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르난테 선정- 축구 역사상 최고의 명장 Top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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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난테 선정- 축구 역사상 최고의 명장 Top 50

토르난테 2022. 7. 18.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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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의 평가 기준이 강하게 반영되었으며 감독 부분은 선수 부분보다 이 점이 더 크게 작용합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 폼을 제작합니다.

* 해당 글 작성 기준일은 2022년 7월 18일입니다.

* 해당 순위는 주기적으로 변동될 수 있습니다.

 


50위 지네딘 지단


출생일: 1972년 6월 23일
국적: 프랑스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갈락티코스에서 가장 빛나는 별'

선수 시절에도 화려한 커리어를 쌓았던 지단은 다소 클래식한 전술에도 불구하고 그 커리어와 강력한 카리스마를 앞세워 스타 선수들을 훌륭하게 장악했으며 짜인 훌륭한 임기응변 능력으로 특히 토너먼트에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지단은 레알 마드리드를 이끌고 UEFA 챔피언스리그 3연패와 라리가 2회 우승을 포함해 레알 마드리드에서만 총 11개의 크고 작은 트로피를 따냈으며 개인적으로도 2017년에는 피파 올해의 감독을 수상했고 2019-20 시즌에는 미구엘 무뇨스 트로피를 받으며 라 리가 최우수 감독으로 이름을 올렸다.

지단보다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많이 이룬 감독은 카를로 안첼로티 한 명뿐이며 2020-21 시즌에는 총 64회의 부상 이탈을 겪고도 라 리가 우승경쟁을 했으며 챔피언스리그 4강에 올랐다.

49위 디에고 시메오네


출생일: 1970년 4월 28일
국적: 아르헨티나
주 소속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4000만 유로의 사나이'

현대 축구에서 수비축구의 대가로 평가받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시메오네는 4-4-2 시스템을 수비적으로 재해석해 라리가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선수 시절에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라리가 우승을 이끌었던 시메오네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라리가 2회 우승을 이끌며 메시의 바르셀로나와 호날두의 레알 마드리드가 양분하던 라 리가에게 경종을 울렸으며 그 외에도 유로파리그 2회 우승을 포함해 총 8개의 트로피를 들어냈으며 챔피언스리그 결승에도 2회 진출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퍼거슨의 길을 밟는 그는 보드진의 무한한 신뢰를 받으며 축구 감독으로서는 역대 최고의 연봉인 4000만 유로를 수령한다.

48위 알베르 바튜


출생일: 1919년 7월 2일
국적: 프랑스
주 소속팀: 스타드 드 랭스

'프랑스 축구의 중시조'

프랑스 리그앙 역사상 최고의 감독으로 평가받으며 뛰어난 안목과 육성 능력으로 레이몽 코파, 쥐스트 퐁텐, 베르나르드 보스키에르 등 수많은 프랑스 축구계의 스타를 배출해내며 유럽에서도 2류라 평가받던 프랑스 축구를 유럽 정상급으로 끌어올린 장본인이다.

1950년대와 60년대 초반에는 스타드 드 랭스의 약진을 이끌며 리그앙 우승 5회와 1953 라틴 컵 우승 및 유러피언 컵 준우승 2회를 이끌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으며 셍테티엔에서도 리그앙 3연패와 쿠프 드 프랑스 2회 우승을 이끌며 셍테티엔의 황금기의 초석을 다졌다.

클럽에서의 활약 이외에도 바튜는 랭스 감독 시절에는 프랑스 대표팀 감독을 겸직했으며 1958 스웨덴 월드컵 3위와 1960년에 열린 초대 유로 대회에서 4위를 이끌었다.

47위 에메 자케


출생일: 1941년 11월 27일
국적: 프랑스
주 소속팀: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아트 사커라는 영화의 감독'

프랑스의 월드컵 우승을 이끈 명장으로 다소 지루하고 수비적인 축구를 구사한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견고한 수비력과 강력한 한방으로 효율적인 축구를 구사했다.

지롱댕 보르도 시절에 리그앙 3연패와 쿠프 드 프랑스 2연패를 달성하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으며 프랑스 대표팀을 맡아서는 칸토나, 파팽, 지놀라 같은 노장들을 정리했으며 세대교체 과정에서 지단, 튀랑, 드사이, 앙리 같은 아프리카계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했으며 이들 중 일부는 1996 UEFA 유로 4강과 1998 프랑스 월드컵 우승에 공헌했으며 더 어린 선수들은 훗날 프랑스 대표팀의 에이스가 되어 팀을 지탱했다.

아프리카계 중용 문제로 인종차별주의자들에게 많은 비난을 당했지만 그들을 비웃듯이 조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자케는 1998년에 유러피언 올해의 코치와 IFFHS 올해의 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정되며 정상에서 화려하게 은퇴했다.

46위 스테판 코바치


출생일: 1920년 10월 2일
국적: 루마니아
주 소속팀: AFC 아약스

'아약스 제너레이션 1기의 완성'

리누스 미헬스가 이룬 틀에 숟가락만 얹혔다는 박한 평가를 받지만 코바치도 실제로는 미헬스와 마찬가지로 지역방어 우선과 전원 공격, 전원 수비의 개념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미헬스가 떠난 공백을 완전하게 채워냈다.

이미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에서 루마니아 리그 우승을 이끈 경험이 있는 코바치는 아약스에 부임한 첫해인 1971-72 시즌에 리그와 컵대회는 물론 벤피카와 인테르를 꺾고 트레블을 이뤄냈으며 1972-73 시즌 유러피언 컵에서는 8강 바이에른 뮌헨, 4강 레알 마드리드, 결승 유벤투스라는 극악의 대진을 뚫고 우승을 차지하며 아약스 제너레이션 1기의 화룡점정을 찍었다.

45위 텔레 산타나


출생일: 1931년 7월 26일
국적: 브라질
주 소속팀: 상파울루 FC

'마스터 트리칼라 파울리스타'

4-2-2-2 시스템이라는 극단적인 중앙 공격 시스템을 실전에서 사용한 감독으로 조가 보니토, 즉 재미있고 아름다운 축구를 구사하며 가장 브라질스러운 감독이라 평가받았다.

펠레와 자갈루가 이끌던 1970년의 셀레상에 비견된다는 1982년 셀레상을 맡아 지쿠, 파우캉, 소크라치스, 세레주의 황금의 사중주를 모두 활용하는 4-2-2-2 시스템을 보여주며 압도적이 전력을 보여줬으나 이탈리아에게 탈락했으며 1986 월드컵에서도 프랑스에게 탈락했다.

이후 중동을 떠도는 등 고전했지만 자신의 축구를 포기하지 않았으며 1990년에 부임한 상파울루에 부임해 1991년에 캄파오네투 파울리스타와 브라질 전국리그를 우승했으며 1992년과 1993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 2연패라는 위업을 달성하며 AC 밀란, 바르셀로나와 함께 세계 축구를 삼분하는 강팀의 반열에 올린 공로를 인정받아 1992년 남미 올해의 감독상을 받았으며 상파울루의 팬들로부터는 마스터라 불렸다.

44위 제프 헤어베어거


출생일: 1897년 3월 28일
국적: 독일
주 소속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브레슬라우와 베른의 사령관'

28년간 디 만샤프트의 감독을 맡았던 명장으로 유럽 대륙에 2-3-5 시스템이 유행하던 시절에 잉글랜드 최강의 팀 아스날이 활용한 WM 시스템과 독일 최고의 클럽 샬케가 활용했던 짧은 패스워크 위주의 전술인 일명 크라이셀을 도입해 독일 축구의 큰 발전을 이룩했다.

헤어베어거는 상대의 허를 찌르는 전술 운용을 보여주며 브레슬라우에서 덴마크를 8-0이라는 압도적인 스코어로 제압했던 경기를 포함해 안슐루스 이전까지 독일 대표팀의 11경기 연속 무패를 이끌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독으로 분단한 뒤에도 서독 축구의 재건을 이끌며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는 당대 최강의 팀 헝가리를 상대로 베른의 기적이라 불리던 우승을 이끌어냈으며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도 4강에 올랐으며 이런 업적들은 훗날 서독이 유럽을 대표하는 축구 강국으로 발돋움하는데 크게 공헌했다.

43위 호세 비야롱아


출생일: 1919년 12월 12일
국적: 스페인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마드리드 시장'

마드리드 연고의 두 팀에서 모두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냈던 지도자로 구스타브 세베슈의 매직 마자르가 보여준 소셜리스트 풋볼을 동경했으며 전방 다섯 명의 공격진에게 유기적인 스위칭 플레이를 지시했다.

상술한 스티일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를 중심으로 공격진을 구성해 라리가 2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2연패를 이뤄내며 저승사자 군단의 서막을 열었으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는 1960-61 시즌에 라 리가와 코파 델 레이를 제패했으며 1961-62 시즌에는 컵 위너스컵에서 우승하며 마드리드의 두 클럽을 모두 라리가에서 정상에 올렸다.

1962년에는 스페인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아 1964 유로에서는 마드리드의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야신이 버티던 디펜딩 챔피언 소련을 이기고 아르마다 군단의 메이저대회 첫 우승을 이끌었다.

42위 루이스 아라고네스


출생일: 1938년 7월 28일
국적: 스페인
주 소속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아르마다의 철혈제독'

197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롱런했던 감독으로 스페인 대표팀 시절 화끈하면서도 조직적인 공격력을 보여주며 이름을 날렸다

35년의 감독 생활중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만 여섯 번 부임하며 1976-77 시즌 라 리가 우승을 이끌며 돈 발롱지 선정 라 리가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 받았으며 이외에도 여러 대회에서 우승하며 2부 리그 우승을 포함해 총 7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바르셀로나에서는 1987-88 시즌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이뤄냈다.

