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3선 미드필더 Top 11~20

국가의 영웅들/독일

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3선 미드필더 Top 11~20

토르난테 2025. 1. 26.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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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독일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준일은 2025년 1월 26일입니다.

 


20위 안드레아스 쿠퍼

 


생년월일: 1914년 5월 7일
A매치 기록: 44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2cm / 몸무게 74kg
주 소속팀: FC 슈바인푸르트 05

1930년대 독일 무대를 넘어 유럽 정상급 라이트 하프로 양발을 모두 잘썼으며 발목 관절만을 움직여서 볼을 찼으며 정확한 롱패스와 안정적이며 적절한 볼 처리로 이름을 날린 하프백이었다.

영혼의 파트너 알빈 키칭어와 함께 소속팀 슈바인푸르트와 디 만샤프트에서 하프백을 구성해 함께 활약한 쿠퍼는 소속팀에서는 가울리가 바이에른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대표팀에서는 1937년 한 해 동안 11경기에서 10승 1무를 보여주는 대단한 활약을 펼쳤으며 덴마크를 브레슬라우 지역에서 8-0으로 대파하며 정점을 찍어 브레슬라우 엘프로 불리며 맹활약했다.

하지만 안슐루스로 인햐 오스트리아 선수들이 합류한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정작 1라운드에서 탈락하는 굴욕을 겪었으나 쿠펴는 1938년 유럽 베스트 일레븐으로 뽑혀 잉글랜드와 친선전에 나서는 영예를 누리며 당대 유럽 최고의 라이프 하프로 이름을 날렸다.

 

19위 알빈 키칭어

 


생년월일: 1912년 2월 1일
A매치 기록: 44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7kg
주 소속팀: FC 슈바인푸르트 05

1930년대 독일 무대를 넘어 유럽 정상급 레프트 하프로 센터 하프가 있는 후방까지 내려가 수비에 적극 가담해 오늘날의 포 백 대형처럼 수비 대형이 변하는 모습을 세계 최초로 보여준 하프백이라고 전해진다.

영혼의 파트너 안드레아스 쿠퍼와 함께 소속팀 슈바인푸르트와 디 만샤프트에서 하프백을 구성해 함께 활약한 키칭어는 소속팀에서는 가울리가 바이에른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대표팀에서는 1937년 한 해 동안 11경기에서 10승 1무를 보여주는 대단한 활약을 펼쳤으며 덴마크를 브레슬라우 지역에서 8-0으로 대파하며 정점을 찍어 브레슬라우 엘프로 불리며 맹활약했다.

하지만 안슐루스로 인햐 오스트리아 선수들이 합류한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정작 1라운드에서 탈락하는 굴욕을 겪었으나 키칭어는 1938년 유럽 베스트 일레븐으로 뽑혀 잉글랜드와 친선전에 나서는 영예를 누리며 당대 유럽 최고의 레프트 하프로 이름을 날렸다.

 

18위 토르스텐 프링스

 


생년월일: 1976년 11월 22일
A매치 기록: 79경기 10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베르더 브레멘

2000년대 분데스리가 정상급 미드필더로 왕성한 활동량과 우수한 스피드로 공격과 수비에서 큰 영향력을 미쳤으며 강력한 킥력으로 롱패스와 중거리 슈팅에도 능했다. 그리고 다재다능한 능력을 바탕으로 미드필더 전 지역과 측면 수비수까지 커버했다.

베르더 브레멘에서 데뷔하다가 도르트문트로 이적해 1차 전성기를 맞이한 프링스는 본인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팀이 부진해 재정난에 시달리자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했는데 적응에 실패하고 고향팀 베르더 브레멘으로 돌아와 브레멘의 최후의 전성기를 이끌며 2008-09 시즌 DFB포칼 우승과 UEFA컵 준우승을 이뤄냈고 프링스 개인도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4회 선정되었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프링스는 윙백과 수비형 미드필더 포지션에서 준수한 활약상을 보인 프링스는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라이트 윙백으로 좋은 모습을 보였고 클린스만 체제에서는 발락과 함께 중원을 구성했을때 빼어난 모습을 보이며 2006 독일 월드컵 3위와 UEFA 유로 2008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이뤄냈다. 특히 독일 월드컵 개막전에서 코스타리카를 상대로 한 편의 그림 같은 중거리 슈팅을 넣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17위 헤어베르트 빔머

 


생년월일: 1944년 11월 9일
A매치 기록: 36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1970년대 분데스리가 정상급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평가받았던 선수로 기본기가 뛰어나며 축구 지능이 높아 공수 양면에서 우수한 활약을 펼쳤으며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고 엄청난 활동량으로 유명했으며 팬들 사이에서 'Der Iron Lung' 즉 강철 폐로 불렸다.

