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 공격수 Top 10

국가의 영웅들/북유럽

북유럽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 공격수 Top 10

토르난테 2025. 3. 4.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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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일은 2025년 3월 2일 기준입니다.

*북유럽에 해당하는 국가는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아이슬란드, 페로 제도 6개 국가입니다.

 


10위 오베 킨드발

 


생년월일: 1943년 5월 16일
국적: 스웨덴
A매치 기록: 43경기 16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69kg
주 소속팀: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스웨덴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으로 체격은 작았지만 민첩한 몸놀림과 따라잡기 어려운 순간스피드를 바탕으로 신속하게 빈 공간으로 침투해 예측을 불허하는 오른발 슈팅으로 유명했고 유려한 볼 컨트롤과 패스센스를 바탕으로 공격형 미드필더나 처진 공격수에서도 훌륭한 역량을 발휘했다.

IFK 노르셰핑에서 데뷔해 알스베스칸 2연패를 이뤄내며 주목받은 킨드발은 페예노르트로 이적해서는 전성기를 누리며 에레데비시 2회 우승 및 1968-69 시즌에는 KNVB컵까지 우승해 더블을 이뤄냈고 유럽 무대에서도 인터토토컵 2회 우승을 시작으로 1969-70 시즌에는 하펠 체제에서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를 이룩한 일등 공신이자 구단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추앙받았다.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한 킨드발 개인도 1966년 알스베스칸 득점왕 미 굴드불렌을 수상했고 에레데비시 득점왕 3회 수상 및 1969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요한 크루이프와 함께 공동 4위에 올랐다. 그러나 월드컵에서의 활약은 다소 아쉬웠다.

 

9위 스벤 리델

 


생년월일: 1905년 1월 14일
국적: 스웨덴
A매치 기록: 43경기 49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외리뤼테 IS

1920년대 스웨덴 축구를 이끌었던 스웨덴 축구 최초의 스타 중 한 명으로 주로 인사이드 포워드 포지션에서 활약했는데 화려한 볼 컨트롤을 활용한 교묘한 드리블과 강력한 슈팅력을 이용한 득점력으로 이름을 날리며 팬들로부터 트롤구벤, 즉 괴물이라 불렸다.

홀멘스에서 데뷔해 외리튀레에서 전성기를 누린 리델은 외데고르에서 알스베스칸 2회 우승을 이뤄냈고 스웨덴 대표팀에서는 1924 파리 올림픽에서 5골을 득점했으며 동메달 결정전 재경기에서 선제골을 득점하며 네덜란드를 꺾고 동메달을 획득하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1924-1928 노르딕 풋볼 챔피언십에서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스웨덴 대표팀 A매치 통산 득점 2위에 랭크된 리델은 A매치에서만 9회의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스웨덴 대표팀 최다 해트트릭 기록을 보유했고 사후에는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8위 헤닝 옌센

 


생년월일: 1949년 8월 17일
국적: 덴마크
A매치 기록: 21경기 9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1970년대 북유럽 정상급의 처진 공격수로 우수한 테크닉과 영리한 축구 지능으로 처진 공격수 위치에서 활약하며 플레이메이커로서 공격라인을 지휘하는 능력도 대단해 펄스 나인 역할을 맡아 하인케스, 시몬센과 함께 스위칭 플레이를 하며 상대 수비진을 폭격했으며 화려한 중거리 슈팅과 우수한 헤더로 상대의 골망을 가르는 부분에도 능했다.

