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사이드백 Top 10

국가의 영웅들/독일

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사이드백 Top 10

토르난테 2025. 1. 17.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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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독일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준일은 2025년 1월 17일입니다.

 


10위 에리히 유스코비악

 


생년월일: 1926년 9월 7일
A매치 기록: 31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1950년대 하반기 서독 최고의 레프트백으로 거친 대인 수비 능력과 폭발적인 킥력을 활용해 볼을 전방으로 보내는 부분에도 능해 망치라 불렸다.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리그 정상급 선수로 평가받았던 유스코비악은 디 먄샤프트에서는 1958 스웨덴 월드컵 4위를 기록하는 과정에서 오마르 코르바타, 알렉산다르 페트코비치, 쿠르트 함린과 같은 정상급 아웃사이드 라이트들을 상대하며 명성을 떨쳤다. 실제로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에 3회 선정되었다.

 

 

9위 호어스트디터 회트게스

 



생년월일: 1943년 9월 10일
A매치 기록: 66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베르더 브레멘

1960년대 중후에 명성을 떨친 견고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한 우수한 대인 마킹 능력으로 인해 철의 다리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수비 지역에서는 좌우 측면과 중앙을 안 가리고 훌륭한 활약을 보여줬다.

선수 생활 대부분을 베르더 브레멘에서 보낸 원 클럽맨이자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 회트게스는 디 그륀바이센의 1964-65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끌었으며 개인적으로도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도 3회 선정되었고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도 월드클래스 등급 1회,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 14회에 선정되었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베르티 포그츠가 대두하기 이전까지는 주축 멤버로 활약했던 회트게스는 1966 잉글랜드 월드컵 준우승, 1970 멕시코 월드컵 3위, 그리고 유로 1972 우승을 이끌어내는데 공헌했으며 1974 서독 월드컵에서도 백업 멤버로 우승의 영광을 함께했다.

 

 

8위 베르나르드 디츠

 


생년월일: 1948년 3월 22일
A매치 기록: 53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MSV 뒤스부르크

1970년대 하반기와 1980년대 상반기를 수놓은 분데스리가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로 야생마 같은 빠른 스피드와 지치지 않는 지구력은 물론 기술적으로도 훌륭했는데 공수 밸런스가 우수했으며 훌륭한 포지셔닝은 물론 헤딩 경합에도 능했으며 프로 생활 동안 단 한 장의 레드카드도 받지 않았을 정도로 깔끔한 수비를 선보였다.

뒤스부르크와 샬케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바이에른 뮌헨의 천적으로 명성을 떨쳤던 베르나트르 디츠는 소속팀이 좋지 않은 상황에 활약해 우승 커리어는 없지만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7회 선정되며 개인은 당대 최고의 리그에서 정상급 선수임을 확실하게 증명했고 특히 1977년에는 옹즈 몽디알 선정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클럽 커리어의 부족함과는 다르게 디 만샤프트에서는 좋은 성과를 냈던 디츠는 강력한 포지션 경쟁자였던 파울 브라이트너가 독일 축구협회와의 갈등으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뒤 대표팀에 뽑히지 못하자 빠르게 주전 레프트백 자리를 차지하며 UEFA 유로 1976 준우승과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8강을 이뤄냈고 UEFA 유로 1980에서는 주장 완장을 차고 팀의 우승을 이뤄내며 대표팀에서의 마무리를 화려하게 했다.

 

7위 파울 야네스

 



생년월일: 1912년 3월 11일
A매치 기록: 71경기 7골
신체조건: 키 178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유럽 대륙에서는 최초로 측면 수비수 역할을 했던 선수 중 하나로 기술적이고 우아한 태클과 훌륭한 점프력을 바탕으로 한 제공권 경합에서 장점을 보였는데 특히 '정확도 세계 챔피언'이라고 불렸을 정도로 킥의 정밀도가 높아 이를 활용해 롱패스로 빌드업을 주도했고 데드볼 상황에서 키커로 득점하기도 했는데 이를 두고 뒤셀도르프의 동료 마티아스 마우리즈는 그의 킥력을 두고 "야네스가 실축한 페널티 킥으로 크로스바를 맞고 튀어나온 공이 하프라인 근처에 떨어졌다."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에서 전성기를 누린 야네스는 1930-31 시즌에 독일 서부 지역리그 우승을 이뤄냈고 가울리가 체제에서는 가울리가 니더라인 5회 우승을 이뤄내며 지역리그 6회 우승을 이뤄냈고 전국단위 대회에서도 1933년 독일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고 1936년에도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1936-37 시즌 DFB포칼에서는 결승까지 파죽지세로 올랐지만 당대 독일 최강 샬케에 밀려 준우승에 그쳤고 이후에는 최전성기에 맞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커리어가 꼬였다,

1932-33 시즌 이후로 디 만샤프트의 주축 수비수로 활약하 야네스는 1934 서독 월드컵에서 대회 수위급 라이트 하프로 맹활약하며 우승후보와는 거리가 멀었던 독일을 3위에 올렸고 헤어베어거 체제에서는 1937년에 11번의 A매치에서 10승 1무를 기록하며 상승세를 타며 폴란드 브레슬라우에서 덴마크를 상대로 8-0 대승을 기록하는데 기여하며 브레슬라우 엘프의 전설을 쓰기도 했다. 1939년 스체판이 대표팀에서 물러나자 디 만샤프트의 주장직을 맡기도 했다.

