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윙어 Top 20

국가의 영웅들/이탈리아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윙어 Top 20

토르난테 2022. 9. 30.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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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이탈리아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 출처는 RSSSF와 트렌스퍼마크트이며 둘의 기록이 상충할 경우에는 전자를 우선적으로 따릅니다.
*기록일은 2022년 9월 28일 기준입니다.

*남미 출신 오리운디 중 이탈리아 대표팀에서 더 많이 활약한 선수는 이탈리아 국적으로 기재했기에 라이문도 오르시가 포함되었습니다만 엔리케 구아이타는 병역기피를 목적으로 이탈리아를 버렸기에 분류하지 않았습니다.


20위 지안루이지 렌티니

 


생년월일: 1969년 3월 27일
A매치 기록: 13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토리노 FC

한때 세계에서 가장 비싼 사나이였던 선수로 민첩한 몸놀림에서 나오는 매혹적인 드리블과 한 박자 빠른 양발 크로스로 이름을 날렸기에 명장 카펠로는 그를 두고 "거대한 재능이다. 빠르고 강하며 신체적으로도 훌륭하다."라고 호평했다.

렌티니는 토리노의 유스 출신으로 토리노에서 데뷔해 1989-90 시즌 팀의 세리에 B 우승을 이뤄내며 팀을 승격시켰지만 1991-92 시즌 UEFA컵 준우승과 세리에 A 3위를 이끌며 중위권으로 떨어진 토리노를 다시 상위권으로 올려놓았으며 AC 밀란은 1992년 당시 역대 최고 이적료인 13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투자해 영입했으나 교통사고로 인한 후유증으로 팀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으며 AC 밀란에서 세리에 A 3회 우승과 1993-94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루는 동안 그가 기여한 부분은 매우 적었으며 이후에는 재능을 만개하지 못하고 아탈란타를 거쳐 다시 토리노로 갔으나 팀은 강등당했고 이후 하부리그를 전전하는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아주리 군단 소속으로 몇 번 소집되었지만 메이저 대회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19위 페데리코 키에사

 

 

생년월일: 1997년 10월 25일
A매치 기록: 38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0kg
현 소속팀: 유벤투스 FC

 

차세대 이탈리아의 간판이자 세계 최고의 윙어로 성장할 수 있는 재능으로 엄청난 스피드를 활용한 저돌적인 전진 드리블로 상대 수비진을 붕괴시키며 우수한 양발 사용 능력을 바탕으로 양질의 크로스와 정확한 슈팅, 그리고 날카로운 킬패스에 모두 능해 상대 수비진에게 삼지선다를 강요하는 플레이에 능하며 한혈마와 같은 스테미너에서 나오는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헌신적인 수비 가담까지 겸비했다.

피오렌티나 시절부터 정상급 윙어로 이름을 날렸으나 다소 맞지 않는 포지션에서는 부진했는데 유벤투스로 이적한 뒤에 전성기를 누리며 2020-21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으며 그 시즌에 세리에 A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으며 2021년 팬투표상인 팔로네 아주로를 수상했다.

아주리 군단에서도 주전 윙어로 기용되며 유로 2020에 참가해 16강 오스트리아전과 준결승 스페인전에서 두 골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에 기여해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18위 디에고 푸세르

 

 

생년월일: 1968년 11월 11일
A매치 기록: 25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SS 라치오

 

1990년대 이탈리아 축구를 풍미한 멀티 플레이어로 오른쪽 측면 전체와 중앙, 수비형 미드필더도 볼 수 있었던 다재다능한 선수로 발이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높은 수준의 지구력을 바탕으로 왕성한 활동량을 보여줬으며 뛰어난 신체 능력과 정교한 오른발 킥을 활용한 롱패스를 활용해 자신의 자리를 차지했다.