선수생활 전부를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보낸 원 클럽맨인 빔머는 분데스리가 5회 우승과 1974-75 시즌 UEFA컵 우승, 그리고 1976-77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에 크게 기여했고 빔머 개인도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7회 선정되었고 1975-76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들기도 했다.

디 먄샤프트에서도 UEFA 유로 1972에 주전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선 빔머는 빠른 패스워크의 람바참바 풋볼을 보여주며 압도적인 우승을 차지하는데 기여하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올랐고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후배 본호프와의 경쟁에서 밀려 백업 멤버로 밀려났으나 UEFA 유로 1976에서는 본호프와 함께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대회 준우승을 이뤄냈다.

 

16위 하인츠 플로에

 


생년월일: 1948년 1월 28일
A매치 기록: 39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1kg
주 소속팀: FC 쾰른

1970년대 분데스리가 정상급 플레이메이커로 왕성한 활동량을 앞세워 경기장 곳곳을 누비며 킬패스를 배급해 득점 찬스를 만들었으며 특히 볼 키핑이 우수해 파울을 하지 않고서는 그에게 공을 뺴았는 일은 매우 어려웠다고 전해진다.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쾰른에서 보냈던 플로에는 1977-78 시즌 도메스틱 더블을 포함해 분데스리가 1회 우승과 포칼 3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되었다.

독일 대표팀에서는 귄터 네처, 볼프강 오베라트, 울리 회네스와 같은 선수들로 인해 오랜 기간 백업 역할을 맡았는데 백업 멤버로 1974 서독 월드컵 우승과 UEFA 1976 유로를 경험했으며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는 로테이션 멤버로 활약했다.

 

15위 호어스트 에켈

 


생년월일: 1932년 2월 8일
A매치 기록: 32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65kg
주 소속팀: FC 카이저슬라우테른

1950년대 독일 축구를 대표했던 월드클래스 수준의 하프백으로 드넓은 시야와 안정적인 패싱력, 그리고 왕성한 활동량을 겸비해 팬들로부터 빈트후트, 즉 시각 수렵견이란 별명으로 불렸으며 초년에는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활약하기도 했다.

카이저슬라우테른의 빈트후트였던 호어스트 에켈은 구단을 위해 상대 공격수를 사냥하며 오베리가 주스베스트 7회 우승과 독일 챔피언십 2회 우승을 이뤄내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는데 특히 1950-51 시즌에는 아웃사이드 라이트로 출전해 대회 우승은 물론 개인적으로도 7경기 6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에 오르는 등 구단이 마이스터샬레를 추가하는데 큰 공을 세웠고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도 월드클래스 등급에 1회 및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6회 선정되었다.

독일 대표팀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쳤던 에켈은 954 스위스 월드컵에서 카를 마이와 함께 중원에서 탄탄한 경기력을 선보여 우승에 크게 공헌하며 베른의 기적을 이뤄냈고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도 시마니악과 함께 중원을 구성해 디 만샤프트의 준결승 진출을 이뤄냈다.

 

14위 올라프 톤

 


생년월일: 1966년 5월 1일
A매치 기록: 52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FC 샬케 04

1990년대 분데스리가에서 이름을 날린 미드필더로 대표팀 동료인 마테우스에 비견되던 다재다능한 플레이어로 Der Professor, 즉 교수라 불릴 정도로 영리한 선수였으며 중앙 미드필더와 공격형 미드필더, 그리고 리베로를 모두 소화할 수 있었다.

샬케와 바이에른 뮌헨에서 활약한 톤은 바이에른에서는 분데스리가 3회 우승을, 샬케에서는 DFB포칼 2회 우승을 이뤄냈고 1996-97 시즌에는 UEFA컵 우승을 이뤄내며 발롱도르 24위에 올랐고 이 두 팀에서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으며 특히 샬케에서는 세기의 일레븐과 명예의 주장에 모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 2회 및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8회 선정된 올라프 톤은 백업으로 1986 멕시코 월드컵 준우승과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을 경험했으며 주전으로 활약한 UEFA 유로 1988에서는 디 만샤프트가 준결승에 진출하는데 공을 세웠다.

