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영웅들/대한민국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 공격수 Top 20

토르난테 2023. 4. 26.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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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대한민국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 출처는 KFA 대한축구협회입니다.

*기존에 처진 공격수로 분류된 손흥민, 이상윤을 윙어로 옮겼습니다.
*통합 기록일은 2023년 4월 26일 입니다.


20위 김신욱

 


생년월일: 1988년 4월 14일
A매치 기록: 56경기 15득점
신체조건: 키 198cm / 몸무게 93kg
주 소속팀: 울산 현대


2010년대 아시아 정상급 장신 공격수로 키도 크고 파워도 강력하며 헤더도 잘 쓰지만 의외로 뒷공간으로 끊임없이 파고들어 공간을 창출하고 수비수와 몸을 비벼서 체력을 소진시키는 플레이를 보여주기보다는 미리 공의 낙하지점을 포착하고 압도적인 제공권으로 몸싸움의 여지조차 주지 않고 빠르게 넣는 방식을 선호했으며 발밑도 괜찮아 우수한 연계 플레이를 보여주는 선수로 겉보기와는 다르게 피지컬보다는 테크닉으로 승부를 보는 스트라이커다.

울산 현대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비록 리그 우승을 이뤄내진 못했지만 2011년 리그컵 득점왕을 차지하며 우승에 공을 세웠고 2012 시즌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크게 공헌했으며 2013년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MVP를 수상했으며 2015년에는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 맹활약했으나 울산 현대 측과 재계약을 두고 마찰을 빚다가 전북 현대로 이적해 K리그 2회 우승과 2016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그 과정에서 전북 팬들의 찬사와 울산 팬들의 비난을 동시에 받았으며 상하이 선화에서도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다.

2010년대 성인 대표팀에 발탁되었으며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지만 대체로 원톱으로 설 때는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중원이 열세인 과정에서 고전하는 김신욱의 단점이 부각되는 일이 잦아 대표팀에서는 대체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다.

 

 

19위 지동원

 

 

생년월일: 1991년 5월 28일
A매치 기록: 55경기 11득점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FC 아우크스부르크


2010년대 유럽 무대에서 활약했던 만능 공격 자원으로 비록 결정력은 매우 좋지 않지만 3선까지 내려와 볼을 운반하거나 좌우 윙어와 스위칭 플레이를 하거나 측면을 가로지르며 크로스를 올려 찬스를 만드는 부분에 능했으며 키가 큰 편이라 공중볼 경합은 잘하는 편이라 주 포지션인 처진 공격수 이외에도 최전방과 윙어, 그리고 공격형 미드필더까지 다양한 포지션에서 활용이 가능했다.

전남 드래곤즈에서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으며 이런 활약을 인정받아 당시 프리미어리그에 있었던 선덜랜드로 이적했으나 2골을 득점하는데 그치며 부진했는데 그 두 골이 첼시와 맨체스터 시티였기에 다른 팀의 눈도장을 받았으며 독일 분데스리가의 아우크스부르크로 이적해 전성기를 누렸으며 잠시 도르트문트로 이적했으나 부진해 다시 아우크스부르크로 가서 준주전 멤버로 활약하다가 마인츠를 거쳐 FC 서울로 이적하며 국내 무대로 리턴했다.

대표팀에서는 조광래 체제에서는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으나 이후에는 유럽파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부진했으며 2014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백업으로 교체 출장해서 짧은 시간을 소화했다. 다만 올림픽 대표팀에서의 활약은 대단했는데 2012 런던 올림픽에서는 동메달을 따는데 큰 공을 세웠다.

 


18위 정남식

 


생년월일: 1917년 2월 16일
A매치 기록: 17경기 14득점
신체조건: 키 162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조선방직 축구단


대한민국이 일제로부터 광복한 직후에 활약했던 인사이드 포워드로 감각적인 득점력으로 이름을 날렸다.