AC 밀란의 유스였으나 AC 밀란의 치열한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 라치오에 입단했으며 비안코세레스티 군단에서 초년에는 오른쪽 측면에서 활약하다가 제만 체제에서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팀의 1997-98 시즌 UEFA컵 결승 진출을 이뤄냈으며 파르마로 이적한 뒤에도 1998-99 시즌 코파 이탈리아와 UEFA컵 더블 우승을 이뤄냈으며 2001-02 시즌에는 라치오의 지역 라이벌 AS 로마로 이적해 2001-02 시즌 세리에 A 준우승과 2002-03 시즌 코파 이탈리아 준우승을 경험했다.

푸세르는 아주리 군단에서는 UEFA 유로 1996에 주전으로 조별리그 전 경기에 출전했으나 그 대회의 우승팀 서독과 준우승팀 체코에 밀려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쓴 맛을 겪었고 이후에는 메이저 대회에는 나서지 못했다.

 

17위 알베리고 에바니

 


생년월일: 1963년 1월 1일
A매치 기록: 15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63kg
주 소속팀: AC 밀란

 

아리고 사키 체제의 밀란을 대표했던 레프트윙으로 본래 레프트백으로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파올로 말디니의 등장으로 윙어로 올라가 활약했는데 스피드가 빠른 편이 아니었고 드리블 기술도 좋지 않았지만 왕성한 활동량으로 공수 양면에 영향력을 발휘했으며 우수한 위치 선정과 높은 축구 지능, 그리고 뛰어난 왼발 킥력을 바탕으로 날리는 크로스로 득점 찬스를 만들어냈는데 윙어임에도 화려하진 않지만 특유의 성실함과 다재다능으로 팀의 살림꾼으로 활약함에도 중요한 경기에서 클러치 능력까지 겸비한 부분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이나 레알 마드리드의 루카스 바스케스와 유사한 선수라 생각하면 편하다.

AC 밀란의 유스 출신인 에바니는 그가 어린 선수였던 시절, 밀란은 토토네로 스캔들이라는 승부 조작 스캔들에 휘말려 세리에 B로 강등되었는데 그래서 에바니는 세리에 B에서 밀란 1군 팀 데뷔를 했고 이후 승격했으나 다시 강등당하며 세리에 B로 내려갔을 때 주전 레프트백으로 활약했고 이후에는 윙어로 포지션을 바꾼 뒤 아리고 사키 체제에서 세리에 A 3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1989년 인터콘티넨탈컵 대회에서는 콜롬비아의 아틀레티코 나시오날을 상대로 연장 종료 직전에 결승골을 득점하며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며 밀란에서 단맛과 쓴맛 모두 봤으며 팀에서 밀려나 삼프도리아로 떠났을 때에도 1993-94 시즌에 개인 통산 첫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는 큰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지만 1988 서울 올림픽에서 준결승에 올랐으며 1994 미국 월드컵에서 백업으로 준우승을 경험했다.

 

 

16위 클라우디오 살라

 


생년월일: 1947년 9월 8일
A매치 기록: 18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토리노 FC

 

1970년대 이탈리아 무대에서 활약했던 윙어로 빠른 드리블 돌파와 민첩한 몸놀림으로 상대 수비를 뚫어낸 뒤 양발 모두를 사용한 적절하고 날카로운 크로스와 슈팅을 자랑해 팬들로부터 골의 시인이라 불렸다.

토리노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풀리치, 그라지아니와 함께 1970년대 토리노의 약진을 이끌었으며 1970-71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과 1975-76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으며 개인적으로도 1975-76 시즌과 1976-77 시즌에 세리에 A 평점왕인 구에린 도르를 수상했는데 특히 1975-76 시즌에는 리그 우승과 평점 1위를 모두 석권했으나 아주리에서는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프랑코 카우시오의 백업에 머물렀다.

