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88 시즌 유럽을 정복한 트레블 팀 PSV 아인트호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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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88 시즌 유럽을 정복한 트레블 팀 PSV 아인트호벤

토르난테 2021. 3. 17.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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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가 강한 것이다.

 

1974년 월드컵 결승을 앞두고 당시 6전 전승을 기록하며 결승에 올라온 네덜란드와 개최국 서독이 결승전에서 만났다.

사람들은 수비 축구를 앞세운 서독보다는 화려한 토털 사커로 남미의 3대 강호를 모두 무찌르고 올라온 네덜란드의 우승을 점쳤으며 동시에 네덜란드의 우승으로 크루이프가 새로운 축구 황제로 도약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결승전이 시작하자 사람들의 바람과는 다르게 경기가 진행되었다. 크루이프는 반칙을 유도하며 페널티 킥을 얻어내긴 했지만 베르티 포그츠에 막혀 볼 터치도 제대로 못했다. 그리고 크루이프가 묶여 플랜이 흔들린 네덜란드를 상대로 서독은 브라이트너의 페널티 킥 동점 골과 게르트 뮐러의 결승골로 무찌르며 자국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1974 서독 월드컵에서 크루이프의 네덜란드를 꺾고 우승컵을 든 서독의 주장 베켄바우어


자신의 바람과는 다르게 결승전이 치러지자 언론은 심술을 부렸다. 주장 베켄바우어에게 인터뷰하면서 "그래도 대회 최고의 팀은 네덜란드가 아닌가?", "크루이프가 당신보다 위대한 선수다." 같은 말을 하며 흔들기를 시도했다.

하지만 데어 카이저라 불렸던 주장 베켄바우어는 이런 유치한 언론 플레이에 의연하게 이렇게 답했다.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가 강한 것이다."

이 명언은 토너먼트 대회를 상징하는 어록으로 자리 잡았으며 어떤 방식을 따르든지 이긴다는 독일 축구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어록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네덜란드인들에게는 듣고 싶지 않았던 일침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때는 알았을까? 훗날 네덜란드를 대표해 유러피언 컵에 나온 클럽이 베켄바우어의 어록대로 유럽 축구를 평정하게 되는 날이 온다는 사실을.


2. 히딩크, 감독 대행으로 시작해 팀을 완벽하게 장악하다.

 

PSV 아인트호벤은 1977-78 시즌 리그 우승을 달성한 이후로 수 년째 리그 우승에 실패했었다.

PSV 아인트호벤은 1983년 얀 레이커 감독을 선임했으며 점차 성과가 보이기 시작했으며 1985년에는 유럽 최고의 기대주인 굴리트를 페예노르트로부터 데려왔으며 아약스 시절에 에레데비지에에서 잔뼈가 굵었던 프랑크 아르네센도 안더레흐트로부터 영입한다. 결국 1985-86 시즌에는 8년 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한다.

1986-87 시즌을 앞두고 아약스의 리베로 로날드 쿠만과 네덜란드 최고의 윙어로 불리던 젊은 재능 파넨뷔르크까지 영입한 PSV는 거칠 것이 없었다. 하지만 감독과 선수단의 불화로 경질되는 상황에 이른다.

코치였던 거스 히딩크가 감독으로 부임했다. 히딩크는 경력이 일천했고 선수들은 그를 따르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선수단의 기강을 잡기 위해 선수들에게 일갈했다.

굴리트를 포함한 PSV 아인트호벤 선수들을 지휘하는 히딩크 감독 

 

"감독만 못해서 감독이 경질된 것이 아니다. 너희들을 모두 방출하는 것보다는 감독 하나를 경질하는 게 편리해서 그 선택을 한 것이다. 하지만 감독의 문제가 아니라는 게 증명되었을 땐 너희도 방출당할 것이다."

