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세출의 영웅 마라도나가 멕시코에서 축구의 신으로 등극했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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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세출의 영웅 마라도나가 멕시코에서 축구의 신으로 등극했던 이야기

토르난테 2020. 12. 2.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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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손

 

1986년 6월 22일, 멕시코의 에스타디오 아즈테카에서 아르헨티나는 잉글랜드와 월드컵 8강전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후반 6분에 마라도나는 잉글랜드의 명수문장 쉴턴을 상대로 헤딩골을 넣는다. 하지만 잉글랜드의 골키퍼 피터 쉴튼이 핸드볼이라고 외쳤다.

 

신의 손의 장면


이를 보지 못했던 주심은 부심에게 물어봤으며 부심이  '손으로 넣지 않았다.'라고 판단하는 바람에 이것은 득점으로 인정되었다.

여기서 마라도나가 압권인게 피터 쉴튼이 핸드볼이라고 외칠 때 마라도나는 세리머니를 하며 아르헨티나 동료들에게 "빨리 와서 나를 껴안아! 우리가 머뭇거리면, 심판 또한 머뭇거리고 골이 안 될 거라고."라고 외쳤다고 자서전에서 밝혔다.

하지만 마라도나는 이 신의 손을 조롱할 기회조차도 주지 않았다. 이 골이 있고 나서 4분 뒤에 마라도나가 하프라인부터 무려 68미터를 단독 드리블로 골키퍼까지 6명을 제치고 축구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골을 득점한 것이다.

 

잉글랜드전에서의 마라도나의 골 세레머니


마라도나는 경기가 끝난 뒤에 한 인터뷰에서 '신의 손에 의해서 약간, 나머지는 마라도나의 머리에 의해서 득점한 것.'이라고 애매한 인터뷰를 했었으며 이에 이 골을 신의 손이라고 불렸으며 축구에서 핸들링 반칙을 하면 이 신의 손이라는 별명으로 조롱했다.

이후 마라도나는 벨기에와 서독을 연파하고 월드컵 우승을 이뤄냈다. 독자분들은 여기서 궁금할 것이다. 신의 손도 재밌고 아름다운 골도 좋은데 마라도나와 아르헨티나의 감독 카를로스 빌라르도는 과연 어떻게 우승할 수 있었을까?

오늘 칼럼에서는 빌라르도가 마라도나가 최대한의 기량을 발휘하게 하기 위해 어떻게 도움을 줬는지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신이 지휘하는 건실한 군단

 

빌라르도는 철저하게 결과론으로 축구를 판단하는 감독이었으며 팀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운용하기를 원했다.

원래는 수비라인 지휘는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주장으로 우승을 차지한 다니엘 파사렐라에게 맡기고 공격라인 지휘는 디에고 마라도나에게 맡기는 방식을 구성했으며 실제로 예선에서는 이러한 방식으로 예선을 통과했으나 본선을 앞두고 멕시코에서 다니엘 파사렐라가 식중독으로 고생하며 컨디션 난조를 겪자 마라도나를 위시한 공격진 3인방을 위해 아래 수비라인과 중원이 희생하는 전술을 택한다.

 

1986 월드컵 마라도나 전술구도


파사렐라가 원래는 수비라인 지휘 및 커버와 빌드업을 모두 맡는 구조였으나 그가 컨디션 난조로 하차하고 나서는 수비라인 지휘화 커버는 리베로인 브라운이 맡았으며 전방으로의 빌드업은 발밑이 좋고 다재다능한 쿠시우포가 맡았다.

루제리는 상대 에이스를 집중 마킹하며 상대방의 공격을 방해했으며 올라르티코에체아는 왼쪽 측면 라인 수비와 상대 에이스를 마킹하느라 자리를 비운 루제리가 위치했던 지역을 커버하기도 했다. 지우스티 역시 우측면 지역을 지켰으며 수비형 미드필더 바티스타는 상대 중원을 견제하다가도 쿠시우포가 전진할 때 지우스티와 번갈아가며 쿠시우포의 자리를 커버하기도 했다.

