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르난테 선정-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Top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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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난테 선정-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Top 50

토르난테 2022. 6. 8.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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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의 평가 기준이 강하게 반영되었으며 작성자는 당대의 위상, 최고점에서 이룬 개인 및 팀 커리어, 그리고 공격형 미드필더 포지션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큰 선수를 우선순위로 선정했습니다. 이 점에서 비슷하면 얼마나 더 오래 고점을 유지했느냐를 고려했습니다.

* 명분, 즉 개인 커리어가 비슷할 때 보는 중앙 미드필더의 어빌리티 부분에서는 얼마나 더 다재다능하냐로 나눴습니다. 중앙 미드필더는 가장 다양한 상황을 맞이하는 포지션입니다.

* 과거의 선수일수록 수상 기회가 적어 수상 횟수에서 불리하다는 점은 꼭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 왠지 있을 거 같았는데 없는 선수는 높은 확률로 저번 편인 중앙 미드필더나 훗날에 등장할 처진 공격수 편에 등장할 것입니다.

* 사진 출처는 에펨코리아와 플레이어스에서 활동하시는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 소유님이 만드시지 않았던 선수들에 한정해서는 제가 직접 건조 폼을 제작합니다.

* 해당 글 작성 기준일은 2022년 6월 8일입니다.

* 해당 순위는 주기적으로 변동될 수 있습니다.

 


50위 지안카를로 안토뇨니


출생일: 1954년 4월 1일
국적: 이탈리아
활동기간: 1970~1989
주 소속팀: 피오렌티나

1970년대 하반기와 1980년대 상반기에 이름을 날리던 공격형 미드필더로 왕성한 활동량과 드넓은 시야, 그리고 정확한 패스를 모두 겸비했으며 트레콰르티스타 자리에 위치하다가도 포백 앞으로 내려가서 빌드업을 주도하기도 하는 바비 찰튼 스타일의 현대적인 미드필더였다.

피오렌티나에서 무려 15년간 활약하며 구단 역대 최다 출전과 구단 소속으로 누적 득점 4위를 기록했으며 1974-75 시즌에 코파 이탈리아를 우승했으며 1981-82 시즌에는 승점 1점 차이로 아쉽게 준우승을 거두기도 했다.

구단에서의 우수한 활약상은 아주리에서도 이어졌는데 상술했던 헌신적인 플레이 스타일이 베아르초트 감독의 눈에 들어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과 1980 UEFA 유로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팀을 4위라는 준수한 성적을 이루는데 기여했으며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아주리의 세 번째 월드컵 우승에 기여했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1977 발롱도르 26위
1980 스포르트지 선정 유럽 베스트 일레븐
1980 구에린 스포르티보지 선정 월드 베스트 일레븐
1980 구에린 스포르티보지 세계 최우수 선수 투표 5위
1980 발롱도르 27위
1981 발롱도르 21위
1982 문도 데포르티보지 선정 스페인 월드컵 베스트 일레븐
1982 발롱도르 11위
2011 파니니사 선정 40만명의 축구팬들이 뽑은 18인의 세리에 A 레전드
2012 피오렌티나 명예의 전당 헌액
2016 피오렌티나 올 타임 일레븐
2018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


49위 올렉산드르 자바로프


출생일: 1961년 4월 26일
국적: 우크라이나
활동기간: 1977~1998
주 소속팀: 디나모 키이우

1980년대 동구권 정상급 미드필더로 우수한 동료 활용 능력과 신속 정확한 판단력과 같은 지능적인 플레이는 물론, 스피드가 빠르고 창조적이며 우수한 드리블 실력과 강인한 체력을 활용해 상대 수비형 미드필더를 압박해 찬스를 만드는 방식에도 능했다.

디나모 키예프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소련 탑 리그 2연패와 소비에트 컵 3회 우승, 그리고 1985-86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컵 위너스컵에서는 팀 동료 벨라노프, 블로힌과 함께 공동 득점왕에 올랐다. 이후 유벤투스에서도 1989=90 시즌, 코파 이탈리아와 UEFA컵 더블 크라운에 공헌했다.

자바로프의 훌륭한 활약은 소련 대표팀에서도 이어졌으며 붉은 군단의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하며 두 번의 월드컵에 나갔으며 1988 유로에서는 소련의 마지막 결승을 이끌었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소련 리그 올스타 팀 4회 연속 선정: (1985~1988)
1985-86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득점왕
1986 우크라이나 올해의 선수
1986 소련 최고의 축구선수
1986 발롱도르 6위
1987 발롱도르 17위
1988 구에린 스포르티보지 선정 UEFA 유로 1988 베스트 일레븐
1988 구에린 스포르티보지 선정 UEFA 유로 1988 최고의 선수 8위
1988 발롱도르 8위


48위 발렌틴 이바노프


출생일: 1934년 11월 19일
국적: 러시아
활동기간: 1952~1966
주 소속팀: 토르페도 모스크바

1950년대 하반기와 1960년대 상반기 소련을 대표하던 인사이드 포워드로 뛰어난 창의성으로 예측 불가능한 킬패스와 드리블로 상대 수비라인을 붕괴시키고 골 찬스를 만드는데 능하며 윙어와의 스위칭 플레이에도 일가견이 있음은 물론 골 결정력도 우수했다.

선수 생활을 오직 토르페도 모스크바 한 구단에서만 보냈으며 토르페도 모스크바의 소련 탑 리그 우승 2회를 이뤄냈으며 1960년에는 리그 우승은 물론 소비에트 컵도 우승하며 도메스틱 더블을 이뤄냈으며 소련 탑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무려 9회 선정되었을 정도로 리그 정상급 선수로 이름을 날렸다.

소련 대표팀에서 활약은 더 빛났는데 1956 올림픽 금메달을 시작으로 1960년 초대 유럽 선수권 대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두 번의 월드컵에서 8강 진출을 이뤄냈고 1964 유로에서도 준우승을 기록했다. 특히 1960 유로와 1962 칠레 월드컵에서 모두 득점왕에 올랐을 정도로 맹활약했으며 1964 유로에서도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소련 탑 리그 베스트 일레븐 9회 선정: (1955, 1957~1964)
1960 UEFA 유로 득점왕
1960 UEFA 유로 팀 오브 더 토너먼트
1962 칠레 월드컵 득점왕
1964 UEFA 유로 팀 오브 더 토너먼트


47위 리암 브래디


출생일: 1956년 2월 13일
국적: 아일랜드
활동기간: 1973~1990
주 소속팀: 아스널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 이름을 날렸던 공격형 미드필더로 넓은 시야와 창의적인 패싱력은 물론 상대 수비라인을 붕괴시키는 전진 드리블과 우수한 데드볼 능력도 겸비했다.

아스날과 유벤투스에서 전성기를 보냈으며 아스날이 부진한 성적을 거두는 와중에도 1978-79 시즌 FA컵을 우승했으며 그 활약으로 1978-79 시즌 PFA 선정 선수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올해의 팀에는 1977-78 시즌부터 세 번 연속 들어갔으며 유벤투스에서는 세리에 A 2연패를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에 기여했다.

아일랜드가 전성기를 맞이하기 이전에 활약하던 선수라 국제대회에선 활약하지 못했음에도 아일랜드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PFA 올해의 팀 3회 선정: (1977-78, 1978-79, 1979-80)
아스날 올해의 선수 3회 선정: (1977, 1978, 1979)
1978-79 PFA 선수들 선정 올해의 선수
1979 발롱도르 7위
1980 옹즈 드 옹즈
1980 발롱도르 8위
1981 발롱도르 9위
1998 풋볼 리그 100인의 레전드
1999 IFFHS 선정 20세기 최고의 아일랜드 선수
2001 아일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
2006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
2011 풋볼 이탈리아 선정 1980년 이래 세리에 A 외국인 선수 랭킹
2015 아일랜드 역대 축구선수 2위


46위 리카르도 보치니


출생일: 1954년 1월 25일
국적: 아르헨티나
활동기간: 1972~1991
주 소속팀: 인데펜디엔테

마라도나가 직접 밝힌 우상으로 1970~80년대 남미에서 이름을 날렸던 공격형 미드필더로 뒤에도 눈이 달렸다고 평가받았을 정도로 드넓은 시야와 뛰어난 패스 센스에서 나오는 킬패스로 인해 팬들은 그의 날카로운 킬패스를 '보치니풍의 패스'라고 불렀으며 패스뿐만이 아니라 드리블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현역 은퇴 이후에 이벤트로 한 경기 뛴 것을 제외하면 선수 생활 전부를 인데펜디엔테에서만 보냈으며 19년간 활약하며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4회 우승과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3연패를 포함한 4회 우승, 그리고 인터콘티넨탈컵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1973년 대회에서는 아약스 대신 참가한 유벤투스의 골키퍼 디노 조프를 상대로 결승골을 득점하기도 했다.

대표팀에서는 1979 코파 아메리카와 1986 멕시코 월드컵에 출전했으며 후자의 대회에서는 자신을 우상으로 삼았던 마라도나의 백업 선수로 활약하며 우승을 경험했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1974 남미 올해의 선수 6위
1975 남미 올해의 선수 8위
1977 남미 올해의 선수 6위
1978 남미 올해의 선수 7위
1983 아르헨티나 올해의 선수
1983 남미 올해의 선수 3위
1989 남미 올해의 팀
2020 매거진 CONMEBOL 전 편집장 호르헤 바라사 선정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올타임 베스트 일레븐
인데펜디엔테 구단 역대 최다 출전자 (714경기)


45위 조니 헤인스


출생일: 1934년 10월 17일
국적: 잉글랜드
활동기간: 1952~1973
주 소속팀: 풀럼

세계 최초로 주급 100파운드 이상 받은 축구선수로 뛰어난 양발 사용 능력과 슈팅 능력은 물론 예리하면서도 창의적인 패스 센스로 수많은 득점 찬스를 만들어냈으며 그 패스에 대해서는 펠레조차도 일생 최고의 패스마스터라 평가했다.

풀럼이 2부 리그에 있던 시절부터 활약했으며 특히 1958년에는 소속팀 풀럼이 2부 리그에 있었음에도 발롱도르 투표에서 7위를 기록하는 괴력을 보여줬으며 풀럼이 1부 리그로 올라간 이후에도 아홉 시즌 간 에이스로 활약했으며 은퇴 이후에는 홈구장 앞에 동상이 세워지기도 했다.

삼사자 군단에서는 찰튼이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하기 이전인 1954 스위스 월드컵부터 1962 칠레 월드컵까지 활약했으나 대표팀에서는 특출난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1958 발롱도르 7위
1961 발롱도르 3위
1998 풋볼 리그 100인의 레전드
2002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
2009 골닷컴지 선정 잉글랜드 역대 축구선수 32위


44위 안드레아스 묄러


출생일: 1967년 9월 2일
국적: 독일
활동기간: 1985~2004
주 소속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헤슬러와 함께 1990년대 독일 축구를 대표하는 테너로 넓은 시야에서 나오는 창의적인 패스 능력과 정교한 테크닉에서 나오는 드리블로 팀의 공격을 이끌었으며 득점력도 우수해 가끔은 해결사 역할까지 도맡기도 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축구선수의 시작과 끝을 보냈으며 도르트문트와 유벤투스에서는 전성기를 누렸는데 전자의 구단에서는 분데스리가 2연패는 물론 친정팀 유벤투스를 결승에서 만나며 1996-97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인터콘티넨탈컵에서는 크루제이루를 제압하며 우승했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무려 85경기에 출전해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 1992 유로 준우승과 1996 유로 우승을 이뤄냈으나 경고 누적과 부상 등으로 결승전과는 인연이 없었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베스트 일레븐 6회 선정
분데스리가 도움왕 2회: (1989-90, 1995-96)
1989 발롱도르 17위
1993 발롱도르 11위
1997 인터콘티넨탈컵 MVP
1997 발롱도르 6위
2011 1980년 이래 세리에 A 외인 선수 랭킹 46위
2020 독일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


43위 폴 개스코인


출생일: 1967년 5월 27일
국적: 잉글랜드
활동기간: 1984~2004
주 소속팀: 토트넘 핫스퍼

1990년대를 풍미한 악마의 재능으로 알코올 중독과 무절제한 사생활로 자신의 재능을 다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빠른 스피드와 정교함을 겸비한 호쾌한 전진 드리블과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킬패스와 슈팅 스킬을 겸비했으며 유려한 볼 컨트롤도 겸비했다.

