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고의 윙어 Top 11~20

국가의 영웅들/브라질

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고의 윙어 Top 11~20

토르난테 2025. 3. 27.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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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일은 2025년 3월 27일 기준입니다.

 


20위 윌리안

 


생년월일: 1988년 8월 9일
A매치 기록: 70경기 9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첼시 FC

2010년대 브라질과 첼시의 주전급 윙어로 다른 브라질 스타일의 윙어와는 다르게 화려함은 다소 부족하지만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드리블은 물론 왕성한 활동량까지 겸비해 수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며 토르난테의 역할도 수행했다.

샤흐타르 도네츠크와 첼시에서 전성기를 누렸는데 전자의 구단에서는 우크라이나 프리미어리그 4회 우승과 우크라이난 컵 3회 우승, 그리고 2008-09 시즌 UEFA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2010-11 시즌에는 우크라이나 프리미어리그 MVP를 수상했으며 후자의 구단에서는 프리미어리그 2회 우승과 2017-18 시즌 FA컵, 그리고 2018-19 시즌 유로파 리그 우승에 공헌했으며 2015-16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올해의 스쿼드와 첼시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우수한 모습을 보여줬다.

셀레상에서는 클럽에서보다도 출중한 활약을 보여줬는데 특히 2018 러시아 월드컵 16강전에서는 멕시코를 상대로 도움을 기록하며 활약했으며 2019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백업 멤버로 우승을 경험했다.

 

19위 하피냐

 


생년월일: 1996년 12월 14일
A매치 기록: 32경기 11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2024-25 시즌을 기점으로 세계적인 수준의 윙어로 올라선 2선 자원으로 우수한 공간지각력과 정확한 판단력에서 나오는 명민한 오프 더 볼 움직임, 이타적인 활동량에서 나오는 적극적인 수비가담 및 전방압박, 그리고 날카롭고 정교한 왼발 킥을 통해 경기를 풀어가는 플레이메이커 스타일로 2024-25 시즌에는 그동안 약점으로 지적받던 오른발 사용 능력과 골 결정력이 개선되었으며 한층 더 간결해진 퍼스트 터치와 볼 키핑 능력으로 온 더  볼 상황에서의 역량도 향상되어 완성형 윙어로 성장했다.

아바이 FC에서 데뷔해 포르투갈의 비토리아 기마랑이스로 이적해 첫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스포르팅 리스본과 스타드 렌을 거쳐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리즈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바르셀로나로 입단했을 땐 처음에는 고전을 면치 못하며 부진하다가 2024-25 시즌, 한지 플릭 체제에서 여러 단점을 개선하면서 세계구급 윙어로 성장해 바르셀로나가 라리가 선두 및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유력 후보로 이끌었음은 물론 2025 수페르코파 에스파냐 결승전에서는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멀티골을 득점해 5-2 대승을 이끌며 결승전 KOTM에 선정되었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중용받는 하피냐는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호드리구를 제치고 주전자리를 차지하며 조국의 8강행을 기록했고 2024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는데 8강에서 탈락하며 전반적으로 부진하였던 브라질 대표팀 선수들 중에서 유일하게 이름값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그 결과 8강에서 낙마했음에도 코파 아메리카 팀 오브 더 토너먼트에 선정되었다.

 

18위 레오나르두

 


생년월일: 1969년 9월 5일
A매치 기록: 55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AC 밀란

1990년대 브라질 축구계를 수놓은 멀티플레이어로 빠른 스피드와 우수한 테크닉을 겸비해 주로 레프트윙이나 공격형 미드필더에서 활약했지만 거기에 특유의 왕성한 활동량과 높은 수준의 전술안을 겸비해 수비형 미드필더나 중앙 미드필더, 그리고 풀백으로도 활약했다.

플라멩구에서 데뷔한 직후 1987 시즌 세리 A 우승을 이뤄낸 레오나르두는 이후 상 파울루에서는 1991년 브라질 세리 A 우승을 이뤄내면서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음은 물론 인터콘티넨탈컵 우승을 이뤄내는 등 구단의 황금기를 함께했고 AC 밀란에서는 1998-99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다.

셀레상에서도 특유의 다재다능함으로 팀에 도움이 된 레오나르두는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레프트백과 레프트윙으로 활약하며 우승을 도왔으며 1997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팀의 우승을 이뤄냈고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레프트윙을 맡아 팀의 결승 진출을 이뤄낸다.

