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3선 미드필더 Top 10

국가의 영웅들/독일

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3선 미드필더 Top 10

토르난테 2025. 1. 27.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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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독일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준일은 2025년 1월 27일입니다.

 


10위 일카이 귄도안

 


생년월일: 1990년 10월 24일
A매치 기록: 60경기 15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

2010년대~2020년대 초반에 유럽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플레이메이커로 활동량은 다소 떨어졌지만 시야가 넓고 탈압박 능력은 물론 숏패스와 롱패스 모두 뛰어나 3선에서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도맡아 2선에 볼을 배급하며 킥력이 우수해 페널티 킥도 잘 찼으며 2020-21 시즌을 기점으로는 우수한 1선 침투 능력으로 많은 골을 득점하기도 했다.

뉘른베르크에서 데뷔해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했으나 도르트문트에서 사힌의 대체자로 영입되어 후방 플레이메이커로 전업에 성공하며 2011-12 시즌 분데스리가와 DFB포칼 더블 우승과 2012-13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에 공헌했음은 물론 결승전에서는 페널티킥으로 동점골을 득점하며 긴장감을 극대화시키는 등 우수한 활약을 펼치며 2012-13 시즌 키커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과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한 뒤에는 초반에는 부상으로 고전했으나 2020년대에 화려하게 부활한 귄도안은 2018-19 시즌 도메스틱 트레블을 포함해 프리미어리그 우승 5회와 리그컵 4연패, FA컵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2020-21 시즌에는 구단 역사상 최초로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했고 2022-23 시즌에는 FA컵 결승에서 선제골과 결승골을 직접 득점했음은 물론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에도 기여하며 트레블 과정에서 큰 공을 세웠다. 귄도안 개인도 2020-21 시즌 ESM 올해의 팀 및 PFA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으며 2020-21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고 2023년에는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바르셀로나로 이적해서도 2023-24 시즌 라리가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으나 바르셀로나 구단의 체제 변경으로 인해 다시 맨체스터 시티로 재이적했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도 월드클래스 등급 3회 선정 및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13회 선정된 귄도안은 독일 대표팀에서는 가진 역량에 비해 잘 풀리지 않았는데 초년에는 토니 크로스,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라는 대단한 선수들에 밀려 백업 멤버로 밀려나며 UEFA 유로 2012 4강을 경험했고 부상으로 인해 2014 브라질 월드컵과 UEFA 유로 2016에는 나가지 못했으며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벤치를 지키며 팀의 조별리그 탈락을 막지 못했고 UEFA 유로 2020과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9위 슈테판 에펜베르크

 


생년월일: 1968년 8월 2일
A매치 기록: 35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8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 세계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 중 하나로 미친 호랑이라 불릴 정도로 거친 성격과 탱크 같은 피지컬을 활용한 거친 수비를 보여줬으며 넓은 시야와 팀의 빌드업을 주도하는 우수한 판 짜기 능력은 물론 우수한 패스 실력으로 단 한 번의 패스로 다이렉트 찬스를 만들거나 반대 측면으로 내주는 우수한 방향 전환 패스로 이름을 날리는 플레이메이커였다.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와 바이에른 뮌헨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무려 8회나 선정된 에펜베르크는 묀헨글라트바흐에서는 1994-95 시즌 포칼 우승을 이뤄냈으며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분데스리가 3연패를 이룬 것은 물론이고 2000-01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큰 공을 세워 챔피언스리그 MVP격인 UEFA 클럽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함과 동시에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13위에 랭크되었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까지 받았던 에펜베르크였지만 디 만샤프트에서의 활약은 클럽에서의 활약에 비하면 다소 아쉬운데 UEFA 유로 1992에서는 결승에 오르는데 큰 공을 세워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을 정도로 우수한 활약상을 보여줬지만 1994 미국 월드컵에서는 한국전에서 부진했던 자신에게 야유하는 관중들에게 주먹감자를 날려 대표팀 생활이 그대로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8위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생년월일: 1984년 8월 1일
A매치 기록: 121경기 24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9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2000년대 후반과 2010년대 초반에 전성기를 누린 다재다능한 미드필더로 윙어 시절에는 경기력은 좋지 않았지만 결정적인 득점으로 팀을 여러 번 구했으며 중앙 미드필더로 보직을 변경한 이후엔 드넓은 시야와 우수한 킥력을 활용해 우수한 중원 지휘 능력과 롱패스로 공격 활로를 여는데 능했으며 벼락같은 중거리 슈팅으로 득점에 기여하기도 했으며 우수한 탈압박 능력으로 상대방의 압박을 무력화시키는데도 능해 팬들로부터 '푸스발 고트'라 불렸다.

