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3선 미드필더 Top 21~30

국가의 영웅들/독일

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3선 미드필더 Top 21~30

토르난테 2025. 1. 25.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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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독일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준일은 2025년 1월 25일입니다.

 


30위 옌스 예레미스

 


생년월일: 1974년 3월 5일
A매치 기록: 55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에 독일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수비형 미드필더로 화려함은 부족했지만 팀의 궂은일을 도맡아 했던 수비 지향적인 미드필더로서 거친 태클과 타이트한 압박, 그리고 우수한 체력을 활용한 커버플레이로 아군의 플레이메이커를 지원해 상대 중원을 지워낸 앵커맨이었다.

동독의 디나모 드레스덴의 유스 출신으로 독일이 통일된 이후에 데뷔해 활약하다가 1860 뮌헨으로 이적했고 그곳에서도 분데스리가 정상급 수비형 미드필더의 반열에 오르며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했다. 바이에른 뮌헨에서도 에펜베르크의 보디가드로 활약하며 분데스리가 6회 우승 및 DFB포칼 4회 우승, 그리고 2000-01 시즌에는 분데스리가에 이어서 UEFA 챔피언스리그와 인터콘티넨탈컵 우승에도 큰 공을 세웠다.

뮌헨의 두 클럽에서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된 예레미스는 독일 대표팀에서도 종종 소집되어 활약했지만 UEFA 유로 2000에서는 최악의 모습을 보여 대표팀 감독 리베크로부터 형편없다는 혹평을 들었고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대부분 교체출장에 그쳤으며 특히 파라과이와의 16강전에서는 선발로 나섰지만 발락과 호흡이 맞지 않아 최악의 경기력을 보여 준우승을 경험했음에도 웃지 못했다.

 

 

29위 디트마어 하만

 


생년월일: 1973년 8월 27일
A매치 기록: 59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89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리버풀 FC

현재는 바이에른과 리버풀에 대한 각종 망언으로 악명이 높지만 선수 시절에는 적절한 위치선정과 거친 태클은 물론 강한 킥력을 바탕으로 한 롱패스로 팀의 빌드업 과정에 기여도가 높았음은 물론 기습적인 중거리포로 분위기를 바꾸기도 했던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수위급 수비형 미드필더였다.

바이에른 뮌헨 유스팀에서 데뷔해 5년간 활약한 하만은 네를링거와 함께 중원에서 고군분투하며 암흑기를 극복하고 분데스리가 2회 우승 및 1995-96 시즌 UEFA컵 우승 및 1997-98 DFB포칼 우승을 이뤄냈지만 에펜베르크에게 밀려나며 프리미어리그로 떠났다. 리버풀에서는 제라드와 호흡을 맞춰 활약하면서 화려하게 부활한 하만은 2000-01 시즌 리그컵, FA컵, UEFA컵을 이뤄냈고 2001 UEFA 슈퍼컵에서는 친정팀 바이에른을 상대로 승리하는데 기여했으며 2004-05 시즌에는 '이스탄불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큰 공을 세웠고 말년에는  맨체스터 시티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가기도 했다.

독일 대표팀 소속으로도 중용된 하만은 녹슨 전차 군단 시기에 주로 활약했는데 그래도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중원에서 발락을 보좌하며 조국의 준우승에 공헌했으나 이 대회를 제외하고는 눈에 띄는 성적을 보이지 못했으며 결국 2006년 독일 월드컵 최종 명단에서 탈락한 하만은 결국 독일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한다.

 

28위 레온 고레츠카

 


생년월일: 1995년 2월 6일
A매치 기록: 57경기 14골
신체조건: 키 189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2020년대 초반 세계구급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큰 체구에서 나오는 우수한 볼키핑 능력은 물론 왕성한 활동량과 빠른 주력을 겸비해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활동했으나 창의적인 패스를 통해 풀어내며 후방 플레이메이커로서의 자질도 보여줬고 기습적인 드리블 돌파로 상대 수비진을 교란하는데도 능했고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벌크업의 정석을 보여주며 피지컬적인 부분에서도 대폭 강화되었다.