 

17위 지우베르트 아우베스

 


생년월일: 1950년 12월 24일
A매치 기록: 41경기 13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플루미넨시

1970년대 하반기에 전성기를 맞아 이름을 날렸던 다재다능한 공격수로 근육으로 다져진 강력한 피지컬을 가지고 있어 상대 수비수들과의 경합에서 쉽게 밀리지 않아 팬들로부터 버팔로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오른발과 왼발을 모두 능숙하게 사용해 다양한 득점 패턴을 가져갔으며 중앙과 양 측면을 모두 소화할 수 있었다.

플루미넨시에서 전성기를 누린 아우베스는 히벨리누, 나르시소 도르발 등의 공격진들과 함께 삼색의 기계라 불리는 조직적인 공격 조합을 이끌며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아우베스 개인도 1975 시즌에는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훗날 보타포구에서도 활약했다.

셀레상에서는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 주전으로 활약한 아우베스는 나름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으나 아르헨티나와 페루측의 승부조작이 의심되는 경기 때문에 골득실차에서 밀려 한 번도 지지 않고도 3위 결정전으로 밀려났으며 3위 결정전에서는 이탈리아를 상대로 이기며 3위를 차지하는데 기여했다.

 

16위 프리아사

 


생년월일: 1924년 10월 20일
A매치 기록: 13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바스쿠 다 가마

1940년대와 50년대에 걸쳐 브라질 무대에서 활약했던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빠른 스피드를 활용해 중앙으로 침투해 벼락같은 슈팅으로 득점하는 컷인 플레이에 능했고 기존 측면 공격수의 기본 덕목인 크로스 역시 능했음은 물론 축구 지능이 높아 아웃사이드 라이트 이외에도 인사이드 라이트와 센터 포워드도 소화할 수 있는 다재다능한 공격수였다.

승리의 급행열차라 불리는 바스쿠 다 가마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프리아사는 바스쿠 다 가마에서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2회 우승과 1948 시즌 남아메리카 클럽 챔피언십에서 우승했고 이후 상파울루로 이적한 뒤에는 1949 시즌에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우승과 득점왕을 동시에 차지했다.

셀레상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던 프리아사는 1949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뤄냈고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결승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선제골을 득점했음에도 우루과이의 동점골과 역전골로 인해 준우승을 거두며 선제골이 빛을 발하는 비극을 겪었다.

 

15위 도르발

 


생년월일: 1935년 2월 26일
A매치 기록: 13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0kg
주 소속팀: FC 산투스

1960년대 상반기 브라질 무대 정상급의 라이트윙으로 빠른 스피드와 상대방을 속이는 교묘한 발재간을 활용한 드리블 돌파와 뛰어난 슈팅력을 겸비한 완성형 윙어였다.

산투스에서 구단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누린 도르발은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6회 우승과 전국리그 5연패를 달성했고 국제무대인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콘티넨탈컵에서도 2연패를 기록하며 당대 최강의 팀으로 군림했다.

특히 1962년에는 주립리그인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와 전국리그를 모두 석권함은 물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는 당대 남미 최강의 팀인 페냐롤을 꺾으며 트레블을 달성했고 추가로 인터콘티넨탈컵에서는 유럽 최강의 팀인 에우제비우의 벤피카를 꺾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소속팀에서는 황금기를 이끈 레전드 중 하나로 평가받지만 셀레상에서는 가린샤 등 여러 훌륭한 측면 공격수로 인해 거의 소집되지 못했으며 1959 코파 아메리카에서 가린샤의 백업 역할을 수행했다.

 

14위 에두

 


생년월일: 1949년 8월 6일
A매치 기록: 42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67cm / 몸무게 64kg
주 소속팀: 산투스 FC

만 16세의 어린 나이로 브라질 대표팀에 콜업되었던 초신성으로 독수리라 불릴 정도로 빠른 스피드와 영리한 드리블 돌파 능력을 보여주며 좌우측 윙어와 처진 공격수를 소화했다.

산투스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에두는 산투스에서만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4회 우승을 이뤄냈고 1968년에는 전국 리그 우승과 인터컨티넨탈 슈퍼컵 우승을 이뤄내는 등 맹활약했으나 구단 측이 펠레의 인기를 이용한 친선 경기를 자주 가지면서 혹사의 희생양이 되었기에 빠르게 몰락했다.