바이에른 뮌헨 유스팀에서 데뷔해 선수생활 전성기를 보내며 분데스리가 8회 우승과 포칼 7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특히 2012-13 시즌에는 절정의 폼을 보여주며 2012-13 시즌 분데스리가, 포칼은 물론 챔피언스리그도 석권하며 트레블을 달성하는 위용을 보여줬고 개인으로도 많은 영예를 누리며 2010년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올해의 선수상을 시작으로 2013년에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고 UEFA 올해의 선수 투표에서 7위를 기록했으며 2013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발롱도르 노미네이트 및 키커 랑리스테 월드클래스 등급에도 각각 4회 선정되었음은 물론 팬들의 민심이 대단히 좋아 은퇴 이후에는 '푸스발 고트'라는 이름으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했다.

독일 대표팀에서는 클럽에서는 경기력에 기복이 있다고 지적받던 시절에도 굉장히 잘해 미로슬라프 클로제, 루카스 포돌스키와 함께 소위 '애국자'라고 불렸던 슈바인슈타이거는 2006 독일 월드컵 3,4위전에서는 포르투갈을 상대로 멀티골을 기록했고 UEFA 유로 2008 8강전에서도 포르투갈을 상대로 선제골을 기록하며 포르투갈 킬러로 명성을 날렸다. 중앙 미드필더로 보직을 변경한 이후에도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팀의 4강 진출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드림팀에 선정되었고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뛰어난 중원 지휘 능력을 앞세워 우승의 방점을 찍었다. 심지어는 클럽에서는 부진하던 시절인 UEFA 유로 2016에서도 베테랑으로 팀을 이끌며 조국의 준결승 진출을 이뤄내는데 공헌했는데 그가 은퇴하자 독일 대표팀은 메이저 대회에서 번번이 조기탈락하며 그와 람의 공백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7위 토니 크로스

 


생년월일: 1990년 1월 4일
A매치 기록: 114경기 17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2010년대 유럽 축구계를 빛낸 중원의 마에스트로라 평가받으며 드넓은 시야와 날카로운 킬패스, 그리고 볼을 받기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면서 안정적인 패스로 팀의 점유율을 장악하는 데에도 능했으며 중거리 슈팅도 우수했고 의외로 지구력도 우수해 수비 상황에서도 꽤 도움을 주기도 했음은 물론 높은 축구지능으로 국내 팬들은 그를 두고 '교수님'이라고 불렸다.

바이에른 뮌헨과 레알 마드리드에서 전성기를 보냈으며 전자의 구단에서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2011-12 시즌 트리플 준우승 2012-13 시즌 트레블을 경험했으며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카세미루, 모드리치와 함께 크카모 라인을 형성해 라 리가 3회 우승과 UEFA 챔피언스리그 5회 우승을 이뤄내며 2010년대 최고의 클럽인 레바뮌 중 두 구단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 4회 선정 및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 17회 선정에 빛나는 크로스의 활약은 디 만샤프트에서도 이어졌는데 2014 브라질 월드컵 우승에 공헌해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으며 유로 2016에서도 준결승 진출에 공헌하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으로 선정되었다. 다만 람과 슈바인슈타이거가 은퇴하고 본인이 중핵이 되어 도전했던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최악의 부진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UEFA 유로 2024에서는 팀의 중핵으로 8강 진출을 이뤄냈다.