VfL 보훔에서 데뷔했으나 샬케로 이적해 자신의 재능을 처음 펼친 고레츠카는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했는데 초반에는 마른 체구로 인해 부진한 활약을 펼쳤으나 상술했듯 벌크업에 성공한 뒤로는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을 받는 등 기량이 한층 스텝업하며 2020년 6관왕을 포함해 분데스리가 5연패, DFB포칼 2회 우승 및 2019-20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고레츠카 개인도 2019-20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시즌의 스쿼드에 선정되었고 2020-21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과 키커 올해의 팀, 그리고 VDV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U-17 대표팀 시절부터 엘리트 코스를 거치며 2012년 프리츠 발터 메달 U-17 금메달 출신인 레온 고레츠카는 성인 대표팀에서도 중용받았는데 월드컵 우승 멤버들이 대거 빠진 2017 컨페드컵에서는 중원의 핵으로 활약하며 조국의 우승을 이끌며 브론즈볼과 실버부트를 수상했으나 그 뒤에는 2020-21 시즌 UEFA 네이션스 리그에서 우수한 퍼포먼스를 보인 것을 제외하면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27위 카를 알괴버

 


생년월일: 1957년 1월 5일
A매치 기록: 10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VfB 슈투트가르트

1980년대 다양한 포지션에서 우수한 활약을 펼쳤던 분데스리가 정상급 미드필더로 한혈마와 같은 지구력을 바탕으로 경기장 전역을 뛰어다니며 공수 양면에서 크게 기여했으며 높은 차원의 전술안과 창의적이면서도 정교한 패스를 뿌려대며 경기장 전역에 영향력을 과시했고 수비 상황에서도 뛰어난 수비스킬을 뽐냈는데 이런 다재다능함을 바탕으로 미드필더 전 지역은 물론 윙포워드와 리베로도 소화할 수 있었다.

슈투트가르트 키커스에서 데뷔해 이름을 날리고 VfB 슈투트가르트에서 전성기를 누린 알괴버는 1983-84 시즌에 구단의 레전드 올리처와 아이슬란드 출신의 시귀르빈손과 함께 중원 라인을 구성해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냈고 1985-86 시즌에는 DFB포칼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그 과정에서 득점왕을 차지하며 결승 진출의 일등 공신으로 활약했다. 그리고 말년인 1988-89 시즌에는 리베로로 출전해 팀의 UEFA컵 결승 진출을 이뤄냈으며 마라도나의 나폴리에 패해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다.

1985-86 시즌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에 선정된 알괴버는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에 등급 4회 선정된 알괴버는 당시 서독의 두꺼운 선수풀에 밀려 대표팀에서는 거의 중용되지 못했는데 그나마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로타어 마테우스와 펠릭스 마가트의 백업으로 대기하며 준우승을 경험했다.

 

26위 볼프강 롤프

 


생년월일: 1959년 12월 26일
A매치 기록: 37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함부르크 SV

1980년대 독일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던 수비형 미드필더이자 중앙 미드필더로 빠른 스피드와 왕성한 활동량을 겸비했으며 터프한 태클은 물론 넓은 시야에서 나오는 패스 능력, 그리고 우수한 킥력을 두루 겸비한 완성형 미드필더였다.