이 일갈을 들은 아인트호벤의 선수들은 히딩크의 지휘를 잘 따르며 요한 크루이프가 이끄는 아약스를 따돌리고 리그 우승을 거두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 시즌 히딩크의 핵심 전술은 공격은 루드 굴리트, 수비는 로날드 쿠만을 코어로 삼는 전술이었으며 팀의 플레이메이커인 굴리트는 토털 풋볼에 이상적이게 공격과 수비를 오가며 엄청난 활약을 했으며 37경기에서 26골을 득점했으며 팀의 우승에 가장 중요한 선수로 활약했다.

그러나 1987-88 시즌을 앞두고 굴리트가 팀을 떠났다. 토리노에서 실패하며 에레데비시에로 돌아온 빔 키프트를 영입했으며 아약스와 바이에른에서 맹활약했던 덴마크의 플레이메이커 쇠렌 레르비를 모나코로부터 영입하며 공백을 매워봤지만 1987년 발롱도르를 수상한 루드 굴리트의 공백을 매우기에는 역부족일 것 같았다.

이 시점에서는 아무도 몰랐다. 이것이 히딩크가 PSV 아인트호벤에서 이뤄낸 신화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사실을.


3. 리그에서는 화려하게 토너먼트에서는 견고하게

 

PSV 아인트호벤은 참 1970년대 서독과 닮은 팀이었다. 자신보다 전력이 약한 팀을 상대할 때는 한 없이 매섭게 몰아치는 팀이었지만 자신보다 강한 팀을 상대할 때는 철저하게 농성하다가 확실한 역습 한 방으로 끝내는 모습을 보여줬다.

1972년의 서독은 자신이 전력에서 가장 우월한 유로에서는 화려한 축구를 보여주며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우승을 차지했으나 1974년에는 더 강해진 네덜란드를 상대로 우선 농성했지만 집요한 수비와 빠른 역습으로 그들을 좌절시키는 모습을 보여줬다. PSV도 리그와 유럽 대항전에서는 이런 모습을 채택한다.

비록 PSV 아인트호벤이 굴리트를 잃었다곤 하지만 반 바스텐과 레이카르트를 잃은 아약스보다는 여전히 우월한 전력을 자랑했으며 리그에서는 4-2-4와 흡사한 4-4-2의 모습을 보여주며 압도적으로 상대를 몰아붙이며 우승을 차지했다.

PSV 아인트호벤이 리그에서 자주 사용했던 전술


왕성한 활동량과 날카로운 오버래핑 능력을 가진 게레츠와 하인체가 측면 공격을 주도했으며 파넨뷔르크와 아르네센도 상황에 따라 측면과 중앙을 오가며 빔 키프트에게 득점을 지원했으며 이런 공격 상황은 플레이메이커인 레르비와 리베로인 쿠만이 지휘했다. 쿠만은 특히 센터백임에도 오버래핑을 자주 나갔으며 실제로 수비수임에도 리그에서 32경기에 출전해 21골이나 기록하기도 했다.

PSV 아인트호벤은 승리시 승점이 2점이던 시절임에도 아약스보다 승점이 9점이나 앞서며 우승했으며 KNVB 컵 결승전에서도 로다 JC를 이기고 우승하며 도메스틱 더블을 달성했다.

하지만 유러피언컵에서 PSV 아인트호벤은 바이에른 뮌헨, 레알 마드리드, 나폴리, 디나모 키예프 같은 유럽 최고의 강팀은 아니었다. 실제로 한 수 아래 갈라타사라이에게도 두 경기 합산 스코어 3-2로 간신히 이기고 올라왔다.

그래서 강팀과의 경기에서는 노장인 아르네센이나 반 더 케르크호프 대신 더 수비적인 자원을 기용했으며 저번 시즌 로얄 앤트워프로 임대를 다녀온 만능 수비자원 반 에이렐이 중용되었다.

하지만 대진운이 그들을 돕는데 대진운이 꼬인 레알 마드리드가 마라도나의 나폴리와 디펜딩 챔피언 포르투, 그리고 마테우스가 버티던 바이에른 뮌헨을 모두 꺾어줬다. 그럴 동안 PSV 아인트호벤은 라피트 빈과 지롱댕 보르도라는 수월한 대진을 뚫고 준결승에 진출했다. 심지어 보르도를 상대로는 원정에서 1-1로 비기고 홈에서 0-0으로 비겨서 원정 다득점으로 따돌리고 진출한 것이다.