청소년 시절부터 개인적으로 대단한 영광을 누린 크로스는 2007 FIFA U-17 월드컵에서 골든볼을 수상했으며 그 해에 프리츠 발터 U-18 부문 금메달을 수상했으며 성인 무대에서도 UEFA 챔피언스리그 올해의 스쿼드 5회 연속 선정,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 3회 선정, 그리고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5회 선정되어 2014년과 2024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9위에 올랐다.

 

6위 호어스트 시마니악

 


생년월일: 1934년 8월 29일
A매치 기록: 43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부퍼탈 SV

1950년대 하반기~1960년대 상반기 독일 최고의 하프백으로 수비적으로는 한 박자 빠른 슬라이딩 태클과 악착같은 대인 수비는 물론 정교한 왼발 롱패스와 우아한 볼 컨트롤 능력도 겸비한 공수겸장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센터백과 인사이드 포워드 자리에서도 활약할 수 있었을 정도로 포지션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클럽에서는 부퍼탈, 카를스루헤, 카타니아, 바레세 같은 중소규모의 구단에서 활약한 시마니악은 팀 전력의 한계 탓에 클럽팀 우승 커리어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5회 선정 및 10위 안에만 3회 선정되었고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도 월드클래스 등급에 7회 선정되었다.

디 만샤프트의 감독 제프 헤어베르거의 총애를 받아 1958 스웨덴 월드컵과 1962 칠레 월드컵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던 시마니악은 전자의 대회에서는 팀을 준결승에 진출시키는데 크게 공헌해 다수의 매체에서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그 공을 인정받아 1958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8위에 올랐다.

 

5위 미하엘 발락

 


생년월일: 1976년 9월 26일
A매치 기록: 98경기 42골
신체조건: 키 189cm / 몸무게 88kg
주 소속팀: 바이어 04 레버쿠젠

2000년대 상반기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만능 미드필더로 강력한 피지컬과 탄탄한 기본기, 뛰어난 축구 지능과 승부를 결정짓는 클러치 능력을 모두 겸비한 다재다능한 미드필더였다.

카이저슬라우테른을 거쳐 레버쿠젠에서 처음 두각을 나타낸 발락은 2001-02 시즌 트리플 준우승이라는 다소 대단하면서도 아쉬운 성적을 냈지만 개인적으로는 대단한 활약을 인정받아 2001-02 시즌 ESM 올해의 팀과 2002 UEFA 클럽 올해의 미드필더상을 받았으며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해서는 분데스리가와 포칼 3회 우승을 이루고 첼시에서는 프리미어리그 우승 1회, FA컵 우승 3회, 그리고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을 이뤄냈다.

2000년대 독일 대표팀의 중핵이자 아이콘이었던 발락은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돌풍의 팀 대한민국을 상대로 팀을 결승에 진출시키는 결승골을 넣었지만 경고 누적으로 결승전에 출전하지 못해 팀의 패배를 지켜본 아픈 경험이 있었고 UEFA 유로 2004에서는 조별 리그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지만 발락 본인은 대회 올스타 팀에 들었을 정도로 훌륭한 활약을 보여줬으며 2006 독일 월드컵과 UEFA 유로 2008에서는 주장 완장을 차고 맹활약했으나 각각 4강전과 결승전에서 아쉽게 패했다. 유로 2000을 제외한 참가한 월드컵과 유로에서 모두 대회 올스타 팀에 들었다.

비록 독일 축구의 암흑기에 전성기를 맞아 우승 트로피가 상대적으로 적은 발락이지만 개인의 활약은 모두에게 인정받았기에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4회 선정되었으고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3회 수상했으며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4회 선정되어 2002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5위에 올랐다.

 

4위 프리츠 슈체판

 


생년월일: 1907년 9월 2일
A매치 기록: 34경기 6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FC 샬케 04

2차 세계 대전 이전 독일 역대 최고의 축구선수로 포지션은 인사이드 포워드로 오늘날의 공격형 미드필더 위치에 있었지만 오늘날의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의 활동 범위와 플레이메이커의 경기 지배력을 겸비한 시대를 앞질러간 훌륭한 미드필더였다.