조선방직 축구단에서 활약했던 정남식은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첫 A매치에 출전해 첫 득점과 첫 해트트릭을 기록했으며 1948 런던 올림픽에서는 멕시코를 상대로 득점해 8강 진출을 이뤄냈으며 1954 스위스 월드컵 지역예선은 일본을 상대로 1차전과 2차전 모두 득점에 성공하며 대한민국의 월드컵 본선행을 이끌어냈다.

 

 

17위 황의조

 


생년월일: 1992년 8월 28일 
A매치 기록: 53경기 16득점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지롱댕 보르도


2010년대 후반과 2020년대 초반에 아시아 무대와 프랑스 무대에서 훌륭한 모습을 보여준 스트라이커로 감바 오사카의 미야모토 츠네야스 감독에 따르면 한국 축구와 일본 축구의 장점을 모두 잘 배우는 선수로 불렸는데 섬세한 볼 컨트롤에서 나오는 연계능력과 우수한 포스트플레이에서 나오는 헤더와 오프 더 볼 상황에서의 우수한 움직임을 겸비했다.

성남 일화와 감바 오사카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으며 특히 감바 오사카에서는 2018년 J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리그앙의 보르도에서도 리그앙 아시아 선수 최초의 해트트릭과 아시아 선수 단일 시즌 및 통산 최다 득점과 공격 포인트라는 대기록을 세웠으며 대표팀에서는 슈틸리케 체제와 신태용 체제에서는 중용받지 못했지만 2018 아시안게임에서 득점왕에 오르며 팀의 금메달 사냥에 큰 공을 세운 이후로는 대표팀 레귤러 멤버로 뽑혀 활약 중이었으나 최근에는 2022 카타르 월드컵 주전을 두고 본인의 부진과 조규성의 성장으로 주전 경쟁에서 밀렸다.

 

 

16위 김도훈

 


생년월일: 1970년 7월 21일
A매치 기록: 72경기 30득점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전북 현대


1990년대 활약했던 클래식 스트라이커로 큰 키와 피지컬을 이용한 포스트 플레이도 훌륭하였고 위험 지역에서의 볼 컨트롤이나 퍼스트 터치도 훌륭했으나 페널티 박스를 벗어나면 경기 영향력이 급감했으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날렸던 앨런 시어러와 플레이스타일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K리그 팬들에게는 한국의 앨런 시어러라고 불렸다.

연세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상무에서 군 복무를 마친 뒤에 프로 무대에 합류하며 신생 구단인 전북 현대 다이노스에 드래프트로 합류해 활약했다가 J리그의 빗셀 고베로 이적해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뒤에 다시 전북 현대로 돌아와 2000년에 K리그 득점왕을 수상하고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FA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2003년에는 성남에 합류해 역시 K리그 우승을 이뤄내며 득점왕과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됨은 물론 대회 MVP까지 수상했으며 2004년에는 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거뒀으며 김도훈 개인도 득점왕에 올랐다.

대표팀에서는 1994 미국 월드컵 이후로 발탁되어 활약했으며 한떄 황선홍, 최용수와 치열한 주전 경쟁을 벌였으며 1998 프랑스 월드컵에 황선홍의 부상과 최용수의 컨디션 난조로 주전으로 나섰으나 부진했으며 1999년에는 브라질과 친선전에서  후반 종료 직전에 브라질을 상대로 결승골을 넣어 브라질을 1-0으로 격파하는 파란을 일으켰으며 2002 북중미 골드컵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했으나 정작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뽑히지 못했다.

 

 

15위 최용수

 


생년월일: 1971년 9월 10일
A매치 기록: 69경기 27득점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안양 LG 치타스 (現 FC 서울)


독수리라 불렸던 1990년대 후반 대한민국 대표팀의 간판 공격수로 예리한 슈팅 감각은 물론 강력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상대 수비수를 등지고 플레이하는 부분에 능했다.

