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영웅들/대한민국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윙어 Top 15

토르난테 2022. 5. 1.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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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대한민국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 출처는 KFA 대한축구협회입니다.
*기록일은 2022년 5월 1일 기준입니다.
*기존에 처진 공격수로 분류된 손흥민, 이상윤을 윙어로 옮겼습니다. (처진 공격수는 중앙 공격수와 통합되었습니다.)
*1차 수정일은 2022년 12월 6일 기준입니다.
*커리어가 다소 짧은 정우영, 송민규 선수는 평가에서 보류했습니다.


15위 권창훈

생년월일: 1994년 6월 30일
A매치 기록: 43경기 12득점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66kg
주 소속팀: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0년대 후반부터 두각을 나타낸 윙어로 오른쪽 측면에서 빠르게 중앙으로 침투해 왼발로 마무리 짓는 플레이를 즐기며 중거리 슈팅과 패스에도 능해 공격형 미드필더로도 기용된다.

수원 삼성에서 데뷔해 리그 정상급 선수로 활약하며 2015 시즌과 2016 시즌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2016 시즌에는 FA컵 우승에도 기여했다. 이후 프랑스의 디종과 독일의 프라이부르크에서 활약하다가 군 복무를 위해 다시 국내로 돌아왔으며 김천 상무에서 활약 중이다.

이청용이 하락세를 겪은 이후 대표팀에서 주전으로 활약했지만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해 2018 러시아 월드컵 출전이 좌절되었으며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폼이 떨어졌음에도 소집되었는데 가나전에 선발로 출전했으나 다소 아쉬운 활약을 보여주며 많은 비판을 받았다.

 

14위 정병탁

생년월일: 1942년 3월 14일
A매치 기록: 39경기 11득점
신체조건: 키 173cm
주 소속팀: 양지 축구단


1960년대 대한민국 최고의 아웃사이드 레프트이자 인사이드 레프트로 빠른 발을 앞세운 돌파력과 지능적인 플레이에 강점이 있었다.

이미 연세대학교 시절에 대표팀에 발탁되었으며 군 복무 시절 들어간 중앙정보부 산하의 축구단인 양지 축구단에 입단해 1969년에 열린 아시안 챔피언 클럽 토너먼트에서는 양지 축구단의 결승 진출을 이끌기도 했다.

대표팀에서는 1964 아시안컵과 1966년과 1968년 메르데카 국제 축구대회에 대표팀 주전 선수로 참가했다.

 

13위 김진국

생년월일: 1951년 9월 14일
A매치 기록: 97경기 27득점
신체조건: 키 165cm
주 소속팀: 기업은행 축구단


1970년대 대한민국 축구를 대표하는 윙어로 원래는 오른발 잡이었으나 피나는 노력으로 왼발도 능숙하게 사용하게 된 선수다. 키가 작았지만 탄탄한 기본기와 우수한 테크닉을 바탕으로 뛰어난 접기 실력을 보여주며 수비수들을 제쳤다.

대표팀에서 1972 아시안컵 준우승을 거두었으며 1974 서독 월드컵 예선과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예선에서도 대표팀으로 활약했으나 아쉽게도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다.

기업은행과 육군 축구단, 건국대학교 축구부에서 활약하다가 2. 분데스리가에 소속된 SV 다름슈타트 98로 이적했으며 보르마티아 보름스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12위 염기훈

생년월일: 1983년 3월 30일
A매치 기록: 57경기 5득점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0년대 K리그 정상급 선수로 볼 키핑 능력과 날카로운 킥력의 소유자로 스피드가 빠른 편은 아니지만 면도날 같은 왼발 크로스와 뛰어난 볼 배급 능력으로 상대 공격을 지원하는 능력에 능하다.

전북에서 데뷔해 2006 시즌 AFC 챔피언스 리그 결승 1차전에서 선제골을 기록하는 맹활약을 펼치며 그 해 전북의 첫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에 크게 일조했다. 이후 울산을 거쳐 수원에 입단해서 세 번의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도움왕도 두 번이나 수상했다. 3회의 FA컵 우승을 기록했는데 그중 2010 시즌과 2016 시즌에는 FA컵 MVP를 수상 받기도 했다.

