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독일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고로 트라우트만은 제외되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 출처는 RSSSF와 트렌스퍼마크트이며 둘의 기록이 상충할 경우에는 전자를 우선적으로 따릅니다.
10위 마크안드레 테어 슈테겐
생년월일: 1992년 4월 30일
A매치 기록: 42경기 50실점 / 13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FC 바르셀로나
2010년대 하반기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골키퍼로 다소 기복은 있지만 같은 국적의 선배 노이어와 유사한 플레이 스타일을 가져 넓은 커버 범위와 미드필더 출신의 뛰어난 발밑 능력과 골킥 능력을 겸비했으며 선방 역시 당대 유럽 무대에서 톱클래스를 달릴 정도로 우수한 편이다.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데뷔해 U-19 프리츠 발터 금메달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2011-12 시즌 VDV 선정 베스트 일레븐 및 구단 올해의 선수상을 2회 수상하며 잠재력을 보였던 테어 슈테겐은 발데스의 대체자가 필요했던 바르셀로나에 입단했는데 2014-15 시즌에는 브라보와 로테이션으로 출전했는데 리가에서 나오지 않았던 대신 챔피언스리그와 코파 델 레이에서 주전으로 기용되며 트레블에 기여했고 이후에는 브라보와의 주전 경쟁에서 이긴 슈테겐은 상술했던 트레블을 포함해 라리가 5회 우승, 코파 델 레이 5회 우승, 그리고 2014-15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라는 위업을 이뤄냈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 3회 선정 및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18회 선정된 테어 슈테겐은 ESM 올해의 팀 4회 선정 및 UEFA 챔피언스리그 올해의 스쿼드에 2회 선정되었고 특히 2018-19 시즌에는 트로페 야신 2위 및 FIFA 올해의 골키퍼 2위에 선정되었으며 2022-23 시즌에는 트로페오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와 토르페오 리카르도 사모라, 그리고 라리가 올해의 선수와 라리가 올해의 팀을 석권했다.
독일 대표팀에서는 청소년 대표 시절인 2009 U-17 월드컵에서 조국의 우승을 이뤄내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프리츠 발터 동메달을 수상한 슈테겐은 성인 대표팀에서는 마누엘 노이어라는 축구 역사에 남을 위대한 골키퍼에 밀려 백업으로 활약했지만 그가 부상을 당했을 때에는 주전으로 나섰다. 특히 기존 1군 선수들이 대거 제외된 2017 컨페드컵에서는 조국의 우승에 이바지하며 결승전 MOTM에 선정되었다.
9위 위르겐 크로이
생년월일: 1946년 10월 19일
A매치 기록: 88경기 75실점 / 37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BSG 작센링 츠비카우
동독 축구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로 평가받는 인물로 엄청난 순발력과 신속정확한 판단력에서 나오는 선방 능력은 제프 마이어, 디노 조프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고 전해진다.
커리어의 전부를 작센링 츠비카우에서만 보낸 크로이는 클럽의 FDGB포칼 2회 이뤄냈으며 1975-76 시즌에는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 4강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군계일학의 활약을 펼치며 동독 올해의 선수상을 3회 수상했다.
동독 대표팀에서도 경쟁자 한스울리히 그라팬틴을 벤치로 밀어넣고 핵심 선수로 활약한 크로이는 동독 대표팀의 전성기를 이끌며 1972 뮌헨 올림픽 동메달, 1974 서독 월드컵 8강, 그리고 1976 몬트리올 올림픽 금메달을 이뤄내는 기염을 토했고 이를 바탕으로 발롱도르 노미네이트에 2회 선정되었다.
8위 옌스 레만
생년월일: 1969년 11월 10일
A매치 기록: 61경기 51실점 / 31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90cm / 몸무게 87kg
주 소속팀: 아스날 FC
1990년대 하반기와 2000년대 초중반에 걸쳐 유럽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골키퍼로 긴 팔다리와 재빠른 반사신경을 활용해 골문을 지켰음은 물론 드넓은 시야와 우수한 발기술을 바탕으로 빌드업에도 큰 기여를 했다. 게다가 공중볼 경합과 정확하면서도 강력한 던지기를 활용한 빠른 역습을 이끌기도 했다.
샬케 유스팀에서 데뷔해 1990-91 시즌 2.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내며 팀의 분데스리가 복귀를 이끌며 첫 전성기를 시작한 레만은 팀의 에이스로 군림하며 팀의 분데스리가 상위권 도약을 이끌었고 레만 개인도 1995-96 시즌 키커 선정 분데스리가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1996-97 시즌 UEFA컵 결승전에서의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바탕으로 우승에 공헌하며 1997년 UEFA 클럽 최우수 골키퍼로 선정되었다.
