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1970 브라질 베스트 일레븐

동네 축덕 아저씨의 축구 썰/다양한 주제의 베스트 일레븐

1958~1970 브라질 베스트 일레븐

토르난테 2023. 5. 3.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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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1970 브라질의 성과

 

1958 스웨덴 월드컵 우승
1958 타사 오스왈도 크루즈 우승
1959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1959 코파 베르나르도 오히긴스 우승
1960 타사 두 아틀란티코 우승
1960 호카 컵 우승
1961 타사 오스왈도 크루즈 우승
1961 코파 베르나르도 오히긴스 우승
1962 칠레 월드컵 우승
1962 타사 오스왈도 크루즈 우승
1963 호카 컵 우승
1968 타사 오스왈도 크루즈 우승
1970 멕시코 월드컵 우승

줄리메컵 영구 소장

 


베스트 11

 

골키퍼

 

 

이름: 지우마르
출생년도: 1930년 8월 22일,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68kg
포지션: 골키퍼

 

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뛰어난 반사신경과 민첩한 몸놀림으로 상대의 슈팅을 선방했으며 공격수의 압박 속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며 안정적인 골키퍼가 무엇인지 보여줬다.

펠레와 함께 셀레상과 산투스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골키퍼로 1958 스웨덴 월드컵과 1962 칠레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골문을 지키며 월드컵 2연패에 크게 공헌했다.

다수의 매체로부터 브라질 역대 최고의 골키퍼로 평가받는 지우마르는 상술한 활약을 바탕으로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센터백

 

 

이름: 윌송 피아짜
출생년도: 1943년 2월 25일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4kg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리베로, 센터백

 

1970년대 브라질 축구계를 풍미한 수비형 미드필더이자 리베로이며 강철 같은 스테미너와 뛰어난 전술안과 빠른 상황 판단력을 앞세워 상대의 패스 흐름을 끊는데 능했으며 빌드업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며 수비라인과 공격라인을 연결해주는 역할도 맡았다.

크루제이루의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을 이뤄낸 피아짜는 셀레상에서의 활약도 대단했는데 센터백으로 나온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아우베르투, 브리투, 에베라우두와 함께 후방을 튼튼히 지키며 예선과 본선 전승 우승에 공헌했다.

 

 

센터백

 

 

이름: 일데랄두 벨리니
출생년도: 1930년 6월 7일
신체조건: 키 185cm
포지션: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1950년대 브라질을 대표하는 중앙 수비수였으며 선수단에게 인정받은 뛰어난 리더십과 부족한 기술을 근성 있는 집중력과 끈질긴 대인방어를 앞세운 헌신적인 플레이로 팀을 도왔다.

바스쿠 다 가마에서는 승리의 급행열차라 불리는 팀의 전성기를 이끈 베우리니는  셀레상에서도 위대한 활약을 이뤄내며 두 번의 월드컵에서 우승했는데 특히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는 주장 완장을 차고 우승을 이뤄내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도 선정되었다.

지금은 다소 흔한 트로피를 쥐고 머리 위로 들어올리는 셀레브레이션을 최초로 보여준 베우리니의 모습은 지금도 브라질 대표팀의 메인 구장인 마라카냥 스타디움 앞에 동상으로 남아있다.

 

 

라이트백

 

 

이름: 자우마 산투스
출생년도: 1929년 2월 27일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3kg
포지션: 라이트백, 센터백

 

아우베르투와 함께 브라질 역대 최고의 라이트백으로 손꼽히며 실제로 브라질 대표팀 활약은 카푸나 아우베르투, 다니 아우베스보다도 확실히 우위에 있다고 평가받는 선수로 바위 또는 벽이라 불렸을 정도로 견고한 대인 수비 능력과 깔끔한 패싱력으로 앞선 공격수를 지원하는 훌륭한 빌드업을 겸비했다.

