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처진 공격수 Top 20

국가의 영웅들/이탈리아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처진 공격수 Top 20

토르난테 2022. 10. 1.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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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이탈리아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 출처는 RSSSF와 트렌스퍼마크트이며 둘의 기록이 상충할 경우에는 전자를 우선적으로 따릅니다.
*기록일은 2022년 10월 1일 기준입니다.

*남미 출신 오리운디 중 이탈리아 대표팀에서 더 많이 활약한 선수는 이탈리아 국적으로 기재했기에 아틸리오 데마리아와 미겔 몬투오리, 레나토 체사리니가 포함되었습니다.

 


20위 마르코 델베키오

 


생년월일: 1973년 4월 7일
A매치 기록: 22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AS 로마

21세기 잘로로시 군단의 다재다능한 공격자원으로 상대 수비를 교란시키는 전진 드리블과 킬패스로 득점 찬스를 만들었으며 왕성한 활동량을 이용한 수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며 팀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인터 밀란에서 데뷔했으나 오래 머물자 못했던 델베키오는 전성기를 AS 로마에서 누렸는데 구단 통산 득점 9위에 랭크된 델베키오는 2000-01 시즌에 토티, 바티스투타와 삼각편대를 구성해 스쿠테토 획득에 큰 공을 새웠으며 특히 지역 라이벌 라치오를 상대로 강한 모습을 보여주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델베키오는 유로 2000과 2002 한일 월드컵 스쿼드에 포함되었는데 전자의 대회에서는 결승전에 선발로 출전했지만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으며 후자의 대회에서는 16강에서 조기 탈락하는 비극을 겪었다.

 

19위 주세페 사볼디

 

 

생년월일: 1947년 1월 21일
A매치 기록: 4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볼로냐 FC

 

1960년대 후반과 70년대 세리에 A에서 이름을 날렸던 다재다능한 공격수로 빠른 반응속도와 날카로운 슈팅 스킬은 무론 높은 점프에서 나오는 강력한 헤더로 이름을 날렸으며 주 포지션인 처진 공격수 이외에도 최전방 공격수와 레프트윙, 그리고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도 수행할 수 있는 만능 공격수였으며 페널티 킥으로만 45골을 득점해 세리에 A 통산 최다 PK 득점자 4위에 이름을 올렸다.

볼로냐와 나폴리에서 전성기를 누린 샤볼디는 볼로냐에서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나폴리에서도 1975-76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는데 1970-71 시즌부터 1977-78 시즌까지 8시즌 연속으로 리그 두 자릿수 득점을 이뤄냈으며 코파 이탈리아 3회 득점왕에 올랐으며 1972-73 시즌에는 세리에 A 득점왕에도 올랐으나 대표팀과는 인연이 없어 친선경기에서만 출전했다.

 

18위 파비오 콸리아렐라

 

 

생년월일: 1983년 1월 31일
A매치 기록: 28경기 9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UC 삼프도리아

 

2000년대 후반과 2010년대 이탈리아 무대에서 활약한 공격수로 쉬운 찬스는 자주 놓치지만 발리슛, 로빙 슈팅 같은 난이도가 높은 슈팅으로 득점에 성공한다고 하여 국내 팬들로부터 콸간지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실제로도 2008-09 시즌과 2018-19 시즌에 세리에 A 올해의 골에 선정되며 그 명성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했으며 그밖에도 왕성한 활동량과 우수한 오프 더 볼 능력으로 상대 수비진을 분산하는데 능했으며 헤더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2006-07 시즌 삼프도리아에서부터 우디네세를 거쳐 2009-10 시즌 나폴리까지 네 시즌 연속 세리에 A 두 자릿수 골을 득점했으나 유벤투스에서 머문 첫 시즌에 전반기에만 9골을 넣었음에도 부상으로 후반기를 모두 결장하며 아쉽게 기록을 이어나가지 못했으며 테베스와 요렌테 영입 이후에는 백업 공격수 역할을 맡으며 세리에 A 3회 연패를 경험했으며 토리노를 거쳐 삼프도리아에서 다시 일어나 다섯 시즌 연속으로 리그 10골 이상을 기록했으며 특히 2018-19 시즌에는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코어러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제치고 세리에 A 득점왕을 수상했으며 세리에 A 올해의 공격수와 올해의 팀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대표팀에서는 유로 2008, 2009 컨페드컵, 그리고 2010 남아공 월드컵에 참가했는데 눈에 띄는 실적을 내진 못했지만 2010 남아공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 슬로바키아와의 경기에서는 다루기 어렵다는 자블라니로 로빙 슈팅으로 득점하며 대회 최고의 골 중 하나로 평가받을 명장면을 남겼다.