스페인 대표팀에 부임해서는 노장들을 은퇴시키고 카시야스, 챠비, 푸욜 중심으로 팀을 재편했으며 단점으로 꼽히던 조직력을 장점으로 탈바꿈시키며 유로 2008에서 압도적인 성적으로 우승하며 메이저 대회 3연패의 시작을 열었고 후임 감독 델 보스케에게 최고의 팀을 물려주었다.

41위 비센치 페올라


출생일: 1909년 11월 1일,
국적: 브라질
주 소속팀: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포백의 아버지'

벨라 구트만과 함께 최초의 포백 시스템인 4-2-4 포메이션을 정립한 선구자로 당대 정석이었던 대인방어 체제를 초월해 지역방어 체제를 마련했으며 풀백들의 공격 가담과 레프트윙이 간간히 수비와 중원 싸움에 가담하는 체제를 보여주며 4-3-3 시스템에도 큰 영향을 줬다.

비선수 출신이지만 상 파울루에서 캄파오네투 2연패를 이끌어내며 주목받기 시작했고 1958년에는 브라질 대표팀 감독을 맡아 펠레를 발굴하며 우승하기도 했으며 훗날 브라질 최고의 명장이라 불리는 마리우 자갈루도 페올라의 축구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페올라는 브라질에서 74경기를 지휘해 55승 13무 6패를 기록한 명장임에도 다소 우스꽝스러운 일화가 있는데 뚱뚱한 체형임에도 귀신을 무서워했으며 경기 중에 자주 졸아 팀의 중앙 미드필더 지지가 경기장에서 지휘를 도맡기도 했다.

40위 헤네스 바이스바일러


출생일: 1919년 12월 5일
국적: 독일
주 소속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독일 감독들의 교과서'

분데스리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김독 중 하나로 강력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공격적인 축구로 리가에서 성공적인 역사를 써냈다.

쾰른에서 지도자를 시작해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의 감독으로 부임해 팀을 레기오날레리가 우승을 이끌며 분데스리가로 승격시켰으며 이후에는 분데스리가 3회 우승과 포칼 1회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를 열며 바르셀로나로 이적했으나 크루이프와의 갈등으로 실패하고 쾰른으로 돌아와 1977-78 시즌 분데스리가와 DFB포칼 더블을 이뤄냈다.

그가 작고한 뒤 독일의 축구지도자 지망생을 위한 트레이닝 센터인 헤네스 바이스바일러 아카데미는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으며 그곳에서 유프 하인케스, 위르겐 클롭, 한지 플릭 등 수많은 독일 국적의 명장들을 양성했다.

39위 마리우 자갈루


출생일: 1931년 8월 9일
국적: 브라질
주 소속팀: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셀레상의 현자'

선수 시절에도 우수한 축구 지능으로 자신의 입지를 다졌던 선수로 감독으로서도 상황에 따라 공격 축구와 수비 축구를 자유자재로 운용하며 브라질 축구는 물론 아시아 축구에도 큰 발전을 이뤄낸 축구인이다.

보타포구에서 캄파오네투 카리오카 2연패를 이뤄낸 뒤 1970 셀레상을 멕시코 월드컵 본선에서 이끌며 6전 전승으로 우승했으며 이때 펠레, 아우베르투, 제르송과 같은 각 라인의 중심축들과 활발한 소통을 통해 팀원 모두를 살리는 전술을 고안했으며 1970 셀레상의 다수가 빠진 1974 서독 월드컵에서도 바뀐 브라질의 현실을 직시해 수비 축구로 4위에 올리며 선전했고 이후 1990년대에 다시 복귀해 1997년에는 IFFHS 선정 세계 최고의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정되었으나 1998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결승전까지 올랐으나 에이스 호나우두가 결승전 전날에 컨디션이 무너지는 악재가 겹치며 프랑스에게 패했으나 이후 2002년에도 브라질 대표팀의 대행 감독을 맡으며 대한민국을 3-2로 이겨 감독으로서 A매치 통산 100승을 이끌어냈다.

1970년대 하반기에는 중동에서도 이름을 날렸는데 중동에서도 약체로 평가받는 쿠웨이트를 이끌고 1976 아시안컵 준우승을 이뤄내는 업적을 세웠다. 자갈루는 2013년 월드 사커지 선정 역대 최고의 감독 9위에 오르기도 했다.

38위 거스 히딩크


출생일: 1946년 11월 8일
국적: 네덜란드
주 소속팀: PSV 에인트호번

'언더독 스페셜리스트'

네덜란드 축구계의 실리 축구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선수들의 체력을 강화시켜 상대를 전방에서부터 압박하며 후방에서 빠른 역습으로 상대를 물리치는 전술을 선호해 대중적으로 강팀으로 분류되지 않는 팀들을 이끌고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는 감독으로 유명했다.

PSV 에인트호번에서 중도 부임해 리그 우승을 이뤄내며 감독 경력 첫 해에 우승을 이뤄냈으며 그다음 시즌에는 트레블을 이뤄냈으며 이후 네덜란드 대표팀을 이끌고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4위를 이뤄냈으며 2002 한일월드컵에서는 대한민국 대표팀을 이끌고 4강에 오르는 월드컵 역사상 전무후무한 이변을 현실로 만들었으며 유로 2008에서는 러시아 대표팀을 소련 해체 이후 첫 4강으로 이끌었다.

히딩크는 2002년에 월드 사커지 선정 올해의 감독을 수상했으며 2005년과 2006년에는 리누스 미헬스 상을 수상했으며 한일 월드컵의 업적으로 인해 대한민국 명예 국민증을 수여받았고 KFA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37위 루이 반 할


출생일: 1951년 8월 8일
국적: 네덜란드
주 소속팀: AFC 아약스

'육성의 달인'

1990년대 하반기 최고의 명장 중 하나로 수많은 스타를 육성해낸 육성의 대가로 베르캄프, 오베르마스, 챠비, 푸욜, 토마스 뮐러 등 수많은 스타를 육성해냈으며 이를 위해 미래가 불투명한 노장들을 과감히 내치는 세대교체와 공격축구의 달인으로 명성을 떨쳤다.

아약스에서 1994-95 시즌 챔피언스리그와 에레데비시 더블 무패 우승을 포함해 에레데비시 3회 우승과 UEFA컵 우승 1회 그리고 챔피언스리그 1회 우승, 1회 준우승, 1회 4강에 오르는 등 6년간 11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아약스 제너레이션 2기를 이끌었으며 이후 바르셀로나 1기에는 라 리가 2연패를 이끌었으며 2008-09 시즌에는 언더독 알크마르를 에레데비시 챔피언으로 올렸고 바이에른 뮌헨 시절에는 팀의 세대교체를 주도하면서도 2009-10 시즌 분데스리가와 포칼 더블 우승은 물론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네덜란드 대표팀에서는 한 번은 실패했지만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우승후보로 평가받지 못했음에도 3위라는 호성적을 거뒀다. 반 할은 1995년 월드 사커지 선정 올해의 감독과 유러피언 올해의 감독에 올랐으며 두 번의 리누스 미헬스 상과 2009-10 시즌 독일 올해의 감독상을 받았다.

36위 아르센 벵거


출생일: 1949년 10월 22일
국적: 프랑스
주 소속팀: 아스날 FC

'진짜 아트사커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프리미어리그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철저한 식단 운용과 과학적인 훈련으로 선수단의 체력 상태를 최선으로 끌어올렸으며 다소 지루한 실리축구를 구사했던 아스날을 단번에 높은 라인에서 빠른 전개를 하는 일명 재밌는 축구를 하는 팀으로 변모시키며 명성을 떨쳤고 경제학 석사와 명예박사학위를 따냈을 정도로 경제관념에도 능해 팀 운영에도 적극 참여해 저예산으로 팀을 운영하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첼시와 경쟁했다.

1987-88 시즌 모나코에서 리그 우승을 이끌어냈고 나고야 그램퍼스에서도 1995년 일왕배 컵대회를 우승하고 아스날에 부임해 1997-98 시즌 프리미어리그와 FA컵 더블을 이뤄냈으며 2003-04 시즌에는 무패 우승을 이뤄내며 퍼거슨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올랐으며 2005-06 시즌에는 아스날 역사상 유일한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오르기도 했으며 아스날에서 총 17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려 명성을 쌓았다.

말년에는 리그 4위와 챔피언스리그 16강 진출에 만족한다는 조롱을 들었지만 경기장 이전으로 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이뤄낸 성과라 재평가받고 있으며 실제로도 구단이 재정난에 시달리지 않았던 시절에는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감독 3회 수상과 1998년 월드 사커지 선정 올해의 감독을 수상하기도 했다.

35위 우도 라텍


출생일: 1935년 1월 16일
국적: 독일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바바리안의 카이저'

분데스리가 역사상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으로 네덜란드에서 유행한 토털 풋볼과 헬무트 쇤이 고안한 공격형 리베로 전술을 모두 받아들이며 1970년대 바이에른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바이에른 뮌헨 소속으로 분데스리가 6회 우승과 DFB포칼 3회 우승 그리고 1973-74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경질된 이후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는 분데스리가 2연패와 1978-79 시즌 UEFA컵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전성기에 방점을 찍었고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뒤에는 1981-82 시즌 컵 위너스컵을 우승하며 세계에서 최초로 3대 유럽 대항전을 석권한 감독이 되었다.

오트마어 히츠펠트, 유프 하인케스, 한지 플릭 등 바이에른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뤄낸 감독은 많았지만 적어도 바이에른에서는 우도 라텍을 최고로 평가하는 올드팬들도 많다.