파우메리아스에서 산투스를 제치고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을 이뤄낸 자우마 산투스는 셀레상 소속으로 네 번의 월드컵에 출전해 1958 스웨덴 월드컵과 1962 칠레 월드컵에서 우승했으며 특히 1962 칠레 월드컵에서는 대회 최고의 라이트백으로 활약했으며 은퇴 이후에는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레프트백

 

 

이름: 니우통 산투스
출생년도: 1925년 5월 16일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68kg
포지션: 레프트백, 레프트윙

 

20세기 최고의 레프트백 중 한 명으로 인정받는 선수였으며 축구사에서 측면 수비수의 오버래핑을 처음으로 정립한 선수로 알려졌다. 공격 기술부터 수비 기술까지 다재다능해서 백과사전으로 불렸다.

보타포구의 원 클럽맨으로 브라질 무대에서 명성을 날린 니우통 산투스는 셀레상에서도 백업 멤버로 1949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경험했으며 1950 브라질 월드컵의 마라카냥의 비극을 경험하기도 했으나 새옹지마라고 주전 멤버가 아닌 덕분에 이후에도 자주 기용되었고 펠레, 가린샤 등과 함께 브라질 대표팀의 최전성기를 누리며 1958년 스웨덴 월드컵과 1962 칠레 월드컵 우승을 이뤄낸다.

세계 최초의 공격형 수비수 중 한 명인 니우통 산투스는 상술한 활약을 바탕으로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중앙 미드필더

 

 

이름: 지투
출생년도: 1932년 8월 8일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69kg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평가받는 선수로 빠른 발과 왕성한 활동량을 겸비했으며 터프한 태클로 상대의 공격형 미드필더를 괴롭히는데 능했으며 뛰어난 리더십으로 팀을 하나로 묶는데 능했다.

펠레, 페페, 지우마르와 함께 산투스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지투는 셀레상에서도 그들과 함께 영광을 누렸는데 1958 스웨덴 월드컵과 1962 칠레 월드컵에서 모두 주전으로 활약하며 우승했으며 특히 1962 칠레 월드컵에서는 팀 밸런스를 안정시키며 결승전에선 득점까지 기록하는 활약을 보여주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기도 했다.

 

 

중앙 미드필더

 

 

이름: 지지
출생년도: 1928년 10월 8일
신체조건: 키 174m / 몸무게 68kg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라이트윙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축구 지능이 높아 감독이 졸고 있을 때 팀을 지휘하기도 했으며 광활한 시야와 정교하면서도 창의적인 숏패스와 롱패스로 경기를 지배했으며 발기술이 좋아 상대 수비수 두 명 정도는 제칠 수 있었고 프리킥에도 능해 '미스터 풋볼'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보타포구의 전설적인 6관왕을 이끈 지지는 당대 최고의 미드필더라 평가받으며 1958 스웨덴 월드컵과 1962 칠레 월드컵에서 모두 우승을 이뤄냈는데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는 중원을 지휘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대회 MVP 중 한 명으로 선정되는 맹활약을 펼쳤다.

셀레상의 사령탑 비센치 페올라가 경기 도중에 조는 습관이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셀레상을 훌륭하게 지휘한 지지는 상술한 활약을 바탕으로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라이트윙

 

 

이름: 가린샤
출생년도: 1933년 10월 28일
신체조건: 키 169m / 몸무게 72kg
포지션: 라이트윙

 

역대 최고의 라이트 윙으로 평가받는 선수로 소아마비로 인해 양다리의 길이가 달랐으나 오히려 그런 점을 이용해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드리블을 보여주며 상대 수비를 벗겨냈다. 크로스와 패스로 찬스를 만드는 부분에도 능했다.

브라질 전국리그에서는 펠레와 라이벌리를 구축했지만 대표팀에선 펠레와 합을 맞추며 1958 스웨덴 월드컵부터 1966 잉글랜드 월드컵 때까지 활약했으며 펠레가 중도에 부상으로 이탈한 1962 칠레 월드컵에서는 에이스로서 팀을 이끌며 우승을 이뤄내며 득점왕과 골든볼을 수상했다.