AC 밀란에서는 주전 경쟁에서 밀렸으나 도르트문트로 돌아와서 부활에 성공하며 2001-02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낸 레만은 팀이 재정난으로 어려워지자 아스날에 합류했는데 아스날에서는 2003-04 시즌 무패 우승 및 2005-06 시즌에는 구단 역사상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행에 큰 공을 세웠으나 정작 결승전에서의 퇴장으로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결승전 이전까지의 활약이 너무나도 대단해 해당 시즌 아스날 올해의 선수 및 UEFA 클럽 최우수 골키퍼로 선정되었다.
클럽에서의 우수한 퍼포먼스에도 불구하고 디 만샤프트에서는 올리버 칸과 안드레아스 쾨프케의 아성에 밀려 쭉 벤치를 지켰던 레만은 자국에서 열린 2006년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도약하며 디 만샤프트의 준결승 진출에 공헌하며 대회 올스타 팀 서브 멤버에 들었으며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의 활약이 더해져 2005-06 시즌 하반기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 선정 및 2006 발롱도르 투표에서 10위에 올랐다.
7위 한스 틸코프스키
생년월일: 1935년 7월 12일
A매치 기록: 39경기 41실점 / 15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엄격하기로 유명한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에 6회 및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 12회에 선정되며 1960년대 독일을 대표하는 골키퍼로 이름을 날린 틸코프스키는 안정적인 볼 캐칭 능력과 동물적인 반사신경, 그리고 강인하면서도 신중했기에 냉철한 판단력은 물론 승부욕까지 강했기에 분데스리가 초창기 최고의 골키퍼로 활약했다.
오베리가 웨스트에 있는 베스트팔리아 헤르네에서 오랜 기간 활약하며 첫 전성기를 누린 틸코프스키는 분데스리가 창단 1년 전에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해서 두 번째 전성기를 누렸는데 특히 1964-65 시즌에 도르트문트의 DFB포칼 우승을 이끌었던 과정에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다음 시즌인 1965-66 시즌에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컵 위너스 컵 우승을 이끌었는데 이는 독일 클럽 최초의 유럽대항전 우승이다.
1960년대를 주름잡은 틸코스프키였지만 헤어베어거 체제에서는 소속팀에서 뛰어난 경기력을 보였음에도 주전으로 중요되지 않았는데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1962 칠레 월드컵에서 자신을 제치고 젊고 검증되지 않았던 볼프강 파리안이 중용되자 그토록 냉정했던 틸코프스키는 분노에 차 호텔 방 내부를 부쉈기에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으나 헤어베거어가 물러난 뒤에 디 만샤프트의 지휘봉을 잡은 헬무트 쇤의 체제에서는 주전으로 활약했는데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팀을 결승에 올렸다.
6위 안드레아스 쾨프케
생년월일: 1962년 3월 12일
A매치 기록: 59경기 43실점 / 28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FC 뉘른베르크
1990년대를 대표하는 골키퍼 중 한 명으로 뛰어난 판단력과 대단한 반사신경을 앞세워 일대 일 방어에 강점을 보였는데 심지어는 1990년대 상반기에 주전으로 활약했던 보도 일그너보다도 낫다는 평가를 자주 받았을 정도로 잘 막았다.
홀슈타인 킬에서 데뷔해 분데스리가의 뉘른베르크에서 전성기를 보냈던 쾨프케는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트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는데 뉘른베르크와 프랑크푸르트를 합해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으며 1993년에는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다. 말년에는 마르세유에서 활약하다가 2.분데스리가로 강등된 뉘른베르크로 돌아가서는 2000-01 시즌 2.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끌며 팀을 분데스리가로 승격시키고 은퇴했다.
키커 랑리스테 펻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 6회 선정 및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12회 선정된 쾨프케는 프로 데뷔 11년 만에 소집된 디 만샤프트에서 후배 일그너와의 주전 경쟁에서 밀리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벤치에서 우승을 경험했지만 이후 1994년에 일그너를 밀어내고 주전 자리를 차지했는데 주전으로 활약한 UEFA 유로 1996 우승 과정에서 큰 공을 세우며 당해 최고의 골키퍼로 평가받았는데 1996년 베스트 유러피언 골키퍼, IFFHS 선정 월드 베스트 골키퍼로 선정되었으며 1996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13위에 랭크되었다.
