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사이드백 Top 21~30

국가의 영웅들/독일

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사이드백 Top 21~30

토르난테 2025. 1. 15.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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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독일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준일은 2025년 1월 15일입니다.

 


30위 로빈 고젠스

 


생년월일: 1994년 7월 5일 
A매치 기록: 23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아탈란타 BC

2020년대 초반 세리에 A 톱클래스 레프트백으로 수비력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알고도 못 막을 정도의 빠른 순간 가속도를 이용해 오버래핑과 언더래핑을 가리지 않고 폭발적인 공격 가담을 보여줬으며 강력한 왼발 킥력을 바탕으로 한 날카로운 크로스와 컷백을 선보였고 자신이 직접 중앙으로 침투해 마무리 짓는 능력 역시 뛰어났으며 공중볼 경합에서도 장점을 보여 제공권 장악 능력은 물론 헤더를 활용한 득점이나 어시스트도 종종 기록했다.

아탈란타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가스페리니 체제 아탈란타의 황태자로 군림한 고젠스는 오른쪽의 하테부르와 함께 공격적인 윙백 라인을 구성해 2018-19 시즌부터 2020-21 시즌까지 3년 연속으로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성적인 세리에 A 3위를 기록하는데 큰 공을 세웠고 2019-20 시즌에는 구단 역사상 최초로 UEFA 챔피언스리그 8강에 진출하는데 큰 공을 세웠고 해당 시즌 세리에 A 올해의 팀에도 선정되었다.

독일 대표팀에도 승선해 활약하며 UEFA 유로 2020에서 포르투갈을 상대로 조국의 토너먼트 진출을 이끄는 맹활약을 선보였으나 인테르와 우니온 베를린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명단에서 탈락했고 이후 미텔슈테트와 라움에게 대표팀 자리를 완전히 내줬다.

 

29위 제프 피온테크

 


생년월일: 1940년 3월 5일
A매치 기록: 6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베르더 브레멘

분데스리가 출범 초창기에 활약했던 수비수로 라이트백과 센터백을 모두 우수하게 소화했으며 가끔 패스미스를 범했지만 매우 강력한 몸싸움과 터프한 태클을 활용해 상대 공격수를 무력화시키는데 능했으며 라이트백으로 나선 경기에서는 가끔 기습적으로 공격에 가담해 크로스를 올려 찬스를 만들어냈다.

베르더 브레멘에서 커리어의 대부분을 보낸 피옹테크는 1960-61 DFB포칼 우승을 이뤄냈고 분데스리가 출범 이후에는 1964-65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과 1967-68 시즌 준우승을 이뤄내며 베르더 브레멘의 약진을 이끌었다, 피옹테크 개인도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2회 선정되었다.

다만 디 만샤프트에는 베르티 포크츠, 호어스트디터 회트게스, 프리델 루츠와 같은 우수한 라이트백이 이미 많이 있었기에 중용되지 못했다.

 

28위 한스 플뤼글러

 


생년월일: 1960년 3월 27일
A매치 기록: 11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2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1980년대 중후반에 독일에서 이름을 날린 레프트백으로 우수한 신체 능력과 스테미너에서 나오는 왕성한 활동량과 빠른 스피드와 날카로운 왼발 크로스와 슈팅으로 골 찬스와 득점을 만들어냈으며 센터백으로 기용할 수 있었을 정도로 수비력도 준수한 공수 밸런스가 우수한 수비수였기에 레프트백과 좌측 스토퍼, 그리고 레프트 윙백을 모두 소화했다.

1980년대 바이에른이 분데스리가의 패자로 군림하는데 큰 공을 세웠던 플뤼글러는 아우겐탈러, 나흐트바이, 에더 등과 함께 분데스리가 5회 우승과 포칼 3회 우승, 그리고 1986-87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큰 공을 세웠음은 물론 전성기가 지나 바이에른 뮌헨 1군에서 밀려난 뒤에도 다른 클럽들의 제의를 거절하고 바이에른 뮌헨 2군 팀에서 오랜 기간 활약하며 후배들의 멘토 역할을 했던 충성심의 화신이었다.

서독 대표팀의 두터운 선수풀로 인해 오랫동안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하다가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브레메와 부흐발트의 백업으로 서독 대표팀에 소집되며 벤치에서 우승을 경험하기도 했다.

 

 

27위 아르네 프리드리히

 


생년월일: 1979년 5월 29일
A매치 기록: 82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헤르타 BSC

2000년대 독일 무대 정상급 라이트백 겸 센터백으로 젊은 시절에는 기본적으로 우수한 체격과 준수한 스피드를 활용한 수비적인 라이트백 역할을 맡았으며 서른에 가까워진 시점에서는 센터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해 활약했으며 완력이 우수해 공이 터치라인 밖을 나간 스로인 상황에서는 공을 길게 주며 공격에 기여하기도 했다.