 

15위 파올로 풀리치

 


생년월일: 1950년 4월 27일
A매치 기록: 19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토리노 FC


1970년대 이탈리아 무대에서 활약했던 다재다능한 윙포워드로 양발 모두를 사용해 날카로운 슈팅을 날렸으며 키가 큰 편이 아니었음에도 높은 점프력을 바탕으로 한 헤더로 득점에 능했기에 이탈리아의 축구 저널리스트계의 대부 지아니 브레라는 그에게 풀리치클론, 즉 싸이클론 풀리치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토리노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살라, 그라지아니와 함께 1970년대 토리노의 약진을 이끌었으며 1970-71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과 1975-76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으며 세리에 A 득점왕에도 세 번이나 올랐는데 특히 1975-76 시즌에는 리그 우승과 득점왕을 모두 석권했으나 아주리에서는 1974 서독 월드컵과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스쿼드에 포함은 되었으나 벤치에 머물렀다.

 

14위 로렌조 인시네

 

 

생년월일: 1991년 6월 4일
A매치 기록: 54경기 10골
신체조건: 키 163cm / 몸무게 59kg
주 소속팀: SSC 나폴리

 

2010년대 이탈리아 최고의 측면 공격수로 163cm의 작은 키를 지녔지만 빠른 스피드와 강력한 킥력은 물론 감각적인 패싱력을 통해 골 찬스를 만드는 부분에도 능했다.

나폴리 통산 출전 4위와 통산 득점 2위에 랭크된 인시녜는 나폴리의 로컬 보이였으며 여러 팀으로 임대를 다녀왔다가 페르테노페이로 다시 돌아와 세리에 A 준우승 3회와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개인적으로도 2013-14 시즌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다.

2010년대 아주리 군단에서 주축으로 활약한 인시녜는 2014 브라질 월드컵과 유로 2016에 출전했으며 벤투라의 무능한 체제에서 본 포지션에서 뛰지 못하며 부진하는 악운을 겪었으나 만치니 감독 부임 이후 유로 2020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아주리의 우승에 공헌하며 앙리 들로네를 들어냈다.

 

13위 마우로 카모라네시

 


생년월일: 1976년 10월 4일
A매치 기록: 55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2000년대 세리에 A에서 이름을 날린 측면 자원으로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의 이중국적이었으며 우수한 발기술과 교묘한 드리블 돌파와 한 박자 빠른 오른발 크로스로 골 찬스를 만드는 부분에도 능했으며 왕성한 활동량도 겸비해 중앙 미드필더와 윙어 사이의 포지션인 메짤라의 자리에서도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다.

선수 시절 초년에는 남미와 북중미 무대에서 활약하다가 2000-01 시즌 엘라스 베로나에서 세리에 A 무대에 데뷔했으며 2002-03 시즌 유벤투스에 입성해 그 해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이후 두 번의 우승이 칼치오 폴리로 취소당하고 그에 대한 처벌로 강등을 당했으나 팀에 충성심을 보이며 잔류해 2006-07 시즌 세리에 B 우승을 이뤄냈고 2007-08 시즌에는 팀원들 대부분이 부진한 와중에 홀로 분전하며 팀을 3위에 올려놓는 활약을 펼쳐 세리에 A 평점왕인 구에린 도르를 수상했다.

카모라네시는 아주리 멤버로 유로 2004 시절부터 활약했으며 특히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주전 멤버로 활약하며 팀의 월드컵 우승에 공헌했다.

 

 

12위 아마데오 비아바티

 


생년월일: 1915년 4월 4일
A매치 기록: 18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볼로냐 FC

 

제2차 세계대전 직전과 직후에 활약했던 윙어로 빠른 스피드와 화려한 기술을 겸비했으며 평발이었음에도 훌륭한 드리블로 상대를 제압했으며 특히 스텝 오버를 기가 막히게 구사하기로 이름이 높았으며 본 포지션인 아웃사이드 라이트는 물론 인사이드 포워드도 소화할 수 있었으며 득점력도 준수했다.