연세대학교에 입학해 활약하다가 안양 LG 치타스에 입단해 첫 시즌인 1994 시즌에 K리그 신인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고 1998년 FA컵 우승 및 2000 시즌에는 K리그 우승을 이끄는데 큰 공을 세워 K리그 베스트 일레븐과 K리그 MVP를 수상했으며 이후 J리그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클럽에서만큼은 아니지만 대표팀에서도 준수한 모습을 보여줬던 최용수는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 주전 선수로 활약했으며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아시안컵 예선에서 7골 2도움을 기록하며 뛰어난 활약을 펼쳤지만 정작 본선에서는 네덜란드전과 벨기에전에 출전했으나 부진했으며 2002 한일 월드컵에서도 백업 멤버로 4강 진출을 경험했으나 본인은 좋은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다.

 


14위 이근호

 


생년월일: 1985년 4월 11일
A매치 기록: 84경기 19득점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울산 현대


2000년대 후반과 2010년대 상반기에 이름을 날렸던 선수로 투박한 스타일이고 결정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빠른 스피드와 왕성한 활동량, 그리고 오프 더 볼 상황에서의 우수한 움직임과 동료들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연계 플레이로 동료들에게 공간을 만들어 주면서 본인도 찬스를 만드는 스타일로 바이에른 뮌헨과 크로아티아에서 활약하던 올리치와 플레이 스타일이 비슷하다.

대구에서 태양의 아들이라 불렸을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펼친 이근호는 2007년과 2008년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J리그에서 활약하다 울산으로 이적해 2012 시즌에 철퇴축구에서 역습 상황에서 공격의 첨병 역할을 맡으며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으며 대회 MVP와 아시아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이후 군 문제로 인해 상주 상무로 이적해 2부 리그 득점왕과 MVP를 수상하는 활약을 보여줬다.

대표팀에서는 남아공 월드컵 엔트리에서 탈락했으나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팀원들 대부분이 부진했지만 이근호는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으며 러시아전에서는 선제골을 득점하며 팀의 유일한 승점을 따내는데 공헌했으며 2015 아시안컵에서도 조국의 결승 진출을 이뤄냈다.

 

 

13위 황희찬

 


생년월일: 1996년 1월 26일
A매치 기록: 51경기 10득점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레드불 잘츠부르크


손흥민 이후 세대의 대한민국 축구 선수 중 가장 성공한 사례로 평가받으며 빠른 스피드에서 나오는 저돌적인 돌파력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키는 큰 편이 아니었지만 유럽인들과의 몸싸움에서도 밀리지 않았던 탄탄한 피지컬을 만들었으며 높은 점프력으로 인해 제공권 경합 능력도 우수했다.

레드불 잘츠부르크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며 엘링 홀란, 미나미노 타쿠미와의 공격 조합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리버풀과의 챔피언스리그에서는 현재 최고의 센터백 반 다이크를 왼발 슛 모션으로 속이고 오른발로 마무리하는 활약상을 보여주는 활약을 펼쳐 분데스리가의 라이프치히로 이적했으나 라이프치히에선 부진한 활약을 보여주며 울버햄튼으로 이적해 치열한 주전 경쟁을 벌이고 있다.

대표팀에서는 청소년 대표팀과 아시안 게임에서는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는 금메달을 타냈지만 2018 러시아 월드컵과 2019 아시안컵에서는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였지만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부상으로 조별리그 초반에 두 경기를 결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 포르투갈전에서 역전골을 기록해 조국의 16강 진출에 큰 힘을 보탰으며 브라질전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12위 김재한

 


생년월일: 1947년 4월 1일
A매치 기록: 58경기 33득점
신체조건: 키 190cm
주 소속팀: 한국주택은행 축구단


1970년대 대한민국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190cm에 달하는 압도적인 피지컬을 활용한 포스트플레이와 헤더로 명성을 날렸으며 특히 당시 측면 공격수로 뛰던 차범근과의 호흡이 매우 뛰어나 "찼다 찼다 차범근 센터링 올렸다. 떴다 떴다. 김재한 헤딩슛 골인"이라는 노래가 유행했을 정도로 호흡이 뛰어났다.

