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선발로 나선 선수만 주인공이 될 수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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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선발로 나선 선수만 주인공이 될 수 있는걸까?

토르난테 2022. 11. 29.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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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2차전에서 대한민국은 가나를 상대했다. 전반전에 2-0으로 끌려다니는 와중에 후반전에 상주 상무에서 뛰는 2선 자원 권창훈 대신 이강인이 투입되었으며 이강인은 들어오자마자 날카로운 크로스로 조규성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침체된 분위기를 바꿨고 이후 2-2까지 따라붙는데 큰 공을 세웠다. 비록 3-2로 패했지만 이강인의 활약은 멀티골을 득점한 조규성의 활약 이상으로 대단했다.

 

교체투입된 이강인은 역사를 썼다.


그래서 팬들은 이런 가정을 한다. "이강인이 선발로 뛰었더라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난 동의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벤투호는 4년 동안 다진 조직력을 바탕으로 경기를 풀어나갔다. 그래서 아시아 예선 동안에는 소속팀에서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던 이강인을 기용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마요르카 이적 이후 이강인은 공수 양면에서 큰 성장을 했다. 그럼에도 기존에 중원에서의 주전 자원의 조직력에 포인트를 잡은 벤투호는 기존 주전 멤버들의 기량이 부족하지 않았기에 그들을 주전에서 밀어낼 명분이 없었으며 주전 자리를 차지한 2선 자원 중 한 명이 나오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이강인에 비해 볼을 다루는 센스에서는 다소 부족하더라도 지구력과 기동력에서 우수한 프라이부르크에 소속된 정우영과 FC 서울에서 활약하는 나상호, 그리고 다소 논란이 있었지만 상주 상무에서 군 복무 중인 권창훈을 기용했으며 벤투는 이강인을 후반에 게임을 뒤집는 카드인 조커로 활용했다.

 


벤투가 이강인을 활용한 것은 마치 이탈리아 축구의 부활을 이끈 페루치오 발카레지가 당대 유럽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지안니 리베라를 슈퍼서브로 활용하는 것과 굉장한 유사함을 보인다.

조직력과 기동력 및 지구력이라는 측면에서 리베라 대신 또 다른 유럽 정상급 공격형 미드필더 산드로 마촐라를 기용했다. 물론 그 당시 다수의 전문가들의 평가는 리베라가 마촐라보다 좋은 선수였다는 점도 동일했다.

 

마촐라와 발카레지, 그리고 리베라


물론 리베라는 발카레지 감독이 부임하기 이전부터 발롱도르 투표에서 최상위권을 차지하던 당대 유럽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였다는 부분에서는 이강인과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그 당시 이탈리아 대표팀의 주축은 인터 밀란과 칼리아리 소속의 선수들이 다수였으며 AC 밀란 선수 중 주전 멤버는 리베라와는 멀리 떨어진 센터백 자리에 로베르토 로사토 이외에는 없었다.

반면 공격형 미드필더 바로 뒤에 수비형 미드필더인 마리오 베르티니부터 인터 밀란 소속이었으며 공격형 미드필더들과 공격 작업을 같이 하는 레프트 윙백 지아친토 파케티와 레프트윙 로베르토 보닌세냐 역시 인터 밀란의 선수였으며 라이트윙 도멘기니는 칼리아리 소속이었지만 칼리아리에서 뛰기 이전에 인테르에서 마촐라와 호흡을 맞춘 적이 있었을 정도로 당시 아주리 군단에서는 다수의 인테르 선수들이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이들은 클럽팀에서 몇 년간 발을 맞춰왔기에 조직력적인 측면에서 리베라 대신 마촐라를 기용한 것이다. 이강인과 상세한 상황은 차이가 잇지만 백업으로 밀려나야 하는 이유라는 부분에서는 비슷한 점이 있었다.

 

1970년 이탈리아 대표팀 선발 라인업이다. 심지어 왼쪽 센터백 로사토의 자리에도 칼리아리 소속의 코무나르도 니콜라이가 기용될 예정이었으나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부상당했기에 로사토가 대신 기용되었을 정도로 발카레지는 조직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감독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체력과 기동력이다. 지안니 리베라와 이강인의 공통점이 그 당시 포지션 경쟁자들에 비해 지구력과 기동력이 우수한 선수는 아니기에 상대의 체력이 100%에 가까운 전반전보다는 상대방의 체력이 떨어진 후반에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카드였다. 기본적인 재능이 뛰어나기에 적은 시간에서도 좋은 찬스를 만들어낼 수 있는데 자신의 체력은 100%인 상황에서 상대방은 지쳐있을 때 이런 능력은 빛을 발한다. 이강인은 교체로 나오자마자 바로 적극적인 전방 압박으로 상대의 공을 빼앗은 후 올린 정교한 크로스로 조규성의 골로 분위기를 바꿨다.

지안니 리베라도 교체 출전이 처음 허용된 대회인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 발카레지 감독이 팀의 플레이메이커인 마촐라와 리베라를 각각 전반과 후반 45분을 나눠 쓰는 스타페타 전술(한국어로 번역하면 교체 전술)을 활용하며 전반전에는 카테나치오 전술로 굳게 지키며 상대방의 체력 소모를 유도하며 상대방이 지친 후반에는 창의적이며 분위기를 바꿀 수 있으며 상대적으로 공격포인트 생산에 능한 리베라를 상대적으로 기동력이 우수하며 수비 가담에 적극적인 마촐라 대신 투입하여 승리를 노렸으며 이는 적중해 8강에서 홈팀 멕시코를 상대로 리베라와 그의 패스를 받는 스트라이커 루이지 리바의 활약으로 4-1로 역전승을 이뤄냈으며 준결승 서독전에서도 후반 시작과 함께 투입된 리베라가 연장전 3-3 상황에서 결승골을 득점하며 조국을 32년 만에 월드컵 결승 무대에 올려놓으며 스타팅 멤버가 아니라도 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1970 멕시코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서독을 상대로 결승골을 득점한 리베라


비록 결승전에서는 전설의 1970년의 브라질에게 대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리베라는 백업 멤버로서도 이탈리아 선수들 중에서도 가장 돋보였다. 그리고 오늘 가나 선수들의 피지컬과 스피드에 고전했으며 후반 막판에 투지를 발휘해 여러 기회를 만들었으나 다소 행운이 따르지 못하며 3-2로 패했으나 교체 멤버로 나온 이강인은 양 팀 선수들 중 가장 빛나는 선수였다.

그러니 벤투 감독이 이강인을 선발로 기용하지 않는다고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적어도 현재의 이강인은 조커로 나설 때 가장 찬란하게 빛날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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