뉴캐슬에서 데뷔해 토트넘과 라치오에서 전성기를 보냈으며 전자의 구단에서는 FA컵 우승을 이뤄내기도 했다. 이후 부진한 기량과 무절제한 사생활로 라치오를 떠났으나 레인저스에서 재기에 성공하며 스코티쉬 프리미어 디비전 2연패는 물론 1995-96 시즌에는 스코티쉬 컵을, 1996-97 시즌에는 스코티쉬 리그컵을 우승하며 2년 연속 도메스틱 더블을 이뤄냈다.

삼사자 군단에서도 1990 이탈리아 월드컵과 1996 유로에 참가했으며 두 대회에서 모두 팀의 준결승 진출에 공헌했으며 이를 인정받아 두 대회 모두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PFA 올해의 팀 2회 선정: (1987-88, 1990-91)
1987-88 PFA 올해의 영 플레이어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올스타 팀 선정
1990 발롱도르 4위
1995-96 PFA 선정 스코틀랜드 리그 선수들이 뽑은 올해의 스코틀랜드 리그 최우수 선수
1995-96 SFWA 올해의 선수
1996 UEFA 유로 팀 오브 더 토너먼트
2002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
2006 레인저스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


42위 드라고슬라프 세큘라라치


출생일: 1937년 11월 8일
국적: 세르비아
활동기간: 1955~1975
주 소속팀: 츠르베나 즈베즈다

1950년대 하반기와 1960년대 상반기 유고슬라비아를 대표하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우수한 턴 동작과 유려한 드리블로 상대의 압박을 쉽게 따돌렸으며 우수한 전술안과 창의적인 패스를 앞세운 플레이메이킹에도 능했다.

츠르베나 즈베즈다에서 유고슬라비아 퍼스트 리그 5회 우승과 유고슬라비아 컵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우수한 활약상을 인정받아 구단이 공식적으로 선정한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별로 선정되었다.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도 이름을 날렸으며 1956 멜버른 올림픽 은메달을 시작으로 1960 유로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1962 칠레 월드컵에서도 4강에 올랐으며 두 대회에서 모두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한국과의 인연도 있는데 1996 시즌에는 부산 대우 로얄즈의 감독으로 잠시 부임하기도 했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1960 유러피언 네이션스 컵 팀 오브 더 토너먼트
1960 발롱도르 19위
1961 발롱도르 10위
1962 프랑스 풋볼지 선정 칠레 월드컵 베스트 일레븐
1962 발롱도르 4위
1984 프랑스 풋볼지 선정 역대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8위
츠르베나 즈베즈다 공식 스타 선정


41위 야리 리트마넨


출생일: 1971년 2월 20일 
국적: 핀란드
활동기간: 1987~2011
주 소속팀: AFC 아약스

북유럽의 지단이라 불리던 선수로 넓은 시야와 정확하면서도 창의적인 패싱력으로 팀의 공격을 이끌었으며 골문을 직접 타격하는 데에도 능해 아약스 구단 역대 득점 10위를 기록했을 정도다.

아약스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1994-95 시즌의 챔피언스리그와 리그 무패 더블 우승을 포함한 에레데비시 5회 우승에 주축으로 활약했으며 1993-94 시즌에는 리그 득점왕에 올랐고 1995-96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으나 아약스를 떠난 뒤로는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다.

핀란드 대표팀이 유럽에서 약체라 국제대회에서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히피아와 함께 핀란드의 중핵으로 활약하며 21년 동안 137경기에 출전해 33골을 기록했는데 핀란드 대표팀 A매치 최다 출전자이자 최다 득점 2위에 올라있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핀란드 올해의 선수 9회
ESM 올해의 팀 2회 선정: (1994-95, 1995-96)
1993 네덜란드 에레데비시에 올해의 선수
1993-94 에레데비시에 득점왕
1994 발롱도르 8위
1995 발롱도르 3위
1995-96 UEFA 챔피언스리그 득점왕
2004 EFA 주빌리 어워드- 핀란드 역대 최고의 선수
핀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최다 출전자 (137경기)


40위 지오반니 페라리


출생일: 1907년 12월 6일
국적: 이탈리아
활동기간: 1923~1942
주 소속팀: 유벤투스

1930년대 이탈리아 축구를 빛낸 인사이드 포워드로 왕성한 활동량을 앞세워 중앙과 측면을 오가 메짤라라는 단어의 시조조가 되며 득점 찬스를 만드는 창조적인 패싱력과 직접 중거리 슈팅으로 득점하는 능력까지 겸비했다.

유벤투스와 인테르, 볼로냐에서 활약했으며 유벤투스 시절 세리에 A 5연패를 포함해 무려 여덟 번의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으며 유벤투스에서는 오리운디 출신인 레나토 체사리니와 조합을 이뤘으며 인테르에서는 대표팀에서도 영혼의 듀오로 이름을 날린 주세페 메아차와 인사이드 포워드 조합을 이뤘다.

아주리에서도 대단한 업적을 이뤄냈는데 인사이드 포워드 자리에서 영혼의 파트너로 불렸던 주세페 메아차와 함께 두 번의 중유럽컵에 나와 우승 1회, 준우승 1회를 이뤄냈으며 파트너 메아차와 함께 1934 이탈리아 월드컵과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 모두 우승하며 주전으로 월드컵 2연패를 이룬 유이한 이탈리아 선수라는 대기록을 남겼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2011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


39위 자이르 다 호사


출생일: 1921년 3월 21일
국적: 브라질
활동기간: 1938~1963
주 소속팀: 파우메이라스

무려 20년 가까이 브라질에서 맹위를 떨쳤던 인사이드 포워드이자 공격형 미드필더로 전광석화와 같은 스피드와 유려한 볼 컨트롤 능력을 겸비했으며 프로 통산 450골을 넘게 득점했을 정도로 득점력도 대단한 완성형 인사이드 포워드였다.

마두레이라 시절부터 브라질 정상급 인사이드 포워드로 명성을 날렸으며 바스쿠 다 가마, 플라멩구, 파우메리아스, 산투스에서 모두 정상급 선수로 이름을 날렸으며 3개의 주립 리그에서 7번 우승했으며 1951년에는 파우메리아스 소속으로 유럽과 남미의 강팀이 참여한 토너먼트인 코파 리우에서 데니쉬 트리오를 앞세운 유벤투스를 꺾고 우승했으며 노장으로 접어들었을 때에는 산투스에서 자신보다 19살 어린 초신성 펠레와 같이 인사이드 포워드로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1949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결승전 멀티골을 포함해 8경기에서 9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에 오르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우승을 이뤄냈으며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지지뉴와 바스쿠 다 가마의 삼각 편대와 조합을 맞추며 압도적인 공격력을 보여줬으나 결승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우루과이에게 일격을 당하며 빛이 바랬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1949 코파 아메리카 득점왕
1950 브라질 월드컵 베스트 일레븐

 

38위 죄르지 오르트


출생일: 1901년 4월 30일
국적: 헝가리
활동기간: 1915~1933
주 소속팀: MTK 헝가리아

1910년대 하반기와 1920년대 상반기 MTK 헝가리아 왕조의 핵심 선수 중 한 명으로 인사이드 포워드와 센터 하프를 겸비할 수 있었으며 우아한 볼 터치와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한 창의적인 패싱력을 바탕으로 플레이메이킹에 능했으며 득점력도 우수했다.

마자르 군단에서 10년간 활약했으며 소속팀 MTK 헝가리아에서는 넴제티 버이녹샤그 8연패를 이뤄냈으며 이후에는 프랑스 리그의 마르세유에서 활약하며 쿠프 드 프랑스 우승을 경험하기도 했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넴제티 버이녹샤그 득점왕 3회: (1919-20, 1920-21, 1921-22)
1918년 헝가리 올해의 선수


37위 얀 쾰레만스


출생일: 1957년 2월 28일
국적: 벨기에
활동기간: 1974~1992
주 소속팀: 클럽 브뤼헤

1980년대 벨기에 축구의 최전성기를 이끈 공격형 미드필더이자 벨기에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191cm에 거대한 체격을 앞세운 몸싸움으로 압박을 뚫어냈으며 패싱력이 창의적이진 못했지만 가공할만한 드리블로 수비라인을 돌파해 이를 상쇄시켰으며 우수한 1선 침투 능력과 헤딩 능력을 겸비해 스트라이커로도 뛸 수 있었다.

벨기에 리그가 유럽대항전에서 맹위를 떨치던 시절에 클럽 브뤼헤에서 활약하며 주필러 리가 3회 우승과 벨기에 컵 2회 우승, 그리고 벨기에 슈퍼 컵 5회 우승을 이뤄내며 벨기에 리그 MVP만 세 번 선정되었다.

대표팀에서도 우수한 리더쉽과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는데 1980 유로에서는 팀을 결승에 올려놓으며 MVP 투표에서 2위를 차지했으며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주장 완장을 차고 팀을 준결승에 진출시키며 대회 올스타 팀에 들어 팬들로부터 용감한 주장이라 불렸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벨기에 골든 슈 3회 선정: (1980, 1985, 1986)
벨기에 리그 올해의 선수 3회  연속 선정: (1983-84~1985-86)
옹즈 드 옹즈 2회 선정: (1980, 1981)
1980 UEFA 유로 팀 오브 더 토너먼트
1980 기자단 선정 UEFA 유로 최우수 선수 2위
1980 스포르트 선정 유럽 베스트 일레븐
1980 발롱도르 5위
1981 옹즈도르 3위
1981 발롱도르 21위
1986 멕시코 월드컵 올스타 팀
1986 발롱도르 13위
1990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
1995 벨기에 왕립축구협회 창립 100주년 기념 벨기에 세기의 선수 2위
2004 FIFA 100
2020 벨기에 왕립축구협회 창립 125주년 기념 벨기에 아이콘 팀 선정 (벨기에 역대 베스트 일레븐 선정)

 

36위 데쿠


출생일: 1977년 8월 27일
국적: 포르투갈
활동기간: 1996~2013
주 소속팀: FC 포르투

2000년대 중반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막힌 볼 컨트롤과 퍼스트 터치, 그리고 순식간에 골 찬스를 만들어내는 킬 패스로 이름을 날렸다.

포르투와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누렸으며 전자의 클럽에서는 리그 우승 3회와 2002-03 시즌에는 UEFA컵 우승을 이뤄내며 미니 트레블을 이뤄냈고 2003-04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내며 더블 크라운을 이뤄냈으며 바르셀로나에서는 호나우지뉴, 카를레스 푸욜 등과 함께 라 리가 2연패와 2005-06 시즌 라 리가와 챔피언스리그 더블 크라운을 이뤄냈다.

브라질 출신이었으나 브라질 대표팀에서 그를 소집하지 않자 포르투갈로 귀화했으며 팀의 핵심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하며 포르투갈 대표팀이 2004 UEFA 유로 결승 진출과 2006 독일 월드컵 4강에 오르는데 크게 공헌했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UEFA 클럽 올해의 미드필더 2회: (2003-04, 2005-06)
2003 발롱도르 13위
2003-04 포르투갈 리그 올해의 선수
2003-04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맨 오브 더 매치
2003-04 UEFA 클럽 올해의 선수
2004-05 ESM 올해의 팀
2004 발롱도르 2위
2006 발롱도르 11위


35위 토마스 헤슬러


출생일: 1966년 5월 30일
국적: 독일
활동기간: 1984~2004
주 소속팀: FC 쾰른

안디 묄러와 함께 1990년대 독일 축구를 대표하는 테너로 166cm의 왜소한 체구를 가지고 있었지만 중앙과 측면, 최전방과 후방을 오가는 왕성한 활동량과 물 찬 제비와 같은 민첩한 움직임과 우아한 볼 컨트롤 능력은 물론 뛰어난 스루패스와 크로스를 활용해 골 찬스를 만들어내며 자신의 신체적 약점을 완벽하게 극복했다.

쾰른, 유벤투스, 로마, 카를스루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등 독일과 이탈리아의 여러 구단을 돌았으나 쾰른에서는 분데스리가 2회 준우승과 UEFA컵 1회 준우승을, 유벤투스에서는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준우승을, 로마에서는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와 코파 이탈리아 준우승을, 카를스루헤에서는 포칼 준우승을 이루며 개인의 뛰어난 활약에도 불구하고 클럽 단위 우승컵을 한 번도 들지 못하고 준우승에만 머무른 비운의 선수다.