포르투나 쾰른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분데스리가 챔피언 함부르크에 입단해 전성기를 누린 롤프는 1982-83 시즌에 우수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함부르크의 분데스리가와 유러피언컵 더블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특히 유러피언 컵에서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줬는데 8강 디나모 키예프를 상대로는 블로힌을 꽁꽁 묶어냈으며 4강 레알 소시에다드 전에서는 1차전 동점골을, 결승 유벤투스전에서는 에이스 미셸 플라티니를 꽁꽁 묶어내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팀이 빅이어를 차지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1986-87 시즌에는 신흥강호 레버쿠젠으로 이적했는데 차범근, 팔켄마이어, 회르스터 등과 함께 1987-88 시즌 UEFA컵 우승에 큰 공을 세우며 구단 역사상 첫 메이저 트로피를 들어올리는데 큰 역할을 수행한 롤프는 두터운 선수층으로 인해 치열한 주전경쟁으로 악명 높았던 그 당시 서독 대표팀에사도 종종 소집되었는데 UEFA 유로 1984에서 처음 소집되었고 1986 멕시코 월드컵 준우승과 UEFA 유로 1988 준결승 진출을 경험했다.

 

 

25위 한스 칼브

 


생년월일: 1899년 8월 3일
A매치 기록: 15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5cm
주 소속팀: FC 뉘른베르크

1920년대 독일 무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자 유럽에서도 수위급의 하프백으로 안정적인 위치 선정과 우수한 제공권 경합, 그리고 우수한 패싱력과 넓은 시야, 그리고 팀원들에게 적절한 지시를 하던 플레이메이커로 유명했는데 특히 볼 컨트롤이 매우 우수해 제프 헤어베어거는 그를 두고 "축구공을 당구공처럼 다뤘다."라고 평가했고 그 시대에 그를 본 어떤 팬도 “경기 중에 공이 머리에서 약간 올라간 발까지 떨어지게 한 후 거기에서 자신 위로 올라간 다음 발뒤꿈치로 다시 공을 올린 다음 서브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태연하게 상대를 제압했습니다."라고 호평했다.

선수 생활 전부를 뉘른베르크에서 보낸 칼브는 구단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이끌며 지역 단위에서는 남부 독일 리그 6회 우승을 포함해 총 15개의 우승을 이뤄냈고 전국리그인 독일 챔피언십에서도 5회 우승을 이뤄냈다. 특히 1918년부터 1922년까지 104경기에서 무패 행진을 달리는 동안 480골을 득점하면서 47골만 실점하는 괴력을 보이는데 큰 공을 세웠다.

독일 대표팀에서도 주장으로 활약하며 중용받은 칼브는 재능은 뛰어났지만 기름진 음식과 술에 대한 중독으로 인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과체중이 되었고 통제력 부족으로 인해 많은 금지령을 받았다. 그리고 1930년에는 몸무게가 전성기 시절에 비해 25kg이나 찌며 기량이 떨어지며 허무하게 밀려났다.

 

24위 사미 케디라

 


생년월일: 1987년 4월 4일
A매치 기록: 77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89cm / 몸무게 90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2010년대 유럽에서 이름을 날린 피지컬과 지능을 겸비한 수비형 미드필더로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경기장 전역을 뛰어다니며 볼을 받기 유리한 위치를 선점해 팀이 볼을 점유하는데 큰 도움을 줬으며 건실한 수비 가담과 지능적인 볼 탈취 능력은 물론 큰 키에서 나오는 제공권 경합에서도 우수한 모습을 보여줬다.

슈투트가르트의 유스팀에서 데뷔한 케디라는 2006-07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과 DFB포칼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2008-09 시즌에도 팀을 분데스리가 3위에 올리며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이끌었고 2010 남아공 월드컵 이후에는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해 활약하며 2011-12 시즌 라리가 우승 및 코파 델 레이 2회 우승과 2013-14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내는데 기여했다. 그리고 유벤투스에서도 세리에 A 5연패 및 코파 이탈리아 3회 우승 및 2016-17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뤄냈다.