장애를 가졌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세계 최고의 선수이자 역대 최고의 라이트윙 반열에 오른 인간승리의 주인공 가린샤는 상술한 활약을 인정받아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레프트윙

 

 

이름: 호베르투 히벨리누
출생년도: 1946년 1월 1일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73kg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레프트윙, 포워드

 

펠레 이후, 지쿠 이전 브라질 대표팀의 아이콘이었던 선수로 플립플랩 드리블의 시조로 화려한 드리블을 보여줬으며 원자폭탄 킥이라 불렸던 매서운 왼발 프리킥을 보여줬다. 즉 킥과 드리블, 패스에서 모두 완벽한 모습을 보이는 플레이메이커였다.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 지역예선과 본선에서 전승 우승을 거두며 화려하게 자신을 세상에 알린 히벨리누는 펠레가 대표팀에서 은퇴한 이후 대표팀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센터 포워드

 

이름: 펠레
출생년도: 1940년 10월 23일
신체조건: 키 173m / 몸무게 75kg
포지션: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스트라이커, 윙어

 

명실상부한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압도적인 운동신경과 훌륭한 축구 지능은 물론 공격수로서 필요한 모든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역대 최고의 스코어러이자 플레이메이커였다.

클럽팀 산투스에서도 최고였지만 셀레상에서의 활약은 가히 차원이 달랐는데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 팀을 월드컵 우승으로 이끌고 신인상과 실버볼을 차지했다. 이후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절륜한 플레이메이킹을 보내며 역대 최고의 대표팀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예선과 본선에서 전승 우승하며 대회 MVP를 수상하며 우월함이 무엇인지 만천하에 보여줬다.

펠레는 당연하게도 대부분의 매체에서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으며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었음은 물론 브라질에서 체육부 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센터 포워드

 

 

이름: 토스탕
출생년도: 1947년 1월 25일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69kg
포지션: 포워드,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하얀 펠레라 불렸던 1970년대 초반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유럽의 크루이프에 대한 남미의 대답으로 평가받았으며 경기 흐름을 완벽하게 파악하는 완벽한 전술안과 경기장 전체를 망라하는 드넓은 시야에서 나오는 창의적인 패스로 수많은 골 찬스를 만들었으며 상대 마킹맨을 농락하는 탈압박 능력과 화려한 드리블 실력을 겸비한 공격수였다.

크루제이루의 전국 리그 우승을 이끌었던 토스탕은 셀레상에서도 1970 브라질 월드컵에서 활약했는데 왕이라 불린 펠레의 뒤를 이어 부왕이라는 칭호로 불리며 활약했는데 히벨리누, 자이르지뉴,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제르손 등 전설적인 선수가 다수 포진했음을 감안하면 토스탕의 위상이 얼마나 높았는지 알 수 있다. 당연히 은퇴한 뒤에는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었다.

그러나 망막박리라는 치명적인 안구 질환으로 인해 26세라는 어린 나이에 은퇴했는데 이는 브라질 축구계의 큰 손실이었으며 펠레에 이어 토스탕마저 은퇴한 브라질 대표팀은 1974 서독 월드컵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기력을 보여주며 4위에 머문다.

 

감독

 

이름: 마리우 자갈루

출생년도: 1931년 8월 9일

부임기간: 1967-1968, 1970-1974, 1994-1998

 

선수 시절 브라질 대표팀의 레프트윙으로 활약하며 두 번의 우승을 이뤄낸 자갈루는 감독이 된 이후에 보타포구에서 좋은 성과를 내며 축구 역사상 최고의 국가대표팀이라 불렸던 1970 멕시코 월드컵의 셀레상을 이끄는 기회를 받았는데 모두의 기대대로 상대 팀들을 압도했으며 결승전에서는 카테나치오의 상징 이탈리아를 상대로 4-1 대승을 거두기도 했다.

4-2-4 시스템의 창안자인 페올라의 수제자로 4-3-3 같은 4-2-4를 활용해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줬으며 펠레, 토스탕, 제르손 등 여러 선수가 물러나자 유럽식 실리 축구로 전환하는 유연성도 지녔다.