다만 디 만샤프트에서는 클럽에서의 아쉬움을 완벽하게 씻어냈으며  1988 서울 올림픽 동메달을 시작으로 성인 대표팀에서도 핵심 선수가 되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 1992 유로 준우승과 MVP, 1994 미국 월드컵 도움왕, 1996 유로 우승이라는 화려한 활약상을 보여줬으며 2000년에는 독일 대표팀에서 다섯 번째로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 6회 선정
독일 올해의 선수 2회 선정: (1989, 1992)
옹즈 드 옹즈 2회 선정: (1990, 1992)
1989 발롱도르 23위
1992 기자단 선정 UEFA 유로 MVP
1992 UEFA 유로 베스트 일레븐
1992 발롱도르 4위
1992 피파 올해의 선수상 3위
1994 미국 월드컵 도움왕
1999 FIFA 일레븐


34위 호메리투


출생일: 1960년 8월 28일
국적: 파라과이
활동기간: 1977~1998
주 소속팀: 플루미넨시

본명 훌리오 세사르 로메로로 한때 마라도나만큼이나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며 1980년대 남미 정상급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는데 창의적이면서 정교한 패스로 찬스를 만들어내는데 능했으며 우수한 볼 컨트롤 능력을 앞세워 상대의 압박을 피했으며 득점력도 우수했다.

뉴욕 코스모스에서 두 번의 북미 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남미로 돌아와서는 플루미넨시의 주립 리그 2연패와 브라질 전국 리그 우승을 이뤄내며 1985 남미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잠깐 활약한 바르셀로나에서는 1989 UEFA 컵 위너스 컵 우승을 이뤄냈다.

파라과이 대표팀에서도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1979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에 기여했으며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조국의 28년 만에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뤄내기도 했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1979 남미 올해의 선수 2위
1980 NASL 올 스타 팀 선정
1980 엘 그라피코 선정 아메리카 올해의 선수 4위
1980 남미 올해의 선수 10위
1985 남미 올해의 선수 1위 수상
1986 남미 올해의 팀
1986 남미 올해의 선수 5위
1990 파라과이 프리메라 데 디비시온 득점왕
2004 FIFA 100인


33위 알랭 지레스


출생일: 1952년 8월 2일
국적: 프랑스
활동기간: 1970~1988
주 소속팀: 지롱댕 보르도

미셸 플라티니와 함께 1980년대 프랑스 리그를 대표하던 공격형 미드필더로 163cm라는 매우 작은 키를 가지고 있었지만 비단뱀과 같은 드리블과 유려한 볼 컨트롤은 물론이고 넓은 시야와 기발한 창의성을 바탕으로 찔러주는 패스를 활용한 플레이메이킹은 당대 유럽 제일이었다.

지롱댕 보르도에서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보낸 지레스는 리그앙 2연패를 이뤄냈으며 보르도 구단 역대 최다 출장자와 최다 득점자를 모두 차지하며 명실상부 보르도 역대 최고의 선수로 추앙받는다.

레 블뢰에서도 플라티니, 장 티가나, 루이 페르낭데와 함께 마법의 사각형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1982 스페인 월드컵 4위, 1984 유로 우승, 1986 멕시코 월드컵 3위를 기록했으며 특히 1982 스페인 월드컵과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두 대회 합쳐서 48개의 골 찬스를 만들어내며 플라티니 이상의 존재감을 뿜어냈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 5회 선정: (1982~1986)
프랑스 올해의 선수 3회 선정: (1982, 1983, 1987)
옹즈 드 옹즈 3회 선정: (1982, 1983, 1984)
1982 구에린 스포르티보지 선정 스페인 월드컵 베스트 일레븐
1982 엘 그라피코지 선정 스페인 월드컵 베스트 일레븐
1982 옹즈도르 2위
1982 발롱도르 2위
1983 발롱도르 11위
1984 UEFA EURO 팀 오브 더 토너먼트
1984 발롱도르 9위
2000 프랑스 풋볼지 선정 20세기 최고의 프랑스 선수 7위
2004 프랑스 역대 축구 선수 8위
지롱댕 보르도 역대 최다 출장자 (592경기)
지롱댕 보르도 역대 최다 득점자 (182골)

 

32위 알렉스 제임스


출생일: 1901년 9월 14일
국적: 잉글랜드
활동기간: 1922~1937
주 소속팀: 아스날 FC 

1930년대 잉글랜드 풋볼 리그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로 우수한 전술안과 유려한 볼 터치 능력과 우수한 패싱력을 겸비해 인사이드 포워드에서 활약했다.

채프먼 체제의 아스날의 에이스로 아스날의 리그 4회 우승을 이뤄내며 잉글랜드의 강호로 군림했으며 WM 시스템에서 센터 하프를 센터백으로 내리자는 주장을 했다는 설도 전해진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2005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
2005 스코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


31위 게오르게 하지


출생일: 1965년 2월 5일
국적: 루마니아
활동기간: 1982~2001
주 소속팀: 갈라타사라이

발칸의 마라도나로 불렸던 1990년대 루마니아 최고의 선수이자 유럽 정상급 공격형 미드필더로 넓은 시야와 창의적인 패싱력에서 나오는 플레이메이킹 능력은 물론이고 교묘한 드리블 돌파로 상대 수비를 교란해서 찬스를 만드는 능력은 물론 왼발 중거리 슈팅 능력도 겸비해 세 번이나 대회 득점왕을 차지했을 정도로 득점력도 우수했다.

하지는 스포르툴 스투덴체스크에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득점왕을 두 번이나 기록했고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로 이적해서는 팀의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맡아 3년간 리그 무패 우승을 기록했다,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서는 모두 실패했으며 이후 갈라타사라이로 와서는 팀의 터키 슈퍼리그 4연패와 1999-2000 시즌 UEFA컵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대표팀에서도 1990년대 루마니아의 전성기를 이뤄냈는데 1990 이탈리아 월드컵 16강, 1994 미국 월드컵 8강, 1998 프랑스 월드컵 16강으로 3회 연속 조별 리그 통과를 이뤄냈으며 유로 2000에서도 독일, 포르투갈, 잉글랜드와 한 조가 되며 조 최하위로 탈락할 것이라는 세간의 이미지를 비웃듯이 독일과 잉글랜드를 밀어내고 8강 진출에 성공했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루마니아 올해의 축구 선수 7회 선정
터키 리그 올해의 축구 선수 3회 선정: (1996, 1999, 2001)
루마니아 디비지아 A 득점왕 2회: (1985, 1986)
19987-88 유러피언 컵 득점왕
1989 발롱도르 8위
1994 미국 월드컵 베스트 일레븐
1994 발롱도르 4위
1999 월드 사커 매거진 선정 20세기 최고의 선수 25위
2004 UEFA 주빌리 어워드 루마니아 최고의 선수
2004 FIFA 100
2020 발롱도르 드림팀 공격형 미드필더 노미네이트

 

30위 케빈 더 브라위너


출생일: 1991년 6월 28일
국적: 벨기에
활동기간: 2008~
주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

2010년대 하반기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넓은 시야와 창의적인 두뇌에서 나오는 뛰어난 패싱력과 왕성한 활동량, 탄탄한 기본기와 양발 사용 능력을 겸비했으며 2021-22 시즌에는 통산 19골을 기록했을 정도로 우수한 득점력마저 장착했다.

첼시 소속이던 시절 베르더 브레멘으로 임대가며 분데스리가 신인상에 올랐으며 볼프스부르크에서는 분데스리가 준우승과 포칼 우승을 이끌었으며 맨체스터 시티에서는 자신의 재능을 만개하며 프리미어리그 4회 우승과 리그컵 5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2018-19 시즌에는 리그와 리그컵에 더해 FA컵도 우승하며 도메스틱 트레블을 이뤄냈으며 2020-21 시즌에는 맨시티 역사상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하는데 공헌했다.

벨기에 대표팀에서도 2014 브라질 월드컵과 유로 2016에서 8강이라는 성적표를 이뤄냈으며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소속팀에서는 뛰어본 적 없는 후방 플레이메이커로 뛰며 기대만큼은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더 브라위너는 더 브라위너라고 우수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앞세워 조국의 월드컵 역대 최고의 성적인 3위에 오르는데 기여했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UEFA 챔피언스리그 올해의 스쿼드 5회 선정: (2017-18~2021-22)
IFFHS 남자 축구 월드 일레븐 4회 선정: 2017, 2019, 2020, 2021
ESM 올해의 팀 3회 선정: (2017-18, 2019-20, 2020-21)
PFA 올해의 팀 3회 선정: (2017-18, 2019-20, 2020-21)
프리미어리그 도움왕 3회 선정: (2016-17, 2017-18, 2010-20)
맨체스터 시티 올해의 선수 3회 선정: (2015-16, 2017-18, 2019-20)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 (2019-20, 2021-22)
2012-13 시즌 분데스리가 신인상
2014-15 시즌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
2014-15 시즌 분데스리가 올해의 선수
2015 독일 올해의 선수
2018 발롱도르 9위
2020 벨기에 왕립축구협회 창립 125주년 기념 벨기에 아이콘 팀 선정 (벨기에 역대 베스트 일레븐 선정)
2021 발롱도르 8위
2022 발롱도르 3위

 

29위 볼프강 오베라트


출생일: 1943년 9월 29일
국적: 독일
활동기간: 1962~1977
주 소속팀: FC 쾰른

귄터 네처와 함께 1960년대 하반기와 1970년대 상반기를 대표하는 독일 최고의 테너로 뛰어난 플레이메이킹 능력은 물론이고 왕성한 활동량과 우수한 기동력을 겸비했으며 유사시에는 수비에도 적극 가담했던 현대적인 미드필더였다.

선수 생활을 오직 FC 쾰른 한 곳에서만 보냈으며 쾰른에서 첫 분데스리가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며 두 번의 포칼 우승을 경험했고 키커 랑리스테 월드클래스 등급 8회와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 14회를 기록하며 분데스리가 정상급 선수로 군림했다.

국가대항전에서는 1966 월드컵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으며 1970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발롱도르 5위를 수상했다. 그러나 유로 1972 당시에는 기량이 떨어져 명단에서 제외당하는 수모를 겪었으나 절치부심해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다시 주전 자리를 회복하며 특유의 왕성한 활동량으로 팀의 우승을 도왔다. 3번의 월드컵에서 총 59회의 찬스 메이킹을 기록했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4회 선정: (1965-66, 1967-68, 1969-70, 1973-74)
1968 FIFA XI
1970 발롱도르 5위
1971 발롱도르 18위
1971-72 DFB포칼 득점왕
1973 발롱도르 18위
1974 서독 월드컵 올스타 팀
1974 스포르팅지 선정 서독 월드컵 올스타 팀
2000 VDS 선정 20세기 독일 최고의 선수 7위
2019 독일 축구 명예의 전당


28위 귄터 네처


출생일: 1944년 9월 14일
국적: 독일
활동기간: 1963~1977
주 소속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볼프강 오베라트와 함께 1960년대 하반기와 1970년대 상반기를 대표하는 독일 최고의 테너로 역사상 최고의 패스 마스터 중 하나로 손꼽혔을 정도로 패스를 잘해서 패스의 단위를 센티미터 단위로 조절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을 정도로 패싱력이 우수해 "센티미터 패서", "컴퓨터 패서"라 불렸다.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키커 랑리스테 월드클래스 등급 4회와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 10회를 기록했으며 리그 2연패를 이끌었으나 감독 헤네스 바이스바일러와의 불화로 팀을 떠나게 되는데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마지막 경기인 1972-73 포칼에서는 부상을 핑계로 경기에 출장하지 않으려 했으나 쾰른과 묀헨글라트바흐가 연장에 돌입하자 이제 출전하겠다며 교체 출전하며 결승골을 넣고 팀에게 마지막까지 트로피를 주고 떠났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그 명성을 이어갔는데 유로 1972에서 그의 뛰어나면서도 창의적인 패스는 람바참바 풋볼에서 중요한 요소였으며 결국 대회를 압도적으로 우승한 뒤 베켄바우어 다음으로 게르트 뮐러와 함께 발롱도르 공동 2위를 수상했다. 다만 월드컵에서는 라이벌 볼프강 오베라트에게 밀려 벤치 신세를 지며 아쉬운 활약상을 보여줬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 7회 선정
월드 사커지 선정 세계 베스트 일레븐 3회 선정: (1972, 1973, 1975)
스포르트지 선정 유럽 베스트 일레븐 2회 선정: (1972, 1973)
서독 올해의 선수 2회 선정: (1972, 1973)
1971 발롱도르 4위
1972 UEFA 유로 팀 오브 더 토너먼트
1972 발롱도르 2위
1973 발롱도르 9위
1975 발롱도르 14위
2000 VDS 선정 20세기 독일 최고의 선수 6위
2016 독일 스포츠 명예의 전당 헌액
2019 독일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


27위 안토니오 사스트레


출생일: 1911년 4월 27일
국적: 아르헨티나
활동기간: 1931~1947
주 소속팀: 인데펜디엔테

1930년대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던 인사이드 포워드로 드리블과 패스에 능하며 이를 활용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으로 후대의 많은 아르헨티나 선수들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전해지며 하프백에서도 활약할 수 있었다.

