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생 최고의 축구선수 탑5

연생별 최고의 축구선수/1940년대생

1945년생 최고의 축구선수 탑5

토르난테 2023. 6. 7.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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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일은 2023년 6월 7일 기준이며 선수 사진 출처는 플레이어스에서 활약하는 법정스님의 소유님 건조폼

여러 자료들을 검토한 작성자의 주관적인 평가.


5위 유프 하인케스

 


생일: 5월 9일
국적: 독일
포지션: 레프트윙, 라이트윙, 포워드,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2회 (1975, 1976)
발롱도르 최고 성적: 1975년 7위

 

현세대의 축구 팬들한테는 바이에른 뮌헨의 트레블을 이끈 명장으로 더 유명하지만 현역 시절에는 스트라이커와 레프트윙 두 포지션에서 모두 훌륭한 모습을 보여줬던 공격수였으며 당대 유럽에서 가장 빠르다고 평가받았던 엄청난 순간 스피드와 뛰어난 공간지각 능력을 활용해 상대 수비라인 뒤로 침투해 날카로운 양발 슈팅으로 득점하는 전천후 공격수였다.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와 하노버에서 선수 생활을 보냈으며 특히 전자의 클럽에서는 분데스리가 3연패를 포함해 분데스리가 4회 우승과 1972-73 DFB포칼 우승, 1974-75 UEFA컵 우승, 그리고 1976-77 시즌 유러피언 컵 결승 진출을 이뤄냈으며 분데스리가 득점왕은 물론 3대 유럽 대항전에서 모두 득점왕에 오른 이력이 있다.

하인케스는 개인적으로도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으며 특히 1974-75 시즌의 활약이 대단해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7위에 랭크되었으며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도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을 16회나 받았다.

디 만샤프트에서는 1970 멕시코 월드컵 때까지는 뽑히지 못하다가 1972 UEFA 유로에서 게르트 뮐러와 함께 훌륭한 파트너십을 보여주며 팀을 우승시키고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포함되었으나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백업 멤버로 우승을 경험했다.

 

4위 피리

 


생일: 3월 11일 
국적: 스페인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리베로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4회 (1967, 1968, 1971, 1975)
발롱도르 최고 성적: 1967년, 1968년 10위

 

1970년대 스페인 최고의 선수로 손꼽히는 선수로 몸을 내던지는 투지와 교활함을 겸비한 수비력과 엄청난 활동량을 이용해 공격과 수비 모두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으며 우수한 득점력과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 그리고 뛰어난 전술 이해도를 겸비한 육각형 미드필더였으며 리베로로도 활약할 수 있었다.

전성기를 레알 마드리드에서 보낸 호세 피리는 Yeye 군단의 중심으로 활약하며 라리가 10회 우승과 코파 델 레이 4회 우승, 그리고 1965-66 시즌 유러피언 컵을 우승했으며 턱뼈가 나가거나 장티푸스에 걸려 체온이 40도에 올라가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풀타임 경기를 뛰는 초인 같은 모습을 보이며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스페인 국가대표팀 암흑기의 핵심 선수로 암흑기에도 분전했으며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데뷔해서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는 주장으로 참가했다. 은퇴 이후에는 의학박사 학위를 따내며 1980년대에는 레알 마드리드의 의료팀에서 일하기도 했다.

피리는 개인적으로도 문도 데포르티보 선정 라리가 베스트 일레븐에 5회 선정되었고 MVP에는 2회 선정되었으며 돈 발롱 선정 라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도 2회 선정되었다. 다만 피리가 활약하던 시대에 라리가가 침체기에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다른 마드리드 레전드에 비해 저평가받는 부분이 크다.

 

 

3위 라디슬라오 마수르키에비치

 

 

생일: 2월 14일
국적: 우루과이
포지션: 골키퍼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CA 페냐롤

남미 올해의 선수 노미네이트: 1회 (1971)
남미 올해의 선수 최고 성적: 1971년 6위

 

레프 야신이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했던 1970년대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작은 키에도 멀리 튕겨내는 펀칭력과 괴물 같은 반사신경과 탄력적인 점프, 그리고 1대 1 상황에서의 침착한 전진 수비와 볼 컨트롤 능력까지 우수했던 완성형 골키퍼였다.

페냐롤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1966 시즌에는 비록 자국 리그 우승컵을 나시오날에게 내줬지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을 제패하며 남미와 유럽 대륙을 평정했으며 1968 시즌에는 리그 18경기에서 단 5실점만을 기록했음은 물론 987분 연속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며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최장 시간 무실점 기록을 세웠고 1969년에는 역대 인터콘티넨탈 우승팀끼리 최강자를 가리는 대회인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스 슈퍼컵에서도 우승을 이뤄냈으며 이후 새로운 도전을 위해 아틀레티쿠 미네이루로 이적해 브라질 무대에 도전장을 냈으며 1971 시즌에는 브라질 전국리그인 세리 A 우승을 이뤄냈으며 이후 스페인 무대와 콜롬비아 무대에서도 족적을 남겼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훌륭한 활약은 이어졌는데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 처음 참가했으며 8강에 진출했으나 오심을 극복하지 못하고 서독전에서 대패했다. 이후 1967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했으며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좋은 퍼포먼스를 보이며 팀을 4강에 올렸으며 마주르키에비치 본인도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마수르키에비치는 1969년에 아르헨티나의 스포츠 언론지 엘 그라피코로부터 1960년대 남미 최고의 골키퍼로 선정되었으며 1971년 최초의 남미 올해의 선수 투표에서 7위에 랭크되었고 은퇴한 뒤인 1984년에는 프랑스 풋볼 선정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6위에 랭크되었다.