1930년대 하반기 볼로냐의 전성시대를 이뤄내며 세리에 A 4회 우승을 이뤄낸 비아바티는 1937년에는 파리 만국박람회 국제대회 우승을 이뤄내며 명성을 날렸고 기량이 떨어진 뒤에도 여러 팀을 돌아다니며 불혹이 넘은 1956년까지 선수생활을 이어갔다.

아주리 군단 소속으로는 1938 프랑스 월드컵에 주전으로 참가해 우승에 기여한 비아바티는 세계 대전 직후, 아주리 멤버들의 대부분이 토리노 소속으로 채워질 때도 토리노의 윙어 오솔라를 상대로 주전 경쟁에서 이겨내며 1947년까지 주전으로 활약했다.

 

11위 안젤로 디 리비오

 


생년월일: 1966년 7월 26일
A매치 기록: 40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피오렌티나

세리에 7공주라 불리던 시절에 활약했던 다재다능한 윙어로 마치 한혈마와 같은 스테미너를 가져 왕성한 활동량을 보여주며 측면에서 헌신적인 공수 가담이 눈에 띄며 날카로운 크로스로 찬스를 만드는 부분은 물론 집요한 맨 마킹으로 상대 공격수를 견제했으며 공을 빼앗기면 바로 재압박에 들어갔으며 다양한 상황에 유려하게 대처하는 우수한 전술안과 뛰어난 양발 사용 능력을 겸비해 좌우 윙어는 물론 측면 수비수와 수비형 미드필더, 그리고 메짤라의 위치에서도 본 포지션 못지않은 모습을 보여줬다.

30대 초반에야 전성기가 온 대기만성형 선수로 유명한 디 리비오는 초년에는 세리에 C의 여러 팀들과 세리에 B의 파도바에서 활약했으나 1993-94 시즌 유벤투스로 입성한 이후 비안코네리 군단의 세리에 A 3회 우승과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3회 진출과 1995-96 시즌 우승을 이뤄내는데도 큰 공을 세웠으며 1996년 인터콘티넨탈컵에서도 남미 챔피언 리버 플레이트를 격파하는데 공을 세웠다. 피오렌티나로 이적한 뒤에도 2000-01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고 구단이 파산하고 하부리그에서 재창단했을 때에도 하부 리그에서 활약해 팀을 다시 1부 리그로 올려놓고 불혹의 나이로 은퇴했다.

디 리비오는 아주리에서도 자주 소집되었는데 UEFA 유로 1996에서는 첫 경기에 선발로 나섰으며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첫 경기에서 활약했으나 이후에는 부상으로 뛰지 못했다. UEFA 유로 2000과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백업 멤버로 나섰는데 2002 한일 월드컵 16강 대한민국전이 그의 아주리 군단에서의 마지막 경기였다.

 

10위 피에리노 프라티

 


생년월일: 1946년 12월 13일
A매치 기록: 14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AC 밀란


1960년대 하반기 AC 밀란의 공격을 이끌었던 공격수로 중앙과 측면을 가리지 않고 소화했으며 빠른 스피드와 골문 앞으로 침투해 날리는 벼락같은 오른발 슈팅으로 득점하는 플레이를 보고 팬들은 그를 두고 마치 중세 유럽 시절에 유행했던 흑사병처럼 단숨에 상대를 제압한다고 하여 흑사병 피에리노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AC 밀란에서 전성기를 보낸 프라티는 로쏘네리 군단에서 활약하는 동안 1967-68 시즌 세리에 A 우승과 UEFA 컵 위너스컵 더블 우승을 이뤄냈으며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1968-69 시즌 유러피언 컵 결승전에서는 크루이프의 아약스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우승에 크게 기여했고 그 해에 투표한 발롱도르 투표에서 8위를 기록했다.

1967-68 시즌 세리에 A 득점왕에 오른 프라티는 아주리 군단에서 UEFA  유로 1968과 1970 멕시코 월드컵 스쿼드에 포함되었고 백업으로 나서며 유로 우승과 월드컵 준우승을 경험했다.