페를과 아르미니아 빌레펠트를 거쳐 헤르타 BSC에서 전성기를 누린 프리드리히는 팀을 분데스리가 상위권에 올려놓았음은 물론 2002 DFB리가포칼 및 UEFA 인터토토컵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웠으나 헤르타 BSC가 강등된 뒤에 떠난 볼프스부르크에서는 폼이 급격하게 떨어지며 부진했다.

2000년대 독일 대표팀에서도 레귤러 멤버로 중용된 프리드리히는 UEFA 유로 2004를 시작으로 2006 독일 월드컵과 UEFA 유로 2008에서는 라이트백으로 나섰는데 월드컵에서는 3위, 유로에서는 준우승을 이뤄내며 조국의 포백 정착에 기여했고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센터백으로 나서며 메르테사커와 발을 맞춰 조국을 3위에 올렸다.

 

26위 빌리 노이베어거

 


생년월일: 1946년 4월 15일
A매치 기록: 2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6cm / 몸무게 68kg
주 소속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1970년대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한 수비수로 기본적으로 레프트백과 리베로에서 많이 뛰었지만 좌측면과 중앙의 모든 포지션에서 활약할 수 있었던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왕성한 활동량과 탄탄한 기본기, 그리고 높은 전술 이해도를 겸비했는데 탄탄한 기본기에서 나오는 드리블 돌파를 통한 오버래핑으로 공격에 가담했다가도 팀이 볼 소유를 잃으면 곧바로 수비에 복귀했음은 물론 빌드업 상황에서는 양질의 패스를 통해 팀의 빌드업 작업을 돕는 역할도 능했으며 수비적으로도 대인 수비와 커버 플레이 모두 준수했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데뷔해 좋은 활약을 펼쳐 독일 대표팀에도 소집되었던 노이베어거는 베르더 브레멘과 부퍼탈 SV를 거쳐 프랑크푸르트에 이적해 전성기를 누렸는데 DFB포칼 2회 우승과 1979-80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내며 전성기를 누렸다. 노이베어거 개인도 부퍼탈 시절인 1973-74 시즌과 프랑크푸르트 시절인 1975-76 시즌에 키커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도 인터내셔널 클래스에 3회 선정되었음은 물론 한때 분데스리가 최다 출전자 타이틀까지 가지고 있었으나 이는 팀동료 칼하인츠 쾨벨에게 내줬다.

소속팀에서는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5회 선정되는 등 뛰어난 활약상에도 불구하고 노이베어거의 대표팀 경력이 매우 짧은데 이는 파울 브라이트너, 베르나르트 디츠, 베른트 파츠케, 그리고 라이트백이지만 레프트백을 볼 수 있었던 만프레트 칼츠나 호어스트디터 회트게스와 같은 훌륭한 선수들과 주전경쟁에서 밀린 탓이 컸다. 당대 서독의 선수풀은 세계에서 가장 두꺼웠다.

 

 

25위 지그문트 하링어

 


생년월일: 1908년 12월 9일
A매치 기록: 15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1930년대 초반 바이에른 뮌헨의 첫 약진을 이끈 풀백으로 체구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강건한 근력과 낮은 무게중심을 바탕으로 몸싸움에서 장기를 보였음은 물론 굵은 하체에서 나오는 킥력을 바탕으로 수비수였음에도 프리킥과 페널티킥을 도맡아 처리했는데 그 시대에 수비수들이 세트피스를 전담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1927년에 바이에른 뮌헨에서 데뷔한 하링어는 콘라트 하이트캄프, 루트비히 골드브루너와 함께 견고한 수비라인을 구성해 활약하며 바바리안 챔피언십 및 가울리가 바이에른을 도합 7회 우승했고 1931-32 시즌에는 전국리그 우승을 이뤄내며 최초의 마이스터 샬레를 들어올렸다. 그러나 구단 수뇌부와의 의견 충돌로 팀과 틀어진 뒤에 같은 지역의 바커 뮌헨으로 떠났으나 바커 뮌헨에서는 팀성적은 좋지 못했다.

독일 대표팀에서는 1931년 1월 남부 독일 대표팀에 데뷔해 좋은 모습을 보였고 그 경기에서 3-0 승리를 이뤄냈는데 이 경기를 본 대표팀 감독 오토 네어츠 감독에 의해 발탁되었고 주전 경쟁자인 파울 야네스와 함께 라이트 하프백과 라이트 풀백을 번갈아가며 맡아 1934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3위에 오르는데 공헌했다. 그러나 제프 헤어베어거 체제에서는 파울 야네스에게 완전히 밀려나며 중용받지 못했다.

