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생 최고의 축구선수 탑5

연생별 최고의 축구선수/1940년대생

1948년생 최고의 축구선수 탑5

토르난테 2023. 5. 20.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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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일은 2023년 5월 20일 기준이며 선수 사진 출처는 플레이어스에서 활약하는 법정스님의 소유님 건조폼

여러 자료들을 검토한 작성자의 주관적인 평가.


5위 안토닌 파넨카

 


생일: 12월 2일
국적: 체코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보헤미안스 프라하

 

페널티킥 상황에서 힘을 빼고 골키퍼 정면을 향해 느리게 차는 슛인 일명 '파넨카'의 창시자였던 안토닌 파넨카는 드넓은 시야와 상대의 허를 찌르는 패싱력을 겸비했으며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숏패스와 롱패스로 정확한 볼 배급을 이뤄낸 플레이메이커였다.

보헤미안스 프라하와 라피드 비엔나에서 활약하며 명성을 날렸던 파넨카는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에서 1976 UEFA 유로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상술했던 파넨카로 세계 최고의 골키퍼 제프 마이어를 무너트리며 조국이 앙리 들로네를 드는데 공헌해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이후 1980 유로 3위와 1982 스페인 월드컵 예선 통과를 이뤄냈다.

여담으로 그가 파넨카라는 스킬을 개발하게 된 계기는 소속팀 동료 골키퍼와 맥주를 걸고 페널티킥 내기를 했으나 자주 져서 중앙을 잘 막지 않는 골키퍼의 허를 찌르기 위해서 개발한 전술이라고 한다.

 

4위 레이 클레멘스

 


생일: 8월 5일
국적: 잉글랜드
포지션: 골키퍼
신체조건: 키 183cm
주 소속팀: 리버풀 FC

 

1970년대 후반 유럽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로 화려한 스타일보다는 실수 없는 안정감이 돋보였으며 뛰어난 반사신경과 정확한 판단에서 나오는 전진수비는 물론 우수한 점프력을 통한 공중볼 세이브 능력도 보여줬다.

당대 잉글랜드 풋볼 리그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리버풀의 붉은 제국 시대에 골문을 지키며 리그 5회 우승, 유러피언 컵 3회 우승, 그리고 UEFA컵 2회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토트넘 핫스퍼로 이적한 뒤에도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줬으며 1981-82 시즌 FA컵과 1983-84 시즌 UEFA컵 우승을 이뤄낸 우승청부사였다.

클럽에서의 활약은 대단했지만 피터 쉴튼과의 주전 경쟁을 펼쳤는데 클레멘스가 주전이던 시절에는 삼사자 군단이 다소 아쉬운 실적을 내며 결국 쉴턴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려 유로 1980과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벤치를 지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 풋볼 리그와 유럽 클럽 대항전에서의 활약이 너무나도 대단해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3위 아틸리오 안체타

 

 

생일: 7월 19일
국적: 우루과이
포지션: 센터백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그레미우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상반기 남미 최고의 스토퍼 중 한 명으로 빠른 스피드와 악착같은 대인 수비로 상대 공격수를 막아냈으며 용수철 같은 점프력을 통한 제공권 경합에서도 항상 우위를 점했으며 발밑마저 우수했던 완벽한 수비수였다.

자국의 명문 클루브 나시오날과 브라질의 그레미우에서 전성기를 누린 안체타는 전자의 구단에서는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3회 우승과 1971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뤄내는데 이바지했으며 후자의 구단에서는 캄페오나투 가우슈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3년에는 브라질 전국리그 올해의 선수 및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리며 승승장구했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는 브라질 무대 진출로 인해 대표팀 생활을 고작 2년밖에 하지 못했지만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 로베르토 마토사스, 루이스 우비냐, 후안 무히카와 함께 철의 포백을 구성해 활약하며 로차의 공백으로 빈공에 시달리던 팀의 약점을 완벽에 가깝게 극복하며 준결승 진출에 성공했으며 이런 활약을 인정받아 안체타 본인도 동료들과 함께 캐스트롤 인덱스가 선정한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2위 베르나르트 디츠

 


생일: 3월 22일
국적: 독일
포지션: 레프트백, 센터백, 리베로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MSV 뒤스부르크

1970년대 하반기와 1980년대 상반기를 수놓은 분데스리가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로 야생마 같은 빠른 스피드와 지치지 않는 지구력은 물론 기술적으로도 훌륭했는데 공수 밸런스가 우수했으며 훌륭한 포지셔닝은 물론 헤딩 경합에도 능했으며 프로 생활 동안 단 한 장의 레드카드도 받지 않았을 정도로 깔끔한 수비를 선보였다.

뒤스부르크와 샬케에서 활약했는데 소속팀이 좋지 않은 상황에 활약해 우승 커리어는 없지만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일곱 번 선정되며 개인은 정상급 선수임을 확실하게 증명했으며 특히 1977년에는 옹즈 몽디알 선정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클럽 커리어의 부족함과는 다르게 디 만샤프트에서는 좋은 성과를 냈는데 파울 브라이트너가 독일 축구협회와의 갈등으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뒤 대표팀에 뽑히지 못하자 빠르게 주전 레프트백 자리를 차지했으며 1976 유로 준우승과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8강을 이뤄냈으며 1980 유로에서는 주장 완장을 차고 팀의 우승을 이끌어냈다.

 

1위 아리 한

 


생일: 11월 16일
국적: 네덜란드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리베로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RSC 안더레흐트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1회 (1978)
발롱도르 최고 성적: 1978년 11위

 

1970년대에 이름을 날렸던 오렌지 군단의 피보테이자 리베로로 강철 같은 스테미너를 이용한 넓은 활동반경과 넓은 시야에서 나오는 정교한 패싱력과 뛰어난 동료 활용 능력을 토대로 경기장 넓은 부분에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수비적으로도 현란하고 파워풀한 플레이로 상대를 무너뜨린다고 해서 아수라장 어리라고 불렸으며 중거리 슈팅에도 능했다.

아약스와 안더레흐트에서 전성기를 보냈으며 전자의 클럽에서는 유러피언컵 3연패와 에레데비시 3회 우승을 이뤄내며 아약스를 유럽 최고의 팀으로 올려놓았으며 이후 안더레흐트로 건너가서는 주필러 리가 1회 우승과 컵 위너스컵 2회 우승을 달성했으며 한 개인도 옹즈 몽디알이 선정한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다.

오랑예 군단에서도 그 명성은 어디가지 않아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주전 리베로 리누스 이스라엘이 부상으로 스쿼드에서 이탈하자 대신 리베로를 보며 맹활약했으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는 다시 수비형 미드필더로 돌아와 렌센블링크, 크롤, 네스켄스와 함께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다.

 


선외 명단

하인츠 플로에

한스게오르크 슈바르첸벡

피에트로 아나스타시

마누엘 벤투

뤼트 헤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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