34위 로베르토 스카로네


출생일: 1917년 7월 16일
국적: 우루과이
주 소속팀: 페냐롤

'페냐롤 제국의 1세 황제'

라틴아메리카 축구에서 가장 위대한 감독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감독으로 빠른 전진 패스를 바탕으로 상대 수비진을 쉴 새 없이 괴롭히는 공격 축구로 명성을 날렸다.

페냐롤의 전성기를 이끌며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4회 우승과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2회 우승과 인터콘티넨탈컵 1회 우승이라는 성적을 이뤄내며 페냐롤을 1960년대 최고의 팀으로 군림하게 했으며 멕시코의 클럽 아메리카에서도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페루의 센트로 아케뇨에서 페루 리그 1회 우승, 우니베르시타리오에서 3회 우승을 이뤄내며 총 4회 우승을 이뤄내며 라틴 아메리카 축구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33위 비센테 델 보스케


출생일: 1950년 12월 23일
국적: 스페인
주 소속팀: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아르마다와 갈락티코스의 소프트 파워'

클럽과 대표팀에서 모두 성공을 거둔 명장으로 스타군단을 지휘하는데 특화되었으며 세부 전술은 선수들에게 맡기고 큰 틀의 전술만 짜낸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시대의 흐름과 팀의 현 사정을 잘 읽고 거기에 최적화된 전술로 틀을 쌓은 뒤 세세한 부분은 스타플레이어에게 맡기는 전술로 강팀에서 좋은 성과를 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갈락티코 1기의 시대를 이끌며 라 리가 2회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을 이끌어냈으나 페레즈 감독에 의해 물러났으며 그가 물러나자 갈락티코 1기는 처참한 실패를 거듭했고 델 보스케 역시 스타 군단과는 거리가 먼 베식타스에서는 실패했으나 루이스 아라고네스가 만든 갈락티코 군단에 뒤를 이어 부임해 2010 남아공 월드컵 우승과 UEFA 유로 2012 우승을 이뤄내며 메이저대회 3연패의 방점을 찍었다.

펩 과르디올라를 따라 한다는 비판이 대표팀을 이끄는 내내 따라다녔고 정이 많아 리빌딩에 소극적이어서 2012 유로 이후에는 부진한 성적을 거두었지만 정 많은 성격으로 스타 군단이 팀에 헌신하게 만들었으며 천재들의 전술을 벤치마킹해 자신의 것으로 잘 만들어내며 대표팀과 클럽에서 모두 성공할 수 있었다. 우수한 지피지기 능력 역시 감독으로서의 필수적인 덕목이고 델 보스케는 이것을 가장 잘하는 감독 중 하나였다.

32위 알프 램지


출생일: 1920년 1월 22일
국적: 잉글랜드
주 소속팀: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날개 없는 경이로움'

선수 시절에는 토트넘 훗스퍼에서 이름을 날렸으며 감독으로는 4-4-2 다이아몬드 계열의 포메이션의 창시자로 양 측면의 메짤라들이 윙어가 되기도 하고 수비형 미드필더가 되기도 하며 인사이드 포워드가 되기도 하는 변화무쌍함을 보여주며 날개 없는 경이로움이라 불렸다.

입스위치 타운에서 감독 데뷔를 했으며 1956-57 시즌 풋볼 리그 3부 우승, 1960-61 시즌 풋볼 리그 2부 우승, 1961-62 시즌 풋볼 리그 1부 우승이라는 경이로운 성적을 거두었으며 1963년에는 삼사자 군단의 감독을 맡아 1966 잉글랜드 월드컵 우승과 1968 UEFA 유로 3위라는 호성적을 기록했으며 그 당시 잉글랜드는 축국 국가대표팀 ELO 랭킹 1위를 마킹하는 등 종가에 몇 없는 황금기를 누렸다.

알프 램지는 입스위치 타운의 홈구장 바깥에 그의 동상이 세워지는 영광을 누렸으며 2002년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 초대 헌액자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31위 오스발도 주벨디아


출생일: 1927년 6월 24일
국적: 아르헨티나
주 소속팀: 에스투디안테스

'마왕'

승리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독한 명장으로 축구는 인간이 한다는 것을 가장 잘 이해한 감독으로 오프사이드 트랩과 전략적인 파울을 적극 활용해 상대 공격수들을 위축시켰으며 그가 이끌던 에스투디안테스는 잔인한 플레이로 악명이 높아 어린 도살자들이라 불렸다.

아르헨티나에서 약체로 평가받던 에스투디안테스를 맡아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2회 우승과 1968년부터 1970년까지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3연패를 이뤄냈으며 1968년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꺾고 인터콘티넨탈컵 우승을 이뤄내기도 했으며 아틀레티코 나시오날에서는 콜롬비아 리그 2회 우승을 이끄는 등 우승 청부사로 이름을 날렸다.

다만 그의 에스투디안테스는 1969년 밀란을 상대로 잔인한 파울을 가해 폭력죄로 고소당하기도 했으며 이는 유럽 챔피언들이 인터콘티넨탈컵 진출을 기피하고 준우승팀에게 양보하는 사례를 만들며 대회 위상을 최악으로 만들기도 했으며 인터콘티넨탈컵이 제 위상을 찾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30위 오토 레하겔


출생일: 1938년 8월 9일
국적: 독일
주 소속팀: 베르더 브레멘 

'오토 레하클레스'

승리를 위해서는 극단적인 수비축구도 마다하지 않았던 독일의 명장으로 분데스리가 최다 전적, 최다 승, 최다 무승부, 최다 패배의 기록을 모두 석권한 감독으로 유명하며 대인 수비 전술인 카테나치오 시스템의 신봉자로 전방에서부터 철저한 압박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수비진들이 대인 수비를 이룰 때 미드필더들이 그 자리를 채워주는 방식의 수비 시스템으로 이름을 날렸다.

초년에는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게 12-0으로 패하며 토르하겔이라 놀림을 당하기도 했으나 베르더 브레멘에서 15년간 머물며 분데스리가와 DFB포칼 각각 2회 우승과 1991-92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내며 분데스리가를 대표하는 명장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이후에는 바이에른 뮌헨으로 건너갔으나 회장 울리 회네스와의 갈등으로 사임했으며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는 1996-97 시즌 2부 리그 우승에 이어 1997-98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끄는 경이로운 활약을 보여줬다.

이후 그리스 대표팀에서 10년간 재임하며 카테나치오식 대인수비와 현대식 지역방어가 결부된 수비 시스템으로 유로 2004 우승이라는 기적을 이뤄냈으며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본선에 진출하는 활약을 보여주며 2004년 IFFHS 선정 세계 최고의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정되었으며 그리스 현지에서는 오토 레하겔과 헤라클레스를 결합해 오토 레하클레스라 불리며 명성을 누렸다.

29위 유프 하인케스


출생일: 1945년 5월 9일
국적: 독일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질풍의 오스람 사령관'

21세기 분데스리가를 빛낸 최고의 사령탑으로 1980년대 초반부터 2010년대 후반까지 꾸준히 성적을 내며 롱런했으며 로타어 마테우스, 훌렌 게레로, 라울 곤잘레스, 아르투로 비달, 다비드 알라바 등 유망주를 스타 선수로 육성하는 부분에서도 일가견이 있었다.

분데스리가와 라리가에서 이름을 날렸으며 특히 바이에른 뮌헨에는 소방수로 중도 부임 이외에도 네 번이나 부임했으며 바이에른에서 분데스리가 4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2012-13 시즌에는 축구 종목 역사상 가장 높은 승률을 기록하며 트레블을 이뤄냈으며 특히 2010년대 초반 최고의 팀이라 불린 메시와 챠비의 바르셀로나와의 맞대결에서 홈과 원정 도합 7-0으로 대파해버리는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2013년 피파 올해의 감독상과 IFFHS 선정 세계 최고의 클럽 감독상과 유러피언 올해의 감독상과 독일 올해의 감독상, 월드 사커지 선정 올해의 감독상을 싹쓸이했다.

라 리가에서도 족적을 남겼는데 빌바오에서는 향후 10년간 팀의 동향이 될 유망주를 여럿 발굴했으며 중소구단이라 평가받는 테네리페에서는 UEFA컵 4강에 진출했으며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리가에서는 부진했지만 32년 만에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28위 하버트 채프먼


출생일: 1878년 1월 19일
국적: 잉글랜드
주 소속팀: 아스날 FC

'포병대장'

잉글랜드인이지만 스코틀랜드식 패스 플레이와 스위칭 플레이를 깊게 연구했던 다뉴브 학파의 일원이자 30년간 축구계를 독식했던 WM 시스템을 개발해 오프사이드 룰 변화에 맞선 선구자로 축구 전술에 큰 발전을 이뤄낸 감독이었으며 관리적인 측면에서도 축구 역사상 최초로 클럽 차원에서 물리치료사를 고용하고 선수들의 식습관에도 관심을 가졌으며 야간 조명 설치를 추진했으나 FA컵의 반대로 실패하기도 했다.

채프먼은 허더즈필드 타운과 아스날을 지휘하며 감독으로 이름을 날렸는데 전자의 클럽에서 풋볼 리그 1부 2연패와 FA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아스날에서는 FA컵 1회 우승과 풋볼 리그 1부 2회 우승과 커뮤니티 실드 우승 3회를 이끌며 팀을 전성기에 올려놓았으나 재임 중인 1934년 1월 1일, 아스날이 리그 1위를 수성하고 있던 찰나에 채프먼은 추운 날씨에 노츠 카운티와 베리 등의 구단을 둘러보며 스카우트하러 가는 도중에 폐렴으로 쓰러져 8일 만인 1월 9일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코치인 조 쇼는 잃어버린 대장이란 추모시를 지어서 그를 애도했으며 결국 1933-34 시즌에 감독대행으로 우승을 이뤄내며 채프먼의 영전에 트로피를 바쳤으며 채프먼은 먼 훗날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외곽에 동상이 세워지며 영원한 구너스의 캡틴으로 남았다.