 

 

6위 한스페터 브리겔

 

생년월일: 1955년 10월 11일
A매치 기록: 72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87kg
주 소속팀: FC 카이저슬라우테른

우수한 신체능력과 높은 축구지능을 겸비한 선수로 188cm의 89kg라는 거대한 체격은 물론 축구를 시작하기 전 육상에서도 큰 두각을 나타냈던 선수라 운동 능력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으며 이러한 우수한 피지컬을 앞세운 맨마킹 능력이 뛰어났는데 공격적인 부분에서도 양발을 모두 잘 썼고 특히 중거리 슈팅이 대단했으며 축구 지능도 뛰어나 필드 내에서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다.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 데뷔해 1978-79 시즌에 확고한 주전으로 도약한 브리겔은 1978-79 시즌부터 1981-82 시즌까지 붉은 악마 군단을 네 시즌 연속으로 분데스리가 4위 안에 들며 상위권으로 올렸고 DFB포칼 결승에도 2회 진출하는 데 큰 공을 세워 브리겔 개인도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4회 연속으로 선정되었으며 1980-81 시즌에는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을 받았다.

이탈리아 무대에 진출해서 활약한 엘라스 베로나에서는 중앙 미드필더와 수비형 미드필더도 활약하며 전성기를 누렸는데 왕성한 활동량을 활용한 전진성을 앞세워 약체로 평가받던 팀을 우승시키는데 큰 공을 세워 1985 발롱도르 8위에 올랐고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말년에는 삼프도리아에서 1987-88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브리겔도 세 팀에 머물면서 개인 통산 옹즈 몽디알 선정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자신의 다재다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브리겔은 레프트백 시절에는 UEFA 유로 1980 우승에 기여하며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고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도 준우승을 이뤄냈고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안드레아스 브레메에게 레프트백 자리를 내주고 스토퍼와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조국을 재차 결승행에 올렸으나 마라도나를 막지 못해 우승컵을 들지는 못했다.

 

5위 만프레트 칼츠

 


생년월일: 1953년 1월 6일
A매치 기록: 69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함부르크 SV

1970년대 후반 세계 최고의 측면 수비수로 역대 최고의 오른발 크로서로 손꼽힐 정도로 뛰어난 크로스 실력을 보여 이를 두고 바나나 크로스라 불렸으며 실제로 함부르크와 디 만샤프트에서 칼츠의 크로스와 흐루베쉬의 헤딩은 중요한 공격 루트로 자리 잡았음은 물론 함부르크 통산 100 득점을 넘게 득점했을 정도로 득점력에서도 강점을 보였다.

함부르크 통산 최다 출전자로 이름을 남긴 칼츠는 팀의 전성기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분데스리가 3회 우승, DFB포칼 2회 우승을 이뤄냈고 유럽에서도 컵 위너스 컵 우승과 1981-82 시즌 UEFA컵 결승 진출은 물론 1979-80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과 1982-83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을 모두 이뤄냈다. 특히 1979-80 시즌 유러피언 컵 4강 2차전에서는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5-1 대승을 거두는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원정에서의 2-0 패배를 완벽하게 뒤집기도 했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대단한 활약을 보여준 만프레트 칼츠는 UEFA 유로 1976에서는 포그츠의 백업으로 준우승을 경험했고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잠시 리베로로 활약했으나 오스트리아와의 경기에서 패하며 2차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그리고 1980년대에는 라이트백으로 회귀해 UEFA 유로 1980 우승과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 조국의 결승 진출에 큰 공을 세웠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에 3회 선정된 칼츠는 분데스리가 통산 출전 2위, 키커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 6회 선정된 칼츠는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1979년 4위와 1980년 10위를 기록했으며 1976년부터 선정한 옹즈 드 옹즈 선정 세계 베스트 일레븐에도 2회 선정되는 등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 세계 최고의 라이트백으로 군림했다.

 

 

4위 칼하인츠 슈넬링어

 


생년월일: 1939년 3월 31일
A매치 기록: 47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AC 밀란

1960년대 유럽 정상급 수비수로 이름을 날렸으며 우수한 체력과 빠른 기동력을 활용한 왕성한 활동량을 보여주며 상대의 공격을 틀어막아 폭스바겐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쾰른과 AC 밀란에서 전성기를 보냈는데 쾰른에서는 1962 독일 챔피언쉽 우승에 크게 기여해 발롱도르 투표에서 3위에 랭크되어 포디움에 올랐으며 AC 밀란에서는 리그 우승 1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3회는 물론 유러피언 컵과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 우승도 달성했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핵심 수비수로 활약한 슈넬링어는 1958 스웨덴 월드컵부터 1970 멕시코 월드컵까지 활약했으며 첫 번째 대회를 제외하고는 모두 주전으로 활약했는데 1962년 칠레 월드컵에선 뛰어난 활약으로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준우승,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3위라는 성적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새운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에 8회 선정되는 등 대체로 우수한 활약을 보여줬던 슈넬링어지만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자주 심판을 속이며 비매너 플레이를 자주 벌여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1970 멕시코 월드컵 준결승전에서는 이탈리아를 상대로 동점골을 득점해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가자 이탈리아 선수들에게 이탈리아로 돌아올 생각은 하지 말라는 협박을 듣기도 했다.