자국리그에서 활약하다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전성기를 누린 옌센은 분데스리가 2연패와 1972-73 시즌 포칼 우승과 1974-75 시즌 UEFA컵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에 크게 기여한 옌센은 개인으로도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을 4회 받았고 1975-76 시즌 전반기 평가에서는 월드클래스 등급에 올랐다.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분데스리가 무대를 평정한 옌센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해 라리가 2연패를 이뤄냈고 1979-80 시즌에는 에레데비시 우승을 이뤄냈다. 비록 덴마크 대표팀으로 이뤄낸 성과는 미미하지만 옌센 개인의 활약은 높게 평가받아 덴마크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7위 욘 한센

 


생년월일: 1924년 6월 24일
국적: 덴마크
A매치 기록: 8경기 10골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유벤투스 FC

1940년대 덴마크 축구를 이끌었던 인사이드 포워드로 플레이메이킹 능력은 돋보이지 않았지만 기습적인 1선 침투 이후 테크니컬한 슈팅으로 득점하는데 능했고 특히 헤더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1943-44 시즌 덴마크의 볼드클루벤 프렘에서 데뷔해 데비 시즌부터 주전으로 활약하며 우승을 이끈 욘 한센은 칼 아게 프라에스트, 칼 아게 한센과 함께 데니시 삼총사를 구성해 스웨덴의 그레노리 삼총사와 라이벌을 이뤘으며 1948 런던 올림픽에서도 8강 이탈리아전에서 포트트릭을 기록하며 5-3 대승을 이끌며 4강에 올랐고 비록 스웨덴에겐 패했지만 동메달 결정전에서 영국 연합을 상대로 멀티골을 득점하며 5-3 대승을 이끌며 욘 한센 개인은 군나르 노르달과 공동 득점왕에 올랐다.

이탈리아 세리에 A의 유벤투스에서 칼 아게 프라에스트, 칼 아게 한센과 재회하며 밀란이 앞세운 그레노리 삼총사와 치열한 라이벌리를 보이며 세리에 A 2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1951-52 시즌에는 세리에 A 우승은 물론 한센 개인도 세리에 A 득점왕에 올랐다.

 

6위 엘링 홀란

 


생년월일: 2000년 7월 21일
국적: 노르웨이
A매치 기록: 39경기 38골
신체조건: 키 195cm / 몸무게 88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

차세대 최고의 스트라이커의 자리가 유력한 스트라이커로 195cm의 거구임에도 몸싸움만 강한 것이 아니라 스피드가 매우 빠른데 최고 속력 36km/h에 달하는 스피드로 순식간에 상대 배후로 침투하는 능력과 지공 시 오프 더 볼 상황에서는 상대 수비에 균열을 내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다가 동료의 파이널 패스 타이밍에 맞춰 침투하는 능력에 모두 뛰어났음은 물론 높은 골결정력을 바탕으로 한 득점력도 우수했고 패싱력도 준수했다.

자국 리그의 브뤼네와 몰데를 거쳐 레드불 잘츠부르크에서 2018-19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와 OFB컵 우승을 이뤄내며 만개한 홀란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해 정상급 선수로 도약하며 2020-21 분데스리가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고 VDV 선정 분데스리가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쳤음은 물론 2020-21 DFB포칼 결승에서는 난적 RB 라이프치히를 상대로 멀티골을 득점해 4-1 대승을 이끌었음은 물론 해당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레반도프스키, 벤제마, 살라와 같은 쟁쟁한 선수들을 제치고 득점왕 및 UEFA 올해의 공격수를 수상했다.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한 뒤에는 화룡점정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는데 공식전 54경기에 출전해 52골을 기록하며 트레블의 주역으로 활약했고 프리미어리그에서는 35경기에 출전해 36골을 득점하며 득점왕에 올랐음은 물론 FWA 올해의 선수와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영 플레이어와 올해의 선수에 동시에 선정되며 개인상을 휩쓸었고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우승에 공헌해 득점왕에 올랐다. 트레블이라는 성공적인 첫 시즌을 보낸 홀란은 2022-23 시즌 UEFA 올해의 선수, 트로페 게르트 뮐러와 옹즈도르 및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상 투표에서 2위를 차지했다.

