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Top 21~30

국가의 영웅들/독일

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Top 21~30

토르난테 2025. 1. 9.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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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의 주관적인 순위입니다.
*대상자는 독일 국가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를 대상자로 했습니다. 고로 트라우트만은 제외되었습니다.
*선수 사진은 대부분 플레이어스 유저인 법정스님의 소유님의 건조폼 입니다. 다만 법정님이 만들지 않은 선수들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록일은 2025년 1월 8일 기준입니다.

 


30위 티모 힐데브란트

 



생년월일: 1979년 4월 5일
A매치 기록: 7경기 9실점 / 1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6cm / 몸무게 80kg
주 소속팀: VfB 슈투트가르트

독일 축구의 암흑기인 2000년대 초반, 미래의 디 만샤프트를 책임질 골키퍼로 기대받았던 거대한 재능이었는데 전성기 시절에는 우수한 판단력과 빠른 반응속도를 바탕으로 번뜩이는 선방을 선보이며 공격수들을 좌절시켰다.

슈투트가르트에서 데뷔해 전성기를 누린 힐데브란트는 UEFA 인터토토컵 2회 우승을 시작으로 2002-03 시즌 분데스리가 준우승, 2006-07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과 DFB포칼 준우승을 이뤄내며 맹활약했으며 그 과정에서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3회 선정되었으며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2회 선정되었다. 그러나 선배 파리안과 비슷하게 발렌시아로의 잘못된 이적으로 몰락하기 시작했고 신흥강호 호펜하임에서도 부활에 실패했다.

그래도 그가 2003-04 시즌에서 보여준 퍼포먼스는 아직도 회자될만한데 분데스리가에서 기존에 올리버 칸이 가지고 있던 825분 무실점 기록을 경신하며 884분 무실점 기록을 세웠으며 이 덕분에 부폰, 카시야스, 디다, 바이아 등 강자들을 제치고 해당 시즌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되며 그 해 유럽 최고의 골키퍼로 인정받았다.

 


29위 레네 아들러

 


생년월일: 1985년 1월 15일
A매치 기록: 12경기 8실점 / 5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91cm / 몸무게 85kg
주 소속팀: 바이어 04 레버쿠젠

한때 마누엘 노이어 이상의 재능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았던 골키퍼로 경이로운 세이브를 여러 번 보여줬으며 페널티킥 선방률이 20%에 육박했을 정도로 페널티킥 킬러였으나 2009-10 시즌부터 잦은 부상을 겪었으며 이로 인해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레버쿠젠의 유스팀에서 폴보른의 직계제자로 데뷔한 아들러는 2006-07 시즌 부트가 퇴장징계로 출전하지 못하게 되자 선두를 달리던 FC 샬케 04와의 경기에서 분데스리가 무대에 데뷔했는데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며 해당 시즌 잔여경기에 모두 출전했고 2008-09 시즌에는 DFB포칼 준우승과 2010-11 시즌 분데스리가 준우승을 이끌었음은 물론 2007-08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자신의 잦은 부상을 틈타 주전으로 도약한 베른트 레노에 의해 함부르크로 밀려났고 대표팀에서도 노이어와의 주전 경쟁에서 완벽하게 밀려났다. 그래도 함부르크에서도 여전히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며 2015-16 시즌 종료 후, 키커지 골키퍼 부문 평점 1위와 키커 선정 시즌 베스트 11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아들러는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개인통산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9회 선정되었다.

 


28위 베른트 레노

 


생년월일: 1992년 3월 4일
A매치 기록: 9경기 10실점 / 3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9cm / 몸무게 82kg
주 소속팀: 바이어 04 레버쿠젠

2010년대 독일과 잉글랜드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골키퍼로 비록 시대에 맞는 볼 플레잉 디펜더와는 거리가 있지만 큰 키와 엄청난 반사신경을 바탕으로 하는 슈퍼세이브로 이름을 날렸다.

레버쿠젠이 아들러의 백업으로 슈투트가르트 2군에서 영입한 골키퍼였던 레노는 첫 시즌부터 전반기와 후반기 모두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을 받았을 정도로 대단한 퍼포먼스를 보여줬으며 이후 2012-13 시즌부터 2015-16 시즌까지 네 시즌 연속으로 레버쿠젠을 UEFA 챔피언스리그에 진출시키는 활약을 보여줬고 아스날에서도 2018-19 시즌 FA컵 우승을 이뤄내는 등 퍼포먼스를 이어나갔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10회 선정된 레노는 키커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되었고 독일 대표팀에서는 2017 컨페드컵에서 우승을 이뤄내는데 공헌했다.