 

17위 미구엘 몬투오리

 


생년월일: 1932년 9월 24일
A매치 기록: 12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피오렌티나

아르헨티나계 흑인 출신 이민자로 우수한 원터치 플레이와 뛰어난 드리블과 정교한 패싱력을 활용한 찬스 메이킹은 물론 높은 차원의 스쿱 턴으로 상대 수비수를 기만하거나 양발 슈팅으로 직접 때리는 부분에도 능했다.

피오렌티나에서 전성기를 보낸 몬투오리는 인사이드 포워드로 출전해 세리에 A 우승과 4회 연속 준우승, 그리고 유러피언 컵 결승과 컵 위너스 컵 우승을 경험하며 구단의 황금기에 크게 기여했다.

흑인 최초로 아주리에 발탁되어 활약했지만 몬투오리가 전성기를 누리던 세대의 아주리는 최악의 암흑기를 겪고 있었기에 메이저 대회에는 나오지 못했다.

 

 

16위 브루노 조르다노

 

 

생년월일: 1956년 8월 13일
A매치 기록: SS 라치오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13경기 1골

 

1970년대와 80년대 나폴리와 라치오에서 이름을 날렸던 다재다능한 공격수로 화려한 드리블과 유려한 볼 컨트롤, 그리고 날카로운 슈팅 스킬로 이름을 날렸다.

라치오 통산 득점 5위에 랭크된 조르다노는 비안코 세레스티 군단에서는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지만 1978-79 시즌 세리에 A 득점왕에 올랐으며 1982-83 시즌에는 세리에 B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으며 나폴리 이적 이후에는 디에고 마라도나, 카레카와 함께 마지카(Ma-Gi-Ca) 삼총사로 이름을 날렸으며 1986-87 시즌 세리에 A와 코파 이탈리아 더블을 이뤄냈으며 코파 이탈리아에서는 득점왕에 올랐다.

아주리 군단에서는 몇 번 소집되었지만 메이저 대회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15위 지노 로제티

 


생년월일: 1904년 11월 7일
A매치 기록: 13경기 9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토리노 FC


1920년대 하반기에 이탈리아 무대에서 전성기를 누린 공격수로 주로 인사이드 레프트에서 활약했는데 강력한 왼발 슈팅으로 직접 득점에 능했으며 엄청난 근육량에서 나오는 육중한 체구를 활용한 몸싸움과 창의적인 드리블 돌파를 혼용해 상대 수비를 돌파했다.

토리노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발론치에리와 함께 2선을 구성해 구단의 1926-27 리그 우승과 세리에 A 출범 이후 1927-28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을 세웠으며 1928-29 시즌에는 세리에 A 득점왕에 올랐다.

메아차-페라리 이전 세대의 아주리 군단에서 활약한 로재티는 발론치에리와 함께 활약했는데 1927-1930 중유럽컵 우승을 이뤄냄과 동시에 대회 득점왕을 수상했으며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는 동메달을 따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14위 루이지 체베니니 3세

 


생년월일: 1895년 3월 13일
A매치 기록: 29경기 11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65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이탈리아 축구 태동기에 활약했던 선수로 체구는 작았지만 우수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진을 뒤흔들었으며 창의적인 킬패스로 득점 찬스를 만드는 부분과 직접 득점하는 부분 모두 능했다.

AC 밀란에서 데뷔했지만 인테르 밀란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1919-20 시즌 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1920-21 시즌에는 19경기에 출전해 31골을 득점하는 괴력을 보여줬으며 1921-22 시즌에는 노베세로 잠시 떠나 리그 우승을 이뤄내기도 했으며 이후에도 인테르로 돌아와서 활약하다가 유벤투스를 거쳐 어러 구단을 전전하다 은퇴했다.

아주리 군단에서는 1927-30 시즌 중유럽컵 우승을 이뤄냈다.

 

13위 안토니오 카사노

 


생년월일: 1982년 7월 12일
A매치 기록: 39경기 10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UC 삼프도리아


2000년대 초 이탈리아 축구계를 들썩이게 만들었던 악마의 재능으로 난폭한 성격과 무절제한 사생활과 기행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으나 유려한 볼 컨트롤에서 나오는 기막힌 원터치 플레이와 상대방을 속이는 페인팅과 굳건한 신체 밸런스를 겸비했으며 창의적인 킬패스로 완벽한 득점 찬스를 만들어냈다.