 

 

3위 필립 람

 


생년월일: 1983년 11월 11일
A매치 기록: 113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70cm / 몸무게 66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2010년대 최고의 명장 펩 과르디올라로부터 자신이 가르친 선수 중 가장 축구를 잘 이해하는 선수라 평가받은 지능적인 라이트백으로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2010년대 디 만샤프트와 바이에른 뮌헨을 이끌었다. 훌륭한 축구 지능과 강철 같은 체력, 적절한 공격 가담을 겸비한 2010년대 최고의 라이트백이었다.

슈투트가르트로 임대를 다녀온 것을 제외하면 선수 생활을 전부 바이에른 뮌헨에서 구단의 황금기를 보낸 필립 람은 분데스리가 8회 우승과 DFB 포칼 6회 우승, 그리고 2012-13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마저 제패하며 주장으로써 빅이어를 들며 트레블을 달성했다.

 

구단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며 '믿음직한'이라는 칭호를 받은 필립 람 개인도 개인 통산 키커 랑리스테 월드클래스 등급 5회 선정 및 키커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5회 선정되었고 유럽 단위로도 ESM 올해의 팀에 2회 선정, UEFA 올해의 팀에 5회 선정되었고 은퇴 직전 시즌인 2016-17 시즌에는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필립 람은 월드컵과 유로에 각각 3번의 대회에 출전했는데 첫 대회인 UEFA 유로 2004를 제외한 모든 대회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며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특히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주장으로서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영예를 누렸으며 이 활약으로 발롱도르 투표에서 6위에 랭크되었고 대표팀에서 은퇴한 2016년에는 UEFA 유로 대회 역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2위 안드레아스 브레메

 


생년월일: 1960년 11월 9일
A매치 기록: 86경기 8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인테르 밀란

1980년대 하반기 세계 최고의 레프트백이자 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세트피스 키커이자 양발잡이로 뛰어난 패싱력을 활용해 대표팀의 빌드업 시작점 역할을 했던 미래형 윙백이었으며 프리킥과 코너킥에 능해 팀의 공격을 지원했다.

카이저슬라우테른과 바이에른 뮌헨, 인테르 밀란에서 전성기를 누린 브레메는 바이에른과 인테르,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 모두 리그 우승을 이뤄내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1986-87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이뤄냈고 인테르에서는 1990-91 시즌 UEFA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는 포칼 우승을 이뤄냈다.

디 만샤프트 소속으로는 각각 세 번의 월드컵과 유로에 참가한 브레메는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결승전에서 페널티 킥 결승골을 넣고 월드컵 우승을 이루고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음은 물론 소파스코어 기준 대회 평점 2위를 기록하는 등 축구를 통달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UEFA 유로 1984와 UEFA 유로 1992에서도 우승을 하지는 못했지만 브레메 개인의 활약은 대단해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브레메는 개인적으로도 많은 영광을 누렸는데 분데스리가에 머문 기간에는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 1988-89 시즌에는 인테르 올해의 선수와 세리에 A 평점왕인 구에린 도르를 수상했으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발롱도르 포디움에 드는 영예를 누렸다.

 

1위 베르디 포그츠

 


생년월일: 1946년 12월 30일
A매치 기록: 96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68cm / 몸무게 67kg
주 소속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유럽 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백으로 통하는 선수로 특히 크루이프마저 완전히 지워버린 발군의 대인 마킹 실력은 당대는 물론 역대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며 팬들로부터 마치 사냥개와 같다고 'Der Terrier'라고 불렸다.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클럽 커리어의 전부를 보낸 원 클럽맨인 베르티 포그츠는 분데스리가 5회 우승과 UEFA컵 2회 우승, 그리고 1976-77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이뤘던 중심에는 모두 그가 있었으며 1972-73 시즌에는 포칼을 우승하며 황금기를 누리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웠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맡아 1970 멕시코 월드컵을 시작으로 황금기에 기여한 포그츠는 3회의 월드컵과 2회의 유럽 선수권 대회에 참가했는데 특히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결승전에서 크루이프를 완벽하게 봉쇄하며 숨은 공로자 역할을 했으며 UEFA 유로 1976와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에 11회 선정된 포그츠는 묀헨글라트바흐와 서독 대표팀에서 활약하는 동안 많은 개인상을 수상했는데 키커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8회 선정되었고 1971년과 1979년에는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으며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노미네이트에 5회 선정되어 10위 안에 네 번 들었는데 특히 1975년에는 발롱도르 4위에 오르며 라이트백 포지션에서는 발롱도르 역대 최고의 순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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