사스트레는 자국 리그의 인데펜디엔테와 브라질 리그인 상파울루에서 전성기를 누렸으며 전자의 클럽에서는 아르네시오 에리코, 비센테 데 라 마타와 함께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2연패는 물론 코파 이바라구렌, 코파 알다오에서 2연패라는 성과를 냈으며 상파울루에서는 캄파오네투 파울리스타 3회 우승을 이뤄냈다.

대표팀 활약도 대단했는데 라 알비셀레스테가 참가한 세 번의 코파 아메리카에 모두 주전으로 나와서 2회 우승과 1회 준우승을 이뤄냈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1966 스포르트지 선정 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6위
2017 베를린브리츠 선정 1930년대 최고의 선수 10위


26위 카지미에시 데이나


출생일: 1947년 10월 23일
국적: 폴란드
활동기간: 1966~1987
주 소속팀: 레기아 바르샤바

폴란드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선수로 드넓은 시야와 우수한 킥력에서 나오는 정교한 롱패스로 골 찬스를 만드는 능력과 과감한 1선 침투에 이은 득점에 능했으며 리더십도 뛰어나 팀원들에게 큰 귀감이 되었다.

레기아 바르샤바에서 활약하며 두 번의 리그 우승과 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이후에는 맨체스터 시티와 북미 사커 리그에서도 활약했다.

폴란드 대표팀에서는 클럽에서 보여준 것 이상을 보여줬는데 1972 뮌헨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냈으며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3위라는 호성적을 냈으며 1976 몬트리올 올림픽에서도 은메달이라는 성적을 내며 폴란드 축구의 최전성기의 서곡을 열었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NSAL 올스타 2회: (1983, 1984)
폴란드 올해의 선수 2회: (1973, 1974)
1972 뮌헨 올림픽 득점왕
1972 발롱도르 6위
1973 발롱도르 6위
1974 서독 월드컵 브론즈볼
1974 서독 월드컵 베스트 일레븐
1974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
1974 발롱도르 3위
1978 라 페세나지 선정 아르헨티나 월드컵 베스트 일레븐
2017 베를린브리츠 선정 1970년대 최고의 축구선수 10위


25위 페드로 로차


출생일: 1942년 12월 3일
국적: 우루과이
활동기간: 1959~1980
주 소속팀: 페냐롤

우루과이의 펠레라 불렸던 1960년대 말 세계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로 공격형 미드필더에게 필요한 덕목을 모두 갖춘 것은 물론 우수한 신체 능력과 우수한 득점력마저 겸비해 상대팀의 목숨을 한 순간에 끊어버린다는 뜻의 사형집행인이란 별명으로 불렸으며 펠레는 그를 두고 "내가 붙어본 선수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라는 평가를 했다.

로차는 페냐롤의 공격을 진두지휘하며 리그,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인터콘티넨탈컵 트레블과 1967 시즌 리그 무패 우승을 포함해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8회 우승 및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3회 우승, 그리고 인터콘티넨탈컵 2회 우승을 이끌었으며 1969년에는 역대 인터콘티넨탈 우승팀끼리 최강자를 가리는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스 슈퍼컵 우승마저 이뤄내는 공을 세웠으며 상 파울루로 이적해서도 1972 시즌 브라질 세리 A 득점왕과 1974 시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득점왕에 올랐고 1977년에는 전국 리그 우승의 영광을 누렸던 로차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역대 누적 득점 3위를 기록하고 있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에이스 역할을 도맡았으며 1962 칠레 월드컵부터 1974 서독 월드컵까지 네 번의 월드컵에 참가했으며 1967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5경기 3골을 득점하며 우승에 크게 기여해 대회 MVP에 선정되었다.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조기에 부상당해 하차했으며 이에 우루과이는 공격 전개에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득점왕 3회: (1963, 1965, 1968)
인터콘티넨탈 슈퍼컵 득점왕 2회: (1968, 1969)
1967 코파 아메리카 MVP
1972 브라질 세리 A 득점왕
1973 브라질 전국 리그 베스트 일레븐
1974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득점왕


24위 소크라치스


출생일: 1954년 2월 19일
국적: 브라질
활동기간: 1973~1989
주 소속팀: SC 코린치안스

1980년대 브라질을 호령하던 축구선수이자 민주화 운동가이며 동시에 훌륭한 의사였던 소크라치스는 지쿠, 마라도나, 보치니와 함께 당대 남미를 수놓은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농구선수를 했어도 잘했을 거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드리블이 훌륭했으며 뒤에도 눈이 달려있다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로 드넓은 시야와 창의적인 패싱력을 겸비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보여줬으며 양발을 모두 잘 써 뛰어난 슈팅력을 보여줬으며 의사 면허를 땄을 정도로 냉철하여 어려운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코린치안스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캄파오네투 파울리스타에서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1983년에는 공식 경기 52경기에 출전해 무려 36골을 득점하며 남미 올해의 선수상을 타내는 우수한 활약을 보여줬다.

셀레상에서는 1982 스페인 월드컵을 앞두고 브라질 전국 리그에서는 라이벌리를 형성한 지쿠, 파우캉, 세레주와 함께 황금의 사중주를 구성하며 주장으로 이들을 이끌며 1970 브라질에 버금간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정작 대회 2차 리그에서 탈락했으며 1983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준우승에 그쳤으며 이후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승부차기 끝에 8강에서 탈락하는 등 결과적으로는 좋지 못했지만 팬들에게 우수한 퍼포먼스 자체는 인정을 받았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 3회 선정: (1982, 1983, 1984)
남미 올해의 선수 8위 2회 선정: (1980, 1981)
1976 캄페오네투 파울리스타 득점왕
1980 브라질 전국 리그 베스트 일레븐
1982 문도 데포르티보지 선정 스페인 월드컵 대회 베스트 일레븐
1982 FIFA XI
1982 남미 올해의 선수 6위
1983 남미 올해의 선수 1위 수상
2004 FIFA 100
2020 발롱도르 드림팀 공격형 미드필더 노미네이트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


23위 프란체스코 토티


출생일: 1976년 9월 27일
국적: 이탈리아
활동기간: 1992~2017
주 소속팀: AS 로마

2000년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트레콰르티스타이자 펄스 나인롤 공격수로 우수한 원터치 패스로 찬스를 만드는 능력과 넓은 시야와 창의적인 패싱력에서 나오는 플레이메이킹 능력은 물론 피지컬과 볼 컨트롤을 겸비한 탈압박 능력은 물론 득점력까지 공격형 미드필더에 필요한 모든 덕목을 갖추었으며 2007-08 시즌에는 펄스 나인으로도 활약하기도 했던 다재다능한 선수였다.

자타공인 AS 로마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최강의 선수로 선수생활을 모두 AS 로마에서만 보냈으며 구단 역대 최다 출전과 최다 득점자를 랭크하고 있으며 2000-01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내며 발롱도르 5위에 랭크되었으며 두 번의 코파 이탈리아와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을 이뤄냈으며 이런 활약을 인정받아 두 번의 세리에 A 평점왕인 구에린 도르와 세리에 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두 번의 세리에 A 도움왕은 물론 2006-07 시즌에는 이브라히모비치, 카카, 아드리아누, 루카 토니 등 훌륭한 공격수들을 제치고 세리에 A 득점왕을 이뤄내기도 했다.

아주리 군단에서는 유로 2000떄 훌륭한 활약을 보여주며 팀을 결승에 올려놓았으나 이후로는 기대에 못 미치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2006 독일 월드컵에서 도움왕에 오르며 팀의 우승에 기여하고 화려하게 은퇴했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세리에 A 올해의 이탈리아 선수 5회 수상: (2000, 2001, 2003, 2004, 2007)
ESM 올해의 팀 3회 선정: (2000-01, 2003-04, 2006-07)
세리에 A 올해의 선수 2회 수상: (2000, 2003)
세리에 A 도움왕 2회 수상: (1998-99, 2013-14)
구에린 도르 2회 수상: (1998, 2004)
1999 세리에 A 올해의 영 플레이어
2001 발롱도르 5위
2006 독일 월드컵 올스타 팀
2006 독일 월드컵 도움왕
2006-07 세리에 A 득점왕
2007-07 유러피언 골든 부츠
2007 발롱도르 10위
2017 AS 로마 명예의 전당 헌액
2018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
2020 발롱도르 드림팀 공격형 미드필더 노미네이트
AS 로마 역대 최다 출전자 (786경기)
AS 로마 역대 최다 득점자 (307골)


22위 카카


출생일: 1982년 4월 22일
국적: 브라질
활동기간: 2001~2017
주 소속팀: AC 밀란

2000년대 하반기 브라질을 대표했던 트레콰르티스타이자 축구 선수로 화려한 볼 컨트롤 능력과 창의적인 킬패스는 물론 일명 치고 달리기를 활용해 역습 상황에서 상대 수비 라인을 순식간에 붕괴시키고 1선으로 침투해 득점하는 데 굉장히 능했으며 그의 스피드가 어찌나 빨랐던지 인테르의 전설적인 수비수 왈테르 사무엘은 카카의 연속적인 방향 전환을 따라가려다가 무릎이 돌아가버려 시즌 아웃을 당하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AC 밀란에서 전성기를 보냈으며 상 파울루에서 영입된 이후 후이 코스타와 히바우두 같은 거물들과의 주전 경쟁을 이기고 로쏘네리의 트레콰르티스타이자 에이스로 활약하며 2003-04 시즌에는 10골을 득점하며 세리에 A 우승을 이끌었으며 2006-07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에서만 10골 3도움을 기록하며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으며 2007-08 시즌과 2008-09 시즌에는 연속으로 리그 15골을 돌파했으며 거액의 이적료를 안겨주고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으나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부상 등으로 아쉬운 활약을 보여줬다.

셀레상에서는 한일 월드컵에서 백업으로 우승을 경험한 것을 시작으로 2005 컨페드컵 우승과 2009 컨페드컵 우승을 경험했으나 2006 독일 월드컵과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연달아 8강에서 탈락하며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UEFA 올해의 팀 3회 선정: (2006, 2007, 2009)
세리에 A 올해의 외국인 3회 선정: (2004, 2006, 2007)
세리에 A 올해의 선수 2회 선정: (2004, 2007)
2002 브라질 세리 A 베스트 일레븐
2002 브라질 세리 A 올해의 선수
2002 남아메리카 올해의 팀
2004-05 UEFA 클럽 올해의 미드필더
2006 발롱도르 11위
2006-07 UEFA 챔피언스리그 득점왕
2006-07 UEFA 클럽  올해의 공격수
2006-07 UEFA 클럽 올해의 선수
2007 월드 사커지 선정 올해의 선수
2007 옹즈도르 1위
2007 피파 올해의 선수상 수상
2007 발롱도르 1위 수상
2008 발롱도르 8위
2009 발롱도르 6위
2010 AC 밀란 명예의 전당 헌액


21위 테오필로 쿠비야스


출생일: 1949년 3월 8일
국적: 페루
활동기간: 1966~1989
주 소속팀: 알리안사 리마

태양신이라 불리던 페루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1970년대 세계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탄탄한 기본기는 물론 우수한 동료 활용 능력과 창의적이면서 정확한 패싱 플레이를 바탕으로 팀의 플레이메이킹을 주도했으며 프로 통산 300골을 넘겼을 정도로 우수한 득점력을 가지고 있다.

알리안사 리마에서 두 번의 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유럽으로 건너간 이후에는 포르투에서 1976-77 시즌에 타사 데 포르투갈을 우승하기도 했다.