27위 네레오 로코


출생일: 1912년 5월 20일
국적: 이탈리아
주 소속팀: AC 밀란

'대가 (El Paron)'

칼 라판의 베로우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연구해서 이탈리아 축구계에 유행시킨 인물로 기존의 센터하프를 최후방의 리베로로 두고 하프백 한 명을 추가로 스토퍼로 배치하는 4백의 카테나치오 시스템을 처음 유행시켰다.

이 시스템을 활용한 로코는 세리에 B에서조차 강등 위기를 겪던 파도바를 맡아 해당 시즌에 잔류에 성공하고 다음 시즌에는 승격에 성공했으며 그다음 시즌인 1957-58 시즌엔 리그 3위에 올려놓았으며 로코가 이끌던 파도바는 엄청난 근성과 강력한 피지컬을 선보이며 기갑 군단이라 불렸다.

AC 밀란에서는 커리어의 정점을 찍으며 1961-62 시즌 세리에 A 우승과 1962-63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을 연달아 이뤄냈으며 이후 수페르가의 비극으로 몰락한 토리노로 이적해 토리노를 다시 세리에 A 상위권에 올려놓았으며 다시 AC 밀란으로 돌아와 1967-68 시즌 세리에 A와 컵 위너스컵 더블 우승을 달성했으며 1968-69 시즌에는 리누스 미헬스와 요한 크루이프의 아약스의 토털 풋볼을 완벽하게 봉쇄해 로쏘네리 군단에서 재차 빅이어를 들었다.

26위 구스타브 세베슈


출생일: 1906년 1월 22일
국적: 헝가리
주 소속팀: 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

'매직 마자르의 대칸'

축구 역사상 최강의 국가 대표팀 중 하나로 평가받는 매직 마자르를 이끌었던 명장으로 다뉴브 학파의 영향을 크게 받아서 스위칭 플레이 이론과 지역방어 이론에 밝았으며 한 선수에게 다양한 포지션 소화를 지시하는 소셜리스트 풋볼을 이상으로 삼았고 이에 어긋나는 페렌츠 데아크나 산도르 주치같은 선수들을 대표팀에서 정리하는 과감함도 겸비했다.

세베슈가 이끄는 매직 마자르는 1952 헬싱키 올림픽 금메달, 1948~1953 중유럽 컵 우승, 그리고 1954 스위스 월드컵 결승 진출을 이뤄냈으며 그 과정에서 4년간 31경기 연속 무패를 기록했으며 6년간 월드컵 결승전 단 1패만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했으나 1956년에 벌어진 헝가리 혁명을 정부가 진압하는 과정에서 소련군을 투입하는 실망적인 행보를 보여 대표팀 선수 중 일부가 스페인으로 망명해버리면서 해체된다.

그럼에도 세베슈의 유산은 여러 곳에 남았는데 지역방어 시스템은 브라질이 채용해 4-2-4 시스템에 활용해 자신들의 시대를 열었으며 저승사자라 불린 레알 마드리드는 스위칭 플레이를 활용해 유러피언컵 5연패의 금자탑을 쌓았으며 네덜란드의 리누스 미헬스는 이를 토대로 토털 풋볼을 재창해 축구판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25위 지미 호건


출생일: 1882년 10월 16일
국적: 잉글랜드
주 소속팀: MTK 헝가리아

'다뉴브 학파의 수장'

잉글랜드인이지만 스코틀랜드식 짧고 빠른 지속적인 패스 플레이와 스위칭 플레이를 깊게 연구했던 다뉴브 학파를 창시한 축구 연구자로 스위칭 플레이의 밑그림을 그리며 여러 실험을 거두었고 이는 훗날 오스트리아의 분더팀과 헝가리의 매직 마자르, 그리고 토털 풋볼의 네덜란드로 이어진다.

MTK 헝가리아의 감독으로 부임해 페렌츠바로시가 독주하던 넴제티 버이녹샤그에서 MTK 헝가리아의 시대를 열었으며 1917-18 시즌에 MTK 헝가리아는 21승 1무 147 득점 10 실점이라는 전설적인 승점으로 우승했으며 이후에도 호건이 감독직을 그만둔 1921년까지 압도적인 성적으로 우승하며 리그 5연패를 달성하고 물러났는데 지미 호건이 MTK 헝가리아 시절에 달성한 전적은 118경기 107승 6무 5패를 이루며 승률이 90%를 넘겼으며 571득점 72실점이라는 경이로운 득실차도 남겼다.

이후 다뉴브 학파를 창시했으며 오스트리아 국가 대표팀 코치로 재직하며 감독이자 친구 우고 마이슬을 도와 마티아스 진델라를 활용해 센터 포워드로 상대를 유인하고 그 빈 공간을 인사이드 포워드들이 침투해 득점하는 펄스 나인 전술을 완성시킨다. 이에 오스트리아는 유럽 대륙 최강팀으로 군림하며 1931-32 시즌 중유럽컵 우승과 같은 성과를 이뤄내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24위 맷 버스비


출생일: 1909년 5월 26일
국적: 스코틀랜드
주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레드 데빌즈의 아버지'

선수 시절에는 맨체스터 시티와 리버풀 소속으로 전성기를 누리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라이벌 팀에서 활약했지만 감독으로는 20년 넘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만 머물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우수한 유스 시스템을 잘 활용해 던컨 에드워즈, 바비 찰튼, 로저 바인과 같은 어린 선수들의 훌륭한 조직력을 활용해 리그 우승 3회를 이뤄냈으며 유러피언 컵에서도 4강까지 진출했지만 뮌헨 비행기 참사로 던컨 에드워즈 등 주축 다수가 사망하면서 위기를 맞았으나 이후에도 찰튼을 중심으로 데니스 로와 조지 베스트, 노비 스타일스를 키워내며 리그 우승 2회는 물론 1967-68 시즌에는 비록 리그 우승을 맨체스터 시티에게 내줬지만 유러피언 컵 결승에서 에우제비우의 벤피카를 꺾고 우승을 이뤄냈다.

버스비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총 13개의 트로피를 들었으며 퍼거슨 이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이름을 날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올해의 선수상을 맷 버스비상으로 부르기도 했다.

23위 파비오 카펠로


출생일: 1946년 6월 18일
국적: 이탈리아
주 소속팀: AC 밀란

'우승 청부사'

선수 시절부터 기하학자라 불렸을 정도로 포지션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던 선수로 강력한 카리스마와 엄격한 규율로 팀을 장악했으며 사키이즘을 기본 바탕으로 삼았지만 사키에 비해 다소 수비적으로 운용했으며 경직되었다는 평가와는 다르게 수비형 미드필더에게 자율성을 많이 부여하는 전술을 사용했다.

아주리로 떠난 사키의 대체자로 AC 밀란에 부임해 반 바스텐의 부상으로 공격 상황에서 부진하자 극단적인 수비 전술로 13실점만 거두고 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1993-94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는 그의 수비축구를 비판한 바르셀로나의 요한 크루이프를 상대로 역으로 공격 축구를 구사하며 선제골을 넣은 뒤 수비축구로 바르샤를 흔들며 역습을 가해 4-0으로 대승을 거두기도 했다.

AC 밀란에서 이뤄낸 세리에 A 3연패를 포함해 4회 우승과 1993-94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두 번 부임해 두 번 모두 라 리가 우승을 이뤄냈고 2000-01 시즌에는 AS 로마의 현재까지 마지막 스쿠테토를 이루기도 했다. 카펠로는 파치나 도르라 불리는 이탈리아 축구 감독상을 4회 수상했으며 1993-94 시즌에는 유러피언 올해의 감독상을 받았다.

22위 위르겐 클롭


출생일: 1967년 6월 16일
국적: 독일
주 소속팀: 리버풀 FC 

'축구계의 로빈 후드'

사키이즘을 공격적으로 재해석해 상대 공격에 대항하는 압박이라는 뜻의 게겐프레싱 전술을 유행시킨 전술가로 선수들에게 공을 뺏기는 즉시 그 자리에서 바로 상대를 다시 압박해 공을 탈환하는 플레이를 주문해 4면 압박을 통해 볼 소유권을 찾고 빠르게 역습을 가하는 플레이를 즐겼다.

클롭은 게겐프레싱을 바탕으로 마인츠를 분데스리가 잔류권 클럽으로 성장시켰으며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이끌고 분데스리가 2연패와 2011-12 시즌 더블 우승을 이끌었으며 2012-13 시즌에는 무리뉴의 레알 마드리드를 조별 리그와 준결승전에서 모두 제압하고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진출하는 활약을 보여줬으며 최악의 부진으로 중위권이 딱이라고 놀림받던 리버풀을 맡아 펩의 맨체스터 시티의 대항마로 성장시키며 2018-19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포함해 3번이나 결승전에 진출했으며 2019-20 시즌에는 리버풀의 첫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이끌어냈으며 2021-22 시즌에는 쿼트레블에 도전할 발판을 마련해 실제로 FA컵과 리그컵을 더블 우승했으며 리그에서도 최종전까지 우승 경쟁을 했고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도 진출했다.