1972년에 한국주택은행 축구단의 춘계실업축구연맹전과 추계실업축구연맹전, 그리고 국무총리배 축구대회와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를 모두 우승하며 4관왕을 이뤄냈으며 대표팀에서도 1974 테헤란 아시안게임에 참가해 활약했다.'

큰 덩치와 함께 성격도 강했는데 국가대표 청백전에서는 주전 골키퍼이자 아시아의 폭군으로 불렸던 이세연이 김재한에게 한 골을 먹은 후 한 손으로는 공을 향해 한 손으로는 김재한의 얼굴을 향해 펀칭을 하는 바람에 김재한의 어금니가 부러지자, 김재한이 자신의 부러진 어금니를 주워 들고 이세연을 노려보자 이세연이 움찔하더니 그 이후로는 김재한을 건드리지 않았다고 한다.

 


11위 정해원

 


생년월일: 1959년 7월 1일
A매치 기록: 65경기 22득점
신체조건: 키 178cm
주 소속팀: 대우 로얄즈 (現 부산 아이파크)


1980년대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멀티플레이어로 주 포지션인 처진 공격수는 물론 좌우 윙어와 공격형 미드필더, 그리고 중앙 미드필더와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볼 수 있었으며 빠른 스피드와 우수한 신체 밸런스를 지녀 상대의 압박을 튕겨냈으며 비단결 같은 패싱력과 원샷원킬의 슈팅으로 이름을 날렸다.

선수 생활을 전부 대우 로얄즈에서 보낸 부산의 반디에라로 K리그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86년에는 K리그에서 2경기 연속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활약을 펼치며 득점왕에 올랐으며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우승을 이뤄냈으며 1987년에는 K리그 MVP를 수상했고 K리그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대표팀에서는 기라성같은 공격수가 많아서 주로 중앙 미드필더나 수비형 미드필더에서 활약하며 1980년과 1988년 아시안컵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도 출전해 대표팀의 중원을 책임졌다.

 

 

10위 이태호

 


생년월일: 1961년 1월 29일 
A매치 기록: 80경기 24득점
신체조건: 키 172cm
주 소속팀: 대우 로얄즈 (現 부산 아이파크)


1980년대 한국 축구 최고의 공격수로 1987년 포항제철과의 경기에서 상대 수비수의 발에 오른쪽 눈을 강타당해 실명했지만 본인의 끝없는 노력으로 이를 극복했으며 우수한 골 감각으로 언론으로부터 한국의 게르트 뮐러라고 불렸지만 사실은 득점은 물론 우수한 테크닉과 탄탄한 기본기, 그리고 창의적인 패싱력과 왕성한 활동량도 겸비해 스트라이커 이외에도 중앙 미드필더와 공격형 미드필더까지 볼 수 있었던 다재다능한 자원이었다.

이미 고려대학교 시절부터 성인 대표팀으로 활약했던 이태호는 1980 아시안컵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1986 멕시코 월드컵 엔트리에 들었으며 1986 아시안 게임에서는 금메달을 수상했고 1988 아시안컵에서는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본인은 대회 득점왕과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드는 활약을 보여줬으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했다.

소속팀에서는 대우 로얄즈의 원 클럽맨이자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대우에서 공격수와 중앙 미드필더를 오가며 K리그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86년에는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아프로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에서 우승했으며 개인적으로도 1984년과 1990년에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9위 조윤욱

 

 

생년월일: 1940년 2월 25일
A매치 기록: 56경기 25득점
신체조건: 미상
주 소속팀: 대한중석 축구단


1960년대 아시아 축구를 대표하던 스트라이커로 영리한 위치 선정과 타고난 골 감각으로 엄청난 득점력을 보여줬다.