특히 대표팀에서 그의 업적은 더 빛났는데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 페루 대표팀의 에이스로 팀의 8강 진출을 이끌어내며 신인상을 탔으며 8강에서도 세계 최강 브라질을 상대로 4-2로 꽤 잘 싸웠으며 득점도 했고 1975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대회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했고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도 팀을 2차 리그로 이끌었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페루 리그 득점왕 2회: (1966, 1970)
1970 멕시코 월드컵 브론즈슈
1970 멕시코 월드컵 신인상
1971 남미 올해의 선수 4위
1972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득점왕
1972 남미 올해의 선수 1위 수상
1975 코파 아메리카 MVP
1977 남미 올해의 선수 7위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실버슈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올스타 팀
1978 남미 올해의 선수 5위
1999 IFFHS 선정 20세기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 48위
1999 IFFHS 선정 20세기 남아메리카 최고의 축구선수 14위
2004 FIFA 100
2008 남미 축구 협회 선정 1958~2008 남아메리카 올스타 팀 1군
2008 페루 국가대표팀 올 타임 레전드 일레븐
2015 레퀴프 선정 역대 최고의 남미 선수 25위
2017 베를린브리츠 선정 1970년대 최고의 축구선수 7위


20위 엔조 프란체스콜리


출생일: 1961년 11월 12일
국적: 우루과이
활동기간: 1980~1997
주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1980년대와 90년대 남미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트레콰르티스타로 공격형 미드필더가 필요한 모든 덕목에서 우수한 모습을 보였으며 특히 깔끔한 볼 터치와 상대의 예측을 비웃는 킬 패스가 일품이었고 득점력 또한 아르헨티나 무대에서 득점왕을 수상했을 정도로 뛰어났다. 그의 활약을 본 지네딘 지단은 그를 우상으로 생각했으며 프란체스콜리의 이름을 따 아들의 이름을 엔조로 지었다.

아르헨티나의 리버 플레이트에서 전성기를 맞아 1985-86 시즌 리그 우승과 득점왕을 석권했으며 이후 유럽으로 진출해서 라싱 파리와 마르세유, 칼리아리에서 활약했으며 1989-90 시즌에는 마르세유에서 리그 앙 우승을 이뤄냈고 다시 아르헨티나로 돌아와서는 전기리그 3회 우승과 후기리그 1회 우승은 물론 1996년에는 팀의 주장으로서 주전의 다수를 차지하는 신인 선수들을 잘 통솔하며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뤄냈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는 1983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공격수로 출전해 소크라치스가 이끄는 브라질을 제압하고 우승에 크게 공헌해 대회 MVP에 선정되었으며 1987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해 우승했다. 그리고 1995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였으며 브라질을 제압하고 우승을 거두며 대회 MVP에 선정되었다. 이토록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마라도나나 지쿠를 능가하는 화려한 모습을 보였지만 월드컵에서의 활약은 다소 아쉬웠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남아메리카 올해의 팀 4회 연속 선정: (1994~1997)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득점왕 3회 수상: (1984 메트로폴리타노, 1985-86, 1994 아페르투라)
코파 아메리카 MVP 2회 수상: (1983, 1995)
아르헨티나 올해의 선수 2회 수상: (1985, 1995)
1984 남미 올해의 선수 1위 수상
1985 구에린 스포르티보지 선정  세계 최우수 선수 수상
1985 남미 올해의 선수 2위
1986 남미 올해의 선수 7위
1990 프랑스 올해의 외국인 선수
1995 남미 올해의 선수 1위 수상
2004 FIFA 100
2916 칼리아리 명예의 전당 헌액
2016 칼리아리 역대 올타임 베스트 일레븐 성적
2017 베를린브리츠 선정 1980년대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 6위
2020 발롱도르 드림팀 공격형 미드필더 노미네이트


19위 닐스 리드홀름


출생일: 1922년 10월 8일
국적: 스웨덴
활동기간: 1938~1961
주 소속팀: AC 밀란

스웨덴의 금메달 신화를 이뤄냈던 그레노리 삼총사의 일원이자 1950년대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창의적이면서도 우수한 축구 지능과 뛰어난 리더십, 그리고 유려한 볼 컨트롤 능력을 겸비했으며 정교한 패싱력과 넓은 시야를 지녔으며 2년간 패스미스를 하지 않다가 2년 만에 패스미스를 하자 관중들이 박수를 쳤다는 일화도 있다.

자국 리그의 IFK 노르셰핑과 이탈리아의 AC 밀란에서 활약했으며 전자의 팀에선 알스베스칸 2연패를 이뤄냈고 후자의 팀에서는 세리에 A 4회 우승과 라틴 컵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57-58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결승 진출을 이뤄냈다.

바이킹 군단의 일원으로 1948 런던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으나 이후 프로리그인 세리에 A로 이적하면서 아마추어 선수만 대표팀에 뽑는다는 스웨덴 축구 협회의 방침으로 오랫동안 대표팀에 뽑히지 못하다가 1958 스웨덴 월드컵을 앞두고 이 룰이 해제되자 다시 복귀해 조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조국의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1958 글로부지 선정 스웨덴 월드컵 최고의 인사이드 레프트 3위
1958 발롱도르 8위
1958-59 시즌 코리에레 델로 스포르트의 세리에 A 랭킹 라이트 하프 1위
1959 발롱도르 13위
1984 프랑스 풋볼지 선정 역대 최고의 하프백 5위
2005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
2016 이탈리아 풋볼 명예의 전당
AC 밀란 명예의 전당 헌액


18위 아돌포 페데르네라


출생일: 1918년 11월 15일
국적: 아르헨티나
활동기간: 1935~1955
주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펄스 나인 역할을 하며 라 마키나의 5인 스위칭 플레이를 주도했던 인사이드 포워드로 공격진 전원을 지휘하는 플레이메이킹 능력과 높은 전술안을 활용한 경기 설계력을 자랑하며 엘 마에스트로라 불렸으며 이때의 활약으로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의 우상이 되기도 했다.

라 마키나를 지휘하며 리버 플레이트의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5회 우승을 이끌었으며 콜롬비아의 미요나리요스에서는 리그 4회 우승을 이뤄냈다.

그와 라 마키나의 활약은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이어지는데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시대에 활약하던 축구선수라 월드컵 기록은 없지만 페데르네라는 두 번의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1946년 대회에서는 대회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 받았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1946 코파 아메리카 MVP
1966 스포르트지 선정 아르헨티나 역대 최고의 선수 2위
1984 프랑스 풋볼지 선정 역대 올스타 중앙 공격수 부분 9위
2017 베를린브리츠 선정 1940년대 세계 최고의 선수 7위


17위 프리츠 발터


출생일: 1920년 10월 31일
국적: 독일
활동기간: 1937~1959
주 소속팀: FC 카이저슬라우테른

비 오는 날에 특히 강했던 서독 대표팀 역대 최고의 주장, 나치 독일 시절에 데뷔해 서독 축구의 부흥을 이끈 다재다능한 인사이드 포워드로 훌륭한 리더십과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보여줬으며 특히 비 오는 날에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줘 비 오는 날을 '프리츠 발터의 날'이라고 불렀다.

선수 생활을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만 보냈으며 오베리가 쥐드웨스트 10회 우승과 독일 챔피언쉽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최초의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3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인사이드 포워드 부문 월드클래스 등급을 받았다.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 높게 평가받지 못했던 서독을 이끌고 결승에 진출했으며 조별 리그에서 자신을 8-3으로 이겼던 헝가리를 상대로 3-2 승리를 거두는, 일명 베른의 기적의 주인공으로 활약하며 독일 축구의 상징적인 존재로 자리 잡았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1954 스위스 월드컵 브론즈 볼
1954 스위스 월드컵 대회 올스타 팀
1984 프랑스 풋볼지 선정 역대 최고의 하프백 4위
2004 UEFA 주빌리 어워드 독일
2017 베를린 브리츠 선정 1950년대 최고의 선수 6위
독일 스포츠 명예의 전당 헌액


16위 미카엘 라우드루프


출생일: 1964년 6월 15일
국적: 덴마크
활동기간: 1981~1998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1990년대를 대표하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공격형 미드필더가 갖춰야 하는 모든 덕목을 갖추었으며 특히 상대 수비의 예측을 비웃는 창의적인 킬패스로 찬스를 만들고 팬텀 드리블을 구사해 상대 수비진을 무너트리며 팬텀 드리블을 유행시켰다.

유벤투스와 라치오 바르셀로나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며 비안코네리 군단에서는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고 바르셀로나에서는 크루이프의 드림팀의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하며 라 리가 4연패와 코파 델 레이 1회 우승, 그리고 1991-92 시즌 마지막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루는 데 큰 공을 새웠지만 크루이프와의 갈등으로 인해 자유계약으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해 친정팀 바르셀로나를 제치고 라 리가 우승을 이뤄냈다.

덴마크 대표팀에서도 1984 유로부터 1998 프랑스 월드컵까지 예선을 통과한 모든 대회를 참가했으나 딱 유로 1992만 감독과의 불화로 참가하지 못했는데 그 대회에서 덴마크가 우승했다. 그래도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라우드롭은 노익장을 보여주며 덴마크를 8강에 올리며 올스타 팀에 들었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덴마크 올해의 선수 2회: (1982, 1985)
1985 발롱도르 4위
1991-92 돈 발롱지 선정 라 리가 최우수 외국인 선수상
1992 발롱도르 7위
1993 발롱도르 5위
1994-95 ESM 올해의 팀
1995 발롱도르 10위
1998 프랑스 월드컵 올스타 팀
2004 UEFA 주빌리 어워드 덴마크
2004 FIFA 100
2006 덴마크 축구 올 타임 베스트 플레이어
2017 베를린 브리츠 선정 1990년대 최고의 선수 1위
덴마크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


15위 산드로 마촐라


출생일: 1942년 11월 8일
국적: 이탈리아
활동기간: 1960~1977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아버지 발렌티노 마촐라와 라이벌 지안니 리베라와 함께 이탈리아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손꼽히며 훌륭한 슈팅 스킬과 창의적인 패싱력, 탄탄한 볼 컨트롤과 같은 공격형 미드필더의 필수적인 덕목은 물론 기동력도 탁월했으며 측면과 중앙을 오가는 왕성한 활동량도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선수 생활을 오직 네라주리 군단에서만 보낸 산드로 마촐라는 세리에 A 4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2연패, 그리고 인터콘티넨탈컵 2연패를 이루며 그란데 인테르의 시대를 열었으며 1963-64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득점왕에 올랐으며 1964-65 시즌에는 세리에 A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다.

왕성한 활동량으로 중앙과 측면을 오가며 상대 수비진을 압박해주는 스타일 덕분에 아주리 군단에서는 리베라보다 더 중용되었으며 자주 선발로 출전했다. 특히 유로 1968에서는 대회 우승을 이끌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더 중용되었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 5회 선정: (1965, 1967, 1968, 1971, 1974)
발롱도르 8위 2회: (1965, 1970)
1963-64 유러피언 컵 득점왕
1964-65 세리에 A 득점왕
1967 FIFA XI
1967 발롱도르 10위
1968 UEFA 유로 팀 오브 더 토너먼트
1971 발롱도르 2위
1999 IFFHS 선정 20세기 최고의 축구선수 43위
1999 IFFHS 선정 20세기 최고의 유럽축구 27위
2014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
2020 발롱도르 드림팀 공격형 미드필더 노미네이트


14위 발렌티노 마촐라


출생일: 1919년 1월 26일
국적: 이탈리아
활동기간: 1936~1949
주 소속팀: 토리노 FC

아들 산드로 마촐라, 지안니 리베라와 함께 이탈리아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손꼽히며 우수한 시야와 탄탄한 기본기를 앞세워 경기를 조립하고 팀의 플레이메이킹을 주도하는 역할을 해 팀 동료 마리오 리가몬티로부터 "마촐라는 팀의 절반이다. 나머지 절반은 남은 우리 10명에 의해 이루어진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경기 영향력이 컸으며 득점력도 우수했다.

1940년대 토리노의 전성시대를 이끌며 세리에 A 5연패와 1942-43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내며 그란데 토리노라 불렸으며 토리노는 당대 유럽 최고의 팀으로 평가받았고 마촐라는 당대 유럽 최고의 축구선수로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아주리에서도 핵심으로 활약했지만 수페르가의 비극이라는 비행기 사고로 팀원 전원이 사망하며 이탈리아 축구는 큰 타격을 입었고 발렌티노 마촐라의 신화는 비극적으로 마감했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1942-43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
1946-47 세리에 A 득점왕
1999 구에린 스포르티보 선정 이탈리아 최고의 선수 2위
2012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
2015 토리노 FC 명예의 전당 헌액
2017 베를린브리츠 선정 1940년대 최고의 선수 3위


13위 호베르투 히벨리누


출생일: 1946년 1월 1일
국적: 브라질
활동기간: 1965~1981
주 소속팀: SC 코린치안스 

펠레 이후, 지쿠 이전 브라질 대표팀의 아이콘이었던 선수로 플립플랩 드리블의 시조로 화려한 드리블을 보여줬으며 원자폭탄 킥이라 불렸던 매서운 왼발 프리킥을 보여줬다. 즉 킥과 드리블, 패스에서 모두 완벽한 모습을 보이는 플레이메이커였다.