클롭은 개인적으로도 독일 올해의 감독상을 3회 수상했으며 피파 올해의 감독상을 2회 수상했고 2019년에는 IFFHS 선정 최우수 감독에 올랐고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감독에 2회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는 중이다.

21위 미겔 무뇨스


출생일: 1922년 1월 19일
국적: 스페인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예예 군단의 군단장'

레알 마드리드가 스페인은 물론 세계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쌓는데 공헌했던 명장으로 저승사자 군단의 주장을 맡았을 정도로 우수한 전술안과 탁월한 리더십을 감독으로 부임한 뒤에도 보여줬다.

저승사자 군단 말기부터 감독직을 맡아 스페인 선수가 중심이 되는 Yeye 마드리드 시대를 이끌며 14년 동안 라리가 9회 우승과 코파 델 레이 2회 우승, 그리고 유러피언 컵 2회 우승을 이끌어내며 레알 마드리드에서 감독으로만 14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었으며 그의 압도적인 리그 지배력 덕분에 바르셀로나에게 밀렸던 라 리가 우승 횟수를 역전했다.

무뇨스는 레알 마드리드를 떠난 이후 세비야를 거쳐 1982 스페인 월드컵이 끝난 이후 스페인 대표팀에 부임했으며 1984 UEFA 유로에서 준우승,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8강이라는 성적을 이루며 아르마다 군단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20위 헬무트 쇤


출생일: 1915년 9월 15일
국적: 독일
주 소속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람바참바와 카테나치오의 두 얼굴'

1960년대 하반기와 1970년대 서독 축구계가 세계 축구계를 쥐락펴락하게 만든 일등 공신으로 일명 독일식 리베로 시스템이라 불렸던 리베로에게 플레이메이킹의 일부를 담당시키며 공격적으로 기용해 베켄바우어의 역량을 극으로 끌어올린 감독으로 유명했고 이는 2000년대 초반까지 독일 축구의 아이덴티티로 자리 잡았다.

헬무트 쇤은 디 만샤프트에 14년간 머물며 1966 잉글랜드 월드컵 준우승과 1970 멕시코 월드컵 3위라는 성적을 시작으로 1972 UEFA 유로에서는 마치 브라질과 같이 공격적인 패스 플레이를 앞세운 일명 람바참바 풋볼로 예선에서 잉글랜드를, 본선에서는 벨기에와 소련을 압도적으로 무너트리고 우승하며 세계 축구계를 경악시켰다.

그리고 자국에서 열리는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자신들보다 기술적으로 훌륭한 팀들이 많이 참전하자 이탈리아식 카테나치오를 연상시키는 플레이로 상대 공격진을 옥죄며 승리를 차지하는 서로 다른 두 축구로 정점에 올라 메이저대회를 연속으로 제패했고 1976년에도 UEFA 유로 결승에 진출했으나 승부차기에서 아쉽게 패했지만 서독 축구가 유럽 축구의 대표로 자리 잡는데 큰 공을 세웠다.

19위 비토리오 포초


출생일: 1886년 3월 2일
국적: 이탈리아
주 소속팀: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줄리메 컵의 사나이'

호건이 창시한 다뉴브 학파의 일원이자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역사상 최고의 감독으로 뛰어난 통솔력은 물론 기존에 유행하던 피라미드 시스템에서 인사이드 포워드의 위치를 하프백에 가깝게 내리며 높은 점유율을 가져가는 메토도 시스템을 창안했으며 적절한 세대교체로 오랫동안 높은 전력을 유지했다.

포초는 아주리 군단을 20년간 이끌면서 1927-30 중유럽컵 우승을 시작으로 1934 이탈리아 월드컵과 1933-35 중유럽컵 우승에 성공했으며 이때 우승 멤버들 대부분을 내치고도 1936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과 1938 프랑스 월드컵 우승을 이뤄내며 과감한 세대교체의 정석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줬다.

축구 역사상 유일하게 월드컵을 2회 우승했던 포초 감독은  2011년에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18위 밥 페이즐리


출생일: 1919년 1월 23일
국적: 잉글랜드
주 소속팀: 리버풀 FC

'붉은 제국의 명군'

리버풀에서 선수로 15년, 수석코치로 15년, 그리고 감독으로 9년간 총 39년을 헌신한 레전드로 빌 샹클리의 유산을 이어받아 리버풀의 붉은 제국 전성기를 이끌었다.

선수들의 올바른 포지션을 보는 능력이 뛰어난 페이즐리는 센터포워드에서 활약한 케니디를 윙어로 포지션을 변경시켜 대박을 내는 등 적절한 용병술을 활용해 팀을 이끌었으며 풋볼 리그 우승 6회와 유러피언 컵 우승 3회, 그리고 1975-76 시즌 UEFA컵 우승을 포함해 20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밥 페이즐리는 풋볼 리그 올해의 감독에 여섯 번 선정되었으며 축구 역사상 최초로 유러피언 컵 3회 우승을 이뤄내는 업적을 쓰며 리버풀의 전성기를 이끈 전설로 남았다.

17위 빌 샹클리


출생일: 1913년 9월 2일
국적: 스코틀랜드
주 소속팀: 리버풀 FC

'붉은 제국의 시조'

여러 유명한 명언을 남긴 감독으로 유명한데 특히 선수를 평가할 때 했던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로 유명한 감독이다.

1959년 2부 리그에서 헤매는 리버풀의 지휘봉을 잡아 15년간 재직하며 그가 은퇴하는 1974년쯤에는 잉글랜드에서 가장 강력한 팀 중 하나가 되게 만들었으며 훗날의 붉은 제국의 기틀을 마련한다.

샹클리는 리버풀에서 1961-62 시즌의 2부 리그 우승을 시작으로 풋볼 리그 1부 3회 우승과 2회의 FA컵, 그리고 1972-73 시즌 UEFA컵에서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으며 1974년에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자신의 수제자 밥 페이즐리에게 팀을 물려주고 은퇴했으며 리버풀은 샹클리의 이런 공로를 인정해 안필드에는 그의 업적을 기려 샹클리 게이트를 만들었으며 빌 샹클리의 동상을 세웠다.

16위 조크 스타인


출생일: 1922년 10월 5일
국적: 스코틀랜드
주 소속팀: 셀틱 FC

'스코틀랜드 축구의 기념비'

1960년대 최고의 감독 중 하나로 4-2-4 시스템을 신봉했으며 이 특별한 4-2-4 포메이션은 최전방 두 명의 스트라이커가 보다 낮은 위치로 내려오면서 양 쪽 측면 윙어가 중앙 쪽으로 좁혀 주는 것, 그리고 그 사이드 공간을 양쪽 윙백의 활발한 오버래핑으로 메워주는 공격적인 축구를 선호했다.

조크 스타인은 셀틱에서 1966-67 시즌 트레블을 이뤄냈는데 유러피언 컵 결승전에서 엘레니오 에레라가 이끄는 인테르의 카테나치오를 완벽하게 파훼하며 슈팅을 40개나 날리며 우승했으며 이 해의 전관왕을 포함해 스코티시 리그 10회 우승을 포함해 31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냈다.

스코틀랜드 대표팀에서도 7년간 활약하며 에버딘 감독을 거치고 온 수석코치 알렉스 퍼거슨의 스승이 되었으며 1982 스페인 월드컵과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본선 진출을 이뤄냈으나 멕시코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작고했다. 알렉스 퍼거슨을 비롯한 훗날에 활약한 수많은 스코틀랜드인 감독들에게 영감을 준 인물이기도 하다.

15위 주제 무리뉴


출생일: 1963년 1월 26일
국적: 포르투갈
주 소속팀: 첼시 FC

'스페셜 원'

2000년대를 빛낸 명장이자 스포츠 스타로 견고한 수비력과 치명적인 역습을 겸비한 선 수비 후 역습 축구로 이름을 날렸으며 상대가 약팀일 때는 강력한 공격력으로 압도하는 면모도 보여줬다.

포르투에서 미니 트레블과 2003-04 시즌 챔피언스리그와 리그 더블을 이끌어 주가를 올렸으며 첼시로 이적한 뒤에는 퍼거슨, 뱅거의 양자구도를 뒤집고 삼자구도로 만들며 프리미어리그 2연패를 이뤄냈으며 인테르에서는 세리에 A 2연패와 2009-10 시즌 트레블을 이뤄냈으며 특히 4강전에서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역대급 수비 축구를 보여주며 펩의 바르셀로나를 탈락시켰으며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 후에도 악연을 이어나가며 2010-11 시즌 코파 델 레이 우승과 2011-12 시즌 라 리가 우승을 이뤄냈고 첼시로 복귀한 뒤에도 2014-15 시즌 프리미어리그와 리그컵 더블 우승을 이뤄냈으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후 하락세를 겪다가 2021-22 시즌 AS 로마에서 UEFA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 초대 우승 감독에 올랐다.

거친 언행과 수비적인 축구로 비판받지만 통산 26개의 트로피를 들었으며 2010 피파 올해의 클럽 감독상과 IFFHS 선정 최우수 클럽 감독 4회 수상과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감독 3회 수상과 2009-10 시즌 유러피언 올해의 감독을 타내는 등 전성기 시절에는 수많은 개인상마저 타낸 불후의 명장이었다.

14위 카를로 안첼로티


출생일: 1959년 6월 10일
국적: 이탈리아
주 소속팀: AC 밀란

'미스터 빅이어'

선수 시절에도 이탈리아 대표팀 주전 멤버로 활약했던 명선수 출신으로 스승 사키와는 다르게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선수단을 품었으며 미드필더에 관한 용병술이 특히 대단해 피를로를 포백 앞 레지스타로 포텐을 터트렸으며 이에 부족한 수비력을 가투소의 메짤라 기용으로 채워냈으며 앙헬 디 마리아, 토니 크로스, 루카 모드리치, 티아고 알칸타라 등은 모두 그를 거치며 한 단계 성장해 시대를 대표하는 미드필더로 이름을 날렸다.