 


1958~1970 브라질 베스트 일레븐

 


25인 스쿼드 / 서브 14인

 

 

 

이름: 카스틸류
출생년도: 1927년 11월 27일
신체조건: 키 181cm
포지션: 골키퍼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브라질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골키퍼로 탄력적인 점프와 적절한 위치 선정을 바탕으로 상대방의 공격을 안정적으로 막아냈으며 특히 결단력이 대단해 자신의 어느 한 손가락이 다섯 번째 부상을 당하자 아예 그 손가락을 절단해버리기도 했으며 그가 골문을 지킬 때면 유독 상대 공격수들이 골 포스트를 때리는 경우가 많아서 운 좋은 녀석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으며 우스갯소리로 카스틸류는 염력을 사용한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셀레상 소속으로도 무려 네 번의 월드컵에 나왔는데 조국에서 열린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바르보사의 백업 역할을 수행했으나 호사다마로 바르보사가 결승전에서의 패배를 이유로 밀려나자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는 주전을 차지했으나 헝가리에게 밀려 8강에서 탈락했으며 이후 지우마르에 밀려 벤치에 앉았으나 백업 멤버로 두 번의 월드컵 우승을 경험했다. 그리고 카스틸류는 코파 아메리카에서 3번 출전해 모두 준우승을 거뒀다

 

 

 

이름: 망가
출생년도: 1937년 4월 26일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3kg
포지션: 골키퍼

 

1955년에 데뷔해 1982년에 은퇴하며 무려 40대 중반까지 롱런했던 골키퍼로 안정적인 골문 방어와 일대일 상황에서의 번뜩이는 수비를 겸비해 이름을 날렸다.

보타포구와 우루과이의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인 망가는 대표팀과의 인연은 지독하게도 없는데 지우마르와 카스틸류에 밀려 두 번의 월드컵 우승의 영예를 함께하지 못했으며 유일하게 뽑힌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팀이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으며 1970 멕시코 월드컵 시절에는 우루과이에 머물러서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다.

 

 

 

이름: 마우루 하무스
출생년도: 1930년 8월 30일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6kg
포지션: 센터백

 

1940년대 후반부터 60년대 중반까지 롱런하며 명성을 누렸던 센터백으로 날카로운 태클과 뛰어난 제공권은 물론이고 우수한 수비 라인 지휘 능력으로 수비 라인의 리더로 팀의 수비를 이끌었다.

산투스의 전성기를 이끌며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2연패를 이끌어낸 하모스는 1950년대 셀레상에서는 백업 멤버로 1949 코파 아메리카와 1958 스웨덴 월드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1962 칠레 월드컵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활약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어냈다.

 

 

 

이름: 오를란두 페사냐
출생년도: 1935년 9월 20일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66kg
포지션: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1950년대와 60년대에 걸쳐 남미 무대에서 활약한 수비수로 강력한 몸싸움 능력이 장점이었으며 페어플레이를 중요하게 여기는 선수라 더럽거나 몰상식한 반칙이 난무하던 시대에 저런 반칙을 일절 저지르지 않아 사람들로부터 축구의 신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바스쿠 다 가마, 보카 주니어스, 산투스 FC에서 모두 뛰어난 활약을 펼친 오를란두는 셀레상에서는 일데랄두 벨리니와 함께 합을 맞춰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 우승을 기여하는 과정에서 4경기 연속 무실점을 이뤄냈으며 1962 칠레 월드컵에서는 아르헨티나에 머물고 있어 소집하지 못했으며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도 참가했다.

 

 

 

이름: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출생년도: 1944년 7월 17일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7kg
포지션: 라이트백, 센터백

 

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백 중 하나로 특히 현지 팬들은 그를 역대 최고의 라이트백으로 꼽는다. 최초의 현대적인 측면 수비수로 알려져 있으며 날카로운 오버래핑은 물론 중앙으로 치고 들어와 뛰어난 패싱력으로 골 찬스를 만들어내기도 했으며 이런 공격적인 부분에서의 강점들과는 다르게 수비수로서의 기본기도 뛰어나 중앙 수비수로 뛸 수도 있었다.