 

 

9위 레오폴도 콘티

 


생년월일: 1901년 4월 12일
A매치 기록: 31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71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이탈리아 축구 초창기를 대표하는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빠른 스피드와 교묘한 왼쪽 사이드 드리블 능력을 겸비했으며 인사이드 포워드와 침착한 원투패스 이후 상대 수비의 배후로 침투해 득점하는 플레이에 능했다.

1919-20 시즌에는 이탈리안 풋볼 챔피언쉽 우승을 이뤄냈으며 1929-30 시즌에는 주세페 메아차와 호흡을 맞춰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다.

1920년대 아주리 군단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하며 1924 파리 올림픽과 1927-1930 중유럽컵에 참가했고 후자의 대회에서는 우승의 영예를 누렸다.

 

8위 지노 콜라우시

 


생년월일: 1914년 3월 4일
A매치 기록: 26경기 15골
신체조건: 키 163cm / 몸무게 66kg
주 소속팀: US 트리에스티나

 

1930년대 후반과 40년대 초반에 이탈리아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공격 자원으로 키는 작았지만 다부진 체격을 보유했으며 빠른 스피드도 갖춰 이 조건을 활용해 페널티박스로 빠르게 침투해 왼발 슈팅으로 득점에 성공했으며 주 포지션인 아웃사이드 레프트는 물론 센터 포워드도 소화할 수 있었다.

중위권 구단인 트리에스티나에서 전성기를 누렸으나 소속팀 전력의 한계로 인해 우승은 이뤄내지 못했던 콜라우시는 유벤투스에서 1941-42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에 공헌했으며 아주리 군단에서도 1933-1935 중유럽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우승에 공헌했으며 대회 올스타 팀에 드는 활약을 보여줬다.

1938년 지노 콜라우시는 잉글랜드 축구협회 창립 75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잉글랜드 vs 유럽 올스타 경기에 참가해 백업으로 나섰다.

 

7위 안젤로 도멘기니

 


생년월일: 1941년 8월 25일
A매치 기록: 33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66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1960년대와 70년대 이탈리아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윙어로 빠른 스피드를 활용해 측면에서 시작해 중앙으로 침투한 뒤 강력한 양발 슈팅으로 득점하는 컷인 플레이에 능했으며 프리킥에도 능해 프리킥 전담 키커로도 명성을 날렸다.

아탈란타에서 데뷔해 1962-63 시즌 아탈란타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끌고 본인도 득점왕에 올라 스타덤에 오른 도멘기니는 이후 인테르로 이적한 뒤에는 자이르 다 코스타, 마리오 코르소의 백업 역할을 맡아 세리에 A 2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1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66-67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결승에서는 선발로 출전했으나 셀틱에 아쉽게 패했다. 이후 칼리아리로 이적해 1969-70 시즌 칼리아리의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다.

아주리 군단에서도 UEFA 유로 1968에 주전으로 활약하며 유고슬라비아와의 결승 1차전에서 선보인 예술적인 오른발 프리킥골로 대중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며 우승에 공헌했고 이러한 활약으로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팀의 결승 진출을 이뤄냈다.

 

6위 로베르토 도나도니

 


생년월일: 1963년 9월 9일
A매치 기록: 63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73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AC 밀란

 

1990년대 초반 유럽 정상급 오른쪽 날개로 특유의 왕성한 활동량에서 나오는 넓은 활동반경을 겸비해 최전방에서 공격을 이끌면서도 어느샌가 최후방으로 내려와 수비에 가담하는 플레이에 능했으며 양발을 모두 잘 써서 양 측면 윙어를 모두 볼 수 있었으며 높은 축구 지능과 경기 영향력을 앞세워 중앙 미드필더와 공격형 미드필더도 볼 수 있었다.