이탈리아 대표팀 수석 코치로 시작해 레지나와 파르마에서 좋은 성과를 보내 유벤투스 감독으로 기용되었으나 무관을 명분으로 경질당한 뒤 AC 밀란의 감독을 맡아 2002-03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유벤투스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으며 2003-04 시즌 세리에 A 우승과 2006-07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첼시에서는 2009-10 시즌 프리미어리그와 FA컵 우승을, PSG에서는 2012-13 시즌 리그앙 우승을,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2016-17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냈으며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2013-14 시즌 코파 델 레이와 챔피언스리그 더블을 이뤄냈으며 2021-22 시즌에 다시 돌아와 라 리가와 챔피언스리그 더블을 이뤄냈다.

비록 백업 멤버를 잘 활용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으며 바이에른 뮌헨과 나폴리에서는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유럽 5대 리그에서 모두 우승을 경험했으며 챔피언스리그 4회 우승이라는 경이로운 성적을 내며 총 23개의 트로피를 들어냈고 크고 작은 감독상을 13개나 들어냈다.

13위 지오반니 트라파토니


출생일: 1939년 3월 17일
국적: 이탈리아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조나 미스타의 학자'

이탈리아 세리에 A 역사상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으로 카테나치오가 토털 풋볼에 의해 사장될 위기에 처하자 조나 미스타라는 토털 풋볼과 카테나치오를 결합한 새로운 전술로 이탈리아의 방식으로 토털 풋볼에 맞섰던 선구자다.

유벤투스가 이탈리아와 유럽을 대표하는 최강의 축구팀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탈리아의 국민구단이 유벤투스로 자리 잡는데 큰 공헌을 했으며 구단의 세리에 A 6회 우승과 1976-77 시즌 UEFA컵, 1983-84 시즌 컵 위너스컵 우승, 그리고 1984-85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내며 최초로 한 구단에서 3대 유럽 대항전을 모두 제패했으며 유벤투스에서 총 14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냈으며 인테르에서도 세리에 A 우승과 UEFA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바이에른 뮌헨에서도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냈다.

유벤투스는 유럽 최초로 UEFA 주관 3대 유럽 대항전을 모두 제패한 업적을 인정받아 UEFA 플라크를 받았는데 이것은 모두 트라파토니가 이뤄냈으며 유러피언 올해의 감독에 2회 선정되었다.

12위 오트마어 히츠펠트


출생일: 1949년 1월 12일
국적: 독일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장군'

독일 분데스리가 역사상 최고의 감독으로 평가받으며 화려함은 다소 부족하지만 굉장히 견고한 독일식 카테나치오 전술에 매우 능통하며 3-5-2 시스템을 신봉했으며 이 전술로 다소 지루하다는 비판을 받았어도 항상 우승 트로피를 들어냈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바이에른 뮌헨에서 모두 구단의 황금기를 이뤄냈는데 전자의 클럽에서는 분데스리가 2연패와 1996-97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후자의 클럽에서는 분데스리가 5회 우승과 DFB포칼 3회 우승, 그리고 1998-99 시즌 챔피언스리그 준우승과 1999-2000 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에 이어 2000-01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어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시대에 뒤쳐졌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IFFHS 선정 세계 치고의 클럽 감독과 유러피언 올해의 감독에 2회 선정되었으며 2001년에는 UEFA 올해의 감독상을 받아내며 당대 최고의 감독으로 명성을 날렸다.

11위 마르첼로 리피


출생일: 1948년 4월 12일
국적: 이탈리아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늙은 여우'

1990년대 하반기와 2000년대 초중반 세계 최고의 감독 중 하나로 이름을 날렸으며 치밀하고 냉철한 면모와 경기 도중 메인 전술을 갈아치웠을 정도로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결단력을 동시에 갖췄으며 높은 라인에서의 압박과 라인을 내려 수비하는 부분에서 모두 능했으며 빠른 공격 전개를 위주로 하다가도 상황에 따라 점유하는 플레이를 적절히 섞는데 능했으며 이러한 이중적인 모습으로 여우라는 별명으로 변했다.

유벤투스에서 세리에 A 5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94-95 시즌에는 코파 이탈리아를 동시에 우승하며 도메스틱 더블을 이뤄냈으며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4회 진출해 처음 진출한 1995-96 시즌에 반 할의 아약스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우승을 차지하며 양 밀란으로 넘어갔던 세리에 A의 패권을 다시 유벤투스로 찾아오는데 공헌했으며 이런 활약으로 1997-98 시즌 UEFA 클럽 올해의 감독에 올랐으며 세리에 A 올해의 감독에 3회 선정되었으며 IFFHS 세계 최고의 클럽 감독과 유러피언 올해의 감독에 2회 선정되었다.

트라파토니 체제에서 부진에 빠진 아주리 군단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며 평소에 선호하던 4-3-3 시스템을 버리고 변화무쌍한 4-2-3-1 시스템과 4-3-1-2 시스템을 혼용해 우승을 차지했으며 리피호의 아주리 군단은 필드골은 단 하나도 내주지 않았을 정도로 탄탄한 모습을 보여주며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으며 전성기가 지난 이후에는 중국에서 활약하며 광저우의 중국 슈퍼 리그 3연패와 2013 아시안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내며 중국 축구 발전에 공헌했다.



10위 에른스트 하펠


출생일: 1925년 11월 29일
국적: 오스트리아
주 소속팀: 함부르크 SV

'원조 우승 청부사'

무리뉴, 카펠로 이전 원조 우승 청부사이자 세계 최초로 4개국에서 우승컵을 들어낸 사나이로 강력한 카리스마와 뛰어난 용병술, 그리고 파격적이면서도 구단의 상황에 적합한 전술 운용 능력을 토대로 언더독 팀 위주로 맡았음에도 커리어 통산 17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페예노르트에서 1969-70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과 1970-71 시즌 에레데비시 우승을 이뤄냈으며 브뤼헤에서 벨기에 주필러리가 3연패는 물론 1975-76 시즌 UEFA컵과 1977-78 시즌 유러피언컵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네덜란드 대표팀에서 개최국 아르헨티나 측의 갖은 편파판정 속에서도 월드컵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1980-81 시즌에는 스탕다르 리에주에서 컵대회를 우승했다.

이후 전성기의 토대를 마련한 브란코 제베치 감독이 알콜중독으로 경질된 함부르크에 입성해 분데스리가 2연패는 물론 1981-82 시즌에는 UEFA컵 결승에 올랐고 1982-83 시즌에는 분데스리가에 이어 유러피언 컵에서도 우승해내며 세계 최초로 각자 다른 구단으로 빅이어를 든 첫 감독이 되었으며 이후 오스트리아의 언더독 인스부르크를 맡아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2연패를 이뤄내며 가는 곳마다 우승 트로피를 들었으며 1978년과 1983년에 유러피언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다.

9위 요한 크루이프


출생일: 1947년 4월 25일
국적: 네덜란드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를 재탄생시킨 남자'

선수 시절에 이미 토털 풋볼을 구사한 미헬스의 페르소나로 활약해 토털 풋볼에 능했으며 점유와 압박으로 이뤄진 토털 풋볼을 훌륭하게 계승했으며 우수한 볼 포제션에서 나오는 압도적인 점유를 보여주며 현대 바르셀로나가 추구하는 축구를 처음으로 제시했으며 이를 완벽하게 하기 위해 유소년 정책을 재정비해 라 마시아를 출범해서 선수들이 어린 시절부터 구단 철학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게 판을 깔았다.

크루이프는 이미 아약스 시절에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뒤에는 라리가 4연패와 1988-89 시즌 컵 위너스 컵 우승, 그리고 1991-92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끌며 총 11개의 메이저 트로피를 들어올렸으며 그의 정신을 바탕으로 바르셀로나가 유럽 최고의 클럽이 되었던 근간이 되었다.

비록 1993-94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파비오 카펠로에게 4-0으로 패한 이후 하락세가 뚜렸하게 와서 커리어를 길게 가져가진 못했어도 상술한 그의 업적이 그를 축구 역사상 최고의 감독 중 하나로 부를 수 있는 이유다.

8위 벨라 구트만


출생일: 1899년 1월 27일
국적: 헝가리
주 소속팀: SL 벤피카

'포백의 시조'

헝가리와 브라질, 그리고 포르투갈을 돌며 다양한 축구를 경험했으며 이를 토대로 유기적인 스위칭 플레이를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또한 오늘날의 대중적인 수비 전술인 포백 지역방어 시스템을 처음 활용해 브라질의 세계 제패에 간접적으로 기여했던 인물이다.

우이페슈타에서 넴제티 버이녹샤그 2회 우승과 1939년 미트로파컵 우승을 이끈 구트만은 유대인이라는 이후로 제2차 세계대전에 경력이 끊긴 것은 물론 나치에 의해 죽을뻔했지만 탈출했으며 종전 이후 다시 커리어를 이어나갔으며 헝가리를 떠나 브라질의 상 파울루에서 성공을 거둔 지역방어와 스위칭 플레이를 앞세운 4-2-4 전술을 벤피카로 도입해 유럽 최초로 포백 팀의 성공 신화를 이끌며 3년간 리그 우승과 유러피언 컵 우승을 각각 두 번씩 이뤄냈다.