 

2위 게르트 뮐러

 


생일: 11월 3일
국적: 독일
포지션: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10회 (1967~1976)
발롱도르 최고 성적: 1970년 1위 수상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하나로 빠른 스피드와 화려한 테크닉, 좋은 신체 조건까지 어느 것도 갖추지 못했으나 완벽한 축구 지능과 훌륭한 골감각과 위치 선정, 그리고 동료를 이용하는 영리한 플레이를 펼치며 득점은 물론 도움도 많이 기록했던 완성형 공격수였다.

바이에른 뮌헨에서 데뷔해 선수 생활 대부분을 보낸 게르트 뮐러는 압도적인 득점력을 바탕으로 분데스리가와 DFB포칼 각 4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컵 위너스컵 우승과 유러피언컵 3연패를 이뤄냈고 바이에른 뮌헨 통산 최다 득점자를 비롯해 분데스리가에서 골에 관련된 기록 대부분은 게르트 뮐러의 타이틀이다. 비록 현재는 레반도프스키가 갱신했지만 오랜 시간 동안 한 시즌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했음은 물론 분데스리가 득점왕을 7회 수상했으며 유러피언 컵 득점왕도 4회 수상했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자신의 첫 메이저 대회인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펠레나 자이르지뉴 같은 쟁쟁한 공격수들을 제치고 10골이나 넣으며 득점왕을 수상한 게르트 뮐러는 이때의 활약으로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UEFA 유로 1972에서도 4골로 득점왕에 올랐으며 1974 월드컵 결승전에서는 결승전에서 미헬스와 크루이프의 네덜란드를 상대로 결승골을 기록하며 우승에 방점을 찍었다. 유로와 월드컵을 모두 석권하며 화려하게 국가대표팀을 은퇴했다.

특히 결승전에 강력한 모습을 보이며 13회의 결승전에서 전승을 기록했음은 물론 11골을 득점했으며 그중 결승골 5개를 기록한 대기록을 세운 게르트 뮐러는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4회 선정되었으며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에 8회 선정되었고 국가대표팀과 클럽을 포함해 13회나 득점왕을 수상했으며 1970년에는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1위 프란츠 베켄바우어

 


생일: 9월 11일
국적: 독일
포지션: 리베로,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12회 (1965~1976)
발롱도르 최고 성적: 1972년, 1976년 1위 2회 수상

 

그는 훌륭한 선수였고, 매우 긍정적이었으며, 매우 빨랐고 항상 위협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1966년과 1970년에 그를 막는 임무를 맡았다. 그는 서독이 가진 선수 중 가장 위협적인 선수였다. 그는 그의 스피드와 컨트롤, 재능을 살려 놀라운 플레이를 보여주었고, 나 같은 마킹맨이 항상 붙어 있어야 그 훌륭한 능력을 조금이라도 제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비 찰튼

프란츠 베켄바워는 내가 본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다. 
-펠레

그는 수비수와 미드필더를 모두 소화할 수 있었다. 그는 다재다능하고 융통성이 있었으며, 경기의 흐름을 잘 읽었고, 플레이하는 방법을 아는 선수였으며, 또 전진하여 골을 넣기도 했다.
-에우제비우

그는 남자다운 리더였고, 우아함과 기술로 중무장한 채 지배적인 존재감을 뽐냈던 선수였습니다. 그런데 이건 꼭 말해야겠네요. 그는 내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8살 때, 나는 서독과 네덜란드간에 있었던 1974년 월드컵의 결승전을 보았어요. 나는 네덜란드를 응원했죠. 네덜란드가 패배하고 나서 나는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어요. 그때는 아주 슬펐지만, 지금은 Der Kaiser의 총명함을 인정해요.
-에릭 칸토나

 

부정할 수 없는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로 수비 라인에서의 자유인을 넘어 전 경기장을 자유롭게 누비는 독일식 리베로의 시조로 서독 대표팀의 전성시대를 열었으며 그리고 당대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바비 찰튼을 지워냈을 정도로 대인 마킹에도 능했으며 라커룸과 경기장을 아우르는 리더십은 역대 최고라고 봐도 무방했다.

독일 내에서도 평범한 클럽이었던 바이에른 뮌헨에서 데뷔해 바이에른을 독일 최고의 클럽으로 올린 일등 공신 베켄바우어는 분데스리가와 DFB포칼에서 각각 4회 우승을 달성했고 유럽 대항전에서도 컵 위너스컵 우승을 시작으로 유러피언 컵 3연패를 이뤄냈으며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12회 선정되었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10년 넘게 대단한 퍼포먼스를 보인 베켄바우어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던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야신을 상대로 중거리 슈팅으로 득점하거나 바비 찰튼을 완벽하게 봉쇄하는 등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월드컵 신인상을 수상했고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준결승전에서 만난 이탈리아를 상대로 쇄골이 다치는 부상을 입으면서도 풀타임으로 경기를 마치며 철인의 풍모를 보여줬다.

1970년대에 들어서 리베로로 출전한 UEFA 유로 1972에서는 독일식 리베로의 새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유로 우승을 이끌어 트레블을 이룬 크루이프를 밀어내고 발롱도르를 수상했으며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팀의 우승에 크게 공헌했으나 크루이프에 밀려 월드컵 실버볼을 받았고 UEFA 유로 1976에서는 팀의 결승행을 이끌었고 비록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대단한 퍼포먼스로 복수의 언론으로부터 대회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 27회는 덤이다.


선외 명단

빔 수르비어

빌프리트 반 모어

앨런 볼

팻 제닝스

로메오 베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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