코린치안스와 플루미넨시에서 전성기를 누렸으며 플루미넨시에서는 캄파오네투 카이오카 2연패를 이끌었다.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 지역예선과 본선에서 전승 우승을 거두며 화려하게 자신을 세상에 알린 히벨리누는 1970년에는 대회 올스타에 선정되었고 1974 서독 월드컵에서도 팀의 핵심 선수로 팀 공격을 이끌며 팀의 4위에 공헌했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남미 올해의 선수 3위 2회: (1973, 1976)
1970 멕시코 월드컵 올스타 팀 선정
1971 브라질 세리 A 올스타 팀 선정
1971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
1971 남미 올해의 선수 9위
1973 CONMEBOL 올스타 팀
1974 남미 올해의 선수 10위
1977 남미 올해의 선수 2위
1978 남미 올해의 선수 9위
1999 20세기 남아메리카 올스타 팀
2004 FIFA 100
2020 발롱도르 드림팀 레프트 윙 노미네이트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


12위 후안 스키아피노


출생일: 1925년 7월 28일
국적: 우루과이
활동기간: 1943~1962
주 소속팀: 페냐롤

우루과이 축구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자 1950년대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우수한 테크닉과 넓은 시야, 창의적이면서 정확한 패싱력을 보유했으며 임기응변에 능해 불리한 경기를 여러 번 뒤집었다.

스키아피노는 1943년에 페냐롤에서 축구 선수 인생을 시작한 이래 페냐롤의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4회 우승과 토르네오 데 아너 7회 우승을 기록하며 남미 무대를 평정했으며 AC 밀란에서는 리드홀름과 함께 세리에 A 3회 우승과 1956년 라틴 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1957-58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을 이뤄냈다.

우루과이 국가대표팀에서는 두 번의 월드컵에 참가했으며 특히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동점골을 기록하며 우승에 기여해 마라카냥의 영웅으로 불리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도 공격의 주축으로 활약하며 팀의 4강 진출에 공헌했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1956 발롱도르 13위 (이탈리아 국적 보유자로 수상)
1957 발롱도르 14위
1984 프랑스 풋볼지 선정 역대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3위
2017 베를린 브리츠 선정 1950년대 최고의 선수 4위
2020 발롱도르 드림팀 공격형 미드필더 노미네이트


11위 루이스 수아레스 미라몬테스


출생일: 1935년 5월 2일
국적: 스페인
활동기간: 1953~1973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1960년대 상반기 유럽 무대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어난 훌륭한 볼 컨트롤과 우수한 패싱력과 효율적인 공간 활용, 그리고 탁월한 전술안을 바탕으로 팀의 공격을 지휘해 일명 건축가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바르셀로나와 인테르에서 전성기를 누렸으며 전자의 구단에서는 저승사자 군단 레알 마드리드에 대항하여 라 리가 2연패와 코파 델 레이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인테르로 이적한 뒤에는 세리에 A 3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2연패, 그리고 인터콘티넨탈컵 2연패를 이루며 그란데 인테르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스페인 대표팀 소속으로 두 번의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으며 1964 유로에서는 팀의 핵심 플레이메이커로 팀을 우승시키고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 이 대회 우승은 아르마다 군단의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이었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 3회 선정: (1963, 1954, 1965)
발롱도르 2위 2회: (1961, 1965)
1959 발롱도르 4위
1960 발롱도르 1위 수상
1963 발롱도르 8위
1964 UEFA 유로 팀 오브 더 토너먼트
1965 발롱도르 3위
2011 파니니사 선정 40만명의 축구팬들이 뽑은 18인의 세리에 A 레전드
2017 베를린 브리츠 선정 1960년대 최고의 선수 8위
2020 발롱도르 드림팀 수비형/중앙 미드필더 노미네이트


10위 죄르지 샤로시


'축구계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출생일: 1912년 8월 5일
국적: 헝가리
활동기간: 1930~1948
주 소속팀: 페렌츠바로시

1930년대 최고의 축구선수 중 하나로 공격적인 부분은 물론 미드필더와 수비수로서의 역량은 물론 신체 능력과 전술 이해도까지 우수한 일명 육각형 선수의 시조와도 같은 선수로 심지어는 법학 박사 학위를 딸 정도로 축구 외적으로도 다재다능했다.

1930년대 마자르 군단의 약진을 이끌었으며 1933-35 중유럽컵에서 득점왕에 올랐으며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병탄 하면서 중단된 1936-38 중유럽컵에서도 10골을 넣으며 득점 선두를 달렸었으며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에이스로 5골을 득점하며 헝가리를 결승전 무대에 올려놓았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대회 베스트 일레븐 선정과 브론즈볼을 수상했다.

헝가리 대표팀 역대 누적 득점 5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특히 중유럽컵에서는 총 17골을 기록하며 대회 최다 득점자로 기록되었다. 소속팀 페렌츠바로시에서도 원 클럽맨으로 남으며 넴제티 버이녹샤그 5회 우승과 헝가리 컵 4히 우승을 기록했으며 1937년에는 미트로파 컵 우승을 달성했다. 리그 득점왕 3회와 미트로파 컵 득점왕 3회는 덤이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미트로파 컵 득점왕 3회: (1935, 1937, 1940)
넴제티 버이녹샤그 득점왕 3회: (1935-36, 1939-40,  1940-41)
1933-35 중유럽컵 득점왕
1938 프랑스 월드컵 브론즈볼
1938 프랑스 월드컵 브론즈슈
1938 프랑스 월드컵 베스트 일레븐
1941 헝가리 올해의 선수
2017 베를린 브리츠 선정 1930년대 최고의 선수 9위
중유럽컵 최다 득점자
미트로파컵 최다 득점자


9위 루드 굴리트


'육각형 미드필더의 대명사'

출생일: 1962년 9월 1일 
국적: 네덜란드
활동기간: 1979~1998
주 소속팀: AC 밀란

오렌지 삼총사의 일원이자 피파 시리즈 최고의 선수로 꼽혔지만 실제로도 짧은 기간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손꼽히던 시절이 있었으며 압도적인 피지컬과 100m를 10초대에 주파하는 빠른 스피드는 물론 우수한 테크닉과 축구 지능이 모두 뛰어나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을 볼 수 있었다.

페예노르트에서 1983-84 시즌 에레데비시와 KNVB컵 더블 우승을 이끌며 네덜란드 올해의 선수 자리에 올랐으며 에인트호번으로 이적한 뒤에는 에레데비시 2연패를 이루고 1986년에도 또 다시 네덜란드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다. AC 밀란으로 이적해 발롱도르를 탔으며 사키 체제의 밀란 제너레이션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세리에 A 3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2연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이뤄냈다.

이 만능맨은 오랑예 군단의 유니폼을 입고도 두 차례의 유럽 선수권 대회와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 참가했으며 특히 1988년에 열린 유로에서는 팀의 우승에 크게 공헌하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은 물론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2위를 기록했다. 이후 1992년에 열린 유로에서도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지만 월드컵에서는 능력을 다 펼치지 못한 부분이 아쉽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옹즈 드 옹즈 3회 선정: (1987, 1988, 1989)
월드 사커지 선정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 2회 수상: (1987, 1989)
옹즈도르 2위 2회: (1987, 1989)
네덜란드 올해의 선수 2회 수상: (1984, 1986)
1986 네덜란드 골든슈
1987 네덜란드 올해의 스포츠 맨
1987 발롱도르 1위
1988 발롱도르 2위
1989 발롱도르 7위
1991 FIFA XI
1995-96 PFA DHFGODML XLA
1996 첼시 올해의 선수
2004 FIFA 100
2017 베를린 브리츠 선정 1980년대 최고의 선수 5위
2017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
2020 발롱도르 드림팀 공격형 미드필더 노미네이트
AC 밀란 명예의 전당 헌액


8위 지지뉴


'풋볼 마스터'

출생일: 1921년 9월 14일
국적: 브라질
활동기간: 1939~1961
주 소속팀: CR 플라멩구

펠레 이전 브라질 축구의 아이콘이었던 선수로 인사이드 포워드에게 필요한 모든 덕목을 가지고 있던 창의적인 플레이메이커로 이름을 날렸으며 이외에도 하프백이나 전방 공격수로도 훌륭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선수라 풋볼 마스터, 혹은 대가라는 뜻의 마에스트레라 불렸다.

플라멩구와 방구 AC에서 전성기를 누렸으며 전자의 클럽에서는 캄파오네투 카라오카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전성기 이후에 상파울루에서는 캄파오네투 파울리스타 우승을 이뤄내며 아데미르와 함께 브라질 최고의 스타로 군림했다.

지지뉴의 위대한 활약은 셀레상에서 더 드러났는데 코파 아메리카에 여섯 번 출전해 1949년 대회 우승과 네 번의 준우승을 기록했으며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팀은 마라카냥에서 우루과이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지지뉴는 골든볼을 수상했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1950 브라질 월드컵 골든볼
1950 브라질 월드컵 올스타 팀
1951 캄파오네투 카리오카 득점왕
1970 월드스포츠 투표 역대 최고의 하프백 11위
1999 IFFHS 선정 20세기 세계 최고의 선수 47위
1999 IFFHS 선정 20세기 남미 최고의 선수 12위
1999 IFFHS 선정 20세기 남미 최고의 선수 4위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

 

7위 지안니 리베라


'골든 보이'

출생일: 1943년 8월 18일 
국적: 이탈리아
활동기간: 1959~1979
주 소속팀: AC 밀란

이탈리아 축구를 대표하는 트레콰르티스타로 신기에 가까운 볼 컨트롤을 가진 것은 물론 양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창의적인 패싱력과 정교한 드리블로 유명했으며 1972-73 시즌에는 득점왕에 오른 적도 있었을 정도로 득점력도 훌륭했다.

AC 밀란에서 19년간 활약하며 스쿠테토 3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4회를 이뤄냈으며 유럽에서도 유러피언 컵 2회 우승과 컵 위너스 컵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72-73 시즌에는 세리에 A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으며 유러피언 컵을 우승한 1969년에는 발롱도르를 타내기도 했다.

AC 밀란에서는 뛰어난 활약을 펼쳤지만 아주리에선 다소 아쉬웠는데 19세에 데뷔해 주전 자리를 차지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의 전성기 때에는 전술상의 이유로 전반전을 포지션 라이벌 산드로 마촐라에게 양보해야 했으며 후반전에 주로 기용되었다. 그래도 유로 1968 우승과 1970 멕시코 월드컵 준우승을 이뤄냈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발롱도르 9위 2회: (1964, 1968)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 2회: (1966-67, 1970-71)
1962 발롱도르 6위
1963 발롱도르 2위
1964 에스타지오지 선정 유럽 베스트 일레븐
1965 발롱도르 7위
1967 FIFA XI
1969 발롱도르 1위 수상
1972-73 세리에 A 득점왕
1973 발롱도르 8위
1999 IFFHS 20세기 세계 최고의 선수 19위
1999 IFFHS 20세기 유럽 최고의 선수 12위
1999 IFFHS 20세기 이탈리아 최고의 선수 2위
1999 AC 밀란 세기의 선수
1999 구에린 스포르티보 선정 20세기 이탈리아 최고의 선수 3위
2004 FIFA 100
2010 구에린 스포르티보 선정 이탈리아 축구 역대 5위
2013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
2017 베를린 브리츠 선정 1960년대 최고의 선수 3위
AC 밀란 명예의 전당 헌액
2020 발롱도르 드림팀 공격형 미드필더 노미네이트


6위 레이몽 코파


'나폴레옹'

출생일: 1931년 10월 13일
국적: 프랑스
활동기간: 1949~1967
주 소속팀: 스타드 드 랭스

1950년대 유럽을 대표하는 공격형 미드필더이자 프랑스 축구를 대표하는 스타로 키가 작았지만 뛰어난 리더십과 우수한 기량을 보여줘서 나폴레옹이라 불렸던 선수다. 양발 사용 능력과 드리블 돌파 능력이 특히 대단했으며 상대 수비의 허를 찌르는 킬 패스로 스트라이커들을 지원하는데 능했으며 레알 마드리드 시절에는 측면 공격수로도 훌륭한 모습을 보여줬다.