산투스에서 전성기를 누린 아우베르투는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주장으로 출전해 팀의 본선과 예선 전승 우승에 큰 공을 세웠는데 특히 그의 결승전 골은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골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최고의 셀레상의 캡틴이었던 아우베르투는 상술한 활약을 바탕으로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름: 히우두
출생년도: 1942년 1월 23일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65kg
포지션: 레프트백

 

니우통 산투스의 후계자로 보타포구에서 데뷔해 두각을 나타냈으나 전성기를 맞아 산투스로 이적해 활약한 공격형 레프트백으로 지칠 새 없이 그라운드를 뛰어다니는 지구력과 강력한 오버래핑으로 상대방의 오른쪽 측면을 초토화시켰다.

보타포구와 산투스에서 리우와 상파울루 무대를 풍미한 히우두는 셀레상에서는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 주전으로 출전했으나 조별 리그 탈락이라는 설움을 겪었으며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에베라우두와 마르코 안토니오와의 경쟁에서 밀려났다.

 

 

 

이름: 클로두아우두
출생년도: 1949년 9월 25일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1kg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1970년대 브라질을 빛낸 수비형 미드필더로 수비형 미드필더의 기본적인 역할은 물론 당대 정상급 윙어들에도 견줄 수 있는 뛰어난 드리블 기술을 활용한 적극적인 공격 가담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산투스에서 이름을 날린 클루두아우두는 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고의 대표팀이라는 1970 멕시코 월드컵에 주전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해 중앙 미드필더 제르송과 중원 조합을 이뤄서 활약했는데 이들의 압도적인 중원 장악 능력은 예선과 본선에서 전승으로 우승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름: 지르송
출생년도: 1941년 1월 11일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69kg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 남미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로 평가받았던 선수로 경기장 전체를 읽는 드넓은 시야와 예술과도 같은 볼 컨트롤은 물론 짧은 왼발 패스와 롱패스에 모두 능해 적절하게 템포를 조절하거나 골 찬스를 만들어내는 만능 플레이메이커였으며 왼발 기술이 좋아 팬들에게 황금의 왼발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대표팀 선배 지지와 마찬가지로 보타포구에서 전성기를 누렸으며 대표팀에서도 1966 잉글랜드 월드컵과 1970 멕시코 월드컵에 참가해 후자의 대회에서 브라질 대표팀의 두뇌로 활동하며 중앙 미드필더에서 템포를 조절하며 팀의 예선과 본선 전승 우승에 기여하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은 물론 MVP 투표에서 펠레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이름: 자이르지뉴
출생년도: 1944년 12월 25일
신체조건: 키 173m / 몸무게 74kg
포지션: 라이트윙, 스트라이커

 

가린샤의 후계자로 불렸으며 1970년대에 이름을 떨치던 윙어다.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드리블 돌파와 정확한 오른발 슈팅, 그리고 화려한 발기술을 이용해 상대 수비의 압박을 따돌리는 능력도 지녔지만 크로스의 정확도가 나빠 클래식 윙어로 기용되진 못했다.

보타포구에서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4회 우승과 1968년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을 이뤄낸 자이르지뉴는 셀레상에서도 1966 잉글랜드 월드컵과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했는제 전자의 대회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며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수모를 경험했지만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 전승 우승을 차지했던 셀레상의 주포였다. 본선에서 6경기 모두 출전해 7골을 넣었으며 이런 활약을 인정받아 1970 월드컵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사람들은 그를 월드컵 폭풍이라 불렸다.

 

 

 

이름: 주제 마시아 페페
출생년도: 1935년 2월 25일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1kg
포지션: 레프트윙, 포워드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반, 브라질 축구의 세 명의 스타 레프트윙 중 한 명으로 왼쪽 사이드에서 거침없는 드리블로 상대 수비를 돌파했으며 위치와 거리를 가리지 않는 기습적인 슈팅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에 사람들은 그를 두고 빌라의 대포라 불렸다.

산투스에서는 펠레와 함께 브라질 전국리그 5연패 및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 2연패에 기여했지만 셀레상에서는 감독의 선호도로 인해 자갈루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며 백업 멤버로 두 번의 월드컵 우승을 경험한다.