엑토르 엔리케는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 역할을 맡으며 바티스타와 함께 중원 싸움을 맡다가도 좌측면으로 빠져서 좌측 공격을 주도하거나 마라도나가 좌측면으로 빠지면 중앙을 커버하면서 공격적인 부분에서도 왕성한 활동량으로 도움을 주는 자원이었다.

 

시계방향으로 마라도나, 부루차가, 발다노, 베스트 일레븐이다. (사진출처: 트위터 @GambetaLP 계정)


마라도나와 발다노, 부루차가의 삼각편대는 마라도나가 자유롭게 공격을 지휘하며 상황에 따라서 공격진을 지휘한다. 부루차가는 왕성한 활동량을 앞세운 수비 가담 능력과 훌륭한 드리블링 능력으로 우측면에서 드리블로 상대 수비를 분산하거나 크로스를 공급하며 마라도나와 발다노를 지원했다.

발다노는 키가 188cm에 달하며 이때는 축구화를 신지 않고 맨발로 측정했기에 오늘날처럼 축구화를 신고 측정하면 190cm가 넘는 장신 공격수이며 이러한 피지컬 능력을 앞세워 포스트 플레이로 다른 공격수를 지원하거나 직접 마무리하는 스트라이커이며 축구 지능이 높아 이 전술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었다. 그의 강력한 피지컬로 마라도나와 부루차가의 방패 역할인 동시에 상대를 찌르는 창날의 역할도 했다.

1986 월드컵은 마라도나가 개인의 역량으로 뒤집은 대회라고 생각들을 많이 하지만 실제로 마라도나의 진짜 장점은 팀 플레이에 능하며 주장으로서 팀을 통솔하는 능력이 우수했다는 것이었다. 마라도나는 이들의 능력을 자신이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할 수 있었으며 이를 알았던 빌라르도는 마라도나를 위해 화려함은 떨어지지만 팀 플레이를 이해하고 헌신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들을 중용한 것이다.

이에 아르헨티나는 겉보기에는 우승권 전력이 아니었지만 신을 중심으로 뭉쳤으며 신이 지휘하는 건실한 하나의 군단이었다.


파죽지세 (破竹之勢)

 

파죽지세란 대나무를 쪼개는 듯한 기세를 말하며 분위기를 한 번 타면 한방에 밀고 나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1986 월드컵의 아르헨티나도 이와 같았다. 디펜딩 챔피언 이탈리아와 본선에는 자주 등장하는 불가리아, 그리고 32년 만에 돌아온 아시아의 대한민국과 한 조가 되었다.

대한민국은 마라도나를 제어하기 위해 수비형 미드필더 허정무와 다섯 명의 수비진들이 거친 플레이로 막았지만 결국 3-1로 패했다. 이탈리아는 알토벨리의 페널티 킥 득점으로 앞서 나갔지만 마라도나에게 동점골을 내줬다. 이후에는 스토퍼 베르고미와 비에르코보드의 육탄 방어로 간신히 아르헨티나를 1-1로 막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불가이라는 발다노와 부루차가의 골을 맞고 패했으며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는 조별예선 1위로 진출했다.

 

마라도나와 허정무의 악연


16강에서는 프란체스콜리가 이끄는 코파 아메리카의 챔피언 우루과이를 맞이해 백업 공격수 파스쿨리의 결승골로 1-0으로 이겼다. 8강 상대는 잉글랜드였다.

잉글랜드는 4년 전, 포클랜드 전쟁에서 아르헨티나를 대패시키며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는 슬픔을 주던 적성 국가였다. 마라도나와 아르헨티나는 서론에 상술했던 내용대로 월드컵 역사상 가장 비겁한 득점과 월드컵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득점을 동시에 넣으며 2-1로 승리했으며 시포와 쾰레만스가 이끌던 돌풍의 팀 벨기에도 마라도나의 멀티골로 2-0으로 승리를 거둔다.