아탈란타에서 데뷔해 아리고 사키와 파비오 카펠로 체제의 AC 밀란에서 전성기를 누린 도나도니는 구단의 황금기인 밀란 제너레이션 1기의 주전으로 활약하며 세리에 A 5회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3회 우승과 2회 준우승을 이뤄내고 북미의 메트로스타스로 이적해 북미 리그 올스타 팀에 두 번 들었다가 다시 AC 밀란으로 돌아와 리그 우승에 공헌했다.

아주리 군단에는 유로 1988부터 대표팀에 뽑히기 시작해 1996년까지 아주리 대표팀의 주전으로 활약하며 UEFA 유로 1988 준결승 진출, 1990 이탈리아 월드컵 3위, 그리고 1994 미국 월드컵 결승 진출이라는 호성적을 이루는데 기여했다.

 

 

5위 마리오 코르소

 


생년월일: 1941년 8월 25일
A매치 기록: 23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1960년대 이탈리아 최고의 윙어로 적은 활동량에도 효율적인 움직임으로 파케티의 오버래핑을 도왔으며 정확하면서도 강력한 왼발 킥력과 비단뱀처럼 부드러운 드리블 실력을 갖춰 팬들로부터 '뱀 인간', '신의 왼발'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인테르 밀란에서 보낸 코르소는 1960년대 중반, 구단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인 그란데 인테르의 시대를 이끌었는데 지아친토 파케티와 함께 왼쪽에서 콤비 플레이를 보여주며 세리에 A 4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과 인터콘티넨탈컵 2연패를 이뤄내는 등 구단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코르소 개인도 1964년에는 발롱도르 투표에서 7위에 올랐으며 1965년에는 월드 사커지 선정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 15위에 올랐다.

다만 아주리 감독인 에드문도 파바리 감독이나 그 후임자인 페루치오 발카레지 감독과의 불화로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는 거의 소집되지 않아서 대표팀에서는 클럽팀에서의 위대한 흐름을 이어가진 못했다.

 

 

4위 프랑코 카우시오

 


생년월일: 1949년 2월 1일
A매치 기록: 63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윙 중 한 명으로 오른쪽 측면을 가르는 기습적인 질주에 이은 우수한 오른발 크로스로 팀 공격을 지원했으며 화려한 움직임과 깨끗한 사생활을 겸해 남작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트라파토니 시절 유벤투스의 황금기를 이끈 카우시오는 세리에 A 6회 우승과 1976-77 시즌 UEFA컵 우승과 1977-78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고 카우시오 개인도 1976년에는 스포르트 선정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12위에 올랐음은 물론 월드 사커지 선정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다.

아주리에서는 1974 서독 월드컵에서 메이저 대회 데뷔를 했으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과 UEFA 유로 1980에서는 주전 선수로 이탈리아의 4강행을 이끌었으며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백업 선수로 우승을 경험했으며 결승전에 교체 출장하기도 했다.

 

3위 지암피에로 보니페르티

 


생년월일: 1928년 7월 4일
A매치 기록: 38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1950년대 이탈리아 축구의 아이콘으로 폭발적인 슈팅력에서 나오는 우수한 득점력과 전광석화와 같은 드리블로 수비진을 벗겨내는 플레이에 능해 아웃사이드 라이트와 센터 포워드, 그리고 인사이드 포워드에서 모두 좋은 기량을 발휘했다.

선수 커리어를 전부 유벤투스에서만 보낸 비안코네리의 판타지스타 보니페르티는 세리에 A 6회 우승과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에 기여했으며 말년에는 오마르 시보리, 존 찰스와 함께 트리오 마지코를 구성해 활약했다.

다만 아주리에서는 수페르가의 비극으로 인해 토리노 선수들을 잃으며 이탈리아 축구가 암흑기를 헤매던 시절이라 1950 브라질 월드컵과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2위 브루노 콘티

 


생년월일: 1955년 3월 13일
A매치 기록: 47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65kg
주 소속팀: AS 로마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윙으로 평가받으며 빠른 스피드와 교묘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를 교란했으며 뛰어난 양발 능력을 바탕으로 날렵한 크로스로 공격수를 지원했으며 적극적인 수비 가담 능력을 통해 수비형 윙어인 토르난테 역할도 수행 가능했다.

