럽 축구에 관심이 많다.

선수와 감독을 평가하는 부분에서 전술적 상징성과 최고점에서의 퍼포먼스를 굉장히 중시하는 성향

응원팀: 바이에른 뮌헨, 인테르 밀란, 디나모 키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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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d Archive


F.C.U의 회원으로 축구역사 매니아, 특히 남미 축구에 관심이 많다.

선수와 감독을 평가하는 부분에서 토르난테에 비해 상징성보다는 어빌리티에서 더 섬세하게 평가하는 성향

응원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CA 인데펜디엔테, 아스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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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Archive Football

축구 역사를 다루는 블로그입니다. 응원팀에 대한 생각도 전합니다. 업로드 주기가 불규칙적이고 느린데, 규칙적이고 빠르게 쓸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입니다.

red-archive.tistory.com

 


7. 헌사

1983년 9월 12일, Der Kaiser라 불리는 프란츠 베켄바우어가 뉴욕 코스모스에서 현역 생활을 마무리하고 은퇴했다.

프란츠 베켄바우어는 분데스리가 원년 멤버가 아닌 바이에른에서 분데스리가와 DFB포칼에서 각각 4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유럽 무대에서도 UEFA 컵 위너스컵 1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3연패를 이뤄냈으며 1976년에는 인터콘티넨탈컵 우승을 이뤄내는데 지대한 공을 세우며 바이에른을 서독 무대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클럽으로 올렸다.

서독 대표팀에서도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이뤄내며 신인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1970 멕시코 월드컵 3위를 거쳐 유로 1972와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조국을 우승으로 이뤄냈으며 유로 1976에서도 조국을 결승에 진출시키며 메이저 3연속 결승 진출이라는 대업을 이뤄냈다. 그 과정에서 모두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된 것은 당연했다.

이런 대단한 활약을 펼친 프란츠 베켄바우어는 FCU 어워즈에서도 FCU 올해의 선수 노미네이트 12회 연속 선정과 TOTY 12회 연속 선정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으며 1972년과 1976년에는 FCU 올해의 선수 골든볼을 받으며 세계 최고의 선수로 올라섰다.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로서 선수 커리어를 이어나가는 동안 위대한 활약을 펼친 프란츠 베켄바우어의 제2의 인생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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