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생 최고의 축구선수 탑5

연생별 최고의 축구선수/1960년대생

1968년생 최고의 축구선수 탑5

토르난테 2023. 3. 18.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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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일은 2023년 3월 18일 기준이며 선수 사진 출처는 플레이어스에서 활약하는 법정스님의 소유님 건조폼

여러 자료들을 검토한 작성자의 주관적인 평가.

발롱도르 노미네이트는 2000년대 50위 시절 0표는 제외함


5위 다보르 슈케르

 


생일: 1월 1일
국적: 크로아티아
포지션: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3회 (1995, 1996, 1998)
발롱도르 최고 성적: 1998년 2위

 

 

1990년대 후반 세계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으로 오시예크의 마법사라 불렸을 정도로 볼 컨트롤 능력이 뛰어났으며 강력하면서도 예리한 외발 슈팅으로 수많은 득점을 양산했다.

유고슬라비아 무대의 NK 오시예크와 디나모 자그레브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1988-89 시즌에는 리그 득점왕에도 올랐으나 내전으로 인해 스페인 무대로 떠났으며 스페인 라리가의 세비야와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활약했으며 후자의 구단에서는 1996-97 시즌에 소속팀의 라리가 우승을 이끌며 ESM 올해의 팀에 들었고 1997-98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내는데 기여했다.

대표팀에서는 유고슬라비아 시절에 이미 유고슬라비아에서 활약하던 시절부터 청소년 대표팀의 핵심으로 1987 U-20 월드컵 우승과 1990 UEFA 유로 U-21 준우승을 차지하는데 큰 공을 세웠는데 전자의 대회에서는 실버슈를 수상했으며 후자의 대회에서는 득점왕과 MVP를 석권하며 주가를 높였고 성인 대표팀에도 월반해 1988 서울 올림픽과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도 참가했다.

크로아티아가 분리 독립한 이후에는 크로아티아 올해의 선수를 6번이나 수상한 슈케르는 UEFA 유로 1996에서 8강 진출에 공헌하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팀의 주포이자 에이스로 득점왕에 오르는 등 압도적인 활약을 펼치며 팀의 준결승 진출에 큰 공을 세웠고 슈케르 개인도 1998 프랑스 월드컵 실버볼과 골든슈는 물론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고 이때의 활약으로 발롱도르 투표에서 호나우두를 제치고 2위에 올랐으며 크로아티아 올해의 선수에 6회 선정되었으며 2003년에는 크로아티아 축구협회 선정 근 50년간 최고의 크로아티아 선수로 선정되었다.

 

4위 페르난도 이에로

 


생일: 3월 23일
국적: 스페인
포지션: 센터백, 리베로, 수비향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86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3회 (1995, 1997, 1998)
발롱도르 최고 성적: 1997년 17위

 

레알 마드리드 역대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그의 성인 이에로는 철이라는 뜻인데 이름값을 확실히 했던 견고한 수비력은 물론 사령관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을 정도로 리더십이 뛰어났으며 추가로 뛰어난 패스 실력과 수비수라고는 믿기지 않는 득점력도 겸비했는데 실제로 2002년 3월 24일에는 레알 사라고사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그는 선수 생활 대부분을 레알 마드리드에서 보냈으며 크루이프의 바르셀로나에 밀려 암흑기를 보낸 시절부터 활약해 갈락티코 1기 시절의 주장으로 팀을 이끌며 라 리가 5회 우승과 UEFA 챔피언스리그 3회 우승을 이뤄낸 이에로는 ESM 올해의 팀에 두 번 선정되었으며 1997년에는 스페인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1997-98 시즌에는 UEFA 클럽 올해의 수비수에 선정되었다.

구단의 미래를 보는 안목도 대단해 페레즈의 지단-파본 정책에는 파본의 경험 부족을 우려해 반대했으며 팀을 떠났고 실제로 레알 마드리드는 이에로에서 파본으로 중심축이 바뀌자 수비 라인의 붕괴를 부르며 이에로의 혜안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아르마다 군단에서도 1990 이탈리아 월드컵을 시작으로 네 번의 월드컵과 두 번의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를 오가며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팀은 8강에 머물렀지만 이에로는 올스타 스쿼드에 포함되는 영예를 누렸던 이에로는 수비수였음에도 아르마다의 유니폼을 입고 29골이나 득점했는데 이는 라울이 갱신하기 전까지 스페인 대표팀 최다 득점이었으며 아직까지도 통산 득점 5위를 기록 중이다.

 

 

3위 디디에 데샹

 

 

생일: 10월 15일
국적: 프랑스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3회 (1996, 1997, 1998)
발롱도르 최고 성적: 1997년 17위

 

현재는 레 블뢰의 감독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지만 1990년대에는 정상급 수비형 미드필더이자 축구 역사상 최고의 주장 중 한 명으로 훌륭한 리더십과 완벽한 수비라인 커버, 그리고 안정적인 패싱력을 바탕으로 한 빌드업에도 능한 완벽한 미드필더였다.

1989년 낭트에서 리그앙 올해의 신인상을 받은 데샹은 마르세유와 유벤투스에서 전성기를 보냈으며 전자의 클럽에서 리그앙 2회 우승은 물론 주장으로써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으며 유벤투스에서도 세리에 A 3회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3회 연속으로 진출해 1995-96 시즌에 우승하며 명성을 떨쳤으며 옹즈 몽디알이 뽑은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도 4회 선정되었다.