4강 레알 마드리드전에서도 PSV 아인트호벤은 1차전 마드리드 원정에서 우고 산체스에게 페널티 킥으로 선제골을 허용하자 전원 공격으로 잠시 나섰다가 린스켄스가 동점골을 득점하자 다시 수비적으로 나왔으며 홈에서는 철저하게 수비적으로 나와 0-0으로 비기는 데 성공하며 원정 다득점으로 부트라게뇨, 우고 산체스, 미첼이 이끄는 레알 마드리드를 따돌리고 결승에 진출했다.

자국 컵 결승전에서 아르네센이 부상을 당하자 결승전 상대가 레알 마드리드에 비해 전력이 약했던 벤피카를 상대함에도 반 에이렐을 센터백으로 기용하며 5-3-2 시스템으로 나섰다.

PSV 아인트호벤이 유러피언 컵 토너먼트에서 사용했던 전술


왕성한 활동량을 보이던 게레츠와 하인체, 그리고 기습적인 공격 가담으로 상대를 혼란에 빠트리는 리베로 쿠만을 활용했으며 레르비의 패스와 휠하우스의 왕성한 활동량, 그리고 파넨뷔르크의 허를 찌르는 드리블을 활용해 벤피카의 하프 스페이스를 괴롭힐 계획으로 공격 전술을 짰으며 수비 상황에서는 5명의 수비수와 린스켄스, 그리고 처진 공격수인 휠하우스까지 수비에 가담하는 철저한 방식을 썼다.

결승전이지만 우승 후보로 지목되지 않았던 클럽들이라 PSV 아인트호벤과 벤피카 모두 수비적이고 신중한 경기를 펼쳐 승부차기로 승부를 정하게 됐다. PSV 측에서는 7명의 키커 모두가 성공했으나 벤피카의 7번 키커이자 구단의 전설적인 측면 수비수인 안토니오 벨로수의 킥을 한스 반 브로이켈렌이 방향을 정확하게 읽으며 막아내 PSV가 빅 이어를 들면서 트레블을 달성하게 된다.

히딩크는 1988년 모든 대회를 우승했으며 트레블을 이뤄내며 PSV의 역사의 가장 굵은 페이지를 써냈다.


4. 룰의 적절한 활용과 두 개의 얼굴은 토너먼트의 승리의 키다.

 

히딩크는 원정 다득점 룰과 토너먼트는 수비가 강한 팀이 이기는 것을 잘 활용하며 결국 트레블을 달성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보통 자국 리그에서는 절대강자의 위치이나 유럽에서는 우승 후보라고 불리기에 부족한 팀들은 자신보다 강한 팀을 상대하는 상황에서 경험 부족을 노출하며 탈락한다.

하지만 히딩크는 그런 상황을 잘 대처했으며 철저하게 실리를 추구하는 방식을 활용하고 원정에서는 상대적으로 공격적으로, 홈에서는 상대적으로 수비적으로 플레이하며 원정 다득점과 홈 무실점을 노리며 다음 단계로 진출했고 결승전도 결국 승부차기 끝에 우승하게 된다.

히딩크의 이런 극단적인 실리 축구는 이상론자들에게 비판받거나 잊혀진다. 하지만 그들이 폄훼하거나 대중들이 언급하지 않는다고 해도 엄연하게 우승팀은 우승팀이다.

토너먼트는 전력이 약한 상대로는 브라질처럼, 전력이 강한 상대로는 이탈리아처럼 항상 바꿀 수 있는 여우들을 위한 무대다.

히딩크의 PSV 아인트호벤은 이런 면에서 트레블을 이뤄낸 다른 팀들에게 뒤지지 않는 훌륭한 팀이다.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가 강한 것이니까.

PSV 아인트호벤의 유러피언 컵 우승 셀레브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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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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