다만 대표팀에서는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원정 첫 조별 리그 통과를 기록했지만 선발로 나온 경기에서 부진한 활약을 보여주며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는 막판에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월드컵을 앞두고 부상당하며 명예 회복의 기회를 얻는 데에는 실패한 비운의 선수다.


11위 박이천

생년월일: 1947년 7월 26일
A매치 기록: 88경기 36득점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2kg
주 소속팀: 국민은행 축구단


1970년대 상반기 대한민국 대표팀의 에이스로 빠른 스피드와 날카로운 슈팅을 앞세워 측면 공격수와 중앙 공격수를 두루 소화했다.

1970 아시안게임에서는 4강에서 일본을 상대로 연장전 결승골을 넣고 결승전에서도 승리해 금메달을 따냈으며 1972 아시안컵에서는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크메르 (오늘날의 캄보디아), 쿠웨이트, 태국, 이란을 상대로 모두 득점하는 데 성공하며 대회 득점왕에 오른다.

실업리그에서는 양지 축구단과 국민은행 축구단에서 활약했으며 KFA 올해의 팀에 5회 선정되었으며 1972년엔 KFA 올해의 선수를 타냈으며 대한민국 대표팀 A매치 득점 3위에 올라있다. 그보다 더 많은 득점을 기록한 선수는 황선홍과 차범근뿐이다.

 

10위 이상윤

생년월일: 1969년 4월 10일
A매치 기록: 30경기 12득점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67kg
주 소속팀: 일화 천마 (現 성남 FC)


일화 천마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다재다능한 공격수로 빠른 스피드와 테크니컬한 드리블로 상대 진영을 휘젓는 플레이를 선호하며 찬스가 나면 바로 슈팅을 노렸으며 팀원에게 득점 찬스를 만드는 부분에도 능했으며 측면과 중앙을 가리지 않고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다.

일화 천마에 입단해 박종환 감독 체제에서 주전 공격수로 활약하며 1992년 아디다스컵 우승을 시작으로 1993 시즌부터 1995 시즌까지 K리그 3연패를 이뤄냈으며 1996년에는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 우승을 이뤄냈으며 아시아 슈퍼컵에서도 우승하는데 크게 기여했으며 이상윤 개인도 1991년과 1993년에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특히 1993년에는 K리그 우승의 일등 공신으로 인정받아 K리그 MVP를 수상했으며 프랑스 리그의 로리앙에서 유럽 무대도 경험했다.

대표팀에서는 황선홍, 서정원, 김주성 등 뛰어난 공격수가 많아서 주전 경쟁에서 순탄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1990 이탈리아 월드컵과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대표팀 멤버로 참가해 후자의 대회 멕시코전에서는 선발 출전했다.


9위 변병주

생년월일: 1961년 4월 26일
A매치 기록: 76경기 11득점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대우 로얄즈 (現 부산 아이파크)


대한민국 축구를 대표하는 스피드 스타로 100m를 11초에 주파하며 총알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 외에도 일대일 돌파에서 강점을 보여줬으며 날카로운 슈팅력을 지녔다.

연세대학교 시절에 이미 대표팀에 발탁되었으며 그 해에 이미 KFA 올해의 팀에 들었다. 1986 멕시코 월드컵과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활약했으며 이외에도 1986 아시안 게임 금메달과 1988 아시안컵 준우승을 이루는데 큰 공을 세웠다.

K리그에서는 대우 로얄즈에서 주로 활약했으며 대우에서 K리그 우승 2회를 경험했다.

유독 서아시아 팀에게 강했는데 서아시아의 국가들을 만나면 유독 좋은 경기력은 물론 골도 자주 넣었다.

 

8위 이천수

생년월일: 1981년 7월 9일
A매치 기록: 78경기 10득점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65kg
주 소속팀: 울산 현대


2000년대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풍운아로 킥 능력이 우수해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프리키커 중 하나로 꼽힌다. 그리고 작은 체구에 뛰어난 스피드를 가졌으며 특히 공을 잡고 방향을 전환하면서 순간적으로 가속을 붙이는 능력이 좋았다.