현재로서는 대한민국 대표팀의 마지막 아시안컵 우승을 이뤄낸 대회인 1960 아시안컵에 참가해 베트남전과 이스라엘전에서 모두 멀티골을 득점하며 득점왕에 올라 아시안컵 우승에 크게 기여했으며 1962년 아시안게임에서는 숙적 일본과의 조별 라운드 최종전에서 후반 80분에 결승골을 득점했고 결국 은메달까지 따내며 국가적 스타로 떠올랐다.

실업축구에서도 1966년 추계실업축구연맹전과 1968 춘계실업축구연맹전에서 우승했으며 대통령배 전국 축구대회 2회 우승을 이뤄냈다.

 

 

8위 최정민

 


생년월일: 1930년 8월 30일
A매치 기록: 47경기 22득점
신체조건: 키 178cm
주 소속팀: 특무부대 축구단


195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으며 아시아의 황금발이라 불렸던 한국 축구 1세대 스트라이커로 평안남도 출신이지만 1.4 후퇴 때 월남해 남한에 정착한 이후 1952년부터 활약했는데 당시로서는 큰 키에서 나오는 헤더와 100m를 11초에 주파하는 빠른 스피드를 겸비했으며 일본 수비수 히라키 류조는 최정민에 대해 “밸런스와 스피드를 겸비한 공격수여서 그를 저지할 수 없었다. 우리는 거인과 싸우는 어린이들 같았다.”라고 회고했다.

1954 스위스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일본과의 첫 경기에서 멀티골을 득점해 대한민국을 본선에 올렸으며 세계의 벽은 높았고 대한민국의 상황은 열악했지만 이후 1956년 초대 AFC 아시안컵에서 우승을 이뤄냈으며 이후 1960 AFC 아시안컵에서도 우승하며 2연패를 이뤄냈으며 두 번의 아시안 게임에서도 2회 연속 은메달을 차지했다.

최정민은 특히 한일전에 강했는데 한일전에만 무려 6골을 넣은 기록을 갖고 있으며, 이는 한일전 역사상 최다 득점 기록이다.

 

 

7위 이동국

 


생년월일: 1979년 4월 29일 
A매치 기록: 105경기 33득점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전북 현대


1970년대생 한국 축구 최고의 재능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던 공격수로 군더더기 없는 볼 터치 후 정확한 슈팅으로 득점했으며 강력한 피지컬에서 나오는 포스트 플레이에 와 높은 수준의 축구 지능에서 나오는 연계 플레이에도 능했다. 

K리그에서는 프로 데뷔 시즌인 1998년에 최우수 신인상을 받았던 이동국은 대표팀에서도 1998 프랑스 월드컵 네덜란드전에 교체 출전해 데뷔했으나 플레이 스타일 문제로 히딩크의 눈 밖에 나서 한일 월드컵 명단에서 제외되었으며 2006 독일 월드컵 때는 절정의 폼을 보여줬으나 부상으로 낙마했으며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교체 멤버로 활약했으나 우루과이전 득점 찬스를 날리는 등 월드컵 무대와는 악연이었지만 예선에서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국가대표팀 A매치 통산 득점 4위에 랭크되었다.

이동국은 대표팀보다는 클럽 무대에서 롱런하며 위대한 기록을 여러번 세웠는데 포항과 전북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K리그 8회 우승을 이뤄냈고 K리그 베스트 5회 선정되었으며 K리그 통산 최다 득점과 통산 최다 도움 2위, 그리고 통산 출전 3위와 통산 공격포인트 1위를 자랑했으며 AFC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통산 득점 2위에 랭크된 기록의 사니이였다.

 

 

6위 박주영

 


생년월일: 1985년 7월 10일 
A매치 기록: 68경기 24득점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AS 모나코 


2000년대 중반에 축구 천재라 불리며 데뷔한 선수로 별명에 걸맞게 높은 전술안에서 나오는 오프 더 볼 능력과 적절한 위치 선정 능력, 그리고 탄탄한 볼 컨트롤과 정확한 슈팅과 헤더로 득점포를 가동했다.