 

5위 알란 시몬센

 


생년월일: 1952년 12월 15일
국적: 덴마크
A매치 기록: 55경기 20골
신체조건: 키 165cm / 몸무게 60kg
주 소속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덴마크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으로 화려한 드리블과 빠른 스피드로 작은 몸을 커버했으며 득점력도 훌륭했던 선수로 작지만 큰 덴마크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주 포지션인 처진 공격수 뿐만 아니라 라이트윙도 훌륭하게 소화했다.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와 FC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누렸으며 특히 전자의 클럽에서는 클럽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이뤄내며 분데스리가 3연패와 포칼 1회 우승, 그리고 UEFA컵 2회 우승과 1회 준우승과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이뤄냈고 개인적으로도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으며 1977-78 시즌 유러피언 컵 득점왕에 올랐으며 후자의 클럽에서는 코파 델 레이 우승과 UEFA 컵 위너스 컵 우승을 이뤄냈고 그 과정에서 대회 득점왕에 올랐다.

덴마크 대표팀 멤버로서도 1972 뮌헨 올림픽 멤버로 활약했으며 숙장이 되었던 1980년대 중반에 UEFA 유로 1984와 1986 멕시코 월드컵에도 덴마크를 대표해 출전했으며 은퇴한 이후에는 덴마크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4위 프레벤 엘케어

 


생년월일: 1957년 9월 11일
국적: 덴마크
A매치 기록: 69경기 38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엘라스 베로나

1980년대 중반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화려한 드리블과 강력한 피지컬을 겸비했으며 우수한 제공권에서 나오는 헤더는 물론 수비수 두세명 달고 뛰면서 파트너에게 골 찬스를 만들어주는 능력도 우수했다.

쾰른에서 서브 선수로 있다가 태도 문제로 방출당한 이후에 벨기에의 로케른에서 이름을 날린 엘케어는 엘라스 베로나에서 전성기를 맞아 독일 출신의 한스페터 브리겔과 함께 베로나의 기적적인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내며 스타덤에 올랐는데 이는 마라도나가 나폴리를 이끌고 우승한 사례나 만치니가 삼프도리아를 이끌고 우승한 사례 이상으로 기적으로 평가받는 리그 우승이었고 이때의 퍼포먼스로 발롱도르 투표에서 2위에 올랐다.

덴마크 대표팀에서도 우수한 모습을 보여주며 데니쉬 다이너마이트의 시대를 이끌었던 엘케어는 UEFA 유로 1984에서는 팀을 준결승에 올렸으며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죽음의 조라고 평가받았던 조에서 서독, 스코틀랜드, 우루과이를 모두 제압하고 조 1위로 토너먼트에 오르는데 1등 공신이었다. 특히 우루과이를 상대로 이뤄낸 해트트릭과도 같은 우수한 개인 퍼포먼스로 16강에서 탈락했음에도 대회 브론즈볼을 수상했다.

 

3위 군나르 그렌

 


생년월일: 1920년 10월 31일
국적: 스웨덴
A매치 기록: 57경기 32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AC 밀란

193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 후반까지 세계 정상급 수준을 유지하며 롱런한 인사이드 포워드로 영리한 공간 활용 능력과 동료 활용 능력은 물론 우수한 판단력으로 최적의 위치로 패스를 찔러줬으며 득점력도 훌륭했으며 특히 높은 축구 지능으로 유명해 교수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1936-37 시즌 가르다 BK에서 데뷔해 예테보리로 이적하며 1941-42 시즌 스웨덴 알스베스칸 우승을 이뤄낸 군나르 그렌은 1946-47 시즌에는 군나르 노르달을 제치고 정규리그 득점왕에 오른 그렌은 스웨덴 대표팀에서도 군나르 노르달, 닐스 리드홀름과 함께 그레노리 트리오를 구축해 대한민국을 12-0으로 대파했고 덴마크와 유고슬라비아마저 연파해 1948 런던 올림픽 축구종목에서 우승을 차지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런던 올림픽이 끝나고 세리에 A의 AC 밀란으로 노르달, 리드홀름과 함께 이적해 활약했는데 1950-51 시즌 세리에 A 우승 및 라틴컵 우승을 이뤄냈고 피오렌티나와 제노아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프로선수였기에 이탈리아에 있는 동안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의 규정에 의해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으나 1958 스웨덴 월드컵을 앞두고 리드홀름, 스코그룬트 등 해외파들과 함께 대표팀에 복귀해 스웨덴의 결승 진출에 큰 공을 세웠다.
 