고려대학교 시절부터 대표팀에 뽑히던 엘리트였으며 울산 현대에 입단한 뒤 한일 월드컵에서 로테이션 멤버로 준수한 활약을 펼치며 대한민국의 4강 신화에 공헌했다.

이후 2002 시즌에는 신인상과 도움왕을 수상하고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된 뒤 2003년에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라 리가에 도전했으나 적응 문제로 실패한 뒤 울산으로 다시 이적해 울산의 2005 시즌 K리그 우승에 큰 공을 세웠으며 K리그 MVP를 수상했고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주전 멤버로 활약하며 토고전에서 프리킥 득점을 기록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조별 리그에서 아쉽게 탈락했다. 이후 2007 아시안컵에서는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이후에도 유럽 무대에 도전했지만 적응 문제로 실패했으며 여러 팀을 전전하다가 인천에서 은퇴했다.


7위 고정운

생년월일: 1966년 6월 27일
A매치 기록: 77경기 10득점
신체조건: 키 177cm
주 소속팀: 일화 천마 (現 성남 FC)


1990년대 대한민국 축구계를 호령했던 윙어로 빠른 스피드와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은 물론 유럽 선수들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았던 강력한 피지컬을 겸비해 적토마라고 불렸다.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뛰어나 정확한 크로스로 공격을 지원하는 부분에서도 능했다.

일화 천마에서 데뷔해 1989년에 K리그 영 플레이어상을 탔으며 이후 일화의 K리그 3연패와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그리고 1996 아시아 슈퍼컵 우승에도 크게 공헌했는데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네 번 선정되었으며 특히 1994년엔 리그 도움왕과 K리그 MVP를 수상했다. 그리고 K리그에서는 최초로 40골 40도움 클럽에 가입했으며 K리그 최초로 단일 시즌 공격포인트 20개를 돌파했다.

대표팀 활약도 대단했는데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동메달을 탔으며 1994 미국 월드컵에서도 스페인전에서 바르셀로나의 레전드이자 상대팀의 핵심 수비수였던 미겔 앙헬 나달을 퇴장시키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조별리그 세 경기에 풀타임으로 출전했다. 하지만 1998 프랑스 월드컵 예선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최종 명단에서 제외되는 비극을 맞기도 했다.

 

6위 이청용

생년월일: 1988년 7월 2일
A매치 기록: 89경기 9득점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볼턴 원더러스


2010년대 상반기 대한민국 최고의 윙어로 뛰어난 센스와 우수한 테크닉, 그리고 훌륭한 전술안을 겸비한 정상급 윙어였으며 슈팅력을 제외하면 단점이 없는 윙어였다.

FC 서울에서 데뷔했으며 세뇰 귀네슈 체제에서 중용되며 빠르게 발전해 2008년에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2009-10 시즌 여름 이적시장에서 프리미어리그에 소속된 볼턴 원더러스에 입단해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했다.

대표팀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이며 2010 남아공 월드컵에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특히 아르헨티나전과 우루과이전에서는 결과적으로는 패했지만 동점골을 넣는 맹활약을 펼치며 원정 첫 16강에 공헌했다.

하지만 5부 리그 선수인 톰 밀러[에게 살인 태클을 당해 정강이뼈가 부러지며 그의 전성기는 허무하게 끝났다. 이후에는 크리스탈 펠리스, 보훔, 울산 현대에서 활약했지만 전성기 때의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다.

축구에 만약은 없지만 그때 그 태클만 아니었어도 훨씬 좋은 활약을 펼쳤을 선수라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5위 설기현

생년월일: 1979년 2월 4일
A매치 기록: 82경기 19득점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RSC 안더레흐트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가장 러닝 크로스를 잘하는 선수로 히딩크의 발언에 따르면 "한국에서 유일하게 외국 선수들과의 몸싸움을 이겨내고 크로스를 올려줄 수 있는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던 윙어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둔 유망주 육성 계획에 따라 K리그 아닌 벨기에의 주필러리가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했으며 로얄 엔트워프와 안더레흐트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고 이에 히딩크는 설기현을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주전 선수로 중용했으며 16강에서 이탈리아를 상대로 동점골을 넣으며 대표팀의 4강 신화에 공헌했다. 이때의 활약으로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들었다.