FC 서울에서 신인상과 리그 베스트 일레븐을 휩쓸었으며 AS 모나코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펼쳐 아스날에 이적한 경험이 있었으며 유럽에서 FC 서울로 돌아온 뒤에는 2015년 FA컵과 2016 시즌 K 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대표팀에서도 박주영은 2006 독일 월드컵 스위스전에서 선발 출전해 월드컵 무대에 데뷔했으며 2010 남아공 월드컵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 나이지리아전 동점골,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일본을 상대로 결승골을 득점하는 등 꾸준하진 못했어도 중요한 길목에서 클러치 능력이 빛나던 선수였지만 이미 기량이 쇠퇴한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부진했다.

 

 

5위 안정환

 


생년월일: 1976년 1월 27일
A매치 기록: 71경기 17득점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부산 대우 로얄즈 (現 부산 아이파크)


1970년대생 한국 축구 최고의 재능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던 공격수로 화려한 볼 컨트롤과 영리하고 실용적인 오프 더 볼 능력을 겸비했으며 날카로운 오른발 킥으로 득점에도 능했으며 이런 화려한 플레이 스타일과 잘생긴 외모로 테리우스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K리그의 대우 로얄즈에서 빼어난 활약을 펼치며 1998년과 1999년에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특히 1999년에는 K리그 MVP를 수상하며 페루자로 이적했으나 집안 문제와 에이전트의 미숙한 일처리, 그리고 페루자의 괴짜 구단주에 의한 피해자였는데 이로 인해 세리에의 여러 클럽이 노렸음에도 J리그로 이적하며 페루자 입단 초기에 그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마테라치가 인테르에 안정환의 영입을 추천했을 정도의 재능에 비해 클럽 커리어가 상당히 좋지 않게 풀렸다.

대표팀에서는 슈퍼 서브 역할을 맡아 경기를 뒤집는 역할에 능했던 안정환은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슈퍼서브로 활약하며 조별 리그 미국전 동점골과 16강 이탈리아전 골든골을 득점했으며 2006 독일 월드컵에서도 토고전 역전 결승골을 득점하며 맹활약했다.

 

 

4위 황선홍

 


생년월일: 1968년 7월 14일
A매치 기록: 103경기 50득점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포항 스틸러스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평가받으며 강력한 피지컬과 넓은 활동 반경, 그리고 우수한 슈팅 스킬과 지능적인 위치 선정으로 많은 골을 폭격했으며 연계 플레이에도 능했던 한국 축구계의 마르코 반 바스텐이었다.

포항 스틸러스에서 전성기를 누린 황선홍은 포항에서 1993년 리그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라데와의 투톱으로 이름을 날리며 1995년 K리그 베스트 일레븐상을 수상했고 일화와 대우의 강세에 밀려 리그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대신 1997년과 1998년에 AFC 챔피언스리그 2연패를 이뤄냈으며 이후 J리그의 세레소 오사카에서 득점왕과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

대표팀에서도 황선호은 대한민국 소속으로 A매치 통산 최다 득점자에 랭크된 차범근에 이어 통산 득점 2위의 대기록을 세웠으며 1988 아시안컵 카타르에서 데뷔했는데 데뷔전인 한일전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했으며 이후 부상으로 낙마한 1998 프랑스 월드컵을 제외하고 1990 이탈리아 월드컵부터 2002 한일 월드컵까지 활약했으며 1994 미국 월드컵에서의 부진을 2002 한일 월드컵 폴란드전 득점으로 씻어내며 팀의 4강 진출에 공헌한 것은 덤이다.

 


3위 최순호

 


생년월일: 1962년 1월 10일
A매치 기록: 95경기 30득점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포항제철 축구단 (現 포항 스틸러스)


이탈리아 축구계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던 한국의 판타지스타형 공격수로 화려한 볼 컨트롤 능력과 슈팅과 동료를 적절하게 이용하고 날카로운 킬러 패스를 찔러주는 플레이메이킹에 모두 능했으며 큰 키와 강한 피지컬까지 겸비했다. 