바리에서 엄청난 활약을 펼치며 로마에 입성했는데 2001년과 2003년에 세리에 A 올해의 영 플레이어상을 받았으며 2005-06 시즌에는 레알 마드리드에 입성해 2006-07 시즌 라리가 우승을 경험하나 불성실한 태도로 인해 호비뉴, 라울과의 주전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나며 삼프도리아로 이적했으며 이 무렵 결혼으로 인해 마음을 다잡아 뛰어나 활약을 펼치며 삼프도리아를 2009-10 시즌 세리에 A 4위에 올렸으며 2010-11 시즌 AC 밀란의 스쿠테토에 공헌했다.

카사노는 유로 2004에서 아주리 군단에 처음 소집되었지만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명단에서 제외당했으며 유로 2012에서 발로텔리와 공격 조합을 이루며 조국의 준우승에 공을 세웠다.

 

12위 아틸리오 데마리아

 


생년월일: 1909년 3월 19일
A매치 기록: 13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아르헨티나 태생이었으나 귀화한 오리운디로 1930년대와 40년대에 걸쳐 유럽과 남미를 풍미했으며 기술적으로 완성되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정밀도 높은 패스와 우수한 드리블 실력과 빠른 반사 신경은 물론 정교한 왼발 슈팅력까지 겸비했으며 인사이드 레프트는 물론 아웃사이드 레프트나 센터 포워드의 위치에서도 훌륭한 모습을 보여줬다.

아르헨티나에서 활약하다가 1931년 이탈리아의 인테르로 건너와 활약했으며 잠시 남미에 머물렀지만 다시 인테르로 돌아와 활약하며 1938-39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과 1939-40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을 세웠다.

1930 우루과이 월드컵 시절에는 아르헨티나 대표팀 벤치에 머물며 준우승을 경험했으며 1934 이탈리아 월드컵과 1933-35 중유럽컵에서는 아주리 군단의 백업으로 머물면서 우승을 경험했다.

 

 

11위 지노 카펠로

 


생년월일: 1920년 6월 2일
A매치 기록: 11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볼로냐 FC

 

1940년대 하반기와 1950년대 초반에 활약했던 판타지스타로 강력한 신체 능력과 높은 차원의 기술을 겸비했으며 드리블은 물론 특히 킬패스에 능해 팀의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맡았으며 양발과 헤더를 가리지 않고 득점했으며 닐스 리드홀름으로부터 '역사상 최고의 이탈리아 선수 중 하나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AC 밀란과 볼로냐애서 전성기를 누리며 1945-46 시즌 볼로냐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으며 비록 볼로냐의 전성기가 지난 뒤라 리그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245경기에 출전해 80골을 기록하며 맹활약했으며 아주리 군단에서는 보니페르티와 함께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수페르가의 비극으로 잃은 그란데 토리노의 멤버들의 공백을 메우려고 노력했지만 그것이 결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10위 다니엘레 마사로

 


생년월일: 1961년 5월 23
A매치 기록: 15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AC 밀란

 

1980년대와 90년대 이탈리아의 다재다능한 공격수로 젊은 시절에는 레프트윙으로 활약했으나 커리어 후반부에는 중앙 공격수로 활약했는데 빠른 스피드와 우수한 판단력을 겸비해 많은 득점을 만들어냈으며 우수한 전술안과 축구 지능, 그리고 왕성한 활동량을 겸해 공격수는 물론 미드필더와 수비 전 지역에서 활약할 수 있어서 밀란의 감독인 사키와 카펠로의 사랑을 받았다.

피오렌티나에서 활약을 바탕으로 AC 밀란에 합류해 밀란 제너레이션 1기에서 로테이션 멤버로 활약하다가 반 바스텐의 잦은 부상으로 주전으로 올라섰는데 이때 밀란에서 세리에 A 4회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과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1993-94 시즌에는 그의 축구 인생의 최전성기인데 리그 우승에 공헌함은 물론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멀티골을 넣으며 4-0 승리에 공헌했으며 세리에 A 평점왕인 구에린 도르를 수상했다.