 

 

27위 한스외르그 부트

 


생년월일: 1974년 5월 28일
A매치 기록: 4경기 4실점 / 1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91cm / 몸무게 91kg
주 소속팀: 바이어 레버쿠젠

독일 축구계의 대표적인 골 넣은 골키퍼로 페널티킥 방어 과정에서의 심리전을 페널티킥 키커로 찰 때 그대로 응용하며 분데스리가 통산 26골을 기록했으며 유럽 무대에서는 특히 유벤투스에게 강했는데 세 개의 서로 다른 팀에서 유벤투스를 상대로 득점을 성공시키며 천적으로 군림하기도 했다.

올덴부르크에서 데뷔해 함부르크에서 첫 전성기를 맞이했는데 1999-2000 시즌에는 9골을 득점하며 골키퍼로서 팀 내 최다 득점자에 올라섰고 레버쿠젠에서는 입단 첫 시즌인 2001-02 시즌에 분데스리가에서 우승 경쟁을 했으며 DFB포칼과 챔피언스리그에서도 결승에 진출해 트레블을 노렸으나 모두 준우승을 차지하며 트리플 러너업이라는 대단하면서도 아쉬운 성적을 기록했고 이후에도 5년 더 활약했고 말년에는 바이에른 뮌헨에서 활약하며 2009-10 시즌 분데스리가와 DFB포칼 우승 및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기록했고 2011-12 시즌이 끝나고 은퇴했다.

키커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된 부트는 독일 대표팀에서는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올리버 칸과 옌스 레만에 이어 서드 골키퍼로 참가했고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노이어의 백업 역할을 맡았는데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 3위 결정전 우루과이와의 경기에서 노이어 대신 출전해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26위 케빈 트랍

 



생년월일: 1990년 7월 8일
A매치 기록: 6경기 5실점 / 2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90cm / 몸무게 88kg
주 소속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2010년대~20년대 분데스리가와 리그앙에서 명성을 떨친 골키퍼로 우수한 신체 조건과 강력한 완력, 그리고 동물적인 반사신경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공중볼 처리와 볼 캐칭은 물론 장거리 스로인으로 페널티 라인에서 볼을 멀리 보내는 능력도 뛰어나며 경험이 쌓인 뒤에는 안정적인 수비진 조율과 발을 이용한 풋 세이브 능력도 향상되었지만 노이어, 테어 슈테겐과는 다르게 발밑 자체는 좋지 못했다.

골키퍼 육성의 명가 카이저슬라우테른 출신으로 2012-13 시즌에 승격한 프랑크푸르트에 합류한 트랍은 첫 시즌부터 키커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등 여러 차례 좋은 모습을 보여줘 빅클럽들의 관심을 받았고 결국 프랑스의 절대강자 파리 생제르맹으로 이적해 리그앙 2회 우승을 포함해 총 11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으나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 다시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왔다.

다시 돌아온 프랑크푸르트 2기 시절에는 승격과 강등을 반복하던 프랑크푸르트의 약진을 이끌며 중상위권으로 올린 트랍은 2018-19 시즌에 UEFA컵 4강 진출을 이뤄냈고 분데스리가에서도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2021-22 시즌에는 UEFA 유로파리그에서 레알 베티스, FC 바르셀로나,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라는 고난도의 대진을 뚫고 결승에 진출했고 결승 레인저스전에서도 엄청난 선방을 보여주며 승부차기 끝에 승리해 UEFA 유로파리그 우승컵과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타냈으며 결승전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되었다.

독일 대표팀에도 종종 소집된 트랍은 UEFA 유로파리그 올스타팀에 2회 선정되었고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8회 선정되었다.

 


25위 디터 부이덴스키

 


생년월일: 1950년 11월 26일
A매치 기록: 12경기 8실점 / 7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1cm / 몸무게 76kg
주 소속팀: 베르더 브레멘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롱런한 골키퍼로 골키퍼 치고는 키가 크진 않았지만 뛰어난 반사 신경을 바탕으로 상대의 슈팅을 선방했으며 훌륭한 리더십으로 팀의 주장직을 맡으며 동료들을 독려했다.

베르더 브레멘에서만 16년간 헌신하며 구단 통산 최다 출전자에 랭크되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수문장 부이덴스키는 비록 우승 트로피는 1980-81 시즌 2.분데스리가 우승과 마지막 시즌에 백업 멤버로 얻어낸 1987-88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이 전부였지만 구단의 암흑기 탈출에 공을 세웠으며 분데스리가 3회 준우승을 이뤄내며 구단의 황금기의 기반을 쌓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도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8회 선정되었다.

키커 올해의 팀에 2회 선정된 부이덴스키는 독일 국가대표팀에도 서브 골키퍼로 선발되어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과 유로 1984에서 각각 마이어와 슈마허의 백업 역할을 맡았다.