이후 프리미어리그의 울버햄튼과 레딩에서 활약했으며 2006 독일 월드컵에서도 프랑스전에서 크로스 패스를 날려 공이 조재진 머리에 닿았고 그 공은 결국 박지성의 발에 맞아 동점골을 넣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집이 세서 소속팀 감독들과 불화를 겪으며 이후 커리어는 다소 잘 풀리지 않았으며 말년에 온 K리그에서는 포항, 울산, 인천 등 여러 팀에서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며 리그 팬들의 민심을 잃은 비운의 선수기도 했다. 오죽하면 박지성이 설기현을 두고 "기현이 형이 선수로서 잉글랜드에 있을 때 감독들이 좀 더 기현이 형을 믿고 계속해서 꾸준하게 출전 기회만 주어졌다면 다른 어떤 선수보다 가장 높은 위치까지 올라갈 수 있을 정도의 선수다."라고 돌려 말했겠는가?

 

4위 서정원

생년월일: 1970년 12월 17일
A매치 기록: 88경기 16득점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67kg
주 소속팀: 수원 삼성 블루윙즈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 손꼽히는 스피드 스타로 100m를 11초 6에 끊는 엄청난 스피드를 지녔으며 지구력도 좋아 왕성한 활동량으로 수비 가담도 적극적으로 했으며 양발 사용에 능해 왼발과 오른발로 모두 득점할 수 있었다.

고려대학교 시절에 이미 대표팀에 뽑혔으며 1990 베이징 아시안게임 동메달을 시작으로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도 대표팀으로 활약했으며 이때의 활약으로 LG 치타스에 입단해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성인 대표팀에서도 1994 미국 월드컵에서 스페인전 동점골을 넣으며 활약했고 이후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는 리그앙의 스트라스부르로 이적해서 활약했다. 하지만 이후 한국에는 안양 치타스의 지역 라이벌인 수원 삼성으로 복귀했다.

수원 삼성 소속으로 K리그 우승 2회,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를 이뤄냈으며 그 과정에서 리그 베스트 일레븐 3회에 선정되었고, 2001 아시안 슈퍼컵 최우수 선수, 그리고 2002 FA컵 MVP를 수상하면서 수원 팬들의 응원과 안양 팬들의 증오를 동시에 받아 이 두 구단의 라이벌 의식이 더 불타는 계기가 되기도 했으며 선수 말년에는 오스트리아의 절츠부르크와 리트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올해의 선수에 두 번 선정되기도 했다.

2013년에 선정한 K리그 30주년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전성기 시절인 1990년대 중반에는 바르셀로나, 바이에른 뮌헨, 발렌시아, 베르더 브레멘과 같은 팀들이 노렸으나 LG 치타스의 비협조와 에이전트의 미숙한 일처리로 실패하는 아쉬움을 겪었다.


3위 김주성

생년월일: 1966년 1월 17일
A매치 기록: 76경기 14득점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부산 대우 로얄즈 (現 부산 아이파크)


20세기 대한민국 축구의 아이콘 중 한 명으로 왕성한 활동량과 빠른 스피드, 그리고 뛰어난 기술은 물론이고 높은 축구 지능을 앞세워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다.

조선대학교 시절부터 대표팀에 발탁되었으며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했다. 이후 1988 아시안컵에서는 준우승을 거뒀지만 대회 MVP로 선정되었으며 1990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우리나라가 11전 9승 2무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본선 진출권을 따냈고 팀의 에이스였던 김주성은 예선 최고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하지만 1990 이탈리아 월드컵 본선에서는 부진하기도 했으며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바꿔서 출전하기도 했다.

K리그에서는 부산 대우에서 활약했으며 1987년에 데뷔해 데뷔 시즌 리그 우승을 경험했으며 1991년에도 다시 우승했다. 이후 보쿰으로 이적했으나 대우가 어려움에 처하자 2년 만에 다시 돌아와 1997년에는 리베로로 활약하며 리그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으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은 물론 리그 MVP까지 수상하며 부산 대우의 3관왕을 도왔다.