독일 대표팀에서도 슈바인슈타이거와 함께 3선 조합으로 나서며 2010년대의 성공을 이끌었던 케디라는 2010 남아공 월드컵 3위 및 UEFA 유로 2012 4강, 그리고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조국의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했다. 특히 UEFA 유로 2012에서는 팀 오브 더 토너먼트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23위 한지 뮐러

 


생년월일: 1957년 7월 27일
A매치 기록: 42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VfB 슈투트가르트

1970년대 후반, 로타어 마테우스, 베른트 슈스터와 함께 당대 서독의 천재 유망주 계보를 이어나가던 선수로 상대방을 농락하는 유려한 발재간과 경기장 전역을 관통하는 드넓은 시야, 그리고 날카로운 왼발 패스를 바탕으로 팀의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하며 팀의 빌드업을 설계했다.

약관의 나이에 당대 세계 최고의 리그 중 하나였던 서독 분데스리가를 주름잡아 차세대의 파울 브라이트너가 될 것으로 기대받았던 한지 뮐러는 비록 슈투트가르트에서 1부 리그 우승은 이뤄내지 못했지만 1976-77 시즌 2부 리그 우승을 이뤄내며 승격했다. 1978-79 시즌에는 승격한 지 1년 만에 슈바벤의 분데스리가 준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고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으며 슈투트가르트에 머무는 기간 동안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7회 선정되었다.

독일 대표팀에서도 UEFA 유로 1980에서 베른트 슈스터와 함께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대회 우승에 큰 공을 세운 한지 뮐러는 이탈리아의 구에린 스포르티보가 매년 유럽 최고의 신인 선수에게 주는 상인 브라보 어워즈를 수상했고 그 해에 열린 발롱도르 투표에서는 8위에 올랐다. 그러나 인테르 밀란에서 실패한 이후 몰락하며 대중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22위 볼프강 드렘러

 


생년월일: 1954년 7월 12일
A매치 기록: 27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74cm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19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에 걸쳐 전성기를 보낸 수비형 미드필더 겸 라이트백으로 강력한 대인 수비와 왕성한 활동량으로 팀의 중심을 잡았으며 난관에 봉착해도 흔들리지 않았을 정도로 강력한 정신력으로도 유명했다.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에서 데뷔해 우수한 퍼포먼스로 주목받았던 드렘러는 파울 브라이트너의 추천으로 바이에른의 입단한 뒤 라이트백과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활약하며 분데스리가 4회 우승 및 DFB포칼 3회 우승, 그리고 1981-82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냈다.

독일 대표팀에서도 브라이트너의 보디가드로 활약한 드렘러는 1982 스페인 월드컵에 참가해 조국의 준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했다. 특히  '히혼의 수치'라 불리는 희대의 볼 돌리기 경기에서도 드렘러만큼은 오스트리아의 발터 샤흐너와 함께 정정당당한 경기를 하기 위해 분전했다.

 

21위 디터 아일츠

 


생년월일: 1964년 12월 13일
A매치 기록: 31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베르더 브레멘

1990년대 통일 독일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평가받았던 선수로 한혈마를 연상시키는 지구력에서 나오는 왕성한 활동량을 앞세워 헌신적인 수비를 선보이며 팀의 궂은일을 도맡았으며 역습 상황에서는 화려하진 않지만 실속 있는 패스로 팀의 역습 상황을 이끌어내며 레하겔의 실리 축구를 구현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선수 생활을 전부 베르더 브레멘에서 보낸 원 클럽맨 아일츠는 이른바 오토 레하겔의 페르소나라 불렸는데 국내에서는 분데스리가 2회 우승, DFB포칼 3회 우승을 이뤄냈고 유럽 무대에서도 1991-92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우승과 1998 인터토토컵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첫 황금기를 이끌었음은 물론 아일츠 개인도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3회 선정되었다.

독일 대표팀에서도 초년에는 주목받지 못해 소집되지 못했고 소집된 이후에도 1994 미국 월드컵 명단에서 탈락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유일하게 참가한 UEFA 유로 1996에서 우승 과정에서 지대한 공을 세웠다. 일부 여론은 마티아스 잠머 대신 디터 아일츠를 대회 MVP로 보는 여론도 있었을 정도로 대단한 활약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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