프랑스 대표팀 역대 최고의 주장으로 손꼽히며 압도적인 리더십으로 여러 혈통으로 구성된 레 블뢰를 묶어 1998 프랑스 월드컵과 유로 2000에선 우승을 기록하기도 했는데 뛰어난 리더십으로 우승에 크게 기여했으며 우승하지 못한 유로 1996에서도 대회 올스타 팀에 들었으며 이 대회의 활약으로 1996년 프랑스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2위 마르셀 드사이

 


생일: 9월 7일
국적: 프랑스
포지션: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AC 밀란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4회 (1994, 1995, 1996, 1998)
발롱도르 최고 성적: 1996년 8위

 

바위라고 불렸을 정도로 강인한 신체 능력을 바탕으로 과격한 수비를 선보였으며 거기에 적절한 위치 선정과 빠른 판단력을 자랑하며 상대 공격수를 집어삼켰다. 그런 선수가 패스와 볼 컨트롤에도 능했을 정도로 완벽했다.

낭트에서 데뷔해 마르세유에서 1992-93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했으며 AC 밀란에서는 주 포지션인 센터백보다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더 자주 나와 활약하며 1993-94 시즌 세리에 A와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는데 상대팀 바르셀로나의 감독인 크루이프는 1993-94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선발 출장한 드사이를 언급하며 밀란은 수비적인 팀이라고 도발했으나 드사이와 알베르티니가 바르셀로나의 중원을 완전히 붕괴시켰으며 드사이는 팀의 네 번째 득점에 성공하기도 했을 정도로 맹활약했고 1995-96 시즌에는 재차 세리에 A 우승에 성공했으며 첼시로 이적한 뒤에도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레 블뢰에서도 프랑스 대표팀의 황금기를 이끌고 철의 포백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1996 UEFA 유로 준결승 진출과 1998 프랑스 월드컵과 유로 2000 우승을 이끌었으며 상술한 세 대회에서 모두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1위 파올로 말디니

 


생일: 6월 26일
국적: 이탈리아
포지션: 레프트백, 센터백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AC 밀란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11회 (1989, 1992, 1993, 1994, 1995, 1996, 2000, 2003, 2004, 2005, 2007)
발롱도르 최고 성적: 1994, 2003년 3위

 

 

현 시대를 생각해 봤을 때 리오넬 메시가 최고 레벨이다. 내 숨을 멎게 할 플레이는 아니었지만 카카도 인상적이었고, 지단도 정말 뛰어났다. 하지만 나에게 누가 최고냐고 묻는다면 난 파올로 말디니라고 말할 것이다. 그는 엄청난 존재감, 투쟁심 있는 영혼, 운동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가 기술적으로 세계 최고가 아니었을지는 모르지만, 그는 밀란의 모든 것에 영향을 준 남자이다.
-알렉스 퍼거슨

말디니는 내게 있어서 아이돌이다. 그를 뛰어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머리가 매우 좋은 선수이며, 팀을 조작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이것은 말디니밖에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내 꿈 중 하나는 그를 추월하는 것이었다.
-호베르투 카를루스

말디니는 내 우상이자 롤 모델이다. 어린 시절 세비야에서 살 때 아버지와 형제들이 말디니의 비디오를 보여 주며 배우라고 했었다. 말디니는 아마 모든 축구 선수들의 귀감일 것이다. 그는 전설이다. 내 이름도 말디니처럼 오랫동안 기억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세르히오 라모스

밀란과 아주리의 위대한 캡틴이자 축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백 중 한 명으로 빠른 스피드와 세밀한 볼 컨트롤, 우수한 피지컬 능력과 교묘한 대인 수비를 모두 겸비한 완벽한 풀백이자 센터백이었다.

AC 밀란에서 세리에 A 7회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5회 우승을 포함해 밀란에서만 스물다섯 개의 우승컵을 들었으며 특히 1993-94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센터백으로 출전해 호마리우와 스토이치코프를 가볍게 무력화시킨 그의 수비력은 관중들을 경악하게하며 1993-94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된다.

아주리에서도 큰 족적을 남겼는데 유로 1988부터 2002 한일 월드컵까지 일곱 번의 메이저대회에 참가해 월드컵에서 두 번, 유로에서 세 번 베스트 일레븐에 드는 우수한 활약을 펼쳤고 바레시, 베르고미와 함께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최장시간 무실점 기록을 세웠으며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도 레프트백과 센터백을 오가며 혼신의 수비를 했으며 결승전에서도 바레시와 짝을 이뤄 호마리우와 베베투를 괴롭히며 승부차기 끝에 팀이 패했음에도 결승전 맨 오브 더 매치에 오르는 활약을 보여줬지만 그의 대표팀 마지막은 초라했는데 이천수에게 발로 머리를 가격당한것도 모자라 심판이 그것을 못 봤으며 팀도 연장전 골든골로 패했다.

그럼에도 말디니는 팀 커리어는 물론 개인적으로도 대단했는데 발롱도르 10위 안에 여섯 번 들었으며 1994년과 2003년에는 3위에 오르며 포디움에 들었는데 발롱도르 포디움에 두 번 든 유일한 측면 수비수이며 옹즈 몽디알이 뽑은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8회 선정, ESM 올해의 팀에 4회 선정되었으며 1994년에는 월드 사커지가 뽑은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선외 명단

주세페 시뇨리

유리 조르카에프

올리버 비어호프

슈테판 에펜베르크

즈보니미르 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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