그러나 재계약 과정에서 벤피카와 구트만은 틀어졌으며 구트만은 이후 "벤피카는 향후 유럽 대항전에서 100년간 우승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악담을 퍼붓고 떠났는데 실제로 벤피카는 구트만 벨라 체제 이후에 아직까지도 유럽 대항전에서 우승하지 못하고 있다. 구트만은 벤피카를 떠난 이후 페냐롤에서 우루과이 리그 우승과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준우승을 이뤄내기도 했다.

7위 펩 과르디올라


출생일: 1971년 1월 18일
국적: 스페인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점유의 미학'

2000년대 수비 축구의 유행을 부수고 공격 축구의 유행을 선도한 선구자로 요한 크루이프의 크루이프즘을 계승, 발전시키며 높은 라인에서의 짧고 빠른 패스로 점유율을 가져가며 상대의 공격할 틈을 주지 않으며 주도권을 가져가는 축구를 펼치며 세계 축구계를 뒤흔들었다.

펩은 바르셀로나에서 첫 1군 감독으로 데뷔한 2008-09 시즌에 이미 트레블을 이뤘고 여세를 몰아 UEFA 슈퍼컵,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그리고 FIFA 클럽 월드컵을 모두 우승해 6관왕을 이뤄냈으며 이 6관왕을 포함해 라 리가 3연패, UEFA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을 포함해 4년 동안 14개의 트로피를 들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으며 이런 능력을 인정받아 미겔 무뇨스 트로피 2회 연속 수상과 월드 사커지 선정 올해의 감독과 UEFA 올해의 감독 2회 수상 등 각종 감독상을 휩쓸었다.

펩은 바르셀로나를 떠난 이후에는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에서는 실망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줬지만 바이에른 뮌헨에서 분데스리가 3연패와 포칼 2회 우승과 UEFA 슈퍼컵 및 FFIA 클럽 월드컵 우승을 이뤄냈고 맨체스터 시티에서는 2018-19 시즌 도메스틱 트레블을 포함해 프리미어리그와 EFL컵 4회 우승과 구단 역사상 첫 챔피언스리그 결승행을 이끌며 새로운 전설을 쓰며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감독에 3회 선정되었다.

6위 브라이언 클러프


출생일: 1935년 3월 21일
국적: 잉글랜드
주 소속팀: 노팅엄 포레스트

'축구계의 궁극적 인습 파괴자'

잉글랜드 풋볼 리그 최고의 감독으로 한정된 자원을 가진 중소구단을 가지고 최대치를 찍는데 능한 감독으로 풋볼 매니저 고수들이 온라인에서 하는 플레이를 실제로 보여줬던 감독으로 최적의 선수단 운영과 전술지휘로 유명했으며 경기 도중에도 신의 한 수를 두어 경기를 뒤집는데 능했다.

1967년에 더비 카운티를 맡아 1968-69 시즌에 풋볼 리그 2부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1-72 시즌에는 1부 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이후 브라이튼과 리즈에서 선수단과의 갈등으로 좋지 못한 시간을 보냈다가 노팅엄 포레스트로 이적해 1977-78 시즌 구단의 유일한 1부 리그 우승과 리그컵을 우승해 도메스틱 더블을 이뤄내며 1977-78 시즌 잉글랜드 풋볼 리그 올해의 감독으로 선정되었다.

하지만 진짜 역사는 지금부터 시작인데 1978-79 시즌과 1979-80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2연패를 이뤄냈는데 특히 1979-80 시즌에는 만프레트 칼츠, 케빈 키건을 앞세운 당대 유럽 최강팀 중 하나였던 함부르크를 상대로 선제골을 잘 지켜 1-0으로 이겨 노팅엄에게 두 번째 빅이어를 선물했으며 유럽 올해의 감독상도 2년 연속으로 수상했고 이후에도 리그컵을 세 번 더 우승하며 노팅엄 포레스트의 역사를 다시 썼던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5위 발레리 로바노프스키


출생일: 1939년 1월 6일
국적: 우크라이나
주 소속팀: 디나모 키이우

'축구 과학자'

디나모 키예프와 소련 축구 역대 최고의 감독으로 축구 구단 운영에 물리학, 통계학 등 여러 학문을 접목시켰으며 여러 학문의 전문가들을 코치로 도입해 일명 '과학 축구'라 불리던 현대적인 선수 관리를 도입한 선구자였으며 이 수학적인 통계를 활용해 선수들을 관리했으며 다양한 상황에서 최적의 대응을 할 수 있게 선수들에게 멀티 포지션을 주문하기도 했다.

디나모 키이우와 소련 축국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활약했는데 키이우에서는 소련 탑 리그 8회 우승과 우크라이나 리그 5연패를 이뤄냈으며 두 번의 UEFA 컵 위너스컵 우승과 1975 UEFA 슈퍼컵 우승을 포함해 총 32번의 우승컵을 들었으며 디나모 키이우의 챔피언스리그 최고 성적인 4강 3회는 모두 로바노프스키 체제에서 이뤄냈으며 소련 대표팀 감독을 겸임하던 시절에도 1988 유로에서 준우승을 이뤄냈다.

키이우에서 수많은 개인상을 타낸 로바노프스키는 육성의 달인이기도 했는데 우크라이나 출신의 발롱도르 위너인 올레흐 블로힌, 이고리 벨라노프, 그리고 안드리 셰우첸코는 모두 로바노프스키의 과학 축구의 아래에서 육성된 선수들이다.

4위 아리고 사키


출생일: 1946년 4월 1일
국적: 이탈리아
주 소속팀: AC 밀란

'이탈리안 르네상스의 거장'

1980년대 토털 풋볼을 재해석한 명장 중 한 명으로 기존의 미헬스가 창안한 압박 시스템에 간격이라는 요소를 만들었으며 지역과 상황에 따라 적절한 간격을 유지한 채로 상대를 체계적으로 압박하는 존 프레싱이라는 개념을 만들었으며 사키의 콤팩트 풋볼은 여러 상황에서의 존 프레싱을 기반으로 완성되었다.

사키는 AC 파르마와 밀란에서 이 철학을 이식시켰으며 특히 후자의 구단에서는 1987-88 시즌 스쿠테토를 들어올렸으며 유러피언 컵 2회 우승을 이뤄냈고 후임 감독 카펠로가 밀란 제너레이션의 화룡점정을 찍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으며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1989년과 1990년에 유러피언 올해의 감독으로 선정되었다.

이후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이 시스템을 이식시켜 1994 미국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거뒀으나 로베르토 바조와의 불화와 유로 1996에서의 부진이 겹치며 사임했고 사키의 전성기는 여기서 끝났다.

3위 엘레니오 에레라


출생일: 1910년 4월 10일
국적: 아르헨티나→프랑스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카테나치오의 왕'

감독 시절 초반에는 라 리가에서 공격적인 축구로 성공을 거뒀던 사람이지만 환경의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며 수비 지향적인 시스템인 카테나치오를 기반으로 두되 레프트백의 공격 가담, 즉 플루이디피칸테와 라이트윙, 즉 토르난테의 수비 가담을 활용해 같이 빗장을 잠구는 팀들에 대한 해법을 완벽하게 찾았으며 군대를 연상케 하는 규율로 팀의 조직력마저 탄탄하게 잡아 카테나치오의 왕이라 불렸으며 언론을 이용해 상대를 기만하는 일명 프레테티카를 선보인 최초의 감독이다.

라리가와 세리에를 모두 제패한 에레라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라 리가 2연패와 1949-50 시즌 더블 크라운을 이뤄냈고 바르셀로나에서는 라 리가 2연패와 인터시티 페어스컵 2회 우승, 그리고 코파 델 레이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인테르에서는 초년에는 우승 트로피를 들지 못했지만 자신만의 카테나치오를 완성시키고 나서는 세리에 A 3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2회 우승과 1회 준우승, 그리고 인터콘티넨탈컵에서도 2회 우승을 이뤄내며 그란데 인테르의 시대를 열었고 AS 로마에서는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내 총 17개의 트로피를 들었다.

승리를 위해서는 선수를 혹사시키기도 했으며 상대 감독에게 사기를 치는 행위도 마다하지 않아 논란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우승을 원하는 구단은 가장 먼저 에레라를 떠올렸다.

2위 알렉스 퍼거슨


출생일: 1941년 12월 31일
국적: 스코틀랜드
주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나이티드 제국의 황제'

축구 역사상 가장 많은 트로피를 들어본 감독으로 유능한 코치를 잘 활용하는 매니저형 감독의 정점으로 선수를 보는 안목과 일명 헤어드라이어라 불리는 라커룸에서의 선수단을 장악하는 능력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세인트 미렌에서 스코틀랜드 리그 우승을 하며 이름을 날렸으며 에버딘에서 이미 셀틱과 레인저스의 양강 체제를 깨며 1부 리그 3회 우승과 컵 위너스컵 우승을 포함해 총 11개의 트로피를 든 퍼거슨은 버스비 시절의 영광을 잃고 몰락해가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부임해 팀을 완벽하게 쇄신했으며 일명 퍼기의 아이들이라 불리는 유망주들을 육성해 팀을 재편하며 프리미어리그 13회 우승, FA컵 5회 우승을 이뤄냈다.

유럽에서도 퍼거슨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강력했는데 1990-91 시즌 유러피언 컵 위너스 컵 우승은 물론 1998-99 시즌에는 리그와 FA컵에 이어 챔피언스리그도 제패했는데 결승전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교체 선수들의 완벽한 활약으로 대역전극을 펼쳤으며 2007-08 시즌에는 첼시를 물리치고 재차 우승하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만 총 37회의 우승을 기록했으며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로는 단 한 번도 3등보다 아래로 떨어져 본 적 없었다.