 

 

24위 베른트 프랑케

 



생년월일: 1948년 2월 12일
A매치 기록: 7경기 3실점 / 4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3cm / 몸무게78kg
주 소속팀: 아인트라흐프 브라운슈바이크

1970년대와 80년대 분데스리가 정상급 골키퍼 중 한 명이었으며 특히 일대 일 상황에서 각을 좁히며 나와 상대 공격수를 막아내는 부분에 능했으며 꾸준한 자기관리를 바탕으로 기복없는 모습을 보였다.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에서 490경기 넘게 출전해 135회의 클린시트를 기록한 프랑케는 1982-83 시즌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도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에 12회 선정되었다.

독일 대표팀에서는 마이어, 클레프, 니그부어, 카르구스, 슈마허 등 여러 골키퍼들의 전성기가 겹쳐 1982 스페인 월드컵에 백업 골키퍼로 출전해 준우승을 경험했으며 1984년에는 LA 올림픽에 출전하기도 헸다.

 

 

23위 한스울리히 그라팬틴

 



생년월일: 1943년 9월 2일
A매치 기록: 21경기 17실점 / 11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8cm
주 소속팀: 카를 차이스 예나

동독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로 우수한 반사신경에서 나오는 뛰어난 선방 능력과 꾸준한 자기 관리로 이름이 높았지만 번뜩이는 부분은 다소 부족했다.

선수 생활 전부를 카를 차이스 예나에서만 보낸 원 클럽맨 그라팬틴은 카를 차이스 예나에서 20년 가까이 머물며 412경기에 출전해 DDR-오베리가 2회 우승 및 FDGB 포칼 3회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그라팬틴 개인도 동독 올해의 축구선수에 2회 선정되었을 정도로 우수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그라팬틴은 클럽에서의 위상과는 다르게 대표팀에서는 다소 불운했는데 동독 역사상 최강의 골키퍼라 평가받는 위르겐 크로이와 같은 세대라는 불운으로 벤치를 지켰다. 그래도 백업 멤버로 1976 몬트리올 올림픽 축구 종목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2위 레네 뮐러

 


생년월일: 1959년 2월 11일
A매치 기록: 46경기 50실점 / 16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80cm
주 소속팀: 로코모티브 라이프치히

1980년대 동독 축구를 대표하던 골키퍼로 뛰어난 반사신경과 적절한 위치선정, 그리고 훗날 골키퍼 코치로 대성했을 정도로 뛰어난 골키퍼에 포지션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골키퍼치고는 작은 키를 극복했다.

로코모티브 라이프치히에서 데뷔해 독일 통일 직전까지 활약한 뮐러는 FDGB포칼 3회 우승을 이뤄냈고 1986-87 시즌에는 UEFA 컵 위너스컵 4강전에서 보르도를 상대로 압도적인 선방쇼를 보여주며 팀의 결승행을 이끌었음은 물론 1987년 프랑스의 옹즈 몽디알이 선정한 유럽 최우수 골키퍼 4위에 랭크되었다.

1986년과 1987년에 동독 올해의 축구선수상을 수상한 레네 뮐러는 통상적으로 위르겐 크로이 다음가는 골키퍼로 평가받으며 동독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지만 독일 통일 이후에는 전성기의 기량을 유지하지 못하며 작센 라이프치히, 디나모 드레스덴, 장크트 파울리와 같은 팀들을 떠돌아다녔다.

 


21위 프리츠 헤어켄라트

 



생년월일: 1928년 9월 9일
A매치 기록: 21경기 33실점 / 6클린시트
신체조건: 키 179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로트바이트 에센

1950년대 독일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뛰어난 반사신경과 박스 안에서의 대담함과 우수한 판단력을 바탕으로 스트라이커에게 각도를 좁히고 기회를 제한하는 데 매우 지능적인 골키퍼로 인근 초등학교에서 체육교사로 근무한 이력 때문에 날으는 선생님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빅토리아 쾰른에서 데뷔해 FC 쾰른에 잠시 머무르다가 로트바이트 에센에서 전성기를 맞은 헤어켄라트는 데뷔 시즌인 1952-53 시즌에 DFB 포칼 우승을 이뤄내며 주목받았고 1954-55 시즌에는 독일에서 가장 치열하다는 서부 오베리가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독일 챔피언십에서도 프리츠 발터 등 독일 대표팀 다수가 포진한 카이저슬라우테른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분데스리가 초창기까지 활약하며 은퇴해 로트바이트 에센 구단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로 평가받는다.

독일 대표팀에서도 1954 스위스 월드컵 이후로 투렉의 후계자로 소집된 헤어켄라트는 1958 스위스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조국의 4강행을 이끌었다.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도 1955-56 시즌 전반기 월드클래스 등급을 포함해 월드클래스 등급 1회 및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 8회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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