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Top 21~30

국가의 영웅들/독일

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Top 21~30

토르난테 2025. 1. 12. 11:53
728x90
728x90

*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독일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준일은 2025년 1월 12일입니다.


30위 롤프 뤼스만

 


생년월일: 1950년 10월 13일
A매치 기록: 20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FC 샬케 04

바이에른의 한스게오르크 슈바르첸벡과 함께 1970년대 분데스리가 최고의 스토퍼로 평가받았던 선수로 터프한 몸싸움과 특유의 운동능력은 물론 훌륭한 수비 기술도 겸비한 완벽한 대인 수비로 이름을 날렸으며 제공권 경합에 능해 세트피스 상황에서 헤더로 상대의 골망을 수도 없이 갈랐었다.

베스트팔렌의 두 명문에서 활약한 롤프 뤼스만은 샬케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누렸는데 피히텔과 함께 수비라인을 이끌며 두 번의 분데스리가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1971-72 시즌 DFB포칼 우승을 이뤄냈다. 그러나 지역 라이벌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해 팀 수비라인의 중핵으로 활약하다가 은퇴했다.

샬케 시절과 도르트문트 시절을 포함해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4회 선정된 뤼스만은 독일 대표팀에서는 유일하게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만 참가했는데 해당 대회에서 슈바르첸벡을 밀어내고 주전 스토퍼로 활약하며 6경기에 모두 선발 출전해서 8강 2차 리그 진출을 이뤄냈다.

 

29위 로타어 쿠어브유바이트

 


생년월일: 1950년 11월 6일 
A매치 기록: 66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7kg
주 소속팀: 카를 차이스 예나

1970년대 동독 축구계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주로 스토퍼로 나서며 뛰어난 대인 수비를 보였지만 상황에 따라서 라이트백과 레프트백, 그리고 수비형 미드필더에 출전해서도 우수한 기량을 뽐냈던 유틸리티 수비수였다.

스탈 리자에서 데뷔해 카를 차이스 예나에서 전성기를 누린 쿠어브유바이트는 센터백 콘라트 바이제와 골키퍼 한스울리히 그라펜틴과 함께 강력한 수비라인을 구성해 FDGB 포칼 3회 우승을 이뤄내며 동독 축구사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군림했다.

동독 대표팀 소속으로는 센터백으로 뛰지는 못했지만 다양한 포지션에서 활약하며 1972 뮌헨 올림픽 동메달과 1974 서독 월드컵 8강, 그리고 1976 몬트리올 올림픽에서는 우승을 이뤄내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8위 크리스티안 뵈른스

 


생년월일: 1972년 5월 10일
A매치 기록: 66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독일 축구를 대표하는 센터백으로 넓은 커버 범위와 우수한 대인 수비 능력을 겸비한 스토퍼였는데 기본적으로 다른 능력들도 출중했기에 종종 측면 수비수와 리베로로도 기용되었다.

발트호프 만하임에서 데뷔해 레버쿠젠에서 독일 무대 정상급 수비수로 성장한 뵈른스는 1992-93 시즌에는 구단 역사상 첫 DFB포칼 우승을, 1996-97 시즌 분데스리가 준우승을 이뤄냈고 뵈른스 개인도 1995-96 시즌부터 1997-98 시즌까지 세 시즌 연속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며 리가 정상급 스토퍼로 명성을 누렸다. 도르트문트 시절에도 2001-02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과 UEFA컵 준우승을 이뤄냈으며 그 해에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팀 오브 더 시즌에도 들었고 이후 암흑기에도 수비진의 기둥으로 활약하며 구단의 분데스리가 잔류를 위해 치열하게 싸우다가 은퇴했다.

독일 대표팀에서도 중용된 뵈른스는 UEFA 유로 1992에서는 백업 수비수로 준우승을 경험했으나 그 뒤에는 녹슨 전차 군단이라는 오명을 쓴 대표팀의 암흑기를 지탱하며 1998 프랑스 월드컵과 UEFA 유로 2004에 참가했다. 특히 2002 한일 월드컵은 부상으로, 2006 독일 월드컵은 클린스만과의 불화로 참가하지 못했던 아픔이 있다.