퍼거슨이 세인트 미렌과 에버딘, 그리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총 49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었으며 개인상도 30개를 넘게 수상한 이 시대 최고의 관리형 감독이었다.

1위 리누스 미헬스


출생일: 1928년 2월 9일
국적: 네덜란드
주 소속팀: AFC 아약스

'토탈 풋볼의 설계자'

현대 축구의 기조인 토털 풋볼을 집대성하며 축구 전술사의 패러다임을 바꿔버린 천재로 숏패스를 바탕으로 높은 점유율을 유지했으며 전방부터 후방까지 조직적인 압박과 전원 공격, 전원 수비라 불리는 선수들의 유기적인 움직임을 체계화시켰으며 현시대의 두 기조로 불리는 크루이프즘과 사키이즘도 모두 토털 풋볼의 해석 방식의 차이일 뿐 모체는 같았다.

자신의 토털 풋볼을 바탕으로 아약스에서 에레데비시 4회 우승과 1970-71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을 포함해 8개의 우승컵을 들어냈으며 바르셀로나에서 라 리가 우승과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이뤄냈고 쾰른에서는 DFB포칼 우승을 이뤄내며 13개의 우승 타이틀을 차지했으며 네덜란드 대표팀에서는 1974 서독 월드컵 준우승과 1988 UEFA 유로 우승을 이뤄내며 네덜란드 축구계의 위상을 크게 올렸다.

FIFA에 의해 20세기 최고의 축구 감독이라 칭해졌으며 미헬스보다 트로피를 더 많이 들어낸 퍼거슨이나 로바노프스키, 그리고 전력이 약한 구단으로도 기적적인 우승을 이뤄낸 브라이언 클러프 같은 명장들도 결국 미헬스가 만든 풀에서 헤엄을 쳤으며 이를 초월하지는 못했기에 리누스 미헬스를 역대 최고의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추가로 거론할 수 있는 위대한 명장들

 

후고 마이슬


출생일: 1881년 11월 16일
국적: 오스트리아
주 소속팀: 오스트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분더팀의 아버지'

헤르만 펠스너


출생일: 1889년 4월 1일
국적: 오스트리아
주 소속팀: 볼로냐

'구인광고의 기적'

루이지 페레로


출생일: 1904년 12월 26일
국적: 이탈리아
주 소속팀: 토리노

'그란데 토리노의 책략가'

기예르모 스타빌레


출생일: 1905년 1월 17일
국적: 아르헨티나
주 소속팀: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미스터 코파 아메리카'

카를 라판


출생일: 1905년 9월 26일
국적: 스위스
주 소속팀: 스위스 축구 국가대표팀

'베로우 시스템의 창시자'

호세 마리아 미넬라


출생일: 1909년 8월 6일
국적: 아르헨티나
주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라 마키나의 설계자'

빅토르 마슬로프


출생일: 1910년 4월 27일
국적: 러시아
주 소속팀: 디나모 키이우

'압박의 아버지'

미하일 야쿠신


출생일: 1910년 11월 15일
국적: 러시아
주 소속팀: 디나모 모스크바

'런던에 울려퍼진 디나미키(큰 소리)'

스탠 쿨리스


출생일: 1916년 10월 25일
국적: 잉글랜드
주 소속팀: 울버햄튼 원더러스

'늑대왕국 전성기의 왕'

루이스 카르닐리아


출생일: 1917년 10월 4일
국적: 아르헨티나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저승사자 군단의 2대 마에스트로'

로케 마스폴리


출생일: 1917년 10월 12일
국적: 우루과이
주 소속팀: 페냐롤

'페냐롤 제국의 2세 황제'

빌 니콜슨


출생일: 1919년 1월 26일
국적: 잉글랜드
주 소속팀: 토트넘 핫스퍼

'릴리화이츠의 마스터'

페루초 발카레지


출생일: 1919년 2월 12일
국적: 이탈리아
주 소속팀: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아주리의 첫 카테나치오'

콘스탄틴 베스코프


출생일: 1920년 11월 18일
국적: 러시아
주 소속팀: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그라운드의 자유주의자'

조 페이건


출생일: 1921년 3월 12일
국적: 잉글랜드
주 소속팀: 리버풀 FC

'붉은 제국의 3대 황제'

레이몽 후탈스


생년월일; 1921년 10월 7일
국적: 벨기에
주 소속팀: 올림피크 마르세유

'포카이아의 과학자'

룰라


생년월일: 1922년 3월 1일
국적: 브라질
주 소속팀: 산투스 FC

'펠레의 감독'

닐스 리드홀름


생년월일: 1922년 10월 8일
국적: 스웨덴
주 소속팀: AS 로마

'로마제국의 바이킹 사령관'

후안 카를로스 로렌소


생년월일: 1922년 10월 27일
국적: 아르헨티나
주 소속팀: 보카 주니어스

'토토'

기 티


생년월일: 1922년 12월 6일
국적: 벨기에
주 소속팀: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

'원조 붉은 악마의 지휘자'

돈 레비


생년월일: 1927년 7월 10일
국적: 잉글랜드
주 소속팀: 리즈 유나이티드

'더티 리즈의 두목'

엔초 베아르초트


생년월일: 1927년 9월 26일
국적: 이탈리아
주 소속팀: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이탈리아의 국민감독'

부야딘 보슈코프


생년월일: 1931년 5월 16일
국적: 세르비아
주 소속팀: UC 삼프도리아

'라 삼프, 엘 도리아의 발칸인 함장'

바비 롭슨


생년월일: 1933년 2월 18일
국적: 잉글랜드
주 소속팀: 입스위치 타운

'성공한 잉글랜드 감독'

토마슬라프 이비치


생년월일: 1933년 6월 30일
국적: 크로아티아
주 소속팀: 하이두크 스플리트

'성공하는 나그네'

리하트 묄러 니엘센


생년월일: 1937년 8월 19일
국적: 덴마크
주 소속팀: 덴마크 축구 국가대표팀

'작전명 데니쉬 다이너마이트'

세사르 루이스 메노티


생년월일: 1938년 11월 5일
국적: 아르헨티나
주 소속팀: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이상주의자 메노티'

카를로스 빌라르도


생년월일: 1939년 3월 16일
국적: 아르헨티나
주 소속팀: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현실주의자 빌라르도'

알베르토 오르마에체아


생년월일: 1939년 4월 7일
국적: 스페인 
주 소속팀: 레알 소시에다드

'추리 우르딘의 참모총장'

루이스 쿠비야


생년월일: 1940년 3월 28일
국적: 우루과이
주 소속팀: 클루브 올림피아

'파라과이 축구의 지배자'

호세 오마르 파스토리사


생년월일: 1942년 5월 23일
국적: 아르헨티나
주 소속팀: 인디펜디엔테

'엘 로하의 레이'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파헤이라


생년월일: 1943년 2월 27일
국적: 브라질
주 소속팀: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견고한 셀레상'

디미타르 페네프


생년월일: 1945년 7월 12일
국적: 불가리아
주 소속팀: 불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불가리아의 돌풍을 불어온 날개짓'

프란츠 베켄바우어


생년월일: 1945년 9월 11일
국적: 독일
주 소속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통일 기념으로 월드컵을 우승한 카이저'

아르투르 조르즈


생년월일: 1946년 2월 13일
국적: 포르투갈
주 소속팀: 파리 생제르맹

'파리지앵 역대 최고의 감독'

하워드 켄달


생년월일: 1946년 5월 22일
국적: 잉글랜드
주 소속팀: 에버튼

'구디슨 파크의 왕'

스벤예란 에릭손


생년월일: 1948년 2월 5일
국적: 스웨덴
주 소속팀: SS 라치오

'삼국에서 도메스틱 더블 크라운'

하비에르 이루레타


생년월일: 1948년 4월 1일
국적: 스페인
주 소속팀: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리아소르의 기적을 부르는 사나이'

루이스 펠레페 스콜라리


생년월일: 1948년 11월 9일
국적: 브라질
주 소속팀: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3R의 지휘자'

파울루 세자르 카르페지아니


생년월일: 1949년 2월 7일
국적: 브라질
주 소속팀: 플라멩구

'진짜 붉은 제국의 군주'

카를로스 비안키


생년월일: 1949년 4월 26일
국적: 아르헨티나
주 소속팀: 보카 주니오스

'미스터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하비에르 클레멘테


생년월일: 1950년 3월 12일
국적: 스페인
주 소속팀: 아틀레틱 클루브

'빌바오의 지략가'

마누엘 페예그리니


생년월일: 1953년 9월 16일
국적: 칠레
주 소속팀: 비야레알 CF 

'엔지니어'

라몬 디아스


생년월일: 1959년 8월 29일
국적: 아르헨티나
주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최신형 라 마키나를 운용하는 대머리'

로베르토 만치니


생년월일: 1964년 11월 27일
국적: 이탈리아
주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

'푸른 덕장'

한지 플리크


생년월일: 1965년 2월 24일
국적: 독일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미라클 트레블 바이에른'

크리스티안 슈트라이히


생년월일: 1965년 6월 11일
국적: 독일
주 소속팀: SC 프라이부르크

'프라이부르크의 퍼거슨'

디디에 데샹


생년월일: 1968년 10월 15일
국적: 프랑스
주 소속팀: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레 블뢰의 나폴레옹'

안토니오 콘테


생년월일: 1969년 7월 31일
국적: 이탈리아
주 소속팀: 유벤투스

'스리백의 부활'

토마스 투헬


생년월일: 1973년 8월 29일
국적: 독일
주 소속팀: 첼시

'UEFA A 라이선스 이론 시험 만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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