스타드 드 랭스에서 프랑스 리그 2회 우승은 물론 1953년에는 라틴 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첫 유러피언 컵 결승전에서는 랭스를 결승에 올렸지만 레알 마드리드에게 패했다. 이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뒤에는 디 스테파노, 푸스카스에 밀려 자신의 포지션에서 플레이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웃사이드 라이트에서도 우수한 기량을 발휘하며 라 리가 2연패와 유러피언 컵 3회 연속 우승, 그리고 1957년 라틴 컵 우승에 공헌하며 저승사자 군단의 신화를 쓰는데 일부 기여하기도 했으나 랭스로 돌아가 활약하며 리그 우승 2회를 더 추가하며 랭스에서 총 4번의 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1950년대 프랑스 대표팀을 이끌고 두 번의 월드컵에 출전했으며 1958년 대회에서는 퐁텐, 장 뱅상, 피앙토니, 위스네스키와 함께 위협적인 공격 편대를 구상했으나 펠레의 브라질에 패해 3위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코파는 3골 9도움이라는 우수한 활약으로 대회 베스트 일레븐과 발롱도르를 수상함으로써 유럽 국적의 선수들 중에서는 최고의 선수임을 입증했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1956 발롱도르 3위
1957 발롱도르 4위
1958 스웨덴 월드컵 도움 1위
1958 스웨덴 월드컵 베스트 일레븐
1958 발롱도르 1위
1959 발롱도르 2위
1960 프랑스 올해의 선수
1960 발롱도르 6위
1963 FIFA XI
1963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
1984 프랑스 풋볼지 선정 역대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6위
1999 IFFHS 선정 20세기 최고의 축구선수 43위
1999 IFFHS 선정 20세기 최고의 유럽축구 27위
2000 프랑스 풋볼지 선정 프랑스 역대 축구 선수 3위
2004 프랑스 풋볼지 선정 프랑스 역대 축구 선수 3위
2004 FIFA 100
2017 베를린 브리츠 선정 1950년대 최고의 선수 5위
2020 발롱도르 드림팀 공격형 미드필더 노미네이트


5위 바비 찰튼


'그라운드의 노동자'

출생일: 1937년 10월 11일
국적: 잉글랜드
활동기간: 1956~1980
주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60년대 유럽 최고의 선수 중 하나이자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손꼽히며 공격형 미드필더의 기본적인 덕목인 드리블과 패스를 통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은 물론이고 양발 사용 능력은 축구 역사상 최고로 손꼽히며 당시에는 드물었던 플레이를 보여줬는데 공격형 미드필더가 왕성한 활동량으로 수비에 가담했고 실제로도 슬라이딩 태클과 몸싸움을 아끼지 않았던 미래지향적이며 헌신적인 플레이를 선보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전성기를 보냈으며 뮌헨 비행기 참사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버스비 감독을 도와 팀의 주장으로서 무너진 팀을 수습하며 풋볼 리그 3회 우승과 FA컵 1회 우승, 그리고 1967-68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에서 우승을 이뤄내며 명실상부 유럽 최고의 클럽으로 올라서는데 공헌했다.

삼사자 군단에서도 신화를 썼는데 1966년 조국 잉글랜드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우승에 크게 기여하며 골든볼을 수상했으며 1968 유로에서는 3위라는 호성적을 이뤄냈으며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8강에서 탈락했지만 브라질, 서독과의 경기에서 클래스를 보여줬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발롱도르 2위 2회: (1967, 1968)
1961 발롱도르 10위
1963 발롱도르 8위
1965 발롱도르 5위
1965-66 FWA 올해의 선수
1966 잉글랜드 월드컵 골든볼
1966 잉글랜드 월드컵 베스트 일레븐
1966 발롱도르 1위 수상
1970 멕시코 월드컵 베스트 일레븐
1984 프랑스 풋볼지 선정 역대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5위
1994 FIFA 월드컵 올 타임 드림팀
1998 풋볼 리그 100인의 레전드
1999 IFFHS 20세기 세계 최고의 선수 10위
1999 IFFHS 20세기 유럽 최고의 선수 6위
1999 IFFHS 20세기 잉글랜드 최고의 선수 1위
1999 IFFHS 20세기 유럽 올스타 팀 선정
2002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
2004 UEFA 주빌리 어워드 잉글랜드
2004 FIFA 100
2017 베를린 브리츠 선정 1960년대 최고의 선수 7위
2020 발롱도르 드림팀 공격형 미드필더 노미네이트


4위 지쿠


'하얀 펠레'

출생일: 1953년 3월 3일
국적: 브라질
활동기간: 1971~1994
주 소속팀: CR 플라멩구

1980년대 상반기를 수놓은 당대 최고의 선수이자 공격형 미드필더로 탄탄한 기본기와 교묘한 드리블, 창의적인 패싱 스킬과 양발 슈팅 스킬을 겸비했으며 스트라이커들을 초월하는 득점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특히 프리킥에 능해 프리킥 통산 최다골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전성기의 대부분을 플라멩구에서 보냈는데 캄파오네투 카리오카 7회 우승과 브라질 전국리그인 세리 A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1981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결승 1차전에서 멀티골을 넣어 2-1 승리를 이뤄냈으며 1승 1패 상황 최종전에서도 멀티골을 넣으며 2-0으로 승리하는데 크게 기여했으며 인터콘티넨탈컵에서는 붉은 제국이라 불리는 리버풀을 3-0으로 완파했다. 유럽 무대 도전을 위해 이탈리아 세리에 A의 우디네세로 이적해 활약하며 1983-84 시즌 올해의 선수에 올랐으나 향수병으로 다시 플라멩구로 돌아갔으며 말년에는 J 리그에서 새로운 도전을 했다.

셀레상에서는 개인은 훌륭했지만 팀 성적은 아쉬웠는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는 아르헨티나와 페루의 승부조작 의혹으로 2차 조별리그 2위로 밀려나 3위의 성적에 만족해야 했으며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본인은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드는 활약을 보이고도 이탈리아에게 역전패하며 아쉽게 탈락했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남미 올해의 선수 1위 3회: (1977, 1981, 1982)
브라질 전국 리그 베스트 일레븐 5회: (1974, 1975, 1977, 1982, 1987)
브라질 시즌 최다 득점자 5회: (1976, 1977, 1979, 1980, 1982)
캄페오나투 카라오카 득점왕 5회: (1975, 1977, 1978, 1979, 1982)
남미 올해의 선수 2위 2회: (1976, 1980)
브라질 전국 리그 최우수 선수 2회: (1974, 1982)
1978 펠레 선정 아르헨티나 월드컵 베스트 일레븐
1979 남미 올해의 선수 5위
1981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득점왕
1981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MVP
1981 인터콘티넨탈컵 MVP
1982 스페인 월드컵 브론즈슈
1982 스페인 월드컵 대회 베스트 일레븐
1983 월드 사커지 선정 올해의 선수
1984 세리에 A 올해의 선수
1985 남미 올해의 선수 6위
1998 피파 선정 20세기 월드 베스트 일레븐
1999 IFFHS 20세기 세계 최고의 선수 14위
1999 IFFHS 20세기 남미 최고의 선수 5위
1999 IFFHS 20세기 브라질 최고의 선수 3위
1999 IFFHS 20세기 유럽 올스타 팀 선정
1999 FIFA 20세기 최고의 선수 공동 7위
2004 FIFA 100
2017 베를린 브리츠 선정 1980년대 최고의 선수 3위
2020 발롱도르 드림팀 공격형 미드필더 노미네이트
플라멩구 역대 최다 득점자


3위 지네딘 지단


'결승전의 주인공'

출생일: 1972년 6월 23일
국적: 프랑스
활동기간: 1989~2006
주 소속팀: 유벤투스

1990년대 후반기와 2000년대 상반기에 호나우두와 함께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던 선수로 드넓은 시야와 신속정확한 판단력, 그리고 우아한 볼 컨트롤 능력과 창의적인 패스로 경기장을 지배하는 마에스트로였는데 신체 능력도 우수해 탈압박에도 능했으며 특히 큰 경기에서의 클러치 능력이 빛나던 선수였다.

보르도와 유벤투스,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약했으며 유벤투스에서는 세리에 2연패와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2회라는 성적을 거뒀으며 세계 최고 이적료를 갱신하고 이적한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2001-02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의 발리 슈팅을 활용한 결승골과 2002-03 시즌 라 리가 우승에 기여한 활약으로 다소 꾸준하게 활약하지 못하고 엘 클라시코에서 약한 모습을 보여줬음에도 레알 마드리드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지단의 백미는 클럽 활약이 아닌 역시 레 블뢰의 최전성기를 이끈 활약상인데 유로 1996부터 2006 독일 월드컵까지 모든 대회를 참가했으며 유로 1996과 2002 한일월드컵을 제외한 모든 대회에서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고 특히 1998 프랑스 월드컵과 유로 2000은 우승을 차지했다. 1998년에는 결승전에서 멀티골을 득점하는 맹활약을 앞세워 발롱도르를 수상했으며 유로 2000과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대회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피파 올해의 선수 3회 수상: (1998, 2000, 2003)
UEFA 올해의 팀 3회 선정: (2001, 2002, 2003)
옹즈도르 2위 3회: (1997, 2002, 2003)
발롱도르 5위 2회: (2003, 2006)
이탈리아 세리에 A 올해의 외국인 선수 2회 수상: (1996-97, 2000-01)
1993-94 프랑스 리그 영 플레이어 상
1995-96 프랑스 리그 올해의 선수
1997 발롱도르 3위
1998 옹즈도르 1위 수상
1998 발롱도르 1위 수상
1999 옹즈도르 3위
2000 UEFA 유로 MVP
2000 UEFA 유로 팀 오브 더 토너먼트
2000 프랑스 풋볼지 선정 프랑스 역대 축구 선수 2위
2000 발롱도르 2위
2001-02 라 리가 올해의 외국인 선수
2002 발롱도르 4위
2004 UEFA 유로 팀 오브 더 토너먼트
2004 프랑스 풋볼지 선정 프랑스 역대 축구 선수 2위
2004 FIFA 100
2006 독일 월드컵 골든볼
2006 독일 월드컵 올스타 팀
2016 UEFA 유로 올 타임 일레븐
2017 베를린 브리츠 선정 2000년대 최고의 선수 1위
2020 발롱도르 드림팀 공격형 미드필더 4위 (실버 팀)


2위 미셸 플라티니


'축구 대통령'

출생일: 1955년 6월 21일 
국적: 프랑스
활동기간: 1972~1987
주 소속팀: 유벤투스

1980년대 상반기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로 1983년부터 1985년까지 발롱도르 3회 연속 수상을 기록하며 남미의 지쿠, 디에고 마라도나에 대한 유럽의 대답이라 불렸다. 드넓은 시야와 창의적인 패싱력을 바탕으로 하는 플레이메이킹은 일품이었으며 경기가 안 풀릴 때에는 3선 지역까지 내려가서 볼을 순환시켰다. 그리고 전방에서 동료들과 연계하며 많은 득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훌륭한 킥력을 바탕으로 하는 롱 패스는 당대를 넘어 역대에서도 최고라 할 만했다.

셍테티엔과 유벤투스에서 전성기를 누렸으며 전자의 클럽에서는 프랑스 리그 우승을 아뤄냈으며 후자의 클럽에서는 두 번의 세리에 A 우승과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 그리고 1983-84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을 우승했으며 1984-85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을 우승하며 유벤투스 역사상 최초의 빅 이어 달성에 큰 공을 세우며 단 5년만 활약하고도 유벤투스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반드시 거론될 정도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이러한 대단한 활약이 레 블뢰에서도 이어졌는데 티가나, 지레스, 루이 페르난데스와 함께 마법의 사각형이라 불리는 중원 조합을 구성해 1982 스페인 월드컵과 1986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4강에 진출했으며 유로 1984에서는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유로 1984에서의 활약이 일품이었는데 경기에 끼치는 영향력이 대단했음은 물론 단일대회 5경기 9골을 기록하며 2021년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경신할 때까지 유로 역대 최다 득점자에 이름을 올렸었다. 호날두가 다섯 대회에서 득점을 기록한 것을 생각하면 다섯 경기에서 9골이나 득점한 플라티니의 활약이 얼마나 대단한 지 알 수 있다. 이때의 활약으로 당연하게도 1984년 발롱도르를 수상한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발롱도르 1위 3회 수상: (1983, 1984, 1985)
옹즈 드 옹즈 6회 선정
옹즈도르 1위 3회 수상: (1983, 1984, 1985)
월드 사커지 선정 올해의 선수 2회: (1984, 1985)
발롱도르 3위 2회: (1977, 1980)
발롱도르 5위 2회: (1976, 1979)
프랑스 올해의 선수 2회: (1976, 1977)
1982 스페인 월드컵 올스타 팀
1983-84 시즌 구에린 도르
1984 UEFA 유로 MVP
1984 UEFA 유로 득점왕
1984 UEFA 유로 올스타 팀
1984 프랑스 풋볼지 선정 역대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4위
1984-85 유러피언 컵 득점왕
1994 FIFA 월드컵 올 타임 드림팀
1999 IFFHS 20세기 세계 최고의 선수 7위
1999 IFFHS 20세기 유럽 최고의 선수 4위
1999 IFFHS 20세기 프랑스 최고의 선수 1위
1999 FIFA 20세기 최고의 선수 공동 7위
2000 프랑스 풋볼지 선정 프랑스 역대 축구 선수 1위
2004 프랑스 풋볼지 선정 프랑스 역대 축구 선수 1위
2004 UEFA 주빌리 어워드 프랑스
2004 FIFA 100
2011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
2017 유벤투스 역대 베스트 일레븐
2017 베를린 브리츠 선정 1980년대 최고의 선수 2위
2020 발롱도르 드림팀 공격형 미드필더 5위 (브론즈 팀)


1위 디에고 마라도나


'축구의 마신'

출생일: 1960년 10월 30일
국적: 아르헨티나
활동기간: 1976~1997
주 소속팀: SSC 나폴리

펠레, 메시와 함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손꼽히며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생각하는 아르헨티나 역대 최고의 축구 선수를 넘어 스포츠 스타이며 마라도나를 숭배하는 종교도 있을 정도로 자국에서 사랑을 받았다.