 

2위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생년월일: 1981년 10월 3일
국적: 스웨덴
A매치 기록: 122경기 62골
신체조건: 키 195cm / 몸무게 95kg
주 소속팀: 파리 생제르맹

2000년대와 2010년대 세리에와 리그앙을 정복한 스트라이커로 강력한 몸싸움 능력과 부드러운 드리블과 유려한 볼 컨트롤을 모두 겸비했으며 직접 득점하는 능력은 물론 창의적인 패스로 찬스를 만드는 부분에서도 능했으며 2010-11 시즌 AC 밀란 이적 이후에는 약점으로 지적받던 제공권도 극복했다.

15년 넘게 월드클래스 레벨의 선수로 평가받았던 즐라탄은 인테르와 AC 밀란, 유벤투스, 파리 생제르맹을 포함해 여러 클럽을 돌며 모두 대단한 성과를 냈는데 아약스에서 에레데비시 우승 2회, 인테르와 밀란에서 세리에 A 도합 5회 우승을 이뤄냈고 파리 생제르맹에서는 리그앙 4연패를 이뤄내며 파리 생제르맹이 리그앙의 패자로 군림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클럽에서의 개인상 이력도 훌륭한 즐라탄은 이탈리아 무대에서는 세리에 A 올해의 외국인 선수 5회 수상 및 세리에 A 올해의 선수 3회 수상을 수상했으며 세리에 A 득점왕과 올해의 팀에도 2회 선정되었고 리그앙에서도 리그앙 올해의 팀 4회 선정, 리그앙 올해의 선수와 득점왕 각각 3회 수상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유럽 무대에서도 UEFA 올해의 팀과 ESM 올해의 팀에 각각 4회 선정:되었으며 2012-13 UEFA 챔피언스리그 도움왕과 2013-14 UEFA 챔피언스리그 올해의 스쿼드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음은 물론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서도 10회 선정되어 2013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 4위에 올랐다.

스웨덴 올해의 선수 12회 수상, 발롱도르 10위 안에 여섯 번이나 선정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빅리그에서 12회나 우승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르게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와 국가대항전에서는 다소 부진한 탓에 가진 어빌리티에 비해 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부분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1위 군나르 노르달

 


생년월일: 1921년 10월 19일
국적: 스웨덴
A매치 기록: 33경기 43골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90kg
주 소속팀: AC 밀란

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 초반 최고의 중앙 공격수로 평가받았던 188cm에 90kg에 달하는 엄청난 피지컬에서 나오는 강력한 몸싸움 능력과 벼락같은 슈팅력으로 상대 골키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스웨덴 시절 IFK 노르셰핑에서 알스베스칸 4연패를 이뤄냈고 알스베스칸 득점왕을 4회 수상한 노르달은 스웨덴 대표팀 소속으로 1948 런던 올림픽에 참가해 그레노리 트리오의 중심으로 활약하며 금메달을 획득하는데 큰 공을 새웠다.

1948 런던 올림픽 직후 함께 금메달을 목에 건 동료들인 리드홀름, 그렌과 함께 AC 밀란으로 이적한 노르달은 이탈리아 무대를 폭격하며 세리에 A 2회 우승과 라틴컵 2회 우승을 이뤄냈고 노르달 개인은 세리에 A 득점왕 5회 수상을 기록했다. 그러나 밀란으로 이적해 프로선수가 된 노르달은 아마추어들만 대표팀으로 뽑는 정책으로 인해 1950년대에는 스웨덴 대표팀으로 활약하지 못하는 비극을 겪었다.

그럼에도 1940년대의 업적으로만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노르달은 여러 대기록을 남겼는데 AC 밀란 구단 통산 최다 득점자, 세리에 A 외국인 통산 최다 득점자 및 세리에 A 최다 해트트릭을 기록했고 AC 밀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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