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Top 11~20

국가의 영웅들/독일

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Top 11~20

토르난테 2025. 1. 10.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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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독일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고로 트라우트만은 제외되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 출처는 RSSSF와 트렌스퍼마크트이며 둘의 기록이 상충할 경우에는 전자를 우선적으로 따릅니다.

 


20위 토니 투렉

 


생년월일: 1919년 1월 18일
A매치 기록: 20경기 27실점 / 5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1950년대 초중반, 독일 최고의 골키퍼로 뛰어난 반사신경과 우수한 판단력을 바탕으로 가능한 모든 상황에서 공을 잡을 수 있었으나 종종 과시하기를 좋아해 불필요하게 실점하기도 했다.

아인트라흐트 뒤스부르크에서 데뷔해 울름, 프랑크푸르트와 같은 클럽에서 활약하다가 포르투나 뒤셀도르프로 이적해 전성기를 누린 투렉은 1950년에 다시 국제대회에 모습을 나타낸 서독 대표팀의 주전 골키퍼로 활약했다.


특히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는 초반에는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지만 토너먼트로 갈수록 진가를 드러냈고 결국 헝가리와의 결승전에서 히데쿠티의 득점이나 다름없었던 슈팅을 극적으로 선방하며 우승에 기여하며 축구 평론가 헤어베르트 짐머만으로부터 "신이 나타났다."라는 찬사를 듣기도 했다.

 

 

19위 볼프강 클레프

 


생년월일: 1946년 11월 16일
A매치 기록: 6경기 4실점 / 2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0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1970년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의 전성기를 이끌던 수문장으로 정확한 위치 선정과 동물적인 반사신경으로 맹활약했으며 제프 마이어와 라이벌리를 이뤘다.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통산 출전 7위를 기록한 클레프는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며 분데스리가에서 5회 우승과 1972-73 시즌 포칼 우승과 UEFA컵 2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본인도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6회 선정되었다.

디 만샤프트에서는 UEFA 유로 1972와 1974 서독 월드컵에서 제프 마이어의 백업 역할을 맡아 우승의 영예를 누렸던 클레프는 희극인 오토 바일케스와 달은 외모로 오토라는 별명으로 불렸는데 유머 감각도 대단했다고 전해진다.

 

 

18위 놀베르트 니그부어

 


생년월일: 1948년 5월 8일
A매치 기록: 6경기 2실점 / 4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FC 샬케 04

1970년대 제프 마이어와 라이벌리를 구축했던 골키퍼로 특유의 반사신경과 유연성 덕분에 제프 마이어와 마찬가지로 고양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페널티킥 방어에 능해 통산 31번의 페널티킥 상황에서 무려 25번을 막아냈다.

샬케와 헤르타 BSC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며 전성기를 누렸던 니그부어는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3회 선정되었으며 후자의 구단에서는 1971-72 시즌 DFB포칼 우승을 이뤄내며 1999년에 선정된 샬케의 세기의 일레븐에 선정되기도 했다.

니그부어 개인도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만 15회 선정되는 등 꾸준하게 평가가 높았으나 대표팀에서는 제프 마이어라는 압도적인 존재로 인해 벤치에 자주 앉아있었으며 백업 멤버로 1974 서독 월드컵 우승을 경험했다.

 

 

17위 루디 카르구스

 


생년월일: 1952년 8월 15일
A매치 기록: 3경기 1실점 / 2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함부르크 SV

1970년대 하반기 분데스리가 정상급 골키퍼로 페널티 라인 안에서 안정적인 플레이를 추구했으며 적절한 위치 선정과 정확한 예측력, 그리고 우수한 반사신경을 바탕으로 견고한 수비를 펼쳤으며 특히 페널티킥 방어에 능해 분데스리가 통산 최다 페널티킥 세이브 기록을 보유했기에 페널티킬러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1970년대 하반기 분데스리가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이었던 카르구스는 함부르크의 전성기를 이끌며 1975-76 DFB포칼 우승 및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1976-77 시즌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 우승, 그리고 1978-79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과 1979-80 시즌 유러피언 컵 준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세웠으며 뉘른베르크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에 10회 선정된 카르구스는 독일 대표팀에서는 UEFA 유로 1976과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제프 마이어의 백업 멤버로 대기했는데 전자의 대회에서는 준우승을 경험했다.

 

 

16위 아이케 임멜

 


생년월일: 1960년 11월 27일
A매치 기록: 19경기 15실점 / 9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7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VfB 슈투트가르트

1980년대 분데스리가 정상급 골키퍼로 안정적인 선방과 우수한 수비 조율 능력으로 정평이 났기에 분데스리가 최다 실점을 기록한 골키퍼였음에도 소속팀에서는 부동의 넘버 원이었고 대표팀에서도 중용받을 정도로 개인의 기량은 뛰어났다. 