축구 역사상 최고의 볼 컨트롤러이자 드리블러로 손꼽히며 현대 축구였다면 퇴장당했을 강력한 태클도 가볍게 무시했으며 오렌지도 축구공 마냥 가지고 놀 수 있었던 기막힌 볼 컨트롤 능력과 사방에 눈이 달려있다고 평가받는 압도적인 시야와 예측을 불허하는 창의적인 패스에서 나오는 플레이메이킹 능력은 물론 강력한 몸싸움 능력과 스테미너에 데드볼까지 능했던 완벽한 선수로 1979년, 즉 만 19세의 나이에 이미 펠레에 견줬던 화려한 선수였으며 여기에 리더십마저 겸비해 동료 선수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구단 보드진과 협상하기도 했다.

아르헨티노 주니오스에서 이미 세계 정상급 선수로 올라섰으며 보카 주니오스의 1981 메트로폴리타노(전기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바르셀로나에서는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여줬지만 세리에 A 중하위권 나폴리에 가서는 인테르와 AC 밀란, 유벤투스 같은 북부의 전통 강호를 제치고 세리에 A 2회 우승은 물론 1986-87 시즌에는 리그에 이어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 더블을 달성했으며 1988-89 UEFA컵 우승을 이뤄내며 전설의 반열에 올랐으며 패배에 익숙하던 나폴리 선수들에게 위닝 멘탈리티를 선물했다.

라 알비셀레스테에서는 클럽 활약을 능가하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줬는데 네 번의 월드컵과 세 번의 코파 아메리카 유니폼을 입었으며 특히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보여준 5골 5도움이라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는 단일 대회 역대 최고의 활약으로 평가받으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무뎌진 대표팀을 이끌고도 팀을 결승에 올려놓으며 브론즈볼을 수상했다.

"경기장에서 뛸 땐 삶도 사라져요. 문제들도 사라지고, 모든 게 잊히죠."

"파란색이죠. 나폴리 시민을 위한 파란색. 나폴리에 살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가 어떤 취급을 당했는지 상상도 못할 거예요. 그랬기 때문에 시민들은 이번 승리를 누릴 자격이 있어요."

"그 때 공을 강타한 것은 나의 손이 아니라 신의 손이었다."

"유럽 선수들은 대개 공을 제압하여 통제하는데 많은 공을 들인다. 하지만 나는 공을 친구로 대한다. 경기 중에 내 친구가 어디로 가든지 하고 싶은대로 하게 놔둔다."

주요 개인 커리어와 타이틀

남미 올해의 선수 1위 6회: (1979, 1980, 1986, 1989, 1990, 1992)
아르헨티나 프리미어 디비시온 득점왕 5회 수상
아르헨티나 올해의 선수 4회 선정: (1979, 1980, 1981 1986)
프랑스 풋볼지 선정 명예 발롱도르 2회 수상: (1986, 1990)
옹즈도르 2회 수상: (1986, 1987)
1981 남미 올해의 선수 2위
1982 남미 올해의 선수 3위
1985 구에린 도르
1986 멕시코 월드컵 골든볼
1986 멕시코 월드컵 실버슈
1986 멕시코 월드컵 대회 올스타 팀
1987-88 세리에 A 득점왕
1987-88 코파 이탈리아 득점왕
1990 이탈리아 월드컵 브론즈볼
1990 이탈리아 월드컵 대회 올스타 팀
1994 FIFA 월드컵 올 타임 드림팀
1998 20세기 세계 올스타 팀
1999 IFFHS 20세기 세계 최고의 선수 5위
1999 IFFHS 20세기 남미 최고의 선수 3위
1999 IFFHS 20세기 아르헨티나 최고의 선수 2위
1999 FIFA 20세기 최고의 선수 공동 3위
2004 FIFA 100
2015 아르헨티나 축구협회 선정 올 타임 일레븐
2017 베를린 브리츠 선정 1980년대 최고의 선수 1위
2020 발롱도르 드림팀 공격형 미드필더 2위 (골드 팀)
2021 IFFHS 선정 올 타임 월드 드림팀
2021 IFFHS 선정 올 타임 남미 드림팀


추가로 거론할 수 있는 위대한 공격형 미드필더들

아돌포 발론시에리


출생일: 1897년 7월 27일
국적: 이탈리아
활동기간: 1919~1944
주 소속팀: FC 토리노

 

주제프 사미티에르


출생일: 1902년 2월 2일
국적: 스페인
활동기간: 1919~1939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라르비 벤바렉


출생일: 1917년 6월 16일
국적: 모로코→프랑스
활동기간: 1930~1955
주 소속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윌프 매니언


출생일: 1918년 5월 16일
국적: 잉글랜드
활동기간: 1936~1958
주 소속팀: 미들즈브러 


칼 아게 한센


출생일: 1921년 7월 4일
국적: 덴마크
활동기간: 1941~1957
주 소속팀: 유벤투스


주제 트라바수스


출생일: 1926년 2월 22일
국적: 포르투갈
활동기간: 1944~1959
주 소속팀: 스포르팅 리스본


에르네스토 그리요


출생일: 1929년 10월 1일
국적: 아르헨티나
활동기간: 1949~1966
주 소속팀: 인데펜디엔테


움베르토 마스치오


출생일: 1933년 2월 20일
국적: 아르헨티나
활동기간: 1953~1968
주 소속팀: 라싱 클루브


루이스 아라고네스


출생일: 1938년 7월 28일
국적: 스페인
활동기간: 1957~1974
주 소속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헬무트 할러


출생일: 1939년 7월 21일
국적: 독일
활동기간: 1957~1979
주 소속팀: 볼로냐 FC 

 

아데미르 다 기아


출생일: 1942년 4월 3일
국적: 브라질
활동기간: 1960~1977
주 소속팀: 파우메이라스


마틴 피터스


출생일: 1943년 11월 8일
국적: 잉글랜드
활동기간: 1959~1983
주 소속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빌리 반 데르 카일런


출생일: 1946년 12월 6일
국적: 네덜란드
활동기간: 1964~1982
주 소속팀: PSV 에인트호번 


흐리스토 보네프


출생일: 1947년 2월 3일
국적: 불가리아
활동기간: 1964~1984
주 소속팀: PFC 로코모티프 플로브디프


안토닌 파넨카


출생일: 1948년 12월 2일 
국적: 체코
활동기간: 1967~1993
주 소속팀: 보헤미안스 프라하


파울로 세자르 카주


출생일: 1949년 6월 16일
국적: 브라질
활동기간: 1966~1983
주 소속팀: 보타포구


다비드 키피아니


출생일: 1951년 11월 18일
국적: 조지아
활동기간: 1968~1982
주 소속팀: 디나모 트빌리시


울리 회네스


출생일: 1952년 1월 5일
국적: 독일
활동기간: 1970~1979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지르세우


출생일: 1952년 6월 15일
국적: 브라질
활동기간: 1970~1992
주 소속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세사르 쿠에토


출생일: 1952년 6월 16일
국적: 페루
활동기간: 1968~1991
주 소속팀: 알리안사 리마


노르베르토 알론소


출생일: 1953년 1월 4일
국적: 아르헨티나
활동기간: 1970~1987
주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펠릭스 마가트


출생일: 1953년 7월 26일
국적: 독일
활동기간: 1972~1986
주 소속팀: 함부르크 SV


티보르 닐라시


출생일: 1955년 1월 18일
국적: 헝가리
활동기간: 1972~1988
주 소속팀: 페렌츠바로시


사페트 수시치


출생일: 1955년 4월 13일
국적: 보스니아
활동기간: 1973~1992
주 소속팀: 파리 생제르맹


프랑크 아르네센


출생일: 1956년 9월 30일
국적: 덴마크
활동기간: 1975~1988
주 소속팀: 아약스


글렌 호들


출생일: 1957년 10월 27일
국적: 잉글랜드
활동기간: 1975~1995
주 소속팀: 토트넘 핫스퍼


훌리오 세사르 우리베


출생일: 1958년 5월 9일
국적: 페루
활동기간: 1975~1993
주 소속팀: 스포르팅 크리스탈


호르헤 부루차가


출생일: 1962년 10월 9일
국적: 아르헨티나
활동기간: 1979~1998
주 소속팀: 인데펜디엔테


호세 마리 바케로


출생일: 1963년 2월 11일 
국적: 스페인
활동기간: 1980~1997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올렉시 미하일리첸코


출생일: 1963년 3월 30일
국적: 우크라이나
활동기간: 1981~1996
주 소속팀: 디나모 키이우 


주세페 지안니니


출생일: 1964년 8월 20일
국적: 이탈리아
활동기간: 1981~1999
주 소속팀: AS 로마


아베디 펠레


출생일: 1964년 11월 5일
국적: 가나
활동기간: 1980~2000
주 소속팀: 올림피크 드 마르세유


드라간 스토이코비치


출생일: 1965년 3월 3일
국적: 세르비아
활동기간: 1981~2001
주 소속팀: 츠르베나 즈베즈다


하이


출생일: 1965년 5월 15일
국적: 브라질
활동기간: 1984~2000
주 소속팀: 상 파울루 FC


라파엘 마르틴 바스케스


출생일: 1965년 9월 25일 
국적: 스페인
활동기간: 1983~1998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엔조 시포


출생일: 1966년 2월 19일
국적: 벨기에
활동기간: 1983~2001
주 소속팀: RSC 안더레흐트


크라시미르 발라코프


출생일: 1966년 3월 29일
국적: 불가리아
활동기간: 1983~2003, 2005
주 소속팀: VfB 슈투트가르트


즈보니미르 보반


출생일: 1968년 10월 8
국적: 크로아티아
활동기간: 1985~2001
주 소속팀: AC 밀란


토마스 브롤린


출생일: 1969년 11월 29일
국적: 스웨덴
활동기간: 1984~1998
주 소속팀: 파르마


루이스 엔리케


출생일: 1970년 5월 8일
국적: 스페인
활동기간: 1988~2004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후이 코스타


출생일: 1972년 3월 29일
국적: 포르투갈
활동기간: 1990~2008
주 소속팀: 피오렌티나


주니뉴 페르남부카누


출생일: 1975년 1월 30일
국적: 브라질
활동기간: 1993~2013
주 소속팀: 올림피크 리옹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


출생일: 1975년 3월 9일
국적: 아르헨티나
활동기간: 1994~2014, 2016-17
주 소속팀: SS 라치오


후안 카를로스 발레론


출생일: 1975년 6월 17일
국적: 스페인
활동기간: 1994~2016
주 소속팀: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후안 로만 리켈메


출생일: 1978년 6월 24일
국적: 아르헨티나
활동기간: 1996~2014
주 소속팀: 보카 주니오스


베슬리 스네이더르


출생일: 1984년 6월 9일
국적: 네덜란드
활동기간: 2002~2019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다비드 실바


출생일: 1986년 1월 8일
국적: 스페인
활동기간: 2003~
주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 


메수트 외질


출생일: 1988년 10월 15일
국적: 독일
활동기간: 2006~
주 소속팀: 아스날 FC


하메스 로드리게스


출생일: 1991년 7월 12일
국적: 콜롬비아
활동기간: 2006~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이스코


출생일: 1992년 4월 21일
국적: 스페인
활동기간: 2009~2022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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