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생 최고의 축구선수 탑5

연생별 최고의 축구선수/1940년대생

1942년생 최고의 축구선수 탑5

토르난테 2023. 6. 24.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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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일은 2023년 6월 24일 기준이며 선수 사진 출처는 플레이어스에서 활약하는 법정스님의 소유님 건조폼

여러 자료들을 검토한 작성자의 주관적인 평가.

 


5위 페드로 로차

 


생일: 12월 3일
국적: 우루과이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포워드, 라이트윙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CA 페냐롤

 

브라질의 펠레에 대한 우루과이의 대답으로 1960년대 말 세계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로 공격형 미드필더에게 필요한 덕목을 모두 갖춘 것은 물론 우수한 신체 능력과 우수한 득점력마저 겸비해 상대팀의 목숨을 한 순간에 끊어버린다는 뜻의 사형집행인이란 별명으로 불렸으며 펠레는 그를 두고 "내가 붙어본 선수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라는 평가를 했다.

페냐롤의 황금기에 데뷔한 로차는 아우리네그로스의 공격을 진두지휘하며 1961년 리그,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인터콘티넨탈컵 트레블을 포함해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8회 우승 및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3회 우승, 그리고 인터콘티넨탈컵 2회 우승을 이끌었으며 개인적으로도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득점왕을 3회, 인터콘티넨탈 슈퍼컵 득점왕을 2회 수상했으며 브라질 무대의 상 파울루에서도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2회 우승을 이뤄냈고 개인적으로도 1972년 브라질 세리 A 득점왕을 수상했고 1973년 브라질 전국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1974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득점왕에 올랐고 1977년에는 전국 리그 우승의 영광을 누렸던 로차는 두 구단에서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대회 통산 득점 3위에 랭크되었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에이스 역할을 도맡으며 1962 칠레 월드컵부터 1974 서독 월드컵까지 네 번의 월드컵에 참가해 부상으로 조기에 하차한 1970 멕시코 월드컵을 제외하고는 모두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1967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5경기 3골을 득점하며 우승에 크게 기여해 대회 MVP에 선정되었다.

 

4위 산드로 마촐라

 


생일: 11월 8일
국적: 이탈리아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라이트윙, 포워드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9회 (1964, 1965, 1966, 1967, 1968, 1970, 1971, 1972, 1973)
발롱도르 최고 성적: 1971년 2위

 

아버지 발렌티노 마촐라와 라이벌 지안니 리베라와 함께 이탈리아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손꼽히며 훌륭한 슈팅 스킬과 창의적인 패싱력, 탄탄한 볼 컨트롤과 같은 공격형 미드필더의 필수적인 덕목은 물론 기동력도 탁월했으며 측면과 중앙을 오가는 왕성한 활동량도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선수 생활을 오직 네라주리 군단에서만 보낸 산드로 마촐라는 세리에 A 4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2연패, 그리고 인터콘티넨탈컵 2연패를 이루며 그란데 인테르의 시대를 열었던 마촐라는 개인적으로도 963-64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득점왕에 올랐고  1964-65 시즌에는 세리에 A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으며 월드 사커지 선정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 5회 선정되었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 10위 안에 네 번 들었으며 1971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2위에 올랐다.

왕성한 활동량으로 중앙과 측면을 오가며 상대 수비진을 압박해주는 스타일 덕분에 아주리 군단에서는 리베라보다 더 중용되었으며 자주 선발로 출전했다. 특히 UEFA 유로 1968에서는 대회 우승을 이끌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중용되었다.

 

 

3위 디노 조프

 

 

생일: 2월 28일
국적: 이탈리아
포지션: 골키퍼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6회 (1973, 1975, 1976, 1980, 1981, 1982)
발롱도르 최고 성적: 1973년 2위

 

롱런의 상징, 부폰과 함께 이탈리아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꼽히며 엄청난 선방 능력과 거침없는 카리스마로 수비라인을 이끌었던 위대한 주장이며 40세까지 기량을 유지했다.