1930년대 샬케가 독일에서 가장 강력했던 클럽인 시절 핵심 선수였던 슈체판은 독일 챔피언쉽 6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1936-37 시즌에는 독일 챔피언쉽과 DFB포칼을 동시에 우승하며 샬케를 독일 최초의 도메스틱 더블 팀으로 만들었다. 이 공로를 후세에 인정받아 1999년에 샬케 세기의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준 슈체판은 1934년 월드컵에서는 3위에 올랐고 헤어베르거 체제에서는 1937년에 11번의 A매치에서 10승 1무를 기록하며 상승세를 타며 폴란드 브레슬라우에서 덴마크를 상대로 8-0 대승을 기록하는데 기여하며 브레슬라우 엘프의 전설을 썼을 때 팀의 주장이자 팀 전술의 핵심적인 존재로 활약했다.

 

3위 베른트 슈스터

 


생년월일: 1959년 12월 22일
A매치 기록: 21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1980년대 유럽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필드를 넓게 사용하며 창의적이면서 부드럽고 정교한 패스로 많은 찬스를 만들어냈으며 뛰어난 볼 소유 능력과 탄탄한 기본기, 그리고 세련된 볼 컨트롤 능력과 상대의 수비 라인을 무너트리는 기습적인 쓰루패스와 1선 능력을 고루 겸비했으며 중거리 슛 능력도 대단한 완벽한 플레이메이커였다.

쾰른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구단의 암흑기의 에이스로 군림한 슈스터는 코파 델 레이 3회 우승, 컵 위너스컵 우승, 그리고 1984-85 시즌에는 라리가 우승과 유러피언 컵 결승 진출을 이뤄냈으나 구단과의 갈등으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해 라리가 2연패를 이끌었고 거기서도 구단과의 불화로 팀을 떠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한 뒤에 코파 델 레이 2연패를 이뤄냈다. 이후 독일 무대로 복귀해 레버쿠젠에서도 슈스터 개인은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을 정도로 출중한 기량을 자랑하며 팬들을 들었다 놨다 하며 악마의 재능으로 불렸다.

다만 이런 성격 문제로 디 만샤프트 커리어는 다소 빈약한 편이었던 슈스터는 UEFA 유로 1980에서 루메니게와 함께 팀의 우승을 이끌면서 발롱도르 2위와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지만 이후 감독 유프 데어발과 대표팀에 복귀한 포지션 경쟁자 파울 브라이트너와의 불화로 대표팀을 떠났으며 데어발이 사임하고 베켄바우어가 감독으로 부임한 뒤 슈스터를 다시 부르려 했으나 에이전트인 아내를 통해 소집 대가로 거액의 돈을 요구하며 결국 복귀가 불발되었고 디 만샤프트에서의 영광은 후배 로타어 마테우스가 차지했다.

비록 성품 문제로 인해 대표팀 커리어가 상대적으로 빈약하지만 슈스터는 개인 수상 부분에서도 대단했는데 돈 발롱 선정 라리가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 구에린 스포르티보 선정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으며 발롱도르 포디움에도 세 번이나 올라섰다.

 

2위 파울 브라이트너

 



생년월일: 1951년 9월 5일
A매치 기록: 48경기 10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독일 축구의 천재 수비수이자 미드필더이며 풍운아로 레프트백 시절부터 이름을 날렸던 활약했던 뛰어난 수비 능력은 물론, 전략가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훌륭한 전술안과 탄탄한 기본기를 겸비했으며 상대방의 허를 찌르며 동료 공격수에게 골 찬스를 제공하는 킬패스와 골문을 직접 노리는 중거리 슈팅은 물론 왕성한 활동량까지 겸비해 그라운드의 넓은 범위에 영향력을 끼쳤던 공수겸장의 완벽한 선수였다.