5위 하인리히 슈툴파우트
생년월일: 1896년 1월 11일
A매치 기록: 21경기 40실점 / 5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4cm
주 소속팀: FC 뉘른베르크
1920년대 최고의 골키퍼인 사모라의 라이벌로 평가받았으며 세계 최초로 경기에 관여하는 스위퍼 키퍼의 역할을 성립했다는 설이 있는 골키퍼이며 오늘날의 수비형 미드필더와 유사한 하프백 자리에서도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을 정도로 발밑이 우수했다.
1920년대 뉘른베르크를 독일을 넘어서 유럽 최고의 클럽 중 하나로 만든 슈툴파우트는 뉘른베르크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남부 독일 리그 7회 우승 및 독일 챔피언쉽 5회 우승을 포함해 크고 작은 대회에서 22회 우승컵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큰 공을 세웠는데 특히 1918년부터 1922년까지 104경기 무패 행진을 달리는 엄청난 기록을 세웠고 이때 480경기에서 47골만 실점하는 말도 안 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독일 축구 무대를 지배했고 당연하게도 디 만샤프트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다.
슈툴파우트는 뉘른베르크가 친선 경기에서 지는 것조차 수치스럽게 여겼을 정도로 승부욕이 강했으며 뉘른베르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 "이 도시, 이 클럽에서 플레이하는 것 그리고 뉘른베르크에서 사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다. 이 모든 것들은 길이 남고 위대한 뉘른베르크는 절대 침몰하지 않으리"라는 어록을 남기며 팀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4위 하랄트 슈마허
생년월일: 1954년 3월 6일
A매치 기록: 76경기 73실점 / 25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78kg
주 소속팀: FC 쾰른
1980년대 세계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로 거친 플레이로 상대 공격수의 기를 죽이는 플레이를 즐겼으며 폭발적인 반사신경과 막강한 팔 힘에서 나오는 멀리 던지기를 활용한 빌드업 능력을 활용해 유럽 축구계를 주무르는 골키퍼 중 하나로 이름을 날렸다.
FC 쾰른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구단 통산 최다 출전자에 랭크된 슈마허는 데뷔 시즌에 분데스리가와 DFB포칼 더블 준우승을 경험했고 1976-77 시즌 DFB포칼 우승에 이어 1977-78 시즌에는, 디 가이스버커의 분데스리가 우승과 DFB포칼 우승, 즉 더블 크라운을 이뤄내며 전 독일의 주목을 받았고 1980년대에도 1979-80 시즌 DFB포칼 준우승과 1981-82 시즌 분데스리가 준우승, 그리고 1982-83 시즌 DFB포칼 우승을 이뤄냈고 유럽 무대에서도 1985-86 시즌엔 UEFA컵 결승에 진출했으나 레알 마드리드에게 패하며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리고 튀르키예의 페네르바체에서도 정규리그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했으며 말년에는 바이에른 뮌헨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백업 골키퍼로 머물며 후자의 팀에서는 1995-96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을 경험하기도 했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 9회 선정 및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 6회 선정을 기록한 슈마허는 디 먄샤프트에서는 UEFA 유로 1980 우승과 두 번의 월드컵 결승 진출에 공헌했는데 특히 유로 1984에서는 팀이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음에도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들며 대회 최우수 골키퍼로 인정받아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고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서독의 결승행을 이끌며 실버볼과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그 해에도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다.
3위 제프 마이어
생년월일: 1944년 2월 28일
A매치 기록: 95경기 73실점 / 43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20세기 독일 최고의 골키퍼이자 바이에른 뮌헨 통산 출전 1위에 랭크된 마이어는 안칭의 고양이라는 별명답게 날렵한 반사신경과 유연성을 자랑했다.
바이에른 뮌헨의 원 클럽 맨이자 구단 통산 최다 출전자에 랭크된 제프 마이어는 분데스리가 4회 우승과 유러피언 컵 3회 연속 우승을 포함해 13회의 우승컵을 들었으며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세 번 수상했고 특히 1975년에는 유러피언 컵 우승 과정에서 크게 기여하며 발롱도르 투표에서 5위를 차지하는 영광을 누린 것을 포함했고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도 월드클래스 등급에 6회 선정 및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21회 선정되었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안정적인 활약을 펼치며 1970년대 초중반 서독 대표팀의 최전성기를 이끈 일등 공신 중 한 명으로 추앙받는 제프 마이어는 UEFA 유로 1972 우승과 1974 서독 월드컵 우승, 그리고 UEFA 유로 1976 준우승을 달성하며 메이저 대회 3회 연속 결승 진출에 성공했으며 마이어 본인도 1974 서독 월드컵에서 대회 최우수 골키퍼로 선정되었다.