분데스리가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슈투트가르트에서 전성기를 누린 임멜은 특히 후자의 구단에서는 구단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로 평가받는데 1988-89 시즌에 UEFA컵 결승에 진출했으나 마라도나와 카레카가 이끄는 나폴리에 밀려 준우승에 머물며 아쉬움을 삼켰지만 1991-92 시즌에는 바이에른이 부진한 틈을 타 치고 올라와 도르트문트와의 치열한 경쟁 끝에 분데스리가 우승을 차지했으며 임멜도 해당 시즌에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말년은 맨체스터 시티에서 보냈으나 엉덩이 부상 문제로 물러났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13회 선정된 임멜은 독일 대표팀에서는 토니 슈마허라는 벽으로 인해 UEFA 유로 1980과 1982 스페인 월드컵, 그리고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모두 벤치를 지켰으나 UEFA 유로 1988에서는 드디어 디 만샤프트의 주전 골키퍼 자리를 차지하며 팀의 준결승 진출을 이뤄냈다. 그러나 1990 이탈리아 월드컵을 앞두고 본인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보도 일그너를 기용한 프란츠 베켄바우어를 비판하며 대표팀에 은퇴했고 그는 이 일로 인해 월드컵 우승을 놓쳤으며 훗날 크게 후회했다고 인터뷰했다.

 


15위 로만 바이덴펠러

 


생년월일: 1980년 8월 6일
A매치 기록: 5경기 5실점 / 2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90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보루센에서 암흑기와 전성기를 모두 누린 골키퍼로 뛰어난 신체조건과 재빠른 반사신경을 바탕으로 하는 슈퍼세이브와 넓은 수비 범위를 자랑했음은 물론 집중력도 우수해서 공격수와의 일대일 상황에서 굉장히 우수한 모습을 보여줬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16년간 활약하며 구단 통산 출전 2위에 랭크된 바이덴펠러는 구단의 암흑기 시절부터 활약하며 클롭 체제의 황금기에 전성기를 맞이해 분데스리가 2연패와 2011-12 시즌 도메스틱 더블과 2012-13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끌었는데 특히 2012-13 시즌 하반기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 클래스 등급을 받기도 했다.

2000년대에는 대표팀과 거리가 멀었지만 2010년대 초반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월드클래스 등급을 받는 등 기량이 급등한 바이덴펠러는 디 만샤프트에 소집되어 노이어의 백업 골키퍼 역할을 맡아 2014 브라질 월드컵에 참가해 우승 메달을 목에 거는 영예를 누렸다.

 

14위 빌리발트 크레스

 


생년월일: 1906년 11월 13일
A매치 기록: 16경기 25실점 / 4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 75kg
주 소속팀: 드레스드너 SC 

1930년대 독일 무대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우수한 볼 컨트롤 능력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그의 팀 동료이자 훗날 서독 대표팀을 월드컵으로 우승시켰던 헬무트 쇤으로부터 "크레스는 골라인에만 붙어서 플레이하지 않았고 말 그대로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관리자였다. 위기 상황에서 실수가 적었고 결정적인 개입으로 상황을 끊어냈다. 빌리발트는 자신의 역할을 필드의 열한 번째 선수로 활용했다."라는 평가를 들었다. 

로트바이스 프랑크푸르트와 드레스드너 SC, 그리고 FSV 프랑크푸르트에서 전성기를 누린 크레스는 특히 드레스드너에서는 가울리가 작센 6회 우승, 독일 챔피언십 2회 우승이라는 화려한 커리어를 쌓으며 맹활약했다.

디 만샤프트에서는 한스 야코프, 프리츠 부흐로와의 치열한 주전경쟁으로 유명했던 크레스는 1934 이탈리아 월드컵에 주전으로 출전해 팀이 준결승에 진출하는데 큰 공을 새웠으나 준결승에서는 이전의 활약과는 무색하게 실수를 연발하며 체코슬로바키아에게 3-1로 패하면서 다시는 대표팀 골문을 지키지 못했다.

