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생 최고의 축구선수 탑5

연생별 최고의 축구선수/1940년대생

1946년생 최고의 축구선수 탑5

토르난테 2023. 5. 31.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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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일은 2023년 5월 31일 기준이며 선수 사진 출처는 플레이어스에서 활약하는 법정스님의 소유님 건조폼

여러 자료들을 검토한 작성자의 주관적인 평가.


5위 베르티 포그츠

 


생일: 12월 30일
국적: 독일
포지션: 라이트백, 센터백, 리베로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7kg
주 소속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5회 (1971, 1974, 1975, 1976 ,1977)
발롱도르 최고 성적: 1975년 4위

 

유럽 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백으로 통하며 특히 크루이프마저 완전히 지워버린 발군의 대인 마킹 실력은 당대는 물론 역대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며 팬들로부터 마치 사냥개와 같다고 'Der Terrier'라고 불렸다.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커리어의 전부를 보내며 구단 통산 최다 출전자에 랭크된 포그츠는 분데스리가 5회 우승과 UEFA컵 2회 우승, 그리고 1976-77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이뤘던 중심에는 모두 그가 있었으며 1972-73 시즌에는 포칼을 우승하며 황금기를 보냈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맡으며 황금기에 기여한 포그츠는 3회의 월드컵과 2회의 유럽 선수권 대회에 참가했으며 특히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결승전에서 크루이프를 완벽하게 봉쇄하며 숨은 공로자 역할을 했으며 1976 유로와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세 번의 메이저 대회에서 모두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포그츠 개인도 묀헨글라트바흐와 서독 대표팀에서 활약하는 동안 많은 개인상을 수상했는데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8회 선정되었으며 1971년과 1979년에는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으며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도 월드클래스 등급 11회,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 11회에 선정되었다.

 

4위 드라간 자이치

 


생일: 5월 30일
국적: 세르비아
포지션: 레프트윙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츠르베나 즈베즈다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7회 (1968, 1969, 1970, 1971, 1972, 1973, 1976)
발롱도르 최고 성적: 1968년 2위

 

축구 역사상 가장 완벽한 윙어로 평가받으며 매직 드라간이라 불렸을 정도로 환상적인 드리블 돌파로 상대 수비진을 장판파의 조자룡처럼 휘저었으며 강력하면서도 정교한 슈팅은 물론 크로스도 우수해 20세기 최고의 왼발 크로서라 불렸으며 여기에 수비 가담까지 완벽하게 하며 시대마저 앞서 나간 불세출의 윙어였다.

츠르베나 즈베즈다 구단 통산 최다 출전자이자 최다 득점자인 자이치는 리그 5회 우승과 유고슬라비아 컵 4회 우승, 그리고 1968년 미트로파 컵 우승을 이뤄냈고 자이치 개인도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도 7회 선정되었으며 1968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3위에 올랐고 1969년에는 유고슬라비아 올해의 스포츠 선수상을 수상했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의 활약도 대단했는데 특히 UEFA 유로 1968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보여주며 토너먼트에 진출한 네 팀중 가장 약하다고 평가받았던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을 이끌어 준우승을 차지했는데 이 활약을 본 세계 최고의 공격수 펠레는 "자이치는 발칸 반도가 낳은 기적입니다. 진정한 마법사죠. 그가 브라질리안이 아니라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그는 제가 이제껏 보아온 선수 중 가장 자연스럽게 축구하는 사나이예요."라고 평가했으며 최고의 수비수 베켄바우어는 "1968년 발롱도르는 누가 뭐래도 드라간 자이치의 것이었습니다. 조지에게는 미안하지만, 1968년은 자이치의 해였어요. 그는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신기에 가까운 솜씨를 보여줬죠."라고 말했을 정도로 대단했다. 이후 1970년대에도 대표팀의 에이스로 군림했다.

 

 

3위 호베르투 히벨리누

 

 

생일: 1월 1일
국적: 브라질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레프트윙, 포워드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코린치안스

남미 올해의 선수 노미네이트: 5회 (1971, 1973, 1974, 1976, 1977)
남미 올해의 선수 최고 성적: 1977년 2위

 

펠레 이후, 지쿠 이전 브라질 대표팀의 아이콘이었던 선수로 플립플랩 드리블의 시조로 화려한 드리블을 보여줬으며 원자폭탄 킥이라 불렸던 매서운 왼발 프리킥을 보여줬다. 즉 킥과 드리블, 패스에서 모두 완벽한 모습을 보이는 플레이메이커였다.