 

27위 요나탄 타

 


생년월일: 1996년 2월 11일
A매치 기록: 33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95cm / 몸무게 94kg
주 소속팀: 바이어 04 레버쿠젠

유망주 시절에 독일 축구계에서 제2의 제롬 보아텡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수비수로 195cm의 거구임에도 빠른 발을 가지고 있고 우수한 패싱력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후방 빌드업 능력도 겸비했으며 큰 키를 바탕으로 제공권 경합에도 장점을 드러냈고 공만 빼내는 깔끔한 태클에도 장기를 드러내나 집중력이 아쉬워 다소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함부르크에서 데뷔해 2015년에 프리츠 발터 메달 U-19 부문 금메달을 수상하는 등 두각을 나타낸 요나탄 타는 2015-16 시즌 레버쿠젠으로 이적해 전성기를 누리며 2019-20 시즌 DFB포칼 준우승을 이뤄냈고 2021-22 시즌에는 파트너 탑소바와 함께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팀을 UEFA 챔피언스리그에 진출시켰다. 그리고 2023-24 시즌에는 팀의 수비라인의 리더로 맹활약하며 바이에른 뮌헨의 우승행진을 11연패에서 저지하며 분데스리가 우승을 조기에 확정지었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7회 선정된 요나탄 타는 개인으로도 UEFA 유로파 리그 시즌의 스쿼드 3회 선정 및 2023-24 시즌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 키커 올해의 팀, 그리고 VDV 11에 모두 선정되었으며 2024년을 기점으로 독일 대표팀에서도 주전으로 도약해 UEFA 유로 8강행을 이끌기도 했다.

 

26위 옌스 노보트니

 


생년월일: 1974년 1월 11일 
A매치 기록: 48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87kg
주 소속팀: 바이어 04 레버쿠젠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독일 축구 암흑기에 팬들에게 한 줄기의 희망의 빛으로 통했던 리베로로 우수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한 수비력과 제공권 경합 능력을 겸비했으며 적절하게 상대를 틀어막는 커버 플레이를 보여주며 수비라인 최후의 보루로 활약했다.

올리버 칸, 메멧 숄과 함께 카를스루헤에서 데뷔해 활약하다가 레버쿠젠으로 이적한 노보트니는 자신이 오기 전에 리가 14위에 머물렀던 팀을 단숨에 2위까지 끌어올렸으며 1996-97 시즌부터 2001-02 시즌까지 여섯 시즌 연속으로 4위 안에 들었는데 그중 준우승만 4회 기록했다. 특히 2001-02 시즌에는 분데스리가에서도 치열한 우승 경쟁을 벌였으며 UEFA 챔피언스리그와 DFB포칼에서 모두 결승에 진출했지만 모두 준우승을 하며 축구 역사상 최초로 트리플 러너업을 기록했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3회 선정되었고 키커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1998-99 시즌부터 2001-02 시즌까지 4년 연속으로 선정된 노보트니는 독일 대표팀에서는 암흑기라 불리던 녹슨 전차 군단의 시대의 희생양이 되며 두 번의 유로에서는 조별예선 탈락을, 2002 한일 월드컵은 부상으로 나서지 못했으며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이미 잦은 부상으로 기량이 하락해 백업으로 밀려 3위 결정전에만 출전했을 정도로 대표팀 운이 없었다.

 

25위 루드비히 골드브뤼너

 


생년월일: 1908년 3월 5일
A매치 기록: 39경기 0골
신체조건: 키 175cm / 몸무게 72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1930년대 독일 최고의 센터하프로 수비라인 통솔을 담당한 수비라인의 리더로 철벽이라 불리는 대인 마킹 실력과 양 풀백을 지휘하는 수비 지휘 능력 모두 우수한 선수였기에 그의 수비력은 실비오 피올라와 페르난도 페이로테우, 레이몽 브렌과 같은 전설적인 공격수들도 고전시켰는데 수비력만 뛰어난 선수가 아니라 정교한 패스로 앞선으로 볼을 배급하는 능력도 우수했다.

말년에 1860 뮌헨에서 1년 머문 것을 제외하고 선수 생활 전부를 바이언에서 보낸 골드브루너는 베르치르크스리가 바이에른 및 가우리가 남부에서 총 7회 우승을 이뤄냈고 1932년에는 독일 챔피언십 우승을 이뤄내며 구단 역사상 첫 마이스터 샬레를 들어올린 공신으로 평가받았다. 그리고 하이드캄프가 은퇴한 뒤에는 주장직을 수행했으며 1938년부터 1943년까지 선수 겸 감독으로 활약했다.

독일 대표팀에서는 제프 헤어베어거 제체에서 WM 시스템의 센터하프로 주목받았던 골드브뤼너는 1937년 1년간 A매치에서 11경기에서 8승 3무를 기록했는데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실비오 피올라를 완벽하게 지워내며 무승부를 기록했고 덴마크를 상대로 8-0 대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했으나 정작 월드컵 본선에서는 안슐루스로 인해 오스트리아 선수들을 무리하게 합류시키면서 조직력 문제로 1라운드 탈락이라는 굴욕을 겪었다.

 

24위 페어 메르테자커

 


생년월일: 1984년 9월 29일
A매치 기록: 104경기 4골
신체조건: 키 198cm / 몸무게 90kg
주 소속팀: 베르더 브레멘

2000년대 하반기와 2010년대 초반 독일 축구의 부활을 이끌었던 수비 라인의 리더로 키가 2m에 육박했으며 강력한 몸싸움 능력과 지능적인 위치 선정과 뛰어난 예측력을 겸비하며 빼어난 수비력을 보였으며 독일 언론들은 그를 방어 장대라 불렀다.