 

24위 베르너 콜마이어

 



생년월일: 1924년 4월 19일
A매치 기록: 22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카이저슬라우테른

1950년대 상반기에 이름을 날린 비수로 WM 시스템에서 레프트 풀백으로 주로 활약했는데 특유의 믿음직함으로 팀원들의 신뢰를 받았으며 항상 자신감이 넘쳤다고 전해졌다. 키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운동능력이 대단했는데 100m 달리기를 11초 이내에 주파했고 근대 5종 경기를 즐겼을 정도로 신체 능력이 탁월했고 다부진 체구를 이용한 몸싸움에 능했고 용수철과 같은 점프력으로 작은 키에도 제공권 경합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였다.

1940년대와 50년대에 걸쳐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 활약한 콜마이어는 1941-42 시즌 가울리가 베스트마르크 우승을 시작으로 오베리가 체제에서는 오베리가 주트베스트 10회 우승을 이뤄내며 서독 남서부를 평정했고 전국단위 대회인 독일 챔피언십에서도 5회 결승에 올라 2회 우승을 이뤄내며 붉은 악마 군단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서독 대표팀에서도 한스 바우어를 제치고 주전으로 활약한 콜마이어는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는 클럽 동료였던 발터 형제와 베르너 리브리히, 호어스트 에켈과 함께 조국의 우승을 이끈 이른바 '베른의 기적'을 일궈내기도 했다.

 

23위 프리델 루츠

 


생년월일: 1939년 1월 21일
A매치 기록: 12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오베리가 시절 말기와 분데스리가 초창기에 활약한 다재다능한 수비수로 WM 시스템의 라이트 풀백, 라이트 하프와 4백 시스템의 라이트백과 센터백에서 뛸 수 있었는데  빠른 발과 강력한 지구력을 통해 우측면을 부지런하게 뛰어다니며 샬케의 한스 노박과 함께 독일 축구계에서는 최초로 공격형 풀백 역할을 맡아 우측면에서 오버래핑한 뒤 정교한 킬패스로 찬스를 만들었고 볼을 뺏긴 상황에서는 상대 공격수를 따라다니며 수비에도 헌신적으로 가담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보낸 루츠는 1959년 클럽의 남부 오베리가 우승과 서독 챔피언십 우승을 동시에 이뤄냈으며 1959-60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준우승과 1963-64 시즌 DFB포칼 준우승에도 힘을 보탰다. 그 결과 루츠 개인도 1965-66 시즌에는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드는 활약을 보여줬다. 1966-67 시즌에는 잠시 1860 뮌헨으로 이적했다가 다시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와서 팀의 베테랑 역할을 수행하며 말년을 보냈다.

독일 대표팀 소속으로도 종종 소집되었던 루츠는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회트게스의 백업으로 거의 대부분 벤치를 지켰는데 소련과의 4강전에서는 선발로 나와 팀의 승리에 일조하며 조국을 결승 무대로 보냈다. 그러나 그 뒤에는 베르티 포그츠의 성장세와 호어스트디터 회트게스가 건재함에 따라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다.

 

22위 마르셀 슈멜처

 



생년월일: 1988년 1월 22일
A매치 기록: 16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010년대 도르트문트의 약진을 이끈 레프트백으로 수비하기 유리한 위치를 선점해 상대를 마킹했으며 왕성한 활동량과 적재적소의 오버래핑을 통해 좌측면에서 공수 양면에서 큰 힘이 되었다.

선수 커리어를 도르트문트 한 구단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 슈멜처는 분데스리가 2회 우승 및 2012-13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는데 특히 2010-11 시즌에는 전 경기에 출전해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끌며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독일 대표팀 감독 요하임 뢰브 체제의 대표팀에서 중용받지 못한 슈멜처는 이후 부상으로 폼이 떨어지며 소속팀에서도 백업 멤버로 밀려났다. 그리고 치명적인 부상으로 인해 기량이 하락한 자신이 팀에 도움이 되지 못하자 미련 없이 은퇴를 선언했다.

 

 

21위 외르크 하인리히

 


생년월일: 1969년 12월 6일
A매치 기록: 37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1990년대 독일에서 이름을 날렸던 왼쪽 측면 자원으로 키는 컸지만 마른 체형에 무게 중심이 위로 있어서 몸싸움에선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지만 빠른 스피드로 이를 극복했으며 적극적인 오버래핑 이후 크로스로 찬스를 만들거나 슈팅으로 득점을 노리는 공격형 사이드백이었다.

도르트문트에서 전성기를 누린 하인리히는 로이터와 함께 윙백 조합을 구성해 분데스리가 2회 우승과 1996-97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세리에 7공주의 하나로 불렸던 피오렌티나로 이적해서도 우수한 활약을 펼치며 감독관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가 다시 도르트문트로 돌아와  2001-02 시즌에는 UEFA컵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이뤄냈다.

독일 대표팀에서는 주 포지션 레프트백 이외에도 라이트백으로도 종종 출전했던 하인리히는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라이트백으로 활약했으나 8강에서 탈락하며 녹슨 전차 시대의 아픔을 상징하는 세대로 대표팀 커리어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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