 

13위 요주아 키미히 

 


생년월일: 1995년 2월 8일
A매치 기록: 97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77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2020년대 독일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자 세계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높은 전술 이해도는 물론이고 넓은 시야에서 나오는 양질의 패스와 동료 활용 능력으로 팀의 원활한 볼 소유를 이끌며 왕성한 활동량과 강력한 저돌성에 우수한 포지셔닝까지 겸비한 완벽한 수비력은 물론 정교한 오른발 크로스와 탄탄한 기본기까지 겸비해 중원에서는 물론 라이트백에서도 정상급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바이에른 뮌헨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2019-20 시즌 트레블을 이뤄낸 키미히는 분데스리가 8회 연속 우승과 포칼 3회 우승, 그리고 2019-20 시즌에는 수비형 미드필더와 라이트백을 번갈아 뛰며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이후에도 중원의 리더로 UEFA 슈퍼컵과 DFL 슈퍼컵, 그리고 클럽 월드컵까지 우승하며 6관왕을 이뤄냈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도 월드클래스 등급에 2회 선정된 키미히는 개인으로도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에 5회 선정 및 2018-19 시즌 ESM 올해의 팀, 2019-20 시즌 UEFA 올해의 수비수상을 수상함과 동시에 UEFA 올해의 선수에서 9위에 올랐으며 UEFA 챔피언스리그 올해의 스쿼드에 2회 선정되었고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2회 수상했다.

독일 대표팀에서는 UEFA 유로 2016에서 필립 람의 대체자로 라이트백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키미히는 조국의 4강행을 이끌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컨페드컵에서도 조국의 우승행을 이끌었다. 그러나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의 실패 이후 개인은 고군분투했지만 팀원들의 부진으로 결과가 좋지 않았다. 그래도 가장 최근 대회인 UEFA 유로 2024에서는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12위 울리 슈틸리케

 


생년월일: 1954년 11월 15일
A매치 기록: 42경기 3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1970년대 하반기~1980년대 상반기를 대표하는 수비형 미드필더이자 리베로로, 공수를 넘나드는 넓은 활동반경은 물론 신속 정확한 판단력과 드넓은 시야를 토대로 한 플레이메이킹 능력으로 전방에 볼을 배급했으며 필요에 따라서는 상대 공격형 미드필더를 막아내기도 하며 전차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데뷔해 분데스리가 3연패와 UEFA컵 우승, 그리고 유러피언 컵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달성하며 구단의 황금기에 일조한 슈틸리케는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라리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군림하며 라리가 3회 우승과 코파 델 레이 2회 우승, 그리고 UEFA컵 우승과 유러피언 컵 결승 진출이라는 성적을 이뤄냈다.

같은 독일인이었던 베른트 슈스터와 함께 당대 라리가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았던 슈틸리케는 돈 발롱 어워드에서 라리가 최고의 외국인 선수상을 4년 연속으로 수상했고 라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는 여섯 번이나 선정되었으며 문도 데포르티보가 선정한 라 리가 MVP에도 두 번이나 선정되었다. 그리고 1979년에는 발롱도르 투표에서 19위에 올랐다.

독일 대표팀에서는 레알 마드리드로 떠난 사건 때문에 초년에는 디 만샤프트에서 배제되었으나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이후에 감독이 데어발로 교체되며 다시 소집되었는데 팀 수비라인의 리더로 UEFA 유로 1980 우승과 1982 스페인 월드컵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이뤄내며 베켄바우어의 후계자 역할을 했다.

 

11위 라이너 본호프

 


생년월일: 1952년 3월 29일
A매치 기록: 53경기 9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1970년대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우수한 대인 수비 능력은 물론이고 날카로운 중거리 슈팅에도 능했으며 우수한 축구 지능의 소유자로 사이드백과 센터백도 소화할 수 있었다.

묀헨글라트바흐에서 구단의 황금기를 함께한 레전드로 분데스리가 4회 우승을 이뤄낸 본호프는 유럽 무대에서도 1974-75 시즌 UEFA컵 우승을 이뤄냈고 1976-77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준우승이라는 호성적을 냈으며 본호프 개인도 1976-77 시즌 옹즈 몽디알이 뽑은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다. 그리고 스페인의 발렌시아에서도 1978-79 시즌에는 코파 델 레이를 우승했으며 1979-80 시즌에는 UEFA 컵 위너스컵을 우승을 이뤄냈다.

커리어 초기부터 독일 대표팀에 소집되며 수비형 미드필더에서 리베로로 포지션을 바꾼 베켄바우어의 후계자 중 한 명으로 떠올랐는데 UEFA 유로 1972에서는 백업 멤버로 우승을 경험했고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주전 멤버로 도약해 월드컵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UEFA 유로 1976에서도 결승에 진출하는데 공헌하며 대회 올스타팀에 선정되었고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도 4회 선정되며 1976년에는 개인 통산 최고 성적인 9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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