바이에른 뮌헨과 레알 마드리드에서 전성기를 누린 브라이트너는 바이에른 뮌헨 1기 시절에는 분데스리가 3회 우승과 포칼 우승, 그리고 구단 역사상 첫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끌어냈고 레알 마드리드 시절에는 라리가 2회 우승과 1974-75 시즌에는 코파 델 레이에서도 우승하며 도메스틱 더블을 이뤄냈다. 이후 중앙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한 뒤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를 거쳐 바이에른 뮌헨으로 돌아가 루메니게와 함께 브라이트니게 조합을 이루며 분데스리가 2연패와 DFB포칼 우승, 그리고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추가했다. 특히 1981년에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이며 동료 루메니게의 뒤를 이어 발롱도르 투표에서 2위에 올랐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UEFA 유로 1972와 1974 서독 월드컵에서 모두 압도적인 활약을 펼치며 우승은 물론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도 들었다. 그러나 독일 축구협회와의 갈등으로 디 만샤프트에 뽑히지 못하다가 1980년 이후에 다시 뽑히며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 결승 진출에 공헌하며 팀은 결승전에서 패했지만 브라이트너는 결승전에서 만회골을 넣었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에 무려 7회 선정된 브라이트너는 개인적으로도 엄청난 영예를 누렸는데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베스트 일레븐에 6회 선정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 4회 선정, 그리고 1981년 독일 올해의 선수상은 물론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6회 선정해 1981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순위인 2위에 올랐으며 은퇴한 이후인 1994년에는 FIFA 월드컵 올타임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을 정도로 수상 이력이 화려하다.

 

1위 로타어 마테우스

 


생년월일: 1961년 3월 21일
A매치 기록: 1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마라도나가 인정한 유일한 라이벌이자 축구 역사상 최고의 3선 미드필더로 철인이라 불리는 신체 능력과 왕성한 활동량을 물론 대인 수비에서도 당대 수비형 미드필더들보다 한 차원 위에 있었으며 우수한 테크닉과 결정적인 순간에 한건하는 클러치 능력과 반 바스텐, 비알리, 클린스만, 카레카 같은 세리에 A 정상급 스트라이커들과 득점왕 경쟁을 했을 정도로 뛰어난 득점력까지 겸비하며 넓은 지역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면서 게임도 끝낼 수 있는 완벽한 선수였으며 다양한 포지션에서 훌륭한 활약을 펼쳤다. 과장 좀 해서 마테우스 이전에 언급한 미드필더들의 장점을 모두 가지고 있는 완벽한 미드필더였다.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프로 커리어를 시작한 마테우스는 주전으로 도약한 첫 시즌인 1979-80 UEFA컵 결승에 진출했으며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한 뒤에는 분데스리가 3연패와 유러피언 컴 결승 진출을 이뤄냈으며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해서는 분데스리가 3연패와 유러피언 컴 결승 진출을, 인테르에서는 1988-89 시즌 세리에 A 우승과 1990-91 UEFA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다시 바이에른 뮌헨으로 돌아와서는 리베로로 활동하며 분데스리가 4회 우승과 UEFA컵 우승을 추가했고 1998-99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 결승까지 진출했으나 퍼거슨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역전패하며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A매치 통산 최다 출전자의 자리를 지킨 마테우스는 백업 멤버로 UEFA 유로 1980 우승 및 1982 스페인 월드컵 준우승을 경험했고 UEFA 유로 1984 때부터 1994 미국 월드컵 때까지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1986 멕시코 월드컵 준우승, UEFA 유로 1988 3위를 이뤄냈고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팀의 코어이자 주 득점원으로 팀을 우승시키며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그러나 클린스만과의 불화와 리베로에서 마티아스 잠머가 대두하면서 대표팀에서 소외되었으나 잠머의 부상으로 다시 소집되어 1998 프랑스 월드컵과 UEFA 유로 2000까지 출전했으나 이미 독일은 노쇠화되었으며 세대교체 실패의 영향으로 부진한 활약을 보여줬다.

마테우스는 개인적으로도 엄청난 수상 이력을 자랑하는데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5회 선정되었으며 옹즈 몽디알에서 뽑은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4회 연속 선정되었고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2회 수상했음은 물론 1990년에는 발롱도르를 수상했고 1991년에는 초대 피파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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