유상철과 함께 공격수, 미드필더, 수비수로 K리그 베스트 일레븐을 선정한 유이한 선수이며 K리그 베스트 일레븐 5회 선정, KFA 올해의 팀 4회 선정이라는 화려한 개인 수상 이력을 기록했으며 1989년부터 1991년까지 3회 연속 아시아 올해의 축구선수를 수상하기도 했으며 2002년 한국 최고의 여론조사업체인 한국갤럽에서 선정한 한국 축구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2010년에는 베스트 일레븐지 선정 한국 축구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2013년에 선정한 K리그 30주년 베스트 일레븐에도 선정되며 1990년대를 대표하는 아시아 최고의 축구선수로 이름을 날렸다.

 

2위 박지성

생년월일: 1981년 3월 30일
A매치 기록: 100경기 13득점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두 개의 심장이라 불렸을 정도로 왕성한 활동량과 뛰어난 수비 가담 능력 및 영리한 움직임, 그리고 큰 경기에서 클러치 능력을 보여주며 활약했다.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에 처음 발탁되어 활약했으며 한일 월드컵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하며 포르투갈 전에 득점하는 등 대한민국의 4강 신화에 공헌했으며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토고를 상대로 원정 첫승을 이뤄내고 프랑스를 상대로는 동점골을 넣었으며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그리스를 상대로 득점하는 등 맹활약해며 대한민국의 첫 원정 16강을 이뤄냈다.

소속팀에서도 J리그의 교토 퍼플 상가에서 활약했으며 한일 월드컵 이후에는 PSV 아인트호벤으로 이적해 두 번의 에레디비시 우승은 물론 챔피언스리그 4강에 올리는 활약을 펼쳐 2005년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들었으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뒤에도 로테이션 멤버로 활약하며 프리미어리그 우승 4회,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와 준우승 2회라는 대단한 성과를 이뤄냈다.

박지성은 대한민국 선수들의 프리미어리그 진출에 큰 공을 세운 선구자였으며 대표팀 활약은 차범근과 손흥민 그 이상의 성과를 냈다. 2010년에 베스트 일레븐지에서 투표한 한국 축구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1위 손흥민

생년월일: 1992년 7월 8일
A매치 기록: 110경기 37득점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토트넘 핫스퍼


현세대 아시아 최고의 축구선수로 강력한 피지컬과 빠른 스피드, 그리고 파워풀하면서도 예리함을 겸비한 양발 슈팅으로 상대의 골문을 강타하는 폭격기로 센세이셔널한 활약상을 보여준다고 손세이셔널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독일 분데스리가의 함부르크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바이어 레버쿠젠과 잉글랜드의 토트넘 핫스퍼에서 전성기를 누린 손흥민은 특히 토트넘에서는 구단 역사상 최초로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하는데 크게 공헌하며 발롱도르 투표에서 22위를 차지했고 2020-21 시즌 PFA 올해의 팀에 들었으며 2021-22 시즌에는 페널티킥을 차지 않고도 득점왕을 수상하는 놀라운 활약을 펼쳤는데 토트넘 핫스퍼 올해의 선수에 3회 선정되었을 정도로 현지 팬들의 대단한 지지를 받는다.

대표팀에서도 2014 브라질 월드컵과 2018 러시아 월드컵, 그리고 2022 카타르 월드컵에 주전으로 참가한 손흥민은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팀이 전체적으로 부진하는 와중에도 맹활약했고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강호 멕시코와 독일을 상대로 득점을 기록했고 2019 아시안 게임에서 우승했으며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안면 부상 때문에 기대만큼 활약을 하진 못했지만 조별리그 마지막 포르투갈전에서 황희찬의 역전골을 어시스트하며 자신의 클래스를 증명했다.

 


아쉽게 뽑히지 못한 선수로 정규풍, 정재권, 박태하, 박남열, 정경호, 김대의, 최태욱, 나상호 같은 선수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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