 

 

 

이름: 마리우 자갈루
출생년도: 1931년 8월 9일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61kg
포지션: 레프트윙, 공격형 미드필더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반 정상급 레프트윙으로 기술적으로 훌륭했을 뿐만 아니라 높은 수준의 전술안과 지치지 않는 지구력을 활용해 왕성한 활동량을 통해 넓은 범위에 영향을 끼쳤는데 중원 싸움에 가세하기도 했으며 소속팀 동료이자 대표팀 동료인 니우통 산투스의 오버래핑을 효과적으로 커버하기도 했던 미래형 윙어였다.

리우 데 자네이루의 명문 플라멩구와 보타포구에서 이름을 날린 마리우 자갈루는 브라질 대표팀에서는 카누테이루, 주제 마리아 페페와의 주전 경쟁에서 상술했던 플레이 스타일로 인한 전술적인 선호도 덕에 주전 자리를 차지했으며 1958 스웨덴 월드컵과 1962 칠레 월드컵에서 우승을 이뤄낸으며 1962 칠레 월드컵에서는 대회 베스트 일레븐으로 선정되었다.

 

 

 

이름: 아마리우두
출생년도: 1939년 6월 29일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68kg
포지션: 포워드, 스트라이커

 

1960년대 브라질과 이탈리아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공격수로 작은 몸집에서 착안해 꼬마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작고 마른 체구로 몸싸움에는 약했지만 대단한 순간 스피드와 민첩한 몸놀림을 화려한 빠른 방향전환 능력을 바탕으로 상대의 접촉을 피하며 상대 수비수를 따돌렸으며 감각적인 볼 컨트롤 능력과 우수한 슈팅 스킬까지 장착해 마무리와 연계에도 강점을 드러냈다.

보타포구의 전설적인 6관왕을 이끈 바바는 셀레상에서는 1962 칠레 월드컵에서 펠레의 백업으로 참가했으나 펠레의 부상으로 인해 주전으로 활약하며 가린샤, 자갈루, 지지, 니우통 산투스 등 보타포구 출신의 선수들과 함께 월드컵 우승을 이뤄냈다.

 

 

 

이름: 바바
출생년도: 1934년 11월 12일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1kg
포지션: 스트라이커

 

1950년대 하반기와 1960년대 상반기에 이름을 날렸던 스트라이커로 드리블이 뛰어나진 않았지만 탄탄한 기본기와 우수한 위치선정, 그리고 날카로운 오른발 슈팅으로 마무리하는데 능했으며 지구력이 좋아 왕성한 활동량으로 중원으로 내려가 볼 순환에도 돕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며 팬들로부터 강철 폐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바스쿠 다 가마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그리고 파우메이라스에서 전성기를 누린 바바는 셀레상에서도 펠레의 파트너로 맹활약하며 1958 스웨덴 월드컵과 1962 칠레 월드컵에서 주전 공격수로 우승했는데 전자의 대회에서는 5골을 득점했으며 후자의 대회에서는 4골을 득점하며 우승을 차지하는데 기여했으며 대회 공동 득점왕과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도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으며 월드컵 통산 9골을 기록했다.

 

 

 

이름: 코치뉴
출생년도: 1943년 6월 11일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4kg
포지션: 스트라이커

 

산투스 유소년 팀을 거쳐 산투스에서 데뷔한 프랜차이즈 스타로 10년간 펠레와 투톱 콤비를 구성해 활약했으며 '페널티 박스 안의 천재'라 불렸던 엄청난 포처로 뛰어난 위치 선정과 정확한 슈팅으로 무수히 많은 골을 기록했으며 펠레는 그를 두고 "코치뉴는 페널티 박스 안에서만큼은 나보다 더 뛰어났다. 그의 냉정함은 가히 초자연적이었다."라고 칭찬했다.

코치뉴는 산투스에서 펠레의 공격 파트너로 브라질 전국리그 5연패 및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2연패를 이뤄내며 무수한 영광을 누렸지만 대표팀에서는 펠레, 바바, 토스탕과 같은 거물 공격수들에 의해 거의 기용되지 못하는 비운의 선수였다.

 


25인 스쿼드 완성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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