코린치안스와 플루미넨시에서 전성기를 누린 호베르투 히벨리누는 코린치안스에서는 산투스와 파우메이라스의 기세에 밀려 우승컵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펠레, 아데미르 다 기아, 페드로 로차와 함께 상 파울루 주의 4대 플레이메이커로 평가받았고 1971년에는 브라질 세리 A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고 플루미넨시에서는 플라멩구의 지쿠와 치열한 접전을 벌이며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2연패를 이뤄냈다.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 지역예선과 본선에서 전승 우승을 거두며 화려하게 자신을 세상에 알린 히벨리누는 1970년에는 대회 올스타에 선정되었고 1974 서독 월드컵에서도 팀의 핵심 선수로 팀 공격을 이끌며 팀이 4위에 올라서는데 공헌했으며 은퇴 이후에는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위 조지 베스트

 


생일: 5월 22일
국적: 북아일랜드
포지션: 라이트윙, 레프트윙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4회 (1967, 1968, 1969, 1971)
발롱도르 최고 성적: 1968년 1위 수상

 

펠레나 크루이프에 버금가는 축구 천재로 평가받은 기재로 측면에서 화려한 드리블 돌파를 활용해 중앙으로 침투해 수비진을 교란한 뒤 슈팅을 노리는 인사이드 커터 유형의 선수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바비 찰튼, 데니스 로와 함께 공격 편대를 구성해 잉글랜드 풋볼 리그 우승 2회와 1968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이때의 활약으로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바비 찰튼, 데니스 로와 함께 올드 트래포트 앞에 동상이 있는 베스트는 1967-68 시즌 FW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1968년에는 상술했듯이 발롱도르를 수상했고 1971년에는 발롱도르 3위에 오르는 활약을 펼쳐 영국 팬들로부터 비틀즈의 다섯 번째 멤버라 불렸다.

 

1위 엘리아스 피게로아

 


생일: 10월 25일
국적: 칠레
포지션: 리베로, 센터백
신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SC 인테르나시오나우

남미 올해의 선수 노미네이트: 6회 (1973, 1974, 1975, 1976, 1977, 1979)
남미 올해의 선수 최고 성적: 1974년, 1975년, 1976년 1위 수상

 

"피게로아는 칠레 축구사상 최고의 선수이다. 어쩌면 그는 남미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일지도 모르겠다. 그가 월드컵에서 우승했더라면 아마 축구사 최고의 수비수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펠레

"나는 유럽의 피게로아이다."
-프란츠 베켄바우어

"피게로아와 같은 대선수와 비교되는 것 자체가 내겐 영광이다."
-다니엘 파사레야

 

서독의 베켄바우어의 라이벌로 평가받았으며 공수 양면에서 완벽했으며 큰 체격을 활용한 제공권 장악 능력은 실로 감탄을 할 만했으며 큰 키에도 몸이 굉장히 유연했고 아주 민첩했으며 수비라인 조율 능력도 뛰어나 마티아스 잠머와 함께 오프사이드 트랩을 가장 잘 구사하던 선수다. 그리고 공격 전개 능력은 물론 세트피스 상황에서 헤딩 득점에도 능했다.

네우송 로드리게스라는 브라질 축구 평론가의 말을 빌리자면 백작처럼 우아하고 벵갈호랑이처럼 위험했다고 전해지는 완벽한 수비수였다.

소속 국가 칠레가 약체임에도 서독을 상대로 엄청난 수비 능력을 보여줘 베켄바우어를 경악하게 했으며 우루과이 리그와 브라질 리그를 평정한 수비수다. 특히 인테르나시오날에서는 다섯 번의 주립 리그와 두 번의 전국 리그 우승에 공헌하며 남미 올해의 선수상 1위 3연패와 3위 한 번이라는 대기록을 기록했다.


선외 명단

로베르트 가도하

콜린 벨

블라디미르 문트얀

오스카르 마스

빌리 반 데르 카일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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