결승전은 저번 대회에서도 결승에 올랐던 베켄바우어 감독의 서독이었다. 서독의 베켄바우어는 마라도나를 막기 위해 수비수를 실질적으로 여섯 명을 배치하는 구조를 사용한다. 심지어 중앙 미드필더의 마테우스로 마라도나를 전담 마킹했다. 20년 전 자신이 직접 찰튼을 전담해서 마킹한 것처럼 말이다.

 

마라도나를 상대하기 위한 1986 월드컵 서독의 결승전 라인업


측면 수비수 브레메가 빌드업을 하고 마테우스가 마라도나를 마킹하며 대회에서 최초로 마라도나를 고전시켰음에도 아르헨티나는 마라도나의 지휘를 받는 훌륭한 선수들이 있었다. 마라도나가 프리킥으로 호세 루이스 브라운의 헤딩 선제골을 어시스트했으며 후반 10분경에는 발다노가 추가로 득점하며 2-0으로 서독을 몰아붙였다.

베켄바우어는 마테우스를 이렇게 활용하는 건 오판이라고 판단해 후반 17분경 마가트를 빼고 공격진의 에이스 푈러를 빼며 공격수를 세 명으로 늘렸으며 마라도나를 공격적으로 활용하고 토마스 베르톨트를 포그츠처럼 활용해 마라도나를 견제했다.

실제로 교체 투입된 푈러는 루메니게의 골을 어시스트했으며 자신이 직접 헤딩으로 동점골을 뽑아내며 선전했다.

하지만 베르톨트와 마라도나의 실력차는 월등했다. 결국 자유로워진 마라도나에 의해 아르헨티나는 공격의 물꼬가 텄으며 부루차가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며 월드컵 우승에 공헌했다.

 

월드컵 우승의 기쁨을 즐기는 마라도나.


파죽지세로 강호들을 연파하며 패전으로 위축되어있던 국민들을 위로한 마라도나는 이 우승으로 축구의 신의 반열에 확실하게 올랐다. 대회 MVP인 골든볼은 당연히 마라도나의 차지였다.


승천한 축구의 신을 추모하며

 

축구의 신이 월드컵으로 우승한 이래 34년이 지났지만 이후 아르헨티나는 바티스투타나 메시 같은 훌륭한 선수들이 있었음에도 다시는 월드컵에서 우승하지 못했다.

메시가 바르셀로나에서 이룬 업적이 마라도나를 능가한다고 해외의 전문가들과 팬들은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아르헨티나에서만큼은 어려운 시기에 월드컵 우승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달랜 마라도나를 메시로서도 넘을 수 없었다. 바르셀로나에서의 1년간 91골을 넣고 네 개의 빅이어를 들었음에도 그것은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큰 상관이 없었다.

 

메시와 마라도나


축구의 신은 2020년 11월 25일, 향년 60세의 나이로 하늘로 돌아갔다. 그의 동료와 선후배, 그리고 그의 라이벌들도 모두 그의 죽음을 애통해했으며 사이가 좋지 않았던 펠레와 서로가 서로를 인정했던 라이벌 마테우스, 그리고 현시대의 축구황제 리오넬 메시도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했다.

메시는 신이 하늘로 떠난 뒤 오사수나전에서 네 번째 골을 득점한 이후 자신이 처음으로 축구에 입문한 유스 클럽이자 디에고 마라도나가 말년에 뛰었던 CA 뉴웰스 올드 보이스의 유니폼을 입고 감동적인 추모 세리머니를 펼쳤다. 비록 벌금을 물었지만 메시는 개의치 않았다.

하늘로 돌아간 마라도나에게 세레머니를 바치는 매시


비록 마라도나는 축구를 하면서 불미스러운 일도 많았으며 마지막 월드컵은 금지약물로 인해 쓸쓸하게 퇴장하는 안좋은 모습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축구팬들에게 보여줬던 경이로운 플레이에서 나오는 감동은 팬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하늘로 돌아간 축구의 신 디에고. Requiescat In Pace.

동네 축덕 아저씨의 축구 썰 - 박수용의 토르난테 
관리자 박 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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