AS 로마 구단 통산 출전 7위에 오른 콘티는 제노아 임대 시절을 제외하면 AS 로마에서만 커리어를 이어나갔으며 1982-83 시즌 세리에 A 우승과 코파 이탈리아 5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83-84 시즌에는 구단 역사상 최초로 유러피언 컵 결승에 진출하는 등 전성기를 누렸다.

아주리에서도 대단한 활약을 펼친 콘티는 1982 스페인 월드컵과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특히 전자의 대회에서는 공수 양면에서 훌륭한 활약을 펼치며 우승에 기여하며 발롱도르 투표에서 5위에 올랐다.

 

1위 라이몬드 오르시

 


생년월일: 1901년 12월 2일
A매치 기록: 35경기 13골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1920년대와 30년대 당시 최고의 아웃사이드 레프트로 빠른 스피드와 교묘한 드리블을 겸비해 상대 수비수를 속이며 크로스를 올려 공격수를 지원하는 능력과 왼발 슈팅으로 직접 마무리하는 능력 모두 훌륭했으며 중요한 경기에서 강한 면모를 보였다.

아르헨티나의 인데펜디엔테에서 데뷔해 정규리그 우승 3회를 이뤄낸 라이문도 오르시는 이탈리아로 건너가서는 유벤투스의 공격진 핵심으로 세리에 A 5연패에 큰 공을 세워 구단을 전국구급 인기 구단으로 만들었고 다시 남미로 돌아가서는 페냐롤에서 우루과이 프리미어 디비시온 우승을 했으며 플라멩구에서 캄파오네투 카리오카 우승을 이뤄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 시절에는 1927 코파 아메리카 우승컵을 들어냈고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 은메달을 목에 걸었던 오르시는 이탈리아로 귀화한 뒤에는 1927-30 중유럽컵과 1933-35 중유럽컵 우승에 기여했으며 1934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결승전에서 1-0으로 뒤지던 와중 구아이타의 크로스를 받아 골대를 등진 채로 오른발로 공을 받았고 골대 쪽으로 몸을 돌리면서 바로 왼발로 터닝 슈팅을 날려 동점골을 기록하며 승부를 연장전까지 끌고 갔으며 결국 아주리의 우승에 기여했다.

 


선정 인원 외 추가할 수 있는 명단

 

 

비르질리오 레브라토

 


생년월일: 1904년 10월 26일
A매치 기록: 28경기 11골
신체조건: 미상
주 소속팀: 제노아

 

 

로메오 멘티

 


생년월일: 1919년 9월 5일
A매치 기록: 7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69cm / 몸무게 67kg
주 소속팀: 토리노 FC

 

 

지노 피바텔리

 


생년월일: 1933년 3월 27일
A매치 기록: 7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볼로냐 FC

 

 

브루노 모라

 


생년월일: 1937년 3월 29일
A매치 기록: 21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67kg
주 소속팀: AC 밀란

 

 

에지오 파스쿠티

 


생년월일: 1937년 6월 1일
A매치 기록: 17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볼로냐 FC

 

지암파울로 메니켈리

 


생년월일: 1938년 6월 29일
A매치 기록: 9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루이지 메로니

 


생년월일: 1943년 2월 24일
A매치 기록: 6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토리노 FC

 

아틸리오 롬바르도

 


생년월일: 1966년 1월 6일
A매치 기록: 18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UC 삼프도리아

 

안토니오 칸드레바

 


생년월일: 1987년 2월 28일
A매치 기록: 54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SS 라치오

 

도메니코 베라르디

 


생년월일: 1994년 8월 1일
A매치 기록: 24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US 사수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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