1982 스페인 월드컵에 백업 멤버로 뽑혀 우승을 경험한 이후 소속팀에서의 입지 문제로 오랜시간 대표팀에 뽑히지 못하다가 그의 헌신을 높게 평가한 아리고 사키가 대표팀에 그를 다시 소집했으며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바조의 파트너로 주전으로 출전해 결승 진출을 이뤄냈지만 좋지 못한 결정력과 승부차기에서의 실축으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9위 안토니오 디 나탈레

 


생년월일: 1977년 10월 13일
A매치 기록: 42경기 11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우디네세

 

2010년대 초반 세리에 A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군림했으며 투톱 체제의 처진 공격수 자리에서 활약하며 빠른 순간스피드를 활용해 날카롭게 페널티 박스의 빈 공간으로 침투해 날카로운 득점을 보였으며 우수한 기본기를 활용한 드리블 실력을 인정받아 때때로 윙 포워드로 출전하기도 했다.

우디네세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여준 디 나탈레는 우디네세를 2010-11 시즌 세리에 A 4위와 2011-12 시즌에는 세리에 A 3위에 올리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개인적으로도 2009-10 시즌과 2010-11 시즌 세리에 A 득점왕에 올랐으며 2010년에는 세리에 A 올해의 이탈리아 선수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세리에 A 올해의 팀에도 3회 선정되었으며 2014-15 시즌에는 만 37세의 고령에도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에 올랐다.

아주리에서는 클럽에서만큼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유로 2012에서 발로텔리와 카사노의 백업 역할을 맡아 준우승에 기여했다.

 

 

8위 레나토 체사리니

 

 

생년월일: 1906년 4월 11일
A매치 기록: 11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1930년대 상반기 이탈리아 무대에서 활약했던 아르헨티나 태생의 인사이드 포워드로 유려한 볼 컨트롤에서 나오는 드리블과 대지를 가르는 롱 패스로 공격 활로를 여는데 능했다.

초년에는 아르헨티나의 차카리타 주니어스에서 활약했던 체사리니는 1929년 유벤투스로 이적해 비안코네리 군단의 세리에 A 5연패를 이뤄냈으며 미트로파 컵에서도 득점왕에 올랐다. 이후 유럽에 전운이 돌자 친정팀 차카리타 주니어스로 돌아갔다가 리버 플레이트에서 프리메라 디비시온 2회 우승을 이뤄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기회를 거의 받지 못했고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는 월드컵에 참가하진 못했지만 두 차례의 중유럽컵에 참가해서 1933-35 중유럽컵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했다.

 

 

7위 주세페 시뇨리

 

 

생년월일: 1968년 2월 17일
A매치 기록: 28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71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SS 라치오

 

1990년대 세리에 A 최고의 골잡이 중 하나로 매서운 왼발 킥력과 빠른 스피드를 활용해 상대 수비진을 공략하고 상대 골망을 뒤흔들었다. 특히 프리킥과 페널티킥에 능했는데 보통은 도움닫기 동작 이후 킥을 차지만 시뇨리는 디딤발만 딛고 페널티 킥을 찼다. 그리고 1994년에는 아탈란타와의 경기에서 왼발 프리킥만으로 해트트릭을 기록하기도 했다.

불행하게도 시뇨리가 활약하던 시기의 라치오는 밀란과 유벤투스의 황금기에 맞물려 우승컵을 들지는 못했지만 세리에 A 득점왕을 세 번이나 수상했으며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을 2번이나 기록했으며 1993년에는 세리에 A 최우수 평점왕인 구에린 도르를 수상하며 활약했지만 황금기의 시작을 이끈 스벤예란 에릭손이 삼프도리아에서 데려온 만치니를 중용하면서 주전 경쟁에서 밀리자 라치오를 떠났다.

아주리에서는 바조의 존재로 인해 주로 4-4-2 체제의 레프트윙으로 출전했는데 3톱의 윙 포워드와는 다르게 적응하지 못하며 부진했고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결국 우측의 도나도니가 좌측으로 이동하면서 백업으로 밀려나 벤치에서 준우승을 경험했다.

 

6위 지안프랑코 졸라

 


생년월일: 1966년 7월 5일
A매치 기록: 35경기 10골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7kg
주 소속팀: 첼시 FC

 

1990년대 하반기 이탈리아 최고의 판타지스타 중 한 명으로 어떤 플레이를 펼칠지 예측하기 어려워 팬들로부터 매직박스라 불렸으며 번뜩이는 센스와 우수한 심리전 능력에서 나오는 드리블 돌파는 물론 우수한 데드볼 능력도 겸비했다.