청소년 대표팀과 병행하던 시절에 성인 대표팀에 데뷔해 1980 AFC 쿠웨이트 아시안컵에서 7골로 역대 최연소 득점왕에 오르며 준우승에 기여했으며 1986 멕시코 월드컵과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했다.

프로 데뷔 이전인 1981년 호주 청소년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와의 조별 리그 첫 경기에서 2골 2도움의 MOM급의 활약을 벌여 이탈리아를 4-1로 꺾었으며 이로 인해 이탈리아의 명문 유벤투스로부터 로베르트 베테가의 대체자로 거론되었으나 국내 리그를 활성화시키고 싶어 했던 정치권과 국내의 분위기로 인해 결국 이적은 불발되었는데 뛰어난 활약으로 2002년 한국갤럽에서 선정한 한국 축구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

 

 

2위 이회택

 


생년월일: 1946년 10월 11일
A매치 기록: 82경기 21득점
신체조건: 키 167cm
주 소속팀: 포항제철 축구단 (現 포항 스틸러스)


차범근이 대두하기 이전 한국 최고의 선수라고 평가받았으며 100m를 11초 8에 끊는 빠른 스피드와 낮은 무게중심에서 나오는 튼튼한 신체 밸런스를 겸비했으며 강력한 슈팅과 유려한 패스로 찬스를 만드는데 능했던 전천후 공격수였으며 당대 유럽 최고의 공격수 에우제비우와 비슷한 플레이 스타일로 인해 아시아의 표범이라 불렸던 선수다.

포항 스틸러스의 전신 포항제철 축구단의 창단 멤버였던 이회택은 비록 월드컵에서 활약하진 못했지만 1970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땄으며 1972 AFC 아시안컵에서는 준우승을 이뤄냈다. 

한국 대표팀 소속으로 펠레의 산투스와 에우제비우의 벤피카와 친선경기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쳐 분데스리가의 묀헨글라트바흐와 포르투갈의 벤피카가 그에게 관심을 보였지만 정보 부족으로 해외에서 축구하는것이 좋은 경험인지 몰랐던 이회택이 거부해서 이적이 불발되었고 훗날에 크게 후회했다고 전해진다.

 

 

1위 차범근

 


생년월일: 1953년 5월 22일생
A매치 기록: 136경기 58득점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였으며 분데스리가에서도 통했던 우수한 피지컬과 파괴적인 슈팅으로 상대의 골문을 강타해 갈색 폭격기라 불렸으며 측면에서 찬스를 만들어내는 이타적인 플레이에도 능했다.

서독 분데스리가에서도 정상급 선수로 활약했던 차범근은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전에서 각각 한 번씩 UEFA컵 우승 과정에서 핵심으로 활약했던 차범근은 이미 서독 분데스리가에 가기 전부터 대표팀에서 130경기를 뛰고 50골을 넘게 득점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줬으며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나왔다. 

실제로 차범근은 1979-80 시즌 전반기에 까다롭기로 유명한 키커 랑리스테 외국인 항목에서 케빈 키건을 제치고 월드클래스 1위를 받아 세계를 충격에 빠트렸으며 당연하게도 IFFHS 선정 20세기 아시아 최고의 축구선수, 2002년 한국갤럽 선정 한국 축구 역대 베스트 일레븐과 2010년 베스트 일레븐지 선정 한국 축구 역대 베스트 일레븐을 모두 석권했으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A매치 통산 최다 출전과 최다 득점마저 기록한 명실상부 대한민국과 아시아 축구의 얼굴이다.

 


아쉽게 뽑히지 못한 선수로는 김용세, 노수진, 신연호, 김종부, 김현석, 노상래, 김은중, 조재진, 정조국, 주민규, 조규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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