 

13위 한스 야코프

 


생년월일: 1908년 6월 16일
A매치 기록: 38경기 53실점 / 11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5cm / 몸무게 81kg
주 소속팀: 얀 레겐스부르크

1930년대 독일 무대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굉장히 모험적이고 도전적인 플레이를 즐겼으며 다소 위태로운 외줄타기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엄청난 슈퍼세이브를 보이며 비판하던 사람들도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부류의 스타일이 대부분 볼 컨트롤에 능한 것과는 대조되게 야코프는 경쟁자인 크레스, 부흐로에 비해 볼 컨트롤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얀 레겐스부르크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1000경기에 출전한 야코프는 비록 팀의 전력은 중위권 수준이라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야코프 개인의 기량은 대단했으나 계속 우승을 하지 못하자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바이에른 뮌헨에서도 잠시 활약했다. 그리고 종전 이후에는 얀 레겐스부르크로 다시 돌아와 말년을 보냈다. 얀 레겐스부르크에서의 그의 위상은 대단했는데  구단 역대 최고의 선수로 추앙받으며 현재 레겐스부르크 홈구장의 남쪽 스탠드에 그의 이름이 헌정되어 있다. 

디 만샤프트에서도 활약했는데 1934 이탈리아 월드컵 시절에는 크레스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려났지만 준결승 체코전에서 크레스의 부진으로 3.4위 결정전에는 선발 출전했으며 1936 베를린 올림픽을 기점으로 주전 자리를 탈환했으며 1937년 한 해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인 브레슬라우 엘프의 일원으로 활약했으나 서독이 오스트리아를 병합하는 사건이 일어나 오스트리아 출신 골키퍼 루돌프 라프틀에게 밀려났다.

 

12위 울리 슈타인

 



생년월일: 1954년 10월 23일
A매치 기록: 6경기 5실점 / 3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4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함부르크 SV

19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 분데스리가를 풍미한 골키퍼로 20년간 프로 생활을 유지할 정도로 우수한 자기 관리 능력과 뛰어난 반사신경 능력을 바탕으로 활약했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무려 20회의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을 받은 울리 슈타인은 1980년대 함부르크의 전성기를 이끌었는데 이때 분데스리가 2연패와 유리피언 컵 우승, 그리고 포칼 컵 우승을 이뤄내며 분데스리가 정상급 골키퍼로 이름을 날렸으며 1983-84 시즌에는 라이벌 하랄트 슈마허를 제치고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프랑크푸르트에서도 두 번째 전성기를 누리며 1987-88 시즌 포칼 우승을 이뤄냈으며 키커 랑리스테 월드클래스 등급에 선정되기도 했다.

울리 슈타인의 기량은 대단했지만 디 만샤프트에서의 족적은 미미한데 초년에는 하랄트 슈마허라는 경쟁자에 의해 밀려났으며 슈마허의 기량이 쇠한 뒤에는 슈타인 자신이 경기장 내외에서 자주 기행을 일으켰으며 특히 대표팀 감독이자 독일 축구의 상징적인 존재인 프란츠 베켄바우어를 조롱한 사건으로 인해 대표팀에는 거의 뽑히지 못했다.

 

11위 보도 일그너

 


생년월일: 1967년 4월 7일 
A매치 기록: 54경기 47실점 / 19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90cm / 몸무게 90kg
주 소속팀: FC 쾰른

1980년대 하반기부터 1990년대 상반기까지 독일 최고의 골키퍼로 활약했으며 뛰어난 순발력과 안정적인 선방과 냉정한 판단력으로 상대의 공격을 막아냈는데 특히 상대 공격수와의 일대일 상황에서 신속하면서도 재치있는 판단으로 막아내는 부분에 능했으나 땅볼 슈팅에 다소 약할 모습을 보여줬다.

쾰른에서 전성기를 누린 일그너는 비록 쾰른에서는 바이에른 뮌헨과 베르더 브레멘의 강세로 인해 트로피를 들지는 못했지만 1987-88 시즌 3위, 1988-89 시즌과 1989-90 시즌에는 준우승을 이뤄내는 등 팀을 상위권에 올렸다. 그 증거로 일그너의 개인상 이력은 꽤 화려한데 1991년 베스트 유러피언 골키퍼에 선정되었고 1989년부터 1992년까지 독일 올해의 골키퍼를 4회 연속으로 수상했으며 1993-94 시즌에는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도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15회 선정된 일그너는 디 만샤프트에서는 아이케 임멜, 안드레아스 쾨프케, 울리 슈타인 등 쟁쟁한 선배들을 모두 제치고 어린 시절부터 주전으로 활약했는데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과 UEFA 유로 1992 준우승을 이뤄내는 맹활약을 보여줬으나 1994 미국 월드컵에서의 부진으로 27세의 젊은 나이에 대표팀에서 물러났다. 말년에는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로테이션 멤버로 라리가 우승과 두 번의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으며 당시에는 유망주였던 이케르 카시야스의 멘토로 활약하며 그의 성장을 돕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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