나폴리에서 1989-90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으며 파르마에서 1994-95 시즌 UEFA컵 우승을 이뤄낸 졸라는 30세가 넘어 첼시로 왔으나 오히려 이전보다 더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FA컵 2회 우승, 1997-98 시즌 리그컵과 컵 위너스컵 더블 우승을 이끌며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으며 1997년에는 FW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1998-99 시즌과 2002-03 시즌에는 첼시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아주리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로베르토 바조의 그늘에 가려졌으나 벤치에서 1994 미국 월드컵 준우승을 경험했으며 UEFA 유로 1996에서는 카시라기와 함께 주전으로 참여했으나 그 대회 우승팀 독일과 준우승팀 체코에 밀려 탈락했다.

 

 

5위 로베르토 만치니

 


생년월일: 1964년 11월 27일
A매치 기록: 36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UC 삼프도리아

 

1980년대 하반기와 1990년대에 걸쳐 이탈리아 무대에서 명성을 떨친 선수로 전형적인 판타지스타로 매혹적인 드리블과 우수한 패스를 활용해 팀의 공격을 이끄는데 능했으며 슈팅도 제법 날카로워서 몇몇 사람들은 그가 디에고 마라도나보다도 낫다는 격찬을 하기도 했다.

삼프도리아에서 커리어의 대부분을 보낸 만치니는 코파 이탈리아 4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89-90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은 물론 1990-91 시즌에는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으며 1991-92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결승에 진출했으나 연장 혈투 끝에 크루이프의 바르샤에게 아쉽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으며 개인적으로도 구에린 도르 2회 수상, 1996-97 시즌 세리에 A 올해의 선수와 세리에 A 올해의 이탈리아 선수를 수상했으며 말년에 에릭손 감독을 따라 라치오로 이적한 뒤에도 1999-2000 시즌 도메스틱 더블을 포함해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 1998-99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우승 1999년 UEFA 슈퍼컵 우승을 이뤄냈다.

아주리에서도 1980년대 후반에 주전으로 활약하며 유로 1988에서 조별리그 독일전에서 선제골을 기록하는 등의 활약을 펼치며 팀을 4강에 올렸으나 1990 월드컵에도 처음엔 주전으로 출전했지만 부진으로 인해 신성 로베르토 바조와 이 대회의 신데렐라 살바토레 스킬라치한테 밀리며 벤치에서 대회 3위를 경험했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삼프도리아와 아주리에서 비알리와의 공격 조합이 유명세를 탔으나 비알리가 유벤투스로 이적하고 만치니가 아주리에서 바조와의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며 해체되었다.

 

4위 로베르토 베테가

 


생년월일: 1950년 12월 27일
A매치 기록: 42경기 19골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1970년대 후반을 풍미한 백발 미남의 공격수로 우수한 피지컬을 활용한 헤더와 부드러운 유연성을 활용한 발리 슈팅은 물론 동료들과의 연계 플레이와 킬 패스로 골 찬스를 만들어냈으며 축구 지능도 높아 윙 포워드나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도 맡을 수 있었다.

선수 생활 대부분을 유벤투스에서 보냈으며 7회의 세리에 A 우승과 1976-77 UEFA 컵 우승, 그리고 1978-79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으며 1977년과 1978년에는 발롱도르 투표에서 4위에 올랐으며 1979-80 시즌에는 세리에 A 득점왕에 오르며 개인적으로도 영예를 누렸다.

아주리에서도 주전 공격수로 맹활약했는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과 유로 1980에서 4위라는 호성적을 이뤘다. 다만 부상으로 1982 스페인 월드컵에 불참해서 우승 기회를 놓친 건 아쉬운 부분이다.

 

3위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생년월일: 1974년 11월 9일
A매치 기록: 91경기 27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1990년대 하반기와 2000년대를 대표하는 유벤투스의 판타지스타로 훌륭한 드리블 실력과 우수한 찬스 메이킹 능력, 그리고 정교한 슈팅으로 유명했으며 특히 프리킥에 능해 델 피에로 존이라 불리는 신조어가 나오기도 했다.

유벤투스에서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보내며 구단 통산 최다 출전자에 오른 델 피에로는 1994-95 시즌 도메스틱 더블을 포함해 세리에 A 6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세 번 진출해 1995-96 시즌에 우승하기도 했으며 유벤투스가 칼치오폴리로 세리에 B로 강등당했을 때도 "신사는 숙녀가 원할 때 떠나지 않는 법입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잔류하며 결국 구단 역사상 최다 출전자가 되었다.