2위 올리버 칸
생년월일: 1969년 6월 15일
A매치 기록: 86경기 95실점 / 29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8cm / 몸무게 91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200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골키퍼로 경이로운 선방 능력과 뛰어난 수비 라인 통솔, 그리고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상대 공격수와의 기싸움에 능해 타이탄이라 불렸던 골키퍼였다.
카를스루헤에서 잠재력을 만개하기 시작해 바이에른 뮌헨에서 전성기를 보낸 올리버 칸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소속팀 바이에른 뮌헨을 유럽 축구 3M의 시대를 이끌며 분데스리가 8회 우승과 DFB포칼 6회 우승, 그리고 1995-96 UEFA컵 우승을 이뤄냈다. 특히 2000-01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맹활약해 팀의 우승에 마침표를 찍으며 맨 오브 더 매치를 수상했고 이를 바탕으로 발롱도르 포디움에 들었다.
디 먄샤프트에서도 1998 프랑스 월드컵 이후 쾨프케가 은퇴하면서 주전 자리를 차지한 올리버 칸은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다수의 멤버들이 부상과 부진으로 고생하는 팀을 이끌며 압도적인 활약을 펼쳐 결승에 진출했는데 그 공로로 골키퍼로는 최초로 월드컵 MVP인 골든볼을 수상했고 이런 활약을 인정받아 2002년 발롱도르 투표에서도 3위에 들었다. 그러나 UEFA 유로 2004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해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주전자리를 레만에게 내주기도 했다.
1999년부터 2002년까지 베스트 유러피언 골키퍼와 UEFA 클럽 베스트 골키퍼를 4회 연속으로 수상했고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도 월드클래스 등급에 8회 선정되며 시대를 빛낸 올리버 칸은 IFFHS 월드 베스트 골키퍼 3회 수상을 이뤄냈고 2000년과 2001년에는 독일 올해의 선수 2회 연속 수상 및 발롱도르 포디움에 2년 연속으로 들며 골키퍼로서는 유일하게 발롱도르 포디움에 2회 이상 선정되는 대기록을 세웠다.
1위 마누엘 노이어
생년월일: 1986년 3월 27일
A매치 기록: 124경기 118실점 / 51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93cm / 몸무게 93kg
주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바이에른 뮌헨과 분데스리가 역대 최고의 골키퍼이며 골키퍼로서의 기본적인 능력은 물론, 필드 플레이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넓은 커버 범위와 훌륭한 빌드업으로 스위퍼 키퍼의 시대를 열었던 장본인인데 팀에 한 명이 더 필드에 있는 효과를 낸 노이어의 전술적 가치는 현 세대는 물론 역대로도 다른 골키퍼들과는 궤를 달리했다.
샬케에서 데뷔해 첫 전성기를 누린 노이어는 로얄 블루스의 2006-07 시즌과 2009-10 시즌에 로얄 블루스를 분데스리가 준우승을 이뤄냈고 2010-11 시즌 DFB포칼 우승과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에 공을 세워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전성기를 누린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분데스리가 11연패를 이뤄냈고 2012-2013 시즌과 2019-20 시즌에는 트레블을 이뤄냈는데 특히 2019-20 시즌 결승전에서는 전반 초반 파리의 네이마르, 음바페, 디 마리아의 공세를 철벽처럼 막아내며 우승에 크게 공헌했다.
디 만샤프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친 노이어는 2010 남아공 월드컵과 UEFA 유로 2012 및 UEFA 유로 2016에서는 조국을 4강에 올렸고 특히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스위퍼 키퍼가 무엇인지 세계에 널리 알리며 팀의 월드컵 우승에 공헌하며 대회 최우수 골키퍼로 선정되었음은 물론 골키퍼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도한 활약을 인정받아 발롱도르 투표에서 3위에 올랐고 동시에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차지했다. 그러나 말년에는 세대교체의 실패로 고생했다.
키커 랑리스테 월드클래스 등급 12회 선정 및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 14회에 선정된 노이어는 분데스리가에서는 독일 올해의 선수 2회 선정 및 VDV 일레븐과 키커 올해의 골키퍼에 각각 9회 선정되었고 유럽 및 세계 단위로는 베스트 유러피언 골키퍼와 IFFHS 세계 최고위 골키퍼에 5회 선정되었고 UEFA 챔피언스 리그 시즌의 스쿼드 3회 선정되었으며 특히 UEFA 올해의 선수에서는 2013-14 시즌 2위 및 2019-20 시즌 3위에 올랐다. 당연하게도 2020년에 선정한 IFFHS 지난 10년의 세계 최고의 골키퍼와 월드팀 및 UEFA팀에 모두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