하노버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베르더 브레멘과 아스날에서 보낸 메르테사커는 브레멘에서는 수비 라인의 리더로 활약하며 2007-08 시즌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2008-09 시즌에 포칼 우승과 UEFA컵 결승 진출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아스날로 이적한 뒤에는 주장완장을 차고 파트너 코시엘니와 함께 우수한 수비력을 보여주며 FA컵 3회 우승과 커뮤니티 실드 2회 우승을 이뤄냈는데 이 과정에서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6회 선정되었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을 정도로 장기간 활약한 메르테사커는 2006 독일 월드컵과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3위에 올렸으며 팀 수비의 핵심으로 UEFA 유로 2008 준우승을 이뤄냈고 백업으로 밀려난 뒤에는 UEFA 유로 2012 준결승 진출과 2014 브라질 월드컵 우승을 경험했다.

 

23위 토마스 헬머

 


생년월일: 1965년 4월 21일
A매치 기록: 68경기 5골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1990년대 분데스리가를 대표했던 센터백으로 열정적인 태클과 냉정한 판단력을 겸비한 든든한 수비수로 우수한 점프력을 통해 제공권 경합에서 강점을 보였고 세트피스 상황에서 위협적인 헤더로 상대 골문을 위협했으며 축구 지능이 높아 스토퍼와 리베로는 물론 수비형 미드필더도 소화할 수 있었음은 물론 강력한 왼발 킥력으로 빌드업에도 도움을 줬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데뷔해 바이에른 뮌헨에서 전성기를 누린 헬머는 인테르에서 돌아와 리베로로 포지션을 변경한 마테우스를 보좌하며 1990년대 바이에른의 분데스리가 3회 우승과 DFB포칼 2회 우승, 그리고 1995-96 시즌 UEFA컵 우승을 이뤄냈으며 그 과정에서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8회 선정되었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중용된 토마스 헬머는 주전 수비수로 각각 두 번의 월드컵과 유럽선수권대회에 참가했는데 특히 UEFA 유로에 강한 모습을 보였는데 UEFA 유로 1992와 UEFA 유로 1996에서 모두 결승전에 선발 출전하는 기염을 토했음은 물론 후자의 대회에서는 마티아스 잠머를 보좌하며 체코를 2-1로 제압하고 우승하는데 기여했다.

 

22위 콘라트 바이제

 


생년월일: 1951년 8월 17일
A매치 기록: 86경기 2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65kg
주 소속팀: 카를 차이스 예나

1970년대 동독 축구의 약진을 이끌었던 단신의 센터백으로 키가 작았으나 높은 수준의 예측력과 탄력적인 점프력 및 재빠른 반응속도를 활용해 자신의 신체적 약점을 커버했으며 유려한 발밑과 강력한 슈팅력 및 높은 수준의 축구지능도 겸비해 리베로와 사이드백, 그리고 수비형 미드필더도 소화할 수 있었다.

커리어 전체를 카를 차이스 예나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 바이제는 420경기에 출전해 FDGB 3회 우승 및 리그 5회 준우승을 이뤄냈는데 초년에는 주로 스토퍼로 기용되었지만 말년에는 리베로로 기용되었는데 특히 쿠어브유바이트와의 수비라인 조합은 유명세를 떨쳤다.

동독 대표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한 바이제는  1970 UEFA 청소년 토너먼트 우승을 시작으로 1972 뮌헨 올림픽 3위와 1974 서독 월드컵 8강, 그리고 1976 몬트리올 올림픽에서는 조국의 우승을 이뤄내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1위 헤어베르트 에어하르트

 


생년월일: 1930년 7월 6일
A매치 기록: 50경기 1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그로이터 퓌르트

1950년대 독일무대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주로 센터 하프에서 활약했지만 풀백과 윙하프도 막힘없이 소화했는데 키는 작았지만 근육질의 다부진 체격에서 나오는 강력한 스트랭스를 이용한 몸싸움과 파워풀한 태클, 그리고 높은 수준의 기술과 적절한 위치 선정 및 수비라인 컨트롤 및 커버 플레이로도 유명했던 다재다능한 수비수였다.

그로이터 퓌르트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추앙받는 에어하르트는 1949-50 시즌 남부 오베리가 우승을 이뤄냈으며 1955-56 시즌 이후 키커 랑리스테 평가 시스템이 나온 뒤에는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을 무려 13회 받았고 말년에는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해서 활약하기도 했다.

디 만샤트프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했던 에어하르트는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는 벤치에서 우승을 경험했으며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는 주전 센터하프로 나와서 조국의 4강행을 이끌었고 1959년부터 독일 대표팀의 주장을 맡기도 했다. 1962 칠레 월드컵에서 8강행을 이끌고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