나폴리에서 세리에 A 정상급 골키퍼로 명성을 떨친 조프는 유벤투스로 이적한 이후에 유벤투스의 황금기를 이끌며 비안코네리의 세리에 A 6회 우승과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은 물론 1976-77 시즌 UEFA컵 우승까지 달성해 구단을 이탈리아 최고의 인기 팀으로 올라서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6회 선정되어 1973년에는 유벤투스를 유러피언 컵 결승으로 이끈 공으로 발롱도르 투표에서 2위를 차지했다.

조프는 아주리에서도 맹활약하며 1968 유로와 1982 스페인 월드컵을 동시에 우승하며 월드컵과 유로를 모두 우승한 유일한 이탈리아 선수가 되어 아주리의 기념비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과 유로 1980에서도 팀이 4위에 오르는데 공헌했던 조프는 "골키퍼는 와인처럼 시간이 오래 지나야만 숙성된 맛을 낼 수 있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2위 지아친토 파케티

 


생일: 7월 18일
국적: 이탈리아
포지션: 레프트백
신체조건: 키 191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7회 (1964, 1965, 1967, 1968, 1970, 1971, 1973)
발롱도르 최고 성적: 1965년 2위

 

인테르와 아주리의 위대한 캡틴이자 유럽 최초로 오버래핑을 시도하며 카테나치오의 매서운 역습을 상징하는 선수였다. 빠른 스피드와 탄탄한 기본기를 활용해 공격에 적극 가담하며 상대 수비진을 교란했으며 강력한 피지컬을 앞세운 대인 수비에도 능했다.

선수생활을 오직 인테르에서만 보냈으며 세리에 A 4회 우승과 코파 이탈리아 1회 우승, 그리고 유러피언 컵과 인터콘티넨탈컵 2연패를 이뤄내며 그란데 인테르의 시대를 이뤄낸 위대한 레프트백이다.

아주리에서는 첫 메이저 대회인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소련과 북한에게 패해 조기 탈락하는 굴욕을 겪었지만 유로 1968에서는 주장이자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맡아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개최국 멕시코와 난적 서독을 이기고 결승에 진출했다. 언급한 두 대회에서 모두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

파케티는 월드 사커지 선정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 6회 선정되었으며 1965년에는 발롱도르 투표에서 2위에 올랐다.

 

1위 에우제비우

 


생일: 1월 25일
국적: 포르투갈
포지션: 포워드,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SL 벤피카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10회 (1961~1968, 1970, 1972)
발롱도르 최고 성적: 1965년 1위 수상

 

1960년대 남미의 펠레에 대한 유럽의 대답으로 평가받았던 선수로 공격수에게 필요한 능력은 모두 가지고 있었으며 특히 슈팅 능력만큼은 당대 최고의 선수 펠레를 능가했으며 찬스 메이킹 능력과 드리블 돌파 능력도 당대 유럽 최고의 수준이었다.

벤피카 통산 최다 득점자 에우제비우는 프리메이라 리가 11회 우승과 타사 데 포르투갈 5회 우승 및 유러피언 컵 2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1972-73 시즌에는 코엘류, 토니, 시몽에스 등과 함께 무패 우승의 위업을 달성했다. 에우제비우 개인도 리그 득점왕 7회 수상, 유러피언 컵 득점왕 3회 수상 등 화려한 커리어를 자랑했음은 물론 1965년에는 발롱도르를 수상하며 커리어의 화룡점정을 찍었다.

에우제비우의 활약은 대표팀에서도 이어졌는데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디펜딩 챔피언 브라질과 전통의 강호 헝가리를 밀어내고 조 1위로 8강에 진출해 북한을 상대로 4골을 넣으며 0-3 패배를 5-3으로 뒤집으며 준결승에 진출하는데 큰 공을 세우며 득점왕까지 차지했음은 물론 실질적인 대회 MVP로 평가받기도 했다.

 


선외 명단

아데미르 다 기아

노비 스타일스

이보 빅토르

로베르토 페르푸모

빌리 브렘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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