유벤투스에서 팀 커리어도 화려하지만 델피에로는 개인적으로도 훌륭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ESM 올해의 팀에 3회 선정되었으며 1997-98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득점왕, 1999-2000 시즌 세리에 A 도움왕, 2005-06 시즌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 2007-08 시즌 세리에 A 득점왕에 올랐으며 1998년과 2008년에는 세리에 A 올해의 이탈리아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1995년과 1996년에는 발롱도르 투표에서 4위에 올랐다.

아주리에서는 대체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2006 독일 월드컵 4강전 독일전에서 연장전에서 승부의 쐐기를 박는 득점을 기록하며 우승에 기여했다.

 

2위 로베르토 바조

 


생년월일: 1967년 2월 18일
A매치 기록: 56경기 27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1990년대를 대표하는 슈퍼스타 중 한 명이자 아주리의 판타지스타 계보를 이끈 장본인으로 현란한 발재간과 창의적인 패싱력과 뛰어난 슈팅 스킬을 보여주며 뛰어난 온 더 볼 능력을 보여준 말총머리의 스타다.

피오렌티나에서 데뷔해 유벤투스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1992-93 시즌 UEFA컵 우승과 1994-95 시즌 세리에 A와 코파 이탈리아 더블 우승을 이뤄냈으며 1990-91 시즌에는 UEFA 컵 위너스컵 득점왕을 수상했으며 1993년에는 UEFA컵과 세리에 A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인해 발롱도르와 옹즈고르, 피파 올해의 선수상을 휩쓸었으며 1995-96 시즌엗고 세리에 A 도움왕에 올랐다.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경쟁자 만치니의 부진으로 주전으로 도약했으며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거의 혼자의 힘으로 공격진을 이끌며 5골을 득점하며 팀을 결승에 올려놓았지만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로 나가 실축함으로써 팀은 패했고 월드컵 실버볼과 실버슈를 수상 받은 것과는 다르게 대중들에게 그간의 공을 인정받지 못했지만 해외 팬들 사이에서는  1994년에 그가 결승전 직전까지 보여줬던 활약상은 축구계로부터 인정받아 1994년 발롱도르와 옹즈도르에서 모두 2위를 차지했으며 피파 올해의 선수상에서도 3위에 올랐다.

 

1위 주세페 메아차

 


생년월일: 1910년 8월 23일 
A매치 기록: 53경기 33골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이탈리아 역대 최고의 축구선수로 추앙받는 선수로 뛰어난 드리블 능력과 창의적이며 정확한 패스에서 나오는 찬스 메이킹, 그리고 직접 슈팅하거나 헤딩을 활용한 득점력도 우수했다.

인테르 밀란에서 전성기의 대부분을 보낸 주세페 메아차는 어린 나이에 데뷔해 처음에는 선배들의 무시를 당했지만 압도적인 실력으로 선배들을 승복시켰는데 세리에 A 3회 우승과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으며 메아차 개인도 리그와 미트로파컵, 코파 이탈리아를 포함해 무려 일곱 번이나 득점왕에 올랐다. 이러한 활약을 인정한 인테르 밀란은 자신의 홈 구장의 이름을 주세페 메아차 스타디움으로 명명했다.

1930년대 이탈리아의 성공시대를 이끌었던 주세페 메아차는 인사이드 포워드 파트너 지오반니 페라리와 함께 1934 이탈리아 월드컵과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 모두 선발로 뛰며 우승한 유이한 선수였으며 1934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골든볼을 수상했으며 후자의 대회에서는 주장으로 팀을 지휘하며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선정 인원 외 추가할 수 있는 명단

 

 

아리스토데모 산타마리아

 


생년월일: 1892년 2월 9일
A매치 기록: 11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제노아

 

 

세르지오 베르토니

 


생년월일: 1915년 9월 23일
A매치 기록: 6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제노아

 

 

세르지오 고리

 


생년월일: 1946년 2월 24일
A매치 기록: 3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칼리아리

 

 

주세페 갈데라시

 


생년월일: 1963년 3월 22일
A매치 기록: 10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엘라스 베로나

 

 

엔리코 키에사

 

 

생년월일: 1970년 12월 29일
A매치 기록: 17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파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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