셀레상에서는 세 번의 월드컵에 참가한 에두는 주로 자이르지뉴의 백업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며 1970 멕시코 월드컵 전승우승과 1974 서독 월드컵 4위를 경험했다.

 

13위 자이르 다 코스타

 


생년월일: 1940년 7월 9일
A매치 기록: 1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67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유럽 축구 최초의 수비형 윙어로 평가받는 선수로 인테르에서 활약하던 시절에 에레라 감독의 지시로 측면 공격수임에도 번번이 수비에 가담하며 팀의 공수 밸런스를 안정시켜 귀환자라는 뜻의 토르난테라 불렀으며 공격적인 재능도 빼어나 브라질 윙어 답게 드리블 돌파에 능했으며 날카로운 오른발 킥으로 여러 득점 기회를 만들었다.

엘레니오 에레라가 이끄는 그란데 인테르 시절에 토르난테 역할을 맡아 활약한 자이르 다 코스타는 세리에 A 4회 우승 및 유러피언 컵 2회 우승, 그리고 인터콘티넨탈컵 2회 우승을 이뤄냈고 이후 브라질로 돌아와서는 산투스에서 활약하며 1973년 캄파오네투 파울리스타 우승에 공헌했다.

단 유럽과 남미를 오가기 어려운 시대 상황상 그는 셀레상에서 활약하지 못했는데 1962 칠레 월드컵에서는 가린샤의 백업으로 참가했으나 하필이면 핵심 선수 가린샤가 주전 경쟁자라 단 한 경기에도 나오지 못했으며 셀레상 유니폼을 입고는 웨일스와의 친선 경기에 출전한 게 그의 유일한 출전 기록이다.

 

12위 헤나투 가우슈

 

생년월일: 1962년 9월 9일
A매치 기록: 41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그레미우

2000년대 대한민국에는 이천수가 있었다면 1980년대 브라질에는 헤나투 가우초가 있었다. 무절제한 사생활과 폭력적인 성격을 겸비해 숱한 구설수에 올랐으나 상대 수비수 세네 명이 달려들어도 공을 뺏기지 않았을 정도로 우수한 전진드리블과 유려한 탈압박은 물론 다양한 패스를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활용해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그레미우에서 전성기를 누린 헤나투 가우슈는 캄페오나투 가우초 2회 우승과 1983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에 이어 인터콘티넨탈컵에서도 유럽 챔피언 함부르크를 상대로 멀티골을 득점하며 세계 클럽 챔피언에 올랐고 플라멩구에서는 브라질 전국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크루제이루에서는 수페르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캄페오나투 미네이루에서 우승했으며 플루미넨세에서는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우승을 이뤄내며 3개 주립 리그를 석권했다. 가우슈 개인도 브라질 전국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5회 선정되었으며 1987년에는 브라질 전국 리그 MVP를 수상했다.

셀레상에서도 1983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을 이뤄내며 화려하게 데뷔한 헤나투 가우슈는 1989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백업 멤버로 우승을 차지했으나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으나 1991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다시 주전 자리를 차지해 준우승을 이뤄냈다.

 

11위 카누테이루

 


생년월일: 1932년 9월 24일
A매치 기록: 19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상 파울루

좌측면의 가린샤라 불렸던 1950년대 브라질의 또 다른 천재로 질풍 같은 스피드와 가린샤에 버금가는 드리블 돌파는 물론 면도날 같은 왼발 크로스는 물론이고 우수한 슈팅 스킬을 통해 직접 득점에도 능했다.

상 파울루 구단에서는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는 카누테이루는 1957 캄파오네투 파울리스타 우승을 이끌었으며 특히 같은 주립리그에 소속된 펠레와의 라이벌리도 유명했는데 1958년 파카엠부 경기장에서의 산투스와의 우천 경기에서 펠레와 카누테이루가 서로 두 골씩 득점해 2-2로 비긴 경기는 희대의 명승부로 회자된다.

다만 이러한 우수한 퍼포먼스에도 불구하고 알콜 중독으로 인해 자신의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했던 카누테이루는 술에 취해 대표팀에서 행패를 부리는 바람에 대표팀에서 제명당했고 결국 그 술로 인한 병으로 만 41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을 정도로 술이 원수라는 말이 어울리는 인물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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